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미한 사고 아닌 한 경찰 조사… 수사기관도 비상

◆“형사처벌로 교통사고 줄여야”=위헌 의견을 낸 재판관들은 우리나라 교통사고율이 외국에 비해 너무 높은 점을 강조했다. 이들은 “문제 조항 때문에 운전자들이 안전의무를 소홀히 여기고, 사고로 피해자에게 중상해를 입혀도 보험사에 처리를 맡긴 뒤 ‘나몰라라’ 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이는 교통사고를 줄이려면 운전자들에게 일정한 형사처벌 부담을 지울 필요가 있다는 ‘정책적’ 판단으로 풀이된다.
교통사고 피해자들의 고통이 너무 경시되는 풍조에 경종을 울리려는 의도도 엿보인다. 재판부는 “중상해를 입힌 교통사고 가해자가 법정에 서지 않으면 피해자는 재판 절차를 통해 진술할 권리를 박탈당하게 된다”며 “이는 피해자에게 보장된 헌법상 평등권마저 침해하는 것”이라고 판시했다.
민형기·조대현 두 재판관은 1997년 헌재가 같은 조항에 합헌 결정을 내린 점을 근거로 다수의견을 반박했다. 이들은 “교통사고 가해자에 대한 처벌 범위를 확대할 경우 피해자가 더 많은 배상을 받아내기 위해 이를 악용할 수 있다”며 “교통사고 피해는 처벌을 통한 ‘한풀이’보다는 보험에 의해 보상되는 게 바람직하다”는 소수의견을 냈다.
한편 위헌 결정의 계기가 된 헌법소원 청구의 당사자는 정작 이번 결정의 혜택을 못 받을 전망이다. 헌재에 따르면 청구인인 조모씨 등 3명은 교통사고로 뇌손상 등 중상해를 입고 후유증을 앓고 있으나 이들의 사건은 공소시효가 이미 지난 상태다.
◆수사기관·운전자 부담 늘어=당장 수사기관의 업무량이 늘어나게 됐다. 교통사고 사건이 접수되면 중상해인지 아닌지 가려내 중상해로 판단되면 사고 가해자를 조사해 기소해야 하기 때문이다. 노희범 헌재 공보관은 “아주 경미한 교통사고가 아닌 한 일단 수사기관이 수사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면서 “수사기관에 일정한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운전자들에게도 비상이 걸렸다. 거액의 합의금 지급과 별도로 경찰에 불려다니며 조사를 받아야 하는 탓이다. 정식으로 기소되면 법정에도 서야 한다. 헌재도 “이번 결정으로 교통사고 가해자들이 전보다 불안한 지위에 놓인 것은 사실”이라고 인정했다.
일각에선 법률적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단순 위헌 대신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위헌은 선고 즉시 법률 효력을 완전히 상실시키지만, 헌법불합치는 그렇지 않다. 좀 더 시간을 갖고 어떻게 할지 대책을 마련하려면 위헌보다는 헌법불합치 결정이 더 낫다는 주장이다. 헌재는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는 입장이다.
노 공보관은 “‘중상해’가 무엇인지에 대해선 기존 법률과 판례의 입장이 명확하다”며 “구체적인 개별 사건들은 경찰, 검찰 등 수사기관과 법원이 알아서 잘 판단할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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