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 성향의 판사 모임인 ‘우리법연구회’가 신영철 대법관 퇴진을 강력히 촉구하면서 이 단체와 이용훈 대법원장(사진)의 관계에 새삼 눈길이 쏠린다. 이 대법원장은 신 대법관을 징계위원회에 회부할지 말지 13일 결정하게 된다.
법원에 따르면 우리법연구회 회장인 문형배 부산지법 부장판사는 최근 내부통신망에 올린 글에서 “법원 내부자에 의한 재판권 침해를 용인한다면 외부의 침해를 막을 수 있겠느냐”고 주장했다. 문 판사는 “우리법연구회와 무관한 개인적 견해”라고 선을 그었지만 신 대법관에 비판적인 소장 판사 상당수가 이 연구회 소속임을 감안할 때 사실상 연구회 공식 입장으로 보인다.
이 대법원장과 우리법연구회의 인연은 3차 사법파동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3년 김영삼정부 출범 후 사법부에 개혁 바람이 불자 당시 서울지법 서부지원장이던 이 대법원장은 법관회의를 열어 모든 판사들에게 의견을 개진하도록 했다. 그는 김종훈 판사(전 대법원장 비서실장, 현 변호사) 등 우리법연구회 회원들이 주축이 돼 만든 사법개혁 건의안을 당시 대법원 지휘부에 전달했다.
이후 이 대법원장은 소장 판사들 사이에서 ‘개혁성과 소신을 갖춘 선배’로 통했다. 2005년 노무현정부가 그를 대법원장에 지명하자 우리법연구회 회원들은 적극적인 지지 의사를 밝혔다. 이 대법원장은 우리법연구회의 정신적 지주인 박시환 변호사를 대법관으로 제청함으로써 이에 ‘화답’했다.
이 대법원장과 박 대법관 취임으로 법원 내 우리법연구회 지위는 완전히 바뀌었다. 한 회원은 “우리법연구회가 대법원장을 지지하고 법원의 중요 부분을 구성함으로써 ‘주류’에 편입됐다”고 설명한다. 이 대법원장이 법원 안팎에서 공격을 당하면 우리법연구회가 나서 그를 ‘엄호’할 정도였다.
신 대법관의 ‘촛불재판’ 개입 논란이 불거진 뒤 우리법연구회가 조직적 대응을 자제한 것도 이 대법원장의 ‘합리적’ 결단을 기대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이 대법원장은 신 대법관 문제를 공직자윤리위원회에 넘겼고, 윤리위는 가벼운 주의 또는 경고 조치를 권고했다.
이 대법원장이 윤리위 권고를 그대로 수용하면 우리법연구회 회원들 반발은 한층 거세질 전망이다. 반면 징계위 회부 결정을 내리면 “그럴 거면 윤리위는 왜 소집했느냐”는 법원 안팎의 비판에 직면하게 된다. 임기 만료를 2년여 앞둔 이 대법원장의 선택에 이목이 집중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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