# 예비 연출자 정우성
낮에 만난 정우성은 그야말로 ‘밤귀신’ 같은 모습으로 나왔다. 촬영 현장인 중국 저장성 헝뎬과 한국의 시차는 1시간, 시차를 느낄 리 만무했다. 정우성은 중간계인 중천의 배경적 특성 때문에 오후 6시 이후에 촬영에 들어가 새벽에 마치는 생활을 지속하고 있었다. 자리에 앉자마자 “밤낮을 바꿔 생활한다고 해도 밤은 밤이지 않냐”며 피곤함을 토로하는 그의 목 뒤로 하얀 물체가 붙어 있는 것이 보였다. 거친 액션 촬영으로 부상해 파스를 붙인 것이 아닌가 했지만, 그는 대수롭지 않게 꺼내 보이며 “내복이에요, 이거. 밤에 촬영이 많아서…”라며 웃어 넘겼다. 정우성과 내복은 원래 어울리지 않는 항목이지만 피곤으로 지친 모습과는 또 그럴 듯하게 동화됐다.
중국 올 로케 촬영에 대해 정우성은 한결 편안한 느낌이었다. ‘무사’ 이후로 중국에서 두 번째 영화 촬영이라 그런지 그는 오히려 “촬영 장소는 중국 땅이고 중국 스태프들이 많이 참여했지만, 우리의 영화에 그들을 초청한 것일 뿐이다”라며 ‘우리’영화라는 사실을 강조했다.
“성격 안 좋기로 소문난 김성수 감독님 밑에서 8년간 조감독을 한 조동오 감독님이라서 믿음이 갔다”며 영화 선택 배경을 설명한 그는 ‘비트’ ‘태양은 없다’ ‘무사’에서 인간적인 유대를 맺은 김성수, 조동오 감독에 대한 전폭적인 신뢰를 과시했다. 정우성은 다른 배우들이 입버릇처럼 얘기하는 ‘시나리오가 좋아서’ 선택한 경우보다는 조동오 감독의 데뷔작인 ‘중천’처럼 인간적인 관계로 출연을 결정하는 경우가 많다. 그가 시나리오를 꼼꼼히 읽고 결정한 작품은 ‘내 머리속 지우개’ ‘데이지’ ‘새드무비’정도다.
“전지현은 캐릭터를 감수성으로 접근하는 반면에 김태희는 이성적으로 분석해요.”
그는 전작인 ‘데이지’에서는 전지현, ‘중천’에서는 김태희 등 국내 톱스타 여배우들과 연이어 작업을 했다. 현재 함께 작업 중인 김태희가 그동안 현실적인 사랑 연기를 많이 해왔고 영화 촬영은 처음이기 때문에 더 많이 감성적이 돼야 했음을 지적했다.
한국에서 판타지는 비흥행 요소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정우성은 “중천이 처음으로 성공할 것”이라며 “판타지라도 비주얼과 기술이 아닌 얘기가 전달되는 것이 중요하며, 그런 점에서 중천은 러브 스토리와 전생의 기억을 떨치지 못한 캐릭터라는 매력이 관객들을 사로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서른살이 넘어서 일에 욕심이 이렇게 많이 생길 줄 몰랐네요. 사랑에 대한 막연한 상상이 현실적 사랑에 대한 실망으로 변하면서 30대에는 사랑에 겸손해지게 마련이죠.”
결혼에 대한 질문을 우회적으로 일에 대한 욕심으로 돌린 그는 조만간 감독으로 데뷔한다고 호언장담하고 나섰다. 아직도 조조 티켓을 끊어서 극장에서 영화보는 게 좋고 자신이 직접 사람들에게 그 기분을 만들어 주고 싶다는 욕심 때문이다. 중천이 끝나면 자신의 영화를 만들고 또 그 후반 작업을 하면서 영화에 출연하겠다는 그는 여전히 온몸을 던져 연기해 촬영장에서 손가락뼈가 보일 정도의 심한 부상을 입고 있다. 그는 13년차 배우의 느긋함보다는 신인 배우의 열정을 가진 배우다.
# ‘신인 배우’ 김태희
얼굴이 주먹만 하고 그 작은 얼굴에서 눈이 절반을 차지한다. 흔히 예쁜 여자 배우들을 설명하는 데 사용하는 ‘관용어구’이다. 그러나 김태희는 정말 그렇다.
‘천국의 계단’ ‘러브 스토리 인 하버드’ 등에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한 김태희는 자신의 첫 주연 영화로 ‘중천’을 선택했다. 그 첫 영화가 중국에서 100% 촬영되니 영화에 대한 부담은 두 배가 될 듯했다.
김태희는 “많이 부담됐지만 바쁘게 돌아가는 스케줄로 촬영을 소화하기에도 힘들었던 드라마에 비해 영화는 최선을 다할 수 있는 여건이 돼 있다”며 영화가 가진 장점에 만족감을 표시했다. 또 중국 올로케 촬영에 대해서도 “한국에 있으면 친구들과 수다를 떨고 놀러 나가는 등 배역에 몰입하지 않고 계속 ‘김태희’로 돌아가려 하는데, 외국에 고립돼 온전히 배역에 몰입할 수 있다”며 여유를 보였다. 입맛에 맞지 않는 중국 음식이 힘들긴 해도 첫 영화 촬영으로 기대를 채우고 있다는 것이 그의 자평이다.
김태희는 “이번 영화를 하면서 지금까지 연기가 백지 상태였다는 생각이 든다”며 아직 햇병아리 배우로 넓게 보지 못한 것을 반성했다. 정우성이 지적한 것처럼, 그는 스스로도 ‘이런 장면이라면 이런 배경 속에 이런 표정을 하고 있을 거야’라고 스스로 너무 많이 생각하고 판단해 이성적인 연기를 해왔다는 사실을 직시했다. 정우성이 모니터링해주기도 하고 서로 연기에 대해 얘기하면서 “영화를 찍으며 이전과 달리 이성이 아니라 감정적으로 느끼는 부분이 많이 발전된 듯하다”고 영화를 하면서 거둔 수확을 내보였다.
그러나 막상 소화의 캐릭터를 설명하는 중에는 김태희의 연기관을 버리기 어려운 듯한 모습을 보였다. 캐릭터를 설명하며 연기의 어려움을 토로하던 그는 특히 천인이라는 존재가 어떤 것인지 감을 잡기 어렵다며 “정보를 모을 곳이 없다”고 말했다. 한 번도 무협소설을 읽은 적이 없는 김태희에게는 결계 등 무협에서 나오는 단어들이 생소하다는 것이다.
인간과 귀신의 사랑을 담은 ‘천녀유혼’과 비슷하다는 지적에 그는 “천녀유혼의 여주인공은 섹시하고 남자를 홀리는 느낌이지 않냐”며 “중천의 여주인공 소화는 순수한 어린아이 같다”고 캐릭터를 설명했다.
“정우성씨는 감독 데뷔를 앞두고 있어서 그런지 소품, 카메라 앵글 등 연출에 대한 소소한 것을 놓치지 않고 신경을 써요.”
자신에게 끝없이 잔소리를 하는 정우성에 대해 그는 “‘이제 메모리 용량이 초과됐으니 더 이상 얘기하지 말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10년 경력의 배우인 만큼 배울 점이 많다”고 한다. 그의 장점을 하나씩 열거하며 자신의 연기를 채찍질하는 듯했다. 얼굴도 제대로 나오지 않지만 화면에 잡히기 때문에 9시간씩 와이어에 매달려 있는 것이 고역이라며 힘든 점들을 밝히면서도 그는 웃음을 잃지 않았다. 현장 스태프들이 김태희에 대해 ‘강단’이 있는 배우라고 말하는 것이 바로 이런 모습 때문이다.
헝뎬(중국)=정진수 기자 yamyam1980@segye.com
〈사진:CJ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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