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시적 세계의 실재성'' 진리 일깨운 ''진서'' 2004년 12월7일 우리나라 과학자가 또 하나의 금자탑을 쌓은 것이 언론에 보도됐다. ‘원자 움직임의 첫 촬영’은 우리가 원자시대에 살면서 관념으로만 실재하는 것으로 믿어 온 가치가 가시적인 일상생활로 소화돼 있음을 예증한다. 살아 있음은 원자의 존재를 믿고 그것의 움직임을 확인하는 일이다. 내가 생명을 얻었고, 그 힘으로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을 살게 해주는 것은 나를 구성하는 바로 그 원자의 힘이다. 이를 알게 해준 사람은 볼츠만이고, 그의 원자론은 어려운 물리 이론이 아니고 삶의 지혜를 터득해 가는 진정한 진서였다.
볼츠만은 현대 이론물리학에 ‘원자’라는 개념의 위대한 흔적을 남겼다. 그러나 그의 인생은 결코 행복을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고통스러웠다. 그는 일상의 글에서 자기 삶에 대한 이야기를 잘 하지 않았다. 비트겐슈타인의 표현처럼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는 언명에 어울리는 일생을 산 사람이 루트비히 볼츠만이다.
“나는 원자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믿지 않습니다”라는 말은 원자가 입증되기 전까지 사려 깊은 과학자와 철학자들이 표현하는 보편적인 태도였다. 인간은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해선 믿지 않는다. 볼츠만의 원자론은 보이지 않는 세계를 볼 수 있고, 보아야 한다는 진리를 규명하여 오늘날 우리가 가장 신뢰할 수 있는 과학적인 삶의 길을 제시해 주었다.
오늘날 누구도 원자의 존재를 의심하지 않는다. 원자는 밀도가 큰 원자핵과 그 주변에 구름처럼 퍼져 있는 전자로 이루어져 있고, 원자핵은 다시 쿼크로 이루어진 양성자와 중성자로 구성돼 있다. 믿음과 가치는 우리가 신봉하는 일상의 덕목이다. 그런데 그 일상의 안내자인 믿음과 가치는 듣고 보고 만져지는 실체에 근거하여 조건에 따라 변화된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게 되면 우리의 눈은 더 밝아진다. 들리지 않는 것을 듣게 되면 우리의 귀는 더욱 멀리 열린다. 그리고 만져지지 않는 것을 만지게 되면 우리는 더 많은 것을 끌어안게 된다. 원자 구조에 대한 이해는 바로 눈과 귀와 촉감의 영역을 크게 넓혀준다.
볼츠만은 많은 위대한 사람들이 그렇게 살았듯이 논쟁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세계에서 삶의 조건을 받아들이면서 보고 듣고 알게 된 것을 더 넓은 세계로 확장하는 일을 실천하는 삶을 살았다. 그가 믿은 원자의 존재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힘으로 살아 움직이는 역동적인 세계에 있었다. 원자의 존재는 낱낱의 사실을 가시적으로 나타내는 방법으로는 믿게 할 수 없다. 하나하나의 사실들은 총체적 덩어리로 구성되어 드러낼 때 비로소 그 모습이 보인다. 일상의 하루가 달이 되고 그것이 해가 되어 나중에 우리의 인생을 엮듯이, 세계는 낱개의 원자들이 조건에 반응하며 그들의 궤를 그리며 모이는 덩어리의 구조적 유형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을 이해하면서 아름다운 생을 꾸려가게 해주는 지침이 원자의 원리이다. 우리는 볼츠만과 같은 과학자들이 하는 작업처럼 생을 그렇게 힘들고 고통스럽게 살지는 않는다. 원자의 세계가 당연한 것으로 믿으며, 그것들이 표현하는 세계를 기쁨과 경이의 눈으로 바라보며 살아간다. 그러면서 보다 더 넓고 깊은 내일의 세상을 그리며 희망을 갖게 되는 것이다. |
손장권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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