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선린상고/한국 실업교육사의 산증인(명문고를 찾아서)

입력 :

인쇄 메일 url 공유 - +

◎신식교육위해 구한말 첫 관립상업학교로 출발/초대재무장관등 근현대 경제계 많은 거물 배출
우리 교육사상 최초의 상업학교인 선린상고.선린을 빼놓고는 우리 실업교육의 역사를 말할 수 없다.
93년의 긴 역사를 갖고 있는 선린은 우리나라 근­현대사를 빛낸 수많은 인재를 배출했다.
선린은 민족사의 격동기를 거치며 수차례의 학제개편을 거쳤다.
「사농공상」의 완고한 계급사회로 보수양반계층이 지배한 조선시대에 상업학교는 생각할 수조차 없었다.그러기에 선린의 탄생은 우리민족의 때늦은 각성을 의미한다.
1880년대 굴욕적으로 개국을 한 고종은 뒤늦게 신식교육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1895년 교육입국을 위한 관제를 공표한다.
사범학교 외국어학교 법관학교 우무학당 전무학당 무관학교 의학교 등이 잇따라 설립된 뒤인 1898년 관립상업학교가 세워진다.선린의 최초 모습이다.
지금의 서울 중구 명동 중국대사관 동편인 명례방에 세워진 학교는 학생들의 학자금 전액을 관비로 충당키로 했으나 학교운영은 말뿐이었고 1904년 9월 관립농상공학교로 개편되면서 비로소 졸업생을 배출한다.
이어 1906년 농과를 분리해 수원농림학교로,공과를 공업전습소로,상과를 분리해 선린상업학교로 만들어 선린상업학교만이 명동교사에 남아 단일한 선린의 역사가 시작된다.
그러나 관립상업학교의 재정이 튼튼하지 못해 계속 운영에 어려움을 겪던 차에 일본인 실업가 대창희팔낭의 기금희사로 재단법인 「선린상업학교」로 1907년 4월1일 새롭게 출발한다.
사립학교로 변신한 선린의 초대교장은 일본인 본숙가전이 맡고 초대이사도 당시 조선은행(지금의 한국은행)총재 시원성굉이 맡았다.구한말부터 교육분야가 일본인의 손에 좌지우지된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실이다.
당시는 재학생 전원에게 납부금이 면제되고 교과서 학용품까지 무상지급됐다.매달 소정의 장학금도 지급됐으니 가난한 조선인에게는 선망의 대상이었다.
1908년 야간전수과를 신설,일본학생들을 받아들이며 민족간의 갈등을 배태시킨다.
선린의 정규 1회 졸업생은 1908년 졸업한 김현태 박만교 이규진 이뢰영등 4명.제2회(1909년) 졸업생은 27명으로 대폭 늘어나고 그중에는 해방후 조선은행 총재와 초대재무장관을 역임한 윤호병씨도 끼여 있다.
선린은 총독부의 지시로 1913년부터 일본인학생을 정식으로 모집,민족갈등이 더욱 잦아진다.
1913년 11월 명동교사를 떠나 서울 용산구 청파동 현재의 자리로 옮긴 선린은 이후 발전을 거듭,20년대 초반에는 조선은행 간부 80∼90%를 선린출신이 차지할 정도였고 당시의 장안에는 「사윗감은 선린에서」라는 유행어까지 나돌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나 이 기간 선린의 수많은 인재들이 민족갈등으로 자퇴하거나 강제 퇴교처분당하는 등의 아픔을 당한다.수시로 발생하는 교내민족갈등,3·1운동,광주학생의거.이때마다 선린의 인재들은 민족의 자존을 지키려 분투했다.
이같은 민족적 시련 속에서도 선린은 1920년대부터 30년대까지 20년을 건설기이자 황금기로 보낸다.
이 시기에 배출된 송인상(25회)은 해방후 부흥부장관 재무장관을 맡게 되고 장기영(27회)은 한국은행부총재 국제올림픽위원회(IOC)위원 부총리겸 경제기획원장관 등을 역임한다.
야구 정구 농구 등 각종 운동경기에서도 선린의 명성은 전국에 날린다.
해방후인 46년 3월 6년제 선린상업중학교로 개편되고 47년 서울시가 인수,공립학교를 재발족한다.51년 9월 다시 교육법 개정에 따라 선린상고와 청파중학교(53년 5월 선린중학교로 개칭)로 분리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지금까지 배출한 졸업생(고교)은 3만4천5백9명에 이른다.
오늘 선린의 선배들은 우리사회에 학력만능풍조가 만연,실업계고교 출신 인재를 경시하는 풍조에 따라 선린의 명성이 예전같지 못함을 안타까워한다.
그러나 오늘도 선린의 인재들은 선배들의 화려한 전통을 이어받아 금융계 실업계 문화계 등지에서 민족의 동량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상업학교라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선린의 인재들은 금융계 실업계는 물론,관계 법조계 학계 문화계 의료계 등 각 분야에서 화려한 자취를 남겼다.다만 금융­실업,학계­문화계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은퇴,현역으로 활동중인 동문이 적다는게 아쉬움이다.
관계에는 윤호병(2회·초대재무부장관) 송인상(25회·전재무부장관) 장기영(27회·전부총리겸 경제기획원장관) 신만재(31회·전전매청장) 강영식(43회·전수산청장) 이종국동문(44회·충청남도지사) 등이 있다.
학계에는 이상훈 전서울상대학장(14회)을 비롯,유붕노(35회·연세대명예교수) 현점휴(42회·한양대교수) 황일청(〃·〃) 한성균(44회·건국대교수) 박선의(47회·홍익대전미술대학장) 이순용(〃·전동국대법과대학장) 이응호(49회·한국외국어대교수) 엄정식(52회·서강대교수) 김장기동문(61회·단국대교수)등이 있다.
금융계에는 문상철(28회·전조흥­국민은행장) 김민호(29회·전산업은행총재) 김세련(〃·전한국은행총재) 정진욱(38회·전국민은행장) 우찬목(47회·조흥은행상무이사) 나응찬동문(51회·신한은행장)등과 전국 각 은행 지점장도 현직만 50여명이나 있다.
실업계에는 송인상(25회·동양나이론회장) 추세환(44회·쌍용중공업고문) 원종목(49회·동양에레베이터대표) 이춘근(50회·(주)한국관광호텔용품센터대표) 신정차(51회·해태관광대표) 성민식(53회·구미수출포장공업대표) 송준강(〃·삼표레미콘대표) 박명근동문(55회·삼정호텔대표)등이 있다.
법조계에는 방순원(25회·변호사) 이봉재(27회·〃) 추진수(〃·〃) 문인구(31회·〃) 김두현동문(38회·〃) 등이 있고 예비역장군으로 김영호(43회·해군중장) 윤봉섭(〃·공군준장) 강영식(〃·육군중장) 장길용동문(44회) 등이 있다.
문화­예술계에는 시인 김수영(35회),화가 김교완(31회) 신명범(53회),서예가 김준식(38회) 정환섭(39회),가수 하청일(52회),탤런트 신국(58회),야구인 배성서(55회) 김충(56회) 박용진(59회) 김우렬(60회) 유남호(62회) 이해창동문(64회)등이 있다.<이춘규기자>

오피니언

포토

'금발' 한소희·'은발' 최민식, 명품 투샷
  • '금발' 한소희·'은발' 최민식, 명품 투샷
  • 김시아 '단발 여신'
  • 안유진, 순백 드레스 자태
  • 지수, '클릭' 부르는 미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