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크레용 놀이는 재미있었지만 이상한 점도 많았다. 엄마나 옆집 할머니의 얼굴을 그렸는데 종이에는 예쁜 엄마나 옆집 할머니의 얼굴이 아니었다. 동그라미 얼굴 위에 점을 찍은 짝짝이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거나 찌그러진 얼굴이 히죽 웃는 동화 속의 할멈 같은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장독간 옆에 수북하게 피어있는 아름다운 수국 꽃이 너무 예뻐서 그렸는데, 종이에 그린 것은 잡초 밭 같은 것이었다. 그래도 나는 할머니 얼굴이 왜 동화 속의 할멈처럼 그려질까, 눈이 왜 짝짝이일까, 수국 꽃이 왜 잡초 밭 같을까를 생각할 수가 없었다. 너무 어렸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렇게 보여졌을 수도 있었겠고.
나는 꽤나 오랜 어린 날을 도화지나 그냥 흰 종이 혹은 다 쓴 공책 위에 그런 그림을 그리면서 크레용 놀이를 했다. 그래서인지 학교에서는 그림 잘 그리는 아이였다. 내 그림은 자주 뽑혀서 교실 뒤 게시판에 붙여졌다.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인가, 학교 전체미술 대회 시간이었다. 교탁 위에 꽃이 꽂힌 화병과 그 옆에 사과 몇 알이 놓여 있었다. 정물화 그리기였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꽃이 있는 그림을 얼른 그렸다. 도화지에 그린 그림은 내가 봐도 잘 그렸다. 친하게 지내는 옆의 친구는 절반도 그리지 못하고 끙끙 맸다. 그 아이는 내 그림을 힐끗힐끗 바라보면서 내 그림 흉내를 냈다. 그런 그 애가 안쓰러웠다. 나는 선생님 눈을 피해 그녀의 도화지를 달라하여 미처 그리지 못한 그림을 그리고 색을 칠해줬다.
일주일 후 그림대회 발표가 있었다. 그런데 내 그림은 떨어졌고, 내가 절반 이상 그려준 친구의 그림은 당선이 되었다. 친구는 좋아서 어쩔 줄 모르는데 나는 속이 상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아무도 없는 학교 화장실 뒤에 가서 막 울었다. 내가 마음이 내켜 그려준 것이었으면서도 그 친구가 미웠고, 내 것을 떨어뜨리고 그 그림을 뽑아준 선생님도 미웠다. 나는 1년 내내 학교 게시판에 걸려 있는 내 솜씨의 절반이 들어있는 친구의 그림을 피해 다니기도 했고, 때로는 그 그림을 보면서 마음속으로 저건 내가 그린 그림인데, 하고 스스로 위안을 하기도 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 고등학교를 가면서 나는 그림 그리기와는 점점 멀어졌다. 그저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으로만 나이를 먹어갔다. 다른 쪽으로 눈을 돌린 것이다. 나의 절반의 그림으로 상을 탔던 아이는 그 이후 그림을 열심히 그렸고, 미술대학을 갔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서 어느 날 신문에서 그녀가 전시회를 한다는 기사를 읽었다. 그녀는 화가가 된 것이다. 그 옛날 나의 도움으로 상을 탔던 그 아이는 제 힘으로 상을 타야겠다는 마음으로 열심히 그림을 그렸단다. 나의 절반의 그림은 그녀를 화가로 만든 것이다.
아이들에게 꿈을 주기 위해 만든 스페이스 월드의 어린이 미술공모전이 올해 다섯 번째다. 매해 응모해 오는 수 백 점의 아이들의 그림을 보면서 나는 어린 날 내가 그린 그림들을 많이 만난다. 눈이 귀 위에 붙어서 웃고 있거나 입이 비뚤어진 엄마얼굴, 구름 위에 떠있는 해, 나무보다 더 큰 꽃, 이마 꼭대기에 붙어있는 여자 아이 눈, 몸통보다 꼬리가 더 큰 동물, 땅으로 쏟아질 것 같이 리어커에 담겨있는 과일, 대여섯 마리의 노란 병아리가 어미를 따라가는데, 그 어미가 수술이 달린 닭이 아니라 몸체만 크게 그린 병아리... 이 얼마나 때묻지 않은 순진한 아이들의 세계인가.
시상식 때 엄마아빠 손을 잡고 상을 타러 온 아이들로부터도 어린 날 나의 모습을 본다. 어제 있었던 시상식에서도 그랬다. 거기에는 많은 내가 서 있었다. 눈이 이마 위에 달린 그림을 그린 아이, 비뚤어진 입을 그린 아이, 하늘을 나르는 새를 땅에 떨어지는 새처럼 그린 아이, 그리고 내가 더 잘 그린 것 같은데 나보다 더 큰상을 타는 아이를 보고 부러워하기도 하고 섭섭해하는 아이.... 그 아이들, 바로 50년 전의 나를 보면서 가슴이 뭉클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어른이 되어서도 아이 때의 세계는 추억이 되어 그냥 그 자리에 있고, 또 앞으로 어른이 될 새로운 아이들이 똑 같이 그 세계를 살고 있다는 것을.
아이들의 세계는 아름다울 뿐이다. 그래서 아이들이 그리는 그림들도 아름답다. 솔직하다. 어른이 되면 달라지는데. 그런 아이들의 그림을 보면서 어른들은 아이들의 세계를 배워야 한다. 나는 오늘도 전시장에 붙여진 아이들의 그림을 보면서 순박한 눈으로 세상을 보는 아이들의 세계를 배우고 있다.
/김옥기·미주세계일보 편집인
<전교학신문>전교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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