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적 생산·유통망 구축 2015년 400만톤 직수입
세계 곡물 선물의 80%가 거래되는 미국 시카고선물거래소(CBOT). 세계 각국과 기업이 곡물 확보에 사활을 걸고 전쟁을 치르는 곳이다. 지난달 28일(이하 현지시간) 치열한 전장에 한국에서 날아온 작은 ‘밀알’이 떨어졌다. 바로 ‘aT그레인컴퍼니’다. aT(농수산물유통공사)가 민간과 손잡고 세운 곡물회사다. 공사 직원 2명이 지난해 9월 현지에 와 준비한 끝에 이제 막 걸음마를 내디뎠다.
지난 21일 들른 시카고 시내의 임시 사무실은 썰렁할 정도였다. 곧 정식 사무실을 내고 현지 직원 3명을 뽑을 계획이다. 이들이 꾸는 꿈만은 창대하다. 세계 곡물시장을 쥐락펴락하는 메이저 곡물업체 틈바구니 속에서 우리 식량안보의 전초기지를 구축하는 것이다.
메이저가 장악한 세계 곡물시장
카길과 ADM, LDC, BUNGE 등 세계 곡물시장의 80∼90%를 장악한 곡물 메이저의 위상과 영향력은 상상을 뛰어넘는다. 곡물 생산에서 수집, 수송, 가공 등 곡물 생산국에서 소비국에 이르는 모든 과정에 손을 뻗치고 있다. 곡물 유통에서 핵심 시설인 엘리베이터(곡물저장시설)는 대부분 이들 손에 들어갔다. 미국 내 강변 엘리베이터 174개 중 117개(67%), 수출 엘리베이터 58개 중 25개(43%)가 메이저 소유다. 다른 회사들이 끼어들 여지가 거의 없다.
메이저는 막대한 정보력을 바탕으로 곡물 중개와 농산물 시장에서 협상력을 과시한다. 인공위성과 전용 광케이블 시스템으로 세계 농작물 작황 등 정보를 모아 활용한다.한국이 뿌린 ‘밀알’ 싹 틔울까
국내에 재고 쌀이 넘쳐나는데도 지난해 우리나라 곡물 자급률은 26.7%에 그쳤다. 국내에서 소비되는 밀과 옥수수의 99.2%, 콩의 91.3%를 수입에 의존한다. 한 해 수입량이 1400만t이다. 특히 전체 곡물 수입물량의 72.9%를 곡물 메이저와 일본계 종합상사를 통해 들여오고 있다. 메이저를 통한 간접적인 곡물 구입은 간단하고 편리하나 식량 주권을 3자에게 맡기는 격이다. 위기 발생 시 우리가 주도적으로 대처할 수 없다. 곡물 메이저는 가격 상승기나 불안정기에 시세보다 비싸게 값을 매겨 이익을 극대화한다. 정부가 시카고에 곡물회사를 차린 이유다.
aT그레인컴퍼니는 앞으로 현지 농가에서 곡물을 매집하거나 계약재배를 하고 대규모 유통시설을 확보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정부는 올해 콩과 옥수수 각 5만t을 수입하고 2015년까지 곡물 400만t을 메이저를 통하지 않고 들여올 계획이다.
‘밀알’이 싹을 틔우려면 전문인력과 현지 네트워크, 설비장치 등 3박자를 갖추는 일이 시급하다. 엘리베이터 인수가격 상승 등 난제도 예상된다. 삼성경제연구소 박환일 수석연구원은 “현지 곡물회사 설립은 잘 한 일이나 올해 몇 만t을 들여오고, 식량자주율 몇 %를 달성하겠다는 식으로 접근하기보다 기본 인프라와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데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카고=박희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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