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두딸 있는 아빠” 부모 심정 호소
이양 부검결과 말해주자 죄책감 드러내

“제가…다… 했습니다.”(김길태)
14일 오후 부산경찰청. 거짓말탐지기와 뇌파 검사를 마친 김길태는 범죄심리·행동 분석요원(프로파일러)과 면담한 자리에서 “다른 사람 말고 꼭 그분에게만 진실을 말하겠다”며 부산 사상경찰서 박명훈(49·사진) 경사를 찾았다.
형사 경력이 20년이 넘는 베테랑 수사관인 박 경사와 김길태의 이날 만남은 김길태가 검거된 이후 네 번째였다. 무미건조한 조사실에서 박 경사와 마주한 김길태는 “이제 모든 것을 털어놓으라”는 박 경사의 설득에 순간적으로 복받친듯 눈물을 왈칵 쏟으며 얼굴을 감싸쥐고 “제가 다 했다”며 끝내 입을 닫았던 이모(13)양 살해 과정에 대해 입을 열기 시작했다.
범죄사실 여부에 대해 시종일관 ‘모르쇠’로 일관해 수사관들의 애를 태운 김길태가 검거 나흘 만에 처음으로 범죄경위에 대해 입을 열기 시작한 것이다.
딸 둘을 둔 박 경사는 수사본부 4개로 편성된 신문조 소속으로, 피의자를 거세게 몰아세운 다른 수사팀과 달리 인간적 접근을 시도했다.
박 경사는 김길태에게 “나도 딸만 둘 있는 아빠다. 네가 딸을 둔 내 심정을 알겠느냐”며 어린 딸을 먼저 보낸 이양 부모의 심정을 호소하며 김길태에게 남아 있을지 모를 인간적 감정을 거듭 자극했다.
박 경사는 김길태가 성장과정에서 경험한 아픔과 상처를 인간적으로 이해하면서도 수사관으로서 최대한 수사에 활용했다. 김길태는 범행 이후 죄책감을 덜기 위해 친구들에게 진실을 털어놓으려 21차례나 전화를 돌렸으나 통화가 연결된 것은 딱 한 번이었다.
박 경사는 김길태가 느꼈을 소외감과 고립감을 매개체로 삼아 “나도 너처럼 어려운 환경에서 성장했다”며 김길태와 인간적 공감대를 형성한 뒤 “(숨진) 이양은 너보다 더 어려운 환경에서 생활했고, 중학교에 입학할 생각에 들떠 있던 학생이었다”고 인간적 ‘압박’을 가했다.
심리분석 전문가들마저 ‘심장이 없는 사람’ 같다고 혀를 내둘렀을 만큼 냉혈한 같은 김길태가 무너진 것도 이때였다. 이 틈을 놓치지 않은 박 경사는 이양이 생전에 모든 비밀을 다 털어놓을 정도로 가까웠던 목포 사는 외사촌과 주고받은 이메일과 휴대전화 문자메시지 등을 김길태에게 보여줬다.
결국 김길태는 박 경사가 이양의 부검 결과를 말해주자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고 괴로워하며 “죽은 이양에게 굉장히 미안하다”고 죄책감을 드러내며 결국 범행 일체를 자백했다.
김보은 기자 spice7@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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