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누리당 A 의원은 지난해 말 고향 친구였던 보좌관 B씨 때문에 고초를 겪었다. A 의원은 평소 지역구 민원을 원만히 처리하지 못하는 B씨에게 불만이 쌓여 있었다. 막역한 사이라 참고 지내다 도저히 의정활동에 보탬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해 “고향으로 돌아가라”고 통보했다. 해고를 당한 B씨는 앙심을 품고 바로 얼마 전까지 ‘모시던’ 의원을 검찰에 고발했다. A 의원은 졸지에 검찰에 불려다니는 곤욕을 치러야 했다. 다행히 ‘혐의 없음’으로 불기소처분을 받았으나 믿었던 친구에게 뒤통수를 맞은 배신감으로 한동안 속을 끓였다는 후문이다.
#. 민주당 C 의원실에서 회계업무를 담당하는 비서관 D씨는 ‘요주의’ 인물로 통한다. 그는 C 의원이 따로 식사를 해도 카드결제 영수증을 꼬박꼬박 챙겨 모은다. 같이 근무하는 보좌관 E씨는 최근 “어디서, 얼마를 썼는지 눈에 뻔히 보이는 탓에 의원님도, 보좌관도 눈치를 본다”고 전했다.
이른바 ‘상투 잡은 보좌진’의 숨은 단면이다. 언뜻 정부 부처나 공공기관에 대한 국회의원 보좌관의 ‘위세’를 비꼬는 말로도 들린다. 정작 보좌진이 거머쥔 상투가 의원의 것이라는 웃지 못할 얘기가 나오는 이유는 의원과 보좌진이 맺는 워낙 특수한 관계 때문이다.
새누리당의 한 초선의원 보좌관은 6일 “의원의 상투를 보좌관이 잡고 있는 관계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고 단언했다. 그는 “의원 보좌나 수행 경력에 비해 직급이 이상하게 높으면 뭔가 의심해 봐야 한다”며 “다만 그런 대접은 의원과 해당 보좌관만 아는 ‘은밀한 거래’에 의한 것이어서 이면은 잘 드러나지 않는다”고 전했다. 민주당의 한 재선의원 보좌관은 “의원 수행에서부터 의정활동, 지역구 관리까지 성실히 업무를 수행하는 보좌관이 아직은 절대 다수”라면서도 “하지만 이들 보좌관이 연루된 비위가 잊을 만하면 터지는 데에는 그만큼 ‘비정상적 관계’가 싹틀 수 있는 환경이 개선되지 않기 때문 아니냐”고 반문했다.
◆의원도 무시 못하는 존재
보좌진의 임무는 의원을 24시간 지근거리에서 지원하는 것이다. 업무특성상 자연스럽게 의원의 일거수일투족을 공유할 기회가 많아진다. 19대 국회에서 모 의원이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는 것은 자신의 보좌진이 사정기관에 결정적인 혐의를 제보한 데 따른 것으로 알려졌다. 내부 조력자가 한순간 고발자로 둔갑해 칼을 들이댄 것이다. 2008년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전당대회 돈봉투 사건에 연루돼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박희태 전 국회의장도 비서였던 고모씨가 뒤늦게 돈봉투 전달과정을 검찰에 진술하면서 사건의 전모가 드러났다. 18대 국회 전직 의원은 “보좌진 중에서도 특히 의원과 늘 붙어다니는 수행비서와 운전기사가 의원의 속사정을 속속들이 아는 경우가 많다”며 “아주 드물게는 의원의 약점을 쥐고 승진이나 돈을 요구하는 사례도 있다”고 증언했다.
2004년 ‘오세훈법’이 통과된 이후에는 회계담당 보좌진의 입김도 특히 세졌다고 한다. 의원은 따로 후원회를 개최할 수 없고 정치후원금 모금한도액도 연간 1억5000만원(선거 있는 해엔 3억원)으로 줄어들었다. 정치자금법의 제재가 강화된 만큼 의원은 회계 업무에 전보다 공을 들이고 있다. 식사 자리에서 밥값을 계산한 뒤 회계담당 보좌진에게 영수증을 제출하는 것은 기본이고, 아예 보좌진의 휴대전화에 의원의 신용카드 사용 내역을 문자로 전송토록 해둔 의원실도 있다.
18대 국회 시절 한 여성 보좌진의 스캔들 사건은 웃지 못할 비극의 단면을 보여줬다. 당시 후원회와 회계 등을 담당했던 비서 E씨는 술이 만취한 상태에서 한 남성과 의원실에 함께 있다가 방 주인인 의원에게 발각됐다. 하지만 E씨는 예상과 달리 바로 경질되지 않고 한동안 자리를 지켰다. 후임자를 물색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게 의원실이 겉으로 내세운 이유였다. 하지만 “의원이 감당하기 어려운 무언가를 쥐고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솔직히 말씀드리겠습니다. 현직 보좌관도 있고 전직 보좌관도 더러 있습니다.”
지난 10월17일 국회 환경노동위 국정감사에서 황당한 자백이 나왔다. 업무추진비 사용 내역을 추궁받던 건설근로자 공제회 정모 감사가 국회 보좌진에 대한 접대 사실을 순순히 털어놓은 것이다.
국정감사나 예산안 심의를 앞둔 시기에는 보좌진의 얼굴을 한 번이라도 더 보기 위해 배회하는 공무원들로 의원회관이 붐빌 정도다. 의원실 앞에 삼삼오오 모여 차례를 기다리는 풍경도 목격된다. 대부분 국감 질의 내용을 미리 귀띔해달라거나 부처의 핵심 재정 사업 내용을 설명하며 “잘 봐달라”는 부탁을 하는 경우다. 예산안 심의 결과에 따라 사업당 작게는 수천만원에서 많게는 수백억원의 예산이 삭감될 수 있어서다.
정치권발 경제민주화 바람의 여파로 민간기업도 보좌진의 ‘막강 파워’를 신경 쓰지 않을 수 없게 됐다. 각종 경제 관련 법안이 기업의 근무환경과 실적에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갑의 횡포’ 논란의 장본인인 대기업조차 정무위나 환노위, 법사위 소속 의원실 보좌관 앞에선 ‘을(乙)’ 신세를 면할 수 없다. 기업의 대관(對官) 담당자는 주기적으로 의원실을 방문한다. 경제 관련 법안의 진척상황과 향후 발의될 법안의 방향 등에 대한 힌트를 얻기 위해서다. 보좌진과 안면을 트기 위해 결혼식이나 장례식에 참석하고 회사의 신제품을 돌리는 일도 다반사다. 전직 기업 대관 담당자는 이날 “지인들과 식사자리에 불러내서 술값을 계산시킨다거나 지역구 행사 명목으로 찬조금을 요청하는 구태가 남아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골프장 부킹이나 콘도 예약이 까다로운 민원에 속한다”고 토로했다.
김재홍·박세준 기자 hong@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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