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는 여야 대표 등 정치인들과 20여년 만에 본인의 주소를 갖게 된 판자촌 주민 등이 아침 일찍 투표소로 나가 풀뿌리 민주주의를 발전시킬 유력 후보한테 한 표씩 던졌다.
= 권익위원장·정치인 아침부터 투표=
0...이재오 국민권익위원장과 야당 대표 등 정치인들은 이날 아침 해당 지역 투표소를 찾아 투표권을 행사했다.
이재오 위원장은 오전 7시19분께 은평구 구산동 구산동주민센터에 차려진 구산동 제1투표소에 혼자 도착해 투표했다.
이 위원장은 주민등록증을 제시하고 신원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투표소를 잘못 찾아온 주민에게 정확한 투표소 위치를 알려주고 지역 주민한테 인사를 건네기도 했다.
투표를 마치고 나서는 "(후보들이) 하도 많아서 헷갈린다"고 농담한 뒤 "8장을 따로 주면 어른들이 헷갈리겠다. 아예 한꺼번에 크게 뽑아 주는 게 어떤가"라고 제안하기도 했다.
평화민주당 한화갑 대표는 오전 9시5분께 마포구 서강동 제6투표소인 상수동 청소년 독서실을 혼자 찾아 투표를 마치고서 투표소 관계자들에게 "수고가 많다"고 인사했다.
한 대표는 "(투표 결과에) 후회하는 일이 없어야 된다. 인물 중심으로 일꾼을 뽑겠다는 마음으로 투표했다. 집에 온 유인물을 보고 선택했다"고 말했다.
이어 "평민당의 창당이 늦어 낙관적으로 예측하지 않는다. 하지만 평민당을 알리는 데 목표를 뒀고 그 부분에서는 성공적이라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이재정 국민참여당 대표는 부인, 장모와 함께 오전 9시께 송파구 잠실6동 제2투표소 잠실중학교에 나타나 5분간 줄을 섰다가 투표했다.
이 대표는 "야권 연합 후보가 정치사에 처음으로 연대해 여권과 1대1 대결하는 선거가 됐다. 지난 1년 반 동안 이명박 정권을 심판하는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앞서 진보신당 노회찬 서울시장 후보는 오전 7시30분께 온곡초등학교 1학년3반 교실에 마련된 노원구 상계9동 제2투표소에서 투표했다.
부인 김복자 여사와 함께 투표장에 온 노 후보는 "여러 대형사건에 파묻혀 지방선거의 본질이 잘 드러나지 않았지만, 이명박 정부를 중간평가하고 풀뿌리 지방자치를 뿌리내리게 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고 말했다.
=심은하 남편 지상욱 후보에 취재진 몰려=
0...배우 심은하씨의 남편인 자유선진당 지상욱 서울시장 후보는 부인의 유명세 덕에 취재진의 관심을 한몸에 받았다.
투표 시작 전인 오전 5시30분께부터 취재진 30여 명이 중구 신당동 장수경로당에 마련된 신당2동 제4투표소에 몰려들어 지 후보 부부를 기다렸다.
오전 6시 33분께 검은색 카니발 차량을 타고 온 지 후보는 긴장된 표정이지만 심은하씨는 밝은 표정을 지어 대비를 이뤘다.
취재진이 부인한테 질문을 퍼붓자 지 후보는 "저한테 묻지 왜 집사람에게 물어요"라며 다소 부담스러워하는 표정을 짓기도 했다.
심은하씨는 `고생했다는 말 한마디 해달라'는 취재진의 요청에 지 후보에게 "그동안 수고 많이 했어요"라고 말하기도 했다.
투표소에서 20여명의 유권자가 대기한 탓에 지 후보는 밖에서 5분 넘게 줄을 서 기다리자 투표소 관계자가 나와 "먼저 투표하라"고 권유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 후보는 "저희가 먼저 할 수는 없다"며 정중히 거절했다.
지 후보는 투표를 마치고서 "선거 기간 최선을 다했다. 집사람이 두 아이의 엄마로 자신의 위치를 지키고 물심양면으로 도와줘 고맙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강남 판자촌 주민들 `감격의 주거지 투표'=
O...지난해부터 자기 집 주소를 갖게 된 서울 강남의 무허가 판자촌 주민들이 20여 년 만에 처음으로 주거지 투표소에서 소중한 한 표를 행사했다.
정원자(65.여)씨 등 강남구 개포동 1266번지 재건마을 주민 다섯 명은 이날 오전 8시께 개포4동 주민센터에 마련된 1투표소에서 투표했다.
무허가 판자촌인 재건마을 주민은 그동안 전입신고 처리가 안 돼 주민등록을 옮겨놓은 남의 주소지에서 투표했지만, 지난해 8월 대법원 판결로 전입신고가 받아들여져 마을 이웃과 함께 투표를 할 수 있게 됐다.
정씨는 "1989년부터 재건마을에서 살았는데 처음으로 사는 곳에서 투표하게 돼 감개무량하고 새로 태어난 것 같다. 그동안 남의 밥상에 숟가락을 올려놓은 것 같았는데 이제야 내 밥상을 찾은 것 같다"고 말했다.
주민대표 조철순(52.여)씨는 "그동안 친척 집이나 직장에 주민등록을 해놓아 멀리 가서 투표해야 했다. 국민의 권리를 누리지 못한 셈이다. 이제 사는 곳에서 투표할 수 있게 돼 주민들이 축제 분위기다"고 전했다.
나머지 주민 100여명도 이날 같은 투표소에서 투표하고, 같은 판결로 전입신고를 할 수 있게 된 개포동 1197-1번지 수정마을 주민도 포이경로당에 마련된 제4투표소를 찾을 예정이다
=김영삼ㆍ전두환 전직 대통령도 `한 표'=
0...제5회 전국동시 지방선거일인 2일 전직 대통령들도 해당 지역 투표소에 나가 소중한 한 표를 던졌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부인 손명순 여사, 수행원 10여 명과 함께 오전 10시50분께 동작구 상도동 강남초등학교에 마련된 상도동 제1투표소를 찾았다.
김 전 대통령은 투표를 마치고서 투표소 바깥에서 차례를 기다리던 주민 20여 명과 일일이 악수하고 덕담을 건네기도 했다.
김 전 대통령은 "지방선거야말로 풀뿌리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가장 확실한 길이다. 모두가 투표에 참여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도 비슷한 시간에 부인 이순자 여사와 함께 서대문구 연희2동 주민자치센터에서 투표했다.
전 전 대통령은 부인, 수행원과 함께 걸어서 투표장에 도착했으며 투표를 마친 뒤 동장과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눴다.
전 전 대통령은 투표소 입구에서 줄을 선 주민에게 "수고하세요"라는 말을 3차례 정도 건네고 귀가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미망인 이희호 여사는 오전 9시4분께 서울 마포구 서교동 신촌농협 빌딩에 마련된 서교동 제7투표소에서 한 표를 행사했다.
이 여사는 윤철국 김대중 평화센터 사무총장 등 수행원 5명과 함께 왔으며, 아무런 말없이 차분한 표정으로 약 5분 만에 투표를 마치고 일반인 통로를 통해 현장을 떠났다.
=서울의 마지막 산동네서 90대 노인 투표=
0...서울의 마지막 산동네인 노원구 중계본동 `104마을' 중턱에 마련된 제2투표소에는 고령의 유권자들이 이른 아침부터 투표 행렬을 이뤘다.
주민 대부분이 노인인데다 언덕이 많아 몸이 불편한 주민들에게 투표 행사가 쉽지 않았지만 `실버' 유권자들의 발길은 이어졌다.
60대 이상의 주민 일부는 첫 번째 투표를 마치고서 끝난 것으로 잘못 알고 발걸음을 돌리려다 안내를 받고 투표를 마저 마치는 사례가 간간이 나타났다.
이 동네에 40년 넘게 살았다는 이응도(92) 할아버지는 홀로 투표장을 찾아 "투표는 국민의 당연한 의무 아니겠나. 젊은 사람들 투표 날 쉰다고 투표 안 하고 놀러 가는데 그러면 안된다"고 말했다.
이어 "나는 한 번도 빠진 적 없다. 쉽진 않았지만, 공보물도 꼼꼼히 읽고 그래서 큰 어려움이 없다"고 웃음을 지었다.
박종원(89.여) 할머니도 오른 다리가 불편한 듯 지팡이를 짚고 천천히 걸으며 투표소를 찾자 옆에서 유명남(62.여)씨가 부축하는 훈훈한 정을 보여줬다.
박 할머니는 "후보들을 구분하기조차 어렵다. 나이를 많이 먹어서인지 투표하고 싶어도 이제는 쉽지가 않다"라고 했다.
=`놀러 가기 전에 한 표' 나들이객 줄이어=
0...주부 김은영(36.여)씨는 오전 9시께 아들(5)의 손을 잡고 투표를 한 용산구 이태원2동 이태원초등학교 투표소를 찾아 투표하고서 나들이를 갈 계획이라고 전했다.
김씨는 "아이가 '투표'가 무슨 의미인지 정확히는 몰라도 '투표한다'라는 것은 알고 있다. 투표 끝나고 가족끼리 근교로 놀러 갈 계획이다"고 말했다.
같은 투표소에서 만난 한 30대 부부는 야구모자에 반바지, 운동화 등 가벼운 복장이었다. 이들은 "아이와 함께 강원도 홍천으로 여행할 계획이다"며 미소를 지었다.
강남구 압구정동 동호경로당에 마련된 제2투표소를 찾은 주부 김경은(37)씨는 오전 11시10분께 티셔츠에 청바지 차림으로 일곱 살, 다섯 살 먹은 아들을 데리고 나와 투표했다.
김씨는 "날씨도 좋고 남편도 오랜만에 시간이 나서 투표를 일찍 마치고 아이들을 데리고 천문대에 가려고 한다"고 말했다.
=투표소 찾은 이재정 대표에게 항의 소동=
0...송파구 잠실6동 제2투표소인 잠실중학교 투표소에서는 이재정 국민참여당 대표에게 유권자가 항의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대표가 부인과 함께 나타난 것을 보고 30대로 보이는 한 남성 유권자가 다가가 "당신의 공약이 무엇이냐, 왜 후보자가 유인물도 갖고 다니지 않느냐"고 거칠게 말했다.
이 대표는 "투표 당일 이곳에서는 홍보물을 나누어줄 수 없다"며 난감해하자 이 남성은 "정치가 싫다"며 찌푸린 표정을 지었다.
신분을 밝히기를 꺼린 이 남성은 투표를 마치고서 "정치인에 대한 신뢰가 없다"고 소리치며 투표장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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