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르면 12일 검찰수사 의뢰 방침

박근혜정부가 역사교과서를 국정화하려고 찬성 의견서를 무더기로 조작한 정황이 드러났다. 한 명이 110여장의 의견서를 냈는가 하면 1600여명이 똑같은 주소를 기재했다. 성명란에 ‘이완용’ ‘개소리’를, 주소란에 ‘뻘짓’ ‘절대 찬성’을, 전화번호로 경술국치일(1910-0829)이나 박정희 전 대통령 서거일(1979-1026)을 적은 의견서도 있었다.
교육부는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위한 박근혜정부 여론조작(이른바 ‘차떼기 제출’) 의혹에 관한 중간조사 결과를 11일 공개했다. ‘차떼기 제출’ 의혹은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위한 고시(중고교 교과용 도서 국·검·인정 구분) 개정에 필요한 의견수렴 마지막 날인 2015년 11월2일 밤늦게 정부세종청사에 의견서를 잔뜩 실은 트럭이 도착하면서 불거졌다. 트럭에는 보수성향의 시민단체 ‘올바른 역사교과서 운동본부’가 서울 여의도 한 인쇄소에서 제작한 의견서 4만여장이 실려 있었다.

모두 컴퓨터에서 작성된 의견서 상당수는 다음날 교육부의 여론수렴 결과 발표 때 찬성(15만2800여명) 의견으로 집계됐다. 대부분 손으로 작성된 반대 의견은 32만1000명이었다. 당시 야권은 청와대와 국가정보원이 국정교과서 반대 여론이 비등하자 관변단체를 동원해 여론을 조작했다고 주장했다. 교육부 역사교과서 국정화 진상조사팀은 ‘차떼기 의견서’ 가운데 26박스(약 2만8000장)를 살펴본 결과 4374장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성명, 주소, 연락처, 이유 등을 적지 않거나 이완용, 박근혜, 개소리처럼 허위로 기재하고 동일한 인물이 작성한 것이었다고 밝혔다.
‘차떼기 의견서’를 주도한 성균관대 양모 교수는 찬성 이유만 달리한 채 118장의 의견서를 제출한 것으로 드러났다. 주소지가 동일한 학부모단체 사무실로 돼 있는 의견서도 1613장이나 됐다.
형식을 갖춘 의견서에서는 명의도용 정황이 포착됐다. 조사팀이 4374건 가운데 무작위로 뽑아 연락이 닿은 252명에게 작성 여부를 물었더니 51%(129명)만 맞다고 답했다. 25%(64명)는 “의견서를 낸 적 없다”고, 19%(47명)는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 다른 사람이 받은 경우도 12건이나 됐다.

조사팀은 당시 교육부 학교정책실장(퇴직)이 직원들에게 “밤에 찬성의견서 박스가 도착할 것”이라며 “퇴근한 직원들에게도 연락해 야간 계수작업을 마치도록 하라”고 지시한 사실을 확인했다.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직속 역사교과서 국정화 진상조사위원회는 지난 10일 열린 2차 회의에서 “전임 정부에서 조직적으로 여론조작에 나섰을 개연성이 충분한 만큼 수사의뢰할 필요성이 있다”고 의결했다고 교육부는 전했다.
교육부는 이르면 12일 양모 교수와 학부모단체 대표, 인쇄소 사장 등에 대한 검찰수사를 의뢰할 것으로 알려졌다.
송민섭 기자 stsong@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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