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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열의 새 이야기]붉은머리오목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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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4-08-13 08:58:00 수정 : 2004-08-13 08:5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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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사항: 편견을 버려주세요 새는 오랜 옛날부터 인간 생활과 밀접한 관계를 맺어 왔다. 옛 사람들은 새의 모양이나 깃털의 색깔, 그리고 노랫소리나 하늘을 나는 모습을 보고 길흉을 점치기도 하고 새를 통해 사랑과 증오, 슬픔, 기쁨 따위를 표현하기도 했다.
새는 자유로이 높이, 또 멀리 날아다닐 수 있으므로 미지의 세계를 꿈꾸는 사람들이 꿈의 상징으로 여기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불안과 공포, 특히 죽음과 재난과 질병으로부터 벗어나 새처럼 자유롭게 훨훨 날아다니고 싶은 인간의 소망이 새를 동경의 대상으로 떠올렸을 것이다.
익숙한 속담 중에 “뱁새가 황새 걸음을 걸으면 가랑이가 찢어진다”라는 말이 있다. 자신의 힘이나 능력으로는 버거운 일을 억지로 하려는 것을 경계하는 말로, 남이 한다고 따라하다가는 도리어 큰 화를 당하게 된다는 경구다.
우리 생활 속에 자주 등장하는 속담이지만 그 주인공 ‘뱁새’를 알아보는 이는 그리 많은 것 같지 않다. 워낙 몸집이 작고 참새나 비둘기처럼 허공을 가르며 나는 법이 드물어 사람들의 눈에 쉽게 띄지 않는 특성 탓일까. 뱁새는 농가 주변의 산과 들, 공원 등지의 작은 관목과 덤불을 삶의 터전으로 삼는 작은 새다.
뱁새의 본래 이름은 ‘붉은머리오목눈이’다. 머리가 진한 적갈색 깃털로 덮인 데다 작고 동그란 검은 눈이 오목하게 들어가 보인다 하여 이름붙여졌다.
이 새는 ‘교부조(巧婦鳥)’ ‘도충(桃蟲)’이라고도 불린다. 교부조는 엉덩이를 실룩거리며 교태를 떠는, 작고 예쁘고 귀여운 아낙같이 생긴 새라 하여 붙은 이름이고, 도충은 복숭아나무에서 벌레를 잡아먹는 모습에서 온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영화나 소설에서 흔히 눈이 작고 움푹 들어가서 음험한 인상을 주는 눈을 ‘뱁새눈’이라고 한다. 실제로 뱁새는 얼굴에 비해 눈이 작고 동그랗다. 하지만 이 작은 새의 반짝거리는 눈은 음험하기보다는 어린아이의 눈처럼 호기심으로 가득 차 있는 듯보인다. ‘뱁새눈’이란 말에서 풍기는 좋지 않은 뉘앙스는 아무래도 실제의 모습보다는 속담의 이미지에서 비롯된 것으로 생각된다.
“뱁새는 작아도 알만 잘 낳는다”라는 말도 있다. 생김새가 작고 볼품이 없다고 하여 제구실을 못하는 법은 없다는 뜻으로 쓰이는 말이다. 뱁새의 번식 생태 중 특이한 점은 암컷의 유전자에 따라 흰색 혹은 푸른색 알을 낳는다는 것이다. 껍데기 색깔이 다른 알을 낳은 새는 세계적으로도 2, 3종밖에 없으며 국내에선 붉은머리오목눈이가 유일하다. 종종 발견되는 둥지에서 푸른색과 흰색 알의 비율은 6 대 4 정도. 왜 이같이 다른 빛깔의 알을 낳는지는 아직도 미지수로 남아 있다.
붉은머리오목눈이는 뻐꾸기 새끼를 키우는 대리모로 잘 알려진 새이기도 하다. 자기 둥지에 뻐꾸기가 낳아놓고 간 알을 정성껏 품어 부화시키고, 새끼 뻐꾸기가 자기 새끼들을 밀어내고 둥지를 독차지해도 부부가 지극정성으로 돌본다.

자기 덩치보다 서너 배 이상 커버린 새끼 뻐꾸기의 입에 연신 먹이를 물어다 먹이는 이 새의 모습은 차라리 측은해 보이기도 한다. 붉은머리오목눈이는 봄부터 두 차례 새끼를 키우느라 체력을 소진해 여름철로 접어들면 비단 같이 윤기 흐르던 깃털은 다 헤지고 부리도 닳아 초췌한 모습으로 변한다. 봄철의 귀엽고 깜찍한 모습과는 사뭇 대조적이다. 그럼에도 우리 부모의 자식사랑이 그러하듯 헌신적인 부모 새의 사랑은 변함이 없다.

워낙 흔히 볼 수 있는 새여서 언제든지 사진에 담을 수 있다는 생각에 촬영을 미뤄온 터라 변변한 사진 한 장이 없었다.

그러다 지난달부터 서산, 안산, 미사리 등지에서 붉은머리오목눈이 둥지 20여개를 찾아 본격적으로 촬영에 들어갔다.
막상 사진 작업을 시작하고 보면 그 특유의 생태를 한눈에 담아내는 사진 한 장을 얻는 일이 생각이나 말처럼 쉬운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붉은머리오목눈이도 마찬가지였다. 사람과 더불어 살아온 터라 낯선 이의 접근에 민감하지 않아 촬영이 쉬울 것이란 낙관적 전망은 이 녀석들이 서식하는 덤불 속으로 들어가자마자 여지없이 깨지고 말았다.
작은 관목이나 덤불 속은 몸조차 돌릴 수 없는 비좁은 공간인 데다 빛조차 잘 들지 않는다. 더욱이 위장막 안은 사우나와 다를 바 없이 후텁지근해 새를 관찰하고 촬영하기보다 폭포처럼 흐르는 땀을 닦아 내느라 바쁘게 마련이다. 뱁새의 자연스러운 모습을 사진으로 담기에는 참으로 부적절한 환경인 셈이다.
‘장자’에는 넘치는 부귀권세가 다 부질없음을 뱁새 둥지에 빗댄 고사가 나온다. 중국 전설 속의 순 임금이 왕위를 맡아 달라고 은자 허유(許由)에게 간절히 부탁하자 허유는 “뱁새가 둥지를 짓는 데는 나뭇가지 하나면 족하고 두더지가 강물을 마신다 해도 작은 배를 채우면 됩니다”라면서 천하를 물려받기를 거부했다고 한다. 어쩌면, 작지만 열심히 자기 할일을 하며 살아가는 뱁새한테서 세상 사는 이치를 배워야 하는 것은 아닌지….

사진부기자/leejr@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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