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책장을 덮는 내 가슴은 한없이 무겁고 착잡합니다. 당신이 처한 끔찍하고 기막힌 상황이 그대로 전해져 오는 것 같군요. 그리고 인간의 내면에 도사린 극단적인 이기심과 파렴치, 비굴함과 탐욕을 이토록 적나라하게 묘사한 모파상이라는 작가는 도대체….
이 밤, 저녁내 몰아치던 폭풍우가 잦아드는가 싶더니 지짐지짐 장맛비가 계속 내리고 있습니다. 분노에 차 앙다문 잇새로 터져 나오는 당신의 오열이 빗소리에 섞여 점점 고조됩니다. 끊어질 듯 이어지는 민주주의자 코르뉴데의 휘파람도 들리는 것 같아요. 그가 부르는 프랑스 국가 ‘라 마르세예즈’가 이처럼 무력하게 느껴지는 건 왤까요. 또 수녀들이 입에 음식물을 우겨넣다가 당신의 눈물을 보자마자 갑자기 긋는 성호와 기도는 무얼 의미할까요. 다수의 이기심과 위선에 의해 무너진 한 인간의 자존심과 수치심, 배신감 앞에선 애국심도, 종교적인 거룩함도 탁상공론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요, 불 드 쉬프 양. 당신은 직업상 어떤 남자라도 다 받아들여야만 하는 거리의 여자입니다. 그런 당신이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급박한 상황에서 마차에 동승한 여러 명의 생명이 걸린 적군 장교와의 하룻밤을 거부할 순 없었을 겁니다. 그래도 사흘을 버텼습니다. 아무리 내 직업이 그렇더라도 적과의 동침은 용납할 수 없다.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애국의 길이고, 프랑스 여성의 자존심이다…. 그런데 동승자들은 어땠습니까? 사회의 지도층이라 할 만한 백작, 도의회 의원, 부유한 상인 부부, 수녀들은 직·간접적으로 모의해 당신을 적군의 방으로 떠밀어놓고 상황이 종료되자 마치 더러운 병균이라도 묻혀온 양 치마 끝이라도 스칠까봐 좁혀 앉은 채 경멸하고 비아냥거립니다. 부끄러워서 그래. 마을의 마부들까지 다 받아들이는 주제에. 자기 처지를 알아야지.
당신의 인간에 대한 신뢰와 사랑이 무너지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때 당신은 적군 장교의 애무로 더러워진 몸보다 돌변한 위선자들의 태도에 더 기막히고 화가 치밀었겠지요. 표리부동한 집단에 대해 우는 것으로 대항할 수밖에 없는 당신의 무력한 처지에 화가 납니다. 울지 말아요. 우는 건 지는 겁니다. 자기희생도 진정 가치 있을 때 효력을 발휘하는 법이라지요. 처음 갖고 온 음식을 나눠 줬을 때의 그 순수한 맘으로 그들을 동정하고 연민하세요. 그 편이 차라리 당신의 마음에 위안을 줄 겁니다.
‘전쟁이란 평화로운 이웃을 공격할 때는 만행이지만 조국을 수호할 때는 성스러운 의무가 되는 법’이라던 코르뉴데의 말처럼, 지금 미국과 이라크는 서로 자신의 입장만 내세우며 극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난 전쟁 상황 전개에는 관심 없습니다. 다만 드러나지 않은 이라크 전역 여성들의 안위와 수난이 걱정됩니다. 여성들의 소리 없는 아우성이 들리는 듯해요. 전쟁은 미사일과 폭탄, 총만 갖고 하는 건 아닐 테니까요. 내일 아침 폭풍우가 개듯 전쟁도 조만간 끝나려는지요. 인간에 대한 신뢰도 회복할 날이 오려는지요. 참으로 안타깝고 답답한 밤입니다./이나미 소설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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