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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안의 폭력] 삐뚤어진 탈출구, 묻지마 범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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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현실불만형 살인·방화 급증
사이코패스 경우 죄의식 결여
단순 재미위해 ‘잔인한 범죄’
‘묻지마 범죄’는 여러 형태로 표출된다. 동기가 원한이나 치정, 금품 같은 것이 아니어서 한마디로 정의하기가 쉽지 않다. 세계일보 취재팀은 서울지방경찰청 범죄분석관 정연대 경장(사진)의 도움을 받아 최근 3년간 사회적 이슈가 된 ‘묻지마 범죄’ 20여건을 살펴봤다. 편의상 가해자 유형별로 ▲현실불만형 ▲사이코패스형 ▲정신질환형 등으로 분류했다. 가해자의 특징이나 폭력의 형태는 다양했지만 오랜 기간 피해자들에게 고통을 남긴다는 공통점이 발견됐다.

◆“나를 무시하는 세상… 가만 안둘거야”

현실에 대한 불만이 쌓이다 보면 누군가를 희생양으로 삼아 스트레스를 해소하려 한다. 가벼운 폭력에서 용서받기 어려운 중범죄까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지난 3월 고교생 박모(18)군은 친구와 함께 아파트 단지 내 고급 차량을 마구잡이로 긁었다. 훼손된 차량만 15대, 피해액은 1700여만원에 이른다. 박군 등은 “고3 학업 스트레스를 견딜 수 없었다”고 말했다.

살인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 2010년 12월17일 오전 출근길을 서두르던 A씨는 서울 서초동 잠원동 일대를 돌아다니던 김모(당시 23세)씨가 휘두른 흉기에 찔려 숨졌다. 새벽까지 인터넷 폭력게임을 즐기던 김씨는 아침 길에서 처음 본 사람을 죽이겠다고 결심한 뒤 뛰쳐나와 A씨를 공격한 것이다.

김씨는 미국 명문대에 진학했으나 적응에 실패해 3년 만에 귀국했다. 실패 때문에 가슴에 쌓인 ‘울분’과 게임 속에서 키운 ‘폭력성’이 그를 살인자로 만든 셈이다.

현실 불만에 따른 묻지마 범죄는 증가하고 있다. 대검찰청 범죄분석에 따르면 2001년부터 2007년까지 40건 안팎이던 현실불만형 살인이 2008년 74건, 2009년 80건, 2010년 70건으로 늘었다. 방화도 2003년 157건을 기록한 뒤 감소세로 돌아섰으나 2008년 208건, 2009년 196건으로 다시 늘고 있다. 2010년에도 166건을 기록했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여파로 어려워진 국내 사회·경제적 여건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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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이유는 없어… 그냥 했어”

묻지마 범죄 중에서도 사이코패스에 의한 범행은 참혹하다. 부유층 노인, 유부녀 21명을 살해한 유영철과 경기도 일대에서 여성 7명의 목숨을 앗아간 강호순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대인관계에서 공감 능력이 부족하고 죄의식이 결여된 이들은 호기심이나 단순한 재미를 위해서도 잔인한 범죄를 저지른다.

유영철은 크고 무거운 ‘둔기’로 사람을 마구 내리치거나 시체를 토막 내 유기했다. 강호순은 경찰에 붙잡힌 뒤 “(나의 일대기를) 책으로 내 인세를 받아 남겨진 두 아들을 경제적으로 돕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정신질환을 앓는 사람의 망상이 참극을 불러오기도 한다. 지난해 9월27일 경남 김해의 한 아파트에서 김모(52)씨가 초등생 2명의 뒤를 따라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12층에서 아이들이 내리려는 순간, 김씨는 둔기를 꺼내 사정없이 내려쳤다. 이어 14층으로 올라간 그는 농약을 마시고 투신 자살했다. 아이들은 최근까지 치료를 받을 정도로 중상을 입었다.

그가 남긴 유서에는 ‘아파트 주민들이 나를 이상한 사람으로 봤다’는 등의 내용이 담겨 있었다. 정신질환을 앓고 있던 김씨는 사건 발생 2년 전까지 이 아파트에 살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정신질환자들은 이렇게 누군가 자신을 해치려 한다는 등의 ‘비이성적 생각’에 사로잡혀 남을 공격한다.

◆죽을 때까지 마음에 상처… 정상적인 생활 어렵다

묻지마 범죄 피해자의 고통은 심각하다. 범죄의 희생양이 된 이유가 명확하지 않아 그 후유증이 길고 깊게 남는다. 2008년 발생한 ‘논현동 고시원 방화·살인사건’의 피해자는 지금도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는 범죄 피해자들이 공통으로 겪는 후유증이다. 피해 장면이 계속 떠오르거나 가해자와 비슷한 외모의 사람만 봐도 공포에 빠진다. 묻지마 범죄 피해자들은 여기에 ‘인간 신뢰 상실’, ‘사회에 대한 안전감 상실’이 추가된다.

강력범죄 피해자의 심리 치료를 돕는 ‘스마일센터’ 김태경 소장은 “묻지마 범죄는 자신이 왜 피해를 당했는지 확실한 답을 내릴 수 없는 범죄”라며 “언제 어디서 다시 범행을 당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일상생활 전반이 불안해지는 등 일반범죄 피해자보다 더 큰 불안을 호소한다”고 말했다.

오현태 기자 sht98@segye.com 20120529022038 002/기/메인/묻지마 범죄의 다양한 양상과 피해의 심각성/12매(+그래 //img.segye.com/content/image/2012/05/29/20120529022038_0.jpg 1 11 09 6 저작자 표시 + 변경금지 N 20120529022129 [우리 안의 폭력] 전문가가 말하는 '묻지마 범죄' 해법 20120529164434 20120529204502 20120529181315 ‘묻지마 범죄’는 다양한 양상을 보인다. 한 가지 대책만으로 막을 수 없는 이유다. 전문가들은 범죄 발생 원인을 면밀히 분석, 대처해야 ‘억울한 피해자’가 발생하는 것을 예방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정신질환에 의한 범죄는 병에 의한 것이어서 관련 질환을 조기에 발견해 치료하는 것이 중요하다. 최승원 교수                     이수정 교수                    설동훈 교수                    이용우 이사장대전대 최승원 교수(심리학)는 “정신질환자들을 모두 잠재적인 범죄자 취급하는 것은 위험하다”며 “하지만 이들은 돌발적으로 물리력을 행사할 가능성이 상존한다”고 밝혔다.최 교수는 “특히 피해망상 환자는 자신이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는 생각에, 복수하기 위해 범죄나 폭력을 행사하게 된다”면서 “증상이 심각해도 입원 치료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신속히 치료를 받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고 설명했다.이에 비해 사이코패스는 정신질환이 아니다. 성격장애이기 때문에 치료가 쉽지 않다.경기대 이수정 교수(범죄심리학)는 “사이코패스는 성격장애라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며 “정신질환자는 자신이 괴롭지만 사이코패스는 남을 괴롭히는 것이 특징”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정신질환과 달리 성격장애는 약으로 치료되지 않는다”면서 “사법제재를 통해 연쇄범죄를 막거나 범행의지를 꺾는 방법밖에는 없다”고 강조했다.현실불만으로 일어나는 묻지마 범죄는 사회 전체적인 노력이 수반되어야 막을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전북대 설동훈 교수(사회학)는 “경제난으로 취업이 안 되거나 사업이 망하는 등 사회와 개인이 어려움에 빠지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혼란이 온다”며 “탈출구를 찾다가 불특정 다수에게 해를 가하는 방법을 선택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장기적으로는 사회적 불평등을 해소해 불만을 가질 환경을 없애고, 단기적으로 불만을 가진 사람들에 대한 관리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범죄피해자지원센터 이용우 이사장은 “지금처럼 사람들의 삶이 희망을 잃어간다면 이에 대한 분노 때문에 묻지마 범죄가 계속 늘어날 것”이라고 경고했다.최 교수는 “쥐에게 계속 전기충격을 주면 옆에 있는 동료를 공격하는 일이 나타난다”며 “현실불만에 따른 묻지마 폭력은 불평등한 사회 시스템이 개선되지 않는 한 해결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오현태 기자 sht98@segye.com 20120529022742 고시원에 불 내고 묻지마 테러, 공포 아직도… 20120529182832 20120530111745 20120529194805 이정수(33·가명)씨에게 2008년 10월20일은 영원히 지워버리고 싶은 악몽 같은 날이다. 당시 20대의 꿈 많던 이씨는 ‘서울 논현동 고시원 방화·살인사건’의 현장에 있었다.아르바이트를 하며 고시원에서 지내던 이씨는 그날 오전 8시쯤 “불이야”라는 소리를 듣고 밖으로 나갔다. 복도엔 연기가 자욱했고, 사람을 구해야 한다는 생각에 소화기를 집어 들었다. 코너를 도는 순간 연기 속에서 흐릿한 사내의 형체가 눈에 들어왔다.그것이 마지막이었다. 사내는 손에 든 흉기로 이씨를 사정없이 찔렀다. 이씨는 흐릿한 의식 속에서도 ‘왜?’라는 의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범인은 고시원에서 함께 생활하던 사람이었다. 그는 이씨 말고도 12명을 더 공격해 6명이 죽었다. 이씨는 지금도 환청과 불면증에 시달리고 제대로 된 직업을 갖지 못한 채 아르바이트로 어려운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세상이 나를 무시한다. 그래서 본때를 보려주려 했다.” 범인이 사건을 일으킨 동기는 단순했다. ‘묻지마 범죄’였다.아무런 이유없이 행해지는 묻지마 범죄가 줄지 않고 있다. 동기가 명확하지 않다 보니 대책을 세우는 것도 쉽지 않다. 정신질환 같은 병에 의한 것도 있지만 최근엔 ‘현실불만’의 탈출구로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가 늘고 있어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되고 있다.대검찰청 자료에 따르면 강력범죄(살인, 방화, 강도, 강간) 가운데 현실불만이 동기가 되어 발생한 사건이 2001∼2007년에는 200∼250건을 오갔으나 2008년 436건, 2009년 453건, 2010년 371건으로 증가했다. 현실불만이 이유인 폭행 사건도 2001년 409건에서 2010년 1702건으로 4배 이상 증가했다. 크고 작은 ‘화풀이성 범죄’가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취업난·경제난 등으로 생활에 어려움을 겪게 되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패닉 상태에 놓이게 되면 분풀이 대상으로 묻지마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이 늘어나게 된다고 말한다. 정신질환자나 사이코패스에 의한 범죄와 달리 현실불만이 원인이 된 범죄는 불평등한 사회 시스템을 개선하는 등의 노력으로 줄여나가야 한다는 지적이다.서울지방경찰청 범죄분석관 정연대 경장은 “사이코패스의 범죄는 수사력을 키워 막을 수 있고 정신질환자는 치료를 할 수 있지만 현실불만에 따른 범죄는 해결이 어렵다”며 “소외 계층이 울분을 가지지 않도록 사회가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오현태 기자사진= 뉴시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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