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일(현지시간) 밤 칠레 북부 해안에서 발생한 강진 진앙으로부터 139㎞ 떨어진 아리카에 살고 있는 리카르도 예베네스는 현지TV에 당시 상황이 “악몽과도 같았다”고 말했다. 규모 8.2 지진의 여파는 상당했다. 칠레 북부 해안의 대부분 땅이 크게 흔들렸고 접경국 페루는 물론 진앙으로부터 470㎞ 떨어진 볼리비아 수도 라파스에서도 규모 4.5의 진동이 느껴졌다고 AP통신이 전했다. 칠레 재해당국은 북부 해안 지대 가옥 수십만채가 붕괴됐고 약 90만명이 긴급대피했다고 밝혔다.
진앙으로부터 가장 가까운 도시 이키케의 피해는 심각했다. 잇단 산사태로 도로가 끊겼고 수천가구 전력과 통신이 두절됐으며 일부 상가에선 화재가 발생했다. 이키케 외곽에 위치한 한 교도소에서는 여성 수감자 약 300명이 탈옥하기도 했다. 미국 지질조사국(USGS)에 따르면 20여차례의 여진이 잇따랐고 강진 발생 45분 만에 최대 2.1m 높이의 쓰나미(지진해일)도 덮쳤다.
저녁식사를 마친 뒤 잠자리에 들 준비를 하던 20만명의 이키케 주민들은 여진·쓰나미에 대한 공포로 밤을 하얗게 지새워야만 했다. 국제구호단체 월드비전의 파브리지오 구즈만 현지 지부장은 미국 CNN방송에 “많은 사람이 2010년 2월 강진을 떠올리며 두려움에 떨었다”고 전했다. 현지 주민들은 서둘러 짐을 싸 인근 대피소나 지대가 높은 곳으로 몸을 피했다. 아리카에서는 수십명의 부상자가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으며 흙벽돌로 지어진 전통가옥 일부도 전파됐다고 주요 외신이 보도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지진 규모에 비해 인명 피해는 적었다. 500여명의 목숨을 앗아간 2010년 2월 규모 8.8 강진의 경험 때문이었다. 또 지난달 이 지역에서 규모 6 안팎의 지진이 잇따라 발생해 주민들이 대피 요령을 숙지한 것도 피해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됐다. 쓰나미 규모도 미국 하와이 주재 태평양쓰나미경보센터(PTWC)가 처음 예상했던 것보다는 강력하지 않았다는 평가다.
그럼에도 최소 6명의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 사망자 가운데 남성 4명과 여성 1명이 숨졌는데 2명은 심장마비로, 나머지는 무너진 벽에 깔려 숨졌다. 시간이 갈수록 인명피해가 더 늘어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우려됐던 칠레 쓰나미 경보는 지진 발생 10시간 뒤쯤 해제됐다. 그러나 지진학자인 제라드 프라이어는 AP에 “우리는 여전히 칠레 해안 지대가 위험이 상존한다고 보고 있다”며 “경계태세를 당분간 유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칠레 정부는 날이 밝는 대로 구호작업 및 피해 파악에 나설 예정이다. 당국은 북부 해안 지역에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진압경찰 100명과 특수부대원 300명을 현지에 급파했다. 이들 병력은 혹시 발생할지 모를 약탈 행위를 방지하고 탈옥한 죄수 체포를 담당한다. 미첼 바첼레트 칠레 대통령은 2일 새벽 긴급성명을 통해 “비상사태에도 침착하게 대응한 국민에게 경의를 표한다”고 밝혔다.
송민섭 기자 stsong@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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