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 수업은 30여 가지 금속이온을 검출하는 실험. 고약한 냄새의 정체는 황화철(FeS)과 황산(H2SO4)이 만나 황산제일철(FeSO4)이 만들어지면서 발생하는 황화수소(H2S) 가스였다. 학생들은 교재를 펼쳐 실험 결과를 꼼꼼히 적은 뒤 곧바로 다음 실험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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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을 아는 변호사, 문학을 아는 의사’
이 학교는 일본에서 손꼽히는 명문 고교다. 특징은 모든 수업이 ‘과학적 사고를 기르자’는 테마로 진행된다. 이론보다 체험으로 배울 수 있도록 야외실습과 실험을 중요시한다. 보통 일본의 고교는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2학년 때부터 문과와 이과로 나뉘는데 이 학교는 2학년 때까지 똑같이 수업한다. 이 학교가 학생들에게 강조하는 교육 방침은 ‘과학을 아는 변호사, 문학을 아는 의사’다.
문과 계열을 선택하려는 학생들은 복잡한 화학식을 알아야 하고 많은 실험을 해야 하는 것에 불만이 있을 법도 하지만 오히려 그 반대다.
이날 금속이온 검출 실험 중이던 유키(17)군 역시 문과 계열로 진로를 결정했지만 실험에 적극적이었다. 그는 “실험하는 것이 즐겁다”며 “대학 진학과 무관하지만 그것과는 다른 문제”라고 힘주어 말했다.
가와스미 히로시 물리 교사는 “학생 대부분이 실험을 좋아한다”며 “과학이나 수학을 싫어해 문과를 지원한 것이 아니다. 문과를 선택한 학생 중에도 과학적 재능이 있는 학생이 많다”고 설명했다.
학생들이 자율적으로 운영하는 ‘인텔리전트 카페’도 눈에 띄었다. 교실을 개조해 만든 곳으로, 벽면은 2011년 동부 대지진 직후 학생들이 현장에 찾아가 직접 찍은 사진으로 가득 찼다. 카페 입구 게시판에는 ‘연애를 주제로 강의할 분 구함’이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과학, 자연, 사회, 인문 등 분야에 관계 없이 학생들이 원하는 주제와 관련해 교사나 연구자, 대학교수 등이 강의를 하거나 학생들끼리 다양한 주제로 토론을 벌이는 곳이라는 게 학교 측 설명이다.
대학교수나 연구소의 연구원이 몇 가지 테마로 강연하는 특별수업 또한 인기다. 물리·생물 분야 자유연구로 경진대회도 열리는데, 한 팀은 국내대회 예선을 통과해 국제대회 출전 후보가 되기도 했다.
하라다 가즈오 교장은 “특별한 과학 인재를 만들어내는 것도 필요하지만 모두의 과학 수준을 조금씩 올리면 국가 전체적으로 플러스가 된다는 것이 학교의 기대”라고 설명했다.
◆집중 투자보다 연구 환경 전반 향상에 무게
도쿄가쿠게이대학 부속고는 지난해 문부과학성으로부터 슈퍼사이언스하이스쿨(SSH)로 지정됐다. 문부과학성은 과학기술계 인재 육성을 위해 2002년부터 SSH 사업을 통해 선진적인 이과계 교육을 하는 학교를 지정해 지원하고 있다. 이 학교는 그동안 SSH가 원하는 것과 거의 같은 방식으로 수업을 해왔다는 이유로 오히려 ‘역차별’을 받았다. SSH로 지정되면 5년 동안 6000만엔(약 7억5000만원) 정도를 지원받는다. SSH 지정 후 5년이 지나면 재지정되거나 지정이 해제된다. SSH로에 지정된 학교는 2011년 145개교에서 지난해 178개교로 많아졌으며 2014년 200개교로 늘리는 것이 목표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이공계 기피 현상’을 일본도 1990년대에 겪었다. 학업성취도 국제비교연구(PISA) 평가에서 성적이 계속 떨어지자 위기를 느낀 일본 정부는 2000년대 초반부터 과학지원정책을 강화했다. SSH 사업도 그중 하나다. 과학에 재능이 있는 인재를 한 곳에 모아 집중 교육하는 우리나라의 과학고 시스템과는 다르다.
SSH 제도는 이공계 인재 양성의 토양이 되고 있다. 2008년 문부성 조사 결과 SSH 출신 학생의 77.3%가 이과를 선택했다. 대학 졸업 후 대학원 진학률도 43%에 이르면서 대학 평균(12.3%)의 4.5배나 됐다.
일본 정부는 대학 투자도 강화하고 있다. 일본 전체의 연구비 가운데 대학의 비중이 20.6%(2009년)로 한국(2008년, 11.1%)의 2배에 육박한다.
선택과 집중보다 전반적인 수준 향상에 투자한 성과는 노벨상 수상자의 지속적 배출로 나타나고 있다. 2012년 생리학·의학 분야 노벨상을 받은 야마나카 신야 교수(교토대)까지 일본의 과학분야 노벨상 수상자는 16명에 이른다. 이들의 특징을 보면 대부분 자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국립대 연구자라는 공통점이 있다. 외국 박사 학위자는 3명에 불과하고 민간 연구자는 2명뿐이다.
문부과학성 이시다 도루 국제교류관은 “일본의 노벨상 수상자들을 보면 대부분 국립대에서 안정적으로 자유롭게 연구해 온 사람들”이라며 “노벨상 공식은 없지만 목표와 기간을 정해 집중 투자한다고 해서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도쿄=우상규 기자 skwo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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