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새들 가운데 백로가 있다. 마을 주변의 논과 개울, 산자락의 솔밭에서 주로 생활하는 이 녀석들은 몸 전체가 흰색이라는 것만으로 우리 민족의 사랑을 넘치도록 받아온 행복한 새다. 오늘날에도 흔히 볼 수 있지만 유난히 조심성이 많아 사진으로 담기에는 만만치 않은 새 중 하나다.
물고기 사냥의 명수인 대백로의 멋진 활갯짓을 훔쳐보기 위해 비릿한 냄새가 풍기고 살짝살짝 발까지 빠지는 시화호 갯벌에서 동트기 전인 꼭두새벽부터 기다리건만, 눈썰미가 좋은 녀석들은 위장막 속의 존재를 눈치챘는지 좀처럼 근처로 다가오지 않는다. 대백로의 군무 촬영을 위해 한 달여 주말 시간을 온통 투자하고도 부족해 며칠 더 보태기까지 했으나, 얄밉게도 멋진 모습을 사진으로 담는 것을 좀처럼 허락하지 않는다. 내가 쏟아부은 시간이 아직도 적다고 생각한 것일까.
까마귀에 견주어 백로의 그 고고함을 상찬하는 옛 시조는 한둘 아니다.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까마귀 검다 하고 백로(白鷺)야 웃지 마라”로 시작하는 이직의 작품이고, 선우당 이씨의 “까마귀 노는 곳 백로야 가지 마라”, 정몽주의 어머니 이약녀의 시조 “까마귀 싸우는 골에 백로야 가지 마라”도 있다. 이 시조들은 모두 백로를 정결의 상징으로 치켜세우고 있다.
희고 깨끗한 이미지의 백로는 청렴한 선비로 의인화돼 화조화(花鳥畵)의 소재로 많이 등장한다. 백로 한 마리와 연밥이 그려진 일로연과도(一鷺蓮果圖)가 전형적이다. 옛 시절에는 이를 일로연과(一路連科)로 읽어 과거 초시와 복시를 단번에 붙으라는 축원의 의미를 담아냈다고 한다. 백로의 우리말 이름은 해오라기다. 옛 문헌에는 하야로비 해오리 해오라비 등의 이름도 나오는데, ‘해’는 희다(白)는 뜻이니 해오리는 흰 오리라는 말이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오늘날 ‘조류도감’에 보이는 해오라기들은 흰빛이 없다. |
해오라기가 이제는 다른 아종의 이름이 돼 혼란을 주고 있는데, 아마도 이는 국내 조류학이 체계가 잡히기 전에 예로부터 전래된 새 이름이 새로 명명되면서 혼선을 빚은 결과가 아닌가 생각된다.
백로의 한자 이름은 눈처럼 희다 하여 설객(雪客), 번식기 때 장식깃인 관우(冠羽)가 실처럼 날려 사금(絲禽), 풍표공자(風標公子)라고도 불렸다.
‘백로는 부자 마을만 찾아온다 ’라는 속설도 있다. 백로는 삼림이 울창하고 일년 내내 물이 풍부해 가뭄 걱정이 없으며 미꾸라지 붕어 등 먹이가 많은 지역을 골라 둥지를 트는데, 그런 서식 조건을 갖춘 곳이라면 살림이 넉넉한 부자 마을인 것이 어찌 보면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백로는 다 똑같아 보이지만 생태적 특징이 조금씩 다르고 덩치에 따라 쇠백로·중백로·대백로 3종으로 나뉘며, 노랑부리백로는 천연기념물 361호로 지정돼 보호되고 있다.
대부분의 백로가 봄에 찾아와 여름내 새끼를 길러내고 가을이면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 ‘강남’으로 이동하는 여름철새인 반면, 가을이면 한반도 북쪽에서 찾아오는 대백로는 우리나라에서 겨우살이를 하는 멋진 겨울손님이다.
◇대백로들이 이른 아침 안산 시화호에서 먹이사냥에 나서고 있다. 앞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줄지어 날아오르는 모습이 마치 흰 물레방아가 돌아가듯 장관을 빚어낸다.
사진부기자/leejr@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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