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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인생의 책]에리히 프롬의 ''소유냐 삶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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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4-11-06 14:52:00 수정 : 2004-11-06 14:5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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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시경쟁과 정치적 갈등에 지치고 방황하던
대학시절 인간적 삶에 대한 해답 얻어
필자가 입학했던 1970년대 끝자락의 대학가는 별로 낭만적이지 못했고 심지어 삭막하기까지 했다. 급기야 그해 가을 박정희 당시 대통령이 피격으로 숨지면서 그 길었던 유신독재가 마감됐다. 그러자 휴업과 개강이 반복되다 드디어 장기 방학에 들어가게 된다.
이 기약없는 방학을 어떻게 보낼까 고민하다, 마음이 맞는 친구들 몇 명이 독서모임을 하자고 뜻을 모았다. 그리고 필자는 매주 한 권의 도서를 정하는 역할을 맡게 됐다. 하지만 입시 수준의 지식만 가지고 있던 필자에게 그 일은 거의 고문에 가까운 일이었다. 이 때문에 당시 유명 서점이었던 ‘종로서적’ ‘양우당’ 등을 전전하면서 겨우 어깨너머로 들어왔던 ‘논어’ ‘맹자’의 번역서를 골라 공부하기도 했다.
물론 루소의 ‘민약론’이나 로크의 ‘자유론’, 라스웰의 ‘정치’와 같?고전들을 선택해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나름대로 토론에 열을 올렸던 적도 있다. 그러다가 우연히 당시 사회교양 서적으로는 꽤 유명했던 홍성신서 1권 ‘소유냐 삶이냐’라는 에리히 프롬의 책을 발견하고 읽게 됐다.
처음 이 책에 호감을 갖게 된 이유는 제목이 어렵지 않기도 했지만, 책 초반부에 남을 지배하는 ‘소유양식’과 남과 공존하는 ‘존재양식’을 비교하는 인간적인 삶에 대한 관심 때문이었던 것 같다. 치열한 입시경쟁과 살벌한 정치적 갈등에 지쳐 인간이란 극히 이기적이고 잔인한 동물이라고 생각했던 필자에게 이 말은 가슴에 와닿을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특히 초반부에 영국 시인 테니슨과 일본 시인 바쇼의 시를 통해 소유양식과 존재양식을 비교한 것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가만히 살펴보니, 냉이꽃 한 송이가 피어 있다. 울타리 밑에”라는 구절은 아직까지도 생생하게 기억나는 부분이다.
그런데 이 책은 필자로 하여금 대학 시절 내내 프롬에 미쳐 살게 만든 계기가 됐다. 그 후 ‘자유로부터의 도피’ ‘잊어버린 언어’ ‘희망의 혁명’ ‘건전한 사회’ 등 프롬의 모든 책들을 거의 섭렵하게 된 것이다. 실제 저작연대를 따지면 위의 책들을 먼저 읽고 가장 나중에 ‘소유냐 삶이냐’를 읽어야 정상이다. 그렇지만 당시 필자는 그 반대로 프롬의 사상 변화를 추적한 셈이다. 그러면서 프롬이 20세기 좌파사상의 한 맥인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일원이었다는 것도 알게 됐다. 또 그에게 영향을 미친 사람이 칼 마르크스와 지그문트 프로이트라는 사실도 알았다. 특히 그가 후기 저작으로 가면서 마르크스의 사회구조 변혁보다 프로이트식의 인간성 회복을 강조하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의 저작들은 인간의 사적 소유와 경쟁을 사회동력으로 하는 자본주의적 삶이 얼마나 사회를 황폐하게 만들 수 있는가를 강조하고 있다. 이 때문에 타인과 공존하는 공생의식이 실종된 자본주의는 결국 비극적 결말에 이를 것이라는 점을 암시하고 있다. 최근 상생의 정치를 강변하던 정치인들이 다시 서로 못 잡아먹어 으르렁거리는 것을 볼 수 있다. 프롬의 시각에서 보면 소유욕에 눈이 멀어 공존의 미덕이 실종돼 나타난 현상일 것이다. 이념의 포로가 된 듯한 정치인들에게 이 책을 권해본다. 이번 방학 때는 이 책을 꼭 다시 한번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황근 선문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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