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허브] 한우 가격의 반값에도 못미치는 미국산 소고기 반입이 본격화 할 경우 한우 농가의 줄도산이 우려된다. 한우 뿐 아니라 양돈 농가도 큰 타격을 받게 됐다. 미국산 소고기와 돼지고기 가격차가 크지 않기 때문이다. 정부는 축산 농가들을 위한 대책을 내놓았지만 농민들은 미흡하다고 주장한다. 도산 위기에 내몰린 축산 농민들의 목소리를 들어 봤다.
양돈 농가도 된서리…정부 특단 대책 시급
4월 22일 오전 5시 충남 서산시 예천동 우시장. 한미 소고기협상 타결 후 두 번째 열린 우시장은 한우농가의 어두운 미래처럼 적막하고 침울한 분위기 속에서 간간이 거래만 이뤄지는 장날답지 않은 풍경이었다.
이날 우시장에 나온 소 91마리 중 팔린 소는 암송아지 5마리와 수송아지 18마리 등 고작 23마리로 수소와 암소는 아예 거래가 이뤄지지 않았다.
값도 4∼5개월 된 암송아지가 180만원, 수송아지가 181만5000원에 거래돼 소고기협상 타결전인 지난 16일보다 20만원 가량 떨어졌다.
서산축협 관계자는 "올해 초만해도 활발히 거래되던 암소와 수소는 값 폭락뿐 아니라 최근 들어서는 농가들이 입식을 포기하면서 거래마저 끊겨 축산 농민들의 가슴을 멍들게 하고 있다"고 전했다.
여기에 사료값도 25㎏들이 1포대가 지난해 6000원선에서 올해 1만원대로, 볏짚도 5t트럭 1대분이 100만원선으로 2년만에 배 이상 올랐고, 고유가까지 겹쳐 축산농가 부담은 더욱 가중되고 있다.
축산농민들은 "송아지를 입식한 뒤 2년 이상 키우고 사료비, 축사관리, 가축진료, 약품비 등을 합하면 최소한 500만원 이상 드는데 현재 450만∼460만원에 팔면 앉아서 손해보는 짓"이라며 "차라리 한우사육을 포기하는 것이 낫다"고 말했다.
이날 우시장에 송아지 3마리를 끌고 나온 축산농민 김모(50)씨는 워낙 값이 안 맞아 결국 1마리만 팔고 암송아지 2마리는 다시 집으로 끌고 갔다.
김씨는 "마리당 200만원 이상은 받아야 하는데 20만원이나 차이가 나 한숨밖에 안 나온다"며 "손해를 보느니 차리리 그냥 끌고 가지만 소 키우느라 진 빚은 어떻게 갚을지 모르겠다"며 발길을 돌렸다.
26년째 한우 농장을 운영해 온 박모(61)씨는 "평생을 해 온 업이라 어떻게 할 수도 없고 앞으로 10개월 정도 더 키워야 팔 수 있는데 소 값이 언제까지, 얼마나 급락할지 알 수 없어 고민"이라며 불안감을 나타냈다.
서산축협 관계자는 "가뜩이나 어려운 환경에서 고군분투하는 축산농가들이 한미 소고기협상으로 고사상태"라며 "나락으로 떨어지는 축산농가를 살리고 한우를 지키기 위해서는 정부차원의 특단 대책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전국한우협회 장기선 부장은 "한우 가격은 최근 3개월 사이에 마리당 40만∼50만원 정도 떨어져 지금은 400만원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라며 "최근 한우 값 폭락에 불안해진 농가가 소를 마구 내다팔아 가격하락에 가속도가 붙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양돈농가 피해 더 커
경기도 이천시에서 양돈업을 하고 있는 이민상(57)씨는 요즘 한숨뿐이다. 이씨는 5619.86㎡(1700평) 규모의 농장에서 돼지 3000마리를 키우고 있다. 지난달 사료비용은 7000만원으로 지난해 같은 달보다 2300만원이나 더 들었다.
국제 곡물가격 급등에 따라 사료값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내 돼지 출하 가격은 오르지 않아 적자가 쌓이고 있다.
"돈사를 짓고 어미돼지를 구입하기 위해 3억원을 빚졌는데 이제 대출금 이자 내기도 빡빡한 형편입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값싼 미국산 소고기까지 들어오면 우리 같은 양돈농가는 망할 판입니다" 이씨의 볼멘소리다.
국내 양돈농가들이 국제 곡물가격 폭등에 이어 미국산 소고기 전면 개방이라는 된서리를 맞았다. 이병석 대한양돈협회 과장은 "미국산 소고기 가격은 한우의 3분의 1 수준이며 국내산 삼겹살 값과 비슷하다"며 "돼지고기 소비자들이 미국산 소고기로 옮겨갈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미국산 소고기 시장 개방의 최대 피해자는 한우가 아니라 국산 돼지고기가 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이정민 연구원은 "한우는 고급육으로 수입 소고기와 시장 차별화에 성공해 고정 소비자층을 확보하고 있는 반면, 비싼 한우의 대체재로 인기를 끌었던 국산 돼지고기가 이제는 값싼 미국산 소고기와 가격 경쟁을 벌여야 하기 때문에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현재 국산 돼지 삼겹살의 소비자가격은 100g당 1600원선, 프리미엄급인 브랜드 돼지고기의 경우는 2100원선에 판매되고 있다.
반면 지난해 7월 대형마트가 미국산 소고기 판매를 개시했을 당시 척아이롤(등심과 목심이 섞인 부위)은 100g당 1550원이었다.
더욱이 양돈업계는 최근 곡물가격 상승으로 사료값이 지난해 10월보다 50% 이상 오르는 등 원가 부담이 커지면서 가격 경쟁력이 더욱 취약해진 상태다.
대한양돈협회 김동환 협회장은 "현재 도매시장 전국 평균 돼지고기 가격이 ㎏당 4000∼4100원인데, 미국산 소고기와 가격 경쟁력을 갖추려면 3000원 밑으로 낮춰야 한다"며 "이렇게 되면 양돈 농가들은 돼지 1마리를 출하할 때마다 평균 3만5000원이 넘는 적자가 발생, 줄도산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양돈농가의 폐업도 잇따르고 있다.
3월말 기준으로 국내에서 사육되고 있는 돼지는 898만1000마리. 지난해 같은 때에 비해 36만4000마리 감소했다. 양돈농가도 큰 폭으로 줄었다. 지난해 3월 국내 양돈농가 수는 10만7700가구였으나 1년 만에 7만9300가구가 됐다. 4가구 중 1가구꼴로 폐업한 셈이다.
김기환 기자 kkh@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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