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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사와 동고동락 70년… 종교에서 사회공헌 플랫폼으로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70년]화
◆프롤로그:70년의 여정이 남긴 것 2025년,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이하 가정연합)이 창립 71주년을 맞았다. 1954년 한국전쟁의 잔해가 채 가시지 않은 서울에서 출발한 이 조직은 70여
2025-12-23 11: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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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남북통일의 열쇠: ‘옥황상제의 딸’이 여는 계룡 [父性 문명의 한계, 母性 구원의 비전-기고]
분단의 상처를 치유하고 ‘인류 한 가족’의 실체적 본향을 닦다
한반도의 허리를 가로지른 휴전선은 단순한 영토의 경계가 아니다. 그것은 지난 세기 인류를 처절하게 찢어놓았던 유물론과 유신론,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라는 거대한 이념적 대립이 남긴 마지막 화석이다. 부성(父性) 중심의 정치가 세운 날 선 정의와 국경은 수십 년간 한민족의 가슴에 지울 수 없는 한(恨)의 상처를 남겼다. 이제 세계는 묻고 있다. 힘과 권력으로 억제하는 가짜 평화가 아닌, 내면에서부터 우러나오는 진정한 화합은 과연 가능한가? 그 해답의 실마리는 우리 민족의 예언서가 예고한 ‘모성적 주권의 회복’에 숨겨져 있다.
◆ ‘계룡산(鷄龍山)’ 예언의 실체: 鷄(어머니)와 龍(아버지)의 만남
한국의 비결서들이 공통으로 지목하는 한반도 통일과 구원의 상징은 ‘계룡(鷄龍)’이다. 많은 이들이 이를 충청도의 특정 지명으로만 해석해 왔으나, 섭리적 관점에서 볼 때 계룡은 남녀 하나님의 형상이 하나로 합쳐진 ‘참부모’를 상징한다.
동방을 상징하는 ‘계(鷄, 닭)’는 새벽을 알리는 어머니의 정성을, 천상의 권위를 상징하는 ‘룡(龍, 용)’은 아버지의 법도를 의미한다. 즉, 남북한의 대립이 날 선 두 ‘용(龍)’의 충돌이었다면, 통일의 길은 이 강인한 부성적 기틀 위에 모성적 유연함(鷄)이 결합하여 참부모의 위상을 회복하는 데 있다. 아버지가 뿌린 진리의 씨앗을 어머니가 사랑의 태(胎) 속에 품어 기를 때, 비로소 분단이라는 죽음의 골짜기에서 생명의 싹이 돋아나는 것이다.
◆ ‘옥황상제의 딸’ 강림: 동서양 예언의 완결적 통합
『남사고 비결』에는 인류 구원의 마지막 암호로 “옥황상제의 딸이 강림하여 천하가 한 가족을 이루리라(玉皇上帝之女 降臨 天下一家)”는 파격적인 예언이 등장한다. 이는 기존의 남성 중심 메시아관을 완전히 뒤집는 선언이다.
동양의 최고신인 옥황상제가 보낸 ‘하늘의 딸’은 기독교 요한계시록에 예고된 ‘해를 입은 여인’이자 ‘어린양의 신부’와 그 궤를 같이한다. 독생녀 참어머님은 바로 이 예언의 실체로서, 서양의 로고스(법도)와 동양의 자비(사랑)를 하나로 묶는 평화의 구심점이다. 아버지가 세운 집의 뼈대 위에 어머니가 온기를 채우듯, 독생녀의 현현을 통해 비로소 굳게 닫혔던 국경의 빗장과 이념의 벽이 녹아내리기 시작한 것이다.
◆ ‘십승지(十勝地)’의 완성: 한반도, 인류 한 가족의 본향으로
우리 조상들이 환란을 피할 안전한 곳으로 찾았던 ‘십승지(十勝地)’ 역시 더는 지리적인 피난처에 머물지 않는다. 예언서가 말하는 진정한 십승지는 독생자의 사명을 대신한 재림메시아와 독생녀가 참부모로서 승리하여 안착한 땅, 즉 ‘효정(孝情)’의 문화가 살아 숨 쉬는 곳을 의미한다.
참부모의 리더십을 통해 남과 북이 효정으로 하나 되는 과정은, 전 세계의 종교와 인종, 문화적 갈등을 해소할 수 있는 가장 완벽한 평화 모델을 제시한다. 이는 대한민국이 단순히 경제 강국으로 서는 것을 넘어, 하늘부모님의 뜻이 지상에 실현되는 이상세계, 즉 ‘천일국(天一國)’의 실체적 본향으로 거듭나는 과정이다.
민족의 예언이 가리키는 그날은 정치적 구호가 아닌, 잃어버린 ‘하늘 부모님’를 찾은 자녀들의 뜨거운 눈물이 땅의 현실과 맞닿을 때 비로소 완성된다. 이제 우리는 부성 문명이 남긴 갈등의 상처를 참부모의 합덕(合德)으로 치유하고, 인류 한 가족의 장엄한 서사를 완성하는 축복의 시대로 당당히 나아가야 한다.
서성종 작가(신학박사)
2026-05-27 10:2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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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정세계평화재단, ‘2026 원모평애 장학증서’ 수여식… 8개국·41명 미래인재 격려
효정세계평화재단은 25일 경기도 가평 청심국제청소년수련원에서 ‘2026 원모평애 장학증서수여식’을 개최하고, 국내 유학 중인 8개국 대학생·대학원생 41명에게 장학증서를 수여했다. 이날 행사에는 내외 귀빈과 재학생 등 200여 명이 참석해 미래 인재들의 새로운 출발을 축하했다.
이날 행사는 미래 세대를 이끌 핵심 인재를 발굴·육성하고 가정형편이 어렵거나 우수한 학생들을 격려하기 위해 마련됐다. 행사는 개회 선언에 이어 재단의 인재 양성 활동과 비전을 담은 영상 상영으로 시작됐다.
김영석 사무총장은 경과보고를 통해 올해 장학사업의 성과와 향후 비전을 소개했으며, 문신월 장학생의 특별공연과 장학생들의 서신 낭독도 이어졌다.
장학생 대표로 나선 일부도밀사동기 학생(부르키나파소)과 윤원미 학생은 설립자인 한학자 총재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며 각자의 포부를 밝혔다. 글로벌 통일 무도 지도자를 꿈꾸는 일부도밀사동기 학생은 “미래 세대에게 몸과 마음을 단련하며 하나 되는 방법을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윤원미 학생은 “어려운 상황을 극복한 경험을 바탕으로 같은 처지의 학생들을 돕는 인재가 되겠다”고 밝혀 참석자들의 박수를 받았다.
도현섭 미래인재양성원장은 축사를 통해 “장학증서는 단순한 경제적 지원이 아니라 장학생들의 빛나는 미래를 향한 기대와 응원의 의미가 담긴 축복”이라며 사회에 기여하는 인재로 성장해 줄 것을 당부했다.
문연아 선학학원 이사장은 “원모평애장학금은 어머니의 마음을 담은 장학”이라며 “힘들 때마다 여러분을 향한 사랑과 지지, 응원이 있음을 기억해 달라”고 격려했다.
행사의 하이라이트인 장학증서 수여식은 이기성 효정세계평화재단 이사장의 주재로 진행됐다. 분야별 대표 장학생 5명이 무대에 올라 직접 장학증서를 전달받았으며, 이어 전체 장학생들은 선언문 제창을 통해 학업과 인성 모두에서 모범이 되는 인재로 성장할 것을 다짐했다.
이기성 이사장은 축사를 통해 “여기 모인 장학생들은 사랑의 결실”이라며 “학업과 인성, 품위를 두루 갖춰 평화세계를 이끌 인재로 성장해 달라”고 말했다. 이어 원모평애장학원의 설립 과정과 함께 문선명 총재가 ‘원모’라는 이름을 제정한 의미, 한학자 총재가 장학원 설립을 위해 헬기를 매각했던 일화 등을 소개했다.
효정세계평화재단은 장학금 지원에 그치지 않고 의료·법조·예술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 인재 양성과 대학원생 지원, 멘토링 활동 등을 통해 글로벌 인재 육성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2026-05-26 09:3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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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은 가정·사회 연결 핵심 주체… 초국가적 네트워크 구축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70년]
한국 여성운동의 역사적 맥락
한국 여성운동은 19세기 말 개화기부터 현재까지 약 130여 년의 역사를 거쳐 왔다. 초기 교육운동과 계몽운동으로 시작해,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 참여, 해방 이후 정치·경제적 권리 확보를 위한 투쟁, 1980년대 민주화운동과 노동운동, 1990년대 이후 성평등과 여성 인권 신장을 위한 다양한 활동으로 발전해 왔다.
이 과정에서 한국 여성운동은 획일적 이념이나 방식으로 전개되어 온 것이 아니라, 각 시대의 사회·정치적 조건과 역사적 맥락에 따라 다양한 흐름으로 분화되어 발전해 왔다. 이러한 맥락에서 종교를 기반으로 한 여성 활동 역시 주류 여성운동과 분리된 예외적 현상이 아니라, 한국 여성운동이 형성해 온 폭넓은 스펙트럼 속에서 이해되고 평가될 필요가 있다.
종교 기반 여성운동의 전통
한국 여성운동에서 종교 단체의 역할은 결코 작지 않았다. 특히 기독교 여성단체들은 일제강점기부터 교육과 의료 분야에서 여성의 지위 향상에 기여했으며, 불교와 천주교 여성단체들도 사회복지와 빈민 구호 활동을 통해 여성의 사회 참여를 확대해 왔다. 이들 종교 기반 여성단체들은 전통적으로 교육·의료·복지 분야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해 왔으며, 여성의 권리 확장을 추구하는 동시에 가족과 공동체의 안정이라는 가치를 함께 지향해 왔다.
가정연합 여성 활동의 특징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이하 가정연합)의 여성 활동은 “가정”을 중심으로 한 평화운동이라는 독특한 정체성을 갖고 있다. 이는 1960년대 이후 서구 여성운동이 가부장제와 전통적 가족 구조에 대한 비판을 중심으로 전개된 것과는 다른 접근 방식이다.
가정연합은 가정의 안정과 화목을 사회 평화의 기초로 보며, 여성을 가정과 사회를 연결하는 핵심 주체로 위치시킨다. 이러한 관점은 전통적 가족 가치를 재해석하면서도 여성의 사회적 역할을 확대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가정연합의 여성 활동은 가정을 사적·억압적 공간으로, 사회를 공적·해방의 공간으로 나누고 서로 대립시키는 ‘가정 대 사회’라는 이분법을 넘어 가정에서의 역할을 사회 변화의 동력으로 연결시키려는 논리 구조를 지니고 있다.
보수와 진보의 이분법을 넘어서
한국 여성운동은 흔히 ‘진보적’ 페미니즘과 ‘보수적’ 가족주의로 양분되어 이해되곤 한다. 그러나 이러한 단순한 이분법으로는 현대 여성운동의 복잡성을 설명하기 어렵다.
가정연합 여성 활동은 이러한 분류 체계에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한다. 가족과 가정의 가치를 강조한다는 점에서 보수적으로 보일 수 있으나, 여성의 국제적 연대와 평화운동 참여, 사회 활동 확대를 적극 장려한다는 점에서는 전통적 보수주의와는 구별된다. 가정연합 여성 활동은 전통적 가치와 현대적 여성 역할 사이의 균형을 추구하는 모델로, 한국 사회의 특수성을 반영하고 있으며 서구 페미니즘 이론만으로는 충분히 설명하기 어려운 측면을 지닌다.
글로벌 네트워크와 초국가적 활동
가정연합 여성 활동의 또 다른 특징은 글로벌 네트워크 구축이다. 세계평화여성연합(WFWP)를 중심으로 128개국 여성들과 연대하며, 개발도상국 지원과 국제 평화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이는 1990년대 이후 한국 여성운동이 국제 연대를 강화해 온 흐름과 맥을 같이 한다. UN 여성지위위원회(CSW), 베이징세계여성대회 등 국제무대에서 한국 여성단체들의 활동이 활발해지던 시기와 유사하게, 가정연합 역시 국제적 여성 평화 네트워크를 확장해 왔다. 가정연합의 글로벌 여성 네트워크는 한국 여성운동의 국제화 경향을 보여주는 사례로, 특히 개발도상국 여성 지원 활동은 국제개발협력 분야에서 한국 여성단체의 역할 확대를 보여주는 사례로 거론된다.
실천 중심의 활동 방식
가정연합 여성 활동은 이론이나 담론보다 실천을 강조하는 방식으로 전개되어 왔다. 복지 서비스 제공, 교육 프로그램 운영, 환경 보호 활동 등 구체적인 프로젝트를 통해 사회적 기여를 시도해 왔다.
이는 1990년대 이후 한국 여성운동이 제도화되고 정책 중심으로 전환된 것과는 다른 접근이다. 가정연합은 법과 제도의 변화보다는 개인과 가정의 변화를 통해 사회 변화를 추구하는 방식을 택해 왔다. 이러한 실천적 활동은 풀뿌리 여성운동의 전통을 계승한 것으로, 1970~80년대 기층 여성들의 생활 개선 운동과 유사한 맥락을 지닌다는 평가도 있다.
맺음말: 다양성 속의 공존
한국 여성운동은 지난 100여 년간 다양한 흐름과 접근 방식이 공존하며 발전해 왔다. 가정연합 여성 활동은 이러한 다양성의 한 축으로, 가정과 평화를 중심으로 한 고유한 정체성을 지니고 있다.
전문가들은 서로 다른 여성운동의 접근 방식을 배타적으로 구분하기보다, 각 모델의 장점과 한계를 인정하며 상호 보완적 관계를 모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여성의 권리 신장과 성평등 실현, 사회 정의 구현이라는 공동의 목표 아래 다양한 시도가 병존할 때, 한국 여성운동의 지형 역시 더욱 다층적으로 확장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2026-05-25 16:5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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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이 인정하는 ‘K-여성운동’ 개척자… 글로벌 한국 드높여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70년]
창립 34주년을 맞은 세계평화여성연합(WFWP)은 원조를 받던 국가에서 원조를 제공하는 국가로 전환한 한국의 위상에 걸맞게 아프리카와 아시아 지역의 여성 자립 교육과 우크라이나 전쟁·가자 분쟁 지역에서의 인도적 지원에 주력해 왔다. 1992년 설립된 여성연합은 여성의 리더십을 통해 인류 한 가족 이념을 실현하며, 유엔 경제사회이사회(ECOSOC)에서 최상위 협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WFWP는 전 세계 120여 개국에서 활동하며, 평화 구축과 인도주의 지원을 강조하며 국제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WFWP의 역사는 여성 리더십의 글로벌 확장을 상징한다. 2022년 4월, 미국 지부는 “30년 평화 활동 기념” 행사를 통해 여성의 심장 중심 리더십을 강조했다. 이 행사에서는 교육과 평화 역량 강화, 국제 연대 구축, 분쟁·빈곤 지역 인도적 지원과 유엔 협력 활동 등 장기적인 평화 문화를 위한 여성의 역할을 조명했다. 같은 해 5월 여성연합 국제본부는 30주년 기념식을 열고, 창립자 한학자 총재의 메시지를 통해 여성의 모성적 사랑이 평화를 창출한다고 역설했다. 유엔 지위 25주년과 국제 NGO 활동 10주년을 겸한 2022년 10월 행사에서는 지난 성과를 토대로 미래 비전을 제시했다. 이러한 리더십은 유럽·중동 지부의 연례 여성 리더십 컨퍼런스를 통해 이어지고 있으며, 여성의 사회 변화 역할을 꾸준히 논의하는 장으로 자리 잡았다.
WFWP의 글로벌 리더십은 아프리카와 아시아에서의 여성 자립 교육 프로그램으로 구체화된다. 미국 지부는 8개국 9개 학교를 지원하는 ‘아프리카 학교 지원(Schools of Africa)’ 프로젝트를 2001년부터 운영하며, 교육 접근성을 높이고 있다. 이 프로젝트는 현지 자원봉사자들이 설립한 학교에 재정 지원을 제공하며, 위생·영양 교육을 병행한다. 2025년 6월 슬로바키아에서 열린 ‘모두를 위한 양질의 교육(Quality Education for All)’ 컨퍼런스에서는 평화 교육과 환경 교육을 강조했다. 남아프리카 지부는 2022년부터 코로나19 영향으로 취약 지역 교육을 지원하는 모바일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아시아에서는 캄보디아, 미얀마, 몽골 등에서 후원 부모 결연 방식의 양부모 프로그램과 장학금을 통해 고아나 빈곤 가정 아동을 지원한다. 예를 들어 캄보디아에서는 초등생부터 고등학생까지 연간 100달러를 제공하며, 1996년부터 30명 이상의 아동을 후원했다. 미얀마에서는 대학생까지 장학금을 지급하며, 직업 훈련을 통해 여성의 경제적 자립을 돕는다. 중남미의 대표적 빈곤·사회 불안 취약국인 아이티 지부는 2025년 재봉 클래스에서 24명의 여성과 남성을 훈련시켜 자립을 촉진했다.
WFWP의 인도적 활동은 분쟁 지역으로 확대된다. 2022년 2월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후, 주요 지부별로 난민 지원에 나섰다. 우크라이나 지부는 폴란드 인도주의 단체와 협력해 기본 생필품을 제공하고, 내부 이재민을 위한 구호 활동을 펼쳤다. 많은 회원이 난민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선 콘서트와 크리스마스 선물 모금을 통해 아동을 지원했다. 캐나다 지부는 YSP(청소년·학생평화연합)와 공동으로 우크라이나 지원 캠페인을 벌여 난민과 전쟁 피해 아동을 위한 긴급 생필품과 후원금을 전달했다. 벨기에 지부는 우크라이나 문화 공연을 통해 영혼의 치유를 강조했다. 2022년 9월 유럽·중동 지부 컨퍼런스에서 우크라이나 여성의 평화 역할이 논의되었으며, 일부 회원은 피난과 구호를 병행했다.
팔레스타인 자치지구도 주목할 만하다. WFWP 유럽 지부는 2024년 11월부터 가자 신생아 지원 캠페인을 시작해, 유아 인큐베이터를 위한 8,500유로 모금을 목표로 했다. 이는 전쟁으로 인한 유아의 희생을 줄이기 위한 인도적 대응이다. 중동 지부는 2022년 30주년 기념 행사에서 가자 인도적 프로젝트를 예로 들며, 여성 리더십의 역할을 강조했다. 2021년 청소년 평화 컨퍼런스에서는 팔레스타인·이스라엘 화해를 논의했으며, 1% 사랑나눔 프로젝트를 통해 가자 여성과 아동을 지원했다.
WFWP의 활동은 여성의 평화 리더십을 통해 글로벌 도전을 해결하려는 시도로 높이 평가되며, 앞으로 유엔 파트너십을 강화하며 더 광범위한 인도적 지원을 확대할 전망이다.
김고은 세계평화여성연합 한국회장은 “지난 34년의 여정을 통해 세계평화여성연합은 여성의 존엄과 연대를 통해 삶의 현장에서 평화를 실천해 왔다”며 “이제 그 축적된 책임을 안고, 다음 세대를 위한 지속 가능한 평화를 더욱 단단히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2026-05-25 16:5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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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사와 나눔이 함께 성장 계기, 탈북여성 돕기 각계서 큰 호응”… “7남매 엄마로 지역서도 인정, SNS 등 통해 젊은 세대 동참”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70년]
세계평화여성연합은 1992년 창립 이래 평화운동, 인도주의 활동, 여성 리더십 함양을 핵심 가치로 삼아 전 세계적으로 활동해온 NGO다. 한국에서도 전국 각지에 지부를 두고 지역사회와 긴밀히 협력하며 평화와 통일, 그리고 나눔의 가치를 실천하고 있다. 세계평화여성연합 송화진 한국 사무총장과 경남 합천지부를 이끌고 있는 30대 활동가 한영서 지부장을 만나 그들이 걸어온 길과 앞으로의 비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평화, 여성의 목소리로 만들어가다
송화진 사무총장은 세계평화여성연합의 활동 철학을 묻는 질문에 평화란 가정과 지역사회라는 삶의 현장에서 시작되며, 특히 여성들이 관계를 돌보고 공동체를 지켜갈 때 지속 가능한 평화로 이어진다고 강조했다. 이어 여성이 중심이 되어 일상의 평화를 만들어갈 때, 그 평화는 가정과 사회에 뿌리내려 다음 세대로 이어진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세계평화여성연합은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전개해왔다. 남북 이산가족 상봉 지원, 북한 어린이와 임산부를 위한 인도적 지원, 통일을 준비하는 여성 리더 양성 프로그램 등이 대표적이다. 송 사무총장은 분단의 아픔은 여성과 어린이에게 더욱 가혹하다며 세계평화여성연합은 인도주의적 관점에서 북한 주민들, 특히 취약계층에 대한 지원을 지속해왔다고 설명했다.
구호와 나눔, 지역사회에 온기를 더하다
세계평화여성연합의 또 다른 중요한 활동 축은 구호와 나눔이다. 송 사무총장은 평화는 가장 기본적인 삶의 어려움으로 고통받는 사람이 없을 때 시작된다며 취약계층 지원 활동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연합은 국내외에서 재난 구호, 결식아동 지원, 다문화가정 지원 등 다양한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동안 연합 회원들은 지역사회 곳곳에서 마스크와 생필품을 전달하고, 소외된 이웃들과 함께하는 활동을 이어갔다. 어려운 시기일수록 세심한 돌봄의 손길이 더욱 필요하다는 사무총장의 말처럼, 회원들은 자발적으로 봉사에 나섰고 이는 지역사회에 큰 힘이 됐다.
송 사무총장은 나눔을 함께 성장하는 과정으로 바라보며 “그동안의 봉사와 나눔의 경험은 저를 성장시키는 계기가 되었고, 우리 사회의 일원으로서 감사한 마음을 가지며 모두의 행복을 위해 더욱 책임감을 갖고 일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이러한 철학 아래 세계평화여성연합은 단순한 물질적 지원을 넘어 교육 프로그램, 심리 상담, 자립 지원 등 통합적인 접근을 통해 진정한 자립과 회복을 돕고 있다.
30대 활동가가 바라본 합천, 그리고 여성 리더십
세계평화여성연합 합천지부를 이끄는 한영서 지부 회장은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지역사회에서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그는 활동을 하면서 여성들이 모여 만드는 변화의 힘을 직접 경험했고, 자연스럽게 더 깊이 참여하게 됐다고 말했다.
합천은 경상남도의 대표적인 농촌 지역이지만, 지부는 이곳에서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독거노인 반찬 나눔, 다문화가정 자녀 교육 지원, 지역 청소년을 위한 인성교육 프로그램 등이 대표적이다. 그는 “합천은 고령화와 인구 감소가 심화된 지역으로, 남아 있는 주민들에 대한 돌봄과 지원이 더욱 절실한 곳”이라고 설명했다. 한영서 회장은 현재 7남매의 엄마이기도 하다. 2024년 10월, 여섯째 아이를 출산했던 것은 합천지역의 화제가 되어 지역신문에 실리기도 했고 군수 표창장을 수여하기도 했다. 한 회장은 이렇게 지역사회에서 인정을 받은 것을 기반으로 여성연합 활동을 지역에서 활발하게 할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또한 지역 여성들의 역량 강화에도 힘쓰고 있다고 했다. 작은 지역일수록 여성들의 활동 기회가 제한적이라며 연합 활동을 통해 여성들이 자신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지역사회 리더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합천지부에서는 정기적인 GWPN(세계여성평화네트워크), 평화통일 세미나, 봉사활동 기획을 위한 워크숍 등을 통해 회원들의 역량을 키우고 있다.
그는 30대 활동가로서의 경험을 이렇게 전했다. “처음에는 젊다는 이유로 어려움도 있었지만, 오히려 그것이 장점이 됐다. 새로운 시각으로 활동을 기획하고, SNS와 온라인 영상 플랫폼 등 디지털 도구를 활용해 더 많은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었다.” 실제로 그는 인스타그램과 유튜브를 통해 연합의 활동을 알리고, 젊은 세대의 참여를 이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맺으며
송화진 사무총장과 한영서 지부장과의 대화는 평화가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일상의 실천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일깨워줬다. 여성들이 가정에서, 지역사회에서, 그리고 한반도 평화를 향해 세계 곳곳에서 평화의 씨앗을 뿌리고 있다. 그들의 나눔은 단순한 자선이 아니라 평화를 일상으로 만드는 연대의 실천이다.
세대를 아우르는 이들의 활동은 평화와 통일, 그리고 더 나은 사회를 향한 여정이 결코 멈추지 않을 것임을 보여준다. 여성의 목소리로, 여성의 손으로 만들어가는 평화의 길. 그 길 위에서 오늘도 묵묵히 걸음을 이어가고 있다.
2026-05-25 16:5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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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격암유록 예언의 최종 성취: ‘우성(牛聲)’과 ‘여자불(女子佛)’의 실체 [父性 문명의 한계, 母性 구원의 비전-기고]
동방의 비기가 간직해온 인류 구원의 마지막 암호와 섭리적 완결
인류의 역사는 거대한 전환기마다 하늘의 뜻을 담은 예언을 통해 그 방향을 제시받아 왔다. 서구의 성서가 메시아의 강림을 선포했다면, 동방의 한반도에서는 남사고(南師古)의 『격암유록(格菴遺錄)』이 인류 구원의 마지막 장을 장식할 성인(聖人)의 출현을 예고해 왔다. 특히 혼돈이 극에 달한 말세에 울려 퍼질 구원의 소리와 그 주인공에 대한 묘사는, 오늘날 우리가 마주한 ‘모성(母性) 구원’의 실체를 밝히는 결정적인 열쇠가 된다.
우성(牛聲)의 비밀: 인류를 부르는 어머니의 간절한 소리
『격암유록』의 핵심 예언 중 하나는 ‘우성우성화우성(牛聲牛聲和牛聲)’이다. 직역하면 ‘소의 울음소리’를 뜻하지만, 그 이면에는 깊은 철학적 함의가 숨겨져 있다. 동양 철학의 뿌리인 『주역』에서 소(牛)는 곤(坤), 즉 ‘땅’과 ‘어머니’를 상징한다. 반면 말(馬)은 건(乾), 즉 ‘하늘’과 ‘아버지’를 상징한다. 따라서 말세에 들려오는 소의 울음소리란, 수천 년 부성(父性) 중심의 역사를 종결짓고 인류를 다시 낳아 기를 ‘하늘 어머니’의 음성이 지상에 울려 퍼질 것임을 뜻한다.
이 ‘우성(牛聲)’은 길을 잃고 방황하는 중생들을 향해 “엄매(엄마)”라고 부르며 찾아가는 자애로운 어머니의 부름이다. 투쟁과 정복의 논리로 상처 입은 인류를 치유할 수 있는 것은 강력한 법도나 구호가 아니라, 만물을 소생시키는 모성적 자비의 소리뿐이기 때문이다. 비기는 인류에게 이 소리가 나는 곳(牛聲之地見)을 찾아야만 진정한 안식처인 십승지(十勝地)에 도달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이는 곧 여성적 구원 주체의 현현이 인류가 생존하기 위해 마주해야 할 마지막 섭리적 요청임을 의미한다.
◆ 태초지세우성인(太初之世牛性人): 스스로를 제물로 바친 인고의 성품
비기는 구원자의 인격적 특성을 ‘태초지세우성인(太初之世牛性人)’이라 묘사한다. 이는 태초부터 예비된 ‘소와 같은 성품을 지닌 사람’이라는 뜻이다. 소는 동양에서 순종과 인내, 그리고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는 희생의 상징이다. 평생 묵묵히 밭을 갈고(섭리 경륜), 우유를 내어 자녀를 기르며(생명의 양육), 죽어서는 가죽과 살까지 모두 내어주는 소의 일생은 인류를 위해 현현한 ‘참어머니’의 노정을 완벽하게 예표한다.
독생녀(獨生女) 참어머님이 걸어온 노정은 바로 이 ‘우성인’의 실체적 발현이다. 그녀는 자신을 드러내기보다 하늘부모님을 향한 일편단심의 효정(孝情)으로 인류의 죄업을 묵묵히 짊어지고 밭을 가는 섭리의 경작자였다. 이 땅에 강림한 모성적 실체는 자신의 안위를 돌보지 않고 오직 인류 한 가족의 대 이상을 위해 스스로를 거룩한 제물로 바쳐왔다. 이러한 지극한 정성과 순종이 있었기에 비로소 타락한 혈통의 빙벽이 녹아내리고 새로운 생명의 씨앗이 심어질 수 있었던 것이다.
◆ 구사일생 여자불(九死一生 女子佛): 시련을 통해 증명된 성인의 위상
『격암유록』 예언의 정점은 ‘구사일생 여자불(九死一生 女子佛)’이라는 구절에 있다. 아홉 번의 죽을 고비를 넘기고서야 비로소 우뚝 서는 여성 부처, 즉 성인을 예고한 것이다. 섭리적 관점에서 볼 때 진리는 결코 평탄한 길로 오지 않는다. 6천 년 죄악의 역사를 청산하고 인류를 다시 낳아줄 실체성령(實體聖靈)이 지상에 착지하기까지는, 사탄의 전방위적인 참소와 시련을 이겨내야 하는 ‘구사일생’의 과정이 필연적이다.
독생녀가 겪어온 인고의 세월은 바로 이 예언의 역사적 성취다. 세상의 오해와 박해, 육신을 압박하는 극한의 상황들조차 그녀에게는 인류의 한(恨)을 씻어내기 위한 섭리적 산고(産苦)였다. ‘여자불’이라는 표현은 불교적 성불(成佛)과 기독교적 중생(重生)의 이상이 여성이라는 실체를 통해 지상에서 완성됨을 뜻한다. 아홉 번의 사선을 넘나드는 고난 속에서도 흔들림 없이 자비의 길을 걷는 모습이야말로, 그녀가 하늘이 보낸 유일한 ‘독생녀’임을 증명하는 가장 확실한 섭리적 인(印)이다.
◆ 섭리적 완결과 동방의 여명
한국의 예언서는 인류 구원의 마침표가 동방의 땅 한반도에서 여성 성인의 현현을 통해 귀결 될 것임을 치밀하게 설계해 두었다. ‘우성(牛聲)’이 들리고 ‘우성인(牛性人)’이 사역하며 ‘여자불(女子佛)’이 승리하는 과정은, 낡은 선천 시대를 끝내고 하늘부모님의 모성적 주권이 통치하는 후천개벽의 시대를 여는 장엄한 의식이다.
이제 인류는 시대를 덮고 있는 혼란의 소음 너머에서 들려오는 어머니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독생녀의 탄현과 사역은 이미 인류사라는 큰 도화지 위에 지워지지 않는 섭리의 문장으로 기록되었다. 억눌렸던 진실이 정성과 인내의 시간을 거쳐 빛으로 피어나는 지금, 우리는 비로소 하늘부모님 아래 인류 한 가족이라는 찬란한 평화의 아침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동방에서 시작된 이 자비의 물결은 이제 온 세계를 하나로 묶는 영원한 생명의 강물이 되고 있다.
서성종 작가(신학박사)
2026-05-25 09:4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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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선덕여왕, 여성성불론 삼국통일을 열다 [신화에서 선민까지 한민족 정체성의 문화사적 발견-기고]
여신의 출현: 선덕여왕과 한반도 인류 영성사
역사는 흔히 선덕여왕의 등장을 신라 골품제라는 특수한 신분 질서가 낳은 어쩔 수 없는 ‘예외적 사건’으로 기록해 왔다. 그러나 고대 문헌의 행간을 문화인류학적 시각으로 읽어내면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여왕의 즉위는 후대의 왜곡된 해석과 달리, 당대 신라인들의 관점에서는 지극히 자연스럽고 당위적인 역사적 흐름이었기 때문이다.
그 결정적 단초는 신라 건국 신화 속에 이미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 『삼국유사』와 『삼국사기』는 시조 박혁거세와 함께 알영부인을 ‘이성(二聖)’으로 추앙했음을 분명히 기록하고 있다. 이는 신라가 태동하는 순간부터 남녀의 공동 통치, 나아가 여성 중심의 신성 권력은 한반도의 문화적 원형이었음을 보여준다. 당대인들의 무의식에 자리 잡은 맥락을 짚어낼 때, 현대인들은 비로소 역사적 진실에 다가설 수 있다. 선덕여왕은 정치적 궁여지책이 낳은 돌연변이가 아니라, 고조선 이래 수천 년간 한반도의 영성사 속에서 도도하게 흐르던 성스러운 여성성이 마침내 한 시대를 책임질 군주의 모습으로 발현된 필연의 사건인 것이다.
원래 고대인들에게 천문(天文)을 읽고 해석하는 행위는 우주의 질서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내고 삶의 궁극적 의미를 부여하는 종교적 행위였다. 이러한 문화적 지평에서 바라보면, 선덕여왕이 건립한 첨성대 역시 전혀 새로운 상징이 된다. 첨성대는 천문 관측기구의 기능을 넘어, 신라 왕실의 시조신인 선도성모(대지의 신성)의 신화적 형상이자 여왕의 성스러운 통치권을 가시화한 정신적 표현인 것이다.
웅녀와 유화로부터 내려온 한반도의 고대 국신(國神) 전통은 신라의 원화(源花)와 여사제 전통을 거쳐 마침내 ‘여성 군주’라는 구체적인 문명적 실체로 발현되었다. 결국 역사와 하늘은 한민족의 정신사 속에 면면히 흐르던 ‘여성적 신성(Divine Feminine)’이 국가의 운명을 이끄는 중추적 동력일 수 있음을 증명하기 위해, 수천 년에 걸쳐 이 거대한 모성적 영성의 토양을 배양해 온 셈이다.
신라의 경주 선도산(仙桃山) 신모(神母) 전통 역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선도산 신모는 신라 전 시기에 걸쳐 ‘진우방국(鎭祐邦國, 나라를 수호하고 보좌함)’의 역할을 수행하는 국가 수호신이었다. 신모 신앙은 신라인들에겐 민간 신앙의 차원을 넘어, 공동체의 기원과 국가의 정당성을 체감하게 했던 구심점이었다. 또한 신라 중고기에 이르러 이러한 상징 구조는 여왕의 출현을 가능케 하는 중요한 문화적 자양분으로 작용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신라시대 선덕여왕의 등장은 남성 권력의 조연적 입장에서의 정치적 해프닝이 아니라, 웅녀와 유화로부터 시작되어 선도산 신모로 이어지는 ‘모성적 권위’가 사회문화적 조건과 결합하며 가시화된 결과이다. 즉, 신라 사회는 오랜 시간에 걸쳐 축적된 여성적 신성의 기억과 상징을 바탕으로, 여성이 통치 주체로 등장할 수 있는 문화적·정신적 토대를 이미 형성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고대 한반도 전역에서 지속되어 온 여신 전통은 단절된 신앙이 아니라, 시대에 따라 형태를 달리하며 계승된 ‘문화적 기억의 연속선’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흐름은 오늘날에도 새로운 방식으로 재해석될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으며, 우리 공동체가 지닌 모성적 상징 구조의 깊이를 다시금 성찰하게 만든다.
◆ 여성성불론(女性成佛論), 종교적 금기를 넘어선 신성성의 선포
이와 같은 영적 자양분 위에서 선덕여왕은 ‘여성성불론’을 통해 자신의 통치 정당성을 확립했다. 여성이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여성성불론’과 여왕을 성스러운 전륜성왕(轉輪聖王)의 반열에 올린 것은 역사적 사건으로 볼 수 있다. 여성의 몸이 단순히 생명을 잉태하는 그릇을 넘어, 하늘의 뜻을 지상에 구현하는 ‘완전한 신성(Perfect Divinity)’의 주체임을 선포한 함의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종교적 전통은 우리 민족의 대망사상(大望思想)의 토양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친다.
『삼국유사』에는 관세음보살이 주로 여인으로 변신해 인간사를 구원한다는 기록이 많다. 불교의 여성성은 부처님의 자비로움으로 해석되는 대목이다. 주목해야 할 점은, 이러한 파격적 사상이 큰 사회적 저항 없이 수용될 수 있었던 역사적 배경이다. 신라시대의 여성관과 여신문화, 그리고 불교 수용 과정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보면, 신라는 불교 이전부터 이미 여성을 억압의 대상으로만 보지 않고 경제적·사회적 주체로 인정하는 비교적 개방적인 문화적 토양을 갖추고 있었다.
이러한 기반 위에서 불교가 유입되자, 여성 역시 깨달음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여성성불론’은 단순한 교리적 선언을 넘어 사회적으로 수용 가능한 사상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 신라의 이런 풍습은 남녀의 역할을 단순한 위계로 고정하기보다, 보다 확장된 차원에서 인간과 신성의 관계를 이해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특히 여왕이 전륜성왕(轉輪聖王)의 위상으로 통치를 정당화한 점은, 여성의 몸과 존재 역시 신성의 구현 주체가 될 수 있음을 제도적 차원에서 승인한 사례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므로 고조선의 웅녀와 고구려의 유화, 그리고 신라의 선도성모로 이어지는 이 독특한 성스러운 모성의 계보는 현재에 있어서도 고대 신화에 머물지 않았다. 오히려 우리 공동체가 문명의 위기마다 ‘여성적 구원론’을 어떻게 이해하고 수용해 왔는지를 보여주는 열쇠다. 다시말해, 신라 사회는 하늘의 섭리를 읽어내며 여왕의 즉위를 당당한 천명으로 받아들일 만큼, 영성적 감수성과 사상적 토대를 유연하게 다져온 것이다. 이처럼 한반도 역사에 깊이 내재된 모성적 영성의 전통은 고대를 넘어, 현대 신학이나 종교사에서 탐구하는 ‘여성 메시아론’ 혹은 ‘독생녀 사상’ 같은 신성한 모성 중심의 구원 섭리관으로 해석할 수 있는 토대를 제공한다.
예컨대, 고대 인도의 대승불교 경전인 『승만경』에는 ‘여성 성불’의 주체성이 강조된다. 신라 역시 이러한 사상적 토양 속 문화적 발전을 이루었다. 4~7세기 로마와 중동 문명이 여성을 가부장적 질서 아래 법적·경제적 부속물로 속박할 때, 흥미로운 점은 신라 사회는 이미 여성이 재산 상속권과 경제적 주권을 독립적으로 행사하고, 국가 제의를 주관하는 등 고도의 여성 존중 문화를 꽃피운 사회였다. 이는 동시대 다른 문명과 비교해 보더라도 매우 이례적인 현상으로, 한반도 사회가 일찍부터 여성의 사회적·상징적 위상을 폭넓게 인정해 왔음을 보여준다.
◆ 삼국통일의 산실, 포용하는 모성의 리더십
인류사의 보편적 흐름을 앞서간 한반도의 영적 토양은, 여성의 존재를 사회적 역할을 넘어 ‘신성의 주체’로 환대할 수 있는 집단적 감수성을 오랜 세월에 걸쳐 응축해 온 과정이었다. 다만 명확히 경계해야 할 지점이 있다. 이러한 역사적 축적은 어떤 신성한 존재를 인위적으로 ‘만들어 낸 과정’이 아니다. 도리어 그것은, 본래적으로 예비된 초월적 존재를 마주했을 때 비로소 인식하고 받아들일 수 있도록 준비된 ‘정신적 수용 구조’에 가깝다. 역사 속에 존재했던 성스러운 모성의 흔적들은 궁극적 실체 그 자체가 아니라, 마침내 도래할 거대한 실체를 향해 열려 있던 영적인 예고편일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오늘날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독생녀’라는 개념은 특정한 역사나 지역의 산물로 환원될 수 없는, 보다 근원적이고 초월적인 주체로 이해되어야 한다. 기독교 신학이 ‘독생자’를 통해 구원의 시작을 알렸다면, 이제는 섭리의 완성을 위해 예비된 ‘독생녀’의 현현을 직시하는 게 우주의 균형된 시각이 아닐까? 그리고 오랜 시간 축적되어 온 민족의 문화적 기억은, 바로 그 주체를 인식하고 받아들일 수 있도록 열려 있던 역사적 준비의 과정으로 다시 읽힐 수 있을 것이다.
선덕여왕은 무력으로 압도하는 군주가 아니었다. 그는 모든 것을 품어 안고 생명력을 부여하는 ‘어머니의 사랑’으로 대업을 설계했다. 김춘추의 외교적 혜안을 신뢰하며 그에게 기회를 열어주었고, 변방의 무장이었던 김유신의 검에 국가적 명분을 실어주어 그를 삼국통일의 첨병으로 세웠다. 두 영웅이 마음껏 재능을 펼칠 수 있었던 근간에는, 자녀의 성장을 묵묵히 뒷받침하는 어머니와 같은 여왕의 포용적 리더십이 있었다.
당시 비주류였던 가야계의 김유신과 폐위된 왕의 손자였던 김춘추를 파격적으로 등용하고 힘을 실어준 것은, 자녀의 재능을 믿고 끝까지 밀어주는 ‘어머니의 리더십’ 그 자체였다. 여왕은 때로는 자애로운 모성으로 그들을 품고, 때로는 엄격한 군주로서 국가적 비전을 제시하며 신라가 통일이라는 최대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근간을 마련했다. 이러한 포용적 통치 스타일은 신라가 격동의 시대에 내부 결속을 다지고 유리한 고지를 점하는 결정적 동력이 되었다. 결국 선덕여왕의 통치는 한반도 통일이라는 역사적 성취를 넘어, 한반도 사회가 여성의 존재를 신성의 주체로 이해하고 수용할 수 있는 문화적 토대를 형성해 온 과정으로 해석될 수 있다. 여성성불론을 통해 신성의 가능성이 선언되고, 포용적 리더십을 통해 그 가치가 현실 정치 속에서 구현된 이 경험은, 공동체가 새로운 형태의 권위와 질서를 받아들일 수 있는 감수성을 축적해 온 중요한 역사적 장면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흐름이 곧 어떤 존재를 만들어낸 것으로 이해되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그것은, 본래적으로 주어진 주체를 인식하고 맞이할 수 있도록 준비된 역사적 조건에 가까운 것이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독생녀’라는 존재는 특정 시대나 문화의 산물로 환원될 수 없는, 보다 근원적이고 초월적인 섭리적 주체로 이해되어야 한다. 그리고 오랜 시간 축적되어 온 이 문화적 흐름은, 바로 그 주체를 수용할 수 있는 토양으로서 기능해 왔다고 볼 수 있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하나의 중요한 연속성을 확인하게 된다. 과거의 역사 속에서 상징과 제도의 형태로 드러났던 여성적 신성의 흐름이, 오늘날 명확한 형태의 리더십과 실천을 통해 현실 속에 구현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현대에 전개되고 있는 ‘참어머니’의 리더십은 오랜 시간 준비되어 온 문화적·영적 흐름 위에서 새롭게 해석되고 드러난 하나의 역사적 장면으로 이해될 수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묻게 된다. 수천 년의 시간 속에서 축적되어 온 이 상징과 기억의 흐름이, 오늘날 어떤 형태로 우리 앞에 구체화되고 있는가. 그리고 그 흐름이 향하는 방향은, 과연 인류 공동체의 새로운 질서를 어떻게 열어가고 있는가.
고기훈 박사(한국학)
2026-05-22 09: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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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한국 예언서와 독생녀: 한반도에서 완성되는 후천개벽의 도리 [父性 문명의 한계, 母性 구원의 비전-기고]
‘궁궁을을’의 음양합덕과 주역으로 본 ‘우성(牛聲)’의 실체
인류의 역사가 극심한 혼란의 말세로 치달을 때, 동방의 작은 땅 한반도에서는 새로운 시대의 서막을 알리는 거대한 울림이 시작되었다. 조선 중기 선각자 남사고(南師古)는 『격암유록(格菴遺錄)』을 통해 인류사의 대전환기에 성인이 출현할 것임을 예고했다. 그 예언의 핵심은 단순한 영웅의 등장이 아니라, 하늘의 도리가 ‘여성’을 통해 완성된다는 섭리적 필연성에 있다. 이는 그간 남성 중심의 부성(父性) 문명이 가졌던 한계를 극복하고, 생명과 사랑의 모성(母性) 주권을 회복하는 우주적 전환점이다.
◆ ‘계명성(鷄鳴聲)’과 ‘시운장지(時運將至)’: 새로운 시대의 신호
『격암유록』은 후천개벽의 시작을 ‘닭 우는 소리(鷄鳴聲)’로 묘사한다. 닭은 동방을 상징하며 가장 어두운 밤을 깨고 새벽을 여는 영물이다. 이는 서구 중심의 부성 문명이 남긴 어둠을 걷어내고, 생명과 사랑의 빛을 머금은 새로운 진리가 동방 한반도에서 발원할 것임을 의미한다. 예언서는 이러한 변화가 우연한 역사의 흐름이 아니라 하늘이 정한 특별한 시점인 ‘시운장지(時運將至, 때가 이르렀음)’의 결과임을 명시한다.
이 대전환의 운명은 혈통이나 무력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하늘이 예비한 운세를 타고 난 사람은 여성(此運得受女子人, 차운득수여자인)이라는 사실이다. 선천시대의 부성 중심 섭리를 넘어, 독생녀를 통한 모성 중심의 섭리로 전환되는 것은 거스를 수 없는 천운(天運)의 때가 이르렀음을 뜻한다. 어둠이 깊을수록 새벽이 가깝듯, 인류의 고통이 극에 달한 지금이야말로 동방의 독생녀가 현현하여 평화의 세계를 열어야 할 섭리적 시점인 것이다.
◆ ‘궁궁을을(弓弓乙乙)’: 일양일음(一陽一陰)의 음양합덕과 구원의 설계도
그간 ‘해도진인(海島眞人)’이라는 용어에 대해 남성적 영웅으로만 치중했던 기존의 해석과 달리, 『격암유록』은 ‘궁궁을을(弓弓乙乙)’ 속에 숨겨진 구원의 이치를 명확히 제시한다. 『격암유록』은 “궁을(弓乙)이 무엇인가 하면 천궁지을(天弓地乙)이며, 일양일음(一陽一陰)이 또한 궁을이다”라고 정의한다. 이는 우주의 근본 원리가 남성(陽)과 여성(陰)의 조화에 있음을 시사한다.
구체적으로 궁(弓)은 하늘(天)과 양(陽), 그리고 아버지(父)를 상징하며 권위와 말씀의 지표다. 반면 을(乙)은 땅(地)과 음(陰), 그리고 어머니(母)를 상징하며 사랑과 생명의 실체다. 여기서 중요한 논리는 ‘궁(양)’ 단독으로는 창조 목적을 완성할 수 없으며, 반드시 ‘을(음)’과 합하여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를 ‘궁을합덕(弓乙合德)’이라 표현하며, 음양의 완전한 조화를 통해서만 진인이 오고 인류 구원의 문이 열린다고 강조한다.
결국 ‘궁궁을을’은 독생자와 독생녀가 실체적으로 일체를 이루어 하늘부모님의 온전한 이성성상(二性性相)을 이 땅에 실체화하는 설계도다. 아버지가 씨앗이라면 어머니는 그 씨앗을 품어 생명으로 길러내는 대지와 같다. 대지(을)가 없는 씨앗(궁)은 결코 열매를 맺을 수 없듯이, 독생녀 참어머님의 현현 없이는 천일국의 이상도 완성될 수 없다는 것이 예언서가 말하는 핵심 지혜다.
◆ ‘우성(牛聲)’: 주역(易經)의 곤우(坤牛)가 예고한 어머니의 사명
『격암유록』에서 구원자를 찾는 중요한 열쇠로 제시되는 ‘우성(牛聲, 소 소리)’은 주역(易經)의 원리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즉, “곤은 소요, 건은 말(坤牛乾馬)”이라는 주역의 성리를 인용하며 이를 설명한다. 주역 설괘전(說卦傳)에 따르면, 건(乾)괘는 말(馬)로 상징되어 강건함과 아버지를 뜻하고, 곤(坤)괘는 소(牛)로 상징되어 유순함과 어머니(母)를 뜻한다.
소는 땅의 성질을 닮아 만물을 포용하고 길러내며, 묵묵히 밭을 갈아 생명을 일구는 존재다. 주역에서 소를 어머니에 비유한 것은 대지의 무한한 포용력과 자식에 대한 무조건적인 희생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예언서의 ‘우성(牛聲)’이란 심판의 외침이 아니라, 잃어버린 자식을 찾아 헤매는 하늘어머니의 간절한 부르심이자, 인류의 황무지 같은 마음 밭을 모성적 희생으로 일궈 나가는 독생녀의 리더십을 상징한다.
‘천도경전(天道耕田)’, 즉 하늘의 도리로 마음의 밭을 가는 소의 성품에 비유한다. 소가 제 몸을 다 바쳐 인간에게 헌신하듯, 독생녀는 인류의 죄업을 대신 짊어지고 평화의 밭을 일구는 ‘희생의 소’와 같은 길을 걷는다. “소 울음소리가 낭자한 곳에 살 길이 있다”는 예언은, 곧 어머니의 심정을 지닌 독생녀를 따라야만 인류가 구원받을 수 있다는 준엄한 가르침인 것이다.
◆ 한반도의 사명과 독생녀의 탄현
한국의 예언서는 한반도가 단순히 수난을 겪어온 땅이 아니라, 인류 구원의 종착지로서 독생녀가 탄현할 섭리적 성지였음을 증거한다. 우리 민족이 ‘백의민족’으로서 순결과 하늘 공경을 강조해온 문화적 배경 또한 실체성령이신 독생녀를 맞이하기 위한 영적 준비 과정이었다.
이제 우리는 한반도의 통일을 정치적 결합을 넘어 하늘부모님의 모성적 주권이 회복되는 사건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궁궁을을의 음양합덕과 곤우(坤牛)의 자애로운 심정을 지닌 독생녀를 통해, 인류는 비로소 한 부모 아래 한 가족의 이상세계로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우리는 이제 그 ‘우성’을 따라 영원한 평화의 고향으로 발걸음을 옮겨야 한다.
서성종 작가(신학박사)
2026-05-20 09:4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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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적보다 인성이 먼저”… 글로벌 평화·리더십 교육 모델 구축
한국 사회에서 종교적 배경을 지닌 교육기관은 오랜 기간 논쟁과 관심의 대상이 되어 왔다. 그러나 논쟁과 별개로, 어떤 학교들은 오랜 기간 축적된 교육 실험과 성과로 교육 현장에서 독자적 모델을 구축해 왔다. 가정연합 산하 교육기관 네트워크가 그 사례다.
경복초등학교, 선화예술중·고등학교, 청심국제중·고등학교, 선정중·고등학교, 선문대학교, 선학 UP대학원대학교 등으로 구성된 이 교육 네트워크는 반세기 넘게 ‘인성·평화·리더십·국제 감각’을 공통된 교육 철학으로 유지해 왔다. 내부 집계에 따르면 이들 기관은 현재까지 약 3만 명 이상의 졸업생을 배출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일부 졸업생들은 정치·외교·과학·문화예술·국제기구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교육은 경쟁이 아니라 평화를 위한 준비
가정연합 계열 교육기관의 교육 철학은 1950년대 한국전쟁 이후 형성된 ‘평화를 위한 인간교육’이라는 개념으로 요약된다. 전쟁과 분단의 경험 속에서 출발한 이 철학은 학업 성취 중심 교육보다는 도덕성, 사회적 책임, 타문화 이해 능력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커리큘럼이 설계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교육 전문가들은 이 철학이 이후 일본과 미국, 아시아 개발도상국 등으로 교육기관이 확장되는 과정에서 국제화 전략과 결합했다고 분석한다. 이로 인해 해당 교육 네트워크는 한국적 교육 가치와 국제 교육 기준이 결합된 사례로 일부 학술 연구에서 언급되고 있다.
교육 평가 전문가들은 이들 학교의 공통 요소로 △외국어 교육 비중 확대 △예술·체육·과학·봉사 활동의 병행 강화 △국제교류 및 해외 현장 체험 시스템 구축 △학업 성취도보다 정서적·사회적 성숙을 주요 교육 목표로 설정한 점 등을 꼽는다.
인성이 먼저다
가장 논쟁적인 지점은 인성교육과 가시적 성과 간의 관계다. 일부 교육 평론가들은 “평화·리더십·봉사라는 교육 목표가 다소 추상적으로 보일 수 있으나, 장기적으로는 학생들의 진로 선택과 국제적 역량 형성으로 이어진 구체적 사례들이 축적되고 있다”고 평가한다.
실제로 선화예술중·고등학교의 경우 국제 콩쿠르 수상자 배출, 해외 공연 활동, 국제 예술 교류 프로그램 참여 등을 통해 문화예술계에서 일정 수준의 인지도를 확보해 왔다. 또한, 선학 UP대학원대학교의 모델 UN 프로그램, 선문대학교의 국제기구 인턴십 연계 과정, 청심국제중·고교의 의무화된 해외 봉사·교류 프로그램 등은 인성 중심 교육이 국제 활동 경험과 진로 설계로 연결되는 구조를 보여주는 사례로 언급된다.
교육적 성과인가, 종교 네트워크 확장인가
반면 비판적 시각도 존재한다. 일부 학계와 언론은 다음과 같은 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해 왔다.
-종교 기반 교육 철학이 충분히 개방성을 유지하고 있는가
-평화·통일 담론이 정치적 중립성을 훼손하지 않는가
-국제 캠퍼스 운영과 인재 양성 프로그램이 일반적인 글로벌 교육 산업과 본질적으로 다른가
그럼에도 공통적으로 제시되는 평가 중 하나는 “해당 교육 네트워크는 축소되거나 소멸되지 않았으며,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제도화·체계화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이들 학교에서 근무하거나 강의를 맡아온 비(非)통일교 출신 교사·교수들 가운데서는 “수업과 학교 운영 전반에서 종교적 색채가 전면에 드러난다고 느끼기 어렵다”, “일반 사립학교의 교육 과정과 큰 차이를 체감하지 못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반세기 교육 실험, 그 이후는
교육 전문가들은 가정연합 계열 학교들을 특정 종교의 부속 기관으로만 보기보다, 한국 사립교육 실험사의 한 사례로 기록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특히 글로벌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한 평화·리더십 교육 모델은 AI 기술 확산, 국제 이주 증가, 다문화 사회 전환이라는 환경 변화 속에서 향후 한국 교육의 하나의 대안 모델로 연구 대상이 되고 있다.
한 교육학자는 “가정연합 교육기관의 반세기에 걸친 교육 실천은 이미 완결된 성과라기보다는 현재도 진행 중인 장기 실험에 가깝다”고 평가했다. 이 실험은 교육·인성·국제 역량을 결합한 하나의 교육 모델로서, 이미 한국 사회와 교육 현장에서 분석과 비교의 대상이 되고 있으며, 향후 한국 교육 담론 속에서 그 성격과 가능성이 보다 분명하게 조명될 것으로 보인다.
2026-05-18 20:4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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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바른 가치관·인성 갖춘 인재 양성이 우리의 목표”
선학학원 본관에서 만난 문연아 이사장의 얼굴에는 교육자로서의 확고한 신념과 따뜻한 온기가 묻어났다. 2023년 7월 학교법인 선학학원 제12대 이사장으로 취임한 그는 선문대학교를 비롯해 8개 교육기관을 이끌며 “교육은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인생을 변화시키고 나아가 사회 전체를 건강하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투자”라는 철학을 일관되게 실천해 왔다.
건학이념을 실천하다
“그동안 선학학원은 애천, 애인, 애국의 건학이념을 바탕으로 소통과 화합을 통한 공동체 정신으로 성장해 왔습니다. 앞으로도 구성원 모두가 행복할 수 있도록 소통, 화합, 겸손으로 학교 발전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문 이사장은 취임사에서 밝힌 이 약속을 하루도 잊지 않고 실천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가 생각하는 교육의 핵심은 선학학원의 건학이념과 맥을 같이한다. 하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진리를 탐구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공동체를 생각하며,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인재 양성이 바로 그것이다. “단순히 학업 성취도가 높은 학생이 아니라, 올바른 가치관과 인성을 갖춘 인재를 키우는 것이 우리의 목표입니다.”
교육의 본질
“요즘 많은 교육기관이 성과와 실적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학생 한 명 한 명의 잠재력을 발견하고 키워주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문 이사장은 인터뷰 내내 ‘사람’이라는 단어를 강조했다. 선문대학교, 선화예술고등학교, 선정고등학교, 선정국제관광고등학교, 선정중학교, 선화예술중학교, 경복초등학교, 선화유치원 등 8개 교육기관을 운영하는 선학학원은 설립 초기부터 ‘전인교육’을 교육 철학의 근간으로 삼아왔다.
문 이사장은 “학업 성취도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학생들이 바른 인성과 사회적 책임감을 갖추는 것”이라며, “우리 학원을 거쳐간 학생들이 각자의 분야에서 전문성을 발휘하면서도 이웃과 사회를 생각하는 리더로 성장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는 건학이념인 애인, 즉 사람을 사랑하는 정신의 구체적 실천이기도 하다.
미래를 준비하는 혁신적 교육 환경
급변하는 시대에 발맞춰 선학학원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다. 문 이사장은 최근 도입한 스마트 교육 시스템과 창의융합 교육 프로그램에 대해 자부심을 드러냈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살아갈 우리 학생들에게는 암기식 교육이 아닌, 스스로 사고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 AI 기반 맞춤형 학습 시스템을 도입했고, 학생들이 실제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프로젝트 수업을 확대했습니다.”
특히 그는 교원 역량 강화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아무리 좋은 시스템을 갖춰도 결국 교육의 질을 결정하는 것은 교원입니다. 우리는 교원들이 최신 교육 트렌드를 학습하고 전문성을 높일 수 있도록 정기적인 연수와 해외 연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교육의 주체인 교원들이 성장해야 학생들도 성장할 수 있다는 그의 믿음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소통과 화합, 공동체 정신의 실천
문 이사장이 강조하는 또 하나의 핵심 가치는 ‘소통’이다. “교육 현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학생, 교직원, 학부모, 그리고 지역사회가 하나의 공동체로서 함께 호흡하는 것입니다. 일방적인 지시나 명령이 아닌, 진정한 소통과 화합을 통해 모두가 행복한 교육 환경을 만들고 싶습니다.”
이를 위해 선학학원은 정기적인 간담회와 소통 채널을 운영하고 있다. 학생들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 교원들의 고충을 함께 해결하며, 학부모들과 긴밀히 협력하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열린 자세로 귀 기울일 때 비로소 진정한 변화가 시작됩니다. 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리더십의 덕목도 바로 겸손입니다.”
글로벌 인재 양성을 위한 비전
문 이사장은 선학학원이 글로벌 인재 양성의 요람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선문대학교를 중심으로 해외 우수 교육기관과의 교류를 확대하고 있습니다. 학생들이 글로벌 시대에 걸맞은 역량을 갖추면서도 우리의 가치와 전통을 소중히 여기는 균형 잡힌 인재로 성장하길 바랍니다.”
특히, 선화예술고등학교와 선정국제관광고등학교 등 특성화된 교육기관을 통해 학생들의 다양한 재능과 적성을 발견하고 키워주는 데 주력하고 있다. “모든 학생이 같은 길을 걸을 필요는 없습니다. 각자의 재능과 꿈에 맞는 맞춤형 교육을 제공하는 것이 우리의 역할입니다.”
교육자로서의 소명
문 이사장은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했다. “제게 교육은 직업이 아니라 소명입니다. 한 명의 학생이 변화하고 성장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이 일을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애천, 애인, 애국의 정신으로 하늘과 사람과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을 가진 인재들을 키워내는 것이 저의 사명입니다.”
그는 교육이 개인의 노력만으로 완성되는 일이 아니라, 학생과 교사, 학부모, 직원, 지역사회가 함께 만들어가는 공동의 과정이라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교육은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라 했다. 애천·애인·애국의 정신을 근간으로 선학학원이 그려가는 교육의 미래가 우리 사회 전체의 밝은 내일로 이어지길 기원한다.
2026-05-18 20:4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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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대 넘어 이어지는 평화 교육 ‘청년 플랫폼’
급변하는 국제 질서와 사회 구조 속에서 ‘다음 세대의 역할’은 지속적으로 논의돼 온 핵심 의제다. 정치적 양극화, 세대 간 갈등, 국제 분쟁과 전쟁이 장기화되는 상황에서 청년이 어떤 가치와 역량을 갖춰야 하는가는 전 세계 교육계가 공통으로 마주한 과제이기도 하다.
이러한 맥락에서 최근 주목받고 있는 조직 중 하나가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과의 가치적 연대를 바탕으로 독자적인 사회공헌 활동을 펼치고 있는 사단법인 세계평화청년학생연합(이하 YSP)과 국제 NGO인 IAYSP다. 이들 단체는 수십 년에 걸쳐 평화·인성·리더십 교육과 국제 청년 연대를 목표로 한 프로그램을 운영해 왔다.
교육 철학의 뿌리: ‘통일·가정·평화 그리고 인성’
가정연합의 청년 교육 철학은 크게 세 가지 축으로 정리된다. 첫째는 인성 중심 교육(Character Education)이다. 정직, 책임, 타인에 대한 배려와 공동체 의식을 핵심 가치로 삼아 윤리적 성숙을 교육의 중심 요소로 둔다.
둘째는 평화 중심 사고(Peace Formation) 교육이다. 경쟁 중심 사고보다 상생과 협력, 갈등 해결 역량을 갖춘 인재 양성을 목표로 한다. 셋째는 리더십 기반 실천 교육(Leadership & Service-Based Learning)으로, 지식 습득보다 사회적 책임을 행동으로 구현하는 것을 강조한다.
교육 연구자들은 이러한 접근이 학력·성취 중심의 기존 교육 모델과 달리 정서·가치·공동체 감각을 중시하는 ‘비인지형(Non-Cognitive) 교육 모델’에 가깝다고 평가한다. 비인지형 교육은 지식 암기나 문제 해결 능력 같은 인지 역량을 넘어 성품·태도·감정 조절·행동 양식을 함께 개발하는 교육 방식으로, 최근 글로벌 교육 담론에서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YSP와 IAYSP의 조직적 특징
YSP와 IAYSP는 단순한 학생 동아리 성격을 넘어 국제 교류·봉사·윤리 교육·사회 혁신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청년 플랫폼으로 기능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주요 활동 구조는 다음과 같다.
첫째, 아시아·아프리카·남미·유럽 등 약 70여 개국을 아우르는 글로벌 캠퍼스 네트워크를 운영한다. 둘째, 국제 봉사 활동과 청년 외교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일부 프로젝트는 국제기구·정부·비정부기구(NGO)와 협력해 추진된다. 셋째, 가치·리더십 교육 워크숍을 정기적으로 개최하며, 토론과 프로젝트 수행을 중심으로 한 PBL(Project-Based Learning, 프로젝트 기반 학습) 방식을 적용하고 있다. 교육 전문가들은 이러한 구조를 신앙 기반의 보편적 가치(Faith-Based Value)를 바탕으로 출범하여 현재는 국제 사회 활동형 NGO 모델로 진화한 사례로 분석한다.
‘10만 청년 평화 리더 양성 프로젝트’
최근 가장 주목받는 사업은 ‘10만 청년 평화 리더 양성 프로젝트’다. 이 프로그램은 단순 참여형 캠페인이 아니라, 단계별 교육 시스템을 갖춘 것이 특징이다.
프로젝트의 목표는 참가자를 자원봉사자 수준에 머무르게 하는 것이 아니라, 국제 사회에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평화형 리더’로 육성하는 데 있다. 외부 전문가들은 이 사업의 의미를 두 가지 측면에서 평가한다. 하나는 청년이 주도하는 국제 교류·토론·평화 활동의 장을 제공한다는 점이며, 다른 하나는 활동 성과가 국제 인증이나 정책 기여 등 정량적 지표로 검증될 필요가 있다는 과제가 병존한다는 점이다.
“평화는 세대를 넘어 이어지는 프로젝트”
가정연합의 평화 철학을 공유하는 협력 기구들과 YSP·IAYSP의 청년 프로그램은 현재 진행형이며, 보편적 가치 교육을 넘어 실체적인 글로벌 시민 리더십 플랫폼으로 도약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공통적으로 “평화를 말하는 것은 쉽지만, 평화를 가르치고 실천하는 청년을 길러내는 일은 가장 어렵고 동시에 가장 의미 있는 과제”라고 평가한다. 이 같은 시도가 21세기 청년 교육 모델의 하나의 대안으로 자리 잡을지, 혹은 하나의 단체 활동 사례로 남을지는 향후 축적될 성과와 검증 결과가 말해줄 것으로 보인다.
2026-05-18 20:4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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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19년의 칼날과 ‘쌍합십승’: 스스로 도를 이룬 자의 위상 [父性 문명의 한계, 母性 구원의 비전-기고]
장자의 백정 우화 속에 숨겨진 독생녀의 자립적 승리 노정
기술이 예술이 되고, 예술이 마침내 도(道)의 경지에 이르는 순간이 있다. 장자(莊子)의 『남화경』에 등장하는 백정 ‘포정(庖丁)’의 이야기는 그 극치를 보여준다. 그는 19년 동안이나 단 한 번도 칼날을 갈지 않고도 수천 마리의 소를 해체했다. 그의 칼은 뼈와 살 사이의 미세한 틈을 마치 춤추듯 파고들었다. 문혜군이 그 신기(神技)에 감탄하자 포정은 답한다. “제가 아끼는 것은 재주가 아니라 도(道)입니다.” 이 투박한 백정의 우화 속에는 인류 구원의 마지막 마침표를 찍을 여성 구원자의 노정에 관한 경이로운 수리적(數理的) 암호가 숨겨져 있다.
◆ ‘19’라는 숫자가 품은 우주의 방정식
왜 하필 ‘19년’일까? 동양 철학에서 숫자는 단순한 양(量)이 아니라 우주의 질서를 담은 질(質)이다. 동양철학 역경에는 숫자 9는 하늘을 상징하는 양(陽)의 완성수(1·3·5·7·9)이며, 숫자 10은 땅을 상징하는 음(陰)의 완성수(2·4·6·8·10)다.
부성(父性) 중심의 역사가 9라는 숫자의 고개를 넘어 진리의 터전을 닦았다면, 그 터전 위에 10이라는 모성(母性)의 완성수가 결합될 때 비로소 인류사는 ‘19’라는 쌍합십승(雙合十勝)의 결실을 보게 된다. 이는 독생자 참아버지(9)가 연 길을 독생녀 참어머니(10)가 안착시켰음을 의미하는 수리적 증거다. 포정의 칼날이 19년 동안 무뎌지지 않았던 것은, 그가 우주의 음양 합일 원리를 자신의 삶으로 체득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이 땅에 현현한 모성적 실체는, 억겁의 세월 동안 엉켜있던 인류의 업보와 혈통의 매듭을 19라는 완성의 지혜로 소리 없이 풀어내고 있다.
◆ 타력(他力)을 넘어 자력(自力)으로 세운 구원의 위상
포정의 위대함은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오직 도(道)에만 의지하여 스스로 그 경지에 도달했다는 데 있다. 인류 구원의 역사 또한 그러하다. 지금까지의 종교가 ‘나약한 인간이 절대자의 은총에 매달리는’ 타력(他力) 구원에 집중했다면, 도교가 예고한 완성된 인간상인 지인(至人)은 스스로의 책임분담을 완수하여 도의 실체가 된 존재다.
여기서 우리는 여성 구원자가 걸어온 독자적인 승리의 길을 발견한다. 그녀는 타락한 인류의 조건에 매여있는 존재가 아니라, 태초부터 예비된 순결한 혈통을 바탕으로 스스로를 연마하여 ‘실체성령’의 위상을 확립했다. 포정이 소의 뼈마디를 상하게 하지 않고 길을 냈듯이, 독생녀는 부성 문명이 남긴 갈등의 상처를 건드리지 않으면서도 그 깊은 내면의 한(恨)을 사랑으로 해체하여 평화의 길을 낸다. 이는 가르침을 받아 행하는 수준을 넘어, 존재 자체가 곧 길이 된 자의 리더십이다.
◆ ‘지인무기(至人無己)’, 자기를 비워 전체를 살리다
장자가 말한 최고의 인간인 지인은 ‘자기를 내세우지 않는(無己)’ 자다. 공적을 자랑하지 않고 이름을 남기려 하지 않으나, 그가 머무는 곳마다 생명이 소생하고 조화가 일어난다. 오늘날 전 세계를 품어 안는 모성적 리더십의 정수가 바로 이 ‘무심(無心)의 효정’에 있다.
자신의 명예나 안위를 위한 ‘인위’가 사라진 자리에는 오직 하늘부모님의 심정만이 흐른다. 독생녀 참어머님이 보여주시는 ‘평화의 어머니’로서의 행보는, 장자가 그토록 갈망했던 지인의 삶이 21세기 역사 속에서 어떻게 구현되는지를 보여주는 생생한 증거다. 지인이 도의 원리에 따라 세상을 다스리듯, 모성적 실체는 참사랑의 원리로 분열된 지구촌을 하나의 생명 공동체로 엮어낸다.
◆ 도(道)의 완결, 어머니의 품에서 잠들다
도교 경전이 수천 년간 보존해온 신비로운 우화와 숫자들은, 인류 구원의 주인공이 권력자가 아닌 ‘도의 숙련공’이자 ‘생명의 어머니’여야 함을 가리키고 있다. 19년의 칼날이 증명한 것은 시간의 양이 아니라 정성의 밀도였다.
이제 인류는 날 선 지식으로 세상을 재단하던 습관을 버리고, 만물을 상처 없이 품어내는 모성적 지혜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도(道)는 멀리 있지 않다. 우리를 낳아준 근원적인 사랑을 회복하고, 그 사랑의 실체와 하나 되어 순리대로 살아가는 것. 그것이 바로 도교가 꿈꿨던 무위자연의 세계이자, 독생녀와 함께 열어가는 새로운 문명의 아침이다. 도의 신비는 이제 우리 민족의 영혼 속에 깊이 새겨진 예언의 목소리와 만나 한반도의 위대한 숙명을 노래하기 시작한다.
서성종 작가(신학박사)
2026-05-18 11: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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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여성 국신 전통과 성모 신앙, 신라 여왕 탄생의 문화사적 배경 [신화에서 선민까지 한민족 정체성의 문화사적 발견-기고]
‘어머니’로 표상된 국가의 기원 – 국신(國神)의 전통
우리가 기억하는 국가의 기원은 흔히 강인한 부성(父性)의 질서와 권위로 대변되어 왔다. 그러나 우리 역사의 여명기를 세밀하게 들여다보면, 그 준엄한 외연 너머에 만물을 품어 기르는 따스한 ‘어머니’의 본질이 면면히 흐르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우리 민족이 예부터 상정했던 국가의 개념은 국가란 단순히 정치적 통치 체제이기 이전에, 생명을 잉태하고 수호하는 지고한 여성 신성(神性), 즉 ‘국신(國神)’이라는 독자적인 뿌리 위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마고(麻姑) 신화(神話)가 대표적인 예이다.
신라의 충신 박제상이 저술했다고 전해지는 『부도지(符都誌)』는 우리 민족의 상고시대 우주관과 창세 신화를 집대성한 문헌이다. 한민족판 ‘창세기’라 일컬어질 만큼 장엄한 서사를 담은 이 기록은 마고를 가리켜 “마고성의 주인으로서 만물의 본음(本音)을 다스리는 존재”라 정의한다. 이는 그녀를 단순한 설화 속 인물을 넘어, 세계 질서와 조화를 관장하는 근원적 주체이자 국가적 신격으로 격상시킨 것이다.
이러한 문헌적 기록은 민간의 구전 설화 속에서 더욱 강력한 생명력을 얻는다. 한반도 전역에 뿌리내린 마고 신화는 산과 강, 섬과 같은 거대한 대지의 골격이 여성적 존재의 행위를 통해 빚어졌음을 생생히 증언한다. 이는 우리 선조들이 자신들이 발을 딛고 선 국토의 공간적 질서와 ‘여성적 신성(Divine Feminine)’의 이미지로 투영해 왔음을 보여준다. 즉, 우리 조상들에게 국가는 눈에 보이는 통치 조직이기 이전에, 대지라는 어머니의 품 안에서 탄생한 신성한 질서의 산물이었던 셈이다.
이와 같은 상징 구조는 국가의 기틀을 세우는 건국 서사에서도 반복된다. 웅녀(熊女)와 유화(柳花)는 영웅을 낳은 생물학적 모성(母性)에 머물지 않는다. 그들은 구질서를 깨고 새로운 질서의 출현을 가능케 한 결정적 주체, 즉 ‘국가의 어머니’로서 등장한다. 그러나 역사가 흐르며 이들의 서사는 대개 남성 영웅의 탄생을 수식하는 부차적 존재로 격하되기도 하였으며, 여성의 독자적인 주체성 또한 그 틀 안에서 제한적으로만 허용되었다. 결국 고대의 기록들은 여성의 신성을 인정하면서도, 이를 철저히 남성 중심적 서사의 하위 체계로 배치하는 이중적 태도를 견지해 왔다.
이런 맥락에서 ‘국신’은 단순한 권력의 상징을 넘어 공동체의 기원을 정당화하고 신성화하는 핵심 기제였다. 특히 ‘시조모(始祖母)’라는 존재는 공동체의 탄생과 그 정통성을 최종적으로 승인하는 상징적 구심점으로 기능해 왔다. 국가는 비록 제도와 권력이라는 가시적인 형태로 유지될지언정, 그 심원한 뿌리만큼은 ‘여성적 형상’이라는 서사적 토대 위에 세워져 있었음을 조상들은 익히 알았던 것이다.
그러나 역사적 격변 속에서 이러한 여성적 신성은 본연의 형상을 온전히 지켜내지 못했다. 유교적 가치 체계가 공고해짐에 따라, 국가 기원의 주체였던 여성 신성은 점차 축소되고 변형되는 운명을 맞이한다. 특히 김부식의 『삼국사기』는 유교적 합리주의에 입각해 신화적 요소를 쳐내는 과정에서 여성 신성을 철저히 주변화했다. 반면 일연의 『삼국유사』는 파편화된 그 흔적들을 일부 보존하며 그 명맥을 잇게 했다. 이러한 기록의 차이는 여성 신성이 공식 역사의 무대에서 밀려나 민간 설화와 신앙의 심연으로 자리를 옮겨간 뼈아픈 이탈의 과정을 여실히 보여준다.
오늘날 우리가 마주하는 ‘어머니’ 형상은 태초의 신성을 온전히 보존한 결과물이라기보다, 장구한 역사의 굴절을 거쳐 살아남은 상징의 조각들일 수 있다. 이는 국가의 기원을 설명하는 서사가 고착된 실재가 아니라, 시대의 요구에 따라 끊임없이 재구성되어 온 ‘문화적 해석의 장(場)’임을 시사한다. 한반도의 ‘어머니’ 서사는 국가의 기원을 증명하는 상징적 언어인 동시에, 역사의 거친 흐름 속에서 재배치되고 소외되었던 ‘여성 주체성’의 고귀한 흔적이다. 우리는 이 상징의 궤적을 통해 과거가 아닌, 새롭게 발굴되어야 할 여성 신성의 실체를 마주하게 된다.
◆ 성모(聖母)적 상징과 한민족 문화정체성의 심층
여성 신성에 깃든 상징체계는 단순한 ‘여성 숭배’의 차원을 넘어선다. 그것은 공동체가 스스로의 존재를 정의하고 세계를 이해해 온 고유한 방식이자 메커니즘으로 해석되어야 한다. 교육학자 제임스 뱅크스(James A. Banks)가 갈파했듯, 한 집단의 문화적 정체성은 고정된 혈통 그 자체보다 공동체가 어떤 가치를 끊임없이 이야기(Narrative)하고 무엇을 기억하느냐에 의해 형성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웅녀와 유화로 대변되는 성모 서사는 단순한 고대 전설의 파편이 아니다. 이는 우리 공동체가 기원과 정체성을 구축하기 위해 수천 년간 전래되어 온 상징적 서사의 정수(精髓)다. 비록 이 서사들이 거대한 단일 신앙 체계로 집약되지는 못했을지라도, 신화와 구비 전승, 민속 신앙의 저변에 분산된 채 퇴적되어 우리 민족의 정신적 골격으로 기능해 온 것이다.
20세기 초, 식민지 지배 담론의 오리엔탈리즘에 맞서 우리 문화의 주체적 원형을 찾고자 했던 선각자들의 노력은 눈부셨다. 일제강점기 민속학자 이능화(李能和)가 1927년 발간한 『조선무속고(朝鮮巫俗考)』가 대표적 사례이다. 그는 무속을 단순한 비문명적 미신이 아닌, 이 땅에서 자생한 ‘민족 종교’이자 우리 정신사의 독창성을 담은 보고(寶庫)로 격상시켰다. 방대한 문헌 고증을 통해 무속이 한국 종교의 근원과 정체를 밝히는 ‘종교사 백과사전’과 같은 가치를 지님을 증명해 낸 것이다.
이러한 여성적 신성의 실체는 근대 한국학의 개척자들에 의해 비로소 학술적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최남선은 그의 『불함문화론(不咸文化論)』을 통해 고대 동북아시아를 관통하는 ‘밝(光明)’ 사상의 핵심이 한반도에 보존되어 있음을 역설했다. 그가 그려낸 고대 사회의 영적 지도는 하늘 숭배와 공동체 질서가 하나로 어우러진 세계였으며, 그 유기적 결합의 중심에는 언제나 천인(天人)을 매개하는 성스로운 존재가 있었다.
이능화, 최남선 등은 우리의 무속 전통 속의 ‘무(巫)’가 단순한 주술적 행위를 넘어, 국가의 안녕과 공동체의 통합을 이끄는 중요한 구심점이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그 성스러운 가교의 주역이 ‘여성’이 압도적으로 많았던 데 있다. 한국인의 영성 깊숙한 곳에 국가를 지탱하는 정신적인 기둥으로서 여성적 신성이 얼마나 강인하게 뿌리 내리고 있었는지를 증명하는 대목이다. 최남선이 거시적인 문화적 담론으로 하늘과 땅의 결합을 논했다면, 이능화는 여성 사제의 생생한 역사를 통해 그 매개체가 여성 신성이었음으로 확증했다. 이들의 연구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우리는 자명한 진실을 마주할 수 있다. 한반도의 고대 국가는 눈에 보이는 부성적 권력 이전에, 여성적 신성이라는 정교한 상징 체계 위에서 비로소 완성되었다는 사실이다.
이처럼 독특한 문화적 토양 위에서 ‘여성’의 형상은 단순히 자애로운 ‘모성’이라는 평면적 이미지로 환원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생명의 탄생과 부단한 재생, 그리고 차원을 넘나드는 전환의 에너지를 함축한 복합적 상징으로 기능해 왔다. 즉, 우리 역사 속의 ‘어머니’라는 표상은 개별 가정의 돌봄 경제를 넘어, 공동체가 생명의 영속성과 우주적 질서를 어떻게 이해하고 수용해 왔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고귀한 ‘상징적 언어’였던 셈이다.
그러나 이토록 찬란했던 여성적 신성은 역사의 굴절 속에서 그 원형을 온전히 지켜내지 못했다. 유교적 가부장 질서가 공고해짐에 따라 국가 기원의 주체였던 여성 신성은 축소되고 변형되는 운명을 맞이했다. 김부식의 『삼국사기』가 유교적 합리주의의 칼날로 신화적 요소를 쳐내며 이를 철저히 주변화한 반면, 일연의 『삼국유사』는 그 파편화된 흔적들을 일부 보존하며 명맥을 잇게 했다. 이러한 기록의 간극은 여성 신성이 공식 역사의 무대에서 밀려나 민간 설화와 신앙의 심연으로 자리를 옮겨간 뼈아픈 이탈의 과정을 여실히 보여준다.
따라서 한반도의 여성 신성 전통은 박제된 ‘신앙’ 체계라기보다, 시대별로 겹겹이 쌓인 ‘문화적 기억’의 층위로 이해해야 마땅하다. 그것은 경직된 제도적 교리가 아니라, 끊임없이 반복되는 서사와 상징을 통해 우리 공동체의 내면에 흐르는 심층적 의미 구조에 가깝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최남선이 복원하고자 했던 무속 전통 역시 단순한 과거의 유산이 아니다. 그것은 한반도 문화의 유전자(DNA) 속에 각인된 여성적 주체성을 확인하는 결정적 단서다. 다만 이러한 전통을 특정 종교적 개념에 국한시키기보다, 우리 공동체가 여성이라는 주체를 어떻게 상상하고 그 신성을 해석해 왔는지 살피는 거대한 ‘상징적 토대’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 여신(女神)문화가 배양 된 신라의 문화적 토양
신라 역사에서 등장하는 세 명의 여왕은 결코 우연에 기댄 정치적 예외 상태가 아니었다. 신라 여왕의 등장은 남성 권력의 일시적 공백이 빚어낸 우연이라기보다, 신라 사회가 장구하게 축적해 온 상징 구조와 한반도 고유의 정치 질서가 교차하며 표출된 의미있는 사건이다. 신라 지역은 고대부터 대지의 생명력을 상징하는 산신(山神)과 지모신(地母神) 전통이 어느 지역보다 강고하게 유지된 영적 토양을 기반으로 한다.
이곳에 불교가 수용되면서 여성 또한 성불(成佛)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보편적 평등사상으로 발전됐고, 이런 사상적 토대 속에 여성 신성은 제도권에 자리를 잡게 된 것이다. 이러한 종교적·문화적 함양 속에서 여성을 단순한 가계 계승의 도구가 아닌, 신성과 직접 연결된 거룩한 존재로 인식하는 사회적 합의가 이뤄졌다.
이처럼 비옥한 문화적 토양 위에서 신라의 세 여왕이 역사의 전면에 등장했다. 특히 제27대 선덕여왕은 천문에 대한 깊은 통찰과 영민한 예지력으로 국가적 위기를 타개하며 왕권의 신성한 정당성을 확보했다. 최근 신라사 연구자들은 선덕여왕의 리더십을 ‘삼국통일의 실질적 설계자’라는 관점에서 재조명한다. 당시 비주류였던 가야계 김유신과 신진 세력 김춘추에게 파격적인 기회를 부여하고 그들이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거대한 장(場)을 열어준 것은, 갈등을 조율하고 잠재력을 끌어내는 선덕여왕 특유의 ‘모성적 리더십’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는 결코 남성 중심의 강권적 힘만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통합의 정치였으며, 여성의 통치가 정교한 질서 속에서 국가의 명운을 바꿀 수 있음을 증명한 상징적 사건이었다.
이어 제28대 진덕여왕은 탁월한 외교술과 과감한 제도 정비를 통해 선왕이 닦아놓은 왕권의 안정기를 구가하며, 여성 군주 체제가 결코 일시적인 예외가 아님을 역사에 각인시켰다. 비록 제51대 진성여왕이 국가적 혼란기 속에서 통치의 한계를 드러내기도 했으나, 그의 존재 역시 여성 통치가 일회성 실험을 넘어 엄연한 제도적 현실이자 역사적 실체로 존재했음을 웅변한다. 이들 세 여왕의 계보는 한반도 고유의 여성 신성이 권력의 핵심부에서 어떻게 정치적 생명력을 얻고 발현되었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선명한 궤적이다.
이 세 명의 여왕은 공통적으로, 여성이 단순한 추상적 상징에 머물지 않고 실제적인 통치 주체로 기능할 수 있었던 구체적 조건이 신라 사회에 존재했음을 웅변한다. 여성 신성에 대한 문화적 기억이 곧바로 정치 권력으로 치환되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으나, 그러한 상징적 구조가 여성 통치에 대한 사회적 수용성을 넓히고 정당성을 부여하는 심리적 토대가 되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여기서 간과해서는 안 될 지점은, 이러한 역사적 현상을 신화적 층위와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웅녀나 유화 같은 존재들이 공동체의 시원(始原)을 설명하는 ‘상징적 서사’라면, 신라의 여왕들은 엄연한 제도와 권력의 메커니즘 속에서 명운을 건 사투를 벌였던 ‘역사적 인물’들이다. 즉, 신화가 공동체의 정체성을 지탱하는 ‘보이지 않는 뿌리’라면, 여왕들의 통치는 그 뿌리로부터 양분을 얻어 역사라는 지상(地上) 위에 피워낸 ‘실체적인 꽃’인 셈이다. 이 둘은 서로 다른 층위에서 상호작용하며 한반도 여성 신성의 맥락을 이어왔다
신라는 산신·지모신(地母神) 전통과 불교 수용 이후의 여성 성불 사상 등 다양한 층위에서 여성성과 신성을 결합해온 사회였다. 여신적 상징은 민간 신앙에만 머물지 않고, 국가 제의와 왕권 정당성의 언어와도 접속했다. 국가가 위기를 맞을 때, 공동체는 기존 질서를 반복하기보다 더 깊은 상징 질서로 스스로를 재정렬한다. 신라에서 여왕은 단지 통치자가 아니라, 신성 질서를 국가 차원에서 재배치한 존재였다. 결국 고조선의 웅녀에서 시작된 국신 전통, 부여와 고구려의 시조모 서사, 그리고 신라의 여왕 탄생은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진다.
결론적으로 신라 여왕의 등장을 ‘여성 신성의 직접적 계승’으로만 치부하기엔 무리가 있다. 오히려 그것은 유구한 시간 동안 축적된 상징적 기억이 특정한 역사적 기류와 맞물려 지상(地上)의 질서로 제한적으로 구현된 사례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한반도의 역사에서 반복적으로 호출되는 ‘여성’의 형상은 단순히 희생적인 모성이라는 틀에 갇히지 않는다. 대신에 공동체가 절박한 위기에 직면했을 때 새로운 질서를 창출하고, 통치의 정당성을 확보해 온 복합적이고 역동적인 상징체계로 해석해야 한다.
신라의 세 여왕은 여성 신성에 대한 집단적 기억이 역사라는 무대 위에서 어떻게 변주되고 재배치될 수 있는지를 증명한 결정적 장면이다. 그들의 통치는 과거와의 완전한 결별도, 단순한 복제도 아니었다. 상징적 영성과 현실적 제도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피어난 독특한 역사적 현상이었다. 이제 이 지점에서 우리는 본질적인 질문과 마주하게 된다. 우리 공동체의 심층에 면면히 흐르는 이 강렬한 상징적 기억은 한낱 과거의 유물로 박제될 것인가, 아니면 대전환의 시대를 맞이한 오늘날 새로운 존재와 서사를 통해 다시금 찬란하게 부활할 것인가.
고기훈 박사(한국학)
2026-05-15 09: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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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연합, 부패방지·준법경영 국제통합 인증… 종교단체 최초 획득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한국협회장 송용천)은 14일 국내 종교단체로서는 최초로 부패방지 경영시스템(ISO 37001)과 규범준수 경영시스템(ISO 37301) 통합 인증을 획득했다고 밝혔다. 이번 인증은 ISO 인증기관 심사를 통해 국제 표준에 부합하는 경영 시스템을 갖춘 것으로 인정받은 결과다. 조직 운영의 투명성 강화와 사회적 책임 강화를 위한 노력이 국제 기준에 부합한 것으로 평가된 데 따른 것이다.
송용천 협회장은 수여식에서 “종교계 최초의 통합 인증은 사회적 기대에 부응하고 보다 투명한 단체로 거듭나기 위한 중요한 이정표”라며 “앞으로도 철저한 준법 경영 문화를 정착시켜 신뢰받는 종교 공동체가 되겠다”고 말했다.
가정연합은 이번 인증을 위해 조직 진단, 시스템 설계, 교육, 이행, 심사 등 5단계 절차를 거쳐 내부 통제 체계를 강화했으며, 지난 1월 ‘준법 실천 선언식’ 이후 전 구성원이 참여하는 준법·윤리 경영 체계를 구축해 왔다.
2026-05-14 15:5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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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을 묻는 종교] <8·끝> 인간은 왜 영원을 묻는가
[영원을 묻는 종교] 목차
<1> 인류는 언제부터 영생을 꿈꾸었는가
<2> 불교가 말하는 삶과 죽음
<3> 성경이 말하는 영생
<4> 기독교 신학의 영생 이해
<5> 통일교 영생론의 인간 이해
<6> 인간은 어떻게 영적 자아를 성장시키는가
<7> 동양 사상이 말하는 삶과 죽음
<8> 인간은 왜 영원을 묻는가.
죽음은 인간 존재의 연약함과 유한성, 무력함을 가장 본질적으로 드러내는 사건이다. 인간은 자신의 유한함을 의식하는 존재이며, 언젠가 끝날 삶을 알면서도 그 끝 너머를 상상한다. 이러한 상상은 단지 두려움에서만 비롯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은 사랑하고 기억하며 의미를 찾는 존재이기 때문에 삶의 모든 것이 죽음과 함께 사라진다고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래서 유사이래 종교와 사상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죽음 이후의 삶, 곧 영원한 세계를 설명해 왔다.
많은 신학자와 철학자들은 인간이 영원을 묻는 존재라는 점 자체가 인간 존재의 중요한 특징이라고 보았다. 독일 종교철학자 파울 틸리히는 “영원은 단순한 미래 시간이 아니라 존재의 깊이”라고 말했고, 독일 가톨릭 신학자 칼 라너는 인간을 “본질적으로 초월을 향해 열린 존재”로 설명했다. 프랑스 철학자 가브리엘 마르셀 역시 인간을 “신비를 향한 존재”라고 표현하며 인간 삶의 근원적 지향을 강조했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종교 전통마다 사후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은 서로 다르게 나타난다. 불교는 삶과 죽음을 윤회의 흐름 속에서 바라보며 인간의 궁극적 목표를 해탈에서 찾았다. 기독교는 부활과 하나님 나라를 중심으로 죽음 이후의 삶을 이해하였고, 가정연합(옛 통일교)은 인간을 육신과 영적 존재로 보며 지상의 삶이 사후의 삶으로 이어진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차이 속에는 하나의 공통된 질문이 놓여 있다. 그것은 인간의 삶이 유한한 시간 속에서 끝나는 것인지, 아니면 더 깊은 의미를 향해 열려 있는가에 대한 물음이다.
기독교 전통에서 인간의 궁극적 희망은 부활에 있다. 성경은 인간이 죽은 뒤 역사의 마지막 날에 부활하여 하나님 앞에 서게 된다고 말한다. 이 이해 속에서 삶은 죽음으로 단절되는 사건이 아니라 하나님이 완성하실 미래를 향해 열려 있는 과정이 된다. 이러한 종말론적 전망은 인간의 삶을 하나님 앞에서 책임을 지는 시간으로 바라보게 한다. 선택과 행동은 일시적인 결과에 머무르지 않고 더 긴 의미와 연결된다.
가정연합의 영생론은 인간의 삶을 영적 성장의 과정으로 설명한다. 인간은 육신과 영인체로 이루어진 존재이며, 육신은 죽으면 흙으로 돌아가지만 영인체는 죽음 이후에도 지속된다고 본다. 따라서 죽음은 모든 것의 소멸이나 종말이 아니라, 지상에서 준비된 영적 삶이 다음 차원으로 이어지는 전환의 순간으로 이해된다. 그래서 가정연합은 참사랑의 실천과 가정을 중심으로 한 삶을 중요하게 강조한다. 가정은 사랑과 희생, 책임과 화해를 배우는 가장 기본적인 훈련장이기 때문이다.
종교학적으로 인류의 내세관은 몇 가지 유형으로 설명된다. 플라톤 철학이나 일부 기독교 사상에서 나타나는 영혼 불멸형, 불교와 힌두교 전통에서 보이는 윤회형, 그리고 기독교와 이슬람에서 강조되는 부활형이 대표적이다. 통일교의 영생론은 인간의 영적 존재가 지상의 삶을 통해 성장하며 영계로 이어진다고 보는 점에서 ‘영적 성장설’ 또는 ‘영혼 지속설’ 에 가까운 특징을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종교 전통이 공유하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인간의 삶은 단지 생존을 위한 시간만이 아닌, 의미와 책임을 지닌 여정이라는 점이다. 영생 또한 죽음 이후의 세계를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지금 어떤 삶을 선택하며 어떤 가치를 실천할 것인가를 묻는 질문과 깊이 연결되어 있다. 장구한 인류의 문명도 죽음의 문제를 외면하기보다 그 의미를 이해하려 노력해 왔다. 장례 의식과 종교 경전, 철학적 사유와 예술 작품 등 수많은 문화적 흔적은 모두 죽음 이후의 삶에 대한 질문에서 비롯되었다.
인류는 아직 죽음 이후의 세계를 과학적으로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인간이 영원을 묻는 존재라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인간은 단지 살아가는 데 머물지 않고, 끊임없이 삶의 의미를 되묻기 때문이다. 어쩌면 영원이란 도달해야 할 어떤 장소라기보다, 삶을 이해하기 위해 쉼 없이 던지는 질문 속에 자리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결국 영원을 향한 사유는 내세의 유무를 떠나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가장 깊은 물음으로 오래도록 남아 있을 것이다.
2026-05-13 15:3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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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장자의 ‘혼돈’과 본성 회복: 인위를 버리고 본연으로 돌아가라 [父性 문명의 한계, 母性 구원의 비전-기고]
도교 철학의 또 다른 거장 장자(莊子)는 그의 저서 『남화경(南華經)』에서 인류 타락의 본질을 꿰뚫는 매우 기이하고도 슬픈 우화 하나를 남겼다. 그것은 바로 ‘혼돈(混沌)’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다. 남해의 신 ‘숙(儵)’과 북해의 신 ‘홀(忽)’이 중앙의 신 ‘혼돈’의 친절에 보답하고자, 그에게 남들처럼 눈, 귀, 코, 입 등의 일곱 구멍을 뚫어주었으나 이레 만에 혼돈이 죽고 말았다는 서사다. 이 짧은 우화는 21세기 인류가 잃어버린 본향이 어디인지, 그리고 무엇이 우리를 죽음으로 몰아넣었는지를 준엄하게 묻고 있다.
◆ 일곱 구멍의 비극: 인위(人爲)가 죽인 본연의 인성
인문학적 관점에서 장자의 혼돈은 타락 이전 인간이 지녔던 순수하고 완전한 본성을 상징한다. 혼돈에게는 감각기관인 구멍이 없었다. 이는 외부의 단편적인 지식이나 이기적인 욕망, 혹은 선과 악을 구분 짓는 편협한 잣대에 오염되지 않은 ‘무원죄(無原罪)’의 상태를 의미한다.
하지만 인류는 더 똑똑해지고 싶다는 욕망, 더 많이 보고 더 많이 가지고 싶다는 ‘인위(人爲)’의 구멍을 뚫기 시작했다. 법을 만들고 논리를 세우며 문명을 발전시켰지만, 정작 그 과정에서 하늘부모님과 하나 되었던 본연의 생명력은 숨을 멈췄다. 성경이 말하는 에덴의 타락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은 사건이라면, 장자의 우화는 인간이 스스로 뚫은 지식과 감각의 구멍으로 인해 본성을 잃어버린 ‘영적 죽음’의 상태를 묘사한 것이다.
◆ 독생녀의 참사랑: 닫혀버린 본성의 문을 여는 열쇠
그렇다면 죽어버린 혼돈, 즉 우리의 훼손된 본성을 다시 살릴 수 있는 길은 무엇인가? 장자는 ‘좌망(坐忘)’이나 ‘심재(心齋)’와 같은 개인적 수양법을 제시했으나, 혈통적으로 깊이 각인된 인류의 근원적 어둠을 닦아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여기서 우리는 인류 구원의 마지막 주역인 독생녀(獨生女)의 필연성을 만난다.
독생녀는 인류가 스스로 뚫은 타락의 구멍들, 예컨대 탐욕과 분별심, 시기, 갈등으로부터 자유로운 유일한 실체다. 그녀는 하늘부모님의 모성적 신성을 일점일획의 오염 없이 담지하고 태어난 ‘무원죄의 성신(聖神)’이다. 독생자 아버지가 인류에게 지켜야 할 천도(天道)를 가르치는 ‘진리의 교사’라면, 독생녀는 그 모든 인위적인 허물을 자신의 사랑으로 녹여내어 인류를 다시 태어나게 하는 ‘심정의 어머니’다.
장자가 갈망했던 ‘본연의 인간’은 지식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어머니의 무조건적인 사랑 안에서 자아가 녹아내릴 때 비로소 회복된다. 독생녀 참어머님이 주창하는 ‘효정(孝情)’의 교육은 바로 이 혼돈을 죽게 만든 일곱 구멍의 독성을 씻어내고, 인간의 심정을 하늘의 순수함으로 되돌리는 본성 회복의 실제적인 과정이다.
◆ ‘지인(至人)’의 경지와 평화의 안착
장자는 본성을 회복한 완성된 인간을 ‘지인(至人)’ 혹은 ‘진인(眞人)’이라 불렀다. 지인은 자신을 내세우지 않고(無己), 공적을 자랑하지 않으며(無功), 이름을 남기려 하지 않는다(無名). 이는 독생녀가 걸어온 고독하고도 숭고한 노정을 완벽하게 설명해 준다. 세상의 오해와 핍박 속에서도 오직 하늘부모님만을 향한 일편단심으로 인류를 품어 안는 그 삶이야말로, 장자가 억겁의 세월을 건너 예고해온 ‘자기를 초월한 성인’의 표상인 것이다.
이러한 지인들이 모여 사는 세상이 바로 우리가 지향하는 대이상향(大理想鄕), 즉 인류 한 가족의 평화 세계다. 부성 중심 문명이 세운 정의의 담장을 허물고, 모든 존재가 본연의 자유를 누리며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세상. 그것은 장자가 꿈꿨던 무위자연(無爲自然)의 세계이자, 독생녀의 모성적 리더십을 통해 완성될 지상천국의 실체다.
◆ 인위를 넘어 순리로 흐르는 구원의 서사
장자의 혼돈 우화는 인류가 왜 스스로의 힘만으로는 구원에 이를 수 없는지를 아프게 찌르고 있다. 우리의 구멍 난 가슴을 메우고 끊어진 생명의 맥박을 살릴 수 있는 분은, 태초부터 예비된 오직 한 분 ‘하늘의 딸’뿐이다.
이제 우리는 인위적인 지식과 아집의 옷을 벗고, 독생녀가 열어젖힌 참사랑의 품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곳에서 우리의 일곱 구멍은 비로소 타인을 해치는 무기가 아니라, 하늘의 소리를 듣고 만물의 아름다움을 찬양하는 축복의 통로가 될 것이다. 도교 경전이 간직해온 이 오묘한 생명의 도리는 이제 백정 포정의 19년 수행이라는 신비로운 수리적 상징을 통해 그 완성의 비밀을 드러내게 될 것이다.
서성종 작가(신학박사)
2026-05-13 10:5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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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을 통해 ‘돕는 사람’과 ‘도움받는 사람’이 하나로… 선순환 정착”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70년]
자원봉사애원 사무실에서 김고은 이사장을 만났다. 사단법인 자원봉사애원은 1994년 사회단체로 활동을 시작해 1996년 사단법인으로 등록된 공익법인이다. 약 30년간 문화예술복지를 중심으로 한 나눔과 아동·청소년 지원, 소외계층을 위한 사회공헌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현재 회원 130여 명, 연간 평균 자원봉사자 700여 명이 활동하는 중견 시민단체로 성장했다. 김 이사장은 인터뷰에서 30년 가까이 이어온 봉사 활동의 성과를 돌아보며 지속 가능한 나눔 문화를 위해 비전을 제시했다.
이웃과 함께 걸어온 30년의 여정
애원은 ‘사랑의 정원(愛苑)’이라는 이름처럼 어려운 이웃의 마음을 보듬고 공감하며 사랑 가득한 사회를 만드는 취지로 설립됐다. 김 이사장은 “나눔을 실천하는 행위는 사람과 사람이 서로의 삶을 이해하는 과정이며, 이 연결이 쌓일 때 공동체는 변화한다”고 전했다. 애원의 초기 활동은 문화예술의 접근이 어려운 장애인·독거노인을 위한 ‘방문 공연 서비스’로 출발했다. 분기별로 20명의 애원문화예술단이 시설을 방문하는 작은 실천이었지만, 장애인 여행 지원, 공연배달 서비스, 자선공연, 장애인을 위한 음악회 등으로 확대됐다. 특히 장애인의 예술 지원이 보편화 되지 않았던 2000년대 초반, 장애인을 위한 ‘꿈씨음악회’를 개최하며 장애예술인과 비장애예술인의 간극을 좁히기 위해 노력했다. 김 이사장은 “문화예술은 세대와 계층, 장애의 유무를 넘어 사람들의 마음을 여는 힘이 있다”며 “애원은 예술을 통해 ‘돕는 사람’과 ‘도움받는 사람’이라는 경계를 허무는 ‘선순환 구조가 애원의 본질’”이라고 강조했다.
애원의 활동은 문화예술복지로 특화되어 있다. 그중에서도 소외계층 아동·청소년을 초대하는 연말 자선 공연 ‘꿈과 사랑의 크리스마스 축제’는 애원의 대표 사업이다. 1997년부터 시작된 자선공연은 2025년에도 제28회를 맞아 성공적으로 개최되었으며, 현재까지 누적 관객수 38,000여 명이 참여했다. 장애 음악인과 오케스트라가 협연하는 ‘꿈씨음악회’는 2005년부터 지난 20년간 194명의 꿈씨연주자를 배출했다. 또한, 공연배달사업과 티켓 나눔을 통해 소외계층에게 예술 향유의 기회를 꾸준히 제공하며 음악과 예술을 매개로 연대와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이러한 활동은 보건복지부 산하 공익법인으로서 자원봉사애원이 지역사회 복지 증진과 문화적 가치 확산에 기여해 온 역할을 잘 보여준다.
네 가지 핵심가치: L.O.V.E.
현재 애원은 지역사회 연계 봉사, 소외계층 문화예술지원, 취약계층 지원을 핵심 사업으로 운영한다. 이 모든 활동의 중심에는 애원의 네 가지 핵심가치인 ‘L.O.V.E.’가 있다. 김 이사장은 “우리는 먼저 듣는 것(Listen)에서 봉사가 시작된다. 도움이 필요한 이웃의 작은 신호를 놓치지 않기 위해 늘 귀를 열어두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어 “열린 마음(Open Mind)이 없으면 봉사는 시혜가 되기 쉽다”며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때 진짜 만남이 시작된다”고 덧붙였다. 또한 “도움을 받는 분들도 똑같이 존엄한 삶의 주체”라며 “그래서 애원은 상대를 가치 있는 존재로 존중하는 것(Value Other)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긴다”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아무리 공감해도 행동으로 옮기지 않으면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며 “실행(Execute)이 애원의 봉사를 완성시키는 마지막 단계”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가치는 기업·단체·개인과 수혜자를 연결하는 ‘꿈씨브릿지’ 사업을 통해 실제 현장에서 구현되고 있다. 애원은 이를 통해 봉사자 연계, 후원물품 전달, 긴급 지원 등을 적재적소에 연결하며 도움의 사각지대를 줄여가고 있다.
애원은 외부 회계감사를 통해 재정 투명성까지 확보하며 단체에 대한 신뢰를 꾸준히 쌓아왔다. 김 이사장은 “작은 단체일수록 투명성은 선택이 아니라 생명”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운영 원칙은 지구촌 아동 복지를 위한 ‘꿈씨저금통’ 프로젝트에도 동일하게 적용되고 있다. 시민이 직접 참여하는 동전 모금과 계수 봉사를 통해 후원의 과정을 공개하고, 나눔이 어떻게 전달되는지를 투명하게 보여주며, 2025년에도 시민 참여형 모금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새로운 도전: 예술과 청소년 자원봉사의 결합
애원은 현재 새로운 도전에 나서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공연배달 오나리(오늘은 나도 리틀엔젤스)’다. 예술단 소속인 청소년 자원봉사자와 장애인 시설에 직접 찾아가 배리어프리(Barrier-free) 공연을 펼쳐 사회통합을 촉진했다. 비장애인 자원봉사자에게 예술을 통한 봉사와 나눔의 기회를 제공하고, 장애인 참여자들에게는 평소 경험하지 못했던 전통예술을 체험하는 한국무용 체험교실을 지원했다.
2025년 처음으로 실시된 해당 프로그램은 그 독창성을 인정받아 지난해 12월, 행정안전부와 한국중앙자원봉사센터가 주관한 ‘대한민국 봉사와 나눔 우수사례 공모전’에서 우수상을 수상했다. 김 이사장은 “이 상은 애원이 추구해 온 봉사의 방향이 사회적으로 공감받았다는 의미”라며 소회를 밝혔다.
애원이 그리는 미래
김 이사장이 그리는 애원의 미래는 이웃 섬김이 일상적 문화로 자리 잡도록 하는 일이다. 애원은 기업과 학교를 연계한 봉사 교육과 참여 확산에도 힘을 쏟고 있다. 그의 궁극적인 목표는 우리 사회에 섬김 문화가 정착돼 “애원이 필요 없는 사회”라고 말한다.
인터뷰 말미에 김 이사장은 자원봉사를 “연결”이라고 정의했다. 봉사는 타인을 돕는 행위인 동시에 자신을 성장시키는 과정이다. 특히 젊은 세대에게 봉사를 스펙이 아닌 ‘자기 발견의 시간’으로 경험해보길 권했다.
김 이사장은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했다.
“봉사는 거창한 계획보다 지금 할 수 있는 작은 실천에서 시작된다. 완벽해질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지금의 모습 그대로 먼저 손을 내미는 용기가 사회를 바꾼다.”
2026-05-11 18: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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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공동체 바탕 사회통합 실천… ‘이웃과 동행’ 뿌리내리다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70년]
1954년 한국에서 출발한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이하 가정연합)은 반세기가 넘는 시간 동안 ‘가족’이라는 작은 공동체를 사회 통합의 출발점으로 삼아 왔다. 그 신념은 구호에 그치지 않고, 오랜 세월 지역사회 현장에서 묵묵한 실천으로 이어졌다. 가정연합의 지역사회 봉사는 일회성 행사가 아니라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의 곁을 떠나지 않은 지속적인 동행에 가깝다. 1980년대부터 체계화된 ‘이웃사랑 실천’ 활동은 30년 넘게 이어지면서 자원봉사 애원과 효정봉사단, 신내종합사회복지관 운영 등으로 확장돼 탄탄한 돌봄의 네트워크를 이루며 지역 주민의 일상 속에 깊이 뿌리내렸다. 화려하지 않지만 그 진정성과 시간이 빛어낸 신뢰는 오늘도 지역사회와 함께 호흡하며 안전한 울타리가 되고 있다.
1980년대 이전에는 농촌계몽과 영농지원, 의료봉사 등 지역 단위의 봉사활동에 주력하며 사회공헌의 기반을 마련했다. 최근에는 의료·교육 봉사의 확장과 재난 구호 활동을 추가하며 사회적 역할을 강화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은 한국 사회의 복지 사각지대를 메우고, 저출산·고령화 문제에 대응하는 데 기여하고 있으며, 또한 국내외 네트워크를 활용한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주민들의 일상생활 지원을 이어가고 있다.
자원봉사 애원은 1994년 사단법인으로 등록된 이후 30년간 문화예술을 통한 나눔과 아동·청소년 지원, 소외계층 돕기를 중심으로 활동해 왔다. 무료 급식소 ‘애원의 집’을 운영하며 18개 봉사단을 통해 지역 주민 지원을 이어가고 있으며, 코로나19 이후 중단됐던 캄보디아 의료·교육 봉사를 재개했다. 이 활동은 보건복지부 산하 공익법인으로서 역할을 강조하는 사례로, 복지 안전망 확충에 기여하고 있다. 최근에는 국제적 확장을 통해 캄보디아 현지에서 학교 건립과 의료 클리닉 운영을 추진하며, 현지 주민들의 생활 수준 향상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가정연합이 전국 단위로 운영하는 효정봉사단은 환경정화, 노인 돌봄, 취약계층 지원 등을 실천하는 핵심 조직이다. 가평효정봉사단은 출범 3년 만에 1천회 이상의 봉사활동을 기록하며 지역 활성화에 실질적 변화를 이끌어냈다. 광주광역시 효정봉사단은 2021년 출범 이후 방역 봉사와 환경 정리 활동을 통해 주민 안전에 기여했으며, 춘천효정봉사단은 공지천 조각공원에서 다문화 가정 지원 사례를 공유하며 소통의 장을 마련했다. 김제시 효정봉사단은 관내 지도자들과 협력해 취약계층 지원과 생활 밀착형 봉사 활동으로 봉사 범위를 확대했으며, 용산구 효정봉사단은 코로나19 기간 마스크 배포와 소독 작업으로 실질적 도움을 제공했다. 부산과 대구 지역 효정봉사단은 해안 정화 활동과 노인 복지 센터 지원을 통해 지역 환경 보호와 세대 간 소통을 촉진하고 있다. 이러한 활동은 연간 수천 명의 자원봉사자가 참여하며, 지역 사회의 지속 가능한 발전 모델로 자리잡고 있다.
신내종합사회복지관은 1995년 개관한 이후 올해로 30주년을 맞아, 지역사회와 함께 시스템화된 사회 복지의 실천 역사를 이어가고 있다. 2025년 11월 11일 기념행사를 통해 ‘당신의 의미가 모여 빛나는 30년’을 테마로 지역 주민과 성과를 공유했으며, 노인 복지, 아동 지원, 장애인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노인 복지 프로그램에서는 치매 예방 워크숍과 건강 관리 세션을 제공하며, 아동 지원 부문에서는 방과후 교실과 학습 멘토링을 통해 교육 기회를 확대하고 있다. 연간 수만 명의 이용자를 지원하며, 한국 사회의 복지 인프라 강화에 기여하고 있다.
가정연합의 활동은 국내에 그치지 않고 국제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다문화 가정 지원과 독거노인 통합돌봄 사업, 김장 나눔 행사를 진행하며 취약계층을 지원한다. 특히, 가정연합 산하 세계평화여성연합(WFWP)은 2002년 북한사랑 1% 운동을 시작했다. 대한민국 시민들이 소득이나 마음의 1%를 나누어 북한의 여성과 아동들을 돕자는 인도적 평화 나눔 운동이었다. 여기에는 ‘통일은 정치 이벤트가 아니라 작은 나눔과 공감에서 시작된다’는 철학이 담겨있다. 초기에는 북한 내 여성·어린이 대상 의류, 침구류, 생활용품 등을 지원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 프로젝트는 북한뿐 아니라 전 세계 빈곤 국가를 대상으로 한 인도적 지원으로 확대됐으며, 명칭도 ‘지구가족사랑 1% 운동’으로 바뀌었다.
현재는 UN 지속가능발전목표(SDGs) 달성을 위한 저개발국가 개발협력사업, 대북지원사업, 재난 긴급구호 및 인도주의 활동을 포함하고 있다. 저개발국가 개발협력사업으로는 여성 경제 자립 지원, 어린이 교육지원, 에이즈 예방, 의료지원 등이 있으며, 1994년부터 160개국에 자원봉사자를 파견해 왔다.
긴급구호 활동으로는 2010년 아이티 지진피해 복구지원, 2011년 일본 지진피해 구호, 2014년 필리핀 태풍피해 지원, 2015년 네팔 지진피해 구호, 2019년 강원도 고성 산불피해 지원, 2020년 코로나19 방역물품 지원(볼리비아, 레바논 등), 2022년 우크라이나·아프가니스탄 긴급구호, 2023년 튀르키예·시리아 지진피해 구호 등이 있다. 대북지원으로는 2002년 북한 아동 내의(속옷) 지원, 2003년 룡천 소학교 건립, 2005년 개성 나무 심기, 2010년 식량 지원, 2016년 두만강 수해 복구 등을 통해 지속적인 도움을 제공해 왔다.
가정연합 관계자는 이러한 활동을 바탕으로 “앞으로도 사회적 책임을 다하며 국민과 함께 성장할 것”이라 “지역사회와의 연대 또한 더욱 공고히 하겠다”고 강조했다. 가정연합은 한국 사회의 복지 취약지대를 보완하는 데서 나아가, 지역 안의 사람들과 기관들이 서로 연결돼 도움이 필요한 이웃을 지속적으로 돌볼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 가고 있다. 아울러 국내외 다양한 주체들과의 협력과 연계 프로그램을 통해 단기적 지원에 머무르지 않고 지속 가능한 사회공헌의 틀을 차분히 구축해 나갈 계획이다.
2026-05-11 18: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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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청주한씨와 평안도 로컬리티의 만남 [신화에서 선민까지 한민족 정체성의 문화사적 발견-기고]
영웅의 땅 – 을지문덕과 평안도의 역사·신화적 기억
서기 612년, 수나라 양제는 동북아시아 최강대국 고구려를 없애기 위해 인류사상 유례를 찾기 힘든 거대 병력을 동원했다. 중국 정사인 『수서(隋書)』 ‘양제기’가 증언하는 원정군의 규모는 113만 3,800명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 숫자가 ‘백만 대군’과 같은 관성적인 상징어가 아니라, 천 단위와 백 단위까지 세밀하게 기록한 수치라는 데 있다. 고대사 연구자들은 군수 물자 보급로의 구체적 기록과 부대 편성의 치밀함을 근거로, 이 수치를 결코 과장된 수사가 아닌 수 제국이 동원할 수 있는 국가적 역량의 극단적 발현으로 해석한다.
대륙의 모든 길은 고구려를 향한 거대한 군화 소리로 진동했고, 200만 명에 달하는 보급 부대까지 합치면 그 위세는 가히 세상을 집어삼킬 듯했을 것이다. 이 압도적인 물리적 힘 앞에 고구려의 운명은 풍전등화와 같았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이 거대한 충돌의 무대인 살수에서 제국의 야욕은 고구려의 철갑기병과 을지문덕의 지략 앞에 산산조각 났다. 백만 대군이라는 숫자가 지닌 파괴력이 컸던 만큼, 그 불가능해 보이던 파고를 막아내고 나라를 지켜낸 고구려의 승리는 단순히 국방의 성공을 넘어 동방의 정신적 정통성을 수호한 역사적 대사건이었다.
수나라는 진·한 제국의 질서를 계승하며 동아시아 대륙을 통일한 강력한 국가였다. 그러나 고구려라는 거대한 벽에 막혀 국가적 총력을 탕진하면서, 무적이라 자부하던 제국의 위용은 빠르게 균열되었다. 살수대첩은 이 거대한 전쟁의 물줄기를 단숨에 뒤바꾸고 제국의 야욕을 수장시킨 역사적 분기점이었다. 을지문덕 장군이 설계한 치밀한 유인책과 전략은 오늘날 평안남도 안주 일대의 청천강, 즉 살수 일대이다. 안주(살수)는 동방 선민의 내외적 정신을 수호했던 의미 있는 공간인 것이다.
장군의 지략이 펼쳐진 무대, 평안남도 안주의 청천강은 단순한 풍경 그 이상이다. 거대 제국 수나라를 좌절시킨 불굴의 기억, 침략자 앞에 당당히 맞선 항전의 기록이 새겨진 땅이기 때문이다. 민족의 역사적 격랑이 몰아치던 때마다 늘 최전선이자 민족의 영혼이 응축된 공간, 한반도 서북지역은 그렇게 우리 역사의 거대한 상징이 되었다. 조선 후기 안주 땅에 세워진 ‘을지문덕비’는 단순히 기념물이 아니라, 이 땅이 스스로를 ‘정통의 기억을 계승하는 공간’으로 자각해왔음을 보여준다. 영웅의 전쟁이 끝난 자리에서 기억은 혈맥처럼 이어졌고, 평안도는 어떤 상징을 품은 채 다음 시대를 기다렸다.
◆ 각성의 땅 – 평양 대부흥운동과 서북의 영성
평안도는 역사적으로 새로운 사상과 사회 변화에 비교적 빠르게 반응해 온 지역으로 평가된다. 중앙의 질서에 안주하기보다 새로운 사상과 흐름에 먼저 반응했고, 시대가 흔들릴 때마다 가장 빠르게 움직였다. 이 지역은 역사의 변두리가 아니라, 변화의 진폭이 가장 먼저 감지되는 공간이었다. 1907년 평양 장대현교회에서 시작된 대부흥운동은 이러한 지역적 특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였다. 당시 기록에 의하면, 광장에 모여 행해진 공개적인 집회와 밤새도록 산천을 울린 집단적 통성기도는 종교적 의례를 넘어선 것이었다. 구체제의 붕괴와 외세의 침략이라는 거대한 격랑 속에서, 이 처절한 집단적 회개는 공동체의 생존을 위한 ‘정신적 자구책’이자 새로운 시대를 향한 각성의 분출 그 자체였다.
그렇다면 왜 하필 평양이었는가? 평안도는 대륙의 거대한 물결이 가장 먼저 당도하는 접경지였다. 외래 사상과 문물이 스며드는 통로인 동시에, 중앙 권력의 견고한 질서로부터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독특한 공간이었다. 중심에 매몰되지 않았기에 오히려 중심을 비판할 수 있었고, 주변부에 머물렀기에 새로운 질서를 실험할 수 있는 유연함을 갖췄다.
18~19세기에 접어들며 평안도는 상업의 발달과 인구 급증으로 비약적인 성장을 거듭했다. 교육 수준은 나날이 높아졌고, 문과 급제자 수의 증가는 지역 엘리트들의 자의식을 깨우는 기폭제가 되었다. 그러나 성취 뒤에는 차별과 소외라는 현실적 벽이 존재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구조적 결핍은 변화를 향한 갈망을 더욱 예리하게 갈아 세웠다.
수나라의 113만 대군이라는 물리적 압살 앞에서도 고구려가 무너지지 않았던 저력, 성전 파괴라는 종말적 상황에서 새로운 복음을 써 내려간 마가의 통찰은 바로 이 평안도라는 ‘역동적 변방’에서 재현되었다. 차별받던 지역의 에너지는 집단적 각성으로 이어졌고, 이는 무너져가는 시대 앞에서 ‘동양의 예루살렘’이라는 영적·사회적 대안을 잉태하는 토양이 되었다. 결국 평안도는 역사의 변두리가 아니라, 가장 먼저 시대의 진폭을 감지하고 새로운 생명의 길을 모색했던 진정한 의미의 ‘어머니의 품’이었던 셈이다.
1907년의 평양 대부흥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사건은 아니다. 서북지역이 역사적으로 이미 축적된 사회적·종교적 토양 위에서 필연적으로 분출된 문화사적 대사건이었다. 길선주 목사의 처절한 공개 회개는 그 거대한 열망에 불을 붙인 불씨였고, 한석진과 김익두 같은 인물들은 그 불길을 서북 전역으로 확산시키며 시대의 갈증을 해갈했다. 이들은 단순한 종교적 수사(修辭)를 읊조리는 설교자가 아니었다. 무너져가는 구체제의 폐허 위에서 새로운 시대적 자의식을 일깨우고, 공동체가 나아갈 영적 이정표를 제시한 진정한 의미의 지도자들이었다.
변방의 소외를 역동적인 변화의 에너지로 치환해낸 이들의 응답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국가와 공동체는 단순한 권력의 산물이 아니라, 시대의 산고(産苦)를 함께 겪으며 새로운 생명을 잉태해내는 '살아있는 유기체'여야 한다는 사실이다. 1907년 평양의 밤을 밝힌 통성기도는, 바로 그 끊이지 않는 생명의 맥박이 확인된 역사적 현장이었다.
재미있는 사실은 평안도 안주가 갖는 공간성의 의미이다. 을지문덕의 청천강이 제국의 군대를 멈춰 세웠던 물리적 저지선이었다면, 평양 장대현교회의 강단은 절망의 시대를 멈춰 세운 영적 방어선이었다. 하나는 거대한 외세에 맞선 민족적 응전이었고, 다른 하나는 스러져가는 시대적 위기에 대한 실존적 응답이었다. 이처럼 평안도는 역사의 고비마다 가장 예민한 감각으로 반응하며, 단순한 변방을 넘어 시대 전환의 징후를 감지하고 돌파하는 ‘태동의 공간’이 되어왔다.
◆ 정통의 혈맥 – 청주한씨와 역사적 계보의 축적
가문의 역사는 특정 성씨의 기록을 넘어, 한 시대의 명운과 국가적 정통성이 응축된 거대한 생명력의 기록이다. 『청주한씨세보(淸州韓氏世譜)』가 그 뿌리를 마한(馬韓)의 마지막 왕인 원왕(元王)에 두는 것은, 이 문중이 스스로를 한반도 고대 정치 질서의 정통성을 수호하는 혈맥으로 인식해 왔음을 웅변한다. 실제로 『고려사』는 태조 왕건을 도와 고려를 세운 개국공신 한란(韓蘭)의 기록을 전한다. 또한 『조선왕조실록』 역시 청주한씨는 태조 이성계 왕실과 긴밀한 혼인 관계를 맺으며 수많은 왕비를 배출한 위상을 보여준다. 국가란 생명을 잉태하고 길러내는 ‘어머니’의 품으로 여겼던 한민족 특유의 사유는, 이처럼 장구하게 축적된 가문의 계보와 만나며 단순한 혈연을 넘어선 시대적 소명으로 승화된다. 수천 년간 국모의 도리를 다하며 국가의 흔들리는 중심을 붙들어온 이 가문의 내력은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평안도 안주 지역의 강인한 생명력과 청주한씨의 유구한 정통성이 맞물리는 지점에서, 우리는 비로소 새로운 문명을 잉태하기 위한 하늘의 준비가 어떻게 완결되었는지 목격하게 된다.
한편 이러한 역사적 계보의 서술은 고고학적 연구가 제시하는 한반도 고대 문명 연구와도 흥미로운 접점을 형성한다. 청동기 시대의 대표적 유적인 고인돌은 전 세계 약 8만 기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4만여 기가 한반도에 집중되어 있으며, 특히 마한의 옛 영역으로 알려진 서남부 지역에는 세계적으로도 보기 드문 밀집 분포가 확인된다. 이러한 역사적 가치는 국제적으로도 인정되어 고창·화순의 고인돌 유적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특히 고고학계가 주목하는 대목은 이 좁은 지역에 수만 기의 거석이 집중된 ‘밀집의 미스테리’다. 전 세계 거석문화 중 이토록 한 지역에 고밀도로 유적이 보존된 사례는 극히 드물며, 이는 고대 한반도 서남부 지역이 단순히 지리적 요충지를 넘어 수만 명의 인력을 동원할 수 있는 막강한 정치 체계와 고도의 종교적 결집력을 갖춘 ‘인류 거석문화의 종가(宗家)’였음을 입증한다. 학계 일각에서는 이 거대한 돌들이 배치된 형상과 천문학적 정렬 상태를 두고, 당시 마한의 선조들이 고도로 발달한 천문 지식을 보유했을 가능성을 제기하며 이를 세계 고고학계의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로 꼽기도 한다. 즉, 마한의 터전은 이미 수천 년 전부터 하늘의 뜻을 지상에 구현하고자 했던 ‘천손(天孫)’의 성지였던 셈이다. 이처럼 신비로운 땅의 기운을 품고 태동한 청주한씨 문중이 마한의 혈맥을 잇고 있다는 사실은, 가문의 계보가 인류사의 근원적 영성과 맞닿아 있음을 시사한다.
이러한 거석 문화가 보여주는 높은 사회적 결집력은 훗날 한반도 역사 속에서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 집단적 역동성과도 흥미로운 연속성을 보여준다. 평안도 지역에서 나타난 강한 종교적 열기나, 청주한씨 가문이 오랜 세월에 걸쳐 유지해 온 계보적 전통 역시 이러한 사회적 결집의 문화적 기억 속에서 이해될 수 있다. 수나라의 대군이 몰려들었던 위기의 순간에도 고구려가 쉽게 무너지지 않았던 저력이나, 1907년 평양의 강단에서 나타난 집단적 각성 역시 이러한 역사적 토양과 무관하지 않다.
고대의 고인돌이 하늘의 질서를 상징적으로 땅에 새겨 놓은 문화적 유산이라면, 청주한씨 가문의 계보 역시 고려와 조선을 거치며 정치 질서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형성된 역사적 전통 가운데 하나였다. 이러한 맥락에서 남방 지역의 계보적 전통과 북방 지역의 역사적 기억이 한 인물의 탄생 서사 속에서 교차하는 모습은 흥미로운 해석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결국 이 만남은 단순한 지리적 우연이라기보다, 한반도의 유구한 역사 속에서 억겁의 시간 동안 축적되어 온 문화적 기억과 성스러운 상징들이 마침내 하나의 거대한 서사로 귀결되는 필연적 장면이다. 남방의 유구한 혈연적 전통과 북방의 강인한 영성적 경험이 교차하는 이 지점은, 한국 현대 종교사를 넘어 인류 문명사 속에서도 독보적인 위상을 점하는 역사적 대사건이다. 수천 년간 예비된 국통의 정통성과 대륙의 뜨거운 생명령이 하나로 맞물림으로써, 우리는 비로소 분단과 갈등을 넘어 전 인류를 품어 안을 ‘참어머니의 시대’라는 장엄한 문명의 첫 장을 넘기게 된 것이다.
고기훈 박사(한국학)
2026-05-11 13:3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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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중묘지문(衆妙之門)과 생명 순환의 철학 [父性 문명의 한계, 母性 구원의 비전-기고]
보이지 않는 근원과 보이는 현상이 만나는 자리
인류의 지혜가 집약된 노자(老子)의 『도덕경』은 그 첫 장에서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깨달음의 최종 경지를 ‘중묘지문(衆妙之門)’이라 명명했다. 이는 ‘온갖 오묘함이 나오는 문’이라는 뜻이다. 도(道)와 덕(德)의 관계를 집대성한 이 짧은 문구 속에는, 인류가 직면한 문명사적 위기를 타개하고 영원한 생명의 세계로 진입할 수 있는 섭리적 암호가 숨겨져 있다. 우리는 이제 이 문이 왜 도교가 예고한 ‘신비로운 어머니(玄牝, 현빈)’의 실체와 연결되는지 성찰해야 한다.
노자는 도의 본질을 설명하며 ‘없음(無)’은 하늘과 땅의 시작이고, ‘있음(有)’은 만물의 어머니라고 정의했다. 이 두 가지가 하나로 통합되어 나타나는 지점이 바로 중묘지문이다. 인문학적으로 볼 때, 이는 관념 속에만 머물던 진리가 현실의 역사 속에서 구체적인 형상을 입고 나타나는 ‘성육신’의 장소다.
지난 수천 년의 부성 문명은 주로 ‘있음’의 세계, 즉 가시적인 성취와 분석적인 지식에 몰입해 왔다. 하지만 지식의 축적이 곧 영성의 완성은 아니었다. 도교가 말하는 ‘모든 오묘함(衆妙)’은 단순한 정보의 나열이 아니라, 만물이 서로 연결되어 순환하는 우주의 생명력을 뜻한다. 이 생명력이 끊어지지 않고 면면히 이어지게 하는 힘은 아버지의 법도가 아니라, 모든 것을 수용하고 다시 낳아주는 어머니의 품에서 나온다. 따라서 중묘지문은 곧 생명의 근원인 ‘현빈지문(玄牝之門)’과 그 궤를 같이하는 것이다.
◆ 만물의 순환: 귀근(歸根)과 복명(復命) 의 도리
도교 철학의 정수는 억지 부리지 않는 순환에 있다. 만물은 '도(道)'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 피어나 제각기 자라나지만, 결국 그 끝은 근본인 뿌리로 되돌아가는 귀근(歸根)의 과정이다. 이렇듯 뿌리로 돌아가 비로소 고요를 얻는 것이야말로 생명의 본질을 회복하는 복명(復命)의 경지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오늘날의 인류 문명은 이 순환의 고리를 끊어낸 채 파멸을 향해 질주하고 있다. 인위(人爲)가 자연을 거스르고, 경직된 이념이 생명의 역동성을 억압할 때 순환은 멈춘다. 그리고 순환이 멈춘 문명은 그 뿌리부터 서서히 고갈될 뿐이다.
그렇다면 멈춰버린 문명의 심장을 다시 뛰게 할 동력은 어디에 있는가. 그것은 '어머니의 문'을 통해 끊임없이 흐르는 무구한 사랑의 기운이다. 노자가 현빈(玄牝)을 일컬어 "아무리 써도 다하지 않는다(用之不勤)"고 찬탄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제 '여성적 구원 주체'의 현현은 단순히 종교적 상징을 넘어, 끊겼던 우주적 생명 순환을 지상에 다시 복원하는 거대한 사건이 된다. 독생녀(獨生女)라는 실체가 이 땅에 발을 내딛는 순간, 관념 속에 머물던 '중묘지문(衆妙之門)'은 비로소 인류를 살리는 실제적인 구원의 통로로 화(化)하게 되는 것이다.
◆ 천일국(天一國), 생명수가 흐르는 이상의 장(場)
이러한 생명 순환의 철학이 안착된 세계를 본 연재에서는 ‘천일국(天一國)’이라 칭해 왔다. 이는 두 사람이 하나 되어 하늘부모님을 모시는 평화의 터전이자, 만물이 조화롭게 공존하는 이상세계다. 여기서 천일국은 정치적인 국경을 가진 나라가 아니라, 하늘의 도(道)가 인간의 정(情)으로 흐르는 ‘생명의 그물망’을 뜻한다.
아버지가 씨앗(진리)의 근원이 된다면, 어머니는 그 씨앗이 열매 맺을 수 있도록 끊임없이 생명수를 공급하는 강물과 같다. 중묘지문이 열린다는 것은, 곧 인류가 독생녀의 모성적 심정권을 통해 하늘부모님의 참된 혈통을 이어받고 영원한 생명의 순환 고리에 재진입했음을 의미한다. 이것이야말로 도교가 아득한 태고적부터 갈망해온 ‘영생불사(永生不死)’의 실체적 결실이다.
◆ 도(道)의 안착과 문명사적 완성
『도덕경』이 예고한 중묘지문은 인류 구원의 마침표를 찍는 ‘어머니의 자리’를 예표한다. 부성 중심의 문명이 쌓아올린 지식의 탑이 한계에 부딪힌 지금, 우리는 다시 생명의 근원인 그 문으로 돌아가야만 한다. 그곳은 정죄와 심판의 문이 아니라, 조건 없는 수용과 치유가 흐르는 자비의 문이다.
이제 인류는 공허한 관념의 유희를 끝내고 지상에 현현한 실체적 현빈을 통해 하늘과 땅의 뿌리인 천지근(天地根)를 회복해야 한다. 우주의 오묘한 진리가 한 여인의 삶과 사랑을 통해 인격화된 이 지점에서, 비로소 인류는 상실했던 본연의 지위를 되찾게 될 것이다. 이 신비로운 생명의 문을 통과하는 여정은 곧 인간 본성 깊은 곳에 잠들어 있는 순수성을 깨우는 장자의 지혜로 이어진다.
서성종 작가(신학박사)
2026-05-11 11: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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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을 묻는 종교] 〈7〉 동양 사상이 바라본 삶과 죽음
[영원을 묻는 종교] 목차
<1> 인류는 언제부터 영생을 꿈꾸었는가
<2> 불교가 말하는 삶과 죽음
<3> 성경이 말하는 영생
<4> 기독교 신학의 영생 이해
<5> 통일교 영생론의 인간 이해
<6> 인간은 어떻게 영적 자아를 성장시키는가
<7> 동양 사상이 말하는 삶과 죽음
<8> 인간은 왜 영원을 묻는가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해 동양 사상, 특히 유교(儒敎)는 인간이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더 큰 관심을 두었다. 유교의 생사관은 세밀하게 묘사하거나 죽음 이후의 세계를 부정하기보다는 삶의 윤리적 의미를 먼저 묻는 데서 출발한다.
공자(孔子, ·BC 551~479)는 제자들로부터 생과 사에 대한 질문을 받았을 때 “삶도 아직 알지 못하는데 어찌 죽음을 알겠는가(未知生 焉知死)”라고 답했다고 전해진다. 이 말은 죽음의 세계를 부정하려는 뜻이라기보다, 인간이 먼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현재의 삶이라는 의미로 이해된다. 유교는 인간이 살아 있는 동안 도덕과 관계를 바로 세우는 일을 가장 중요한 과제로 보았다. 죽음 이후의 세계를 지나치게 상상하기보다 지금 이곳에서 인간다운 삶을 이루는 것이 더 근본적인 문제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유교가 사후세계의 존재를 도외시한 것은 아니다. 유교 전통에는 조상과 귀신에 대한 개념이 분명히 존재한다. ‘논어’에는 “귀신을 공경하되 멀리하라(敬鬼神而遠之)”라는 말이 등장한다. 이는 귀신의 존재를 인정하면서도 그것을 지나치게 신비화하거나 두려움의 대상으로 삼지 말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인간의 삶이 미신적 공포에 의해 지배되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유교 사회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 의례 가운데 하나가 바로 제사다. 조상을 기리는 제사는 의식으로만 끝나지 않고, 인간 자신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기억하는 문화적 장치이다. 제사는 죽은 이를 다시 불러내는 행위라기보다, 살아 있는 사람들이 조상의 삶을 기억하고 그 덕을 이어가겠다는 다짐에 가까운 행위라고 볼 수 있다. 유교에서 조상은 현재의 삶 속에서 계속 이어지는 존재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유교의 사후세계관은 종교적 신비보다는 윤리적 관계 속에서 이해된다. 인간은 죽음 이후의 세계를 자세히 알 수 없지만, 살아 있는 동안 부모와 조상을 공경하고 후손에게 도덕적 삶을 물려주어야 한다. 인간의 삶은 한 개인의 생애로 끝나지 않고, 세대를 통해 이어지는 역사 속에서 의미를 가진다. 유교의 생사관은 이러한 관계의 연속성을 강조한다.
유교 전통에서 강조되는 효(孝)의 개념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효는 부모에게 순종하는 태도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생명의 근원을 기억하고 그 은혜를 삶으로 이어가는 책임을 뜻한다. 부모를 공경하고 조상을 기억하는 행위는 인간이 자신의 뿌리를 잊지 않겠다는 방식이다. 유교 사회에서 제사가 중요한 의례로 자리 잡은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동양 사상 전체를 보면 삶과 죽음을 바라보는 시선은 서양 종교와는 조금 다른 방향을 보인다. 서양 전통이 종종 사후세계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려 했다면, 유교는 현재의 삶 속에서 도덕과 질서를 세우는 일을 더 중요하게 여겼다. 죽음 이후의 세계를 상상하기보다 삶 자체를 바로 세우는 것이 인간에게 주어진 과제라는 생각이 강하게 자리 잡고 있다.
결국 유교의 생사관은 죽음을 삶과 분리된 사건으로 보지 않는다. 인간은 태어나고 살아가며 죽음을 맞이하지만, 그 삶의 의미는 관계와 책임 속에서 이어진다. 부모와 자식, 조상과 후손이 이어지는 질서 속에서 인간의 존재는 시간의 흐름을 넘어 확장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유교가 말하는 영원이란 특정한 사후세계의 모습이라기보다 인간이 후손을 통해 남기는 도덕적 삶의 흔적과 관계의 지속 같은 것이다. 인간은 유한한 삶을 살지만, 그 삶이 남기는 영향은 세대를 넘어 이어질 수 있다. 결국 죽음을 준비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지금의 삶을 바르게 살아가는 것이라는 메시지가 유교 사상의 중심에 놓여 있다.
죽음 이후의 세계를 완전히 알 수 있는 인간은 없다. 그러나 유교는 명확하게 한 가지를 말한다. 삶을 바로 세우는 일은 결코 헛되지 않으며, 인간의 도덕적 선택과 그 결실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계속 이어진다는 것이다. 결국 인간이 영원을 묻는 이유는 죽음 이후의 세계를 알고 싶어서이기도 하지만, 지금의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스스로에게 묻기 위해서일지도 모른다.
2026-05-07 14: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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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온기 되찾는 여행”…자원봉사애원, 가정의 달 맞아 소외가정 지원 확대
가정의 달을 맞아 자원봉사애원이 저소득·장애·다문화·한부모 가정을 대상으로 가족의 유대 회복을 돕는 여행지원 활동을 펼치고 있다.
사단법인 자원봉사애원(이사장 김고은)은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가족온(溫) 여행지원사업’의 일환으로 소외계층 25가정에 리조트 숙박권(6인 기준)과 발왕산 케이블카 이용권(2인)을 지원했다.
발왕산(1458m)은 강원도 평창군 대관령면에 위치한 산으로, 용평리조트와 관광 케이블카로 잘 알려져 있다.
평소 생계 부담과 돌봄 환경 등으로 여행 기회가 부족했던 이들 가정은 용평리조트에서 편안한 휴식을 취하며 발왕산 정상까지 케이블카를 타고 오르는 즐거움을 누렸다. 밤에는 빛의 축제인 화려한 일루미네이션이 펼쳐져 가족들에게 특별한 추억을 선사하며 따뜻한 분위기를 더했다.
자원봉사애원은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유관 단체로, 올해로 5년째 ‘가족온(溫) 여행지원사업’을 이어오고 있으며, 오는 11월까지 25가정을 추가 지원해 올해 총 50가정에 숙박권과 발왕산 케이블카 이용권을 제공할 예정이다.
이 사업은 모나용평㈜(대표이사 박인준)의 후원으로 진행되고 있다. 모나용평은 장애인과 교통약자도 제약 없이 여행을 즐길 수 있도록 무장애 환경 조성에 힘써 왔으며, 앞으로도 자원봉사애원과 협력해 나눔의 가치를 확산해 나갈 계획이다.
참여 가족들의 만족도도 높게 나타났다. 한 참가자는 “아이들과 함께 야간 일루미네이션을 보며 사진을 찍고, 처음으로 케이블카를 타는 경험을 나누며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었다”고 전했다. 또 다른 참가자는 “여행을 통해 서로를 여유롭게 바라보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며 가족 간 거리감이 가까워졌다”며 “아이를 기다려주는 마음이 커지는 등 서로를 이해하는 시간이 됐다”고 말했다.
김고은 이사장은 “가족은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가장 중요한 공동체지만 여전히 많은 가정이 다양한 이유로 여행의 기회를 누리지 못하고 있다”며 “이번 사업이 가족 간 사랑을 다시 확인하고 따뜻한 온기를 나누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한편 모나용평은 2021년부터 자원봉사애원이 주최하는 ‘꿈과 사랑의 크리스마스 축제’에도 참여해 매년 1500만 원 상당의 숙박권과 케이블카 이용권을 후원하고 있다. 이는 민간 협력을 기반으로 한 지속가능한 사회공헌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2026-05-06 12:3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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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상선약수(上善若水): 가장 낮은 곳으로 흐르는 모성적 리더십 [父性 문명의 한계, 母性 구원의 비전-비전]
강함을 이기는 부드러움, 물의 덕성에서 구원의 길을 묻다
인류 문명은 오랫동안 ‘높음’을 지향해 왔다. 더 높은 빌딩을 세우고, 더 강력한 무기를 만들며, 승자가 되어 정상에 서는 것을 성공의 척도로 삼았다. 이러한 부성(父性) 중심의 역사는 눈부신 성장을 가져왔지만, 동시에 우리 사회를 날 선 경쟁과 분열의 전쟁터로 만들었다. 이제 인류는 정상에 깃발을 꽂는 정복의 논리가 아니라, 낮은 곳으로 스며들어 만물을 살려내는 새로운 생명 질서를 갈구하고 있다. 도교의 성인 노자(老子)는 일찍이 그 정답을 ‘물’에서 찾았다. 그것이 바로 상선약수(上善若水), 즉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는 가르침이다.
◆ 겸하(謙下)의 도리: 가장 낮은 곳에서 시작되는 치유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하면서도 결코 자신을 내세우지 않는다. 오히려 모든 존재가 싫어하는 가장 낮은 곳, 즉 골짜기와 구덩이를 찾아 흐른다. 노자는 이를 ‘겸하(謙下)’라 일컬으며 도(道)에 가장 가까운 품성이라 보았다. 인문학적 관점에서 이 물의 성질은 자녀를 위해 자신을 기꺼이 낮추는 어머니의 심정(母性)과 완벽하게 맞닿아 있다.
아버지가 가문의 기둥으로서 권위와 법도를 세운다면, 어머니는 가장 낮은 자리에서 자녀의 상처를 닦아주고 그들의 아픔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인다. 지난 수천 년간 인류가 잃어버린 ‘하늘의 절반’은 바로 이 낮아짐의 미학이었다. 섭리의 끝자락에서 현현해야 할 여성적 구원 주체는, 권력의 정점에서 군림하는 왕의 모습이 아니라 가장 소외되고 고통받는 이들의 눈물 속으로 스며드는 ‘물’의 모습으로 우리 곁에 온다. 이 지극한 겸손이야말로 굳게 닫힌 인류의 마음 문을 여는 유일한 열쇠다.
◆ 유연(柔軟)과 방원수형(方圓隨形): 시대를 품는 포용의 미학
물의 또 다른 위대함은 그 유연성에 있다. 물은 자신을 담는 그릇에 따라 사각형이 되기도 하고 원형이 되기도 한다(方圓隨形). 앞을 가로막는 바위가 있으면 다투지 않고 우회하며, 좁은 틈새도 마다하지 않고 끝내 통과해 낸다. 이러한 유연함은 경직된 이념과 종교, 국가적 장벽에 가로막힌 현대 문명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부성 문명이 세운 법과 제도는 때로 배타적인 틀이 되어 인간을 억압하곤 했다. 그러나 모성적 리더십은 물과 같아서, 어떤 이질적인 가치라도 그 존재 자체를 부정하지 않고 자신의 품 안으로 녹여낸다. 동서고금의 경전들이 예고한 여성 구원자의 행보는 바로 이러한 유연한 포용의 극치다. 억압적인 힘(强)이 아닌 감동을 주는 부드러움(柔)으로 전 세계의 이념적 대립을 녹이고, 인류를 하나의 가족이라는 큰 그릇에 담아내는 과정은 곧 ‘상선약수’의 도리가 역사적 실체로 안착되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 무쟁(無爭)의 승리: 다투지 않고 만물을 이롭게 하는 힘
노자는 『도덕경』 제8장에서 물의 덕성을 정의하며 ‘부쟁(不爭)’, 즉 다투지 않음을 강조했다. 물은 모든 생명을 키워내지만 그 대가를 요구하지 않으며, 스스로의 공적을 과시하며 다른 존재와 경쟁하지 않는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이 세상에서 물을 이길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지극히 부드러운 물방울이 오랜 세월을 거쳐 거대한 바위에 구멍을 뚫는 것처럼, ‘다투지 않는 사랑’은 세상의 어떤 강한 권력보다도 끈질기고 위대한 생명력을 지닌다.
이것이 바로 모성적 구원이 지닌 혁명성이다. 부성 문명의 역사가 칼과 방패로 승리를 쟁취하려 했다면, 이 땅에 현현한 모성적 실체는 용서와 화해, 그리고 지극한 효정(孝情)의 마음으로 원수까지도 품어 안는다. 투쟁의 연쇄 고리를 끊어내는 힘은 더 큰 물리력이 아니라, 다툼 자체를 무의미하게 만드는 물과 같은 평화의 기운이다. 인류는 이제 ‘약한 자의 도리’가 사실은 만물을 소생시키는 ‘진정한 강자의 길’이었음을 경전의 지혜를 통해 깨닫고 있다.
◆ 무위(無爲)의 정치와 새로운 문명의 아침
물의 덕성은 개인의 수양을 넘어 세상을 다스리는 ‘무위(無爲)의 정치’로 확장된다. 무위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방관이 아니라, 인위적인 욕심이나 강압 없이 순리대로 만물이 제 자리를 찾게 하는 고도의 리더십이다. 아버지가 지은 웅장한 집의 뼈대 위에 어머니가 사랑의 온기를 채우듯, 부성적 정의의 기초 위에 모성적 사랑이 흐를 때 비로소 인류는 상생(相生)의 문명을 완성할 수 있다.
도교 경전이 갈망했던 상선약수의 이상은 이제 관념을 넘어 우리 시대의 실체적 리더십으로 육화(肉化)되고 있다. 가장 낮은 곳으로 흘러 만물을 하나로 묶어내는 물의 지혜는, 분열된 지구촌을 ‘인류 한 가족’이라는 생명의 바다로 인도하는 유일한 길이다.
우리는 이제 정복하는 강함보다 치유하는 부드러움이 더 위대함을 직시해야 한다. 성서의 약속과 유교의 도리, 불교의 자비가 하나로 만나는 그 지점에, 물처럼 맑고 깊은 모성적 구원의 실체가 서 계신다. 유구한 인고(忍苦)의 갈증을 해갈할 생명의 단비는 이미 우리 곁에서 소리 없이 대지를 적시며 새로운 평화의 시대를 일깨우고 있다.
서성종 작가(신학박사)
2026-05-06 09:2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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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의 인프라 ‘한일터널’… “정교유착 아닌 정교협력 모범 사례”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70년]
요즘 정치권과 사회 일각에서 ‘한일해저터널’ 구상이 특정 종교와 정치의 결합, 이른바 정교유착의 사례처럼 단순화되어 거론된다. 그러나 이러한 접근은 한일터널이 어떤 문제의식에서 출발했고, 어떤 공공적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는지를 충분히 살피기 전에 논의를 경직시키는 측면이 있다. 국가 간 초대형 인프라 구상이 제안 주체의 배경만으로 재단되고, 그 공공적 가치와 장기적 비전은 논의조차 원천봉쇄된다면, 이는 우리 사회가 미래를 설계하는 능력 자체를 스스로 축소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한일해저터널은 최근에 갑자기 등장한 발상이 아니다. 냉전 종식 이후 동북아 질서 재편, 유라시아 대륙과 해양 네트워크의 연결이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 수십 년간 학계와 정책 현장에서 논의돼 온 구상이다.
토목·환경 분야 최고 전문가인 곽결호 전 환경부 장관은 한일터널을 ‘문명 인프라’, 즉 문명을 일으키는 공학으로 바라본다. 경부고속도로가 야당의 거센 반대와 초기 비용편익의 한계를 극복하고 국가 경제 발전의 대동맥 역할을 해냈듯, 역사적 인프라는 늘 문명과 국가의 방향성을 바꾸는 계기가 되어왔다. 한일터널은 해상수송보다 빠르고, 항공수송보다 대량 이동을 가능하게 하며, 기후 변화에도 영향을 받지 않아 한국과 일본을 넘어 중국·러시아까지 연결하는 동북아 경제권 형성의 핵심축이 될 잠재력을 지닌다. 경제적 편익은 물론이고 물류와 관광, 고급 일자리 창출, 토목기술 발전에 기여하며, 물리적 연결을 통해 상호 의존을 강화하고 대화와 협력의 비용을 낮춘다. 이는 초국경 인프라 유러터널로 이어진 유럽 통합 사례처럼 동북아에서 신뢰 구축의 상징적 장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지점에서 현재의 논란을 이해하려면, 가정연합이 왜 정치의 문을 두드렸는지부터 차분히 짚어볼 필요가 있다. 문선명 총재는 대한민국이 공산주의와 자본주의의 모순을 극복하고, 하나님을 중심한 공생·공영·공의주의를 바탕으로 남남 갈등을 해소하며 평화로운 남북통일을 이룩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더불어 한국이 세계 평화의 중심 국가로 자리매김하기를 간절히 바랐다. 문 총재는 종교를 ‘마음의 자리’, 정치·경제를 ‘몸의 자리’로 규정했다. 마음과 몸이 조화를 이룰 때 온전한 인간이 되듯, 세계 평화를 위해서도 종교와 정치가 대립이 아니라 협력의 관계에 있어야 한다는 인식이었다. 그는 유엔 역시 이러한 원리에 따라 거듭나야 한다고 보았다. 세계 종교 지도자들이 상원의 역할을, 정치 지도자들이 하원의 역할을 맡아 상호 보완적으로 협력할 때, 마음과 몸이 하나 된 유엔이 가능하다는 구상이었다.
종교와 정치의 협력이 내적 평화의 조건이라면, 외적 평화의 조건은 국경과 이념의 장벽을 물리적으로 낮추는 것이었다. 그 구체적 실천이 바로 ‘국제평화고속도로’ 구상이다. 문 총재는 1981년 서울에서 전 세계 과학자 700여 명이 참석한 국제통일과학회의에서 중국·한국·일본을 잇는 ‘아시아권 대평화고속도로’를 제안했다. 몰튼 카플란 시카고대 교수 등 세계적 석학과 노벨상 수상자들이 공감을 표했고, 이후 일본의 국제하이웨이재단과 일한터널연구회가 설립돼 한일 양국의 저명한 토목·도시 전문가들이 실현 가능성 검토에 참여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한일터널은 학계와 전문가 사회, 정치권에서 꾸준히 논의돼 왔다. 한국에서는 노태우·김대중·노무현·이명박 대통령이 한일 화합의 한 방안으로 검토 필요성을 언급했고, 일본에서도 모리 요시로 총리가 ‘아셈터널’이라는 명칭을 제안하는 등 정치적 공감대가 형성된 바 있다. 이는 이 구상이 특정 종교의 확장 수단이 아니라, 시대적 과제에 대한 하나의 정책적 선택지로 인식돼 왔음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오늘날 한일터널은 여전히 ‘누가 제안했는가’ ‘일본만 이익을 얻는 것 아니냐’는 프레임에 갇혀 논의되고 있다. 그러나 공공 인프라는 그 특성상 제안자의 배경이 평가의 기준이 될 수 없으며, 설계 구조 또한 어느 한쪽의 이익에 편중되기보다는 양국 모두에 실질적 혜택을 가져다주도록 전제되어 있다. 세계 인류는 단절과 갈등 속에서 고통받고 있으며, 국내 역시 인구 절벽과 공동체 해체, 국제 질서의 불안정이라는 복합적 위기에 직면해 있다. 이러한 시대에 국가에 더 큰 안정과 국민에게 더 깊은 위안을 가져다주기 위해서는, 종교와 정치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 상호 협력 관계를 성숙하게 형성해 나가는 것이 오히려 바람직한 방향일 것이다. 한일터널은 결코 정교 유착의 상징이 아니라, 단절과 갈등을 연결과 공존으로 전환하려는 상상력이자 실현 가능한 평화 인프라다. 한일터널이 불신과 혐오의 대상에서 벗어나 미래 세대를 위한 정교 협력의 상징으로 거듭나기를 기대한다.
2026-05-04 20:2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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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에 유엔기구… 세계의 화약고 DMZ를 평화 허브로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70년]
오늘날 국제질서는 거대한 전환점에 서 있다. 전 세계 인구의 60%가 거주하고 글로벌 경제 성장을 견인하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위상은 날로 높아지고 있지만, 국제기구의 공간적 배치는 여전히 냉전기 질서에 머물러 있다. 현재 UN 사무국은 뉴욕, 제네바, 빈, 나이로비 등 서구와 아프리카에 편중되어 있다. 이러한 ‘글로벌 불균형’을 해소하고 아시아의 대표성을 강화하기 위한 실천적 대안으로 ‘제5 UN 사무국 한국 유치’ 운동이 국제사회 일각에서 논의되고 있다.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이하 가정연합)이 제안하고, 참여해온 이 운동은 단순히 국제기구 하나를 국내에 들여오는 차원을 넘어선다. 이는 분단의 상징인 비무장지대(DMZ)를 세계 평화의 허브로 재탄생시키려는 창의적이고 미래 지향적인 평화 건축(Peace building)의 비전이다. 케냐 나이로비 사무국이 아프리카의 환경과 개발 의제를 선도하듯, 한반도에 들어설 제5 사무국은 아시아의 분쟁 관리, 기후 변화 대응, 그리고 지속가능발전(SDGs)을 가속화할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종교적 양심과 정당한 사회 참여
이러한 대규모 국제 평화 운동을 바라보는 일각의 ‘정교유착’ 시선에 대해 우리는 본질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 종교는 과연 사회로부터 격리된 섬이어야 하는가? 결코 그렇지 않다. 신앙적 가르침에 따라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사회 지도자들과 소통하는 것은 종교의 양심이자 정당한 사회 참여다.
이를 두고 교단 전체의 활동을 ‘배후의 정치적 기획'으로 몰아가는 것은 종교인의 기본적인 시민권과 신앙의 자유를 과도하게 왜곡하는 처사다. 가정연합이 구축한 글로벌 네트워크는 특정 정당의 이익이나 선거 승리와 같은 협소한 목적을 위해 작동하지 않는다.
가정연합이 구축한 글로벌 네트워크는 분쟁 지역의 중재, 가정 윤리의 회복, 기아 대책 마련 등 실질적인 NGO적 가치를 실현하는 데 활용된다. 이러한 활동 결과물은 평화 가치 확대의 선언이며 투명한 민간 외교의 결실이다.
민간 평화 외교의 새로운 모델
가정연합의 ‘유엔 갱신운동’은 민간 액터(Non-State Actor), 즉 비국가 행위자가 글로벌 평화 네트워크 다각화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모범 사례다. 유엔 갱신운동이란, 유엔의 설립 정신은 계승하되, 이해관계가 얽힌 국가 중심의 한계를 넘어 시민사회와 종교, 다양한 주체가 함께 참여하는 21세기형 평화 거버넌스로 유엔을 발전시키자는 제안이다. 이를 위해 가정연합이 각국의 전·현직 국가원수와 학자들로부터 공감대를 이끌어내고 있는 과정은 종교가 가진 초국가적 네트워크가 인류 공통의 과제를 해결하는 데 얼마나 강력한 동력이 될 수 있는지를 증명한다.
분단의 상징에서 평화의 성지로
제5 UN 사무국 한국 유치 구상은 현실적으로 매우 높은 벽이 있지만, 그 자체로 불가능한 공상은 아니다. ‘아시아에 하나쯤은 필요하다’는 인식과 ‘한국은 분단국이자 민주화를 경험한 국가’라는 상징성이 힘을 얻는다면, 이는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제도화하고, 한국이 아시아-태평양 평화의 중심지로 도약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될 수 있다. 이 대담한 프로젝트가 국제 사회의 더 깊은 공명을 얻는다면, DMZ는 더 이상 단절의 땅이 아닌 세계 평화의 성지로 거듭날 수 있다.
종교의 사회적 실천을 편견의 시선으로 재단하기보다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실현하려는 진정성 있는 노력으로 평가해야 할 때다. 민간 차원의 투명한 외교와 평화 비전이 결실을 볼 때 비로소 우리는 진정한 의미의 지구촌 평화 공동체를 마주하게 될 것이다.
2026-05-04 20:2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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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이념·종교 넘어 평화 플랫폼 구축… ‘인류 한 가족’ 큰 뜻 실천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70년]
21세기 세계는 다시 힘의 정치로 회귀하고 있다. 지정학적 갈등, 이념 대립, 종교와 문화의 충돌이 중첩되며 평화는 선언이 아닌 실천의 문제로 남아 있다. 이러한 시대적 맥락 속에서 종교의 사회 참여를 ‘정치적 야망’으로만 해석하는 시선은 과연 온당한가.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이하 가정연합)의 평화 운동을 둘러싼 논란은 이 질문을 우리 사회에 다시 던지고 있다.
가정연합이 표방해 온 평화의 핵심은 명확하다. 그것은 특정 권력이나 정치 세력을 향한 접근이 아니라, ‘하나님 아래 인류 한 가족(One Family Under God)’이라는 보편적 가치의 구현이다. 지난 70여 년간의 활동은 정치 세력화나 권력 추구라기보다, 국경·이념·종교를 넘어 평화의 담론이 교차하는 공론의 장을 축적해 온 과정에 가까웠다.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1991년 문선명·한학자 총재의 평양 방문과 김일성 주석과의 회담이다. 냉전의 장벽이 가장 높았던 시기, 종교 지도자가 이념의 경계를 넘어 평화를 논의했다는 사실 자체가 이례적이었다. 이 만남은 단순한 이벤트를 넘어, 평화자동차 설립, 보통강호텔 운영, 금강산 개발 성과로 이어졌고, 무엇보다도 수십 년간 단절됐던 이산가족 상봉이 실제로 성사되는 데 기여했다. 정부 간 대화가 멈춰 선 지점에서 했던 민간 외교의 전형을 보여주는 사례다.
가정연합의 국제 행사에 전·현직 국가 지도자와 정책 전문가들이 참석하는 장면은 종종 ‘정치적 영향력 과시’로 해석된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은 참석의 본질을 간과한다. 이 자리는 특정 정당이나 선거를 위한 무대가 아니라, 각자의 경험과 통찰을 인류 공동의 과제에 기여하도록 요청하는 공론의 장이다. 가정연합이 추진해온 ‘씽크탱크 2022’와 같은 국제 포럼 역시 지구촌의 평화와 당면 과제 해결을 위해 정치와는 무관하게 분쟁 중재, 종교 간 대화, 환경 위기, 빈곤 문제 등 보편적 의제를 다뤄왔다. 2022년 서울 평화서밋에서 채택된 ‘서울선언’이 공생·공영·공의의 가치를 전면에 내세운 것도 이러한 맥락이다.
종교의 사회 참여는 언제나 논쟁적이었지만, 역사적으로 종교는 사회 정의와 인간 존엄을 외면한 적이 없다.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인종차별에 맞섰고, 데즈먼드 투투 대주교가 아파르트헤이트(인종분리정책)에 저항했듯, 신앙은 개인의 내면에만 머물지 않았다. 평화와 가족 가치, 윤리적 사회를 위해 사회 지도자들과 대화하고 협력하는 행위는 정치적 야망이 아니라 종교인의 양심적 실천에 가깝다.
가정연합이 구축해 온 글로벌 네트워크 역시 선거 승리나 정파적 이익을 목표로 작동하지 않았다. 중동·아프리카·아시아 분쟁 지역에서의 종교 간 대화와 화해 중재, 160여 개국에서 진행된 ‘피스로드(Peace Road) 프로젝트’는 상징적 캠페인을 넘어 전 세계에 한반도의 분단 현실과 통일의 필요성을 지속적으로 알려온 국제 시민 평화운동이었다. 동시에 ‘참사랑’ 사상을 기반으로 한 가정 윤리와 청소년 교육, 부부 관계 회복 프로그램은 가정이라는 가장 일상적 공간에서 사회 통합의 가능성을 실험해 실천적으로 검증해 온 시도이기도 하다.
인도적 지원과 개발 협력 역시 단기적 구호에 머물지 않았다. 북한에 대한 식량·보건 지원, 평화자동차 공장 건립 등을 통한 경제 협력, 북한 사회 내부의 경제적 자립 구조를 모색했으며, 이는 협력의 방향을 ‘시혜’가 아닌 ‘동반 성장’으로 전환하려는 시도였다. 환경과 지속 가능성에 대한 논의는 한학자 총재 체제 이후 평화 담론의 중요한 축으로 확장되고 있다. 기후 위기가 갈등의 원인이 되는 현실에서, 환경과 평화를 연결하려는 시도는 국제사회의 공동 책무로 부상하고 있다.
이러한 활동의 결과는 비교적 분명하다. 그것은 정치 권력의 획득이 아니라, 평화 가치의 확산과 공개적 민간 외교의 축적이다. 국제회의와 포럼에서 발표된 선언문, 추진된 프로젝트의 성과, 인도적 지원 내역이 공개적으로 제시되어 왔다는 점에서 은폐된 정치 개입이라는 해석과는 거리가 있다.
가정연합의 행보는 특정 정치 세력을 지지하거나 권력을 탐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이 일관되게 강조해 온 것은 ‘인류 한 가족’이라는 보편적 가치 아래, 국경과 종교, 정파를 초월해 다양한 주체들이 평화의 담론을 형성하고 대화할 수 있도록 하는 공공적 플랫폼의 구축이었다. 힘의 정치가 다시 고개를 드는 오늘, 이러한 가치 중심의 접근이 얼마나 실질적인 대안이 될 수 있을지는 여전히 검증의 영역에 있다. 그러나 분명한 점은 이 평화의 실험이 권력을 향한 행보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가정연합이 걸어온 길, 그리고 앞으로도 걷고자 하는 길은 정치가 아닌 평화로 귀결될 것이다.
2026-05-04 20: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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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도덕경의 ‘현빈(玄牝)’: 만물을 낳는 신비로운 ‘어머니의 문’ [父性 문명의 한계, 母性 구원의 비전-비전]
태초 이래 닫혀 있던 생명문의 봉인을 푸는 모성적 실체
신비로운 어머니의 부름은 도교(道敎) 최고의 상징인 ‘현빈(玄牝)’의 문으로 이어진다. 생명이 잉태되는 그 비밀스러운 통로 속에 어떤 구원의 암호가 숨겨져 있는지, 도교 경전의 가장 깊은 심연으로 발걸음을 옮겨 보자. 진리의 뿌리를 찾는 이 여정은 결국 우리를 잃어버린 하늘 어머니의 따뜻한 품으로 안내할 것이다.
인류의 오래된 지혜는 늘 ‘생명의 근원’이 어디인가를 물어왔다. 서구 문명이 성서를 통해 ‘하늘부모님’의 섭리를 찾아왔고, 유교와 불교가 각각 ‘음양합덕’과 ‘자비의 법계’를 탐구했다면, 동양 철학의 가장 깊고 신비로운 샘물인 도교는 그 해답을 ‘어머니’라는 모성적 언어 속에 갈무리해 두었다. 노자(老子)는 우주의 절대자인 도(道)를 설명하며 ‘만물의 어머니’라는 파격적인 정의를 내림으로써, 인류가 돌아가야 할 영적 고향이 어디인지를 가장 명확하게 예고했다.
◆ ‘현(玄)’의 오묘함과 ‘빈(牝)’의 실체성이 만나는 자리
노자의 『도덕경』 제6장은 인류 정신사상 가장 신비롭고도 강렬한 상징 하나를 제시한다. “골짜기의 신(谷神)은 죽지 않으니, 이를 일컬어 현빈(玄牝)이라 한다.” 여기서 ‘현(玄)’은 단순히 검다는 뜻을 넘어, 인간의 얕은 지식과 논리를 뛰어넘는 ‘깊고 오묘한 우주의 본체’를 상징한다. 반면 ‘빈(牝)’은 ‘암컷’ 혹은 ‘여성의 생명력’을 뜻하는 단어로, 만물을 잉태하여 출산하는 구체적이고 실체적인 모성을 의미한다.
왜 성인 노자는 우주의 근원을 설명하며 이토록 생생한 여성적 상징을 선택했을까? 인문학적 관점에서 볼 때, 이는 만물을 창조하고 양육하는 우주의 에너지가 관념적인 이치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자녀를 낳는 어머니의 태(胎)와 같은 ‘실체적 주권’을 지니고 있음을 간파한 것이다. 현빈은 하늘부모님의 내면에 존재하는 모성적 성품이 지상에 실체화되어야 할 존재론적 필연성을 가장 완벽하게 대변하는 도교적 계시라 할 수 있다. 아버지가 생명의 씨앗을 주는 주체라면, 그 씨앗을 받아 실질적인 형체로 빚어내는 것은 오직 어머니라는 실체뿐이기 때문이다.
◆ ‘현빈지문(玄牝之門)’, 하늘과 땅의 뿌리가 내려오는 통로
노자는 이 현빈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현빈지문(玄牝之門)’, 즉 ‘어머니의 문’을 언급한다. “현빈의 문은 하늘과 땅의 뿌리(天地根)라 한다. 면면히 이어져 끊이지 않으니, 아무리 써도 다하지 않는다.” 여기서 ‘문(門)’이라는 상징은 매우 중요하다. 문은 안과 밖을 잇고, 하늘과 땅을 연결하며, 죽음의 세계에서 생명의 세계로 나아가는 유일한 통로다.
아득한 태고적 타락 이후 인류는 본연의 하늘 혈통을 잃어버렸고, 이로 인해 생명의 문은 굳게 닫혀 버렸다. 지난 수천 년간 부성(父性) 중심의 역사가 아무리 날카로운 진리의 칼날로 세상을 분석하고 개척했을지라도, 정작 그 문을 열어 인류를 새로운 생명으로 다시 낳아줄 ‘실체적 모태’는 존재하지 않았다. 도교가 예고한 현빈의 문은 단순히 철학적 수사가 아니다. 그것은 구원 역사의 최종 단계에서 실체적인 여성 구원자가 육신을 입고 현현하여, 유구한 세월 동안 막혀 있던 인류 중생(重生)의 통로를 열어젖힐 것임을 예언한 것이다.
아버지가 씨앗을 주어도 그 씨앗을 받아 생명으로 화하게 할 문이 없다면 창조는 완성될 수 없다. 따라서 여성적 신성을 온전히 갖춘 존재의 탄현은, 하늘의 도(道)가 땅의 실체(門)를 만나 비로소 하늘부모님의 참된 생명이 인류에게 전수되는 위대한 ‘현빈의 성취’인 것이다. 이 문을 통해 인류는 비로소 사탄의 거짓 혈통을 벗고 본연의 뿌리로 돌아갈 길을 찾게 된다.
◆ 섭리적 완성과 실체성령의 역사
이러한 도교의 현빈 사상은 앞선 연재에서 다뤘던 기독교의 성령론이나 유교의 음양합덕과도 완벽한 궤를 같이한다. 도교 경전이 암시한 ‘신비로운 어머니’는 결코 형이상학적 환상 속에만 존재하는 분이 아니다. 그것은 역사 속에서 구체적인 성별을 입고 현현하여, 독생자(獨生子)가 닦아놓은 진리의 터전 위에 사랑의 안착을 이루는 실체성령(實體聖靈)의 사역으로 귀결된다.
노자가 현빈을 “아무리 써도 다하지 않는다(用之不勤)”고 한 것은 어머니의 사랑이 지닌 무궁한 생명력과 자비의 에너지를 뜻한다. 지상에 현현한 모성적 실체를 통해 열린 현빈의 문은, 이제 타락한 인류를 원죄 없는 본연의 백성으로 거듭나게 하는 무궁무진한 은사(恩辭)의 샘물이 된다. 인위(人爲)의 법도로 가로막혔던 생명의 통로가, 무위(無爲)의 사랑을 지닌 한 여인을 통해 다시 열리면서. 인류는 비로소 하늘부모님이라는 근원적인 뿌리에 다시 닿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는 인간의 지식이나 노력으로 도달할 수 없는, 오직 ‘어머니의 문’을 통과해야만 얻을 수 있는 구원의 실재다.
◆ 문명의 새벽, 어머니의 문을 통과하며
『도덕경』의 현빈은 인류 구원의 마침표가 권력이나 투쟁이 아닌,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품어내는 모성적 포용에 있음을 준엄하게 가르친다. 지금까지의 문명이 하늘의 명령을 받들기 위해 치열하게 달려온 ‘부성의 역사’였다면, 이제는 그 명령을 부드러운 사랑으로 꽃피워야 할 ‘모성의 역사’로 진입해야 한다.
여성적 구원 주체의 현현은 도교가 수천 년간 탐구해온 ‘천지근(天地根)’, 즉 하늘과 땅의 뿌리를 회복하는 사건이다. 이제 인류는 인위적인 지식과 아집의 옷을 벗고, 현빈의 문이 선사하는 평화의 품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 문 너머에는 갈등이 종식되고 만물이 상생하는 ‘인류 한 가족’의 세상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이 신비로운 생명의 도리는 이제 ‘가장 낮은 곳으로 흐르는 물’의 지혜로 이어진다. 천하를 정복하는 강함보다 세상을 치유하는 부드러움이 왜 더 위대한지, 그리고 그 무위(無爲)의 리더십이 어떻게 문명의 대전환을 이루어내는지 성찰하는 일이야말로 오늘날 우리가 경전의 지혜를 빌려 마주해야 할 가장 시급한 과제다. 닫혀 있던 문은 열렸고, 새로운 시대의 서광은 이미 현빈의 문을 통해 온 누리를 비추고 있다.
서성종 작가(신학박사)
2026-05-04 11: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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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연합 “선민은 특권 아닌 책임”…‘한민족 사명·천일국 지도자 역할 조명’ 국제심포지엄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세계선교본부는 ‘천지인참부모님 성혼 66주년과 천원궁 천원성전 입궁 1주년을 맞아 3일 경기 가평 HJ천주천보수련원 친화관 강당에서 ’천일국 지도자 한민족 선민 교육 국제심포지엄‘을 열었다.
이번 국제심포지엄은 선민으로서 한민족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천일국 지도자의 섭리적 사명과 정체성을 조명하기 위해 마련됐으며, 한민족 서사가 지닌 보편적 가치와 천일국 시대 지도자상의 방향을 모색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개회식에서 도현섭 선학UP대학원대학교 총장은 심포지엄의 취지와 의의를 설명하며 참석자들을 맞이했다. 이어 두승연 세계선교본부장은 인사말에서 “‘한민족 선민 대서사시’는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주시는 하늘의 절박한 음성이며, 혼란과 분열의 시대에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을 밝히는 생명의 메시지”라고 말했다.
이어 주재완 선문대 교수가 좌장을 맡아 ‘한민족 선민 대서사시의 이해와 천일국 지도자의 섭리적 사명’ 주제로 심포지엄이 진행됐다.
첫 발표에 나선 조형국 한국하이데거학회 부회장은 ‘한민족 선민 대서사시와 한민족 문화’를 주제로, 한민족의 정체성을 천손 의식과 효정 문화, 창조성에서 찾았다. 그는 “한민족은 하늘과 연결된 민족으로서 효정은 생명의 근원을 공경하는 자존의 근본”이라며, 전통 가치가 오늘날 K-컬처와 K-스피릿으로 확장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어 한민족 문화의 생활화와 세계화를 통해 한국이 정신문화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현진 선학UP대학원대학교 교수는 ‘한민족 선민 대서사시와 섭리적 선민 이해’를 주제로 글로벌 다중위기 시대 한민족의 역할을 조명했다. 그는 전쟁, 기후위기, 경제 양극화가 동시에 전개되는 시대를 진단하며 “선민은 특권이 아니라 타자에 대한 무한 책임을 실천하는 책임적 소명자”라고 말했다. 이어 한민족의 수난사는 인류를 위한 희생과 연단의 역사였다고 평가하고, 효정·정의·심정문화가 세계를 다시 결속시키는 치유제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임 교수는 공생·공영·공의의 가치 위에 신통일한국을 실현하고, 이를 세계평화의 모델 국가로 발전시켜야 한다고 제안했다. 아울러 종교·정치·학술·청년 세대가 함께하는 글로벌 거버넌스 구축을 통해 인류 공동위기 해결에 앞장서야 한다고 밝혔다.
조광명 세계평화교수협의회 회장은 ‘한민족 선민 대서사시와 한민족의 종교성’을 주제로 발표하며, 한민족의 선민사상을 혈통적 우월주의가 아닌 도덕적 책임 의식으로 해석했다. 그는 “한민족의 선민사상은 홍익과 봉사를 목적으로 한다”며, 한국 사회가 유·불·선·기독교 등 다양한 종교 전통을 포용하고 융합해 온 역사를 주목했다. 이를 바탕으로 종교 간 갈등을 넘어 공존과 협력의 모델을 제시하고, 한국이 21세기 정신문화 지도국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어진 토론에서 참석자들은 한국의 ‘효정 문화’가 현대 사회의 분절과 갈등을 해결할 새로운 윤리적 토대이자 실천적 평화 운동으로 전개될 수 있다는 데 뜻을 모았다.
이날 행사는 세계평화교수협의회(PWPA)와 세계평화학술인연합(IAAP)이 공동 주관했으며, 국내외에서 100여 명의 대륙별 지도자가 참석했다.
2026-05-03 21:3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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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0쌍 ‘국경없는 가약’으로 세계평화 실천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가정연합)은 지난 2일 경기 가평 청심평화월드센터에서 ‘2026 천지인참부모 효정 천주축복식’을 개최했다.
‘천지인 참부모님 성혼 66주년과 천원궁 천일성전 입궁 1주년’을 기념해 열린 이번 축복식(국제합동결혼식)에는 신랑·신부와 가족, 신도 등 2만여명이 참석했다. 행사는 전 세계 194개국에 온라인으로 생중계됐다.
이날 축복식은 한학자 총재를 대신해 이기성 천심원장 부부의 집례로 성수의식, 성혼문답, 성혼선포, 축도 순으로 진행됐다. 전 세계 70개국에서 모인 2100쌍의 청년 남녀는 서로 다른 문화와 배경을 넘어 하나의 가정을 이루며, 평화를 삶으로 실천하겠다고 서약했다.
가정연합은 이번 축복식의 핵심 의미를 ‘인류 한 가족 사회를 향한 실질적 평화운동’으로 제시했다. 과거 적대 관계에 있던 국가 출신 청년들이 교차 결혼을 통해 한 가족을 이루는 것은 역사적 원한을 넘어 항구적 평화의 토대를 쌓는 상징을 넘어 실천으로 이어지는 해법이라는 설명이다.축복식은 뮤지컬 축하공연과 신랑·신부들의 웨딩댄스, 전 세계 대륙회장들이 함께한 억만세 삼창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가정연합 관계자는 “앞으로도 참가정 운동과 축복식을 지속적으로 펼쳐 무너져가는 가정 윤리를 바로 세우고, 저출생 문제 해결에 힘을 보태는 한편 국경과 인종을 넘어선 평화 공동체를 확산해 ‘하나님 아래 인류 한 가족’의 비전을 실현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2026-05-03 20:4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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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개국 2100쌍 ‘국경 없는 가약’… 가정연합, 국제합동결혼 통해 평화운동 펼쳐
전쟁과 갈등, 자국 우선주의의 파고 속에서 ‘평화’라는 인류 보편의 가치가 흔들리는 요즈음, 국경과 인종을 허물고 지구촌 젊은이들이 한 가족으로 거듭나는 대규모 화합의 장이 한국에서 펼쳐졌다.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은 2일 경기도 가평 청심평화월드센터에서 ‘2026 천지인참부모 효정 천주축복식’을 개최했다. 이날 전 세계 70개국에서 모인 2,100쌍의 청년 남녀가 참사랑을 바탕으로 선한 가정을 이루겠다고 서약했다.
‘천지인 참부모님 성혼 66주년과 천원궁 천일성전 입궁 1주년’을 기념해 열린 이번 축복식(국제합동결혼식)은 신랑·신부와 가족, 신도 등 2만여 명이 참석했으며, 행사는 전 세계 194개국에 온라인으로 생중계됐다. 참가자들은 서로 다른 문화와 배경을 넘어 하나의 가정을 이루며, 평화를 삶으로 실천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이날 축복식은 한학자 총재를 대신해 이기성 천심원장 부부의 집례로 성수의식, 성혼문답, 성혼선포, 축도 순으로 진행됐다. 고(故) 문선명 총재와 현장에 함께하지 못한 한 총재는 과거의 육성 녹음을 통해 이들의 장도를 축복했다.
가정연합은 이번 축복식의 핵심 의미를 ‘인류 한 가족 사회를 향한 실질적 평화운동’으로 제시했다. 과거 적대 관계에 있던 국가 출신 청년들이 교차 결혼을 통해 한 가족을 이루는 것은 역사적 원한을 넘어 항구적 평화의 토대를 쌓는 상징을 넘어 실천으로 이어지는 해법이라는 설명이다.
이번 국제합동결혼식에 참여한 신랑·신부들은 국경과 문화의 차이를 넘어 ‘가정’의 가치를 수호하겠다는 굳은 의지를 보였다. 한국에서 참여한 변찬수•하유진 신랑신부는 “서로 다른 배경을 존중하며 건강한 가정을 이루는 것이 곧 평화의 시작”이라고 전했으며, 아프리카에서 참여한 팡일월프리드디아라 신부는 “이번 결혼이 개인을 넘어 두 나라와 문화를 잇는 의미 있는 출발이며, 귀한 축복을 받은 만큼 하나의 가족으로서 평화에 기여하는 삶을 살며 참가정을 만들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저출생 위기를 겪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 이번 행사는 또 다른 의미를 던진다. 2025년 대한민국 합계출산율은 0.8명으로 OECD 회원국 가운데 유일하게 1.0명 미만을 기록했다. 이런 상황에서 ‘가정의 가치’를 강조하는 축복결혼식은 비혼·딩크(DINK, 맞벌이 무자녀 가정) 문화 확산과 인구절벽 문제를 돌아보게 하는 하나의 대안적 담론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날 축복식은 뮤지컬 축하공연과 신랑·신부들의 웨딩댄스, 전 세계 대륙회장들이 함께한 억만세 삼창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이에 앞서 열린 ‘문선명·한학자 총재 성혼 66주년과 천원궁 천일성전 입궁 1주년 기념식’에서는 서인국 세계선교본부 사무총장의 사회로 두승연 세계선교본부장의 기념사와 사무엘 하데베 선지자, 낸시 로사리오 주교 등 세계 종교지도자들의 축사가 이어지며 설립자의 평화 업적을 기렸다.
가정연합 관계자는 “앞으로도 참가정 운동과 국제축복결혼을 지속적으로 펼쳐 무너져가는 가정 윤리를 바로 세우고, 저출생 문제 해결에 힘을 보태는 한편, 국경과 인종을 넘어선 평화 공동체를 확산해 ‘하나님 아래 인류 한 가족’의 비전을 실현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2026-05-02 18:3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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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종교지도자들, 서울서 ‘인류 한 가족’ 비전 공유…평화 연대 본격화
세계 종교지도자들이 서울에 모여 평화와 화합, ‘인류 한 가족’ 비전을 공유하며 종교와 국경을 초월한 연대에 나섰다.
‘2026 세계종교지도자 콘퍼런스’가 1일 서울 중구 한국종교협의회에서 개회식을 시작으로 막을 올렸다. 이날 개회식에는 한국을 비롯해 미국, 일본, 영국, 호주, 이스라엘, 이탈리아, 덴마크,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20개국에서 100여 명의 종교 지도자가 참석했다.
세계성직자협의회(WCLC), 대한민국기독교성직자협의회(KCLC), 한국종교협의회(KRA)가 공동 주최한 이번 콘퍼런스는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의 ‘천지인참부모님 천주성혼 66주년’과 ‘천원궁 천일성전 입궁 1주년’을 기념해 마련됐으며, 서울과 경기도 가평 일대에서 5일간 진행된다. 세계 각국에서 활동하는 성직자들이 종교와 국경을 넘어 평화를 실현하자는 공동의 목표 아래 한자리에 모였다.
개회식은 양종은 KCLC 국제위원장의 사회로 진행됐으며, 낸시 로사리오 대주교(WCLC 대표)와 최길춘 창신교회 담임목사(KCLC 대표)의 초종교적 개회 기도로 시작됐다. 참석자들은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인류 평화를 향한 의지를 다졌다.
두승연 세계선교본부장은 환영사를 통해 “방한한 세계 성직자들을 진심으로 환영한다”며 “한학자 총재의 희생과 섭리를 깨달아 인류 평화를 위한 영적 여정에 함께해 달라”고 말했다.
김기훈 WCLC 명예회장과 홍윤종 한국종교협의회 회장(KCLC 공동의장)은 “이번 콘퍼런스가 국경과 교파를 초월한 종교적 연대를 구축하고 하늘부모님의 꿈을 현실로 만드는 성스러운 결집의 장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축사에 나선 송용천 가정연합 한국협회장은 “한학자 총재님의 노벨평화상 후보 추천은 희생적 모성의 평화 가치가 국제사회에서 인정받은 결과”라며 “천주성혼 66주년의 의미를 계승해 인류 한 가족 비전을 구체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문식 통일그룹 이사장은 “종교는 기도에 머무르지 않고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며 “종교의 자유와 양심의 가치를 지키는 실천이 인류 미래를 이끄는 출발점”이라고 밝혔다.
이날 행사에서는 대륙별 종교 지도자들이 평화 메시지를 전하는 시간도 마련됐다. 임보니 하데베 세계평화종교인연합(IAPD) 아프리카 의장은 “아프리카 대륙이 한학자 총재의 평화 메시지로 변화하고 있다”며 확산 의지를 밝혔고, 마수드 아부 하툼 이스라엘 멜키트 가톨릭 신부는 “중동 갈등 해결의 길은 종교 간 사랑과 이해”라고 강조했다.
또한 존 맘보 잠비아 Church of God 주교는 “아프리카 성직자들이 평화를 위한 기도와 실천에 동참하고 있다”고 밝혔으며, 파알레포 투이수가 호주 목사는 “하나님 아래 인류 한 가족 비전은 종교와 문화를 넘어 확장돼야 한다”고 말했다. 서진우 목사(대한예수교합동총회 노회장)도 화합과 존중의 메시지를 전했다.
참가자들은 2일 가평 청평 월드센터에서 열리는 ‘천주성혼 66주년 및 천원궁 천일성전 입궁 1주년 기념식’에 참석한다. 이어 3일에는 서울 용산구 서빙고로 천승교회에서 성일예배를 드린 뒤, 청파동 가정연합 원본부교회 성지순례 등을 통해 종교 간 화합을 위한 공감대를 넓혀갈 예정이다.
2026-05-02 09:5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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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AD 70년 예루살렘이 무너질 때 고구려는 시작되었다 [신화에서 선민까지 한민족 정체성의 문화사적 발견-기고]
성전의 파편 위에 피어난 새로운 섭리의 서곡
서기 70년, 로마의 장군 티투스에 의해 예루살렘 성전이 불길에 휩싸였을 때, 유대 민족의 눈물은 강이 되어 흘렀다. 이 사건은 유대 민족의 정치적 패배로만 볼 수 없다. 유대 신앙의 근간을 지탱하던 영적 질서가 송두리째 뒤흔들린 역사적 사건이기 때문이다. 유대 민족에 있어서 인류 시조 타락 이후 수천 년간 쌓아온 하늘의 기대섭리가 사탄의 침범으로 무너져 내린, 통절한 ‘섭리의 단절’이었기 때문이다. 성전은 이스라엘의 중심이었고, 하나님 임재의 상징이었으며 선민 의식의 근거였다. 그렇기에 로마에 의한 성전의 붕괴는 유대인들이 구축해 온 세계관의 해체와도 같았다.
신약학계의 정설에 따르면 가장 먼저 기록된 복음서인 마가복음은 예루살렘 성전 파괴라는 유대 민족의 처참한 역사적 파국 속에서 탄생했다. 눈에 보이는 성전을 잃고 절망에 빠진 공동체에 마가는 “보이는 성전은 무너졌으나, 살아있는 성전인 예수는 영원하다”는 파격적인 선언을 던진다. 우리가 알고 있는 성경의 마가복음은 역사의 파멸을 신학적 소망으로 치환하여 무너진 민족의 긍지를 다시 세우려는 처절한 기록인 셈이다. 그러나 하늘의 섭리는 그 비극의 자리에서 멈추어 서지 않는다. 예루살렘 성전이 불길에 휩싸여 서구 섭리의 해가 저물던 바로 그 시각, 역사의 지평선 너머 동방의 하늘 아래에서는 이미 새로운 시대의 태동이 요동치고 있었다. 한반도와 만주 일대에서는 기원전 37년 고구려가 건국되어 대륙을 호령할 기틀을 닦고 있었으며, 서기 1세기에 접어들며 압록강 유역을 기반으로 동북아시아의 독자적인 패권을 거머쥐기 시작했다.
종교사적 시각에서 볼 때, 고구려 사회는 하늘과 인간의 관계를 뼈대로 결속된 신령한 공동체였다. 『삼국지』 위서 동이전에 기록된 것처럼, 고구려는 매년 동맹(東盟)이라 불리는 거국적인 제천의식을 통해 하늘의 소리를 들었다. 다시말해 고구려의 제천의식은 국가의 권력이 하늘과 연결된 질서 속에서 정당성을 얻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행위였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 위에 섭리의 시각을 덧입혀본다면, 이스라엘의 멸망은 결코 종말이 아니었다. 그것은 인류 구원을 향한 거대한 영적 전이(轉移)의 시작이었다. 서방의 성전이 파편이 되어 역사 속으로 침몰해가던 그 시각, 동방의 한반도에서는 하늘부모님을 모실 새로운 성전, 즉 ‘신시(神市)’를 향한 대서사시가 비로소 첫 책장을 넘기고 있었던 것이다. 고구려의 건국은 영토의 확장을 넘어, 무너진 서구 섭리의 불씨를 이어받아 새로운 하늘의 문명을 잉태하기 위한 거룩한 준비였다.
흥미로운 점은 고구려의 건국 신화 역시 이러한 세계관을 잘 보여준다. 일반적으로 건국 서사는 영웅 주몽 이야기로 알려져 있지만, 2000년대 이후 학계 연구에 의하면 고구려 사회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 존재는 그의 어머니 유화부인이었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유화는 단순한 왕의 모친이 아니라 신성한 존재로 인식되었으며, 고구려에서는 그녀를 시조모(始祖母)로 모시는 전통이 존재했다는 점이 주목받는다. 이는 국가 공동체의 기원을 남성 영웅의 정복 서사보다 생명을 낳는 모성의 근원에서 이해하려는 우리 민족 특유의 역사 인식을 보여준다.
이 같은 전통은 훗날 한민족 역사 속에서도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공동체의 기원을 하늘과 연결하여 이해하는 사유 방식, 그리고 국가의 탄생을 생명을 잉태한 ‘어머니’의 이야기로 기억하는 문화적 전통은 동북아시아 문명 속에서 독특한 특징을 이루어 왔다. 고구려가 남긴 이러한 정신적 유산은 이후 한민족 역사 속에서 다양한 형태로 이어지며, 공동체를 이해하는 중요한 문화적 토양이 되었다.
◆ 잃어버린 예수를 묻다
2차 세계대전이 막 끝나가던 1945년, 이집트 나그함마디에서 한 목동이 우연히 고대 문헌이 담긴 항아리를 발견했다. 그 안에는 훗날 ‘도마복음’이라 불리게 되는 예수 어록 문헌이 포함되어 있었다. 학계에서는 이를 Q자료와 동일한 문헌으로 보지는 않지만, 초기 예수 전승과 유사한 전통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하고 있다. 이 문헌에는 후대 교회의 신학적 해석이 덧붙여지기 이전, 비교적 원형에 가까운 형태로 전해진 예수의 어록 114개가 담겨 있었다. 이 발견은 기존 기독교 신학에 적지 않은 파장을 일으켰다. 복음서가 형성되기 이전의 예수 전통이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교회 신학 이전의 ‘역사적 예수’는 어떤 존재였는지를 다시 묻게 했기 때문이다.
이후 수십 년 동안 전 세계 신학계는 ‘잃어버린 예수’를 찾기 위한 연구를 계속해 왔다. 복음서의 기록과 초기 어록 전승을 비교하며 예수의 원형적 메시지를 복원하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흐름은 인류가 여전히 예수의 진정한 의미와 사명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음을 보여주는 하나의 징후이기도 하다.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신학적 질문이 제기되던 시기와 비슷한 역사적 시간대에, 동방의 한반도에서는 또 다른 사건이 이미 준비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1943년 한반도에서는 훗날 가정연합에서 독생녀로 선포되는 한학자 총재가 탄생했다. 서구 신학이 예수의 원형을 연구하며 그 의미를 다시 묻고 있었다면, 동방에서는 그 섭리적 의미를 새로운 차원에서 설명하려는 또 다른 흐름이 시작되고 있었던 셈이다.
가정연합은 예수의 사역이 단순히 개인의 구원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인류를 하나의 가족 공동체로 회복하는 데 목적이 있었다고 이해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독생녀는 단순한 상징적 존재가 아니라, 인류 구원 역사 속에서 참부모 사상을 완성하는 실체적 존재로 설명된다.
만일 마가복음이 성전 붕괴라는 절망 속에서 새로운 희망을 선포한 기록이었다면, 그리고 도마복음과 같은 초기 어록 전승이 예수의 원형을 찾으려는 탐구의 흔적이었다면, 독생녀의 등장은 그 오랜 질문을 또 다른 차원에서 해석하려는 하나의 역사적 장면으로 읽힐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참어머니’의 사상은 단순한 교리적 해석이 아니라, 분열된 인류를 “하늘부모님 아래 한 가족”으로 묶으려는 새로운 문명적 제안으로 이해될 수 있다.
◆ 6천 년의 눈물을 닦다, 21세기 독생녀의 현현
가정연합의 교리를 담고 있는 『원리강론』은 역사가 직선적으로 전개되는 것이 아니라, “시대의 흐름에 따라 그 사명 부분을 각각 달리하면서 반복되어” 나타난다고 설명한다. 이를 섭리적 동시성의 원리라 부른다. 특정 시대에 이루지 못한 사명이 다른 시대에 유사한 조건 속에서 다시 전개되며, 그 과제가 반복·심화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독생자 강림 준비와 독생녀 강림 준비는 상호간 관계없는 시간적 간격이 아니라, 구조적으로 서로 면밀하게 대응되는 섭리의 일환으로 이해될 수 있다.
BC 430년경부터 예수 탄생까지 약 400년은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이라는 두 사상권이 교차하며 독생자를 예비한 시기였다. 이스라엘 내부에서는 율법적 정결과 신앙적 순수성을 강조하는 운동이 전개되었고, 외부적으로는 헬라 문화가 세계를 통합하는 조건을 형성했다. 종교적 긴장과 문화적 통합이 동시에 진행된 400년이었다. 그리고 그 종착점에서 독생자가 등장했다.
이에 대응하여 1517년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 이후 약 400년은 서구 기독교 세계에서 또 하나의 전환기로 이해될 수 있다. 종교개혁은 중세 교권 체제의 권위를 흔들며 성서 중심 신앙과 개인의 신앙적 각성을 강조하는 흐름을 만들어 냈다. 이러한 변화는 제도적 교회 중심 질서에서 개인의 신앙적 주체성으로 이동하는 과정이었으며, 일정한 의미에서 고대 유대 사회에서 나타났던 종교적 정결 운동과 유사한 구조를 보여준다.
그러나 이러한 동시성의 흐름이 서구에서만 전개된 것이 아니다. 독생녀가 등장할 역사적 환경 역시 일정한 준비 과정을 거쳐 형성되었다는 해석이 제기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일부 연구자들은 16세기 중반부터 20세기 중반까지 약 400년의 역사적 흐름에 주목한다. 이후 이어지는 동아시아 역사 속에서 나타난 정신적 수양 전통과 사회적 변화는 훗날 새로운 종교적 해석이 등장할 수 있는 문화적 토양을 형성하게 된다.
조선시대 중종 38년(1543년), 경북 풍기(현 영주시)에서 백운동 서원이 건립되었다. 조선 최초의 서원이라는 사실은 이 사건을 단순한 교육 기관의 출현이 아니라, 시대적 전환의 신호였다. 조선사회는 성리학적 수양과 도덕적 순수성을 바탕으로 도의(道義) 질서를 구현하려는 정신적 운동이 하나의 제도적 틀을 갖추기 시작했음을 의미한다. 재밋는 사실은 동시대 유럽에서 종교개혁이 일어나던 시기와 겹친다는 사실이다.
서구에서는 “성서로 돌아가자”는 외침이 교회 권위에 도전하고 있었고, 조선에서는 퇴계 이황의 주리론을 중심으로 “리(理)로 돌아가자”는 도덕적 수양 운동이 확산되고 있었다. 서로 다른 문명권이지만, 외형적 권위보다 내면의 순수성을 강조하는 정신사적 흐름이 동시에 나타났던 것이다.
그러나 역사의 시계추는 또 다른 시련을 동반하며 움직였다. 성리학적 명분론이 강화되면서, 역설적으로 조선 사회 내 여성의 공적 지위는 벼랑 끝으로 내몰렸다. 고려 시대까지 면면히 이어지던 여성의 상속권과 사회적 발언권은 차츰 자취를 감추었으며, 족보와 제사권의 기록에서조차 여성의 이름은 지워지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도덕 질서의 확립이라는 미명 아래 단행된 여성의 사회적 배제는, 도리어 우리 역사 속 모성에게 새로운 사명을 부여했다. 이름 없는 존재로 스러져가면서도 환란을 몸소 방어하며 다음 세대를 잉태한 여성들은 ‘역사의 보이지 않는 뿌리’가 되었다. 전란의 소용돌이 속에서 여성의 신체와 가문은 파괴되었으나, 공동체의 생존은 그들의 지극한 정성으로 유지되었다. 근대에 이르러 신사참배 강요는 남녀노소를 불문한 민족 전체의 영성적 억압이었으나, 여성들에게는 더욱 가혹한 절망의 조건이 강요되었다. 특히 위안부 동원은 여성의 존엄이 집단적으로 훼손된 인류사적 비극이었다. 이는 특정 국가나 개인의 잘못을 넘어, 한민족의 영혼을 말살하려 했던 시대의 어둠이 빚어낸 거대한 아픔이다. 역설적으로 이러한 수난의 역사는 우리에게 거룩한 ‘한(恨)의 응어리’를 남겼다. 이 응어리는 누군가를 향한 원망에 머물지 않았다. 수천 년간 쌓인 모성적 인고는 이제 전 인류를 품어 안는 자애로운 사랑으로 승화되어, 새로운 시대를 여는 섭리의 자양분이 되었다.
동시성의 원리에 따르면, 독생자 강림 전 이스라엘 내부에 정결 조건과 고난 조건이 병행되었듯, 독생녀 강림 전 한반도에서도 정신적 정화 운동과 모성의 수난 조건이 함께 축적되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유럽의 400년 종교개혁 준비기와 조선후기·일제강점 시대 400년의 내면 수양 및 수난의 역사는 서로 다른 문명권에서 병렬적으로 전개된 섭리적 구조로 볼 수 있다. 『원리강론』이 말하는 섭리적 동시성의 관점에서 보면 이러한 구조는 우연한 역사적 흐름이 아니다. 독생자 강림 이전 이스라엘 역사에서도 신앙적 정결 조건과 민족적 고난이 동시에 진행되었듯이, 한반도에서도 유사한 역사적 구조가 형성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1943년은 단절이 아닌 장엄한 귀결이다. 조선의 수양 전통과 전란의 상처, 식민지의 눈물로 점철된 400년의 시간은 모성적 인고를 축적해 온 예비의 과정이었다.
서구 문명이 신랑 중심의 신학을 발전시켜 왔다면, 동방의 역사는 오랜 시간 모성의 고난과 인내를 통해 또 다른 섭리의 완성을 준비해 왔다. 이로써 2천 년의 시차를 둔 독생자와 독생녀의 강림은 인류 역사 속에서 서로를 비추는 거울이다. 『원리강론』이 설파하는 섭리역사는 인간이 잃어버린 에덴동산의 본향을 향해 굽이치며 나아가는 ‘상실과 복원의 장엄한 변주곡’이다. 2천년 전 서구의 성전이 무너진 자리에서 시작된 하늘의 맥박은 400년 조선의 시린 겨울과 식민지의 가시밭길을 통과하며 더욱 단단하게 응축되었다. 깨어진 독생자의 잔을 채우기 위해 하늘이 준비한 참어머님의 시대를 알리는 서광의 시작. 이로써 400년의 긴 기다림은 끝났고, 우리는 이제껏 가보지 못한 새로운 문명의 첫 페이지를 비로소 넘기게 된 것은 아닐까?
고기훈 박사(한국학)
2026-05-01 09: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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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은 인류 문명의 기본 단위… 평화가 움트는 곳”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70년]
“가정은 인류 문명의 가장 작은 단위이자, 평화의 씨앗이라고 생각합니다. 부모와 자녀, 부부가 서로 존중하고 사랑하는 관계를 이루는 것이 곧 사회와 국가, 나아가 세계 평화로 확장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오순석(사진)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가정국장은 가정연합이 왜 오랜 시간 ‘가정’을 중심 의제로 삼아 왔는지를, 이렇게 압축적으로 설명했다. 그에게 가정은 사적 공간인 동시에 인간 사회와 문명이 유지되는 가장 근본적인 구조다. 개인의 삶은 가정에서 시작되고, 사회의 안정과 평화 역시 이 작은 공동체의 상태에 따라 좌우된다는 인식이 그의 가정관의 근간이다.
가정연합이 가정을 윤리적 이상이나 종교적 교리가 아닌 ‘원리’라고 부르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오 국장은 가정연합이 말하는 가정의 가치는 특정 신앙을 가진 사람들만을 위한 규범이 아니라, 인간과 사회가 본래 작동하도록 설계된 관계 질서에 가깝다고 설명한다. 인간은 관계 속에서 완성되는 존재이며, 그 관계의 가장 기본적인 형태가 부부와 부모·자녀로 이루어진 가정이라고 설명한다. 이러한 가정관은 오늘날 한국 사회의 현실과 맞닿아 있다.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인구가 감소하는 국가입니다. 다문화 가족은 저출산 사회의 대안이 될 수 있습니다. 이미 전국 지역사회에서 국제 부부가 경제적·문화적 활력을 불어넣고 있습니다.”
가정연합이 다문화 가정과 국제결혼에 꾸준히 주목해 온 이유는 이들이 개인의 결합에서 더 나아가 지역사회와 사회 전체에 새로운 생명력을 공급하는 존재로 기능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는 가정은 개인의 선택에서 시작되지만, 그 성패와 파장은 사회가 함께 책임지는 영역이라고 강조한다.
가정연합의 가정관에서 부부 관계는 모든 가정 질서의 중심에 놓인다. 오 국장은 부부를 함께 살아가는 동반자일뿐더러 서로를 완성시키며 책임을 나누는 관계로 제시한다. 여기서 축복결혼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축복결혼은 사적인 사랑을 사회적·공적 책임으로 확장시키는 출발점이자, 가정이 개인적 선택을 넘어 공동체의 지속성과 연결되는 지점이다. 이는 결혼을 개인의 감정 문제로만 소비해 온 현대 사회에 대한 하나의 문제 제기이기도 하다.
성(性)에 대한 인식 역시 이러한 가정관과 맞물려 있다. 가정연합은 성을 개인의 자유 이전에 가정을 완성하고 생명을 잇는 책임의 영역으로 여긴다. 그는 무분별한 관계의 확산이 결국 개인의 고립과 사회적 비용으로 돌아온다고 지적하며, 가정 안에서 사랑과 책임이 결합될 때 성은 비로소 인간을 풍요롭게 하는 힘이 된다고 풀이한다.
“최근 일본 등 일부 국가에서 종교 규제 논란이 제기되고 있는데, 다문화 가치가 정치 프레임에 갇혀 왜곡되는 것은 매우 위험합니다. 우리는 종교 강요가 아니라, ‘가족과 평화’를 중심에 둡니다. 국가와 사회가 편견 대신 열린 시각을 가질 때 진정한 공존이 가능해질 것입니다.”
오 국장은 가정연합의 가정관이 법이나 제도를 통해 강제되기를 원하지 않는다고 밝힌다. 대신 그는 가정의 회복이 문화와 실천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인터뷰 말미에 그는 다시 ‘평화’라는 단어로 돌아왔다. 그는 “세계평화는 거창한 정치적 선언에서 시작되지 않는다”며 “각 가정의 식탁에서, 부부의 대화에서, 부모와 자녀의 사랑에서 출발한다”고 말했다. 이어 “가정연합은 앞으로도 ‘가정에서 시작하는 평화’를 실천하며, 인류가 ‘하나님 아래 하나의 대가족’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앞장서 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오 국장의 말처럼, 가정연합이 말하는 가정은 전통적 가족 형태로 되돌아가자는 주장보다 지속 가능한 미래를 버티기 위한 최소한의 관계 구조를 다시 세우자는 제안이다. 가정에서 회복된 사랑과 책임이 사회와 국가, 더 나아가 세계의 지속 가능성을 떠받치는 힘이 될 수 있을까? 그의 질문은 여전히 우리 사회의 심연에 던져지고 있다.
2026-04-29 18:4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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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연합 70년의 실험, 인류 문명사에 던진 질문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70년]
가정은 언제나 이데올로기의 전쟁터였다. 고대 메소포타미아에서 가문은 국가 질서의 기초 단위였고, 공자는 가정을 정치의 출발점으로 보았다. 기독교는 ‘성스러운 가정'을 이상으로 내세웠으며, 근대 국민국가는 핵가족을 시민 양성의 기본 틀로 규정했다. 반면 20세기 공산주의는 가정을 ‘계급투쟁의 잔재'로 간주했고, 1960년대 히피 공동체는 가정을 ‘억압의 제도'라며 해체하려 했다.
이런 흐름 속에서 1954년에 출범한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은 가정을 바라보는 또 다른 접근을 제시했다. 가정연합은 가정을 하나님의 사랑이 뿌리내리고, 인격이 완성되며, 평화가 시작되는 근본 터전이라고 정의함으로써 세계 평화를 실험하는 공적 장으로 확장시켰다. 그래서 가정연합은 가정 윤리와 결혼 문화의 회복을 평화의 근본 해법으로 제시해 왔던 것이다. 가정을 개인의 사적 영역이 아닌 인류가 재구성해야 할 미래형 공동체로 제시했다는 점에서 기존 종교 운동과는 다른 방향성을 보였다는 평가다. 문명사적으로 이례적이고 새로운 시도였다.
국제결혼 43만 쌍, 전례 없는 규모
2025년 11월 기준, 가정연합의 국제결혼은 수십 년에 걸친 누적을 통해 43만 4천여 쌍을 넘어섰다. 참가국은 194개국에 달하며, 민족·인종·종교 배경은 실로 다양하다. 한국인-일본인 부부만해도 4만 2천 쌍, 한국인-필리핀인 1만 8천 쌍, 일본인-아프리카계 8천 쌍이 뒤를 잇는다. 여기에 유대인과 무슬림 배경을 지닌 127쌍까지 더해지면서, 이러한 사례들이 축적된 결과가 오늘의 43만 쌍이라는 수치로 나타나고 있다.
가정연합은 약 30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전 세계적으로 40만 쌍이 넘는 국제결혼을 성사시키며, 종교사적으로 유례를 찾기 어려운 사례를 만들어냈다. 이는 종교가 결혼이라는 가장 내밀한 사회 제도를 매개로 국경을 넘어서는 공동체를 형성한 역사적으로 주목할 만한 시도라 할 수 있다. 19세기 미국에서 예수그리스도교회(일명 몰몬교)가 독특한 혼인 관행을 바탕으로 30년간 약 5천 쌍을 형성한 것과 비교하면 그 규모와 파급력의 차이는 극명하다.
초국가적 혈연 네트워크의 실험
가정연합은 국제결혼을 21세기 최초의 초국가적 혈연 네트워크로 규정하고, 이를 국가·민족·종교를 초월해 인류가 하나의 운명 공동체임을 자각하려는 의식적이고 조직적인 시도로 설명한다. 사회 네트워크 과학(network science) 연구의 권위자 미국 예일대 니콜라스 크리스타키스 교수는 인간이 서로 연결된 관계망 속에서 건강·행복·사회적 행동을 형성한다는 점을 강조해 왔다. 그런 맥락에서 가정연합의 국제결혼은 혈연을 매개로 한 글로벌 네트워크 실험이라고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가정연합 이전에 페르시아(현 이란)에서 출현한 바하이교가 ‘초국가적 결혼 이상’을 추구했지만, 실제 결혼으로 이어진 규모와 지속성은 가정연합이 훨씬 두드러진다는 평가다.
문화적 동화에서 다문화적 창조로
신흥종교와 통일교 연구의 세계적 권위자 영국 런던정경대 아일린 바커 교수는 가정연합의 초기 축복결혼은 한국 중심의 문화 수출 성격이 강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1990년대 축복가정의 70% 이상이 한국인-외국인 커플이었고, 외국인 배우자들은 한국어와 문화를 필히 학습해야 했다. 그러나 최근 변화는 뚜렷하다. 2020~2025년 신규 축복가정 중 한국인-외국인 커플 비율은 낮아졌고, 아프리카·남미 지역 주도 축복식과 자녀세대가 주도하는 지역 맞춤형 축복도 늘고 있다. 이 변화는 기존의 일방향적 문화 동화(Assimilation) 모델에서 벗어나 다양한 문화적 주체들이 상호작용을 통해 새로운 정체성과 문화적 의미를 공동 창조(Co-creation)하는 다문화적 창조의 패러다임 전환으로 이해할 수 있다.
세계평화 실험의 성적표
가정연합은 가정의 평화가 세계 평화로 확장된다는 논리를 70년간 실험해 왔다. 아직 성적표는 미완이지만, 몇 가지 지표는 눈길을 끈다. 상당수 탈북민의 국내 정착을 장기간 지원해 왔고, 중동 분쟁의 핵심축인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축복가정이 탄생했다. 아프리카 여러 국가에는 다문화 학교를 설립했으며, 해당 학교 졸업생 상당수가 축복결혼에 참여하고 있다. 이스라엘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는 “21세기 최대 도전은 글로벌 정체성(a new global identity)을 만드는 것”이라며, 종교나 이념이 아닌 “공동의 이야기와 감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가정연합은 그 ‘공동의 감정’을 혈연과 결혼이라는 가장 근본적 방식으로 만들려 하고 있다.
남겨진 과제
가정연합 70년의 실험은 이러한 질문을 제기한다. 국가·민족·종교를 넘어선 ‘하나의 가족’ 모델은 현실적으로 가능한가, 그리고 그것이 지속 가능한 평화의 기반이 될 수 있는가라는 물음이다. 아직 이에 대한 명확한 결론은 내려지지 않았다. 다만 인류 역사에서 가정이라는 가장 사적인 제도를 세계 평화라는 공적 과제와 연결해 장기적이고 대규모로 실험해 온 사례는 유례를 찾기 어렵다는 점만큼은 분명하다. 가정연합이 만들어온 하나의 가족 모델은 현대 문명사 연구에서 중요한 기록으로 남고 있다.
2026-04-29 18:4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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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이 세계화·다문화 선구자… 갈등 치유 ‘통합·공존’의 길 열다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70년]
세계화와 이민의 흐름이 일상이 된 현대 사회에서 다문화 정책은 가족 형성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은 ‘하나님 아래 인류 한 가족’이라는 가치를 바탕으로 국제합동 결혼을 중심으로 한 다문화 실천을 이어왔다. 이러한 접근은 국적, 문화, 언어를 초월해 사회 통합과 문화적 조화를 모색하는 하나의 길로 평가된다.
가정연합의 사례는 지역사회와 국제적 평화 담론 속에서 가족 중심의 다문화 정책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보여주며, 개인의 일상과 가족생활 속에서 다문화가 가진 장점을 원만하게 실천하도록 유도한다는 점에서 특징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한국과 일본을 잇는 초국가적 결혼을 지속적으로 장려해 온 점은 역사적·정서적 갈등이 누적돼 온 양국 관계 속에서 민간 차원의 교류와 상호 이해를 확장하는 데 일정 역할을 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국제결혼 네트워크가 문화 교류와 사회적 연대, 갈등 완화에 기여하는 하나의 ‘사회적 실험’으로 기능해 왔다고 보고 있다.
국제결혼과 ‘시민 외교’ 모델
가정연합은 1960년대부터 서로 다른 국적·인종·종교적 배경을 지닌 커플을 연결하는 국제 합동결혼 제도를 운영해 왔다. 가정연합 자료에 따르면, 지금까지 전 세계적으로 약 40만 건 이상의 국제커플이 이 과정을 통해 성사됐다. 이러한 국제결혼은 국경과 언어, 문화의 장벽을 넘어서는 ‘시민 외교’의 한 형태로 설명된다. 지지자들은 개인과 가족 단위의 교류가 국가 간 갈등을 완화하고 장기적으로는 평화적 관계 형성에 기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특히 저출산 위기가 심화일로에 있는 한국 사회에서 다문화 가족이 인구 구조의 활력 회복과 지역사회 지속가능성 제고에 상당히 기여할 수 있다고 역설한다. 통계청에 따르면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2023년 0.72명, 2024년에는 0.75명으로 약간 반등했다고는 하나 여전히 심각한 수준이다. 다문화 가정이 노동력 확보와 지역 소멸 방지 측면에서 중요한 보완적 역할을 담당할 수 있다고 전망된다.
한국 사회에서의 통합 효과
한국 사회의 다문화 인구는 지난 10여 년간 빠르게 증가해 왔다. 다문화 가족 인구는 2014년 약 174만 명(전체 인구의 약 3.4%)에서 2024년 약 271만 5000명(약 5.2%)으로 늘었으며, 일부 연구에서는 2040년경 전체 인구의 7% 수준에 이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일부 연구자들은 가정연합이 1980년대 후반부터 추진해 온 국제결혼 정책이 한국 사회 초기 다문화 기반 형성에 일정 부분 기여했다고 평가한다. 지역 사례도 보고되고 있다. 충남 보령 등 일부 지역에서는 가정연합을 통해 결혼 이주한 일본 출신 여성들이 관광 안내, 언어 교육, 지역 문화 교류 활동에 참여하며 지역사회와 외부를 잇는 가교역할을 하고 있다.
이에 대해 학계에서는 이 모델이 기존의 ‘동화(assimilation)’ 중심 접근과 ‘다문화주의(multiculturalism)’ 사이에서 일정 수준의 균형을 시도한 사례로 분석하고 있다.
글로벌 평화 담론 속 국제적 반향
가정연합의 국제결혼 정책은 가족이라는 미시적 단위를 넘어 글로벌 평화 담론이라는 거시적 차원과 유기적으로 연결된다. 2024년 경기도 가평에서 열린 대규모 국제합동 결혼 행사에는 우크라이나, 콩고민주공화국, 솔로몬제도 등 분쟁 경험 국가를 포함해 60개국에서 2,100쌍이 참여해 국제적 관심을 모았다.
국제합동 결혼 행사와 관련해 짐바브웨 사도기독교협의회의 요하네스 은당가 목사는 “분쟁과 갈등이 반복돼 온 지역에서도 혈연과 국경, 종교의 경계를 초월해 새로운 가족 관계를 형성함으로써, 갈등의 기억을 일상적 공존의 경험으로 전환시키는 장기적 평화 구축 모델이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한국불교관음종의 홍파 종정 역시 “종교와 문화를 넘어 대립의 경계를 허물고 새로운 공존의 틀을 제시하려는 시도”라고 언급한 바 있다.
유럽과 중동 지역에서도 가정연합은 교리 선포나 전파에 초점을 둔 종교 조직이라기보다 가정의 가치 확산을 사회적 실천 운동으로 규정하며 시민사회·종교 단체와의 연대를 확대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천주평화연합(UPF) 등 국제 평화 네트워크 형성으로 이어지고 있으며, 초기 단계에서는 유엔을 보완하는 민간 차원의 초종교 평화 플랫폼을 지향했다는 점에서도 관심을 받고 있다.
사회 통합을 향한 과제
저출산, 고령화, 문화적 분절이라는 구조적 난제가 전 지구적으로 심화되는 가운데, 가정연합의 다문화 정책은 사회 통합의 가능성을 탐색하는 하나의 대안적 접근으로 거론되고 있다. 가족을 중심으로 한 접근은 이주와 다양성이 일상화된 사회에서 공동체 회복을 모색하는 실천적 방식으로 평가된다.
최근 제시된 정책 개선 방향도 이러한 흐름을 반영한다. 예컨대, 이주민을 보호 대상에 머무르게 하는 접근에서 벗어나 자존감과 주체성을 강화하는 지원 체계로의 전환, 편견 완화를 위한 다문화·역사 교육의 병행, 정체성 형성 과정에서 종교·문화 요인을 분석하는 연구 확대 등이 주요 과제로 논의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실천이 제도적·사회적 지원과 결합될 경우, 다문화 사회가 직면한 갈등을 완화하고 장기적 통합을 촉진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분열과 갈등이 심화되는 시대, 가정연합의 다문화 공존을 향한 실험은 사회 통합의 가능성을 가늠해보는 하나의 주목할만한 실천 사례로 지속적인 관찰과 평가가 요구되고 있다.
2026-04-29 18:4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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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도(道)의 뿌리 ‘어머니’의 힘을 다시 발견하다 [父性 문명의 한계, 母性 구원의 비전-기고]
인위를 넘어 무위의 사랑으로…도교가 예고한 모성적 구원
인류의 정신사는 언제나 ‘보다 높은 지혜’와 ‘근원적인 질서’를 찾아가는 숭고한 여정이었다. 우리는 앞선 연재들을 통해 기독교의 성령론, 유교의 음양합덕, 불교의 대자대비가 모두 하나의 거대한 진리, 즉 ‘모성적 신성’의 회복을 향해 수렴되고 있음을 목격했다. 이제 우리는 동양 철학의 가장 깊고 신비로운 샘물인 도교(道敎)의 지혜 속으로 발걸음을 옮겨보고자 한다. 도교는 경전의 첫머리부터 우주의 절대자인 도(道)를 일컬어 ‘만물의 어머니’라 규정함으로써, 인류가 돌아가야 할 영적 고향이 어디인지를 가장 명확하게 예고한 종교 철학이다.
◆ 도(道), 이름 없는 근원이 ‘어머니’가 되는 순간
도교의 근본 경전인 노자(老子)의 『도덕경』 제1장은 인류 문명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장엄한 선언으로 시작된다. “이름 붙일 수 있는 이름은 영원한 이름이 아니요, 이름 없는 것은 하늘과 땅의 시작이며, 이름 있는 것은 만물의 어머니이다(有名 萬物之母).” 여기서 노자는 우주 만물을 탄생시킨 근원적인 에너지를 ‘아버지’가 아닌 ‘어머니’로 명명했다. 이는 단순히 생물학적 비유가 아니다. 존재의 씨앗을 잉태하고, 기르고, 마침내 완성시키는 우주의 섭리가 본질적으로 모성(母性)의 성품을 띠고 있음을 간파한 고도의 통찰이다.
인간의 이성이 도달할 수 없는 그 깊고 오묘한 자리를 도교는 ‘곡신(谷神, 골짜기의 신)’이라 불렀다. 골짜기는 비어 있기에 모든 물을 받아들이고, 자신을 내세우지 않으면서도 온갖 생명을 자라나게 하는 터전이 된다. 지난 수천 년간 인류를 지배해온 ‘부성(父性) 문명’이 높은 산 정상에 깃발을 꽂는 정복과 투쟁의 역사였다면, 도교가 예고한 구원은 가장 낮은 곳으로 흘러 만물을 적시는 ‘골짜기의 지혜’다. 이 보이지 않는 영적인 품이 육신을 입고 지상에 현현하여 인류를 치유하는 일, 그것이 바로 섭리사가 지향해온 최후의 종착지라 할 수 있다.
◆ 인위(人爲)의 한계와 ‘근원으로의 회귀’
도교 철학의 핵심은 ‘무위자연(無爲自然)’에 있다. 이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라, 인간의 얕은 지식과 욕망으로 빚어낸 인위(人爲)를 버리고 우주 본연의 질서에 순응함을 의미한다. 인문학적으로 볼 때 ‘인위’는 부성 문명의 전형적인 특징이다. 법을 만들고, 경계를 긋고, 힘으로 질서를 강요하는 방식은 물질 문명을 발전시켰으나, 동시에 자연과 인간, 인간과 인간 사이의 근원적인 유대감을 파괴했다.
오늘날 인류가 마주한 환경 위기, 전쟁의 위협, 지독한 소외의 비극은 모두 이 ‘인위적 부성주의’가 임계점에 도달했음을 보여주는 증거들이다. 노자와 장자(莊子)는 일찍이 이러한 인위의 독성을 경계하며, 다시 ‘어머니의 품’과 같은 도의 상태로 돌아갈 것을 권고했다. 구원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인위에 가려져 잃어버렸던 생명의 참모습을 회복하고, 만물의 뿌리인 ‘대도(大道)의 어머니’가 지닌 태초의 순수한 본성으로 회귀하는 것이다.
이러한 회귀를 가능케 하는 것은 다시금 차가운 법도나 이론이 아니다. 그것은 모든 생명을 다시 품어 안아 길러낼 수 있는 ‘실체적인 모성(母性)’, 즉 지상에 현현한 ‘성스러운 어머니’가 펼치는 무위(無爲)의 사랑의 역사다. 아버지가 세상을 법으로 훈육한다면, 어머니는 세상을 심정으로 품어 안는다. 도교가 갈망했던 ‘도통(道通)’의 경지는, 이 땅 위에 모성적 사랑의 실체가 나타나 인류의 뒤틀린 본성을 근원적으로 씻어낼 때 비로소 완성되는 것이다.
◆ 유약(柔弱)이 강함을 이기는 물의 미학
흥미롭게도 『도덕경』과 『장자』 속에는 여성적인 원리가 강함을 이긴다는 ‘유약승강강(柔弱勝剛强)’의 논리가 면면히 흐르고 있다. “천하에 물보다 더 부드러운 것은 없으나, 강하고 굳센 것을 치는 데 물보다 나은 것은 없다”는 가르침은, 부성 문명의 날 선 정의를 녹여낼 유일한 대안이 모성적 자애(慈愛)임을 웅변한다.
결론적으로 도교 경전은 인류 구원의 마침표가 권력이나 힘이 아닌, 가장 낮은 곳에서 만물을 살려내는 ‘어머니의 자리’에 있음을 억겁의 세월 동안 증언해 왔다. 기독교가 예고한 ‘신부’의 기대, 유교가 대망한 ‘건곤합덕(乾坤合德)’의 이상, 불교가 약속한 ‘어머니 부처’의 자비는 이제 도교의 ‘만물의 어머니’라는 사유와 만나 하나의 거대한 평화의 강물을 이룬다.
이제 우리는 고전의 문구 속에 박제된 ‘도(道)’를 넘어, 그 도의 실체가 육신을 입고 우리 가운데 거하는 역사적 현장을 목격해야 한다. 21세기 한반도에서 울려 퍼지는 모성적 리더십의 행보는, 도교가 수천 년간 탐구해온 우주 본연의 생명력이 지상에 안착된 사건이며, 인위의 시대를 끝내고 참사랑의 시대를 여는 장엄한 결실이다.
서성종 작가(신학박사)
2026-04-29 10:1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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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7가지의 생애를 기리다…가정연합 용산구 효정봉사단의 ‘참가정 효도잔치’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산하 용산구 효정봉사단은 28일 서울 용산구 천승대교회 성전에서 지역 어르신을 초청해 ‘참가정 효도잔치’를 열고 장수사진 증정 행사를 가졌다. 이날 어르신 477명에게 대형 장수사진 액자를 전달해 단일 교회 차원에서는 보기 드문 대규모 효 실천 사례로 주목받았다.
행사에는 용산구 일대 어르신과 가족 등 600여 명이 참석했으며, 축하공연, 옥윤호 교구장 특강, 장수사진 증정식, 시상, 오찬 등 순으로 진행됐다. 이날 장한 아버지상과 장한 어머니상이 각각 8명에게 수여됐고, 3명에게는 서울시의회 의장 명의의 장한 어머니상이 전달됐다.
효정봉사단은 이번 행사를 위해 청파동·후암동·이촌동 등 용산구 18개 동 경로당과 복지관을 30여 차례 방문해 촬영을 진행했다. 일부 저소득층 어르신에게는 정장을 마련하고 메이크업도 지원했으며, 완성된 사진은 한 장 한 장 정성껏 제작돼 40㎝×50㎝ 액자로 전달됐다.
‘장수사진’은 과거의 ‘영정사진’이라는 표현 대신 오래도록 건강하게 사시길 기원하고 삶의 존엄을 기리는 뜻을 담아 최근 복지 현장과 지자체 행사 등에서 널리 쓰이고 있다. 행사 전 열린 사진 전시회에는 교회 1층·3층 로비와 강의실까지 장수사진이 가득 전시됐다. 군 제복에 훈장과 약장을 단 어르신들부터 수줍은 소녀처럼 웃음 짓는 할머니 모습까지 저마다 눈길을 끌며, 대한민국의 뿌리로 살아온 세대의 삶과 명예를 되새기게 했다.
보광동 김모(81·여) 어르신은 “사진도 감사하지만, 누군가 나를 잊지 않고 기억해준다는 그 마음이 세상에서 가장 큰 선물”이라고 말했다. 봉사단이 건넨 것은 액자 하나였으나, 어르신들이 돌려준 것은 잊고 지냈던 스스로의 빛나는 얼굴이었다.
2026-04-28 14:3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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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연합, 홈페이지에 ‘정치적 중립’ 천명…선거 관련 활동 전면 금지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가정연합)이 정치적 중립 원칙을 공식화하고 선거 관련 활동 금지를 선언했다.
가정연합 한국협회는 27일 홈페이지를 통해 ‘정치적 중립 및 선거 관련 준법 지침’을 공지하고 “종교 본연의 사명을 지키며 모든 정치적 활동으로부터 명확한 거리를 유지한다”고 밝혔다.
지침에는 ▲특정 정당·후보와의 연관성 배제 ▲선거운동 및 정치활동 금지 ▲정치 연계 사조직 결성 금지 ▲직무상 지위를 이용한 선거 개입 금지 ▲교단 명칭·자산의 정치적 이용 금지 등의 내용이 포함됐다.
또 “지침 위반으로 발생하는 법적 책임은 행위자 개인에게 있으며, 목회자와 공직자는 내부 규정에 따라 엄중히 문책한다”고 명시했다. 해당 지침은 선거 기간과 관계없이 상시 적용된다.
이번 조치는 가정연합 전 간부의 정치자금법 위반 사건과 맞물려 나왔다. 윤영호 전 세계본부장은 이날 정치자금법 위반 및 업무상 횡령 등 혐의 항소심에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항소심 재판부는 종교단체 자금을 활용한 금품 제공과 정치자금 제공 행위를 유죄로 판단하며 “국가 정책의 공정한 집행에 대한 국민 신뢰를 훼손했다”고 지적했다.
가정연합 측은 이번 지침을 통해 종교 활동과 정치 영역을 분리하고 내부 준법 기준을 강화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풀이된다.
2026-04-27 20: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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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을 묻는 종교] <6> 인간의 영적 자아는 어떻게 성장하는가
[영원을 묻는 종교] 목차
<1> 인류는 언제부터 영생을 꿈꾸었는가
<2> 불교가 말하는 삶과 죽음
<3> 성경이 말하는 영생
<4> 기독교 신학의 영생 이해
<5> 통일교 영생론의 인간 이해
<6> 인간은 어떻게 영적 자아를 성장시키는가
<7> 동양 사상이 말하는 삶과 죽음
<8> 인간은 왜 영원을 묻는가.
가정연합이 말하는 영생론의 핵심은 영인체(靈人體)의 성장에 있다. 사람은 죽으면 육신은 땅에 묻히지만, 영적 자아인 영인체는 영계(靈界)에서 영원히 존속한다고 본다. 영계에서 참된 삶을 누리기 위해서는 영인체 역시 성장하고 성숙해야 한다. 그렇다면 영인체는 어떻게 자라는가. 단지 신앙 고백만으로 완성되는가, 아니면 삶 속에서 어떤 내적 성숙이 이루어져야 하는가.
영생론에서 문선명 총재가 제시한 가르침은 분명하다. 영적 성숙은 믿음이라는 추상적 신념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 땅에서 살아가는 동안 매 순간의 선택과 책임, 그리고 사랑의 실천을 통해 완성된다는 것이다.
영인체의 성장은 결코 자동이 아니다. 하나님과 인간의 협력 속에서만 성숙된다. 인간은 은총을 기다리는 존재에서 그치지 않고, 자신의 삶을 통해 영적 성숙에 참여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영생론’에서 영인체는 ‘생소(生素)’와 ‘생력요소(生力要素)’를 받아 성장한다고 말한다. 생소는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무형의 생명 에너지이고, 생력요소는 인간이 지상에서 선을 행하며 만들어내는 영적 자양분이다. 생소가 근원이라면, 생력요소는 성장의 조건이다. 씨앗이 햇빛만으로 자라지 못하고, 땅의 영양분을 함께 필요로 하듯, 영인체 역시 하늘의 은사와 인간의 선행이 결합될 때 비로소 성숙한다. 이는 책임 없는 은총이 없고, 실천 없는 구원 또한 있을 수 없음을 뜻한다.
이 과정은 단계적으로 전개된다. 가정연합의 ‘영생론’에 따르면 인간의 영인체는 3단계를 거치며 성장한다. 첫째는 말씀을 믿고 따르며 신앙의 기초를 형성하는 ‘영형체’의 단계이다. 둘째는 사랑을 실천하며 인격과 내면을 확장하는 ‘생명체’의 단계이다. 셋째는 참사랑 안에서 하나님과 일체를 이루는 ‘생령체’의 단계이다. 이 3단계에 다다른 인간은 더 이상 외부의 빛을 반사하는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 빛을 발하는 ‘발광체’와 같은 존재가 된다. 완성이란 결국 사랑을 온전히 실천하는 상태를 의미한다.
그렇다면 사랑은 무엇인가. 문 총재는 사랑을 감정이 아니라 방향성으로 규정한다. 즉, 삶 전체가 타인을 향해 열려 있는 태도다. 결국 사랑이란 ‘타인을 위하는 삶’이다. 자신을 중심에 두는 순간 사랑은 소유가 되지만, 타인을 중심에 둘 때 사랑은 생명력이 된다. 문 총재는 “사랑은 투입하고 잊어버릴 때 무한히 커진다”고 말한다. 계산하는 사랑은 닫히지만, 조건 없이 흘려보내는 사랑은 되돌아와 더 큰 순환을 만든다는 것이다. 영인체는 바로 이러한 선순환 구조 속에서 자란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삶의 구체성이다. 영적 성숙은 산속의 고행이나 초월적 체험으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일상의 관계 속에서 매 순간 ‘위하는 방향’을 선택해야 한다. 삶의 모든 것이 영인체 성장의 현장이다. 남을 위해 시간을 내고, 자신의 이익을 양보하고, 상처를 품고도 다시 손을 내미는 일. 이런 선택들이 영인체의 근육을 단단하게 만든다.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축적되는 힘이다.
문 총재가 제시한 ‘정오정착’의 개념도 이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태양이 정오에 사람의 머리 위에 오면 그림자가 사라진다. 마음과 몸이 하나님의 사랑과 말씀 앞에 완전히 일치될 때, 인간의 삶에도 그림자가 줄어든다. 위선과 이중성이 사라지고, 양심과 행동이 일치하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완성은 거창한 업적이 아니라, 그림자 없는 삶의 지속이다. 마음이 가는 방향과 몸이 움직이는 방향이 같을 때, 영인체는 왜곡 없이 자란다.
이를 위해 강조되는 실천이 ‘훈독(訓讀)’의 전통이다. 영생론에 따르면 훈독이란, 하나님의 뜻이 담겨 있는 문 총재의 가르침을 반복해서 읽고 그 의미를 되새기며 생활 속에서 실천하는 과정이다. 육신이 매일 음식을 필요로 하듯, 영인체 역시 지속적인 자극과 정화가 필요하다. 이때 말씀은 삶의 방향을 잡아주고, 실천은 그 방향에 힘을 실어준다. 이 두 축이 맞물릴 때 영적 순환이 일어난다.
영인체 완성의 핵심은 단순하다. 얼마나 많이 가졌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많이 베풀었는가이며, 얼마나 높은 자리에 올라갔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낮은 자리에서 섬겼는가이다. 영계는 지위나 신분이 아닌 사랑의 파장으로 공명하는 세계이기 때문이다. 지상에서 ‘위하는 사랑’을 훈련한 사람만이 영계의 거대한 파동에 자연스럽게 호흡할 수 있다.
영인체는 하루아침에 완성되지 않는다. 매일의 선택이 모여 방향을 만들고, 그 방향이 인격을 형성하며, 그 인격이 영원을 준비한다. 완성은 미래를 결정짓는 현재의 습관이다. 오늘의 작은 선택들이 쌓여 인간의 성품을 만들고, 그 성품이 결국 영원한 존재의 모습을 결정짓는다. 끊임없이 발현되는 인류애가 곧, 인간의 영원한 모습을 만들어 간다.
2026-04-27 16: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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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지혜와 자비가 빚어낸 인류 구원의 마침표 [父性 문명의 한계, 母性 구원의 비전-기고]
관념의 바다를 건너 실체로 현현한 ‘자비의 본체’와 불국토의 완성
인류의 정신사는 고난의 바다를 건너 이상향에 도달하려는 거대한 몸부림이었다. 불교는 이를 ‘피안(彼岸)의 세계’ 혹은 ‘불국토’라 일컬으며, 모든 중생이 번뇌에서 벗어나 평화롭게 상생하는 대동(大同)의 세상을 갈구해 왔다. 하지만 석가모니 부처 이후 억겁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불국토는 많은 이들에게 죽어서 도달하는 내세의 낙원이거나 수행자들의 고독한 내면적 평화에 머물러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이제 우리는 경전의 문언(文言) 속에 잠들어 있던 이 원대한 서사가 어떻게 인류사의 실체적인 결실로 피어나고 있는지 그 종착지를 통찰해야 한다.
◆ 법(法)의 뼈대 위에 사랑의 숨결을 불어넣다
불교 구원론의 요체는 지혜(Prajna)와 자비(Karuna)의 완벽한 조화에 있다. 인문학적·섭리적 관점에서 볼 때 지혜는 사물의 이치를 꿰뚫고 법도를 세우는 남성적 원리이며, 자비는 그 모든 차별을 녹여내어 생명을 양육하는 여성적 원리다. 지난 수천 년의 역사는 지혜와 법력을 앞세운 ‘부성 문명’의 시기였다. 날카로운 이성적 분석과 논리는 구원의 뼈대를 견고히 세웠으나, 정작 상처 입은 중생의 근원적 한을 치유하고 뒤틀린 본성을 온전히 회복하기에는 그 자비를 담아낼 모성적 실체, 즉 ‘하늘 어머니’의 현현이 절실했다.
필자는 앞선 연재들을 통해 불교 경전 곳곳에 숨겨진 여성적 구원 주체의 상징들을 짚어보았다. 『법화경』의 용녀(龍女)가 보여준 즉신성불(卽身成佛)의 혁명성이나 관세음보살이 동아시아에서 자비로운 어머니의 형상으로 변모해온 필연성은 결코 우연의 산물이 아니다. 이는 독생자가 개척한 진리의 터전 위에 반드시 ‘독생녀’라는 실체적 대응치가 나타나야만 불국토가 비로소 완성될 수 있음을 알리는 섭리적 예고였다. 하늘이 뿌린 진리의 씨앗이 땅의 모태(母胎)를 만나지 못한다면, 그것은 결실 없는 반쪽짜리 복음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 상구보리(上求菩提)와 하화중생(下化衆生)의 실체적 합일
불교에서 성불은 단순히 개인의 해탈을 넘어 ‘만민 구제’를 지향한다. 이를 불교 용어로 위로는 깨달음을 구하고(상구보리), 아래로는 중생을 구제한다(하화중생)고 한다. 하지만 타락한 인류가 스스로의 힘만으로 이 경지에 도달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영적 아버지로서 구원의 길을 개척한 메시아의 사역 위에, 이제는 그와 하나 되어 인류를 다시 낳아줄 ‘어머니 부처’의 위상이 결합되어야 한다.
여기서 우리는 21세기 문명사가 요구하는 ‘효정(孝情)’의 가치에 주목하게 된다. 효정은 부모를 향한 수직적 사랑이자 만물을 형제자매로 껴안는 수평적 자비의 결정체다. 이는 불교의 ‘대자대비’가 현대적 삶의 문법으로 승화된 실천적 결실이다. 남성적 진리의 선포가 여성적 사랑의 실천과 만나 ‘우주적 부모성’을 확립할 때, 관념 속에 머물던 자비는 비로소 육신을 가진 실제 삶의 현장으로 내려온다. 인류가 근원적 부모를 찾아가는 ‘실체적 중생’의 길은, 이처럼 부성적 정의와 모성적 포용이 한 치의 어긋남 없이 합일될 때 비로소 열리게 되는 것이다.
◆ 연기(緣起)적 생명 공동체, 불국토의 안착
결론적으로 불교 경전이 예고한 미래의 주인공은, 남성적 권위의 잣대를 넘어 여성적 긍휼의 온기로 세상을 치유하는 자비의 본체다. 억겁의 세월 동안 중생들이 그리워해 온 ‘어머니의 얼굴’은 이제 대한민국이라는 동방의 땅에서 그 실체를 드러내고 있다. 이는 독생자 참아버님이 닦아놓은 승리적 기대 위에 독생녀 참어머니가 안착하여 음양합덕의 이상을 이룬 결과다.
이러한 모성적 구원의 결실이 부성적 법도와 합쳐져 안착되는 장(場)이 바로 우리가 그토록 염원해온 불국토의 실현이다. 이는 단순히 특정 종교의 교리적 성취를 뜻하지 않는다. 인종과 종교, 국가의 장벽을 허물고 모든 존재가 자신의 본연적 가치를 회복하는 “하늘부모님 아래 인류 한 가족”의 이상세계를 의미한다. 유교적 대동(大同)과 불교적 화엄(華嚴)의 법계가 하나로 만나는 지점, 그곳에서 참된 부모의 사랑은 부성 문명이 남긴 갈등의 상처를 씻어내며 인류를 평화의 새 아침으로 인도하고 있다.
◆ 불교 섭리의 완성: 관념에서 생명으로
이제 우리는 2,500년 불교 영성이 도달하고자 했던 최종 목적지를 마주하고 있다. 보살 수행의 최고 단계인 ‘묘각(妙覺)’의 경지는 이제 개인의 깨달음을 넘어, 인류 전체를 품어 기르는 실체성령의 사역으로 완성되어야 한다. 불교 경전 속에 면면히 흐르던 자비의 대서사는 결국 독생녀라는 마지막 퍼즐을 만남으로써, 그리고 그 퍼즐이 독생자와 완벽하게 맞물림으로써 비로소 억겁의 기다림을 끝내는 장엄한 마침표를 찍게 된 것이다.
동서양의 모든 진리가 가리키는 한 지점, 그곳에 인류 구원을 완성할 참어머니가 계신다. 기독교의 성서, 유교의 사서삼경, 그리고 불교의 장경(藏經)이 시대를 달리하며 약속했던 ‘하늘의 딸’에 대한 증언은 이제 우리 시대의 생생한 현실이 되었다. 고전의 지혜를 빌려 이 위대한 진실을 확인하는 여정은, 이제 인간의 본연적 생명력을 탐구하는 도교의 신비로운 지혜 속으로 이어진다. 인류 문명의 대전환을 알리는 자비의 종소리는 지금 이 순간에도 온 세상을 향해 울려 퍼지고 있다.
서성종 작가(신학박사)
2026-04-27 09:4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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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사와 동고동락 70년… 종교에서 사회공헌 플랫폼으로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70년]
2025년,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이하 가정연합)이 창립 71주년을 맞았다. 1954년 한국전쟁의 잔해가 채 가시지 않은 서울에서 출발한 이 조직은 70여 년간 한국 사회와 함께 성장하고 변화해왔다. 종교 단체로 시작했지만, 오늘날 가정연합은 교육·구호·문화·평화 영역을 아우르는 사회공헌 플랫폼으로 자리매김했다.
70년의 역사는 단순한 시간의 축적이 아니다. 전후 재건기의 구호 활동에서 시작해 산업화 시대의 교육 투자, 세계화 시대의 평화운동, 21세기 지속가능성 시대의 포괄적 사회공헌으로 진화해온 궤적이다. 가정연합은 이 과정에서 시대가 요구하는 사회적 역할을 앞서 읽고 그에 맞춰 활동 방식을 재구성해왔다.
본 특집은 가정연합의 70년 여정을 객관적 시각으로 되짚어본다. 창립부터 현재까지 시대별 주요 활동과 전환점, 한국 사회에 구축한 ‘생활형 공헌 구조'의 특징, 그리고 구호에서 지속가능성으로 이어지는 변화를 중심으로 가정연합이 걸어온 길을 조명한다.
폐허 위에 세워진 희망
1954년 5월 1일, 서울 성동구 북학동의 작은 건물에서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가 창립됐다. 한국전쟁 휴전 후 불과 10개월 만이었다. 전쟁으로 국토는 황폐화됐고, 수많은 전쟁미망인과 고아들이 거리를 헤맸다. 가족은 뿔뿔이 흩어졌고, 사람들은 육체적 궁핍과 정신적 공허 속에서 방황했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 탄생한 가정연합은 초기부터 두 가지 방향성에 초점을 맞춘 활동들이 나타났다. 하나는 ‘참가정'의 이상을 통한 정신적 가치 회복이었고, 다른 하나는 고통받는 이웃을 돕는 구체적 실천이었다.
1950년대 후반에 이르러 조직은 서서히 외연을 넓히기 시작했다. 서울을 중심으로 지방 주요 도시로 조직이 확산되었고, 각 지부는 새 말씀을 통한 가정의 가치 회복과 함께 야학과 유치원 운영을 비롯해 영농 지원, 노인 시설 방문 등 지역사회에 뿌리내린 봉사 활동을 전개했다.
특히 열악한 환경 속에서 중학교 진학조차 꿈꾸기 어려웠던 농어촌 청소년들을 위해 목회자와 청년, 고등학생들이 야간학교 교사로 나섰다. 이들은 학교 운영비 마련을 위해 대도시로 올라가 연필장수와 엿장수, 비누장수 등 닥치는 대로 행상을 했고, 때로는 구두닦이 생활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 결실로 충주 지역 야학인 성화학원에서는 700여 명에 이르는 졸업생이 배출되었으며, 이들은 훗날 지역 사회를 떠받치는 향토의 역군으로 성장했다. 이러한 활동들은 당시 다른 종교·민간 단체들의 노력과 함께 전후 사회 재건의 한 축을 이뤘다. 그 과정에서 축적된 경험은 이후 해외로까지 확장되었다.
반공과 도덕 재무장의 시대
1960년대는 한국 사회가 4·19혁명과 5·16군사정변을 거치며 정치적 격변기를 맞은 시기였다. 이 시기 가정연합은 반공 이념과 도덕 재무장 운동에 적극 참여했다. 급격한 산업화와 도시화로 전통적 가족 유대가 약화되는 상황에서, 가정의 가치를 강조하는 가정연합의 메시지는 일정한 공감대를 형성했다.
이 시기 가정연합은 국제승공연합을 조직해 공산주의의 오류를 비판하고 민주주의와 자유, 평화를 강조하는 승공(勝共) 이념을 전파했다. 이 과정에서 가정연합의 승공 활동은 국가 주도의 반공 정책과 접점을 형성하며 긍정적 평가와 비판을 동시에 받기도 했다. 가정연합은 국내에 14개 시·도지부, 230개 시·군지부, 3,416개 읍·면·동지부를 두고, 직·간접 참여자를 포함한 추산치로 60여만 명의 연수교육 수련자와 700만 회원을 보유했으며, 나아가 아시아와 유럽, 북미·남미, 오세아니아, 아프리카 등 전 세계 100여 개국에 활동 거점을 두고 승공운동을 세계적 차원에서 전개해왔다.
세계로 향하는 발걸음
1970년대는 가정연합 역사의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창립자인 문선명·한학자 총재 내외가 1971년 미국으로 활동 기반을 옮기면서 미국은 가정연합 세계화의 출발지가 되었다. 문 총재 내외는 1972년부터 1974년까지 미국 전역 70개 도시를 순회하며 강연을 이어갔고, 이를 통해 미국 사회와 기독교계에 영적 각성과 도덕적 회복을 촉구했다. 그 순회강연의 정점은 1976년 9월 18일 미국 워싱턴 모뉴먼트 광장 대집회였는데, 이날 강연회에는 30만 명이 운집한 것으로 보도돼 국제사회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문목사는 이 자리에서 미국이 건국 이념인 기독교 정신으로 돌아갈 것과 하나님의 창조원리로 복귀할 것을 주장했는데, 당시 많은 국내 언론에서도 문 목사의 집회를 미국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킨 사건으로 평가했다.
국제화는 가정연합의 활동 범위와 실천 방식 전반에 구조적 변화를 가져왔다. 국가와 지역마다 문화적 맥락과 사회적 요구가 상이한 만큼, 획일적인 종교 활동보다는 각 사회의 현실에 부합하는 맞춤형 사회공헌이 요구되었다. 이에 가정연합은 한국어 보급 사업을 비롯해 교육과 문화, 언론, 사업 등 다양한 영역으로 활동의 지평을 넓혀가기 시작했다. 이러한 전략적 전환 속에서 가정연합의 선교 조직은 미국을 기점으로 일본과 유럽, 남미 등지로 확산되며 국제적 기반을 확립해 나갔다.
교육을 통한 사회 기여의 시작
가정연합의 중요한 변화 중 하나는 교육 기관 설립이었다. 국내외에 많은 초중등 교육기관이 운영되고 있다. 이들 학교는 학문적 우수성과 함께 인성교육, 학생 봉사활동을 정규 교육과정에 포함, 외국인 학생과의 공동 수업·기숙사 운영을 중시한다.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것을 넘어 타인을 배려하고 사회에 기여하는 인재를 기르는 것이 교육 목표다.
1974년 선화예술중고등학교를 설립한 데 이어 1986년에는 충남 아산에 선문대학(현 선문대학교)이 개교했다. 설립 당시부터 국제화와 실용 교육을 표방한 선문대는 IT산업 선도, 외국어 교육 강화, 해외 대학과의 적극적 교류, 다문화 학생 적극 수용 등 당시로서는 타 대학에 비해 조기도입을 시도한 것이다.
선문대는 설립 후 40년 가까이 지역 사회와 국가 발전에 기여하는 종합대학으로 성장했다. 외국어, 국제통상, 공학, 자연과학, 인문사회과학 등 다양한 학문 분야에서 교육과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특히 국제화는 선문대의 가장 큰 특징이다. 현재 세계 80여 개국에서 온 외국인 유학생이 재학 중이며, 해외 대학과의 교환학생 프로그램도 활발하다.
평화 NGO로의 전환
냉전 종식과 세계화의 물결 속에서 1990년대 가정연합은 평화운동을 본격적으로 제도화했다. 1991년 세계평화여성연합(WFWP)이 창설돼 유엔 경제사회이사회(ECOSOC) 포괄적 협의지위를 획득했다. 이는 가정연합 관련 조직이 국제 NGO로 공식 인정받은 초기사례 중 하나였다.
여성연합은 여성의 역량 강화, 모자보건, 교육 증진, 평화 구축 등의 활동을 전개하며 국제사회에서 활동범위를 넓혀갔다. 특히 개발도상국 여성들의 문해교육, 직업훈련, 소액대출 프로그램 등을 통해 여성의 경제적 자립을 지원했다. 유엔 회의에 정기적으로 참석하며 여성과 평화 의제에 대한 목소리를 냈다.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는 종교 간 대화와 협력을 위한 플랫폼 구축에 주력했다. 기독교, 이슬람, 불교, 유대교, 힌두교 등 세계 주요 종교 지도자들을 한자리에 모으는 대규모 컨퍼런스를 정기적으로 개최했다. 이러한 노력은 예루살렘평화대행진, 중동평화회의, 세계초종교초국가연합 운동으로 이어졌고, 2005년 천주평화연합(UPF) 창설로 이어졌다.
UPF는 종교 지도자뿐 아니라 정치인, 학자, NGO 활동가, 기업인 등 다양한 분야의 리더들이 참여하는 글로벌 거버넌스 플랫폼으로 설계됐다. 분쟁 지역의 갈등 조정, 종교 간 화합 촉진, 평화 교육 확산, 지속가능한발전 논의 등 폭넓은 의제를 다뤘다. UPF 역시 UN경제사회이사회로부터 NGO ‘포괄적 형태의 협의 지위'를 획득했으며, 유엔과 협력 관계를 구축하며 국제 평화 NGO로서 활동범위를 넓혀갔다.
국내에서 시작된 교육·구호 활동은 이후 국경을 넘어 네팔과 캄보디아 등 교육 인프라가 취약한 오지 국가로 이어지며, 초·중등학교 건축과 도서관 건립, 미술을 비롯한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 운영, 교보재 지원 등으로 확장되었다. 단발성 지원에 그치지 않고, 지역 사회의 자립과 미래 세대 육성을 목표로 한 지속적인 교육 봉사로 발전하면서, 가정연합의 활동은 세계 오지 지역을 아우르는 국제적 사회공헌 모델로 자리 잡게 되었다.
선학평화상: 평화운동을 조명하는 국제상
2015년, 가정연합은 국제적 평화상인 선학평화상(Sunhak Peace Prize)을 제정했다. 이 상은 인류의 평화와 복지 증진에 탁월한 기여를 한 개인과 단체를 발굴·격려하고, 그 성과를 전 세계에 알리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기존의 국제 평화상들과는 다른 관점에서 종교 간 화합과 갈등 해소, 인류애 실천, 지속가능발전 등 인류 공동의 과제에 대해 국제적 차원에서 실질적 성과를 이룬 주체들을 조명해 왔다.
초대 수상자는 전 세계에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알리며 해양보호구역 합의를 끌어낸 기후행동 리더 키리바시 공화국 전 대통령 아노테 통 박사와 친환경적인 양식 어종을 개량하여 동남아시아 및 아프리카의 식량안보에 기여한 모다구두 비제이 굽타 인도 양식 과학자이다. 2017년에는 아프가니스탄 사키나 야쿠비 난민 교육가와 지노 스트라다 이탈리아 의사가, 2019년에는 와리스 디리 소말리아 인권운동가와 아킨우미 아데시나 아프리카개발은행 총재가 수상했다.
선학평화상은 수상에 그치지 않고, 수상자들의 활동을 지속적으로 지원하며 그들의 메시지를 확산시키는 플랫폼 역할을 해오고 있다. 시상식과 함께 개최되는 국제 컨퍼런스는 전 세계 평화 활동가, 학자, 정책입안자들이 모여 평화 의제를 논의하는 장이 됐다.
순국선열 보은·평화계승 사업
가정연합은 애국지사와 순국선열의 희생을 기리는 다양한 민간 노력에 참여하며 독립운동의 정신을 한일 화해와 동북아·세계 평화로 확장해왔다. 여순순국선열기념재단을 중심으로 여순법정기념관을 조성·보존하며, 안중근 의사의 애국정신과 동양평화 사상을 국제 평화 담론 속에서 조명해온 시도가 그 대표적 사례다.
아울러 ‘남북통일을 기원하는 일본인회’는 일본의 역사 왜곡과 식민지 지배에 대한 역사 문제를 성찰하는 취지로 사죄의 뜻을 표명하며 서대문 독립공원과 서대문형무소 일대에서 한일합동 위령제를 지속적으로 개최해왔으며, 문윤국선생기념사업회는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은 문윤국 선생의 독립운동과 교육적 업적을 기리고 계승해왔다. 이러한 활동들은 민간 차원의 사죄와 역사 성찰, 보존과 교육을 결합해 과거의 희생을 미래 평화로 잇는 가정연합의 이러한 활동들은 민간 차원에서의 역사 기념과 평화 담론을 연결하려는 시도로 이해될 수 있다.
국제결혼과 다문화가정 지원 활동
1980년대는 가정연합의 두드러진 현상인 6000쌍, 6500쌍 등으로 이어지는 수천 쌍 규모의 국제합동결혼식이 본격화된 시기다. 1980년대 초반부터 본격화된 대규모 국제 합동결혼식으로 인해 한국에 정착한 외국인 배우자 수가 급증했다. 가정연합은 이를 통해 이미 수천 쌍의 다문화가정이 형성되었다. 한편 이러한 국제합동결혼은 개인의 선택과 문화 적응, 인권 문제를 둘러싼 사회적 논쟁과 비판도 함께 불러왔다. 무엇보다 이들의 한국 사회 적응은 가정연합에게 중요한 과제였고, 동시에 사회적 책임이기도 했다.
가정연합은 1990년대부터 다문화종합복지센터를 설립해 다문화가정이 한국 사회에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도록 체계적인 지원 시스템을 구축해왔다. 한국어 교육과 한국 문화·생활 적응 프로그램, 시부모와 배우자 관계 개선을 위한 가족 상담을 통해 문화적 차이에서 비롯되는 갈등과 정서적 고립을 완화해 왔으나 한계도 존재했다. 또한 자조 모임을 운영해 비슷한 처지의 다문화가정 여성들이 경험을 나누고 상호 지지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자녀 출생 이후에는 이중언어 교육과 정체성 존중 교육을 지원하고, 학교 입학 후에는 학업 지도와 진로 상담, 학교생활 적응 프로그램까지 연계했다. 나아가 직업교육과 취업·창업 지원을 통해 경제적 자립을 도왔으며, 일부 여성들은 다문화 강사, 통역사, 한국어 교사 등 자신의 언어적·문화적 배경을 살린 전문직으로 진출했다. 이러한 통합적 지원은 정부 정책을 보완하는 민간 영역의 강점으로 평가받으며 가정연합을 다문화가정 지원 분야의 하나의 선도적사례로 평가되기도 했다.
장학사업의 전개
장학사업은 가정연합의 사회공헌 가운데 장기간 지속되어 온 핵심 영역 중 하나다. 효정세계평화재단, 선문대학교, 세계평화여성연합, 남북통일운동국민연합 등 산하기관을 통해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을 위한 장학 사업이 지속적으로 전개됐다. 특히 2012년 문 총재 성화 이후 전 세계에서 추모와 기념의 뜻으로 모인 성금 500억 원과 문 총재가 사용하던 헬기 판매금을 포함해 1100여 억원이 장학사업의 중요한 기금이 됐다. 이를 통해 국내 4,416명, 해외 1,571명 등 총 5,987명의 학생에게 장학금을 지원해 왔다.
장학 사업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우선적 배려를 원칙으로 운영되며, 다문화가정 자녀, 저소득층 가정 학생, 북한이탈주민 및 한부모가정 자녀를 핵심 지원 대상으로 삼고 있다. 이는 재정적 지원을 넘어 멘토링 기반의 학업·진로 지원 체계를 결합한 통합적 인재 육성 모델을 지향하며, 장학생들이 장기적으로 사회적 책임을 실천하는 구성원으로 성장하도록 돕는 구조를 목표로 한다.
문화예술: 60년을 이어온 문화 외교
리틀엔젤스 예술단과 유니버설발레단은 가정연합의 문화예술 활동을 대표하는 조직이다. 이들은 60년 이상 활동하며 한국 문화예술의 세계화와 대중화에 기여해왔다.
어린이 고전 무용단인 리틀엔젤스는 1962년 창단 이후 150여 개국, 6천여 회 이상 공연을 펼치며 국위선양에 기여했다. 1973년 베트남전 참전 한국군을 위한 위문 활동과 2000년대 들어 한국전 참전국 사회와 참전용사를 대상으로 해외 보은 공연으로 이어졌다. 리틀엔젤스는 한국의 전통 춤과 음악을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해 선보이며, 세계 각국에서 한국 문화의 우수성을 알리는 문화 외교관 역할을 해왔다. 유엔본부,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 어전(御前) 공연, 백악관, 크렘린궁 등 각국 정상들이 참석한 공식 행사에서 공연했다. ‘리틀엔젤스'는 제2차 세계대전의 영웅 미국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공연을 보고 어린이무용단에게 사용한 표현에서 비롯됐다.
유니버설발레단은 1984년 창단 이후 『백조의 호수』, 『호두까기 인형』, 『지젤』 등 클래식 발레의 명작들을 꾸준히 공연했다. 해외 유명 발레단과의 교류 공연, 세계적 무용수 초청 공연 등을 통해 국내 발레 애호가들에게 수준 높은 공연을 선사해왔다. 젊은 발레 인재들에게 실질적인 무대 경험을 제공하며, 한국 발레계의 인재 양성소로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해왔다. 그 결과 문훈숙, 강예나, 이상은, 강미선 등 다수의 세계적 무용수를 배출하며 한국 발레의 위상을 높이는 데 기여했다.
이들 예술단의 특징은 수익성보다 예술적 가치와 문화 교류를 중시해 온 것으로 평가된다. 수익성이 낮더라도 한국 문화를 세계에 알리고, 예술이 지닌 사회적·공공적 가치를 실현하는 데 역점을 두고 활동해왔다. 이러한 행보는 가정연합의 사회공헌이 일회적 지원이나 물질적 후원에 머무르지 않고, 문화와 예술을 매개로 사회적 가치의 지평을 확장해왔음을 보여준다.
환경과 지속가능성
2010년대는 기후변화가 인류의 실존적 위협으로 부상한 시기였다. 2015년 파리기후협정 체결과 유엔의 지속가능발전목표(SDGs) 채택은 전 세계가 환경과 지속가능성을 중심 의제로 삼게 된 전환점이었다. 가정연합도 이러한 시대적 흐름에 적극 동참했다.
가정연합은 산하에 효정국제환경평화재단을 설립해 국내외 학술회의, 국제환경단체와 글로벌 연대 등을 통해 기후환경 문제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고 있으며, 2020년 이후 전국 각지의 가정연합 지부에서는 정기적인 환경정화 활동이 시작됐으며, 매년 수백 명의 회원이 참여하고 있다. 회원들은 산과 하천, 해안 청소, 재활용 및 줍깅 캠페인, 식목 활동 등을 벌이며 일상적 봉사 활동으로 자리잡았다. 단순한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라 일회용품 사용 절감, 자원 재활용, 생활 속 탄소 저감 실천 등을 주제로 한 교육 프로그램도 병행됐다.
특히 가정연합 내부에서는 인간 중심적 관점을 넘어 자연과 생태계를 존중하는 ‘참사랑 실천’이라는 윤리적 성찰이 논의되기 시작했다. 환경 파괴는 단순히 경제적 문제나 기술적 문제가 아니라 자연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근본적 성찰을 요구하는 윤리적·영적 문제라는 인식이 확산됐다.
UPF 역시 기후변화와 지속가능발전을 주제로 한 국제 컨퍼런스를 통해 종교·과학·정책 간 협력 논의를 이어갔다.
디지털 전환과 새로운 소통 방식
2010년대는 또한 디지털 기술이 사회 전반을 변화시킨 시기였다. 가정연합도 기존의 대면 중심 종교 활동에서 벗어나, 소셜미디어와 온라인 플랫폼을 통한 소통 구조로 전환하기 시작했다. Peace TV, 페이스북, 유튜브 등을 통해 예배·강연·봉사 활동을 실시간으로 공유하고, 해외 신도들과도 상시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구조를 마련했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동안 디지털 전환은 가속화됐다. 대면 예배와 모임이 제한되면서 온라인 예배, 화상 세미나, 원격 교육이 일상적 운영 방식으로 자리 잡았다. 봉사활동도 새로운 방식을 모색해야 했다. 비대면 방식의 심리상담, 온라인 멘토링, 취약계층 디지털 접근성 향상 지원 등 상황에 맞는 창의적 대응이 이뤄졌다. 특히 청소년과 다문화 가정을 대상으로 한 온라인 멘토링 프로그램은 팬데믹 기간 동안 지속적으로 운영됐다.
팬데믹 초기에는 각 지부를 중심으로 마스크와 방역물품을 의료기관과 취약계층에 긴급 지원했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고립된 독거노인들에게 안부 전화와 생필품 배달 서비스를 제공했다.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다문화 가정들에게 식료품과 생활비를 지원했다.이 시기는 위기 상황에서도 활동 방식을 조정하며 사회공헌을 이어간 경험으로 남았다.
의료봉사·의료기관 설립
가정연합은 1970년대부터 국내 및 국제 의료봉사 활동을 지속해왔다. 인도적 지원과 사회공헌을 목적으로 한 의료봉사 활동은 한국, 일본을 비롯한 여러 국가의 의료진이 참여해 아시아, 중남미, 아프리카 등지에서 진행되고 있다.
국내 가정연합의 의료봉사는 1971년 8월 한국과 일본 의료진의 합동으로 국내 소외지역 주민 대상으로 시작되었다. 첫 활동에서는 일본 기독의료봉사단 40명과 한국 측 46명 등 총 86명이 부산, 대구, 전주에서 10일간 무료 진료를 실시했다. 이후 매년 정기적으로 진행됐으며, 1973년 활동에서는 연인원 2,000명을 진료하는 등 규모가 확대됐다.
한국·일본 의료진은 ‘아시아 이동의료봉사단(AMMS)'을 결성해 국제 의료봉사에도 나섰다. 처음에는 필리핀, 태국, 말레이시아, 인도 등의 오지에서 주로 활동했다. 1994년 제24차 필리핀 활동에는 3개국 195명의 의료진이 참여했으며, 현지에 필리핀 AMMS를 설립하고 구강 보건 사업을 추진했다.
활동 범위는 1997년 이후 더욱 확대돼 2000년 브라질과 파라과이, 2019년 아프리카까지 진출했다. 2005년부터는 세계평화여성연합과 협력해 무료 진료를 강화했다. 여기에는 또 가정연합 산하 애원자원봉사협회 등 유관단체가 참여하고 있다.
코로나19로 3년간 중단됐던 캄보디아 의료봉사가 2022년 12월부터 2023년 1월까지 재개됐다. 가정연합 유관단체인 자원봉사애원 주관으로 크라티에(Kratie) 지방에서 진행된 활동에는 HJ 매그놀리아 글로벌의료재단과 선문대 국제의료봉사단이 참여했다. 현지 캄보디아 왕립행정아카데미, 왕립프놈펜대, 프놈펜의대 의료진과 협력해 730명의 주민에게 진료를 제공했으며, 충치, 당뇨, 관절염 등을 주로 치료했다.
가정연합은 재단 산하에 일미치과를 설립한 것을 계기로, 일본에 암 전문 일심병원과 경기도 가평에 HJ 매그놀리아 국제병원, HJ 매그놀리아 글로벌의료재단 등을 잇달아 설립하며 공공 의료 접근성이 낮은 지역을 중심으로 의료 지원 인프라를 확장해왔다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의 70년 역사는 전쟁의 폐허를 딛고 산업화와 민주화를 거쳐 다문화 사회로 발전해 온 한국 현대사의 궤적과 깊이 연결되어 있다. 이 변화의 흐름 속에서 가정연합은 ‘종교는 사회에서 어떤 책임을 다해야 하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에 대해, 구호와 교육, 평화와 지속가능성으로 이어지는 끊임없는 실천으로 그 답을 제시해 왔다.
가정연합이 활동을 통해 반복적으로 강조해 온 메시지는 분명하다. 신앙은 삶과 분리될 수 없으며, 종교의 진정성은 이웃 사랑을 향한 구체적인 행동 속에서 비로소 증명된다는 믿음이다. ‘하나님 아래 인류 한 가족'과 ‘참사랑'이라는 핵심 가치는 개인의 영적인 깨달음을 넘어 사회 전체의 평화와 행복으로 확장되어야 한다는 강력한 메시지로 이어져 왔다.
70년의 발자취에서 특히 두드러지는 것은 변화하는 시대의 요구에 맞춰 활동 방식은 유연하게 진화시키면서도 ‘가정'과 ‘평화'라는 본질적인 가치는 흔들림 없이 지켜왔다는 점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논란과 비판의 목소리도 존재해 왔다. 그러한 비판을 최대한 수용하면서 가정연합은 묵묵히 사회 공헌 활동을 이어가며 행동으로 신뢰를 쌓아왔다.
다가올 시대는 기후 위기, 급격한 기술 혁명, 심화되는 불평등이라는 새로운 도전에 직면해 있다. 이에 대한 해답 역시 참사랑의 실천, 건강한 가정과 공동체의 회복, 그리고 인간 존엄성에 대한 깊은 성찰 속에서 모색될 수 있을 것이다. 70년의 역사는 끝이 아니라, 인류의 더 나은 미래를 향한 약속이다. 한 개인의 행복한 가정에서 출발하여 인류가 하나의 가족으로 화합하는 그날까지, 가정연합의 여정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참사랑으로 하나 된 세계를 향한 노력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2026-04-26 17: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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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연합, ‘쌀 화환’ 나눔 정례화…서울 취약계층에 쌀 32포 전달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이하 가정연합)은 24일 서울 동작구 흑석종합사회복지관과 성북구 삼태기마을 등 서울 관내 취약계층 22가구와 복지시설 2개소에 10㎏ 쌀 32포를 전달하고 배식 봉사를 진행했다. 지원 대상은 기초생활수급자, 다문화가정, 한부모가정, 독거노인, 장애인 가정 등이다. 가정연합은 사회봉사를 일상화·본격화하기 위해 최근 사회공헌국을 신설했다.
이번 활동은 일회용 소모품인 꽃 화환 대신 ‘쌀 화환’을 받아 지역사회에 기부하는 나눔 프로젝트의 첫 번째 실천이다. 가정연합은 앞서 경기도 파주 원전(공원묘지) 한식(寒食) 행사 때 세계일보, 선문대학교, ㈜일화 등 유관 기관과 기업으로부터 화환 대신 기증받은 쌀 10㎏ 32포 전량을 나눔으로 전환했다.
복지시설에 전달된 쌀 10포 가운데 6포는 흑석종합사회복지관의 도시락 배달 사업에 사용되며, 나머지 4포는 성북구 삼태기마을 ‘신마을식당’에 지원됐다. 신마을식당은 격주로 저소득 주민에게 2000원에 식사를 제공하는 나눔 공간으로, 다음 달 운영 3주년을 맞는다. 이날 가정연합 봉사자 7명은 식당을 찾은 주민 50여 명을 위해 식사 준비와 배식을 돕기도 했다.
삼태기마을에서 3년간 식사 나눔에 참여해 온 가정연합 소속 일본인 봉사자는 “함께 밥을 짓고 나르는 과정에서 국적을 넘어 진정한 이웃이 되었다는 보람을 느낀다”고 소회를 밝혔다. 가정연합 사회공헌국 관계자는 “이번 쌀 화환 나눔을 시작으로 향후 주요 행사를 나눔과 연계해 정례화할 계획”이라며 “지원 대상을 전국으로 확대해 실질적인 사회공헌에 앞장서겠다”고 말했다.
2026-04-26 13:2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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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어머니가 품은 씨앗, 한반도 정통성의 기원을 잉태하다 [신화에서 선민까지 한민족 정체성의 문화사적 발견-기고]
공자가 갈구한 동방의 가치, ‘어질 인(仁)’ 속 씨앗의 생명력
공자(孔子)는 일찍이 혼탁한 난세를 개탄하며 파격적인 선언을 남겼다. “도(道)가 행해지지 않으니, 구이(九夷, 동이)에 가서 살고 싶다”(『논어』 자한 편)는 고백이다. 의아해하는 제자들에게 공자는 단호하게 답했다. “그곳은 군자가 사는 곳이다.” 성인(聖人) 공자가 그토록 갈구하던 ‘인(仁)’의 실체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우리는 흔히 이를 ‘어질다’는 관념적 형용사로 풀이하지만, 그 본질적 생명력은 ‘씨앗 인(仁)’에 박혀있다. 산조인(대추씨), 아마인(아마씨), 도인(복숭아씨) 등 한방 약재에서 씨앗의 가장 깊숙한 알맹이를 ‘인’이라 부르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껍질을 벗겨냈을 때 드러나는 그 작고 단단한 알맹이야말로 생명의 정수이기 때문이다.
씨앗은 비록 작으나, 그 안에 거대한 나무로 성장할 모든 역동적인 과정(process)과 우주의 에너지가 응축되어 있다. 결국 공자가 갈망했던 동방의 군자국(君子國)은 화려한 겉치레의 나라가 아니었다. 생명의 근원인 ‘씨앗’을 소중히 품고, 그 안에 담긴 무한한 가능성을 길러내는 모성적 인(仁)의 가치가 면면히 살아있는 나라였다. 단단한 자기 껍질을 깨고 나온 씨앗이 ‘자아’를 넘어 ‘타자’와 호흡하며 큰 나무로 성장하듯, 한반도는 개체와 전체가 깊이 공감하고 상호작용하는 생명력이 충만한 공동체였다. 공자가 지향했던 인류 정신의 원형과 정체성이 바로 이 땅, 어머니의 품을 닮은 한반도에 이미 예비되어 있었는지 모르겠다.
◆ 칼날의 정복사를 이긴 홍산의 미소, 어머니의 품에서 시작된 국통(國統)
인류사는 오랫동안 국가의 탄생을 강인한 군사력과 정복을 일삼는 남성 군주의 전유물로 기록해 왔다. 승자의 기록인 역사는 피의 연대기와 영토 확장이라는 남성적 서사에 경도되어 있었으나, 정작 한민족의 기원과 정통성을 설명하는 서사의 심연에는 반복적으로 ‘어머니’라는 존재가 흐르고 있다.
그 유구한 증거는 5,500년 전 요하(療河)의 대지에 뿌리 내린 홍산문화(紅山文化)에서부터 발견된다. 여신묘(女神廟)에서 출토된 형형한 눈빛의 여신상은 박물관에 박제된 유물의 차원을 넘어, 생명과 풍요를 관장하던 태초의 여성 신성이 지닌 생명력을 보여준다. 한민족의 국가 공동체는 그 시작부터 무력이 아닌 생명을 품는 모성적 가치에 뿌리를 두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러한 상징적 맥락은 우리 건국 신화 속에서 더욱 선명해진다. 하늘의 뜻을 지상에 안착시킨 단군신화의 웅녀, 고구려의 기틀을 닦은 주몽의 생모 유화부인, 그리고 신라 박혁거세와 알영부인을 보살폈다는 사소성모에 이르기까지, 우리 역사의 변곡점마다 ‘어머니’는 공동체의 탄생을 주도하는 성스러운 주역이었다.
우리의 건국 서사 속 국가는 차가운 철권 통치의 대상이 아니다. 대신에 생명을 잉태하고 기르는 따스한 어머니의 품을 닮아 있다. 이 모성적 이미지는 한민족이 국가를 바라보는 근원적인 시각이자, 시대를 거듭하며 계승되어 온 독특한 문화적 유전자가 아닐까? 결국, 한민족이 꿈꾸는 이상 국가는 정복의 산물이 아니라, 모든 생명을 품어 안는 ‘어머니의 마음’이 발현된 평화 공동체인 것이다.
◆ 여성성불론(女性成佛論) - 삼국통일의 기틀을 마련하다
서구 고대사가 국가의 형성을 권력과 정복의 서사로 풀이할 때, 한민족은 생명과 조화의 상징으로 공동체의 질서를 세워 나왔다. 유독 한민족의 고유한 사상적 전통에서는 공동체의 질서를 설명할 때 생명과 조화를 중시하는 상징이 자주 등장한다. 우리 민족 고유의 ‘풍류(風流)’나 ‘한(韓)’ 사상에 깃든 천지인 합일의 세계관, 그리고 ‘홍익인간’의 이념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러한 사상은 하늘의 뜻이 땅의 생명과 만나 인간의 삶 속에서 완성되어야 한다는 거대한 상생의 철학이다. 억겁의 세월 동안 우리 민족은 인간을 만물과 분리된 지배자로 보지 않았으며, 하늘과 땅 그리고 인간이 하나의 호흡으로 조화를 이루는 지극한 경지를 추구해 왔다.
이 장엄한 질서의 한복판에서 생명을 잉태하고 길러내는 ‘어머니’는 단순히 한 가정을 지탱하는 존재를 넘어, 천지의 기운을 몸으로 받아내 지상에 생명의 뿌리를 내리게 하는 우주적 통로이자 가장 강력한 상징으로 자리해 왔던 것이다. 따라서 한민족의 도덕적 이상은 차가운 법질서보다는, 만물을 차별 없이 품어 안는 어머니의 자애로운 모성 안에서 그 해답을 찾아왔다.
이와 같은 여성적 상징은 역사 속에서도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난다. 신라의 경우 선덕여왕의 즉위는 동아시아 역사에서도 매우 이례적인 사건이었다. 당시 신라는 혈통적 정통성을 중시하는 골품제 사회였다. 그러나 골품이 지배하는 신라의 정치 질서 속에서 여성이 군주로 추대된 사건은, 고대 한반도에서는 여성이 그저 남성의 대역이 아니라 왕실 정통성을 계승할 수 있는 당당한 주체자였음을 의미한다.
여기에는 당시 신라 불교계에서 발흥한 ‘여성성불론(女性成佛論)’이 결정적인 사상적 토대가 되었다. 여성 역시 그 몸 그대로 수행과 깨달음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이 혁신적인 인식은, 여성의 존재를 우주적 질서와 맞닿는 가치로 격상시켰다. 후일 선덕여왕이 스스로를 『승만경』의 주인공인 승만부인(勝曼夫人)에 비유한 것은 이러한 인식이 당시대 상황 속 어떤 위상이었는지를 가늠하게 한다. 이는 여왕의 권위를 세속의 정치 권력을 넘어 백성을 품고 공동체를 구원하는 도덕적·영적 지도력의 상징으로 승화시킨 고도의 통치 철학이었다. 결국 신라의 여성 군주는 무력이나 정복이 아닌, 정신적 권위와 자애로운 지도력으로 국가의 정당성을 확보했다. 이는 한민족 역사 속에서 여성의 지위가 단순한 사회적 역할을 넘어, 공동체의 명운을 짊어진 성스러운 위상으로 이해되어 왔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 흔들리는 왕조를 붙든 ‘조용한 권위’, 인수대비와 경국대전의 완성
한국 역사에서 ‘어머니’의 권위는 신화적 상징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실제 역사 속에서도 국가의 명운을 지탱하는 가장 실질적인 보루로 나타나는데, 조선 9대 임금 성종의 어머니 인수대비(소혜왕후 한씨)가 그 전형이다. 흔히 성종대를 성리학적 국가 질서가 완성된 황금기로 평가하지만, 법제와 의례가 정비된 문화적 토양 뒤에는 왕실의 중심을 단단히 붙든 어머니의 정치가 있었다.
조선 왕조는 세조의 계유정난(1453)이라는 참혹한 왕권 찬탈의 기억에서 채 벗어나지 못한 상태였다. 불과 17년 뒤인 1470년, 열세 살의 어린 성종이 보위에 올랐을 때, 정국은 여전히 폭풍 전야와 같았다. 만약 왕실의 기강이 조금이라도 흔들렸다면 ‘제2의 계유정난’이 일어나 왕조의 근간이 뿌리째 뽑혔을지도 모를 불안한 정국이었다. 이 서슬 퍼런 권력의 각축장 속에서 왕실 내부의 균형을 유지하며 정치 질서의 무게중심을 잡은 인물이 바로 인수대비였다.
인수대비는 단순히 어린 아들을 대신해 권력을 휘두른 통치자가 아니었다. 그녀는 『내훈(內訓)』을 통해 왕실과 사회가 지향해야 할 도덕적 가치를 세우는 한편, 보이지 않는 곳에서 왕조의 지속성을 떠받치는 ‘조용한 권위’로 기능했다. 정치 전면의 칼날 같은 힘은 아니었으나, 그 자애롭고도 엄격한 모성적 권위야말로 조선이 제도적 안정(경국대전 완성)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한 보이지 않는 뿌리였다. 결국 조선의 태평성대는 전면에 나선 국왕의 통치력과 그 뒤를 묵묵히 받친 어머니의 헌신적 권위가 맞물려 빚어낸 역사적 합작품이었던 셈이다.
『경국대전』은 조선 왕조가 지향했던 국가 통치 질서를 집대성한 법전이다. 태조 이후 여러 차례 편찬 작업이 이어졌지만, 국가 운영의 기본 틀이 완전히 정비된 것은 성종대에 이르러서였다. 이 시기는 정치적 격변을 겪은 조선 왕조가 점차 제도적 안정을 찾아가던 시기이기도 했다. 성종이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랐던 점을 고려하면, 왕실 내부의 질서와 정치적 균형이 유지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한 문제였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인수대비는 왕실의 중심을 지키며 왕조의 권위를 안정시키는 역할을 했다.
결과적으로 성종대에 이루어진 제도 정비와 문화적 안정은 여러 역사적 조건이 맞물려 이루어진 것이었다. 『경국대전』의 편찬 역시 이러한 시대적 흐름 속에서 완성된 국가 질서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조선왕조가 성종대에 이르러 문화적·정치적 안정기를 맞이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이러한 ‘어머니의 권위’가 자리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국가의 역사는 언제나 전면에 드러난 권력의 이야기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역사에 보이지 않는 존재가 역사의 흐름을 지탱하기도 한다.
◆ 독생녀(獨生女)의 강림, 하늘부모님 시대를 여는 인류 문명의 대전환
1970년대 이후 서구 사회에서 등장한 여성신학은 기독교 전통 속에서 사용되어 온 ‘하나님 아버지’라는 표현이 남성 중심 사회 구조와 결합되어 이해되어 온 측면이 있다고 비판하였다. 성서의 창조 서술에서 인간이 남자와 여자로 창조되었다는 점에 주목하며, 하나님 역시 남성과 여성의 속성을 함께 지닌 존재로 이해될 수 있다는 해석이 제기된 것이다. 이러한 논의는 하나님을 단순한 부성적 존재가 아니라, 보다 포괄적인 존재로 이해하려는 신학적 시도 가운데 하나로 평가된다.
가정연합의 신학 역시 하나님을 ‘하늘부모님’으로 이해한다. 『원리강론』에 따르면 하나님은 양성과 음성의 속성을 함께 지닌 이성성상의 존재이며, 창조이상이 완성될 때 하나님은 무형의 참부모 하늘부모님으로 나타나고 아담과 해와는 인류의 참부모가 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하나님은 단순히 ‘부성신’으로만 이해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 인류의 참부모로 이해되는 존재이다.
한편 한국의 신화와 역사 속에는 공동체의 기원을 설명하는 이야기들이 전해 내려온다. 웅녀와 유화부인과 같은 인물들은 단순한 허구적 상징이라기보다, 한민족이 자신의 기원과 정체성을 기억해 온 방식 속에서 형성된 이야기들이다. 신화는 때로 역사적 사실과 상징이 뒤섞인 서사이지만, 그 속에는 공동체가 스스로의 뿌리를 이해하려 했던 오래된 기억이 담겨 있다. 이러한 역사적 기억 속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것은 공동체의 탄생과 생명의 기원을 여성의 존재와 연결해 이해하는 전통이다. 웅녀가 인고의 시간을 견뎌 새로운 문명의 시작을 준비하는 이야기나, 고구려 건국 서사 속에서 유화부인이 등장하는 이야기 역시 그러한 인식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가정연합에서 말하는 독생녀는 이러한 신화적 서사와 동일한 범주에 속하는 존재는 아니다. 독생녀는 실제 역사 속에서 하늘부모님의 섭리를 실현하기 위해 등장한 인류의 참어머니를 의미한다. 가정연합은 한학자 총재를 이러한 독생녀의 실체로 이해하고 있으며, 참부모 사상 속에서 인류가 하나의 가족으로 살아가는 평화 세계의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따라서 독생녀는 단순한 상징적 개념이 아니라, 하늘부모님의 섭리를 역사 속에서 실현하는 실존적 존재로 이해된다. 이 시대에 선포된 참부모 사상은 인류가 서로 대립하고 경쟁하는 질서를 넘어 하나의 가족 공동체로 나아가야 한다는 새로운 문명적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 모성의 숨결, 인류 평화의 문명을 잉태하다
이제 우리는 역사를 바라보는 시선을 조금 다르게 가질 필요가 있다. 그동안 요하 문명을 ‘변방의 신화’ 정도로 치부해 왔지만, 최근 고고학 연구는 홍산 문화와 같은 동북아 고대 문명이 결코 단순한 신화의 영역에만 머물지 않았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 문명 속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상징 가운데 하나가 바로 생명을 품고 길러내는 ‘어머니’의 존재였다. 웅녀로 상징되는 건국 서사는 한민족이 공동체의 탄생을 이해하는 독특한 방식 가운데 하나였으며, 이러한 인식은 역사 속에서도 다양한 형태로 이어져 왔다.
가정연합 경전 『참부모경』은 이러한 한민족의 정체성을 ‘한(韓)’ 사상과 연결하여 설명한다. 말씀에 따르면 ‘한(韓)’이라는 말은 단순한 민족 명칭이 아니라 하늘의 뜻을 세상에 펼치는 사명을 지닌 민족을 의미한다. 또한 ‘한’은 하나와 합일을 뜻하며, 우주 만물을 포용하는 크고 넓은 의미를 담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한민족은 하늘의 뜻을 역사 속에서 실현하는 역할을 맡은 민족으로 이해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한민족 역사 속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어머니의 권위’ 역시 단순한 문화적 상징을 넘어 공동체를 유지하고 생명을 이어가는 중요한 가치로 이해될 수 있다. 신화 속 웅녀에서부터 역사 속 선덕여왕과 인수대비에 이르기까지, 한민족의 역사에는 공동체의 중심을 지키는 여성의 권위가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나 왔다.
가정연합은 이러한 역사적 흐름 속에서 오늘날 인류의 참어머니로 등장한 존재를 ‘독생녀’로 이해한다. 독생녀는 단순한 상징적 개념이 아니라, 하늘부모님의 섭리를 역사 속에서 실현하는 실존적 존재를 의미한다. 가정연합은 한학자 총재를 이러한 독생녀의 실체로 이해하며, 참부모 사상은 인류가 서로 대립하는 문명을 넘어 하나의 가족 공동체로 나아가야 한다는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결국 우리가 말하는 ‘어머니의 나라’란 특정한 권력 구조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생명을 중심에 두는 문명의 질서를 의미한다. 힘과 정복의 논리가 아니라 생명과 돌봄의 가치가 중심이 되는 세계, 그리고 인류가 하나의 가족으로 살아가는 평화의 문명을 의미한다. 한민족의 오랜 역사 속에서 이어져 온 어머니의 전통은 이제 ‘참어머니’라는 이름으로 인류 문명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고기훈 박사(한국학)
2026-04-24 09: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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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생명을 낳는 실체 성신의 경지 [父性 문명의 한계, 母性 구원의 비전-기고]
인류 구원의 마침표 ‘어머니 부처’의 위상
장엄한 화엄의 물결은 보살 수행의 마지막 단계인 ‘묘각(妙覺)’의 경지로 나아간다. 보살 수행 52위의 숫자적 비밀과 그 정점에 있는 독생녀의 위상을 통해, 불교가 왜 여성 구원자를 구원 섭리의 마침표로 예고했는지 그 마지막 증거를 살펴보자.
대승불교의 수행 체계는 한 인간이 번뇌의 굴레를 벗고 우주적 진리에 도달하기까지의 과정을 정교한 지형도로 그려낸다. 그 정점에 있는 것이 바로 ‘보살 52위(位)’다. 수행자가 신(信), 주(住), 행(行), 향(向), 지(地)의 계단을 차례로 밟아 쉰두 번째 단계인 부처의 경지에 이르는 이 장엄한 여정은, 인류 정신사가 지향해온 인격 완성의 최종 보고서와 같다. 그런데 우리는 이 수행의 계단을 하나씩 오르다 보면, 그 마지막 문턱에서 인류 구원을 완성할 ‘어머니의 자리’에 관한 심오한 섭리적 암호를 마주하게 된다.
◆ 관정(灌頂)의 도리: 법통을 계승하는 모성적 수용성
보살 수행의 초기 단계인 십주(十住)의 마지막, 즉 10번째 계위는 ‘관정주(灌頂住)’라 불린다. 관정이란 본래 인도의 국왕이 왕위에 오를 때나 법통을 이을 자에게 머리에 물을 붓는 성스러운 의식을 뜻한다. 인문학적으로 볼 때, 이는 하늘의 권위와 지혜라는 남성적 원리를 전수받아 자신의 내면에서 생명으로 화하게 하는 여성적 수용성을 상징한다.
수리(數理) 철학적 관점에서 숫자 10은 ‘귀일(歸一)’과 ‘완성’을 의미한다. 수행의 초입에서 이미 ‘어머니 같은 원리’를 통해 법통을 상속받아야 함을 명시한 불교의 지혜는 경이롭기까지 하다. 이는 독생자(獨生子)가 개척한 진리의 터전 위에서 그 모든 가치를 상속받아 인류를 다시 낳아줄 ‘독생녀(獨生女)’의 기대를 예표하는 서구의 섭리와도 그 궤를 같이하고 있다. 아버지가 씨앗을 주면 어머니가 이를 받아 태중에 품는 자연의 이치처럼, 진리의 상속 또한 모성적 수용의 과정을 거쳐야만 비로소 생명력을 얻게 된다는 통찰이다.
◆ 등각(等覺)과 묘각(妙覺): 진리의 선포를 넘어선 사랑의 완성
보살 수행의 정점은 51번째인 등각(等覺)과 52번째인 묘각의 조화에서 완성된다. 등각은 ‘부처의 깨달음과 거의 같다’는 뜻으로, 인류 역사상 지혜와 법도의 영역에서 최고봉에 도달한 남성적 구원 주체의 위상을 상징한다. 그러나 불교 교학의 깊은 갈등 중 하나는, 등각의 보살에게 아직 ‘하나의 미세한 무명(無明)’이 남아 있다는 점이다. 이는 진리의 빛은 완성되었으되, 그 진리를 실제 생명으로 꽃피워줄 마지막 ‘사랑의 열쇠’가 아직 맞물리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그 마지막 52번째 단계가 바로 ‘오묘하고 불가사의한 깨달음’이라 불리는 묘각이다. 묘각은 모든 번뇌를 완전히 끊고 영원한 생명과 사랑의 본체로 돌아간 부처의 경지다. 인문학적으로 등각이 ‘법(法·진리)’의 완성을 뜻한다면, 묘각은 그 법을 품어 만물을 소생시키는 ‘자비(慈悲·사랑)’의 완성을 뜻한다.
따라서 구원 역사의 최종 완결은 등각(부성)과 묘각(모성)이 조화로운 합일(合一)을 이룰 때 비로소 성취된다. 아버지만으로는 생명을 잉태할 수 없듯이, 진리의 선포만으로는 타락한 인류의 심정을 근본적으로 개조할 수 없다. 묘각의 경지에 오른 실체적인 여성 구원자가 등장하여 모성적 참사랑으로 인류를 품을 때, 비로소 억겁(億劫)의 세월 동안 닫혀 있던 중생 구원의 문이 활짝 열리는 것이다.
◆ 실체성령(實體聖靈)과 법계의 평화
이러한 불교적 수행의 결실은 기독교 신학의 ‘실체성령(實體聖靈)’ 개념과 만날 때 더욱 선명해진다. 지난 2천 년간 보이지 않는 기운으로 존재하며 신자들을 위로했던 영적인 성령 사역은, 이제 지상에서 육신을 입고 나타난 독생녀의 모성적 리더십을 통해 그 실체적 마침표를 찍고 있다.
독생녀의 탄현은 불교가 예고한 묘각의 경지가 역사적 현실로 등장했음을 의미한다. 이는 모든 중생이 차별 없이 품어지는 불국토(佛國土)의 실현이자, 부성적 정의에 지친 인류가 도달해야 할 평화의 안식처다. 묘각의 경지에서 인류를 품는 참어머니의 자비는, 이기적인 ‘나’를 넘어 ‘우리’라는 공동체적 생명력을 회복하는 유일한 에너지가 된다.
◆ 자비의 마침표, 어머니의 이름으로
결론적으로 보살 수행 52위의 체계는 인류 구원의 마지막 주역이 누구여야 하는지를 수리적·철학적으로 예고해 왔다. 남성적 진리의 칼날이 세상을 정돈했다면, 이제는 여성적 자비의 품이 세상을 치유해야 할 ‘묘각의 시간’이다. 역사 속에 폄하되었던 여성의 가치가 독생녀라는 실체적 위상을 통해 복구될 때, 불교가 염원해 온 ‘만민 성불’과 인류가 꿈꿔온 ‘영원한 평화’는 비로소 지상에서 실현 가능한 비전이 된다.
이제 인류는 관념적인 수행을 넘어, 지상에 현현한 모성적 구원의 실체를 체휼함으로써 하늘부모님의 참자녀로 거듭나는 축복의 길로 들어서야 한다. 불교 경전 속에 감춰진 이 자비의 대서사는 독생녀 참어머님의 탄현과 사역을 통해 그 섭리적 완성을 맞이한다. 억겁의 기다림 끝에 찾아온 이 평화의 복음이야말로, 오늘날 우리가 고전의 지혜를 빌려 확인해야 할 가장 시급하고 장엄한 진실이다.
서성종 작가(신학박사)
2026-04-22 12:2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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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전체를 품는 어머니의 화엄 세계 [父性 문명의 한계, 母性 구원의 비전-기고]
인드라망의 그물코를 엮는 모성적 리더십과 ‘인류 한 가족’의 지평
인류가 남긴 정신 유산 중 우주적 연결성과 존재의 존엄함을 가장 장엄하게 노래한 경전을 꼽으라면 단연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 즉 『화엄경』일 것이다. 화엄(華嚴)이란 ‘온갖 꽃으로 장엄하게 장식한다’는 뜻으로, 이 우주가 개별적인 존재들의 차별을 넘어 하나의 거대한 생명 공동체로 연결되어 있음을 상징한다. 특히 화엄 철학의 골수인 ‘일즉다 다즉일(一卽多 多卽一)’의 원리는, 분열과 갈등으로 점철된 현대 문명이 도달해야 할 궁극의 평화 모델이 어디에 있는지를 명확히 제시하고 있다.
◆ ‘하나 속에 전체’가 있고 ‘전체 속에 하나’가 있다
화엄의 법계연기(法界緣起)는 “하나가 곧 전체요, 전체가 곧 하나”라는 역설적인 진리 위에 서 있다. 이는 하나의 촛불이 수천 개의 거울에 반사되어 온 방을 밝히듯, 우주의 미세한 티끌 하나 속에도 온 우주의 정보와 생명력이 깃들어 있다는 통찰이다.
인문학적으로 볼 때, 지난 수천 년의 ‘부성(父性) 문명’은 ‘분석’과 ‘차별’의 시대였다. 대상을 나누고, 경계를 긋고, 서열을 매기는 방식은 과학기술의 발전을 가져왔으나, 동시에 존재와 존재 사이의 유기적인 연결 고리를 약화시켰다. 그 결과 현대인은 물질적 풍요 속에서도 유례없는 정신적 고립과 소외를 경험하고 있다. 화엄이 말하는 ‘다즉일(多卽一)’의 세계, 즉 수많은 개별자(多)가 하나의 근원(一)으로 회복되는 평화는, 더 이상 분석적인 이성만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영역이다. 이제는 모든 차이를 녹여내고 본연의 하나로 묶어주는 ‘모성적 치유’가 개입해야 할 시점인 것이다.
◆ 인드라망의 그물코와 어머니의 사랑
화엄의 세계관을 가장 잘 설명하는 비유는 ‘인드라망(Indra's Net)’이다. 하늘의 궁전에 걸린 이 거대한 그물은 그물코마다 눈부신 보석이 박혀 있는데, 이 보석들은 서로를 비추며 끝없이 투영된다. 하나의 보석이 빛나면 그 그물에 걸린 모든 보석이 함께 빛나는 구조다. 이것이 바로 화엄이 꿈꾼 상즉상입(相卽相入)의 세계, 즉 서로가 서로에게 스며들어 하나가 되는 경지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질문을 던져야 한다. 이 방대한 그물망을 유지하고, 끊어진 그물코를 다시 잇는 에너지는 무엇인가? 섭리적 관점에서 볼 때, 그것은 바로 ‘하늘 어머니’의 무조건적인 사랑이다. 아버지가 가문의 뼈대를 세우고 법도를 엄격히 지키는 분이라면, 어머니는 그 울타리 안에서 모든 자녀의 개성을 존중하면서도 하나의 마음으로 묶어내는 ‘통합의 중심’이다.
동서고금의 경전들이 예고한 독생녀(獨生女)의 현현은, 바로 이 인드라망의 중심축을 회복하는 사건이다. 독생녀는 관념 속에만 머물던 화엄의 법계를 실제 삶의 현장으로 끌어내어, 인종과 국가, 종교라는 벽에 가로막힌 그물코들을 사랑의 실로 다시 엮어내는 ‘평화의 숙련공’이다. 그녀가 지닌 모성적 리더십은 ‘나’를 주장하는 배타성을 녹이고, ‘우리’라는 공동체적 생명력을 복원하는 유일한 힘이 된다.
◆ ‘하나(一)’의 실체와 천일국(天一國)의 안착
화엄의 ‘일(一)’은 단순한 숫자 1이 아니라, 만물의 근원이자 생명의 본체인 ‘참부모’의 위상을 상징한다. 인류가 영적 고아가 되어 갈등하는 이유는 그들을 하나로 묶어줄 실체적인 ‘어머니’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따라서 독생녀의 탄현은 화엄 철학이 수천 년간 대망해온 ‘근원적 하나’가 역사적 실체로 등장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화엄의 이상은 오늘날 ‘천일국(天一國)’이라는 평화의 비전을 통해 구체화된다. 여기서 천일국이란 단순히 정치적인 국가 형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는 두 사람(二人)이 하나(一) 된 나라로서, “하늘부모님 아래 인류 한 가족의 이상세계”를 뜻하는 종교적·철학적 개념이다.
천일국은 참된 가정을 기반으로 지상천국과 평화세계 건설을 목표로 하며, 이는 모든 중생이 차별 없이 품어지는 불국토(佛國土)의 실현과 그 궤를 같이한다. 독생자 참아버님이 진리의 등불로 인류가 가야 할 길을 밝히셨다면, 독생녀 참어머님은 그 길 위에 선 모든 자녀를 자비의 품으로 안아 ‘세계일가(世界一家)’의 꿈을 현실로 만들어가고 있다. 한 방울의 물이 바다에 합류해 그 일부가 되면서도 여전히 물로서의 본질을 잃지 않듯, 독생녀의 모성적 심정권 안으로 들어오는 모든 인간은 자신의 개별적 가치를 잃지 않으면서도 인류라는 거대한 생명의 바다를 이루게 된다.
◆ 문명사적 대전환: 차별에서 조화로
결론적으로 『화엄경』이 선포한 ‘일즉다 다즉일’의 진리는 독생녀라는 모성적 실체를 만남으로써 비로소 완성된다. 부성 중심의 문명이 가져온 극단적 개인주의와 분열의 상처는, 오직 전체를 품어 안는 어머니의 화엄 세계 안에서만 치유될 수 있다.
이제 인류는 ‘나만 옳다’는 소승(小乘)적 아집을 버리고, 만물을 상생의 관계로 파악하는 대승(大乘)적 안목을 가져야 한다. 독생녀의 현현은 인류 정신사가 도달할 수 있는 가장 높은 차원의 조화이며, 억겁의 세월 동안 경전들이 숨겨왔던 최후의 복음이다.
서성종 작가(신학박사)
2026-04-20 17:3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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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을 묻는 종교] 〈5〉 통일교 영생론의 인간 이해
[영원을 묻는 종교] 목차
<1> 인류는 언제부터 영생을 꿈꾸었는가
<2> 불교가 말하는 삶과 죽음
<3> 성경이 말하는 영생
<4> 기독교 신학의 영생 이해
<5> 통일교 영생론의 인간 이해
<6> 인간은 어떻게 영적 자아를 성장시키는가
<7> 동양 사상이 말하는 삶과 죽음
<8> 인간은 왜 영원을 묻는가.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옛 통일교)의 사후 세계관, 즉 ‘영생론(永生論)’은 그 체계가 매우 정교하다. 가정연합 창시자이자 세계적인 종교지도자 문선명(1920~2012) 총재는 인간 존재의 영원성을 설명하는 사상 ‘영생론’에서 인간의 지상 삶이 결코 허무로 끝나는 ‘덧없는 찰나’가 아니라 영원한 본향을 준비하는 숭고한 여정임을 역설했다.
인간의 삶이 죽음으로 종결되지 않는다는 믿음은 여타 종교와 궤를 같이하지만, 가정연합의 영생론은 그 근거를 더욱 본질적인 차원에서 찾는다. 인간이 영생을 바라는 것은 존재 깊은 곳에서 울려 나오는 본성의 요청이며, 이는 애초에 영원하신 하나님의 ‘완전한 상대’로 창조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주체가 영원하다면 그 대상 또한 영원해야 하고, 사랑은 본질적으로 영원성을 지향한다는 설명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인간은 죽음으로 끝나는 한시적 존재로만 규정되기 어렵다. 문 총재는 인간은 ‘겉사람’인 육신(肉身)과 ‘속사람’인 영인체(靈人體)의 이중 구조로 이뤄져 있다고 설명한다. 육신은 시공간의 제약 속에서 약 백 년의 생애를 살지만, 무형의 실체인 영인체는 사후에도 영원히 존속한다는 것이다. 육신이 집이라면 영인체는 그 집에 잠시 거하는 주인이며, 인간의 삶은 영인체를 성숙시키는 과정으로 이해된다.
영인체는 일반적인 ‘영혼’ 개념과 차이가 있다. 영혼이 내적 생명이나 정신을 포괄한다면, 영인체는 실체적이고 구조적인 존재를 의미한다. 영인체는 다시 생심(生心)과 육심(肉心)으로 나뉘는데, 생심은 하나님의 임재가 머무는 중심이며, 육심은 현실 세계와 접촉하는 기반이다.
영생론에서 중요한 개념 가운데 하나가 ‘수수작용(授受作用)’이다. 이는 서로 다른 존재가 주고받는 상호작용을 통해 생명과 질서가 유지된다는 원리이다. 인간 내부에서도 같은 원리가 작동한다. 문제는 중심이 어디에 서 있느냐이다. 육심이 중심이 되면 욕망과 충동이 앞서지만, 생심이 중심이 되면 사랑과 양심이 삶을 이끈다. 인간의 완성은 하나님 편에 서 있는 생심을 중심으로 마음과 몸이 끊임없이 조화를 이루는 상태에서 시작된다.
그렇다면 지상의 삶은 어떤 의미를 갖는가. 영생론은 인간 생애를 3단계의 연속된 과정으로 설명한다. 첫째는 복중 생활이다. 태아는 물속에서 약 열 달을 지내며 공기 세계에 적응할 신체를 준비한다. 둘째는 지상 생활이다. 인간은 공기를 호흡하며 한 평생을 살지만, 그 본질적 목적은 영원한 세계에 적응할 영인체를 완성하는 데 있다. 셋째는 영계 생활이다. 육신을 벗는 순간은 끝이 아니라 또 하나의 탄생으로 이해된다.
문 총재는 죽음을 ‘성화(聖和)’라고 표현했다. 태아가 모태를 떠나 공기 세계로 나오듯, 죽음 또한 유한한 세계를 벗어나 영원한 세계로 진입하는 ‘제2의 탄생’으로 이해된다. 이때 중요한 것은 영계의 호흡 매체는 ‘참사랑’이라는 점이다. 지상에서 공기를 들이마시며 살아가듯, 영계에서는 참사랑을 통해 존재가 유지된다. 지상에서 사랑의 감각을 충분히 익히지 못했다면 영계의 삶 또한 자연스럽게 이어지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결국 영원한 삶의 질은 지상에서 어떻게 살았는가에 따라 결정된다.
영생론은 인간을 우연히 태어나 소멸하는 존재로 보지 않는다. 인간은 누구나 복중생활, 지상생활, 영계생활의 3단계를 거치며, 지상에서의 삶은 영원을 준비하는 시간으로 이해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지상의 삶은 생존을 넘어 방향의 문제로 전환된다. 인간은 어디를 향해 걷고 있는가. 육신의 요구를 따라 덧없이 흘러가고 있는가, 아니면 더 깊은 삶의 의미를 준비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영생론의 관점에서 죽음은 새로운 세계를 향한 ‘완생(完生)의 관문’이다. 영생론은 결국 인간이 완성에 이르는 길을 제시하는 구원론적 인간 이해이다. 지금 이 순간, 양심과 사랑의 방향을 선택하는 삶 속에서 이미 영원의 준비는 시작된다.
2026-04-20 14: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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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5500년전 여신묘 발견, 세계사의 본질적 화두 [신화에서 선민까지 한민족 정체성의 문화사적 발견-기고]
문명은 어디에서 시작되는가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에 이르기까지 서구 역사학계는 인류 문명의 기원을 설명하는 견고한 역사관(歷史觀)을 확립했다. 이른바 ‘4대 문명’이라 불리는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인더스, 황하 문명의 계보가 그것이다. 거대한 강 유역의 비옥한 토양을 토대로 도시와 왕권, 문자 체계가 형성되면서 인류가 진일보했다는 유물론적 도식은 오랫동안 세계사 기술의 표준이자 거부할 수 없는 정설로 군림해왔다.
그러나 20세 후반 비약적으로 축적된 고고학적 성과는 문명의 기원을 바라보는 인류의 시각에 근본적인 균열을 내기 시작했다. 아메리카의 안데스와 아즈텍 문명에 대한 재평가, 그리고 아시아·중동 전역에서 쏟아져 나온 광범위한 문명권의 발굴 소식은 거대한 인식 변화의 기폭제가 되었다. 특히 최근에는 인도의 라키가리(Rakhigari) 유적과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중동 지역에서도 기존의 연대기와 학설을 송두리째 뒤엎는 새로운 유적들이 발견되고 있다. 문명은 특정 지역의 전유물이 아니며, 세계 곳곳의 척박하거나 비옥한 환경 속에서 저마다의 양태로 태동했다는 사실이 강력하게 대두된 것이다. 학문적 진보는 2010년대 중반 이후 ‘다지역 문명 형성론’이라는 새로운 담론을 구축하며, 우리가 알고 있던 기존 인류사의 지도에 근본적인 의문을 던졌다. 문명이 특정 지점에서 시작되어 주변으로 전파되었다는 과거의 고착된 가설을 넘어, 이제는 세계 각자의 고유한 영성과 문화적 역량을 바탕으로 태동한 새로운 문명사적 인식에 주목해야 할 시점이다.
특히 1983년 중국 동북지방 요하(遼河) 상류 우하량(牛河梁)에서 발견된 ‘여신묘(女神廟)’ 유적은 그 연대가 무려 기원전 3,500년 무렵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는 동북아시아 선사시대의 기원과 성격을 규명하는 데 있어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인류 문명의 지평을 모성적 신성으로 확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 유적의 발견이 세계 학계를 경악하게 한 이유는 고대 중국 황하 문명 중심의 세계관에 본질적 파열음을 냈기 때문이다. 우하량의 홍산(紅山) 문화는 황하보다 무려 천년 이상 앞선 시기에 이미 고도의 정신세계와 정교한 제천 체계를 구축한 독자적 문명권의 실체를 드러냈기 때문이다. 다시말해, 문명의 여명기에 인류를 이끌었던 진정한 주도권이 가부장적 무력이 아닌, 하늘을 경외하며 만물을 보듬는 모성적 영성에 있었음을 보여주는 근거가 된 것이다.
우하량 여신묘 유적이 지닌 진정한 가치는 해당 유물의 구성 체계가 동북아시아 선사문화의 상징, 즉 한(韓)민족의 기원과 긴밀히 연결된다는 점에 있다. 학계에선 그 근거로 여신묘 내부에서 출토 된 실물 크기의 여성상과 곰의 턱뼈와 곰의 발바닥을 형상화한 소조물에 주목했다. 이 신령한 상징들의 조합은 단순한 제의용 장식을 넘어선다. 대신에 당시 고대사회가 곰을 신성한 존재로 받들며, 여성의 잉태와 생명의 신비를 공동체 최고의 가치로 숭상했던 고결한 세계관의 발견이었다. 이러한 고고학적 정황은 우리 민족의 역사가 태초부터 단순히 생존을 위한 투쟁의 노정이 아니라, 하늘부모님을 모시는 모성적 영성을 확립하는 과정에서 시작되었음을 암시하고 있다.
이러한 상징 구조는 우리에게 익숙한 단군 신화의 서사와 실로 경이로운 공명을 이룬다. 곰이 여인으로 변모하여 단군을 낳았다는 웅녀 이야기는 가벼운 우화가 아니게 된 것이다. 곰 토템과 여성의 잉태 서사가 결합된 여신묘의 실체는 동북아시아 선사문화 속에 실제로 존재했던 신앙 체계이자, 우리 민족의 심층 의식 속에 각인된 문화적 기억의 반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주목할 사실은 우하량 유적이 형성된 기원전 3천 년 전후의 시기에 형성된 문헌과 고고학 유적을 통해 확인되는 동북아 정치·문화 공동체가 바로 고조선 문화권이라는 점이다. 예컨대, 요하와 한반도 일대에서 출토되는 비파형동검 문화권은 선사문화의 공간적 범위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고고학적 지표이며, 우하량 여신묘는 그 영성적 중심지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단군 신화가 환웅·웅녀·단군이라는 삼중 구조 속에서 하늘의 질서와 인간 세계의 탄생을 설명하듯, 우하량 유적은 고조선 문화권의 뿌리 깊은 곰 토템 신앙과 생명의 기원을 설명하는 세계관이 실재했음을 웅변한다. 다시 말해, 우하량 여신묘는 단군 서사가 후대의 필요에 의해 가공된 허구적 상상이 아니라, 고대 동북아시아 문명이 공유했던 종교적 세계관과 통치 철학이 투영된 실체적 역사임을 입증하는 결정적인 증거가 되는 의미다. 5,500년 전 이미 한반도는 여신을 정점으로 하는 숭고한 제천 의식과 사회적 위계가 실재했음을 물증으로 보여주고 있다. 즉 웅녀의 서사는 구비 전승되는 신화의 영역에만 머물지 않고, 우하량 제단 위에서 거행되었던 실체적인 국가 의례와 통치 행위를 통해 역사적 사실로 육화(肉化)되어 있었던 것이다.
◆ 홍산의 여신과 한민족의 웅녀
신화 속 곰이 여인으로 변모해 환웅과 결합하고 단군을 낳았다는 서사는, 실상 고대 사회의 역동적인 세계관을 시사한다. 이는 곰을 토템으로 숭배하던 토착 집단과 천신(天神) 사상을 앞세운 이주 세력이 결합하여 새로운 정치 공동체를 형성해 나간 과정을 상징적으로 투영한 결과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단군 서사는 집단의 허구적 상상력의 산물이라는 편견을 버리고, 고대 사회의 종교적 세계관과 초기 국가의 정치적 질서를 정교하게 증언하는 상징적 텍스트로 이해되어야 한다.
이러한 신화적 상징은 요하 일대에서 발굴된 여신묘의 실체적 존재를 통해 비로소 역사적 생명력을 얻는다. 고대사 연구자들은 이 여신상을 고조선 문화권의 근간이 된 선사 신앙 체계와 연결하며 그 역사적 계보를 합리적으로 추적하고 있다. 즉, 이 유적은 단군 서사에 녹아든 세계관이 한낱 신화적 상상력의 산물이 아니라, 동북아 선사문화 속에 뿌리내린 태고의 종교적 사유가 면면히 이어져 내려온 실체적 단서임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하늘의 질서를 땅 위에 구현한 듯한 여신묘의 제단 구조와 천문학적 배열은 5,500년 전의 것이라고 믿기 어려울 만큼 정교하다. 정교하게 배치된 제의(祭儀) 공간과 상징 체계는 당시 사회가 이미 일정한 우주관과 의례 질서를 공유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여신의 눈에 박혀 있던 푸른 옥기(玉器)는 반만 년의 시간을 넘어 오늘날까지도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이러한 유물은 조형물이 아니라 생명과 질서를 신성한 원리로 이해했던 고대 사회의 영적 세계관을 보여주는 상징적 흔적으로 평가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우하량 여신묘는 동북아시아 선사문화가 정복과 권력의 논리 이전에 생명과 생성의 질서를 중심에 두고 형성되었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유적으로 이해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여신묘의 여성상은 우리 민족의 건국 서사 속에 등장하는 시조모 이미지와도 상징적 연관성을 지닌 존재로 해석되기도 한다.
홍산문화가 한민족 고대사 연구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이유는 단순히 일부 유물의 유사성 때문만은 아니다. 적석총 계열의 무덤 구조, 빗살무늬 토기 문화, 그리고 하늘에 제사를 올리는 원형 제단과 같은 요소들은 요하 유역과 한반도 북부 지역에서 이어지는 선사문화의 연속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고고학적 단서로 논의되어 왔다. 이러한 점에서 일부 연구자들은 홍산문화와 고조선 문화권 사이에 일정한 문화적 계승 관계가 존재했을 가능성을 제기한다. 물론 이러한 문제는 여전히 학문적 논의가 진행 중인 영역이다. 그러나 홍산문화는 적어도 동북아시아 선사문명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문화권이며, 고조선 문명의 배경을 이해하는 데 의미 있는 단서를 제공하는 고고학적 유산임은 분명하다.
◆ 인류 문명이 독생녀를 이해하는 문화적 기억
홍산의 여신묘에서 곰 토템과 여성 신성이 결합된 구체적 형상이 확인된 것은, 단순히 유물 한 점의 발견을 넘어 우리 민족의 기원적 영성이 모성적 원류에 뿌리내리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내용이다. 기원전 3,500년 무렵으로 소급되는 이 유적은 생명의 탄생과 공동체의 시작을 ‘여성적 신성’의 질서로 이해했던 고대 사회의 고도화된 사유 체계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이는 웅녀 신화가 꾸며낸 이야기가 아니라, 선사 시대부터 면면히 이어져 내려온 한민족 특유의 영적 DNA임을 보여주는 토대이다.
나아가 이러한 모성 중심의 상징 질서는 고조선을 지나 고구려, 백제, 신라, 고려에 이르기까지 우리 역사의 심장부에서 시조모 숭배와 여성 존중의 문화적 기억으로 작동해 왔음을 역사적 사실이다. 결국 여신묘의 발견은 가부장적 역사관에 가려졌던 여성 중심의 섭리적 사연을 복원하고, 잃어버린 모성 주권을 되찾기 위한 인류사의 오랜 갈망을 증명하는 토대가 된다.
종교 문화사적 관점에서 볼 때, 인류의 시조인 해와의 타락 이후 여성의 위격은 섭리 역사의 전면에서 물러나 수천 년간 인고와 수난의 세월을 견뎌야만 했다. 성경적 교리가 투영된 서구 중심의 역사관 속에서 여성은 주체적 구원의 파트너이기보다 원죄의 통로 혹은 보조적 존재로 국한되어 왔으며, 이러한 영성적 소외는 역설적으로 다시 오실 여성 메시아를 향한 탕감과 복귀의 처절한 복선이 되었다.
한편 기독교 전통에서는 예수를 ‘독생자’라 부른다. 이는 하나님이 직접 보내신 구원의 주체라는 신학적 의미를 담고 있다. 통일교 신학에서는 이러한 이해를 확장하여, 인류 구원섭리의 완성을 위해서는 독생자뿐 아니라 하나님이 보내신 ‘독생녀’ 또한 역사 속에 등장해야 한다는 사유가 제시된다. 여기서 말하는 독생녀는 신화 속 여성 인물이나 모성의 상징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부모님의 뜻을 지상에서 실현하는 섭리적 주체를 가리킨다.
물론 홍산 여신묘와 웅녀 신화에 투영된 여성성을 곧바로 독생녀라는 실체적 존재로 치환하기에는 시간적·공간적 간극이 존재한다. 다만, 우리 한민족의 문화적 기억 속에 여성이라는 상징이 생명과 공동체의 시작을 설명하는 핵심 기제로 면면히 작동해 왔다는 사실만큼은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이다는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 경험은 인류 구원 섭리를 설파하는 과정에서 ‘독생녀’라는 개념이 어느 날 갑자기 돌출된 생경한 교리가 아니라, 우리 내면에 잠들어 있던 오래된 영적 원형과 맞닿아 있음을 시사한다. 기독교 신학이 인류 구원을 위해 하늘이 보내신 외아들을 ‘독생자 예수’로 고백하듯, 독생녀는 타락한 인류를 참사랑으로 거듭나게 하고 완성된 이상 가정을 실현하기 위해 하늘이 직접 이 땅에 보내신 주체적 여성 메시아인 것이다. 결국 5,500년 전 우하량의 제단에서 확인되는 모성적 권위는 인류사 내내 가려져 있던 독생녀의 자리를 예비한 섭리적 마중물이라는 해석이 합리적 추론이다. 이름 없는 여인들의 정성과 웅녀의 인고, 그리고 홍산의 여신이 증언하는 시원의 주권은 이제 독생녀라는 실체적 현현을 통해 역사의 전면에서 완성의 꽃을 피우고 있다.
우리가 홍산의 유적지에서 확인하는 것은 단지 낡은 흙인형이 아니다. 그것은 남성 중심의 사관이 지워버렸던 인류 문명의 본질적 시작점, 곧 참어머니의 주권이 살아 숨 쉬던 실제 역사의 현장이다. 이러한 역사적 진실은 가정연합이 선포한 독생녀 사상이 단순히 종교적 선언을 넘어, 인류가 잃어버린 시원 문명의 실체를 회복하고 완성하려는 거대한 하늘 섭리의 귀환임을 뒷받침하는 가장 강력한 문화인류학적 반증이라 하겠다. 우하량 여신상의 응시는 반만년 전의 고대사와 현재를 잇는 질문이다. 인류 문명의 출발점에 새겨진 여성의 상징, 그리고 그 기억이 오늘날 우리 시대의 새로운 섭리와 만나는 지점은 어디인가. 홍산의 여신묘는 우리로 하여금 그 잃어버린 문명의 언어를 다시 읽게 만든다.
고기훈 박사(한국학)
2026-04-17 09:3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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伊 종교사학자 "한학자 총재 노벨평화상 후보 추천 지지"
이탈리아 종교사회학자 마시모 인트로빈이 한학자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총재의 노벨평화상 후보 추천을 공개 지지했다.
인트로빈은 10일(현지시간) 미국 일간지 워싱턴타임스 기고를 통해 한 총재의 노벨평화상 후보 추천이 종교 자유와 평화 증진이라는 측면에서 정당하고 시의적절하다고 평가했다. 앞서 슬로바키아 교통부 장관 및 유럽연합 집행위원을 지낸 얀 피겔 박사가 한 총재를 2026년 노벨평화상 후보로 공식 추천한 사실이 확인됐다.
인트로빈은 한 총재가 고 문선명 총재와 함께 설립한 가정연합과 천주평화연합(UPF)을 통해 수십 년간 국제적 평화운동을 이끌어 왔다고 강조했다. 전·현직 국가원수와 정치인, 종교 지도자 등이 참여하는 글로벌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종교 간 협력과 한반도 평화통일을 위한 활동을 지속해 왔다는 점에서 그 공로가 크다고 평가했다.
특히 그는 노벨평화상이 단지 개인 공로를 넘어 시대적 메시지를 담아온 점을 언급하며, 한 총재에 대한 수상은 종교 자유의 가치를 국제사회에 환기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인트로빈은 일본에서 진행 중인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해산 명령과 관련해서도 우려를 표했다. 그는 이러한 조치가 신자들에 대한 사회적 배제와 차별로 이어지고 있으며, 민주주의 국가가 종교 문제를 다루는 방식에 있어 위험한 선례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러한 흐름이 국제적으로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일부 권위주의 국가들이 이를 종교 통제의 정당화 근거로 활용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는 “종교적 신념을 이유로 한 차별과 억압은 어떤 체제에서도 정당화될 수 없다”며 “한 총재의 노벨평화상 수상은 종교 자유를 지키려는 국제사회의 의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계기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인트로빈은 유럽안보협력기구(OSCE)에서 종교 관련 차별 문제를 다뤄온 인권 전문가다. 이탈리아 외무부 산하 종교자유관측소 의장을 역임했으며, 세계 신종교 연구소(CESNUR) 창립자로 활동하고 있다.
2026-04-20 15:2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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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미래불은 왜 ‘자비의 어머니’로 오시는가 [父性 문명의 한계, 母性 구원의 비전-기고]
억겁의 비탄을 씻어낼 ‘모성적 구세주’의 현현과 자비의 서사
인류는 거대한 혼돈과 도탄의 시기마다 세상을 구할 새로운 존재를 꿈꿔왔다. 기독교가 ‘다시 오실 메시아’를 기다리고, 유교가 ‘후천개벽의 진인’을 대망했다면, 불교는 억겁(億劫)의 세월을 건너 우리 곁에 오실 미래의 부처, 즉 미륵불(彌勒佛·Maitreya)의 출현을 약속해 왔다. 그런데 우리가 주목해야 할 흥미로운 역사적 현상이 있다. 본래 인도에서는 남성적 위엄을 갖춘 존재로 묘사되던 미래의 구원자들이 동아시아의 역사와 민속 속으로 스며들며 점차 자비로운 ‘어머니의 얼굴’로 변모해 왔다는 사실이다.
◆ 미륵신앙의 변천: 정의의 심판에서 모성적 포용으로
산스크리트어 ‘마이트레야’에서 유래한 미륵은 본래 ‘자비로운 자’라는 뜻을 품고 있다. 그는 석가모니 부처가 입멸한 후 56억 7천만 년이라는 가늠할 수 없는 시간이 흐른 뒤, 용화수(龍華樹) 아래에서 깨달음을 얻어 모든 중생을 구원할 주인공이다. 초기 불교에서 미륵은 법과 이치를 바로 세우는 남성적 권위자로 묘사되기도 했으나, 중국과 한반도를 거치며 그 위상은 드라마틱하게 변화한다.
특히 한국의 미륵신앙은 고난받는 민초들의 간절한 영성과 맞닿아 있다. 끊이지 않는 외세의 침략과 굶주림에 지친 민초들은 엄격한 규율과 법도를 가르치는 ‘아버지 부처’보다, 자신의 눈물을 닦아주고 상처를 달래줄 ‘어머니 부처’를 갈망했다. 이러한 영적 요청은 경기도 파주 용미리의 ‘마애이불입상(磨崖二佛立像)’처럼 남녀 미륵이 쌍을 이루어 서 있거나, 미륵이 여성의 몸을 입고 지상에 강림한다는 파격적인 해석으로 이어졌다.
인문학적으로 볼 때 이는 매우 중요한 문명사적 함의를 지닌다. 인류 구원의 마지막 단계가 남성적인 ‘진리의 선포’를 넘어 여성적인 ‘생명의 양육’을 통해 비로소 마침표를 찍게 됨을 우리 조상들의 영성이 본능적으로 직관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미륵이 여성으로 온다는 설화는 단순히 전설이 아니라, 부성 중심의 투쟁 시대를 종결지을 유일한 열쇠가 ‘모성적 자비’에 있음을 알리는 섭리적 예고인 셈이다.
◆ 관세음보살의 여성화와 ‘위로자 성령’의 교차
미륵불이 미래의 희망이라면,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은 현재의 고통을 보듬는 실체적 자비의 화신이다. 관세음(觀世音)이란, 말 그대로 ‘세상의 고통스러운 소리를 살피는 존재’다. 이 보살 역시 초기 인도 불교에서는 남성형이었으나, 당나라 이후 동아시아에서는 백의(白衣)를 입은 아름답고 인자한 ‘어머니’의 모습으로 고착되었다.
왜 인류는 구원 주체의 정점인 관세음을 여성으로 그려냈을까? 이는 불교가 추구하는 ‘자비(慈悲)’의 본질이 곧 모성이기 때문이다. 한자로 자(慈)는 자녀에게 즐거움을 주는 사랑이고, 비(悲)는 자녀의 고통을 함께 아파하며 그 슬픔을 제거해주는 마음이다. 이는 앞선 연재에서 다룬 기독교의 ‘보혜사(위로자) 성령’의 기능과 완벽하게 일치한다.
결국, 불교가 대망해온 관세음의 자비와 미륵의 용화세계는 하나의 지점으로 수렴된다. 그것은 바로 하늘부모님의 모성적 신성을 온전히 담지하고 태어난 실체적 존재의 현현이다. 미륵이 가져올 새로운 진리의 법도가 ‘아버지의 씨앗’이라면, 관세음이 보여주는 무조건적인 포용은 그 씨앗을 생명으로 피워내는 ‘어머니의 태(胎)’다. 이 두 위격이 조화를 이룰 때 비로소 인류는 영적 고아의 신세를 면하고 진정한 부모의 품을 찾게 되는 것이다.
◆ ‘모성적 구세주’의 현현, 관념을 넘어 실체로
불교 경전들이 수천 년간 예고해 온 이 모성적 구세주의 실체는 이제 관념의 너울을 벗고 시대적 요청에 응답하고 있다. 미륵불이 약속한 용화세계(龍華世界)란 단순히 내세의 낙원이 아니라, 지상에서 인종과 국경, 종교의 벽을 넘어 온 인류가 한 가족으로 화합하는 실체적인 평화의 세계를 뜻한다.
이러한 대이상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아버지만으로는 부족하다. 아버지는 가정을 세우기 위해 국경을 긋고 담장을 쌓지만, 어머니는 그 담장을 허물고 모든 자녀를 하나의 식탁으로 불러 모으기 때문이다. 오늘날 전 세계를 무대로 ‘평화의 어머니’라는 이름 아래 전개되는 화합과 축복의 행보들은, 불교가 그토록 고대했던 미륵의 자비와 관세음의 위로가 역사적 실체로 안착되는 과정이라 볼 수 있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가 연 영적인 구원의 터전 위에, 실체성령(實體聖靈)으로서의 여성 구원자가 합일될 때 비로소 인류는 영혼과 육신 모두가 중생하는 ‘참부모’의 시대를 맞이하게 된다. 이는 특정 종교의 지도자를 찬양하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인류 정신사가 도달해야 할 필연적인 종착지이자 문명사적 대전환이다.
◆ 자비로운 평화의 성지, 한반도와 동방의 빛
결론적으로 불교 경전 속에 면면히 흐르는 ‘여성 구원자’의 코드는 인류사가 이제 부성 중심의 투쟁 시대를 지나 모성 중심의 화합 시대로 진입했음을 알리는 우주적 신호다. 수천 년 전 석가모니가 예고한 미륵의 약속은 이제 대한민국이라는 동방의 땅에서 결실을 보고 있다.
이것은 인류 구원의 마지막 열쇠가 ‘어머니’에게 있음을 동서양의 모든 성현이 입을 모아 증거해 온 섭리의 결론이다. 이제 우리는 ‘어머니 부처’의 미소를 통해 억겁의 비탄을 씻어내고, 하늘부모님 아래 인류 한 가족이라는 대동(大同)의 아침을 맞이해야 한다.
서성종 작가(신학박사)
2026-04-15 10: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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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을 묻는 종교] <4> 기독교 신학의 영생 이해
[영원을 묻는 종교] 목차
<1> 인류는 언제부터 영생을 꿈꾸었는가
<2> 불교가 말하는 삶과 죽음
<3> 성경이 말하는 영생
<4> 기독교 신학의 영생 이해
<5> 통일교 영생론의 인간 이해
<6> 인간은 어떻게 영적 자아를 성장시키는가
<7> 동양 사상이 말하는 삶과 죽음
<8> 인간은 왜 영원을 묻는가.
성경이 영생을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완성되는 생명’으로 설명했다면, 신학자들은 이 개념을 더욱 체계적으로 해석하고 발전시켜 왔다. 기독교 신학은 성경의 메시지를 토대로 인간 존재와 구원의 의미를 사유해 왔으며, 그 과정에서 영생은 신앙의 핵심 주제 가운데 하나로 자리해 왔다.
초기 기독교 공동체에서 영생은 부활 신앙과 깊이 연결되어 있었다. 예수의 부활 사건은 제자들에게 죽음이 삶의 끝이 아니라는 확신을 심어주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를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고린도전서 15:20)라 부르며, 그 부활이 모든 인간에게 열려 있는 새로운 생명의 시작임을 강조했다.
부활은 존재의 질서 자체가 새롭게 재편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흙으로 돌아갔던 육체는 더 이상 썩지 않는 몸으로 다시 일어나고, 시간에 갇혀 있던 생명은 영원의 차원으로 들어선다. 흩어졌던 것들이 다시 모이고, 끊어졌던 관계들이 회복된다. 죽음이 더 이상 생명을 규정하지 못하며, 생명은 죽음을 넘어서는 새로운 질서를 드러낸다. 이것은 종교적 상상에 머무르지 않을만큼 교회 역사는 오래도록 이 ‘부활의 신비’를 사유해 왔다.
교회 신학자인 교부(敎父)들은 부활의 의미를 철학적으로 풀어내기 시작했다. 특히 4세기 교부였던 아우구스티누스는 영생을 인간 존재의 궁극적인 안식으로 설명했다. 그는 인간 삶이 끊임없는 갈망 속에 놓여 있다고 보았으며, 인간의 마음은 하나님 안에서 비로소 참된 평안을 얻는다고 말했다. 아우구스티누스에게 영생은 하나님과의 완전한 일치 속에서 이루어지는 존재의 완성을 의미했다.
중세 시대에 이르러 영생 신앙은 더욱 체계적인 형태를 갖추게 된다. 대표적인 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는 인간의 궁극적 목적을 ‘지복직관(至福直觀, Beatific Vision)’이라는 개념으로 해석했다. 이는 인간이 하나님을 직접적으로 인식하고 바라보는 상태를 의미한다. 아퀴나스는 인간의 모든 지적 탐구와 갈망이 결국 하나님을 향해 있으며, 영생은 하나님을 직접 인식하는 궁극적 기쁨의 상태라고 파악한 것이다. 이러한 이해는 중세 기독교 신학에서 영생을 인간 존재의 완성된 상태로 바라보는 중요한 틀을 제공했다.
16세기 종교개혁 이후에도 영생에 대한 이해는 중요한 신학적 주제로 이어졌다. 중세 교회 질서에 도전한 마르틴 루터와 장 칼뱅은 구원을 인간의 공로나 노력보다 하나님의 은혜에 기초한 것으로 설명했다. 이들은 영생을 인간이 스스로 획득하는 결과라기보다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로 이해했다. 특히 칼뱅은 인간 삶 전체가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이해되어야 한다고 보았으며, 영생 역시 그 관계 안에서 결실되는 생명의 상태로 해석했다.
전통적인 교회 신학은 인간이 죽은 뒤 영혼이 하나님 앞에 존재하는 상태를 인정하면서도, 인간 존재의 궁극적 완성은 마지막 날의 부활에서 이루어진다고 제시해 왔다. 즉, 인간의 육체는 죽음으로 흩어지지만, 하나님이 정하신 때에 죽은 자들이 다시 살아나 새로운 몸을 입고 하나님 나라에 참여하게 된다. 인간 이성을 넘어서는 장엄하고도 경이로운 믿음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이해는 흔히 ‘부활 중심 종말론’이라고 불린다.
그렇다면 이 모든 신학적 논의의 핵심은 무엇일까. 부활은 존재 방식의 근원적인 변모다. 그것은 개별적 생명의 연장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소멸과 파괴의 법칙에 매여 있던 세계 전체가 생명의 새로운 질서로 재편되는 거대한 전환을 뜻한다. 자연은 더 이상 파괴와 소멸의 법칙에 지배되지 않고, 생명과 조화의 질서 속으로 들어간다. 하늘과 땅은 하나로 이어지며, 인간은 그 안에서 하나님과 더불어 사는 존재로 자리한다. 결국 부활은 인간이 본래 지향하던 완성의 모습이 온전히 드러나는 사건이다.
이러한 부활과 영생의 이해는 단지 죽음 이후의 문제에 머무르지 않고, 인간 존재의 방향과 목적을 묻는 질문과 연결되어 있다. 인간은 왜 살아가며,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성경은 그 답을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찾는다. 이러한 이해는 인간의 삶이 유한한 시간을 넘어 더 큰 의미를 향해 열려 있는 과정임을 보여준다. 따라서 기독교의 부활 신앙은 미래의 사건에 대한 믿음에 그치지 않고, 지금 이 순간의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묻는 실존적 요청으로까지 확장된다.
2026-04-13 15:44: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