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각국은 총성 없는 무역전쟁을 벌이고 있다. 글로벌 경기가 불투명할수록 살아남으려는 몸부림은 강해진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교역규모 1조달러 시대를 열었다. 정부와 기업, 국민이 한뜻이 되어 수출에 매진한 결과다. 그러나 2조달러 시대로 가는 길은 쉽지 않아 보인다. 성장동력은 한계에 봉착했고, 우리 기업에 대한 견제도 심해졌다. 글로벌 무역전쟁에서 승자로 살아남는 길은 무엇인가.

스판덱스는 ‘섬유 반도체’로 불린다.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기능성 섬유다. 석유화합물인 폴리우레탄이 주성분인데 강도가 기존 고무실의 3배다. 원래 길이의 5∼8배로 늘일 수 있다. 고무줄보다 가볍고 본래의 탄성을 유지해 여성 속옷이나 수영복, 스타킹, 유아용 종이 기저귀 등 거의 모든 의류 제품에 쓰인다. 수요는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는데 스판덱스 제품의 세계 1위는 바로 국내 기업 효성이다.
효성은 1992년 국내 기업 처음으로 자체 기술을 통해 스판덱스를 개발했다. 지식경제부가 선정하는 ‘세계 일류상품’의 스테디셀러다. 효성은 작년 브라질 산타카타리나주에 연산 1만t 규모의 스판덱스 공장을 완공, 가동을 시작했다. 이에 따라 중국과 아시아, 유럽 시장에 이어 미주 시장까지 적극 공략할 시스템을 구축했다.
무역 2조달러 시대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요구하지만 스판덱스처럼 ‘일등 DNA’를 갖춘 제품은 살아남아 시장을 이끌 것이다. 2조달러 시대는 2등제품의 ‘미투(me too)’ 전략을 용인하지 않는다.

전문가들은 무역 2조달러 시대를 이끌 주인공으로 세계 일류상품을 주목한다. 글로벌 시장 점유율 5위 안에 드는 세계 일류상품은 현재 591개 품목이다. 이 중 세계 1위가 131개다. 이들의 연평균 수출 증가율(2003∼2009년)은 23.4%다. 국가 전체 평균 증가율(11.1%)보다 2배 가까이 높다.
지경부는 매년 연말 세계 일류상품을 선정해 발표한다. 이들 일류상품을 살펴보면 무역 2조달러 시대의 해법을 찾을 수 있다.
울산에 사업장을 둔 케이피케미칼은 작년 12월 세계 일류상품 육성으로 지경부장관상을 받았다. 이 회사는 1998년 국내 최초, 세계에서 7번째로 페트병의 원료인 이소프탈산(PIA)을 독자기술로 생산했다. 지난해 세계 시장 점유율 25%로 세계 1위 PIA 생산업체로 성장했다. 2008년 생산량 20만t으로 증설했으며 올해에는 생산량의 90%인 16만3000t을 수출했다. 이는 2억6300만달러 규모다.
서울통신기술은 주력 통신망 구축사업의 기술력과 노하우를 가정에 적용한 홈 네트워크 시스템과 디지털도어록 사업에서 국내 시장 점유율 1위를 바탕으로 중화권, 미주, 브라질, 인도까지 시장을 넓혀 나가고 있다.
1987년에 설립된 코덱은 현재 게임용 특수모니터(카지노 모니터) 시장에서 글로벌 1위 기업으로 우뚝 서 있다. 미국, 유럽, 호주, 아시아 등 세계 70여 개 슬롯머신 업체에 제품을 공급하는 이 회사는 수출 비중이 95%에 달할 정도다.
필름패턴편광(FPR) 방식 3D TV 디스플레이로 중국 시장을 평정한 권영수 전 LG디스플레이 사장(현 LG화학 전지사업본부장)은 “글로벌 시장에서 1위에 오르기 위해서는 ‘1등 DNA’를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계 최고 수준인 삼성전자의 승승장구 비결은 뭘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글로벌 일등 제품이 많아서다. D램 및 낸드플래시 반도체는 물론, TV와 스마트폰 등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다.
세계 최고수준의 현대중공업은 ‘2011 세계 일류상품’에 3개 제품을 더해 총 34개로 2010년에 이어 국내 최다 세계일류상품 보유기록이 있다.
2011년에 세계 일류상품으로 선정된 초대형 석탄·유류운반선은 현대중공업이 세계에서 유일하게 건조하는 복합 겸용운반선이다. 화물 수요의 다양화와 수송지역 다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개발된 것으로, 석탄 등 건화물과 유류 등 액체 화물을 함께 운반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LCD운반용로봇은 액정표시장치인 LCD를 운반하는 최첨단 로봇으로, 현대중공업은 제어, 청정밀폐, 오염방지 기술 등을 앞세워 이 분야 세계 3위를 차지하고 있다. 내압방폭형전동기는 전동기 내부에서 폭발이 발생해도 압력에 견디고 화염이 누출되지 않도록 특수 설계된 산업용 전동기로, 현재 세계시장의 14%를 점유하며 3위를 기록 중이다.
◆‘작은 거인’ 중소기업의 비밀
자동차, 철강 등 제품을 생산하는 대기업의 공이 컸지만 그 뒤를 든든히 보조해주는 ‘작은 거인’ 중소기업의 역할도 중요했다.
골프연습기 전문업체인 알디텍은 국내에서도 잘 알려진 ‘X-GOLF’라는 골프연습 제품으로 세계 스크린 골프 시장에서 점유율 62%를 차지하며 당당히 1위에 올라섰다. 알디텍은 세계 최고의 계측시스템 보유 회사로서 인터넷을 이용한 골프 스윙 교정, 골프공 공급 장치 등 총 10여 가지가 넘는 특허기술을 획득한 기업이기도 하다.
개인용온열기 시장에서는 특히 우리 중소기업들이 강세를 보이고 있다. 현재 세라젬의료기, 미건의료기, 조양의료기, 누가의료기가 4개 업체가 세계 개인용온열기 시장에서 100% 점유율을 차지할 정도로 저력을 과시하고 있다.
눈이나 비가 올 때나 겨울에 생기기 쉬운 성애를 없애주는 데 쓰이는 ‘자동차 사이드미러용 전열히터’도 썬택의 제품이 세계 시장을 석권하고 있다. 1993년 이전만 해도 100% 수입에 의존하던 이 제품은 썬택의 등장으로 오히려 국내 자동차 회사는 물론 벤츠와 도요타, BMW 등의 해외 업체들도 사용하면서 60% 이상의 시장을 점유하고 있다. 이처럼 일반인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글로벌 시장에서 당당히 점유율 1위를 차지한 중소기업들이 적잖다. 실제로 작년 12월 지경부가 발표한 ‘세계일류상품’ 405개 중에서 세계 시장에서 점유율 1위를 기록한 품목은 131개에 달했으며 이 가운데 중소기업 제품의 수는 70개에 달했다.
이천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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