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도 별반 다르지 않다. 처음엔 단순히 마시기 위한 용기였던 와인 글라스도 와인의 깊은 맛에 빠져들면 글라스에 욕심이 간다.
사실 집에서 와인을 자주 마시지 않으면 글라스를 여러 개 준비하는 게 번거로울 수 있다. 그럴 경우 화이트나 레드 와인 두 가지를 다 즐길 수 있도록 전체적으로 튤립 모양의 다목적 글라스 한 종류를 준비하는 것도 괜찮다.
색이 없고, 무늬가 없는 디자인의 글라스가 와인의 색을 즐기기에 더 바람직하다. 크리스털 재질이 물론 더 좋지만 요즘엔 유리 글라스도 모양이 괜찮고 평상시 사용할 때 부담이 없다.
글라스를 다양하게 갖추고 싶다면 일단 3가지 정도면 무난하다. 화이트 와인 잔, 레드 와인 잔, 그리고 샴페인을 비롯한 스파클링 와인 잔이다. 대개 화이트 와인은 과일향과 꽃향기 등 상큼한 향과 맛을 즐기기 위해 차게 칠링하여 마시게 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사이즈가 레드 와인보다는 작고 오목한 잔에 조금씩 따라 마시는 것이 와인 온도가 너무 빨리 올라가지 않으면서 제대로 와인을 즐길 수 있다.
일반적으로 와인 잔의 손잡이(stem)가 긴 것도 체온에 의해 와인의 온도가 영향 받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그에 비해 레드 와인 잔은 볼 모양이 넓고 크기가 큰 편인데, 이는 와인이 공기와 충분히 섞이며 타닌은 부드러워지고 그 향을 맘껏 뿜어낼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샴페인을 비롯한 스파클링 와인은 튤립이나 플루트 모양의 볼이 좁고 긴 글라스가 좋다. 섬세한 향기를 모아주고 스파클링 와인에만 있는 미세한 기포가 와인 잔 바닥으로부터 방울방울 지속적으로 올라오는 모습을 즐기는데 이런 디자인이 적합하기 때문이다.
◇와인 글라스 |
우리 집엔 상황에 따라 다른 글라스가 식탁 위에 오른다. 와인을 좋아하는 손님들이 오면 크리스털 글라스에 와인을 내놓고, 저녁 식사를 접대할 경우 좀 번거롭더라도 스파클링 잔부터 화이트, 레드 잔 등을 구분해 준비한다. 식탁 위에 대단한 요리가 차려지지 않더라도 코스에 따라 서빙되는 와인에 따라 각기 다른 글라스를 준비하면 손님들은 마치 고급 레스토랑에서 식사하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미 다른 곳에서 술을 마셔 취기가 있는 손님을 대접할 때에는 별로 부담없는 다용도 글라스를 사용한다. 아무래도 취기가 있고 흥이 오르다 보면 실수로 잔이 깨지는 일도 생기는데, 이럴 때 고가의 글라스가 깨지면 주부 입장에선 당연히 속상하다. 그렇다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낼 수도 없고 손님도 부담스러울 테니 깨져도 크게 부담스럽지 않은 가격의 글라스를 준비하는 것도 맘 편하게 와인을 즐길 수 있는 요령이다.
글라스의 종류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글라스의 청결이다. 글라스는 되도록 세제를 쓰지 않고 뜨거운 물로 씻는 것이 바람직하다. 하지만 음식물 찌꺼기가 묻어있는 글라스 입구, 즉 입이 닿는 부분은 좀 더 주의를 기울여 씻는 것이 좋다. 고가의 크리스털 글라스는 생각보다 쉽게 깨지기도 한다. 깨끗이 한다고 엄지와 검지로 잔 입구를 닦다가 조금만 힘을 주면 글라스 한 부분이 떨어져 나가 속상한 때가 왕왕 있었다. 한 손으로는 글라스 볼 쪽을 잡고 다른 한 손은 되도록 두세 개의 손가락을 잔 안으로 넣어 닦는 것이 안전하다.
내게 와인 글라스는 와인을 더욱 즐겁게 마실 수 있는 도구이다. 장식품도 아니고 와인보다 우선하지도 않는다. 경험적으로 볼 때 언제라도 편하게 즐길 수 있는 글라스에 손길이 많이 가게 된다. 너무 고급 글라스에 연연하지 않은 것이 바람직하다.
WSET 대표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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