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IT 업체에서 근무하는 김모(29)씨는 WBC 시청을 아예 포기했다. 사무실에 TV도 없을 뿐더러 인터넷 문자중계로 경기상황을 확인하는 것도 성에 안 차기 때문이다. 그는 “저녁 시간에 했던 아시아예선 최종 순위 결정전만 TV로 봤을 뿐 나머지 경기는 기사를 통해 내용을 확인했다”면서 “한국 야구의 수준이 높아진 건 확실한 것 같은데 내 눈으로 확인을 못 하니 그저 답답할 뿐”이라고 말했다.
반면 대기업 영업사원 이모(28)씨는 인터넷 문자중계로 경기내용을 확인 한 뒤 퇴근 후 집에서 편하게 하이라이트를 시청하는 편. 그래도 꼭 보고 싶은 경기가 있을 땐 외근을 나가 상사 몰래 TV 중계를 시청했다. 그는 “한일전이 열리는 날이면 외근을 나가 인근 커피숍을 헤매곤 했다”면서 “나처럼 직장을 빠져나와 TV 중계를 보는 사람들이 꽤 있는 편이어서 죄의식은 좀 덜했다”고 말했다.
다른 기업 영업사원인 박모(29)씨도 WBC 한국 경기가 있는 날은 늘 외근을 나가 상사 몰래 TV 중계를 시청한다. 그가 주로 찾는 곳은 회사 인근의 만화방. 박씨는 “사우나에 갔다 오면 티가 너무 많이 나기 때문에 만화방이 딱이다”라며 “다들 만화는 안 보고 TV 중계를 보고 있다”고 말했다.
직장인들 보다는 나은 형편일 것이라고 여겨지는 대학생들도 고민인 것은 마찬가지다. 지난해 올림픽은 방학 때여서 마음 놓고 봤다지만 WBC는 개강 직후 시작됐기 때문이다.
대학교 3학년 손모(20·여)씨는 공강 시간마다 늘 노트북을 켜서 WBC 중계를 시청한다. 학교 커뮤니티에 접속하면 해외 TV 중계를 올려놓는 이들이 꽤 있어 인터넷으로 생중계를 볼 수 있다. 그는 그러나 “수업 때문에 경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마음 놓고 본 적이 없어 아쉽다”고 말했다.
대학원생 권모(30)씨는 논문 준비에 바빠 이번 WBC를 제대로 챙겨 본 기억이 없다. 권씨는 “베네수엘라와의 준결승전이 열렸던 지난 22일에는 논문 준비를 하다 새벽녘에 잠을 청했는데 일어나 보니 벌써 10-1로 이기고 있었다”면서 “당연히 이겨야 하고, 또 이길 것이라고 믿기에 TV 중계에는 연연해 하지 않는 편”이라고 말했다. 그는 24일 열리는 결승전도 수업시간과 겹쳐 일찌감치 시청을 포기했다.
유태영 기자 anarchy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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