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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사와 동고동락 70년… 종교에서 사회공헌 플랫폼으로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70년]화
◆프롤로그:70년의 여정이 남긴 것 2025년,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이하 가정연합)이 창립 71주년을 맞았다. 1954년 한국전쟁의 잔해가 채 가시지 않은 서울에서 출발한 이 조직은 70여
2025-12-23 11: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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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음양합덕으로 완성되는 대동사회의 이상 [父性 문명의 한계, 母性 구원의 비전-기고]
모성을 통해 본 대동의 완성
유교가 추구했던 최고의 사회적 이상은 ‘대동(大同)’이다. 『예기』 「예운」 편에 묘사된 대동사회는 모든 사람이 제 자리를 찾고, 노인은 편안하며 아이들은 보호받고, 재물은 사사로이 쓰이지 않는 ‘인류 한 가족’의 세계다. 이 원대한 꿈은 지난 수천 년간 동양 지식인들의 영혼을 설레게 했으나, 역설적으로 그 길을 완성할 실체적 열쇠를 찾지 못해 미완의 기획으로 남았다. 그 해답의 실마리는 유교 경전의 뿌리인 『주역』의 핵심 명제에 숨겨져 있다.
◆ ‘일음일양(一陰一陽)’, 우주 운영의 불변하는 도리
『주역』 「계사전(繫辭傳)」에는 유교 철학의 정수를 담은 문장이 등장한다. “한 번 음(陰)하고 한 번 양(陽)하는 것을 일러 도(道)라고 한다(一陰一陽之謂道).” 이는 우주의 만물과 인류의 역사가 남성적인 양의 원리와 여성적인 음의 원리가 교차하고 조화를 이룰 때 비로소 온전한 궤도에 올라선다는 뜻이다.
인문학적 관점에서 지난 인류사는 양(陽)의 원리가 주도해온 ‘부성(父性) 문명’의 시대였다. 법도와 질서, 정의와 심판을 앞세운 양적 리더십은 문명의 골격을 세우는 데 기여했다. 하지만 『주역』의 가르침에 따르면, 양(陽)의 시작은 반드시 음(陰)의 결실로 이어져야 한다. 하늘(乾)이 뿌린 도의 씨앗이 땅(坤)의 모태에서 형상화되지 못한다면, 그것은 결실 없는 반쪽짜리 진리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유교가 예고한 도의 완성은, 억눌렸던 음의 실체, 즉 ‘하늘 어머니’의 위상이 독생녀(獨生女)라는 실체로 현현하여 양과 대등하게 합덕(合德)할 때 비로소 마침표를 찍게 된다.
◆ 대동사회(大同社會)를 실현하는 모성적 감화력
대동사회의 실현은 힘에 의한 통제(覇道)가 아니라 덕에 의한 감화(王道)를 전제로 한다. 공자가 꿈꿨던 왕도 정치의 정수는 다름 아닌 ‘부모의 심정’이다. 아버지가 자녀에게 엄격한 잣대를 제시한다면, 어머니는 그 자녀의 허물까지 품어 안으며 자발적인 변화를 이끌어낸다.
지금까지의 문명이 아버지가 아들에게 법도를 가르치는 ‘훈육의 시대’였다면, 이제 도래할 대동사회는 어머니가 상처 입은 자녀들을 치유하고 하나로 묶어내는 ‘포용의 시대’여야 한다. 독생녀 참어머님의 현현은 유교가 예고했던 이 ‘모성적 완성’의 섭리가 역사적 실체로 드러난 사건이다. 독생자 참아버님이 개척한 진리의 터전 위에 참어머님의 모성적 리더십이 결합될 때, 인류는 비로소 투쟁과 분열의 선천(先天) 시대를 종결짓고 화합의 대동 세계로 진입하게 된다.
◆ ‘천지부모’의 안착과 천일국(天一國)의 비전
유교의 대동사회 비전은 오늘날 ‘천일국(天一國)’이라는 개념을 통해 섭리적으로 구체화된다. 천일국이란 “두 사람(二人)이 하나(一) 되어 하늘부모님을 모시는 나라(國)”를 뜻한다. 여기서 ‘두 사람’이란 단순히 개별 인간을 넘어, 우주적 음양의 실체인 독생자와 독생녀의 합일을 상징한다.
참아버님의 남성적 지혜가 인류 구원의 길을 닦았다면, 참어머님의 여성적 사랑은 그 길 위에 평화의 꽃을 피워낸다. 유교가 강조했던 천지부모(天地父母) 사상은 이 땅 위에 실체적인 참부모의 위상이 확립될 때 비로소 관념을 넘어 현실이 된다. 대동사회가 목표로 삼았던 “자신의 부모만 부모로 여기지 않고, 자신의 자식만 자식으로 여기지 않는” 무조건적 이웃사랑의 공동체는, 오직 인류의 참어머니로 오신 독생녀의 모성적 심정권 안에서만 온전히 안착될 수 있다.
◆ 유교 경전이 간직해온 오래된 미래
결론적으로 유교 경전이 갈망했던 인성(人性)의 완성과 사회적 태평성대는 ‘일음일양’의 도리에 따라 독생녀라는 실체적 주역을 만남으로써 비로소 완성된다. 이는 특정 종교의 주장을 넘어, 동양 철학이 수천 년간 보존해온 우주적 질서의 필연적인 귀결이다. 역사 속에 폄하되었던 여성의 가치가 독생녀라는 성신(聖神)의 위상을 통해 복구될 때, 인류는 비로소 전쟁 없는 평화의 세계, 즉 하늘부모님을 모신 참된 대가족의 이상을 실현할 수 있다.
유교 경전이 고이 간직해 온 이 동방의 지혜는 이제 또 다른 거대한 강물을 만난다. 서구의 ‘성서’와 동양의 ‘사서삼경’이 가리켰던 그 어머니의 길은, 이제 자비와 성불을 노래하는 불교의 세계관 속에서 더욱 신비롭고 장엄한 모습으로 드러나게 된다. 다음 연재부터는 불교 경전 속에 감춰진 여성 성불과 어머니 부처의 비밀을 통해, 인류 구원의 마지막 퍼즐인 ‘독생녀’의 정체를 더욱 깊이 있게 추적하고자 한다.
서성종 작가(신학박사)
2026-04-01 17:4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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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유교가 꿈꾼 가정이상과 참부모의 실체 [父性 문명의 한계, 母性 구원의 비전-기고]
하늘과 땅은 만물의 부모이며, 가정은 그 신성의 성전이다
인류 역사상 가장 견고한 도덕 공동체를 지향했던 유교는 가정을 단순한 사회적 단위가 아닌 '우주적 질서의 축소판'으로 보았다. 유교의 핵심 가풍인 '천지부모(天地父母)' 사상은 하늘(乾)과 땅(坤)이 만물을 낳고 기르는 거대한 부모라는 근원적 인식에서 출발한다. 하지만 수천 년간 이 사상은 관념적인 형이상학에 머물러 왔거나, 혹은 가부장적 질서의 정당성을 부여하는 부성(父性) 중심의 논리로 치우쳐 왔다. 이제 우리는 유교가 갈망했던 천지부모의 실체적 완성이 어떻게 모성(母性)의 근원적 회복을 통해 이루어지는지 문명사적 관점에서 직시해야 한다.
◆ 우주를 관통하는 부모의 심정, 건곤(乾坤)의 합일
『주역』은 하늘을 '건(乾)'이라 하여 만물의 시작인 씨앗(남성적 본질)을 주는 주체로, 땅을 '곤(坤)'이라 하여 그 씨앗을 받아 생명으로 길러내는 태(여성적 본질)로 정의했다. 유교적 세계관에서 구원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하늘 아버지의 뜻(天理)이 땅 어머니의 사랑(地理)을 만나 온전한 생명의 열매를 맺는 과정이다.
동양의 선각자들이 "천지는 만물의 부모요,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라 칭송했던 까닭은, 인간의 삶 자체가 하늘부모님의 성품을 본받아 완성되어야 한다는 엄중한 천명(天命)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인류 구원의 대서사는 독생자라는 남성적 원리가 역사의 골격과 법도를 세우고, 그 뼈대 위에 독생녀라는 여성적 원리가 살을 붙여 온기와 생명력을 불어넣을 때 비로소 '참부모'라는 이름으로 완성된다. 아버지만으로는 생명을 잉태할 수 없고, 어머니 없이는 그 생명이 보호받고 자라날 터전이 없기에, 유교가 꿈꾼 천지부모의 이상은 반드시 남녀 성상의 완벽한 실체적 조화를 전제로 한다.
◆ 억눌린 모성(母性)의 해방과 ‘어머니 주권’의 복구
오랜 세월 유교 문화권에서 여성의 가치는 남성적 질서를 보조하는 수동적인 역할에 갇혀 있었다. 여성을 '안사람'이라 칭하며 가정 내에 국한시킨 것은, 역설적으로 가정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성소(聖所)임을 인정하면서도 그 주권자인 어머니의 섭리적 위상을 가부장적 제도 아래 묶어둔 결과였다. 그러나 섭리적 관점에서 볼 때, 인류 구원 역사의 마침표는 반드시 여성 구원자의 주체적인 권위 회복을 통해 찍혀야 한다. 하늘 아버지의 명령과 법도만으로는 인간의 타락한 심정과 뒤틀린 혈통을 근본적으로 치유할 수 없기 때문이다.
독생녀(獨生女)의 현현은 단순히 역사 속에 한 여성이 나타났다는 생물학적 사건이 아니다. 그것은 하늘부모님의 내면에 영원히 실재하던 '여성적 신성'이 육신을 입고 지상에 강림하여, 6천 년간 억눌리고 왜곡되었던 땅의 주권(坤)을 하늘의 주권(乾)과 대등한 위치로 격상시킨 우주적 승리다. 독생자가 하늘의 진리를 선포하고 개척했다면, 독생녀는 그 진리를 무조건적인 사랑의 태(胎) 안에 품어 안아 인류를 실질적으로 다시 낳아주는 '참어머니'의 사역을 수행한다. 이 두 위격이 완전히 합일된 '참부모'의 등장은 유교가 수천 년간 염원해 온 천지부모 사상이 관념의 너울을 벗고 실체적으로 안착했음을 의미하는 인륜(人倫)의 최종적 완결이다.
◆ 참가정, 천지인(天地人)이 하나 되는 평화의 성소
유교 경전 『대학』은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를 통해 평화의 출발점이 다름 아닌 가정에 있음을 천명했다. 여기서 가정이란 단순히 혈연으로 묶인 집단을 넘어, 하늘의 도(道)가 인간의 정(情)으로 꽃피는 지상 유일의 성전(聖殿)이다. 독생자와 독생녀가 성혼(聖婚)을 통해 이룬 참부모 가정은 유교가 수천 년간 추구했던 이 수양론과 가정이상의 최종적인 실체 모델이다.
타락한 인류 문명이 맞이한 위기는 본연의 '어머니'를 잃어버린 데서 기인한다. 가정에서 어머니의 위상이 무너졌을 때 사회의 도덕이 타락했듯이, 문명에서 모성적 신성을 망각했을 때 정복과 전쟁의 광기가 득세했다. 이제 지상의 모든 가정이 참어머니의 모성적 심정을 상속받아 수직적 효(孝)와 수평적 인(仁)을 실천할 때, 비로소 천(天)·지(地)·인(人) 삼재(三才)가 조화를 이루는 태평성대의 길이 열린다. 참부모 가정이 보여주는 남녀조화(음양합덕)의 실체는 모든 깨어진 관계를 복원하는 강력한 영적 동력이 된다.
◆ 부성적 정의를 완성하는 모성적 사랑의 시대
결론적으로 유교의 천지부모 사상은 이제 관념적인 고전을 넘어 인류의 생생한 현실로 고동치고 있다. 하늘 아버지와 하늘 어머니를 온전히 지상에 모시는 참부모의 위상은, 분열된 인류를 영육 아우르는 하나의 대가족으로 묶어주는 유일한 구심점이다. 아버지는 자녀에게 가야 할 길을 가르치고, 어머니는 그 길을 갈 수 있는 생명의 힘을 공급한다.
이러한 부성적 정의와 모성적 사랑의 완벽한 조화는 이제 개인의 수양과 가정의 울타리를 넘어, 유교가 꿈꾸었던 궁극적 이상향인 '대동사회(大同社會)'로 우리를 인도할 것이다. 모든 존재가 제 자리를 찾고 서로를 보듬는 그 세계는, 오직 인류의 참어머니로 현현하신 독생녀의 모성적 주권이 온전히 확립될 때 비로소 완성될 수 있다. 우리는 이제 '참어머니'라는 이름의 구원을 통해 인류사의 새로운 아침을 맞이해야 한다.
서성종 작가(신학박사)
2026-03-31 20:2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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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학자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총재, 노벨평화상 후보 추천
한학자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통일교) 총재가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됐다.
30일 가정연합측에 따르면 슬로바키아 교통부 장관 및 유럽연합 집행위원을 역임한 얀 피겔 박사가 한 총재를 ‘국가 간 평화와 우애 증진(Peace and Fraternity between Nations)’ 부문에 2026년 노벨평화상 후보로 공식 추천했다.
피겔 박사는 추천서에서 “한 총재는 세계 평화, 종교 간 대화, 그리고 평화로운 사회의 기반인 가정의 가치 가화를 위해 평생을 헌신해왔다”며 “배우자인 문선명 총재의 성화 이후 천주평화연합(UPF) 세계평화여성연합(WFWP) 등 다양한 기구를 통해 공동의 비전을 전 세계적으로 확장해왔다”고 밝혔다.
한 총재의 주요 업적으로 피겔 박사는 세계 각 국에서 수천 명의 ‘평화대사’를 임명하여 종교적 장벽 극복에 기여한 종교간 협력, ‘희망전진대회’(Rally of Hope) 및 정상회의 조직을 통한 한반도 평화 통일 추구, 세계적 평화 운동가들을 기리는 권위 있는 ‘선학평화상’ 제정과 같은 인도주의 활동을 꼽았다.
특히 UPF와 WFWP는 UN 경제사회이사회(ECOSOC)의 포괄적 협의 지위를 보유하는 등 UN 의제와의 연계성을 높이고, 남북한 비무장지대 내 국제평화공원 조성을 추진하는 ‘38선 평화 구상’은 노벨의 ‘군대 폐지’ 이상에 직접 부응하는 프로젝트라고 설명했다. 피겔 박사는 리틀앤젤스 예술단을 통해 전 세계에 평화 메시지를 전파하는 등 문화·예술을 통한 평화외교도 한 총재의 독창적 공헌에 해당한다고 강조했다.
얀 피겔 박사는 유럽연합의 ‘종교 및 신념의 자유’ 특별대사를 역임했으며 전 세계적으로 종교적 자유와 인권 보호를 위한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왔다.
2026-03-30 16:4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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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왜 한민족의 국조는 ‘어머니’인가 [신화에서 선민까지 한민족 정체성의 문화사적 발견-기고]
◆ 한민족의 출발점에는 ‘여신’이 있었다.
한(韓)민족은 건국 서사 속에서 하늘의 생명을 품은 ‘어머니’를 국조의 상징으로 기억해 온 독특한 문화 전통을 지닌 민족이었다. 동아시아가 청동기시대를 거쳐 철기시대로 접어들며 왕조 국가들이 형성하던 시기, 만주와 한반도를 무대로 등장한 북방계 동이족 국가들은 흥미로운 공통점을 보여준다. 부여와 고조선 그리고 이를 계승한 고구려, 백제, 신라에 이르기까지, 이들 국가의 건국 서사에는 반복적으로 ‘어머니’의 상징이 등장한다. 시조의 탄생과 정통성이 여성적 존재를 통해 설명되는 이러한 역사는, 동시기 중국 한(漢)족 사회에서 전개된 천명 중심의 왕권과는 분명히 구별되는 문화적 특징이었다. 다시 말해, 한민족의 건국 서사에서 ‘어머니’는 단순한 혈통의 의미를 넘어 하늘의 생명과 인간 역사를 연결하는 상징적 존재로 이해되어 왔다.
『삼국유사(三國遺事)』 고조선조는 단군의 탄생을 웅녀(熊女)를 통해 전한다. 환웅이 하늘에서 내려와 인간 세계에 질서를 세우는 존재로 등장하지만, 인간 역사 속에서 단군을 낳고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는 존재는 웅녀다. 이러한 이야기는 고대 한민족이 건국의 기원을 설명할 때 ‘어머니’의 상징을 중요한 매개로 이해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구조는 고구려 건국 서사에서도 확인된다. 『삼국사기(三國史記)』 고구려본기에 따르면, 주몽은 어머니 유화(柳花)의 몸을 통해 알에서 태어난 존재로 서술된다. 『삼국사기(三國史記)』 제사지 기록에는 고구려 왕과 신하들이 매년 10월 국동대혈 동굴(현재 중국 길림성 집안시에 위치)에서 ‘하백녀와 주몽’을 함께 제사했다는 내용을 전한다. 이는 건국 신화 속 모성의 상징이 고구려 사회에서 일정한 종교적 의미를 지니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유화라는 이름이 지닌 상징 또한 흥미롭다. ‘유화(柳花)’는 버드나무를 뜻하는데, 북방 샤머니즘 문화에서 버드나무는 생명과 재생을 상징하는 식물로 받아들여져 왔다. 이러한 상징 체계 속에서 유화는 단순한 신화적 인물이 아니라, 하늘의 생명이 인간 세계로 이어지는 통로로 이해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건국 서사의 구조는 백제에서도 나타난다. 『삼국사기(三國史記)』는 백제를 건국한 비류와 온조의 어머니 소서노가 세상을 떠난 뒤 왕실이 사당을 세워 국신으로 모셨다고 전한다. 왕이 된 아들의 정치적 권력과는 별개로, 건국의 정통성이 어머니의 공덕과 연결되어 민중의 집단적 기억 속에 전승되었던 것이다. 신라도 마찬가지였다. 『화랑세기(花郞世紀)』는 화랑의 기원을 여성 종교집단에서 찾고 있으며, 이는 신라의 화랑이 제사와 영성에 뿌리를 두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경북 경주 선도산에 위치한 국신 제단은 그 전통이 제도화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 유적이다. 이처럼 고대 한민족 심정의 근원은 여신문화가 자리하고 있다. 권력은 남성의 손에 있었을지 모르나, 정통성의 뿌리는 언제나 어머니였다.
◆ 난생설화(卵生說話)의 한민족, 모계문명의 비밀
한민족 문화의 심장부에는 예부터 ‘모성’이라는 상징이 견고하게 자리해 왔다. 고대 건국 신화에서 시조의 탄생이 어머니의 몸을 빌려 구현되는 계보가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현상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이는 우리 민족이 공유해 온 고유한 문화적 인식의 발로라 할 수 있다.
이 같은 전통은 비단 신화적 영역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조선 세종 대의 『조선왕조실록』을 살펴보면 처가살이가 자연스러운 풍속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부부가 일정 기간 처가에서 생활하는 관습이 당시 사회에 보편적으로 존재했음을 보여준다. 조선 성종 이후, 유교적 부계 질서가 공고해진 이후에도 이 흐름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는다. 성리학의 거두인 율곡 이이가 처가에서 생활했다는 사실은, 가부장적 사회 구조 속에서도 모계적 전통의 잔영이 끈기 있게 이어지고 있었음을 증명하는 대목이다.
결국 한민족의 역사는 정치적 권력 구조 측면에서 부계 중심의 질서를 확립해 왔지만, 문화와 생활 일상의 영역에서는 여전히 모성 공동체의 상징과 기억을 보존해 온 셈이다. 이러한 토양 위에서 반복되는 ‘난생설화’는 단순히 설화적 장치를 넘어선다. 하늘의 기운을 머금은 신성한 존재가 어머니의 태를 빌려 인간의 시간 속으로 걸어 들어오는 이 상징 체계야말로, 한민족 정신의 뿌리를 이루는 진정한 문화적 정수라 할 수 있다.
그 기원은 ‘알’을 화두로 삼은 건국 신화에서 찾을 수 있다. 3세기 중국의 『위지동이전(魏志東夷傳)』은 고대 한반도를 기록하며 흥미로운 대목을 남겼다. 황제만이 천제를 주관하던 중국과 달리, 부여의 영고(迎鼓)에서는 공동체 성원 전체가 제천의식에 동참했다는 것이다. 이는 하늘을 향한 경외심이 통치자 1인의 전유물이 아닌, 공동체 전체가 공유하던 보편적 의례였음을 뒷받침한다. 이 같은 풍토 속에서 우리 선조들은 스스로를 ‘하늘의 자손’이라 여기는 독자적인 세계관을 구축해 왔다.
우리들의 인식 체계는 난생설화에 이르러 더욱 선명한 형상을 띤다. 한민족의 탄생 신화 속에서 영웅은 알을 깨고 등장하는 비범한 존재로 묘사되지만, 흥미롭게도 혈통은 점차 희미해지는 반면, 어머니의 위상은 민초의 기억 속에 강렬한 상징으로 각인된다. 고려시대 왕실이 주관하는 팔관회에서는 고구려 주몽의 어머니 유화부인을 국신으로 모셨다. 삼국시대에도 백제의 소서노와 신라의 알영은 시조의 동반자이자 모성으로 추앙받는 점은 우리 문화 특유의 결을 보여주는 실증적 사례다. 군주가 된 아들이 가시적인 정치 권력을 대변했다면, 한반도 역사에서 어머니는 천상의 생명력과 지상의 건국 기원을 잇는 근원적 상징으로 자리매김했던 것이다.
둥글고 빛을 머금는 알은 고대 한민족에게 하늘의 원형이자 태양을 닮은 신성한 상징으로 이해되었다. 알에서 시조가 태어났다는 설정은 천상의 생명이 비로소 인간의 역사 안으로 편입되었음을 알리는 문화적 기표다. 동시에 알은 하나의 ‘경계’이기도 하다. 견고한 껍질을 부수고 생명이 박동하는 찰나, 비로소 새로운 시대의 막이 오르기 때문이다. 결국 난생의 신화는 하늘의 명을 품은 존재가 시대적 한계를 돌파하며 새로운 질서를 창조해내야 한다는 준엄한 상징적 메시지를 우리에게 전하고 있다.
◆ 신화적 상상력은 역사 위에 세워진 상징이다.
1984년, 중국 요하(遼河) 유역 우하량 유적에서 5,500년 전의 ‘여신묘(女神廟)’가 발굴되었다. 붉은 제의 공간 한가운데에서 발견된 여신의 얼굴과 그 주변에서 확인된 다양한 제의 유물들은 고대 동아시아 사회에서 여성적 존재가 종교적 상징의 중심에 놓여 있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고고학적 발견으로 평가된다. 유적에서는 곰의 턱뼈와 곰발 모양의 소조 유물도 함께 확인되었다. 황하문명을 동아시아 문명의 중심으로 보던 기존의 학설은 적지 않은 재검토의 대상이 되었다. 문명의 출발점에 왕이 아니라, ‘여신’이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삼국유사(三國遺事)』에 기록된 웅녀 서사를 떠올려 보자. 한민족은 이미 ‘곰 여인’의 이야기를 기억하고 있다. 우하량 유적에서 확인된 곰 토템 문화와 고조선 건국 신화 속 웅녀 이야기는 북방 문화권의 상징 체계를 함께 보여주는 흥미로운 사례로 읽힌다. 요하 일대는 몽골·만주·한반도로 이어지는 북방 문화의 중요한 교차 공간이었다. 그 기억은 발해 연안 문화권을 따라 여러 세대에 걸쳐 전승되었고, 다양한 신화와 전설 속 현재의 생활 풍습으로 재구성되었던 것이다.
미국의 고고학자 마리야 김부타스(Marija Gimbutas)는 유럽 신석기 유적에서 발견된 수많은 여성 조각상들을 분석하며 초기 농경 문명에서 생명과 풍요의 근원을 상징하는 존재가 ‘여신’이었다고 설명하였다. 김부타스의 연구는 여성 신성이 단순한 종교적 대상이 아니라 생명의 탄생과 자연의 순환을 이해하는 인류 문명의 상징적 존재로 해석한다. 고대 사회에서 여성적 존재가 신화와 종교의 핵심 상징으로 등장하는 현상은 특정 지역의 특수한 전통이라기보다, 인류 문명 초기 단계에서 널리 나타나는 문화적 특징으로 해석될 수 있는 근거이다.
세계 문명사에서 가장 먼저 신격화된 존재 가운데 하나는 ‘여신’이었다. 여신은 다산과 풍요, 생명의 근원을 상징하는 존재였다. 신화는 단순한 허구라기보다 한 공동체가 스스로의 기원을 이해하기 위해 만들어낸 상징적 서사이기도 하다. 우리 민족의 건국 신화 역시 그러한 문화적 정통성을 담고 있다. 우하량에서 발견된 여선의 얼굴이 반만년의 시간을 넘어 모습을 드러낸 순간, 한민족은 오랫동안 문화의 깊은 층위에 남아 있던 ‘어머니’의 상징을 다시 떠올리게 되었다. 그렇다면 오늘날 이 시대에 다시 ‘어머니’의 이름이 역사와 종교 담론의 전면에 등장하는 현상은 단순한 우연일까, 아니면 오래전부터 어어져 온 문화적 기억과 시대의 흐름 속에서 새롭게 해석되고 있는 것일까.
신라 박혁거세와 알영의 신화를 단순한 전설이나 실제 존재하지 않았던 허구로 치부하는 시각도 있었다. 그러나 많은 역사학자와 사상가들은 오늘날의 합리적 기준으로 고대의 신화와 풍습을 재단할 경우 그 시대 사람들이 이해했던 세계관과 이상을 온전히 읽어낼 수 없다고 말한다. 신화는 단순한 이야기라기보다 한 사회가 자신들의 기원을 설명하기 위해 남긴 상징적 기록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삼국사기(三國史記)』 신라본기(新羅本紀)는 그 이야기를 건국의 기록 속에 남겼다. 그 탄생의 장소가 바로 경주 ‘나정(蘿井)’이다. 나정은 오랜 세월 전설 속 장소로 여겨지기도 했다. 실제로 나정으로 추정된 공간에서는 조선시대까지 제사가 이어졌고, 2002년부터 본격적인 발굴 조사가 시작되었다. 4년에 걸친 조사 끝에 그곳에서 신라 왕실 제의 공간인 ‘신궁(神宮)’ 유적이 확인되었다. 신라는 시조의 탄생지를 실제로 관리해 온 왕조였다. 전설로만 여겨지던 장소가 역사와 제의의 공간으로 다시 확인된 셈이다. 신화와 역사는 서로 단절된 세계가 아니라, 오랜 시간 속에서 서로를 비추며 해석되어 온 문화의 두 얼굴이었는지도 모른다. 21세기 문명사적 전환의 시대. 한민족 문명의 시발점에 자리했던 ‘어머니’라는 이름은 우리에게 어떤 화두를 던지는가. 신화 속 알을 품어 역사를 태동시켰던 그 근원적인 생명력과 상징적 의미를 오늘날의 문화적 맥락에서 어떻게 재해석하고 계승할 것인지 진지한 성찰이 필요한 시점이다.
고기훈 박사(한국학)
2026-03-27 18:0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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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WPA, 대망사상부터 ‘여론재판’까지…‘신통일한국’ 해법을 묻다
세계평화교수협의회(PWPA) 호남권지회는 26일 광주광역시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광주대교회에서 춘계학술회의를 열고 종교 자유와 신통일한국 비전을 둘러싼 학문적 논의를 펼쳤다.
이날 학술회의는 PWPA와 세계평화학술인연합이 공동 주최하고 가정연합이 후원한 가운데 ‘한민족 선민 대서사시와 신통일한국, 종교의 자유’를 주제로 개회식, 주제발표, 종합토론 순으로 진행됐다. 주우철 PWPA 사무총장 사회로 열린 개회식에서는 조광명 PWPA 이사장의 개회사와 조창언 광주대교회 교구장의 환영사, 구리모토 요시키 PWPA 회장의 축사가 이어졌다.
이날 발표에서는 한반도의 역사·사상·현실을 종합적으로 조망하는 세 가지 주제가 제시됐다.
먼저 엄성보 박사과정(신학)은 “한민족의 종교·사상 전통은 불교의 미륵신앙, 유교의 성인사상, 동학과 기독교의 재림신앙처럼 ‘고난을 넘어 새 시대를 기다리는’ 대망사상을 공통적으로 지닌다”고 설명하며 “이러한 오랜 대망이 축적돼 하나의 한민족 구원 서사로 발전했으며, 참부모 신학은 이를 독생녀와 참부모의 현현을 통해 완성된 사건으로 해석한다”고 밝혔다. 그는 특히 “한민족 선민 서사는 기존 종교의 수동적 기다림과 달리, 성취 이후 인간의 책임과 참여를 강조하는 능동적 구조로 확장된 점에서 차별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한수아 박사(북한학)는 북한의 ‘적대적 두 국가’ 규정과 남한의 ‘두 국가론’ 모두 한계를 지니며, 기존 통일방안의 현실 대응 부족을 지적하고, 그 대안으로 ‘신통일한국론’을 제시했다. 그는 “신통일한국론은 공생·공영·공의주의를 바탕으로 통일을 정치·군사적 과제가 아닌 문명사적 전환 과정으로 이해하고, 시민사회와 가치 변화 중심의 장기적 통합을 지향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이라고 설명했다.
세 번째 발표는 종교와 언론 간 갈등 구조가 다뤄졌다. 고기훈 박사(한국학) 연구팀은 최근 약 2000건의 가정연합(옛 통일교) 관련 언론 보도를 분석한 결과, 언론이 해당 종교를 ‘종교적 타자화’와 ‘정치적 범죄화’라는 이중 프레임 속에서 재구성하는 경향이 나타났다고 밝혔다. 고 박사는 특히 “기존의 신문·방송 등 전통 언론과 정치 유튜브의 상호작용 속에서 이러한 인식이 강화되며 사법적 판단 이전에 ‘여론재판’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하고, “이는 무죄추정 원칙과 종교의 자유 등 민주주의 가치와 긴장을 낳을 수 있어 보도 가이드라인 정립과 플랫폼 투명성 강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주최 측은 “이번 학술회의는 한민족의 사상적 전통과 한반도 통일의 미래, 그리고 종교 자유라는 현대적 과제를 함께 성찰하는 자리였다”며 “학문적 논의를 통해 갈등을 넘어서는 새로운 공론장과 신통일한국 비전을 모색하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2026-03-26 17:0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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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세상을 살리는 모성적 긍휼 [父性 문명의 한계, 母性 구원의 비전-기고]
◆측은지심, 상처받은 문명을 치유하는 본연의 인성
동양의 위대한 성현 맹자(孟子)는 인간의 본성이 선하다는 성선설(性善說)을 주창하며, 그 증거로 우리 내면에 깃든 네 가지 선한 마음의 씨앗인 ‘사단(四端)’을 꼽았다. 그중에서도 맹자가 으뜸으로 삼은 것은 측은지심(惻隱之心), 즉 타인의 고통을 차마 외면하지 못하고 내 아픔처럼 느끼는 긍휼의 마음이다. 인문학적으로 볼 때, 이 측은지심은 만물을 살려내는 모성(母性)적 사랑의 원형이자, 인류가 잃어버린 여성적 신성을 회복하는 인격의 정수라 할 수 있다.
◆ 사단(四端)의 발현: 인간 본성 속의 모성적 씨앗
맹자가 강조한 사단(측은·수오·사양·시비 지심)은 인간이 짐승과 구별되는 하늘의 선물이다. 하지만 인류 역사는 오랜 세월 이 선한 본성을 온전하게 발현하지 못한 채 이기심과 갈등의 늪에서 방황해 왔다. 맹자가 예고한 ‘인(仁)’의 완성은 단순히 개인의 도덕적 수양만으로 도달할 수 있는 경지가 아니었다. 그것은 하늘부모님의 모성적 성품을 손상 없이 담지한 실체가 나타나 인류의 보편적 덕성(德性)에 대한 새로운 표준을 세울 때 비로소 가능해지는 것이었다.
독생녀(獨生女)의 현현은 바로 이 오염된 사단의 씨앗을 다시 거룩한 사랑의 꽃으로 피워내는 영적 정화의 과정이다. 그녀가 지닌 측은지심은 인류의 죄업을 자신의 고통으로 여기며 짊어지는 효정(孝情)의 기반이 되고, 수오지심(羞惡之心)은 불의를 멀리하고 사탄의 주권을 물리치는 단호한 섭리적 의지로 발현된다. 이제 인류는 이러한 모성적 심정을 체휼함으로써 비로소 자신의 뒤틀린 본성을 바로잡고 진정한 ‘인자(仁者)’의 길로 들어설 수 있게 된다.
◆ 인(仁)의 실체: 세상을 치유하는 생명력의 원형
유교의 최고 덕목인 ‘인(仁)’은 ‘애인(愛人)’, 곧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다. 인문학적 관점에서 이 ‘인’은 단순히 부드러운 감성이 아니라, 죄악에 물든 인류까지도 조건 없이 품어 다시 새로운 생명으로 낳아 기르는 ‘모성적 창조력’ 그 자체다.
독생자 예수가 진리의 말씀으로 세상을 개척했다면, 독생녀는 그 진리를 사랑의 태(胎) 안에 담아 인류를 실질적으로 중생(重生)시키는 역할을 담당한다. 아버지는 자녀를 법으로 훈계하지만, 어머니는 자녀의 고통 앞에서 함께 울며 치유한다. 이 모성적 긍휼이 지상에 실체화될 때, 비로소 성경의 ‘성령 사역’과 유교의 ‘인(仁)의 실천’은 하나의 지점에서 만나게 된다. 인류 시조 해와(Haewa)의 타락으로 상실되었던 모성적 신성이 독생녀라는 실체를 통해 복구될 때, 문명의 해묵은 상처는 비로소 치유되기 시작한다.
◆ 왕도(王道)에서 평화로: 모성적 인(仁)이 꿈꾸는 대동사회
인의 완성은 개인의 수양을 넘어 사회적·국가적 평화로 확장된다. 유교가 꿈꾸었던 ‘대동사회(大同社會)’는 모든 사람이 제 자리를 찾고 서로를 보듬는 대가족의 세계다. 이 비전은 오직 인류를 한 가족으로 품는 ‘참어머니’의 리더십 아래에서만 실현 가능하다.
독생녀 참어머니가 보여주는 행보는 맹자가 주장한 ‘왕도(王道) 정치’의 실체적 완성이라 할 수 있다. 이는 힘으로 누르는 평화가 아니라, 어머니의 사랑으로 감동시켜 자발적 순종을 이끌어내는 평화다. 이러한 모성적 인의 실현이야말로 현대 문명의 갈등을 근본적으로 녹여낼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며, ‘하늘부모님 아래 인류 한 가족’이라는 천일국(天一國)의 견고한 토대가 된다.
◆ 관념을 넘어 실체로 다가온 지극한 인(仁)
결론적으로 맹자의 사상과 유교의 인(仁)은 독생녀의 현현을 통해 비로소 관념의 옷을 벗고 생생한 육신의 숨결로 우리 곁에 다가왔다. 하늘의 뜻이 땅의 사랑으로 결실을 맺는 이 지점에서, 인류는 상실했던 본연의 미덕을 되찾고 새로운 평화의 서사를 써 내려가기 시작한다.
‘효(孝)’가 하늘부모님과의 수직적 관계 회복이었다면, ‘인(仁)’은 인류 전체를 형제자매로 껴안는 수평적 사랑의 완성이다. 이제 우리는 가부장적 권위에 가려졌던 유교의 본질을 다시 보아야 한다. 인류를 다시 낳아줄 ‘하늘의 딸’을 모심으로써, 우리는 비로소 맹자가 꿈꾸었던 지극한 인의 세계로 나아갈 수 있다. 이 장엄한 인성의 회복은 유교의 마지막 이상인 ‘천지부모 사상’으로 귀결되며, 인류 문명의 위대한 대전환을 완성하게 될 것이다.
서성종 작가(신학박사)
2026-03-26 09: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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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을 묻는 종교] <2> 불교가 말하는 삶과 죽음
[영원을 묻는 종교] 목차
<1> 인류는 언제부터 영생을 꿈꾸었는가
<2> 불교가 말하는 삶과 죽음
<3> 성경이 말하는 영생
<4> 기독교 신학의 영생 이해
<5> 통일교 영생론의 인간 이해
<6> 인간은 어떻게 영적 자아를 성장시키는가
<7> 동양 사상이 말하는 삶과 죽음
<8> 인간은 왜 영원을 묻는가.
기존 종교의 생사관과는 다른 독특한 방식으로 삶과 죽음을 설명하는 종교가 있다. 약 2500년의 전통을 가진 불교(佛敎)다. 불교는 인간이 영원한 생명을 얻는 존재라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에 죽음 이후 끊임없이 새로운 삶으로 이어지는 윤회(輪廻)의 세계 속에서 인간이 어떻게 해탈(解脫)에 이르는지를 탐구한다.
불교의 사상은 기원전 6세기경 인도에서 시작되었다. 당시 인도 사회는 윤회와 업(業)을 중심으로 한 종교적 세계관이 널리 퍼져 있었다. 인간은 죽어도 다시 태어나며, 내생의 모습은 현생의 행위에 따라 결정된다는 믿음이었다. 이러한 사상은 힌두교 전통의 뿌리인 브라만교와 우파니샤드 철학에서도 발견된다. 이러한 전통 속에서 등장한 불교는 그러나, 인간 존재와 해탈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했다.
불교의 출발점은 인간이 겪는 고통의 원인을 탐구한 석가모니의 깨달음에 있다. 그 핵심 가르침은 ‘사성제(四聖諦)’로 체계화된다. 첫째, 인간의 삶은 고통으로 가득 차 있다는 ‘고제(苦諦)’이다. 둘째, 이러한 고통은 욕망과 집착에서 비롯된다는 ‘집제(集諦)’이다. 셋째, 욕망을 끊으면 고통도 사라진다는 ‘멸제(滅諦)’이다. 넷째, 그 길을 실천하는 방법이 ‘도제(道諦)’다. 도제의 구체적인 실천 체계가 바로 정견(正見), 정사유(正思惟), 정어(正語), 정업(正業), 정명(正命), 정정진(正精進), 정념(正念), 정정(正定) 등 여덟 가지 바른 길을 의미하는 팔정도(八正道)이다.
삶과 죽음은 불교에서 서로 단절된 사건이 아니다. 인간은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시 새로운 존재로 태어난다. 그런데 이러한 반복은 업에 의해 결정된다. 업은 인간의 행위와 그 속에 담긴 의도가 만들어내는 도덕적 동력으로 이해된다. 선한 행위는 좋은 결과를 낳고, 악한 행위는 고통스러운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이 불교의 기본적 이해다.
역사의 거대한 흐름 속에서 끊임없이 태어나고 죽는 ‘생사윤회(生死輪廻)’의 세계는 인간만의 문제는 아니다. 불교는 존재의 세계를 천도(天道), 인도(人道), 아수라도(阿修羅道), 축생도(畜生道), 아귀도(餓鬼道), 지옥도(地獄道) 등 여섯 가지 영역으로 설명하는데, 이를 ‘육도윤회(六道輪廻)’라고 한다. 불교에서는 인간이 업(業)에 따라 이 여섯 개의 세계를 끊임없이 윤회한다고 보는 것이다. 이 가운데서도 인간은 특별한 위치를 차지한다. 인간 세계는 고통과 기쁨이 함께 존재하기 때문에 깨달음을 얻을 가능성이 가장 큰 삶으로 이해된다.
불교가 영혼이 머무는 세계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해서 죽음 이후의 문제에 무관심한 것은 아니다. 한국 불교에서 널리 알려진 ‘49재’ 역시 이러한 이해에서 비롯된 의식이다. 불교에서는 사람이 죽은 뒤 곧바로 다음 생으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중간 상태를 거친다고 본다. 이를 중음(中陰) 또는 중유(中有)라고 한다. 불교 전통에서는 이 기간을 49일로 보며, 망자가 다음 생으로 건너가기 전 행선지가 결정되는 중요한 시기로 여긴다. 그래서 장례 이후 7일마다 재를 올리고, 마지막으로 49일째 되는 날 의식을 마친다. 이러한 의식은 죽은 이가 더 나은 삶으로 이어지기를 기원하는 불교적 전통을 보여준다.
불교는 고정된 실체로서의 영혼을 인정하지 않는다. 이를 ‘무아(無我)’라 하며, 모든 존재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조건적 결합일 뿐이라는 ‘무상(無常)’의 원리와 함께 이해된다. 따라서 윤회 역시 불변의 영혼이 이동하는 과정이라기보다, 업과 의식의 연속성이 인과적으로 이어지는 흐름으로 파악된다. 이러한 관점은 존재를 실체가 아닌 과정으로 이해하는 불교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그렇다면 윤회의 고리를 끊고, 그 윤회에서 벗어나는 길은 무엇일까. 불교는 이를 ‘해탈’이라고 부른다. 해탈은 생(生)과 사(死)가 반복되는 윤회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상태를 의미한다. 이러한 궁극의 경지를 ‘열반(涅槃)’이라고도 일컫는데, 열반은 죽음이나 소멸만을 의미하지 않고, 욕망과 집착이 완전히 사라진 자유의 상태를 뜻한다. 이러한 해탈에 이르는 핵심적인 방편이 앞서 언급한 팔정도 수행이다. 불교에서 팔정도 수행은 욕망과 집착을 끊고 윤회의 고리를 벗어나기 위한 구체적인 실천의 길로 이해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불교는 영생을 약속하는 종교라기보다, 영원한 존재라는 개념 자체를 넘어서는 길을 제시한다. 인간이 영원한 존재로 살아가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삶과 죽음을 반복하는 근본적인 고통의 구조를 깨닫고 그 굴레에서 궁극적으로 벗어나는 것이다.
2026-03-24 14:5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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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효(孝)의 근원과 수직적 사랑 [父性 문명의 한계, 母性 구원의 비전-기고]
◆ 만선지본(萬善之本), 인류 구원의 뿌리를 묻다
동양 윤리의 알파와 오메가는 효(孝)다. 유교는 효를 인간이 행해야 할 모든 선(善)의 근본이라 하여 ‘만선지본(萬善之本)’이라 일컬어 왔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효는 지상의 부모를 공경하는 수평적 윤리에만 머물러 있는 경우가 많다. 인류 문명이 영적 뿌리를 잃고 방황하는 이 시대에, 유교 경전은 우리에게 근원적인 질문을 던진다. 과연 효의 진정한 종착지는 어디인가?
◆생명의 근원을 향한 경외, 효(孝)의 참된 의미
『논어』는 효를 가리켜 ‘인을 행하는 근본(爲仁之本)’이라 정의했다. 여기서 인문학적 통찰을 더해본다면, 효의 대상은 단순히 나를 낳아준 육신의 부모를 넘어 생명의 근원인 하늘(天)로 확장되어야 한다. 유교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천인합일(天人合一)’의 경지는, 곧 인간이 우주의 질서인 하늘의 뜻을 제 마음처럼 품고 그 사랑에 화답하는 지극한 효정(孝情)의 상태를 의미한다.
인류 구원의 역사는 이 단절된 ‘수직적 부모·자식 관계’를 복구하는 과정이다. 타락한 인류는 하늘부모님과의 종적 관계를 상실함으로써 근원을 알 수 없는 영적 고아가 되었다. 이 끊어진 천륜(天倫)을 잇기 위해 역사의 무대 위로 등장해야 할 주인공이 바로 하늘의 뜻을 온전히 상속한 아들과 딸이다. 특히, 하늘의 모성적 심정을 실체로 체휼한 존재의 등장은 인류가 잃어버린 ‘효의 참된 기준(孝的 眞基準)’을 지상에서 최초로 세우는 결정적 분기점이 된다.
◆단절된 천륜의 회복과 인격적 완성의 길
역사적으로 여성의 가치는 부성 중심의 사회 구조 속에서 흔히 부차적인 존재로 취급받아 왔다. 그러나 우주적 섭리의 관점에서 보면, 여성성 안에 깃든 모성적 효심은 구원 역사의 완성에 있어 절대적인 위치를 차지한다. 누구의 가르침이나 도움에 의존하지 않고, 오직 스스로를 닦는 ‘신독(愼獨)’의 경지를 통해 하늘부모님을 향한 일편단심의 효를 완성한 실체적 인격자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존재가 걸어온 노정은 타락한 인류를 대표하여 하늘부모님의 아픔을 씻어드리는 ‘대속(代贖)적 효’의 과정이다. 생물학적 이치로 보나 섭리적 원리로 보나, 아버지만으로는 자녀를 온전히 낳을 수 없다. 따라서 하늘 아버지만을 모시는 반쪽뿐인 효도로는 결코 천도(天道)의 완결에 이를 수 없다. 하늘 아버지와 하늘 어머니를 온전한 실체로 모시는 ‘참된 딸’, 즉 독생녀(獨生女)의 현현은 비로소 인류가 하늘부모님의 참자녀로 거듭날 수 있는 수직적 통로를 열어준 문명사적 사건이다.
◆ 효제(孝悌)의 확장: 수직적 사랑이 빚어낸 인류 평화
유교는 효(孝, 부모에 대한 사랑)와 제(悌, 형제에 대한 사랑)를 분리하지 않았다. 수직적인 효가 완성될 때, 비로소 형제간의 수평적 사랑인 ‘제’가 가능해진다는 원리다. 이는 현대 사회가 직면한 갈등을 해결할 유일한 평화 모델이기도 한다. 하늘부모님을 인류 공동의 부모로 모시는 확고한 수직적 사랑의 축이 세워질 때, 인류는 비로소 인종과 국경, 종교를 초월하여 서로를 형제자매로 대하는 ‘세계일가(世界一家)’의 꿈을 실현할 수 있다.
이 땅에 오신 참어머니가 주창하는 ‘효정(孝情)’ 문화는 바로 이 유교적 지혜를 현대적으로 승화시킨 결실이다. 이는 단순한 개인의 수양을 넘어, 하늘의 사랑이 참부모를 통해 지상의 참가정으로 투영되고, 다시 인류라는 큰 가족으로 확장되는 사랑의 선순환 구조를 지향한다. 수천 년간 가부장적 질서 속에 갇혀 있던 유교의 이상이 비로소 모성적 사랑을 통해 그 생명력을 얻게 된 것이다.
◆천지부모 시대의 개막과 새로운 인륜의 과제
결론적으로 효는 관념적인 도덕률이 아니라, 신과 인간을 잇는 생명의 끈이다. 유교가 수천 년간 지켜온 효의 전통은 이제 하늘의 모성적 실체를 만남으로써 그 궁극적인 목적지에 도달했다. 잃어버린 하늘 어머니의 위상을 찾아 세우고, 그 품 안에서 모든 인류가 효자·효녀로 거듭날 때 비로소 지구촌의 오랜 갈등은 종식될 것이다.
관념 속의 하늘(天)을 실체적인 ‘하늘부모님’으로 모시게 된 오늘날, 우리가 모성적 효정의 가치를 체휼하는 것은 새로운 문명의 문을 여는 열쇠와 같다. 이 수직적 사랑의 회복은 이제 만물을 살려내는 자비로운 인(仁)의 실천으로 이어지며, 마침내 대동(大동) 세상의 이상을 우리 눈앞에 펼쳐 보일 것이다.
서성종 작가(신학박사)
2026-03-23 10:4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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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SP, ‘제7회 PD쇼케이스 성장 공유회’…청년 주도 지역문제 성과 공유
청년들의 창의적인 프로젝트 활동을 통해 지역사회 문제를 해결하고 평화와 공존의 가치를 확산하기 위한 노력이 매년 결실을 보고 있다.
(사)세계평화청년학생연합(이하 YSP)은 지난 14일 ‘제7회 PD쇼케이스 성장공유회’를 개최하고, 청년들이 지역사회 현장에서 직접 발굴하고 실행한 다양한 사회공헌 프로젝트 성과를 공유했다.
PD(피스 디자이너) 쇼케이스는 환경, 평화, 교육 등 우리 사회가 직면한 현안을 청년 스스로 기획한 프로젝트로 풀어나갈 수 있도록 지원하는 참여형 프로그램이다. 청년들이 정책 수혜자에 머물지 않고, 실질적인 사회참여 역량을 갖춘 주체로 성장하도록 돕는 데 목적이 있다.
이번 7회차 행사에는 전국에서 선발된 22개 팀이 참여해 약 2개월간 활동을 펼쳤다. 각 팀은 환경 정화, 청년 간 교류 증진, 소외계층 정서 지원, 지역 커뮤니티 형성 등 법과 제도가 미처 닿지 못하는 ‘복지 사각지대’를 메우기 위한 실천적 대안들을 선보였다.
정국진 YSP 한국회장은 환영사에서 “현재 우리 사회에는 정책과 제도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공백이 존재한다”며 “그 빈 공간을 채우는 것은 청년 활동가와 NGO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번 쇼케이스를 통해 청년들이 단순한 수혜자가 아닌 사회 설계자로서의 가능성을 충분히 보여주었다”고 강조했다.
이날 성장공유회에서는 각 팀의 활동 경험과 성과를 발표하는 프로그램이 진행됐으며, 프로젝트 평가를 통해 우수팀을 선정하는 시상식도 함께 열렸다. 심사 결과 대상 1팀, 최우수상 1팀, 우수상 3팀 등 총 5개 팀이 선정됐다. 이들 팀은 창의적인 접근과 지속적인 실천을 통해 지역사회에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낸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2026-03-19 20: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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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중용(中庸)의 덕과 인륜 회복의 비전 [父性 문명의 한계, 母性 구원의 비전-기고]
◆불균형의 시대를 치유하는 모성적 정성과 ‘시중’의 미학
고도의 기술적 진보와 물질적 풍요를 누리는 21세기 현대 사회에서 인류는 역설적으로 심각한 정신적 불균형과 관계의 파편화라는 위기에 직면해 있다. 이러한 시대적 난국을 극복하기 위해 소환되는 유교의 핵심 가치가 바로 ‘중용(中庸)’이다. 중용은 단순히 기계적인 중간 지점이나 산술적인 평균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변화무쌍한 현실 속에서 도덕적 평형을 유지하려는 역동적인 정신적 분투이자, 우주의 질서에 인간의 질서를 합치시키려는 거대한 철학적 기획이다.
송대의 유학자 주희(朱熹)는 이러한 『중용』의 사상을 성(誠)을 중심으로 한 도덕 형이상학으로 체계화함으로써, 인간의 내면 수양과 우주 질서를 하나로 관통하는 사상으로 정립하였다. 지금까지 인류 문명이 종적인 질서와 정의를 강조하는 부성(父性) 중심의 논리로 전개되어 왔다면, 이제는 그 한계를 보완하고 만물을 품어 안는 모성적 조화가 절실한 시점이다.
◆중용의 형이상학적 기초: 천명(天命)과 본성의 회복
중용은 “하늘이 명한 것을 성(性)이라 하고, 성을 따르는 것을 도(道)라 하며, 도를 닦는 것을 교(敎)라 한다”는 선언으로 그 문을 연다. 이는 인간의 본성이 하늘부모님으로부터 부여받은 도덕적 실체임을 의미하며, 인간의 삶 자체가 하늘의 뜻을 지상에 실현하는 과정임을 시사한다.
중용의 ‘중(中)’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도, 기울어지지도 않는 불편불의(不偏不倚)의 상태를 말하며, '용(庸)'은 일상의 변함없는 평상성(平常性)을 뜻한다. 즉, 중용은 하늘의 이치를 내면화하여 일상의 삶 속에서 꾸준히 도덕적 원리를 실천하는 과정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인간이 본연의 성품을 회복하는 것은 우주적 균형을 되찾는 일이며, 이는 곧 부성적 질서와 모성적 사랑이 온전한 평형을 이루는 상태를 지향한다.
◆성(誠)의 동력: 지극한 정성이 빚어내는 모성적 심정
『중용』 전 편을 관통하는 가장 근원적인 원리는 ‘성(誠)’, 즉 진실함과 정성스러움이다. 유교에서 성은 만물을 변화시키고 완성하는 하늘의 도리이자 인간이 지향해야 할 최종적인 인격적 표준이다. 특히 중용 제23장에서 강조하는 ‘치곡(致曲)’, 즉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하여 정성을 다하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가르침은 모성적 심정의 본질과 깊이 맞닿아 있다.
어머니가 자녀의 사소한 일상 하나하나에 정성을 쏟는 모성적 심정은 지극한 성(至誠)의 구체적인 실현이다. 이러한 진실한 사랑은 단순히 감정의 영역에 머물지 않고 한 인간의 인격을 빚어내며, 나아가 사회 전체를 변화시키는 근원적인 동력이 된다. 정성은 소극적인 수양이 아니라 모든 관계에서 감동을 자아내는 실천적 행동철학이다. 부성 문명이 세운 법과 정의의 뼈대 위에 이러한 모성적 ‘성’의 원리가 더해질 때, 비로소 문명은 온전한 생명력을 얻고 완성될 수 있다.
◆중화(中和) 및 시중(時中): 감정의 정위(正位)와 상황의 미학
중용은 인간의 감정을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조화롭게 발현하는 ‘중화(中和)’를 추구한다. 희로애락의 감정이 일어나기 전의 고요한 본연의 상태를 ‘중’이라 하고, 감정이 발현되되 모두 절도에 맞는 것을 ‘화’라고 정의한다. 어머니가 자녀의 잘못에 분노하되 그 근저에 사랑을 잃지 않는 것은, ‘분노하되 윤리를 잃지 않는’ 중화의 경지를 보여주는 가장 보편적인 사례다.
또한 중용의 실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시중(時中)’이다. 이는 고정불변의 원칙을 고수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라는 구체적인 상황 속에서 가장 적절하고 최적의 선택을 내리는 지혜를 의미한다. 자녀의 발달 단계와 상황에 따라 부모의 역할이 유연하게 변해야 하듯이, 군자의 중용은 때에 맞게 적절히 처신하는 시중의 미학을 핵심으로 삼는다. 인류 역사는 이제 부성적 투쟁의 시대를 지나 모성적 포용이 절실한 ‘시중’의 시점에 도달해 있다.
◆중용의 완성으로서의 독생녀 현현
결국 중용은 단순히 고요한 상태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하는 세상 속에서 중심을 잡고 나아가는 용기 있는 실천이다. 모성적 심정으로 대변되는 지극한 정성과 시중에 맞는 배려는 현대 사회의 이기주의와 불균형을 치유할 강력한 대안이 된다. 작은 일에 정성을 다하는 치곡(致曲)의 마음과 감정의 조화를 이루는 중화의 덕이 사회 전반에 퍼져나갈 때, 모든 사람이 제 자리를 찾고 서로를 보듬는 대동(大同) 세상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지금까지의 문명이 한쪽으로 치우친 부성 중심의 질서였다면, 이제는 그 균형을 잡을 모성적 실체의 등장이 섭리적으로 요구된다. 투쟁과 분열의 시대를 종결하고 포용과 화합의 후천개벽 시대를 여는 독생녀의 등장은, 섭리적 때에 맞춰 인류를 구원하려는 ‘시중’의 도가 역사적으로 실현된 가장 장엄한 사건이다. 인류는 이제 이 중용의 실체적 완성을 통해 부성과 모성이 조화된 새로운 문명, 천일국(天一國)의 시대를 맞이해야 한다.
서성종 작가(신학박사)
2026-03-18 09:5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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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을 묻는 종교] <1> 인류는 언제부터 영생을 꿈꾸었는가
[영원을 묻는 종교] 목차
<1> 인류는 언제부터 영생을 꿈꾸었는가
<2> 불교가 말하는 삶과 죽음
<3> 성경이 말하는 영생
<4> 기독교 신학의 영생 이해
<5> 통일교 영생론의 인간 이해
<6> 인간은 어떻게 영적 자아를 성장시키는가
<7> 동양 사상이 말하는 삶과 죽음
<8> 인간은 왜 영원을 묻는가.
삶이 끝나면 모든 것이 사라지는 것인지, 아니면 또 다른 세계가 기다리고 있는 것인지에 대한 질문은 인류 역사만큼이나 오래됐다. 인간은 자신이 유한한 존재임을 자각하는 동시에, 그 유한함을 넘어서는 어떤 의미를 찾고자 했다. 바로 그 지점에서 ‘영생’ 혹은 ‘사후세계’에 대한 사상이 탄생했다.
고고학 연구는 이러한 흔적이 이미 선사시대 무덤에서 나타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구석기 시대 유적에서는 죽은 이를 단순히 버리지 않고 일정한 자세로 매장한 흔적이 발견된다. 때로는 무덤 속에 도구나 장신구를 함께 묻어 두기도 했다. 이는 죽은 뒤에도 어떤 형태의 삶이 계속될 것이라는 믿음이 존재했음을 짐작하게 한다. 인류가 문명을 이루기 훨씬 이전부터 인간은 이미 죽음 이후의 세계를 상상하고 있었던 셈이다.
고대 이집트 문명은 사후세계에 대한 가장 체계적인 관념을 남긴 문명 가운데 하나다. 이집트인들은 인간에게 육체와 영혼이 함께 존재한다고 믿었으며, 죽은 뒤에도 영혼이 계속 살아간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죽은 이를 미라(mummy)로 만들어 육체를 보존하고, 무덤 속에 다양한 부장품을 함께 묻었다. ‘미라’라는 말은 페르시아어 mūm(방부용 수지)에서 유래해 아랍어 mūmiyā, 중세 라틴어 mumia, 영어 mummy로 이어진 표현이다. 한국어 ‘미라’는 일본어 ‘미이라(ミイラ)’를 거쳐 정착한 말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사후세계 신앙은 1922년 영국 고고학자 하워드 카터가 발견한 투탕카멘 왕의 무덤에서도 잘 드러난다. 이집트 왕가의 계곡에서 거의 훼손되지 않은 채 발견된 이 무덤에는 황금 가면과 장례 용품 등 수천 점의 유물이 함께 묻혀 있었는데, 이는 죽은 이후의 삶을 준비하려 했던 고대 이집트인의 믿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에서도 사후세계에 대한 관념이 등장한다. 인류가 남긴 가장 오래된 서사시 가운데 하나인 ‘길가메시 서사시’는 인간이 영원한 생명을 갈망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친구의 죽음을 목격한 길가메시는 죽음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여행을 떠난다. 결국 그는 영생을 얻지 못하지만, 그 여정 자체가 인간이 영원한 삶을 꿈꾸어 왔음을 보여준다. 죽음은 인간에게 두려움의 대상이었지만 동시에 철학적 질문의 출발점이기도 했다.
동양에서도 사후세계에 대한 다양한 사상이 나타났다. 중국 고대 사상에서는 조상 숭배 전통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조상은 후손의 삶을 지켜보는 존재로 여겨진 것이다. 이러한 인식은 인간의 삶이 육체의 죽음으로 완전히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과 연결되어 있었다. 고대 중국의 도교 전통에서는 인간이 수양을 통해 장생(長生)과 불사(不死)에 이를 수 있다는 믿음도 등장했다.
이처럼 문화와 시대는 달랐지만, 인류는 공통된 질문을 품어 왔다. 인간은 왜 영원을 꿈꾸는가. 단순히 죽음에 대한 공포 때문일까. 아니면 인간 존재의 깊은 곳에 ‘영원을 향한 어떤 본성’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일까. 종교와 철학은 이 질문에 서로 다른 방식으로 답해 왔다. 어떤 전통은 인간 영혼의 불멸을 말했고, 또 다른 전통은 윤회나 해탈의 개념으로 삶과 죽음의 관계를 설명했다.
과학 역시 죽음 이후의 세계에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20세기 이후 의학과 뇌과학의 발전과 함께 심정지 상태에서 살아난 사람들의 경험을 조사하는 임사체험(Near-Death Experience) 연구가 이루어졌고, 죽음 직전 인간의 뇌 활동을 분석하려는 시도도 이어졌다. 일부 연구에서는 심장이 멈춘 뒤에도 짧은 시간 동안 뇌에서 강한 전기 활동이 나타난다는 사실이 관찰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들이 곧바로 사후세계의 존재를 입증하는 것은 아니다. 과학은 기본적으로 관찰과 측정, 반복 가능한 실험을 통해 사실을 확인하는 학문이기 때문이다.
죽음 이후의 세계는 현재의 과학적 방법으로 직접 관찰하거나 재현하기 어려운 영역에 속한다. 그렇다고 해서 사후세계의 가능성을 완전히 부정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인간 의식의 본질조차 아직 충분히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죽음 이후의 세계는 과학이 아직 풀지 못한 질문이자, 인류가 오랫동안 종교와 철학을 통해 탐구해 온 중요한 영역으로 남아 있다.
2026-03-17 15:2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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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한 가족 원대한 꿈… 세계 평화 초석 놓다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70년]
세계 곳곳에서 종교적 대립이 정치·민족적 갈등과 결합하며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분쟁의 원인이 되고 있다. 이러한 위기 속에서 종교가 갈등의 원인이 아닌 평화의 주체로서 감당해야 할 역할은 그 어느 때보다 막중하다.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은 종교 간 화합 없이는 진정한 세계 평화도 불가능하다는 신념 아래 지난 수십 년간 초종교 협력 운동의 외연을 꾸준히 확장해 왔다.
가정연합 초종교 운동의 근간은 ‘하나님 아래 인류 한 가족(One Family Under God)’ 사상에 있다. 이는 서로 다른 신앙 전통이 배타적 경쟁 대상이 아니라, 인류 공동의 평화를 위해 연대해야 할 동반자라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정치나 군사적 접근만으로는 인간 내면의 증오와 문명 간 충돌을 해결하기 어렵기에 종교가 먼저 화해의 길을 열어야 한다는 논리다.
가정연합의 해외 종교화합 운동은 1980년대 미국에서 하나의 전기를 맞이한다. 문선명 총재가 미국에서 탈세 혐의로 기소·수감되었을 당시, 제리 폴웰을 비롯한 현지 종교 지도자들은 이를 ‘종교 자유에 대한 중대한 위협’으로 규정하고 종교 탄압에 맞선 보편적 가치 아래 연대했다. 이를 계기로 미국 종교계 일각에서는 가정연합을 종교 자유의 관점에서 재평가하려는 논의가 확산됐으며, 이는 해외 종교 지도자들과의 접점을 넓히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같은 시기 미국 성직자들과의 대규모 교류 프로그램도 추진됐다. 1985년부터 1988년까지 진행된 ‘초교파 성직자회의(ICC)’ 세미나는 미국 기독교 성직자들을 한국과 일본에 초청한 국제 교류 프로그램이었다. 1985년 4월 첫 세미나를 시작으로 총 38차례에 걸쳐 약 7,000명의 미국 목회자가 한국을 방문했다. 이들은 한반도 분단 상황과 종교 자유, 세계 평화 문제를 논의하며 양국 종교계 사이의 교류 기반을 넓혔다.
1990년대 들어 가정연합의 종교 화합 활동은 보다 체계적인 국제 협력으로 발전했다. 1991년 열린 ‘제3회 한일 종교인 회의’에서는 ‘한국의 남북통일과 한일 종교인의 역할, 초종파 운동과 아시아 평화’를 주제로 논의가 진행됐다. 이는 종교 협력이 냉전 종식 직후 이념의 벽을 넘어 종교가 공통의 윤리를 모색한 선구적 시도였다. 1993년 열린 ‘한국?CIS 종교인 회의’는 이러한 흐름이 국제 협력 단계로 발전하는 계기가 됐다. 러시아정교회 대주교, 로마 가톨릭 신부, 개신교 목사, 카자흐스탄 이슬람 지도자 등이 참여해 서로 다른 종교 전통의 지도자들이 평화와 협력 문제를 논의했다. 특히 이 시기 문선명 총재가 제시한 ‘아벨 유엔(Abel UN)’ 구상은 초종교 운동의 정점으로 평가받는다. 기존 유엔이 국가 이익과 힘의 논리에 매여 있다면, 아벨 유엔은 종교 지도자들이 보편적 양심과 도덕에 바탕을 둔 지도력을 발휘해 세계 평화의 근본적인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는 혁신적인 평화 거버넌스 모델이었다.
2000년대에는 이러한 활동이 조직적인 네트워크로 정착했다. 2000년 5월 출범한 미국성직자협의회(ACLC)는 초교파 협력을 지향하며 DMZ 평화행사 등을 전개했다. 특히 2001년 초종파 축복식에 가톨릭의 엠마누엘 밀링고 대주교가 참석한 사건은 종교 간의 벽을 허무는 행보로 당시 세계 종교계에 큰 주목을 받았다. 2001년 ‘9·11 테러’ 이후에는 중동 평화라는 실질적 과제로 활동 영역이 확대됐다. 2003년 추진된 중동평화회의(MEPI)는 종교 지도자들을 예루살렘에 초청해 이스라엘 국회와 팔레스타인 인사들을 만나게 하며 초종교적 해법을 모색했다. 이어 유대교·기독교·이슬람 지도자들이 함께한 ‘이스라엘 선언’ 발표와 2만 명 규모의 ‘예루살렘 평화대행진’이 개최됐으며,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의장과의 면담이 성사되는 등 종교 화해의 상징적인 사례를 남겼다.
초종교 운동의 외연은 미래 세대로도 확장됐다. 1986년 시작된 종교청년봉사단(RYS)은 세계 40여 개국에서 100회 이상의 봉사활동을 펼치며 청년들이 종교의 틀을 넘어 소통하는 장을 마련했다. 또한 초종교평화스포츠페스티벌(IPSF)은 스포츠를 매개로 문화적 이질감을 극복하는 교육의 산실이 됐다. 이러한 흐름은 2019년 세계 70여 개국 성직자 3만여 명이 집결한 ‘세계성직자협의회(WCLC)’ 창립으로 이어지며 수십 년간 이어진 화합 운동의 총화였다. 이어 2020년대 들어서는 종교 간 화합과 세계 평화를 기원하는 ‘세계 초종교 기도회’를 통해 실질적인 영성 화합 행보를 가속화하고 있다. 이 기도회에는 무닙 유난 전 루터교 세계연맹 의장, 카트리나 스웬 IRF 공동의장, 폴라 화이트 목사 등 국제적 지도자들이 대거 참여하며 종교 공동체의 사회적 책임을 역설하고 있다.
가정연합은 지난 70년 동안 공생·공영·공의라는 가치 철학을 중심축으로 삼아 다각적인 평화운동을 전개해 왔다. 특히 “종교 간의 진정한 화해 없이는 세계 평화도 요원하다”라는 신념은 사회 공헌 활동의 뿌리가 됐다. 현재 국제 사회는 가정연합이 구축해 온 활동 모델이 미래 100년의 비전과 어떻게 연결될지 주목하고 있다. 종교적 가치와 시민사회의 역량이 결합하여 공동체의 미래를 설계하는 과정은 우리 시대의 중요한 과제로 부상했으며, 가정연합의 국제적 평화 행보는 문명 충돌의 위기를 겪고 있는 현대 인류에게 공존을 위한 하나의 이정표가 되고 있다.
결국 지난 70년의 여정은 종교가 세상을 향해 건넨 가장 낮은 자세의 위로이자, 인류 한 가족이라는 원대한 꿈을 향해 멈추지 않고 달려온 평화의 대장정이었다.
2026-03-16 18:4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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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열과 갈등의 소용돌이 속 종교 간 공존 선구적 시도”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70년]
1960년대 한국 사회는 교단 분열과 신학적 갈등의 소용돌이 속에 있었다. 이러한 대립의 시대에 가정연합(당시 통일교)이 추진한 초교파운동은 종교 간 공존을 모색한 선구적 시도였다. 특히 1960년대 후반 서울 우이동 크리스천아카데미하우스 모임과 YMCA 시민논단은 신흥 종교와 기성 교계가 공개적으로 소통한 역사적 분수령이었다. 당시 부군인 고(故) 이재석 한국종교협의회 회장을 보필하며 현장을 지킨 강정원 한국종교여성협의회 초대 회장은 1955년 이화여대 퇴학 사건의 당사자이자 통일운동의 산증인이다. 아흔한 살의 나이에도 변함없는 신념을 간직한 그를 통해 당시 초교파운동이 한국 종교사에 던진 의미를 짚어본다.
- 1960년대 후반 초교파운동의 배경과 당시 상황은 어떠했나.
“당시 이재석 회장은 한국 개신교를 대표하는 지성이자 지도자였던 강원룡 목사를 만나기 위해 필사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강 목사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의장이자 세계교회협의회(WCC) 위원으로서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인물이었다. 이 회장은 그와 소통하기 위해 강 목사가 비행기를 타면 옆자리를 수소문해 예약하고, 부산행 기차에서도 인접 좌석을 확보해 대화를 시도하는 등 정성을 다했다. 이는 신흥 종교에 대한 기성 교계의 두터운 편견을 ‘대화’라는 정공법으로 뚫어내려는 의지였다. 이러한 진심이 결국 아카데미하우스라는 공론의 장을 여는 마중물이 되었다.”
- 1968년 우이동 크리스천아카데미하우스 모임이 갖는 역사적 의미는.
“통일교와 기독교 지도자들이 처음으로 마주 앉은 파격적인 사건이었다. 김재준, 홍현설, 안병무, 유동식 교수 등 당대 최고의 신학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기독교 목사들이 직접 ‘원리강론’을 경청하고 질의응답을 나눴다. 특히 문선명 총재께서 사회와 교계 앞에 전격적으로 모습을 나타내어 인사하신 것은 당시 종교계에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 이 모임은 배척이 아닌 이해를 통해 편견의 벽을 허문 역사적 전환점이었다. 이 자리에서 문 총재는 종교가 하나님의 뜻 안에서 협력해야 함을 역설하며 개신교 지도자들을 지극정성으로 예우했고, 이는 통일교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 변화를 이끌어냈다.”
- 초교파 현장에서 이재석 회장이 수행한 역할은 무엇이었나.
“이 회장은 대화를 실무적으로 이끈 핵심 동력이었다. 강원룡 목사를 설득해 교류의 토대를 마련했을 뿐만 아니라, 1970년대 YMCA 시민논단에도 대표로 나서 치열한 공개 토론을 벌였다. 특히 재림주에 관한 날카로운 질문에 대해 ‘재림주라고 부른다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니고, 아니라고 부정한다고 해서 아닌 것도 아니다. 그것은 인간의 잣대로 판단할 문제가 아니다’라고 답한 일화는 유명하다. 이는 교리적 틀에 갇히지 않고 본질적인 가치를 지향했던 그의 유연한 신념을 보여준다.”
- 오늘날 사회적 갈등이 여전한 상황에서 당시의 운동은 어떤 교훈을 주는가.
“현재 인류는 기후 위기와 사회적 불평등이라는 거대한 과제 앞에 서 있다. 이러한 난제는 특정 국가나 종교의 힘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시민사회와 학계, 국제기구, 그리고 종교 공동체의 연대가 필수적이다. 종교나 진영이 서로를 배척의 대상이 아닌 평화의 동반자로 인식할 때 비로소 진정한 사회 평화가 가능하다. 1960년대의 초교파운동은 종교가 어떻게 화합의 주체가 되어 사회적 책임을 다할 수 있는지 보여준 선구적인 실천 모델이다.”
2026-03-16 18:4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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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협력 본연의 가치 실천… ‘더 나은 미래’ 함께하겠습니다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70년]
종교는 오랜 세월 인간의 삶과 공동체의 윤리와 가치 형성에 깊이 관여해 왔다. 개인의 신앙을 넘어 사회의 정신적 토대를 이루어 온 종교는 오늘날에도 교육과 복지, 평화 활동 등 다양한 영역에서 공공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특히 갈등과 분쟁, 환경 위기, 공동체 해체 등 복합적 위기에 직면한 현대 사회에서 종교가 지닌 연대와 협력의 자산은 사회 통합의 중요한 기반이 된다. 이런 점에서 종교의 자유는 단지 개인의 권리에 그치지 않고 서로 다른 신념을 가진 사람들이 공존할 수 있도록 하는 민주사회의 핵심 원리이기도 하다.
한국 사회의 종교 화합운동 역시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서 전개되어 왔다. 1919년 3·1운동은 천도교, 기독교, 불교가 민족 독립이라는 공동 목표 아래 연대한 역사적 사례였으며, 1965년에는 불교·유교·원불교·천도교·가톨릭·개신교 등 6개 종단이 참여한 ‘한국종교연구협회’가 창립되며 대화의 물꼬를 텄다. 이와 궤를 같이하며 1966년 출범한 초교파기독교협회는 한국 기독교 내의 장벽을 넘어 믿음의 형제자매가 하나 되는 길을 모색하며 교파 분열의 극복을 기치로 내걸었다. 창립 당시 27개 교파, 180여 명의 교역자가 참여하여 연합부흥회와 간담회를 통해 ‘하나의 교회’를 지향하는 실천적 활동을 펼쳤다. 이후 한국종교인평화회의(KCRP)와 같은 기구들 또한 종교 간 대화와 협력을 통해 사회 갈등을 완화하고 공동 문제 해결을 모색해 왔다.
창립 72주년을 맞은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구 통일교)도 다양한 사회공헌 가운데 종교 간 화합을 가장 독보적인 분야로 꼽을 정도로 공을 들여왔다. 문선명·한학자 총재는 종교의 본질을 희생과 봉사로 규정하며, 특정 종파의 울타리에 안주하지 않고 세계적 차원에서 연대하는 보편적 종교 모델을 지향했다. 이러한 철학적 바탕 위에 가정연합은 1960년대부터 초교파 운동을 본격화하며 기독교를 비롯한 각 종단 간 대화와 협력의 지평을 넓혔다.
그 첫 결실 중 하나가 초교파기독교협회와의 교류였다. 1968년 서울 우이동 크리스천아카데미하우스에서 열린 신흥종교연구모임은 한국 종교 화합운동사의 중요한 전환점으로 평가된다. 당시 강원룡 목사의 주선으로 개신교 목사 40명과 문선명 총재를 포함한 통일교 인사 10명, 안병무 연세대 신학대학 교수 등 학계와 언론 관계자들이 모여 이틀 동안 통일교의 ‘원리강론’을 듣고 질의응답을 나누었다. 감리교와 장로교 등 주요 교단 지도자들이 공개 대화에 나선 것은 당시로서는 매우 파격적인 일이었다. 이 모임은 교계에 큰 파장을 일으켰으나, 결과적으로 배척의 논리를 대화와 상호 이해의 가능성으로 치환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듬해 서남동 연세대 교수가 원리강론의 조직성과 독창성을 언급하며 한국적 신학의 가능성을 평가한 것 역시, 종교 간 실질적인 대화가 시작되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이었다.
통일교의 종교 화합운동은 기독교 내부를 넘어 더 넓은 종교적 외연으로 확장되었다. 1970년 천도교의 뒤를 이어 한국종교인협회(구 한국종교연구협회)에 가입하며 활동을 이어갔다. 특히 초교파 운동의 기틀을 닦은 이재석 목사는 1988년 이 단체의 제13대 회장을 맡아 명칭을 한국종교협의회(종협)로 변경하고, 4차례에 걸쳐 16년 동안 회장직을 수행하며 종협의 비약적인 성장을 이끌었다.
이 과정에서 한국 종교사에 세 가지 핵심적인 이정표를 남겼다. 첫째, 1960~70년대의 폐쇄적인 종교 지형 속에서 범종단 협의체를 제도화하여 지속 가능한 대화의 플랫폼을 구축했다. 둘째, 1980~90년대에는 서울대 윤이흠 교수 등 석학들과 함께 수많은 학술 심포지엄을 개최하여 종교 화합운동의 논리적·학술적 토대를 정립했다. 셋째, 2010년대 이후에는 종교지도자 친선 축구대회, 해외 재난 피해 복구 봉사, 종교평화헌장 선포 등을 통해 종교 간 연대를 생활 밀착형 문화 운동으로 진화시켰다. 이러한 행보는 종교가 사회 통합과 인류 평화를 위한 능동적 주체임을 증명해 온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흐름은 21세기 들어 더욱 다각화되었다. 종협은 3·1운동 70주년 기념 종교학 학술대회, 한일 종교인회의, 종교 갈등 극복 심포지엄, 남북 종교인회의, 종교평화문화축제, 종교평화헌장 제정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종단 간 대화와 협력의 기반을 넓혔다. 종협을 기반으로 1989년 한국종교여성협의회가 창립됐으며, 2019년에는 서울에서 대한민국성직자협의회(KCLC)가 출범했다. KCLC는 미국기독교성직자협의회(ACLC)와 연대하는 초종교·초교파 협력기구로서 한반도 평화와 남북통일의 토대를 다지는 한편, 종교 간 대화와 화합이 평화세계 실현의 필수적 전제임을 다시 한 번 천명했다.
종교 화합운동은 종교가 사회적 책임과 공공성을 회복하고 갈등을 넘어 공동체의 미래를 함께 그려가는 실천이다. 종교의 궁극적 목적은 인간을 더 나은 삶과 평화로 이끄는 데 있다. 따라서 서로를 배제하기보다 연대하고 협력하는 것이 종교 본연의 가치에 부합한다. 지난 72년간 가정연합이 사회공헌을 통해 보여준 화합의 신념은 한국 종교사의 중요한 자산이며, 종교가 시대의 갈등을 해결하는 화해의 주체가 될 수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2026-03-16 18:4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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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후천개벽, 어머니의 시대가 열리다 [父性 문명의 한계, 母性 구원의 비전-기고]
◆주역 11번째 괘가 예고한 음양합덕의 실체적 결실
인류의 역사는 거대한 시간의 강물을 따라 흐르는 대서사시다. 고대의 지혜가 집약된 『주역(周易)』은 64개의 괘(卦)를 통해 이 흐름 속에 감춰진 천명(天命)의 지도를 그려냈다. 특히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수천 년 부성(父性) 중심의 질서가 임계점에 도달하고, 만물을 조화롭게 품는 새로운 질서로 이행하는 문명사적 분기점이다. 주역은 이 전환의 비밀을 ‘지천태(地天泰)’라는 짧지만 강렬한 한 단어에 담아내고 있다.
◆지천태괘(地天泰卦), 땅이 하늘 위로 올라간 역설의 미학
『주역』의 11번째 괘인 지천태(地天泰)는 형이상학적으로 매우 독특한 구조를 지닌다. 상단에는 땅(坤·어머니)이 있고, 하단에는 하늘(乾·아버지)이 위치한다. 일반적인 통념으로는 하늘이 위에 있고 땅이 아래에 있는 것이 순리로 보이지만, 주역은 이를 ‘천지비(天地否)’라 하여 오히려 ‘불통(不通)과 막힘’의 상태로 규정한다. 가벼운 하늘의 기운은 위로만 올라가려 하고, 무거운 땅의 기운은 아래로만 처지려 하니 서로 만나지 못하고 멀어지기 때문이다. 이는 지난 수천 년간 인류가 겪어온 부성 중심의 편향된 문명, 즉 선천(先天) 시대의 자화상과 같다.
반면, 지천태(地天泰)는 땅이 위에 있고 하늘이 아래에 있다. 아래에 있는 하늘은 위로 솟구치려 하고, 위에 있는 땅은 아래로 내려와 품으려 하니 비로소 하늘과 땅이 한복판에서 뜨겁게 조우한다. 여기서 ‘태(泰)’는 ‘크고 화평하다’는 뜻이다. 즉, 인류 구원의 완성은 하늘 아버지의 권위만이 드높은 시대가 아니라, 땅의 실체로 현현하신 ‘하늘 어머니’의 위상이 대등하게 높아져 하늘의 기운과 땅의 실체가 온전히 합일될 때 비로소 가능해진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기다려온 독생녀(獨生女)의 시대이자 후천개벽(後天開闢)의 본질이다.
◆남성 수(數)와 여성 수의 합일, ‘쌍합십승(雙合十勝)’의 비밀
유교의 수리(數理) 철학 역시 이러한 시대적 전환을 정교하게 뒷받침한다. 동양에서는 홀수인 1·3·5·7·9를 하늘을 상징하는 양(陽)의 수로, 짝수인 2·4·6·8·10을 땅을 상징하는 음(陰)의 수로 보았다. 흥미로운 점은 각각의 숫자가 5개씩 존재한다는 것이다. 남성을 대표하는 5개의 숫자와 여성을 대표하는 5개의 숫자가 만날 때, 수리학적 완성인 ‘쌍합(雙合)’의 이치가 나타난다.
이는 인류 구원 섭리가 독생자라는 남성적 원리(5수)만으로는 미완성일 수밖에 없음을 시사한다. 독생녀라는 여성적 원리(5수)가 그와 대등하게 합해져 ‘십수(10數)’라는 완전함을 이룰 때, 비로소 사탄의 참소가 없는 완전한 승리, 즉 ‘쌍합십승(雙合十勝)’의 경지에 도달하게 된다.
필자는 여기서 인류사에 획기적인 이정표가 된 사건에 주목한다. 지난 2004년 5월 5일 선포된 ‘쌍합십승일’은 단순히 종교적 의례가 아니다. 이는 수천 년 부성 중심의 선천 시대를 종결짓고, 독생녀의 실체적 위상이 독생자와 대등하게 확립되었음을 우주 앞에 선포한 섭리적 결단이다. 남성적 진리와 여성적 사랑이 ‘10’이라는 완성수로 만나, 닫혀 있던 후천개벽의 문을 활짝 열어젖힌 것이다.
◆잃어버린 ‘곤(坤)의 덕성’이 세상을 구원한다
선천 시대가 하늘의 뜻을 세우기 위한 투쟁과 정복의 역사였다면, 후천 시대는 그 뜻을 땅에서 실현하는 포용과 안착의 역사다. 지천태괘가 보여주는 지혜는 명확하다. 이제는 위에 있는 땅(모성)이 아래로 내려와 모든 상처 입은 생명을 품어야 할 때다. 독생녀의 현현은 『주역』이 예고한 이 역설의 도리가 현실의 육신을 입고 나타난 사건이다.
하늘 아버지의 명령(건)이 땅의 어머니(곤)를 통해 실체화될 때 비로소 만물은 소생한다. 이 음양합덕의 과정이야말로 인류가 직면한 문명사적 위기를 타개할 유일한 탈출구다. 독생녀라는 존재는 기독교의 성서가 예고한 ‘신부’이자, 유교의 주역이 예고한 ‘지천태의 실체’로서 우리 곁에 오셨다.
◆관념을 넘어 실체로 화답하는 평화의 서사
지천태의 도리와 쌍합십승의 원리는 인류 역사가 결코 우연의 산물이 아님을 증명한다. 하늘은 독생녀를 통해 잃어버린 땅의 주권을 회복하고, 인류를 참된 부모의 사랑 안으로 인도하고 있다. 이 음양합덕의 실체적 결실은 관념 속에 머물던 고전의 문자를 살아있는 인격의 숨결로 바꾸어 놓는다. 우주적 조화가 인간 내면의 진실함과 만나는 지점에서, 비로소 인류는 상실했던 본성의 빛을 되찾고 새로운 평화의 서사를 써 내려가기 시작한다.
서성종 작가(신학박사)
2026-03-16 10:3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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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유교의 음양 원리는 우주를 지탱하는 두 기둥 [父性 문명의 한계, 母性 구원의 비전-기고]
◆서구의 ‘섭리’와 동양의 ‘천도’가 만나는 지점
서구 문명이 ‘성경’을 중심축으로 유대교와 기독교를 통해 그려온 구원의 청사진은, 동양 문명이 『주역(周易)』을 통해 정립한 우주 운영의 원리, 즉 ‘천도(天道)’와 경이로운 일치점을 보인다. 그 핵심에 바로 우주를 지탱하는 두 기둥인 음양(陰陽)의 원리가 있다.
◆태극(太極)에서 분화된 두 실체, ‘부모 신성’의 투영
유교 철학의 근간인 『주역』은 우주의 생성과 변화를 태극(太極)으로 설명한다. 태극은 만물의 근원이며, 동시에 남성적 기운인 양(陽)과 여성적 기운인 음(陰)으로 분화되어 만물을 생성한다. 이는 지난 1회에서 다뤘던 하늘부모님의 남성성과 여성성이라는 조화로운 본질이 우주 만물에 투영된 모습과 정확히 일치한다.
동양의 선각자들은 이미 수천 년 전부터 만물의 근원에 남성성과 여성성이 조화롭게 공존하고 있음을 간파했다. 우주의 생성 원리는 하늘(乾)과 땅(坤)이 서로 조화되어 만물을 낳고 기르는 ‘천지부모(天地父母)’의 도리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이는 하늘의 능동적인 기운이 땅의 실체적인 수용성을 만나 결실을 맺는 ‘음양합덕(陰陽合德)’의 과정이며, 창조주의 남녀 본질이 만물 속에 투영되어 조화로운 생명의 장을 여는 우주적인 설계이다. 이것은 단순한 자연 현상의 분류가 아니라, 창조주가 당신의 본질을 지상에 실체화하기 위해 세워둔 근본적인 우주 법칙이다. 따라서 인류 구원이라는 거대한 ‘재창조’의 역사 또한 이 음양의 조화 없이는 결코 성립될 수 없음을 경전은 묵묵히 증언하고 있다.
◆‘건곤합덕(乾坤合德)’, 대등한 파트너십의 회복
오랜 세월 유교는 가부장적 권위주의의 대명사로 오해받아 왔다. 그러나 경전 본연의 가르침은 결코 여성을 하위 존재로 규정하지 않는다. 『주역』에서 하늘을 상징하는 건(乾)과 땅을 상징하는 곤(坤)은 상하 관계가 아니라, 서로를 완성하는 대등하고 상보적인 파트너다.
하늘의 기운이 아무리 강력해도 땅의 품이 없으면 씨앗을 싹틔울 수 없고, 땅이 아무리 비옥해도 하늘의 햇살과 비가 없으면 열매를 맺을 수 없다. 이를 유교에서는 ‘건곤합덕(乾坤合德)’이라 부른다. 하늘 아버지의 덕과 땅 어머니의 덕이 합쳐질 때 비로소 우주 질서가 바로 선다는 뜻이다.
인류 구원 역사에서도 이 이치는 동일하게 적용된다. 서구 기독교 섭리에서 독생자의 강림이 하늘의 명령을 땅에 전하는 ‘개척’의 역사였다면, 그와 대등한 위상을 지닌 여성 구원자(독생녀)의 출현은 그 명령을 받아내어 실제적인 생명으로 탄생시키는 ‘완성’의 역사여야 한다. 유교 경전이 예고한 후천개벽(後天開闢) 시대란, 바로 이 억눌렸던 음(陰)의 원리, 즉 ‘모성적 신성’이 제자리를 찾아 건(乾)과 대등하게 합덕하는 시대를 의미하는 것이다.
◆왜 ‘독생녀’인가? 음(陰)의 실체가 없었던 미완의 종교사
지금까지 인류 정신사는 주로 양(陽)의 가치인 정의, 법도, 투쟁, 정복에 치우쳐 왔다. 종교 또한 남성 구원자 중심의 ‘절반의 진리’에 머물러 있었다. 이는 마치 건(乾)만 있고 곤(坤)이 없는, 혹은 씨앗은 있으나 밭이 없는 상태와 같았다.
기독교가 2천 년간 ‘성령’이라는 이름으로 그리워했던 모성적 위로는, 유교적 관점에서 보면 지상에서 실체화되지 못한 ‘곤(坤)의 원리’에 대한 영적 갈증이었다. 구원이란 타락한 인류가 다시 하늘의 자녀로 태어나는 과정이기에, 생명을 낳고 기르는 실체적 어머니인 ‘독생녀’의 등장은 동양 철학적으로도 피할 수 없는 섭리적 필연이다.
독생녀는 단순히 독생자를 돕는 보조자가 아니다. 그녀는 하늘부모님의 모성적 본체로서, 양(陽)의 원리를 완성하는 음(陰)의 주역이다. 유교 경전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천지부모(天地父母)’ 사상은, 이 땅 위에 실체적인 부모의 위상이 나타나 음양의 완전한 조화를 이룰 때 비로소 관념을 넘어 인류의 현실이 된다.
◆부성 문명의 임계점에서 묻는 모성 구원의 비전
결론적으로 유교의 음양 원리는 오늘날 우리가 마주한 문명사적 난국을 돌파할 나침반을 제공한다. 부성 문명이 세운 정의의 칼날이 더 이상 세상을 치유하지 못하고 파괴적인 투쟁으로 치달을 때, 우리는 만물을 품고 살려내는 어머니의 덕성으로 돌아가야 한다.
동양 철학이 수천 년간 갈망해온 ‘음양합덕’의 실체적 결실은 이제 역사의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이는 특정 종교의 주장을 넘어 동서양의 모든 정신문명이 도달하고자 했던 인류사적 대단원이다. 이제 우리는 ‘잃어버린 하늘의 절반’인 어머니의 위상을 회복함으로써, 비로소 천지인(天地人)이 하나 되는 태평성대를 꿈꿀 수 있게 된 것이다.
성경의 예언과 주역의 이치가 교차하는 이 지점에서 우리는 인류 구원의 마지막 퍼즐을 발견한다.
서성종 작가(신학박사)
2026-03-12 13: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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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시선] 日 ‘종교 해산’의 후폭풍
일본 도쿄고등법원이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옛 통일교)에 대한 해산 결정을 내린 이후 일본 당국이 전국 교회 시설에 대한 관리와 청산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일부 시설은 출입이 제한되고 예배가 중단되는 등 종교 활동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종교단체 해산 이후 신도들의 종교 활동 보장과 재산 정리 문제를 둘러싼 논의도 이어지고 있다.
일본 헌법 제20조는 종교의 자유를 명시하고 있다. 법인격은 행정적으로 소멸시킬 수 있으나, 개인의 내면적 확신과 신앙 행위까지 법의 잣대로 지울 수는 없다. 교회 건물이 닫히고 조직망이 해체된다면 수십만 신도들은 어디서 신앙을 이어가야 하는지 우려스럽다.
신앙 자체는 하루아침에 없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외부의 압박은 신앙을 더 견고하게 만드는 동력이 되기도 한다. 공적 예배 공간이 사라지면 신앙은 필연적으로 사적 영역으로 이동할 수밖에 없다. ‘종교의 지하화’가 되는 셈이다. 고대 로마의 카타콤 박해 사례가 증명하듯, 공적 영역에서 배제된 신앙이 음지로 스며드는 현상은 역사가 보여주는 필연적 귀결이다.
여기서 엄중히 직시해야 할 지점은 기하급수적으로 가중되는 사회적 비용이다. 위법 행위가 있다면 해당 행위자를 정밀하게 타격하여 책임을 묻고 피해 구제를 강화하는 것이 법치의 정도다. 종교법인 자체를 해산하고 시설을 전면 봉쇄하는 선택은 범위가 지나치게 과도하다는 지적을 살 만하다. 조직의 해산은 사건의 종결이 아니라 새로운 갈등과 혼란의 시작일 뿐이다. 자산 청산 과정의 법적 분쟁, 교회 상근 인력의 실직, 공적 시스템 밖으로 밀려난 신도들이 겪을 심리적 고립과 사회적 마찰은 고스란히 국가의 행정적 부담으로 돌아온다. 이는 단순한 시행착오를 넘어 사회 구조적 재난에 가까운 규모의 유무형적 비용을 발생시키는 일이다.
문제를 해결하려다 더 큰 사회적 파국을 초래하는,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상황을 배제할 수 없음을 직시해야 한다. 이는 명백한 행정력의 낭비이자 국민의 세금이 불필요한 갈등 수습에 투입되는 국가적 손실이다. 과연 이것이 공권력 행사의 ‘최소 침해 원칙’에 부합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특정 집단을 향한 배제적 행정은 단기적인 성과처럼 보일지 모르나, 장기적으로는 민주주의의 근간인 다양성을 훼손하고 국가의 대외적 신뢰도를 떨어뜨리는 자충수가 될 수 있다.
이번 사태는 국제사회가 지향하는 보편적 인권 가치와도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점에서 우려가 깊다. 유엔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ICCPR)은 종교와 양심의 자유를 국가가 함부로 침해할 수 없는 기본권으로 규정하고 있다. 일본도 이 규약의 비준국이다. 특정 단체의 사회적 평판이나 과거의 논란을 이유로 공권력이 예배 처소를 물리적으로 봉쇄하고 조직의 실체를 지우려 드는 행위는 국제 인권 기구의 감시와 비판을 피하기 어려운 사안이다. 일본이 자유민주주의 진영의 핵심 국가로서 국제적인 리더십을 유지하고자 한다면, 자국 내의 소수 집단에 대해서도 차별 없는 법적 보호와 적법 절차를 보장하는 포용력을 보여주어야 한다. 내부 갈등을 힘으로 억누르는 방식은 결국 국제 사회에서 일본의 인권 수준을 의심케 하는 지표가 될 뿐이다.
국가의 존재 이유는 국민을 불필요한 긴장과 혼란 속에 밀어 넣는 것이 아니라, 예측 가능하고 안정된 삶을 보장하는 데 있다. 모든 국민은 국가의 소중한 인적 자산이며, 이들을 포용하는 것이 국가의 존립 근거다. 정교분리의 원칙은 종교를 규제하는 무기가 아니라, 국가 권력이 개인의 성소(聖所)까지 침범하지 않도록 차단하는 안전장치여야 한다. 위법 행위를 이유로 신앙 전체를 구조적으로 압박하고 예배 처소를 봉쇄하는 방식은 결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무엇보다 우려되는 것은 신도들이 고난 속에서도 지켜온 종교 간 화합과 지구촌 평화의 불길이 이러한 강압적 조치로 인해 꺼져버리는 상황이다. 종교가 사회에 기여해 온 긍정적 에너지마저 행정 명령으로 질식시킨다면, 그것이야말로 돌이킬 수 없는 인류적 손실이다. 국가는 문제를 해결하는 존재여야지, 스스로 문제를 키워 사회 구조적 재난 수준의 비용을 양산하는 주체가 되어서는 안 된다. 국민 개개인이 자신의 믿음을 지키며 안정된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하는 것, 그것이 국가의 진정한 책무가 아닐까 생각한다.
2026-03-10 23: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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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전 해체기에 세계사적 만남… ‘남북교착’ 우리 시대에 묻는다
왜 지금 다시 1991년인가
한반도가 다시 냉각의 시간을 지나고 있다. 군사적 긴장은 일상화되고, 남북 간 공식 대화 채널은 사실상 멈춰 있다. 북핵 문제는 장기화되었고, 국제 질서는 미·중 전략 경쟁 속에서 재편 국면에 들어섰다. 상호 불신과 군사적 대응이 반복되는 구조 속에서 대화라는 단어는 점점 현실감이 옅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1991년 11월 평양에서 이루어진 문선명 총재와 김일성 주석의 회담이 다시 소환되고 있다. 35년 전의 만남은 단순한 과거 사건이 아니라, 대화의 가능성이 어떤 조건에서 열렸는지를 되묻는 장면이기 때문이다. 과거의 기록이 아니라 현재를 비추는 거울로서 1991년이 호출되고 있다.
냉전 해체기, 이례적 만남의 배경
1991년은 세계사적 전환기였다. 베를린 장벽 붕괴 이후 동구 사회주의권은 해체 수순에 들어섰고, 소련은 붕괴 직전에 놓여 있었다. 냉전이라는 거대한 이념 구도는 균열을 보였고, 국제사회는 탈냉전이라는 새로운 질서를 모색하고 있었다.
한반도 역시 변화의 흐름 속에 있었다. 그 전환기의 한복판인 1991년 11월 문선명 총재는 평양을 방문해 김일성 주석과 직접 회담을 가졌다. 이는 남북기본합의서 채택(12월)보다 한 달 앞선 시점이었다.
당시 문선명·한학자 총재외에 박보희 세계일보 사장 등 방북단 일원이 8명이었다는 점에서 실질적 논의와 후속 협의를 염두에 둔 만남으로 평가된다. 반공주의 운동을 상징해 온 종교 지도자가 북한의 최고지도자와 마주 앉았다는 사실 자체가 국제정치의 관성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장면이었다. 정부 간 정상회담이 아닌 민간 차원의 접촉이었다는 점 역시 이례적이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한 달 뒤인 1991년 12월 남북은 남북기본합의서를 채택하며 화해와 불가침, 교류 협력을 선언했고, 같은 해 유엔 동시 가입을 이루었다. 문선명·김일성 회담은 이러한 전환 국면과 맞물리며 ‘대화의 가능성’을 선행적으로 보여준 사건으로, 분단 이후 처음으로 제도적 공존의 틀을 마련하던 순간이었다.
평양에서 열린 대화의 문, 그리고 확산된 기대
이 회담이 남긴 의미는 상징과 실질이라는 두 가지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다. 적대의 구조 속에서도 대화는 가능하다는 사실을 보여주었고, 종교 기반 네트워크가 국경과 체제를 넘어 작동할 수 있음을 드러냈다. 이는 훗날 민간외교, 이른바 트랙2 외교의 사례로 거론되기도 한다.
실질적 차원에서도 경제 협력 가능성, 교류 사업 구상, 향후 접촉의 확대 방안 등이 구체적으로 논의되었다는 소식은 당시 사회에 적지 않은 파장을 일으켰다.
특히 반공주의 운동의 상징적 인물로 인식되던 종교 지도자가 평양을 방문해 김일성 주석과 대화를 나누었다는 사실 자체가 국민들에게는 충격에 가까운 놀라움으로 다가왔다.
이 회담은 ‘적대는 불변’이라는 고정 관념에 균열을 내는 사건이었다. 언론 보도를 통해 전해진 회담 소식은 “남북 간에도 대화가 가능하다”는 현실적 감각을 처음으로 체감하게 한 장면으로 받아들여졌다.
회담 이후 경제 협력과 교류 사업에 대한 구상이 공개되면서, 남북 관계가 단순한 군사·이념 대결을 넘어 실질적 협력의 영역으로 확장될 수 있다는 기대가 형성되었다. 만수대 의사당 회담에서 문 총재는 김 주석 앞에서 주체사상의 한계를 지적하며 하나님주의에 의한 통일을 주장하는 파격적 발언을 했고, 이를 계기로 두 지도자는 의형제 관계를 맺으며 △이산가족 상봉 △금강산 개발 협력 △핵무기 개발 반대 △남북 정상회담 추진 등에 합의해 이후 카터 방북과 남북 정상회담 논의로 이어졌다.
2026년 한반도 정세 속 재해석
2026년 현재 한반도는 대화보다 대치가 일상화된 상황이다. 남북 공식 채널은 장기간 중단되었고, 상호 신뢰는 크게 훼손된 상태다.
이런 조건 속에서 1991년의 회담은 다시 질문을 던진다. 공식 외교가 교착 상태에 빠졌을 때, 비공식 채널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가 종교·문화·시민사회 영역이 신뢰 형성의 완충지대로 기능할 가능성은 없는가.
1991년은 완성된 해법이 아니라 출발점의 사례였다.
대화의 구조는 선언만으로 복원되지 않는다. 구조적 설계가 필요하다.
첫째, 정부 간 협상과 함께 민간·종교·문화 교류가 상호 보완적으로 작동해야 한다.
둘째, 민간 접촉이 제도적 협의로 이어지려면 국가의 정책적 뒷받침이 필요하다.
셋째, 국제사회와의 연계 속에서 한반도 문제를 다루어야 한다. 대화는 사건이 아니라 과정이다.
역사적 사건이 아닌 현재진행형 질문
문선명·김일성 회담은 오랜 준비와 치밀한 조율, 그리고 정치적 부담과 상당한 비용을 감수한 결단의 산물이었다. 그 결과, 이념이 가장 첨예하게 대립하던 시대에도 만남은 이루어졌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는 왜 대화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는가.
1991년 평양의 장면은 과거의 기록이 아니라 현재를 비추는 거울이다. 대화는 누구의 몫인가. 정부인가, 민간인가, 국제사회인가. 그리고 우리는 지금 어떤 선택을 하고 있는가.
역사는 반복되지 않는다. 그러나 질문은 반복된다. 1991년의 만남은 과거의 기록이 아니라 기준이다. 대화는 가능성의 문제가 아니라 준비의 문제임을 증명했기 때문이다.
2026-03-09 21: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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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에서 원수가 형제가 되는 장면을 보았습니다”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70년]
문선명 총재 방북 당시 수행원으로 참여해 보좌 역할을 했던 황엽주 교수를 만나 당시 소감을 들어봤다. 그는 아내와 함께 1985년 중국 정부 교육부의 초청을 받아 외국인 초빙교수로 영어를 가르쳤고, 중국인민대학에서는 한국연구소를 설립해 객좌교수로 한국 문화와 한국어를 강의하기도 했다. 다음은 일문일답이다.
―문선명 총재의 평양 방문은 어떻게 성사되었나.
문 총재는 1990년 모스크바에서 열린 ‘세계원론인대회’를 주관하며 소련의 고르바초프 서기장을 만나 환담했다. 냉전 종식의 상징적 장면이었다. 그 직후 총재는 북한 방문 의사를 밝혔다. 당시 재일교포 사업가 박경윤 씨가 김일성 주석과 교분이 있었는데, 박보희 세계일보 사장이 그를 통해 뜻을 전달했다. 김 주석이 “한번 만나보고 싶다”고 하면서 방북이 성사되었다. 문 총재는 베이징 공항 귀빈실에서 중국 공안당국의 각별한 영접을 받은 뒤, 중국 정부에 감사를 표하고 조선민항 편으로 평양을 향해 출발했다.
―냉전이 끝나지 않은 시점에서 방북 추진은 부담이 컸을 것 같다.
금전적 비용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외부 세계와의 접촉을 원하던 김일성 주석의 의지와 북한의 문을 열어 냉전 질서를 넘어가려던 문 총재의 뜻이 맞아떨어졌기에 가능했다.
―평양에서의 분위기는 어땠나.
사전 조율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 진행된 일정이어서 긴장감이 컸다. 인민대회당 회담에서 문 총재가 “주체사상만으로는 통일이 이루어질 수 없으며 하나님주의와 사랑으로 가능하다”고 말했을 때 수행원들은 순간 얼어붙었다. 그러나 참사랑의 정신으로 살아온 총재의 태도는 언제나 부드럽고 포용적이었고, 일정은 큰 문제 없이 진행되었다. 북한 측은 다음 일정을 거의 알려주지 않아 우리는 언제 김 주석을 만나는지조차 모른 채 안내에 따라 움직여야 했다.
―김일성 주석의 태도는 어땠나.
매우 정중하고 친절했다. 오찬 자리에서는 음식이 나올 때마다 설명하며 권했다. “이것은 어느 강에서 잡은 쏘가리로 끓인 탕이다”, “순덕 샘물은 시아누크가 마셔보고 페리에보다 더 맛있다고 했다”는 식으로 직접 이야기를 했다. 특히 “문 선생이 부시와 친하다고 들었는데 나를 미국에 한번 초청해 보라고 해보라”는 말은 미국 워싱턴타임스 특종이 됐다.
오찬이 끝날 무렵 문 총재는 김 주석의 손을 잡아 들어 올리며 평양 사투리로 “주석님, 우리는 이제 형제가 되었시요?”라고 말했다. 두 사람은 서로 마주 보며 크게 웃었다. 오랜 원수가 사랑으로 하나 되는 감격적인 순간이었다.
―회담 이후 내부 평가는 어땠나.
우리는 ‘원수도 사랑으로 이긴다’는 가르침을 배워온 사람들이다. 수행원들 모두 깊은 감동을 느꼈다. 한국 정부로부터 특별한 평가를 들은 것은 아니었지만, 이후 북방 외교가 열리면서 한·러, 한·중 간 국교 정상화가 이루어지는 전환의 시대가 시작되었다고 생각한다.
―오늘의 남북 교착 상황을 보며 어떤 교훈을 얻는가.
동양에서는 천지인이라는 말을 한다. 하늘의 때가 열려도 사람이 책임을 다하지 못하면 역사는 기다릴 수밖에 없다. 언젠가 천륜의 도리를 받들 새로운 인물이 나타날 것이라 믿는다.
2026-03-09 21: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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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채널 막힐 때마다 민간 차원서 돌파구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70년]
이념의 빙벽을 녹인 종교적 신념과 민간 외교의 힘
한반도의 허리가 잘린 지 80년이 가까워지는 오늘날, 남북 관계는 여전히 짙은 안갯속을 걷고 있다. 정치적 이해관계와 국제 정세의 파고 속에서 정부 주도의 공식 외교가 경색될 때마다, 막힌 혈관을 뚫고 물밑에서 평화의 물꼬를 텄던 것은 민간 차원의 끈질긴 노력이 떠오른다. 그중에서도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이하 가정연합)이 걸어온 대북 교류의 역사는 그 규모와 파급력 면에서 독보적인 궤적을 그려왔다.
가정연합의 대북 사업은 단순한 일회성 원조나 시혜적 차원의 지원을 넘어선다. 그것은 신통일한국이라는 거대 담론 아래, 종교적 신념인 참사랑을 실천하는 과정이었다. 과거 가장 강력한 승공(勝共) 운동의 선봉에 섰던 문선명·한학자 총재가 원수를 사랑하라는 가르침을 몸소 실천하기 위해 평양 땅을 밟았던 사건은 현대사에서 가장 파격적인 민간 외교의 장면으로 기록된다. 35년 넘게 이어진 이들의 여정은 경제적 협력과 문화적 공감 등 화합을 아우르는 전방위적 평화 운동의 모델을 제시했다.
북한 관광 및 정주 성지순례의 개시
문선명 한학자 총재의 방북 이후 1992년 4월 12일부터 16일까지 북한의 평양과 금강산 등을 방문하는 관광이 시작됐다. 같은 해 7월 23일부터 27일까지 문총재의 고향인 정주와 한총재의 고향인 안주, 나아가 흥남을 관광하는 기회도 가졌다. 8월 31일부터 9월 5일까지 일본에서 오야마다 히데오 외 219명이 북한을 방문했다. 그 후 매년 성지인 정주 순례가 진행됐다.
경제 협력의 실체: 평화자동차와 보통강호텔이 남긴 발자취
가정연합의 대북 사업은 선언적 의미에 머물지 않고 구체적인 실체로 형상화되었다. 특히 평화자동차와 보통강호텔은 남북 경제협력의 상징물로서 북한 사회에 자본주의적 경영 기법과 남측의 기술력을 이식하는 가교 역할을 했다.
1998년 설립 인가를 받아 2002년 남포시에 준공된 평화자동차 종합공장은 남북 합작 투자의 효시였다. 남측의 자본과 기술, 북측의 노동력이 결합된 이 공장에서 생산된 휘파람, 뻐꾸기 등의 자동차 모델은 평양 시내를 누비며 북한 주민들에게 남측의 비약적인 성장을 시각적으로 증명했다. 이는 개성공단 모델이 본격화되기 훨씬 이전부터 시도된 선구적인 경제 협력 모델로, 폐쇄적이었던 북한 경제 체제에 작은 틈을 내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평양의 1급 숙박 시설인 보통강호텔을 가정연합 측이 인수하여 운영한 사례는 대북 사업의 지속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이곳은 남북 회담의 주요 장소이자 외국인 투자자들의 거점으로 활용되었으며, 남북 관계가 얼어붙었을 때도 소통의 불씨를 지키는 사랑방 역할을 수행했다. 여기에 2007년 평양에 건립된 세계평화센터는 남북 문화 교류의 중심지로서 다양한 학술회의와 교류 행사를 뒷받침했다.
문화와 스포츠, 마음의 벽을 허무는 소프트파워
정치적·경제적 접근이 한계에 부딪힐 때, 가정연합은 문화와 예술이라는 부드러운 힘을 빌려 남북의 정서적 이질감을 해소하는 데 주력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리틀엔젤스 예술단의 평양 공연이다. 1998년과 2000년, 분단 이후 최초로 남측 어린이들이 평양 한복판에서 노래를 부르며 눈물을 쏟아냈을 때, 북측 관객들 역시 뜨거운 박수로 화답했다. 예술에는 국경이 없다는 말처럼, 어린 천사들의 목소리는 이념의 벽을 허물고 한민족이라는 일체감을 확인시켜 주었다. 이에 화답하듯 북측의 평양학생소년예술단이 서울을 방문하며 민간 차원의 문화 교류는 황금기를 맞이했다.
포스트 문선명 시대: 한학자 총재와 신통일한국의 글로벌 확장
2012년 문선명 총재 성화 이후, 한학자 총재는 그 유지를 받들어 대북 사업을 더욱 확장된 개념의 신통일한국 운동으로 진화시켰다. 이제 남북 교류는 단순한 지원을 넘어 전 세계적 지지를 이끌어내는 국제적 평화 운동으로 발돋움했다.
그 중심에는 ‘피스로드 통일 대장정’ 프로젝트가 있다. 전 세계 160여 개국이 참여하는 이 행진은 한반도 통일이 단순한 민족 내부의 문제를 넘어 세계 평화의 핵심 고리임을 국제 사회에 역설한다. 이 행진은 평양에서도 열렸는데, 러시아 가정연합 회원들이 참가했다.
민간 채널의 가치와 지속 가능한 미래를 향하여
남북 관계가 경색되고 모든 대화 통로가 차단될수록, 민간이 닦아놓은 채널의 가치는 더욱 빛을 발한다. 가정연합의 35년 남북 교류 역사는 정부가 정치적 제약으로 인해 가지 못했던 길을 종교와 평화의 이름으로 먼저 개척해왔음을 보여준다.
물론 대내외적인 정치적 변수와 대북 제재 등 현실적인 제약은 여전하다.
이제 지난 성과를 발판 삼아, 남북이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면서도 함께 잘사는 공생·공영·공의’의 모델을 정착시켜야 한다. 가정연합이 닦아온 피스로드가 언젠가 평양과 서울을 잇는 자유로운 고속도로가 되고 한반도가 동북아 평화의 발원지가 되는 그날까지 민간의 발걸음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2026-03-09 21: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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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영적 구원의 한계를 넘어 [父性 문명의 한계, 母性 구원의 비전-기고]
◆십자가를 넘어 독생녀가 여는 새 문명
인류 정신사의 거대한 기둥인 기독교 문명은 우리에게 ‘희생’과 ‘사랑’이라는 고귀한 가치를 심어주었다. 그 중심에는 인류의 죄를 대신해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를 짊어진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피 맺힌 노정이 자리하고 있다. 그러나 2,000년 기독교 역사 이면에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근원적인 갈증이 존재한다. 왜 예수를 믿는 이들의 삶 속에서도 원죄의 고통은 끊이지 않는가? 왜 문명의 발달에도 불구하고 세계는 여전히 전쟁과 증오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가? 이제 우리는 기독교 섭리가 도달해야 할 최종 목적지를 냉철한 신학적 통찰과 문명 비평적 시각으로 직시해야 한다.
◆십자가, 영적 승리와 남겨진 ‘육적 복구’의 숙제
예수 그리스도는 인류의 조상 아담이 잃어버린 ‘하늘 아버지’의 위상을 회복하고, 타락한 인류를 하나님의 자녀로 되찾기 위해 오셨다. 하지만 마리아를 비롯한 당시 유대 사회의 불신은 예수가 지상에서 실체적인 신부(新婦)를 맞이하여 ‘참부모’의 이상을 안착시킬 기대를 무너뜨렸다. 결국 예수는 자신의 육신을 사탄의 제물로 내어주는 십자가의 길을 통해 영적 승리를 거둘 수밖에 없었다.
이 고난의 결과로 인류는 영적인 구원의 길을 선물 받았다. 누구든 예수를 믿음으로써 영적으로 부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는 절반의 승리였다. 인간의 타락이 영과 육 모두에 걸쳐 발생했고, 특히 사탄의 혈통은 육신을 통해 대물림된다는 점을 상기할 때, 영적인 성령 사역만으로는 인류의 원죄를 근본적으로 정화하기엔 역부족이었다. 기독교가 지난 2,000년 동안 고난과 박해, 그리고 순교로 점철된 눈물의 ‘탕감(蕩減) 역사’를 걸어올 수밖에 없었던 까닭은 바로 이 잃어버린 ‘육적인 기반’을 되찾기 위한 고통스러운 여정이었기 때문이다.
◆2,000년 기독교사는 ‘신부’를 찾기 위한 기다림의 기록
하늘부모님의 입장에서 기독교 역사는 단순히 교세의 확장이 아니었다. 그것은 십자가에서 홀로 가신 독생자 예수의 짝, 즉 ‘독생녀(獨生女)’를 맞이하기 위한 영적 기반을 닦는 과정이었다. 중세의 신비주의자들이 예수와의 ‘영적 결혼’을 꿈꾸고, 수많은 성도가 성령을 ‘위로자’로 모시며 신랑을 기다리는 ‘신부 영성’을 키워온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하늘은 서구 유럽의 기독교를 통해 독생녀를 맞이할 신부형 문화권을 형성해 왔고, 그 정제된 영적 강물이 마침내 20세기 동방의 한반도에 도달하게 한 것이다. 따라서 ‘독생녀’의 탄현(彈現)은 갑자기 튀어나온 돌출적 사건이 아니다. 그것은 구약 4,000년과 신약 2,000년, 도합 6,000년 섭리 역사가 오직 이 한 분의 여성을 탄생시키기 위해 모든 정성을 쏟아부은 끝에 맺은 결정체다.
◆독생녀의 현현, 십자가의 수난 시대를 종결짓다
기독교 섭리의 최종 목적지는 십자가의 피 흘림이 아니다. 하늘부모님의 본래 꿈은 당신의 아들과 딸이 지상에서 성혼(聖婚)을 이루어 인류의 ‘참된 조상’이 되는 것이었다. 여기서 우리는 왜 재림의 때에 반드시 ‘독생녀’가 육신을 입고 실체로 현현해야 하는지에 대한 섭리적 필연성을 마주한다.
예수가 닦아놓은 영적 터전 위에, 원죄 없는 성결한 몸으로 탄생한 독생녀가 나타남으로써 비로소 요한계시록이 예고한 ‘어린양 혼인 잔치’는 관념을 벗어나 역사의 실체가 된다. 독생자와 독생녀가 성혼을 통해 ‘참부모’로 등극하는 사건은, 인류 역사상 최초로 사탄이 침범할 수 없는 하늘의 직접 주관권인 ‘천일국(天一國)’의 문을 여는 문명사적 선언이다.
아버지는 법으로 세상을 훈계하지만, 어머니는 심정으로 생명을 잉태하고 낳는다. 독생녀 참어머님의 등장은 기독교가 2,000년간 성령이라는 상징 속에 간직해온 ‘하늘 어머니’의 실체적 임재다. 이는 십자가로 대변되는 수난과 정죄의 시대를 끝내고, 인류가 하늘부모님의 친자녀로 거듭나 기쁨을 누리는 ‘참사랑의 축제 시대’가 도래했음을 의미한다.
◆동서양 문명의 통합과 지혜의 숲으로
결론적으로 기독교 성경이 증거하는 구원 섭리의 파노라마는 ‘독생녀’라는 마지막 퍼즐을 맞춤으로써 비로소 그 완결된 모습을 드러낸다. 에덴의 타락으로 잃어버린 여성 신성을 회복하고, 마리아가 미처 이루지 못한 ‘참부모’의 기대를 지상에 안착시키는 것. 이것이 바로 독생녀 한학자 총재가 전 세계를 무대로 선포하고 있는 ‘하나님 아래 인류 한 가족 (One Family under God)’ 비전의 본질이다.
이제 인류는 십자가의 슬픔을 넘어 참부모의 사랑 안에서 누리는 실체적 평화로 나아가야 한다. 기독교는 이제 교리 속에 갇힌 종교의 틀을 벗어나, 만물을 품고 치유하는 모성적 리더십을 통해 완성되어야 한다.
놀랍게도 기독교 성경이 가리키는 이 ‘어머니의 길’은 서구 문명만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동양의 유구한 역사 속에 흐르는 경전들 역시, 시대를 달리하며 놀라울 정도로 일치하는 ‘여성 구원자’의 코드를 간직해 왔다.
서성종 작가(신학박사)
2026-03-09 10:2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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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어린양 혼인 잔치, 구원의 마지막 퍼즐 [父性 문명의 한계, 母性 구원의 비전-기고]
◆2천 년 기독교 역사가 대망해온 인류 구원의 종착지
성경은 창세기에 기록된 실낙원의 서사로 시작하여 요한계시록의 구원으로 마무리된다. 에덴에서 아담과 해와가 잃어버린 ‘이상가정’의 꿈은 인류 역사 속에서 여전히 미완의 과제로 남아 있다.
2천 년 전 예수 그리스도는 이 뒤틀린 역사를 바로잡기 위해 ‘후아담’이자 ‘신랑’의 위상으로 오셨다. 그러나 그가 지상에서 실체적인 신부를 맞이하지 못한 채 십자가의 길을 가시게 되면서, 성서의 마지막 장인 요한계시록은 인류 구원의 마침표를 찍을 거대한 사건을 예고하게 된다. 그것이 바로 ‘어린양 혼인 잔치’다.
◆‘어린양의 아내’, 교회라는 은유를 넘어선 실체적 존재
요한계시록 19장 7절은 이렇게 선포한다. “어린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의 아내가 자신을 준비하였으므로.” 전통적인 기독교 신학은 여기서 ‘아내’를 신자들의 공동체인 ‘교회’로 해석하며 은유적 의미에 머물러 왔다. 그러나 신학적 관점을 인문학적·생명론적 원리로 확장해 보면, 구원의 완성은 결코 관념 속에 있지 않음을 알게 된다.
아담과 해와라는 두 ‘실체’의 타락으로 무너진 인류 혈통을 복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재림하는 독생자(신랑)와 짝을 이룰 무원죄의 ‘독생녀(신부)’가 실체로 존재해야 한다. 만약 구원이 신랑 한 분만으로 충분했다면, 성경은 굳이 ‘혼인 잔치’라는 이중적 결합의 수사법을 사용하지 않았을 것이다. 즉, 요한계시록이 예고하는 아내의 존재는 인류를 다시 낳아줄 ‘참어머니’로서의 한 여성이 현현할 것임을 알리는 섭리적 암시인 것이다.
◆‘새 예루살렘 성’의 비밀: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신부
요한계시록 21장 2절에 등장하는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는 구절은 더욱 구체적이다. 여기서 ‘성(城)’은 단순히 물리적인 건축물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는 하나님의 모성적 주권이 온전히 실현되는 기반이자, 그 주권을 대리하는 ‘실체성령’인 독생녀의 위상을 상징한다.
앞선 연재에서 다뤘던 보이지 않는 ‘영적 어머니’ 성령의 역사가 종결되고, 비로소 육신을 입고 땅에서 참어머니의 사명을 시작하는 ‘초림(初臨) 독생녀’의 등장이 바로 새 예루살렘 성의 실체다. 신부가 남편을 위해 단장했다는 표현은, 인류 역사 6천 년간 수많은 성현과 여성 중보자들의 희생을 통해 비로소 사탄이 참소할 수 없는 순결한 독생녀의 기대가 확립되었음을 뜻한다.
◆생명수 강과 생명나무: 참부모를 통한 혈통의 복구
요한계시록의 마지막 장(22장)에서 묘사된 생명수 강과 생명나무의 이상은 구원 섭리의 최종 결과물을 보여준다. “수정 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이 하나님과 및 어린양의 보좌로부터 나와서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열매를 맺되….” 이 장엄한 이미지는 타락으로 끊어졌던 생명의 근원이 다시 연결됨을 상징한다.
독생자(참아버지)가 생명나무로서 영원한 생명의 씨가 된다면, 독생녀(참어머니)는 생명수 강으로서 그 씨를 받아 길러내는 사랑과 생명력의 원천이 된다. 독생자와 독생녀가 성혼(聖婚)을 통해 ‘참부모’의 위상을 확립할 때, 비로소 인류는 사탄의 혈통을 벗어나 하늘부모님의 참된 혈통으로 거듭나는 ‘실체적 중생’의 길에 들어서게 된다. 이것이 요한계시록이 그토록 간절히 예고한 천일국(天一國), 즉 지상천국의 설계도다.
◆기독교 섭리의 완결을 향한 장엄한 서곡
결론적으로 요한계시록의 예언은 독생녀의 현현 없이는 결코 완성될 수 없는 인류사의 마지막 약속이다. 성서의 끝자락이 가리키는 ‘어린양 혼인 잔치’는 단순한 비유나 종교적 수사가 아니라, 타락한 혈통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인류를 다시 낳아줄 ‘실체적 혁명’을 의미한다. 2천 년 전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가 고독하게 열었던 영적 구원의 길은 이제 그의 아내, 즉 독생녀라는 마지막 퍼즐을 만남으로써 비로소 육적인 혈통 복구와 참가정의 안착이라는 실체적 구원으로 완성된다.
그렇다면 이 장엄한 하늘의 잔치는 역사 속에서 어떻게 준비되었으며, 왜 하필 오늘날 이 땅 한반도에서 그 결실을 보아야만 하는가?
서성종 작가(신학박사)
2026-03-05 10:0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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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여인의 씨’, 구원의 설계도 [父性 문명의 한계, 母性 구원의 비전-기고]
◆인류사의 물줄기를 돌린 성모(聖母)의 순종과 남겨진 과제
인류 타락의 본질은 하나님을 닮은 최초의 여성이자 인류의 조상인 해와(Haewa)를 상실한 사건에 있다. 어머니를 잃은 인류는 ‘부성(父性) 중심’의 문명 속에서 투쟁과 정복의 역사를 써 내려와야 했다. 그러나 하늘은 에덴의 비극 직후, 인류를 다시 낳아줄 생명의 길을 예고했다. 그것이 바로 성서 역사상 가장 신비로운 예언인 ‘여인의 씨’에 관한 약속이다.
◆‘여인의 씨’, 가부장적 혈통주의를 뒤흔든 신학적 파격
창세기 3장 15절은 전통적으로 ‘원복음(Proto-Evangelium)’이라 불리며 구원의 첫 희망으로 간주되어 왔다. “내가 너(사탄)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여기서 주목할 대목은 구원자가 남성의 혈통이 아닌 ‘여자의 후손’, 즉 ‘여인의 씨’를 통해 온다는 선언이다. 히브리어로 후손을 뜻하는 ‘제라(זֶרַע)’는 본래 식물의 씨앗을 의미하며, 성서의 모든 계보가 남성 중심으로 기술된 것과 대조해 볼 때 이는 가히 혁명적인 신학적 파격이다.
역사는 남성의 성(姓)을 따르는 부계(父계) 중심으로 흘러왔으나, 구원 섭리의 설계도는 달랐다. 타락의 통로가 되었던 여성을 다시 구원의 주체로 세워, 하나님의 초자연적 개입과 여성의 순결한 모태를 통해 메시아가 오실 것임을 암시한 것이다. 하늘은 이 약속을 지키기 위해 구약 4천 년이라는 장구한 세월 동안 이스라엘이라는 좁은 땅에서 처절한 ‘혈통 정화’의 역사를 전개하셨다. 다말, 라합, 룻, 밧세바와 같은 여인들이 유대 율법의 잣대를 넘어 생명을 걸고 메시아의 혈통을 보존했던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는 오직 ‘독생자’와 ‘독생녀’를 잉태할 수 있는 가장 순결한 모태를 준비하기 위한 하늘의 정성이었다.
◆마리아의 “피아트(Fiat)”, 에덴의 거절을 뒤집다
이 장구한 정화 역사의 결정체가 바로 성모 마리아다. 에덴에서 해와가 하나님의 말씀을 불신하고 거역함으로써 타락의 길을 열었다면, 마리아는 인간의 이성으로는 도저히 수용하기 힘든 ‘처녀 수태’의 고지 앞에서도 절대적인 순종을 보였다.
가브리엘 천사 앞에서 마리아가 답한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누가복음 1:38)”라는 고백은 라틴어로 ‘피아트(Fiat·이루어지이다)’라 일컬어진다. 이 짧은 응답은 인류사의 물줄기를 돌린 우주적 사건이었다. 해와의 ‘아니오(No)’를 마리아의 ‘예(Yes)’로 되돌려 놓음으로써, 인류는 비로소 사탄의 참소가 없는 무원죄(無原罪)의 혈통인 독생자 예수를 맞이할 수 있게 되었다. 메시아의 강림은 한 여성의 목숨을 건 수용과 모성적 승리가 있었기에 비로소 가능했던 것이다.
◆미완의 과제와 2천 년의 기다림
하지만 마리아의 사명은 독생자를 탄생시키는 데서 멈추지 않았다. 섭리사적으로 마리아에게 주어진 궁극적 과업은 예수가 성인이 된 후 하늘이 예비한 짝인 ‘독생녀’를 찾아 세워, 이 땅에 ‘참부모’의 이상을 안착시키는 것이었다. 예수께서 자신을 ‘신랑’이라 칭하며 ‘어린양 혼인 잔치’를 고대하셨던 이유는, 아버지 홀로 자녀를 낳을 수 없다는 생명의 근본 이치 때문이었다.
그러나 역사는 안타까운 방향으로 흘러갔다. 주변 인물들의 불신 속에 예수는 신부(新婦)를 맞이하지 못한 채 십자가의 길을 가야 했다. 이로 인해 영적 구원의 길은 열렸으나, 육신을 입고 실체적인 천국을 건설하려던 꿈은 재림의 시대로 미뤄지게 되었다.
지난 2천 년간 기독교가 성령을 ‘위로자’로 모시며 신랑을 기다리는 ‘신부의 영성’을 이어온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것은 잃어버린 여성 신성의 실체, 즉 ‘독생녀’를 되찾기 위한 장구한 기다림의 역사였다. ‘여인의 씨’로 시작된 구원의 서사는 이제 마리아가 미처 이루지 못한 완결점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에덴의 상처와 마리아의 눈물을 닦고, 인류를 사랑의 논리로 치유할 ‘어머니의 실체적 현현’이 간절히 필요한 시점이다.
서성종 작가(신학박사)
2026-03-03 17: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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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는 관념 아닌 생존의 문제 미래 세대 위한 ‘실천적 연대’를”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70년]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구조적 과제를 평화의 범주로 확장해 온 선학평화상은 미래 세대를 위한 지속 가능한 평화를 기치로 활동해 왔다. 출범 초기부터 수상자 발굴을 위해 세계 각지를 직접 누벼온 남인석 사무총장을 만나 급변하는 시대 속에서 이 상이 추구하는 방향과 인류가 직면한 위기에 대한 해법을 들었다. 다음은 일문일답이다.
“우리는 과거의 공로가 아닌, ‘다가올 위기’의 영향력”
- 세계적으로 가장 권위 있는 평화상인 노벨평화상과 비교할 때, 선학평화상만의 차별성은 무엇입니까.
“노벨평화상이 주로 분쟁의 완화와 외교적 리더십을 통해 평화를 조명해왔다면, 우리는 갈등이 일어나기 전의 구조에 주목합니다. 기후·식량·보건의 불평등처럼 미래 세대의 생존을 위협하는 문제를 평화의 범주로 확장하고, 가장 열악한 현장에서 직접 해결 모델을 구축해 온 실천가들을 발굴하는 데 집중해 왔습니다. 전쟁의 부재를 넘어 인간의 존엄과 생존권을 지키는 것이 우리가 말하는 평화입니다.”
- 다가올 위기를 꼽는다면.
“기후 변화, 식량 불안, 보건 격차 같은 구조적 과제들입니다. 이 과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미래 세대의 안전은 담보될 수 없습니다. 전쟁이 없다고 해서 곧 평화라 말할 수 없습니다.”
- 선학평화상이 구상하는 평화의 범위가 있는지요.
“이상적 평화는 총성이 멈춘 이후의 상태가 아니라, 위기가 폭발하기 전에 구조를 바꾸는 일입니다. 대표적으로 팬데믹은 우리에게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습니다. 백신은 누구의 것인가? 부유한 국가의 것인가? 인류 모두의 것인가? 선학평화상이 구상하는 평화는 바로 이런 구조적 불평등을 해소하고, 공공재를 인류 공동의 자산으로 인식하는 질서까지를 포함합니다. 평화의 범위는 지금보다 훨씬 넓어져야 합니다.”
“화려한 명성보다 실천과 책임의식”
- 수상자 선정 기준은 무엇입니까.
“직책이나 명성보다 삶의 방향을 봅니다. 고통받는 사람들 곁에 실제로 서 있었는가. 그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인류 공동의 과제를 해결하려 노력했는지가 핵심입니다. 미래 세대에 대한 공동 책임을 실천하며 묵묵히 현장을 지킨 인물이 우리가 찾는 평화의 얼굴입니다.”
- 한 사람 예를 들어주신다면.
“대표적인 분이 제2회 수상자인 지노 스트라다 박사입니다. 지금은 고인이 되셨지만, 스트라다 박사는 이탈리아 의사로서 분쟁 지역에서 무상 의료 봉사를 실천했습니다. 그분은 환자의 국적도, 정치적 입장도 묻지 않았습니다. 평화는 선언이 아니라, 그런 이타적인 선택의 축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시민사회의 선한 힘과 새로운 플랫폼”
- 정부와 국제기구의 역할로도 충분하지 않은지요.
“공공 영역은 정부와 국제기구의 역할이 필수적입니다. 그러나 정치적 이해관계와 절차의 제약을 받습니다. 시민사회는 상대적으로 유연합니다. 더 빠르게 움직일 수는 장점이 있습니다.”
- 그렇다면 시민사회는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보십니까.
“제6회 수상자인 휴 에반스의 경우 ‘글로벌 시티즌(Global Citizen)’이라는 플랫폼을 통해 시민사회의 선한 힘을 결집시키는 참여의 구조를 만들었습니다. 그곳에서는 청년들이 휴대폰으로 빈곤 퇴치나 기후 대응 캠페인에 참여합니다. 또한 온라인 서명과 메시지 전달, 행동 촉구 등에 동참합니다. 그 참여가 일정 규모를 넘어서면 대규모 콘서트와 국제행사에서 세계 지도자들에게 공개적으로 약속을 요구합니다. 개인의 작은 행동이 국제적 압력으로 전환되는 구조입니다.”
- 실질적인 성과가 있었는지요.
“2012년 이후 이 플랫폼을 통해 수십억 달러 규모의 공공·민간 재원이 약속됐고, 그 재원은 백신 지원과 교육 확대, 식량 지원 사업으로 이어졌습니다. 단순한 캠페인이 아니라 민간의 평화 행동이 국제사회의 정책과 예산을 움직인 멋진 사례입니다.”
“청년에게 평화는 현실적 삶의 방식으로”
- 청년 세대에게 평화는 어떻게 다가가야 합니까.
“도덕 교과서처럼 말하면 닿지 않습니다. 자신의 삶 속에서 선택하고 실행할 수 있는 ‘실천 가능한 모델’로 제시되어야 합니다. ‘나는 어떤 기준으로 세상의 문제에 응답할 것인가.’ 그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질 때 변화가 시작됩니다. 수상자들의 삶은 ‘불가능한 이상’이 아니라, ‘선택 가능한 현실’ 입니다.”
“공감이 행동이 될 때, 평화가 됩니다”
- 지금까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꾸준하게 실적을 쌓아 오셨는데, 앞으로 계획을 말씀해 주시죠.
“전 세계 실천가들이 연결되는 허브가 되는 것이 목표입니다. 기후·식량·보건 등의 불평등이라는 공통 과제를 해결하려는 이들을 서로 연결하는 글로벌 플랫폼을 구축하고 싶습니다.”
- 끝으로, 선학평화상이 궁극적으로 이루고자 하는 사회는 어떤 모습입니까.
“타인의 고통이 외면되지 않아야 합니다. 공감이 감정에 머무르지 않고 행동으로 이어지고, 그 행동들이 서로 연결되어 구조를 바꾸는 사회를 지향합니다. 평화는 멀리 있는 이상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의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작은 실천이 모일 때 공동체는 스스로 지킬 힘을 얻고, 미래 세대가 안심할 수 있는 지속 가능한 평화는 비로소 현실이 될 것입니다.”
2026-03-02 16:2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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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구제 기여자 선정… ‘한국판 노벨평화상’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70년]
인류의 평화는 단순히 전쟁이 없는 상태를 의미하지 않는다. 기후 위기와 감염병, 빈곤과 난민, 교육 격차 등 인류 공동 과제를 해결하는 일과 맞닿아 있다. ‘미래 세대를 위한 평화’를 기치로 제정된 선학평화상은 2025년 제6회 시상식을 계기로 10년의 궤적을 완성했다. 역대 수상자들의 발자취를 통해 이 상이 조명해 온 의제와 의미를 짚어본다.
■제1회~제2회: 기후 정의와 난민 인권
2015년 제1회 수상자인 아노테 통 키리바시 대통령은 해수면 상승으로 국가 존립이 위협받는 현실을 국제사회에 알리며 ‘기후 정의’ 담론을 환기했다. 공동 수상자인 모다두구 비제이 굽타 박사는 저비용 양식 기술 보급을 통해 개발도상국의 식량 자립을 지원하며 ‘청색혁명’을 이끌었다. 제1회 시상은 기후 위기와 식량 안보를 평화의 핵심 의제로 격상시킨 계기였다.
2017년 제2회 수상자인 이탈리아 출신 외과의사 지노 스트라다는 분쟁 지역에서 무상 의료 활동을 펼치며 전쟁과 폭력의 한복판에서 생명권 보호에 헌신했다. 또 다른 수상자인 아프가니스탄의 교육운동가 사키나 야쿠비 박사는 여성과 난민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자립의 기반을 마련했다. 제2회 시상은 난민과 분쟁 피해자 문제를 전면에 제기하며, 평화의 전제 조건으로 ‘생명권’과 ‘교육권’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의미를 갖는다.
■제3회~제4회: 아프리카 발전과 종교 화합
2019년 제3회 수상자인 소말리아 출신 인권운동가 와리스 디리는 여성 할례(FGM)의 참상을 고발하며 실질적인 법·제도 개선을 이끌었다. 또 다른 수상자인 아프리카개발은행 총재 아킨우미 아데시나는 농업 혁신과 금융 지원 확대를 통해 빈곤 감소와 경제 자립을 모색하는 발전 모델을 제시했다. 제3회 시상은 아프리카 대륙이 직면한 구조적 과제를 조명하고, 제도 개선과 자립 역량 강화가 평화의 토대임을 환기했다.
2020년 제4회 수상자인 마키 살 세네갈 대통령은 안정적 거버넌스 운영과 지역 협력을 바탕으로 민주주의 기반을 강화한 리더십을 보여줬다. 또 다른 수상자인 팔레스타인 루터교 지도자 무닙 A. 유난 주교는 중동 지역에서 종교 간 대화와 공존을 촉진하며 갈등 완화에 기여했다. 제4회 시상은 정치적 책임성과 종교 간 화해가 평화 구축의 핵심 요소임을 부각했다.
■제5회~제6회: 보건 형평성과 생태·리더십
2022년 제5회 수상자인 영국 옥스퍼드대 교수 사라 길버트는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공동 개발에 참여해 코로나19 대응에 기여했다. 공동 수상 기관인 세계백신면역연합(Gavi)은 저소득 국가에 대한 백신 보급 확대를 통해 보건 형평성 제고에 힘썼다. 제5회 시상은 감염병 대응에서 ‘백신의 공공재화’ 원칙을 강조하며, 보건 형평성을 평화의 중요한 조건으로 제시했다.
2025년 제6회 수상자인 케냐 환경운동가 완지라 마타이는 아프리카 식수·조림 사업을 통해 생태 회복과 지역 공동체의 자립 역량 강화를 병행했다. 글로벌 시민운동가 휴 에반스는 기후 위기 대응과 빈곤 퇴치를 위한 국제 모금 캠페인을 이끌며 시민 참여 기반의 연대를 확장했다. 또 한사람 가나의 교육가 패트릭 아우아는 혁신적 고등교육 모델을 통해 차세대 윤리 리더 양성에 기여했다. 제6회 시상은 환경 복원과 시민 연대, 윤리적 리더십이 미래 세대를 위한 평화의 핵심 축임을 보여줬다.
10년의 의미: 연대와 공공선
지난 10년간 수상자들의 활동을 관통하는 핵심 가치는 ‘연대’로 요약된다. 기후 변화, 감염병, 식량 위기, 분쟁과 난민 문제는 특정 국가에 국한되지 않는 초국경적 과제다. 선학평화상은 이러한 문제 해결에 실질적으로 기여한 인물을 발굴함으로써 평화를 ‘갈등의 부재’가 아닌 ‘인류 공공선 증진을 위한 능동적 실천’으로 재정의해 왔다.
위원회 측은 이 상이 과거 공로에 대한 단순한 포상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변화의 확산을 촉진하는 데 목적이 있다고 설명한다. 기후 위기와 불평등이 심화되는 국제 환경 속에서, 수상자들이 보여준 공익적 헌신은 향후 글로벌 거버넌스와 시민사회가 지향해야 할 방향을 제시한다.
2026-03-02 16:2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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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재난·난민·감염병… 민간 주도 인류 공동 의제 이끌었다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70년]
정부가 주도하는 전통 외교와 달리, 시민사회 차원에서 인류 공동의 미래를 위해 전지구적 의제를 선도하는 평화의 허브가 있다. 선학평화상이다.
선학평화상은 2015년 한학자 총재가 문선명 총재의 인류 평화 구현 유지를 받들어 설립했다. 명칭인 ‘선학(鮮鶴)’은 두 설립자의 함자에서 한 글자씩 인용해 평화의 상징성을 담았다. 이 상은 설립이래 지구촌의 개발·환경·인권·종교 간 화해 등 복합 의제를 포괄해 왔다. 특정 분야에 한정하지 않는 의제 설정과 민간 주도 구조는 한국형 소프트 파워의 확장 사례로 평가될 수 있다.
단순한 시상을 넘어 국제 평화 의제를 연결·확장하는 플랫폼을 지향하며, 국가와 국제기구 중심 담론에 시민사회 네트워크를 결합해 왔다.
‘전 인류 한 가족’이라는 메시지
선학평화상은 문선명·한학자 총재가 제시한 ‘전 인류 한 가족’ 비전을 바탕으로 운영된다. 인권 존중, 갈등 화합, 생태 보전을 3대 기치로 삼는다. 초종교, 초국가, 초인종이라는 경계를 넘는 평화 철학이다.
이 철학은 선언에 그치지 않기 위해 구체적 실천 사례를 통해 검증되는 방식을 택해 왔다. 기후 위기, 감염병, 난민 문제처럼 국경을 넘어 확산되는 과제를 해결해 온 인물들을 발굴함으로써, 평화를 추상이 아니라 실행의 문제로 다루겠다는 방향을 분명히 해 왔다.
복합 위기 시대와 평화 리더십
감염병과 기후 재난처럼 국경을 넘는 위기는 단일 국가의 정책만으로 해결하기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시민사회 기반 국제 플랫폼은 정부 외교를 보완하는 연결망으로 주목받는다.
선학평화상은 매 회 시상식마다 당대 국제사회가 직면한 핵심 의제를 전면에 내세워 왔다.
●2015년 제1회 시상식은 ‘기후 위기’를 주제로 삼았다. 파리기후협정 체결을 앞둔 시점, 기후 문제를 단순한 환경 이슈가 아니라 인류 생존의 문제로 다뤄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졌다.
●2017년 제2회는 ‘난민 위기’를 전면에 내세웠다. 시리아 내전과 유럽 난민 사태가 국제사회의 갈등을 증폭시키던 때, 분쟁 지역에서 의료와 인도적 지원을 실천한 인물들을 조명했다.
●2019년 제3회는 ‘아프리카의 굿 거버넌스’를 시상 테마로 삼았다. 외부 원조에 의존하던 기존 한계를 넘어 책임 있는 국가 운영과 제도 개혁을 통한 자립적 발전 모델을 발굴했다. 이로써 평화를 제도적 안정과 책임 있는 통치의 영역으로 확장하는 전기를 마련했다.
●2020년 제4회는 ‘공생·공영·공의’를 주제로, 상호의존적 세계에서 공정한 질서와 협력 모델을 강조했다.
●2022년 제5회는 코로나19 팬데믹 한가운데서 ‘글로벌 감염병 대응’을 핵심 의제로 제시했다. 백신 접근성과 보건 형평성을 평화의 문제로 확장했다.
●2025년 제6회는 ‘평화를 위한 혁신’을 테마로, 기후 대응과 교육, 시민 참여 플랫폼 등 구조적 해법을 제시한 실천가들을 조명했다.
이처럼 선학평화상은 인물을 기리는 상을 넘어, 시대가 던지는 질문을 한국에서 먼저 의제로 설정하며, 10년의 여정을 완성하고 미래 비전을 공고히 했다.
한국형 공익외교의 확장 가능성
한국은 전쟁과 분단, 빈곤을 딛고 원조 수혜국에서 공여국으로 전환했다. 선학평화상은 이러한 변화 속에서 탄생한 민간 차원의 창의적 실험이다.
이는 한국 사회가 ‘받는 나라’에서 ‘기여하는 나라’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만든 국제 평화 무대라는 점에서 상징성을 갖는다. 한국이 국제사회에서 책임을 나누는 중견국가로 자리매김해 가는 흐름 속에서, 이러한 축적은 하나의 이정표가 되고 있다.
수상자들은 시상 이후에도 선학평화상이 지원하는 국제 포럼과 연계 프로그램을 통해 협력 네트워크를 유지해 왔고, 일부 의제는 국제기구와 학계 토론으로 확장됐다.
또한 정기적 운영 구조를 기반으로 10년간 지속돼 왔다는 점에서, 민간 플랫폼으로서의 안정성도 확보해 왔다고 볼 수 있다.
비전과 상징을 넘어, 네트워크를 축적해 온 10년이었다는 평가가 가능한 대목이다.
공공 브랜드로서의 과제
10년을 돌아보면, 선학평화상은 한국 사회가 세계를 향해 던진 질문에 가깝다. 전쟁과 분단, 압축 성장을 지나온 나라가 조심스럽게 꺼낸 물음, “우리는 세계에 무엇을 기여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다.
그 물음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지속 가능성과 공공성이라는 과제 역시 남아 있다. 다만 분명한 것은, 기후·난민·감염병처럼 국경을 넘어선 인류 공동의 문제를 놓고 토론의 장을 한국에서 열어 왔다는 사실이다.
이제 시선은 다음 10년으로 향한다. 갈등이 깊어질수록 의제를 세우는 힘은 더욱 중요해진다.선학평화상이 앞으로 어떤 새로운 시대적 어젠다를 제시할 것인지, 그리고 그 질문에 어떻게 답해 나갈 것인지는 결국 우리 사회의 선택에 달려 있다.
2026-03-02 16:2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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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창세기의 비극, ‘해와’는 왜 돕는 배필이었나 [父性 문명의 한계, 母性 구원의 비전-기고]
◆잃어버린 ‘하늘의 딸’, 인류 문명의 구조적 결핍을 묻다
창조주 하나님은 남성성과 여성성을 동시에 지닌 ‘하늘부모님’이시며, 2천 년간 기독교가 고백해온 ‘성령’이야말로 그 모성적 위격의 영적 실체임을 다시한번 밝힌다. 그렇다면 여기서 우리는 인류사에서 가장 뼈아픈 지점을 마주하게 된다. 하늘부모님의 형상을 온전히 실체로 닮아 태어난 최초의 여성, ‘해와(Eve, 1952년 개역한글판)’는 왜 역사 속에서 그 위상과 가치를 상실한 채 인류 타락의 원인 제공자라는 불명예를 안고 살아야 했는가 하는 점이다.
◆‘에제르 케네그도’, 부차적 존재인가 대등한 조력자인가
인류 구원 섭리의 비극은 에덴동산에서의 오해에서 시작되었다. 오랜 세월 유교와 기독교를 비롯한 가부장적 종교 전통은 아담의 갈빗대로 해와가 창조되었다는 성서적 서사를 근거로, 여성을 남성의 부차적 존재이자 종속적인 보조자로 낙인찍어 왔다. 특히 창세기 2장에 등장하는 ‘돕는 배필’이라는 번역어는 여성을 남성의 부족함을 메우는 ‘비서’ 정도로 인식하게 만드는 결정적 원인이 되었다.
그러나 히브리어 원전의 의미를 인문학적·신학적 통찰로 다시 읽어보면 놀라운 진실이 드러난다. 성서에서 ‘돕는 배필’은 히브리어로 ‘에제르 케네그도(Ezer Kenegdo, עֵזֶר כְּנֶגְדּוֹ)’라 기록되어 있다. 여기서 ‘에제르(Ezer, עֵזֶר)’라는 단어는 성경 전반에서 주로 하나님이 인간을 도우실 때 사용되는 강력하고 주체적인 조력의 의미를 담고 있다. 또한 ‘케네그도(Kenegdo, כְּנֶגְדּוֹ)’는 ‘그와 마주하여’, ‘그와 대등하게’라는 뜻이다.
즉, 해와는 아담의 하급자가 아니라, 아담과 서로 마주 보며 하늘부모님의 온전한 형상인 ‘이성성상(二性性相)’을 지상에 완성해야 했던 신의 결정적 파트너였다. 그녀는 창조주의 모성적 성품을 실제 모습으로 대리할 유일한 ‘하늘의 딸’이자, 인류의 참어머님으로 예비된 독생녀의 원형이었던 것이다.
◆‘해와(Haewa)’라는 이름에 담긴 독생녀의 이상
필자는 저서 『세계경전에 나타난 독생녀』를 통해 통일신학의 고유한 용어인 ‘해와(Haewa)’에 주목한다. 이는 단순히 번역상의 선택이 아니라, 타락하여 원죄의 통로가 된 ‘하와(Eve)’와 구별하여 하늘부모님이 본래 창조하고자 했던 ‘순수한 원리적 여성의 위상’을 회복하려는 신학적 의지가 담긴 표현이다.
히브리어 ‘하와’의 본래 뜻은 “생명” 또는 “모든 산 자의 어머니”다. 창조본연의 해와는 아담의 보조자가 아니라, 하늘부모님의 여성적인 본질(음성성상)을 상속받아 땅 위에서 사랑의 핵(核)을 이루어야 할 주체였다. 만약 그녀가 완성되었다면, 온 우주 만물은 참어머니의 섬세한 사랑을 통해 하늘부모님의 품을 느끼며 영원한 안식을 누렸을 것이다.
하지만 인류 타락은 이 거대한 모성적 이상의 붕괴를 가져왔다. 타락의 본질은 단순히 금단의 열매를 먹은 행위가 아니라, 완성되지 않은 미성숙한 상태에서 사탄과 잘못된 사랑의 관계를 맺음으로써 하늘의 혈통을 잃어버리고 ‘거짓 어머니’의 자리로 전락한 사건이다. 이로 인해 하늘부모님은 당신의 여성적 본성을 실체화할 통로를 잃으셨고, 인류 역사는 ‘어머니’를 상실한 채 ‘절반의 문명’으로 출발하게 되었다.
◆모성(母性)의 실종과 부성(父性) 문명의 한계
어머니 없는 가정이 온전할 수 없듯, 모성적 신성을 잃어버린 인류 문명은 약육강식과 정복, 그리고 투쟁의 역사로 치달았다. ‘부성 문명’의 한계는 바로 여기서 기인한다. 정의와 심판, 법과 질서만을 강조하는 남성 중심의 리더십은 인류 사회를 발전시켰지만, 상처 입은 영혼을 치유하고 분열된 세계를 하나로 품어 안는 데에는 명확한 한계를 드러냈다.
섭리의 관점에서 볼 때 구원 역사는 곧 ‘잃어버린 해와의 자리’를 되찾는 과정이다. 아담의 실패를 복구하기 위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가 오셨듯이, 해와의 실패를 복귀하고 본래의 위상으로 회복하기 위해 하늘은 수천 년의 역사를 통해 여성을 준비해 오셨다. 타락한 여인을 하늘부모님의 무원죄(無原罪)한 딸인 ‘독생녀’로 복구하는 작업은 구원 섭리의 피할 수 없는 과제가 된 것이다.
◆독생녀, 해와의 눈물을 닦는 구원의 마침표
2천 년 전 예수 그리스도가 ‘후아담’으로 오셨으나 ‘후해와’를 맞이하지 못한 채 십자가를 지셔야 했던 비극은 독생녀를 통한 여성 신성의 회복이 얼마나 어렵고도 중차대한 일이었는지를 방증한다. 인류 구원은 아담의 회복만으로 결코 끝나지 않는다. 생명의 씨(아버지)와 생명의 태(어머니)가 만날 때 비로소 새로운 생명이 잉태되듯, 구원 역사 또한 독생자와 독생녀가 실체로 만나 참부모의 위상을 확립할 때 비로소 마침표를 찍을 수 있다.
이제 우리는 창세기의 비극을 넘어 독생녀의 현현을 직시해야 한다. 역사 속에서 폄하되고 왜곡되었던 여성의 가치가 독생녀 참어머님이라는 실체를 통해 복구될 때, 에덴의 해묵은 상처는 치유되고 전쟁 없는 평화의 세계, 즉 하늘부모님을 모신 ‘인류 한 가족’의 대이상이 실현될 수 있다. 해와의 눈물을 닦고 인류를 중생(重生)의 길로 인도하는 모성적 구원의 비전이야말로, 이 시대가 경전의 행간에서 반드시 찾아내야 할 마지막 복음인 것이다.
서성종 작가(신학박사)
2026-02-26 12: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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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 주도로 지구촌 ‘메디컬 피스로드’ 깔았다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70년]
질병과 의료 격차는 국가의 경계를 따르지 않는다. 이를 줄이기 위한 노력 또한 국경 안에 머물 수 없다. 사회복지법인 애원복지재단이 50여 년간 이어온 해외 의료봉사 활동과 HJ매그놀리아국제병원이 추진하는 국제 나눔 의료는 한국 민간 의료가 세계 보건 영역에서 어떤 역할을 축적해 왔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례로 평가된다. 청년 의학도의 자발적 참여에서 시작된 의료 연대는 재난 구호, 지역 보건 협력, 의료 교육, 기술 기반 협력까지 포괄하는 장기적 국제 네트워크로 발전해 왔다.
청년 의학도 운동에서 출발한 국제 협력
애원복지재단 의료 활동의 출발점은 1971년 한·일 합동 진료다. 당시 한국 의과대학생들은 의료 접근성이 낮은 지역을 지원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조직을 구성했고, 일본 의료봉사회와 협력해 첫 국제 의료 활동을 진행했다. 약 40명의 의료진이 참여한 이 진료는 수백 명의 환자를 치료하며 민간 차원의 국제 협력이 실질적으로 가능하다는 점을 확인한 사건으로 기록된다.
이어진 연속 활동은 봉사가 일회성에 그쳐서는 안 된다는 공감대를 형성했고, 이는 1973년 의료봉사단 창립으로 이어졌다. 개인의 헌신이 집단적 실천으로 전환된 이 시기는 이후 수십 년간 지속될 국제 의료 나눔의 확산을 마련한 전환점으로 평가된다.
해외로 확장된 한국 민간 의료의 시선
1980년대는 활동의 무대가 해외로 이동한 시기였다. 국내 의료 인프라가 빠르게 개선되자 봉사단은 의료 수요가 더 큰 개발도상국으로 시선을 넓혔다. 특히 1984년 시작된 아시아 순회 진료는 한국 민간단체가 주도한 최초의 해외 의료봉사 활동으로, 오늘날 한국 해외의료봉사의 출발점으로 평가된다. 아시아 순회 진료는 필리핀, 방글라데시, 몽골, 인도, 태국 등지에서 진행됐으며, 전문 의료진 파견과 의약품 지원을 결합한 체계적 모델을 구축했다.
재단 출범과 통합형 구호 체계
1994년 애원복지재단의 공식 출범은 활동 재원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고, 국내외 복지 활동을 체계화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이를 통해 재단은 해외 의료 지원은 물론, 국내 사회 안전망 전반을 아우르는 종합 복지 네트워크를 구축하며 복지 사업의 외연을 확장했다.
국내에서는 시설별 전문성을 바탕으로 생애주기별 맞춤형 복지를 실현했다. 전국 5개소의 어린이집을 통해 영유아를 위한 안정적인 보육환경을 제공하고, 노숙인 자활시설을 운영해 이들이 사회의 일원으로 복귀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 또한, 종합사회복지관을 중심으로 아동, 청소년, 장애인, 등 지역 주민의 복지 증진에 주력했다.
해외에서는 의료 지원을 중심으로 재난 구호, 생활 지원, 예방 인프라 구축을 결합한 통합형 구조가 형성됐고, 단기 진료가 아닌 지역 사회의 회복력 강화에 초점을 맞춘 방향으로 발전했다.
HJ매그놀리아국제병원의 사랑을 실천하는 의료 나눔
이 같은 축적 위에서 등장한 것이 HJ매그놀리아국제병원의 의료 나눔 확산이다. 병원은 단순 의료 기관을 넘어 국내외 소외된 이웃을 향해 어머니의 참사랑을 전하는 인술을 펼쳤다.
2010년부터 시작한 의료 나눔은 2025년까지 총 22회 걸쳐 아프리카와 아시아 국가에서 7,400여명이 의료 나눔으로 도움을 받았다.
병원은 매년 경제적 어려움과 기술적 한계로 수술을 받지 못하는 극빈국 해외 환자들을 국내 로 초청하여 무료 수술을 시행하여 단순한 치료를 넘어 완치를 목표로 끝까지 책임지는 의료 나눔을 보였다. 또한 예상치 못한 재난으로 상처 입은 이웃 곁에도 항상 병원이 있었다. 특히 2025년 가평 수해 지역에서 펼친 긴급 의료봉사는 지역사회의 아픔을 보듬어 주었다. HJ매그놀리아국제병원은 앞으로 인류 한 가족의 이상을 실천하며, 전 세계 곳곳에 따스한 의료 손길을 확산시켜 나갈 것이다.
아프리카로 확장된 현장 중심 협력
최근 애원복지재단과 연계된 활동의 주요 무대는 아프리카 상투메 프린시페다. 상투메 프린시페는 청년층이 많고 성장잠재력이 큰 주권국가임에도 불구하고, 고립된 지리적 특성 탓에 국가 전체에 치과가 단 두 곳뿐일 정도로 의료 환경이 극히 열악하다. 의료봉사를 통해 치과, 내과, 외괴, 정신과, 한방과, 족부족외과 등 전문 의료진 파견과 장비 지원, 현지 인력 교육이 동시에 진행됐다. 단기 치료 제공을 넘어 지역 의료 역량을 강화하는 데 초점을 맞춘 프로젝트였다. 단순 진료를 넘어 현지에 치과 진료소를 건립하여 체계적인 진료와 구강 위생 교육이 가능한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이번 프로젝트의 궁극적 목표다.
한국 민간 국제의료의 다음 단계
지금까지 애원복지재단이 축적한 현장 경험과 HJ매그놀리아국제병원의 전문 의료 인프라, 그리고 글로벌 NGO 단체들과의 입체적인 협업 시스템은 하나로 결합했다. 이러한 민간 주도의 유기적인 연대는 향후 한국의 민간 의료 네트워크가 국제 보건 영역에서 중요한 축으로 도약하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애원복지재단이 축적한 현장 경험과 병원의 전문 인프라가 결합될 경우 한국 민간 의료 네트워크는 국제 보건 영역에서 더욱 중요한 축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크다.
반세기 동안 이어진 의료 봉사는 결국 하나의 질문으로 귀결된다. 국경을 넘어 생명을 지키는 일은 누구의 책임인가. 국가뿐 아니라 시민 사회와 전문 의료 공동체가 함께 답해야 할 과제라는 점에서, 이들의 행보는 한국 민간 국제의료의 현재이자 미래를 동시에 보여준다.
2026-02-23 21:0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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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받았던 도움, 이제 우리가 돌려줄 차례”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70년]
“14살 소녀의 입안에는 14개의 빈자리가 있었습니다.” 심각한 충치로 영구치 절반을 뽑아야 했던 캄보디아의 한 소녀. 이 참담한 풍경이 일미치과 김상균(사진) 원장을 오랜 세월 길 위에 머물게 했다. “가난 때문에 치료를 포기하는 것이 당연한 일상이 되지 않게 하겠다”는 그의 결심은 10개국, 10만 명이라는 진료 기록으로 증명되고 있다. 이제 그는 진료라는 시혜에서 한 발 더 나가 현지 주민이 스스로를 치료할 수 있는 ‘자립’의 씨앗을 심고 있다.
“한국이 받았던 도움, 이제 우리가 돌려줄 차례”
김상균 원장은 해외 의료봉사를 멈추지 않았던 이유를 묻자 잠시 생각하다 이렇게 답했다.
“한국은 전쟁 이후 국제사회의 지원을 받던 나라였습니다. 그런데 불과 수십 년 만에 세계 10위권 경제 규모로 성장했죠. 우리가 받은 도움을 다시 나누는 것은 자연스러운 책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무엇보다 이 길을 함께 해 주었던 동료 의료진과 후원자들이 있었기에 40년 넘는 세월을 한결같이 걸어올 수 있었습니다.”
의료봉사단은 코로나 시기 등 불가피한 공백을 제외하면 1970년대 중반부터 50년 가까이 활동을 이어왔다. 필리핀과 방글라데시를 시작으로 인도, 몽골, 태국 등 아시아를 넘어 파라과이와 브라질 같은 남미, 그리고 상투메 프린시페와 잠비아 등 아프리카 오지까지 발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그 중심에서 김 원장이 본격적으로 해외 오지 진료에 매진해온 세월만 어느덧 40여 년. 연간 평균 3,000명 누적 환자 10만 명에 달하는 진료 기록은 그렇게 쌓였다. 이 기록의 마디마디에는 40년의 헌신이 지문처럼 새겨져 있다. 그는 “한 명의 환자를 치료하는 일은 그 가족과 공동체를 살리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대학 시절 무의촌 봉사, 인생의 방향을 바꾸다
그의 첫 의료 봉사는 1975년 의대 1학년 시절이었다. 동아리 선배들을 따라 무의촌 의료봉사에 참여하면서 인생의 방향이 정해졌다.
“당시 일본 가정연합 의료봉사단이 한국 의대생들과 함께 전국을 돌며 한·일 합동 의료봉사를 했습니다. 일본 회원들이 과거 식민 지배에 대한 반성과 화해의 마음으로 봉사한다는 사실에 큰 감동을 받았죠. 의료가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역사와 화해, 인간애를 잇는 다리가 될 수 있다는 걸 그때 처음 깨달았습니다.” 그 경험은 이후 매년 봉사 현장으로 그를 이끌었다. 그는 이를 “‘지구촌 한 가족’이라는 말을 실제로 체험한 순간”이라고 회상했다.
언어 장벽 넘어선 공통 언어, ‘통증’
해외 현장에서 가장 큰 어려움은 언어였다. 포르투갈어를 영어로, 다시 한국어로 옮기는 3단계 통역이 필요한 경우도 많았다. 그러나 그는 “아픔과 통증은 만국 공통어”라고 말한다.
“의료 기술로 고통을 줄여주면 언어가 달라도 마음은 통합니다. 방글라데시에서는 하루 다섯 번 기도 시간마다 진료를 멈춰야 했습니다. 처음엔 낯설었지만, 그들의 신앙을 존중하는 과정에서 문화적 이해가 깊어졌습니다.”
14세 소녀와 메콩강의 보건소
수많은 기억 중 김 원장의 가슴에 가장 깊게 박힌 장면은 2010년 캄보디아 크라체주에서 만난 소녀의 모습이다. “그때 14세의 어린 나이에 14개의 영구치를 속절없이 잃어야 했던 한 소녀의 비극적인 사례를 계기로 치과 유니트, 콤프레샤, 소독기 등 치과 장비 일체를 한국에서 공수해 기증했습니다. 청소년 구강 보건의 중요성을 절실히 느꼈죠.”
또 하나의 기억은 메콩강 고립 섬에 보건소를 세운 일이다. 임산부나 응급 환자가 발생해도 이동할 수 있는 수단이 변변찮아 생명을 잃을 수 있기에 3천 명이 사는 무의촌 지역에 2년간 모금 활동을 벌여 보건소를 설립했다. 현재도 한국과 일본 의료진이 정기적으로 방문하며 운영을 돕고 있다.
아프리카에 병원과 의대를 세우는 꿈
그의 다음 목표는 분명하다. 아프리카에 병원을 세우고 의과대학을 설립하는 것이다.
“개화기 한국이 의료 선교를 통해 성장 동력을 얻었듯, 이제 우리가 그 역할을 해야 합니다.”
일본의 2세대 의료인 네트워크 MESH와 한국 청년 의료인들이 이 비전에 동참하고 있다. 그는 “다음 세대가 이 길을 이어갈 준비가 되어 있다”며 미소 지었다. 40년, 10만 명, 10개국. 숫자로 환산할 수 없는 시간 속에서 그는 여전히 같은 질문을 붙든다.
“우리가 가진 것을 어디까지 나눌 수 있는가.”
의대생 시절 무의촌에서 품었던 이 질문의 답은 이제 메콩강의 보건소와 다시 웃게 된 소녀의 미소 속에 ‘희망’이라는 이름으로 남아있다.
2026-02-23 20:5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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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한 가족’ 초국가 이상 실천… 120개국 이상서 구호·의료봉사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70년]
21세기 국제질서는 기후 변화, 지역 분쟁, 경제적 불평등이 중첩된 복합 위기 구조 속에 놓여 있다. 이 문제들은 본질적으로 초국가적 성격을 띠지만, 대응 체계는 여전히 국가 중심 외교에 의존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 결과, 제도권 외교가 미처 포착하지 못하는 영역에서 구조적 공백이 발생하고 있다. 최근 국제정치학과 개발 연구 분야에서 주목하는 지점은 바로 이 공백을 보완하는 민간 인도주의 네트워크의 역할이다.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이하 가정연합)이 수십 년간 구축해 온 국제 구호 활동은 종교 기반 NGO가 글로벌 거버넌스 구조 안에서 어떤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로 해석될 수 있다.
규범적 철학과 인도주의 담론
가정연합의 인도주의 활동은 ‘하나님 아래 인류 한 가족(One Family under God)’이라는 규범적 철학 위에 구축돼 있다. 이는 인류를 단일 공동체로 인식하는 초국가적 세계관을 전제로 하며, 구호를 일방적 시혜가 아닌 공동체적 책임으로 이해한다는 점에서 특징적이다. 수혜자를 보호 대상이 아니라 존엄성을 지닌 행위자로 인식해야 한다는 관점은 현대 인도주의 담론, 특히 인간 안보(human security) 개념과도 접점을 형성한다. 종교적 언어로 표현된 가치 체계가 국제 규범과 교차하는 지점에 이 모델의 이론적 의미가 존재한다.
네트워크 규모와 지속성의 정치경제학
활동의 지리적 범위 또한 주목할 만하다. 가정연합 및 유관 단체들의 프로젝트는 120개국 이상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연인원 기준 수십만 명 규모의 자원봉사 네트워크가 참여해 왔다. 교육, 의료, 식량, 재난 대응 등 다층적 영역에서 수혜 인구 역시 수만 명 단위로 추정된다. 종교 기반 NGO의 특성상 통계 체계가 국가별로 상이해 정확한 수치 산정에는 제약이 있지만, 전문가들은 장기간 지속된 현지 정착성과 조직의 네트워크 밀도를 중요한 성과 지표로 본다. 이는 개발 협력에서 ‘지속성’과 ‘지역 사회 내 신뢰 축적’이 갖는 전략적 가치를 시사한다.
단기 구호에서 구조적 개발
가정연합의 구호 모델은 단기 재난 대응을 넘어 구조적 개발 전략으로 확장되어 왔다. 1990년대 이후 아프리카와 아시아에서 교육 및 식량 자립 프로젝트가 본격화되면서 장기 개발 프레임이 형성됐고, 2000년대 초에는 국제 의료 봉사 네트워크가 조직화됐다. 병원 설립과 이동 진료 체계의 병행 운영은 공공 보건 접근성을 높이는 실험적 모델로 평가된다. 이러한 진화 과정은 국제 개발 담론이 긴급 원조에서 지속 가능한 개발로 이동하던 시기와 시간적으로 겹친다. 즉, 민간 종교 네트워크가 국제 개발 패러다임의 변화와 동조적 궤적을 그려왔다는 점이 분석의 대상이 된다.
재난 대응과 조직 능력 축적
재난 대응은 이 네트워크의 조직적 역량을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영역이다. 2010년 아이티 대지진, 2011년 동일본 대지진, 2023년 튀르키예·시리아 지진 등 대형 재난 현장에서 긴급 지원 체계가 반복적으로 가동됐다. 확인 가능한 주요 대응 사례는 30건 이상으로 추산된다. 국제 구호 연구자들은 반복적 현장 개입이 조직 학습을 촉진하고 운영 매뉴얼을 축적하는 핵심 과정이라고 본다. 단발성 개입이 아닌 지속적 참여가 민간 네트워크를 준제도적 행위자로 발전시키는 토대가 된다는 것이다.
식량 안보와 자립형 생산 구조
식량 안보 전략에서도 단기 지원을 넘어 자립형 구조 구축이 강조된다. 1990년대 후반 이후 아프리카와 남미 일부 지역에서 추진된 농장 조성 및 수산 개발 프로젝트는 현지 생태 조건에 맞춘 생산 기술 이전을 중심으로 설계됐다. 이는 외부 원조 의존도를 낮추고 지역 경제의 회복력을 강화하려는 시도로 이해된다. 개발 경제학 관점에서 보면, 이러한 접근은 생산 역량 강화(capacity building)를 통해 장기적 빈곤 구조를 완화하려는 전략에 가깝다.
공공 보건 모델과 예방 중심
보건 의료 분야 역시 예방 중심 모델을 채택하고 있다. 현재 20개국 이상에서 의료 프로젝트가 운영된 것으로 추정되며, 이동 진료 차량, 위생 교육, 감염병 예방 캠페인이 의료 취약 지역을 중심으로 전개됐다. 국제 보건 정책 연구에서는 예방 기반 공공 보건 체계가 장기적으로 생존율과 삶의 질을 동시에 향상시킬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 반복적으로 강조된다. 이 점에서 해당 모델은 인도주의 활동과 공중 보건 정책의 접점을 형성한다.
교육 투자와 세대 간 구조 변화
교육 투자는 세대 간 구조 변화를 겨냥한 전략적 선택이다. 르완다, 세네갈, 필리핀 등지의 학교 건립 사업과 장학 프로그램은 기초 교육 접근성을 확대하는 데 집중되어 있으며, 연간 수천 명 규모의 학생 지원이 이루어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빈곤의 세습을 완화하는 사회적 인프라 투자로 해석될 수 있다. 교육을 통한 장기적 사회 이동성 확보는 개발 정책에서 가장 안정적인 개입 방식으로 평가된다.
민간 외교의 새로운 가능성
국가 중심 외교가 한계를 보이는 영역에서 민간 네트워크는 보다 유연한 협력 구조를 형성할 수 있다. 가정연합 사례는 종교 기반 시민사회 조직이 글로벌 거버넌스의 비공식 축으로 작동할 가능성을 보여준다. 핵심은 특정 기관의 성과를 넘어, 인도주의를 인류 공동의 책임으로 인식하는 규범적 기반에 있다. 초국경적 연대가 확대될수록 민간 인도주의 네트워크는 국제 질서의 보조 구조가 아니라 하나의 기능적 구성 요소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크다. 이 사례는 종교 기반 행위자가 국제 공공재 형성 과정에 어떻게 참여할 수 있는지를 분석하는 데 중요한 분석적 기준점이 된다.
2026-02-23 20:5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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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 성장, 인류 평화 이끌기 위한 섭리적 결실”
한민족의 정체성을 학술적으로 재조명하고, 이를 인류 보편적 가치로 승화시키기 위한 지성의 장이 열렸다.
한민족선민연구원은 23일 경기 가평 천원궁 다목적홀에서 ‘한민족의 정체성과 문화’를 주제로 ‘천일국 기원절 13주년 기념 국제학술대회’를 개최했다.
이기식 연구원 대표는 기조강연에서 “오늘날 한류가 세계인의 마음을 움직이는 이유는 숱한 외세 침공 등 고난 속에서도 희망을 포기하지 않은 집단적 의지에 있다”며 “대한민국의 성장은 결코 우연이 아닌 우리 민족의 신령한 기반 위에 인류를 평화로 인도할 섭리적 결실이 맺어진 결과”라고 강조했다.
김민지 원장은 환영사를 통해 “한국 문화 심층에 흐르는 ‘섭리적 영성’을 학문적으로 성찰해 혈통을 넘어선 ‘보편적 선민관’의 지평을 열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이번 학술대회는 한민족의 정체성과 사명을 학문적으로 공고히 하는 동시에 폐쇄적 민족주의를 넘어 세계시민적 관점에서 인류의 미래 로드맵을 모색했다. 일본교리연구원 노구치 가즈히코 박사는 한·일 관계를 부성과 모성의 상보적 구조로 분석하고, 일본의 역할과 책임 문제를 종교적·윤리적 관점에서 제시했다. 노스캐롤라이나대 문민영 교수는 미국 내 한류(K문화) 확산 현상을 서구 중심 가치관의 변화와 연관 지어 설명하며, 관계 중심적 문화 코드에 대한 정서적 공감이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이어 임현진·오희일(이상 선학UP대학원대)·황진수(선문대) 교수가 토론자로 참여해 한민족 선민사상의 역사적·사회학적 의미를 검토했다. 이날 행사에는 문연아 선학학원 이사장을 비롯한 관계자 및 각계 인사 300여명이 참석했다.
2026-02-23 20:4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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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 한민족선민연구원 국제학술대회
23일 경기 가평군 천원궁 다목적홀에서 열린 천일국 기원절 13주년 기념 한민족선민연구원 국제학술대회에서 참석자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2026-02-23 16:3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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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위로자 속에 담긴 ‘하늘 어머니’의 실체 [父性 문명의 한계, 母性 구원의 비전-기고]
◆삼위일체의 완성과 모성 신성의 현현
구약성경의 창조주 명칭인 ‘엘로힘(Elohim)’이 복수형 명사라는 점과 인간이 신의 형상을 닮은 ‘남자와 여자’로 창조되었다는 사실을 통해 창조본연의 하나님은 ‘하늘부모님’이심을 논증한 바 있다. 그렇다면 여기서 한 가지 근원적인 의문이 생긴다. 기독교 2천 년 역사 속에서 왜 신의 여성적 위격은 독자적인 실체로 부각되지 못하고, ‘성령’이라는 추상적인 상징 속에 머물러야만 했는가 하는 점이다.
◆언어의 뿌리에 새겨진 여성적 신성, ‘루아흐’
전통적인 가부장적 신학은 성부(Father)와 성자(Son)를 명확한 남성격으로 규정한 반면, 성령(Holy Spirit)에 대해서는 바람, 비둘기, 불길 같은 비인격적인 상징을 주로 사용해 왔다. 그러나 신학적 환각을 걷어내고 성서의 원전인 히브리어와 헬라어의 맥락을 짚어보면 성령의 본질은 명확하게 ‘어머니’를 가리키고 있다.
구약성경에서 성령을 뜻하는 히브리어 ‘루아흐(Ruach)’는 여성 명사다. 태초에 수면 위를 운행하며 창조의 에너지를 불어넣었던 영(靈)은 본래 생명을 잉태하고 양육하는 모성적인 속성을 품고 있었다. 또한 잠언서에서 창조의 동반자로 묘사되는 ‘호크마(Hokmah, 지혜)’ 역시 여성으로 의인화되어 만물을 사랑의 망으로 엮는 역할을 수행한다.
신약으로 넘어와 성령을 지칭하는 헬라어 ‘프뉴마(Pneuma)’는 문법적으로는 중성이지만, 예수께서 성령을 수식하며 사용하신 ‘보혜사(Paracletos)’라는 단어는 그 기능면에서 모성적 본질을 극명히 드러낸다. ‘보혜사’는 ‘곁에서 돕는 자’, ‘위로자’, ‘양육자’를 뜻한다. 이는 자녀를 고아처럼 버려두지 않고 진리로 인도하며 끊임없이 생명력을 불어넣는 어머니의 역할과 완벽하게 일치한다.
◆몰트만과 성전 신학이 증언하는 ‘천상의 가족’
현대 신학의 거장 위르겐 몰트만은 성령을 ‘창조적 생명의 영’이자 만물을 품는 ‘모성적 공간’으로 해석하며, 기독교 신학이 지나치게 가부장적 권위에 매몰되었음을 비판했다. 그는 성령을 단순한 에너지가 아닌, 성부와 성자 사이에서 사랑을 완성하는 ‘어머니 신성’으로 이해할 때 비로소 삼위일체 신관이 온전해진다고 보았다.
초기 시리아 기독교 전통에서는 성령을 ‘어머니’로 부르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영적 상식이었다. 성령은 타락한 인류를 영적으로 거듭나게(重生) 하는 주체다. 생물학적 이치로 보나, 섭리적 이치로 보나, 아버지만으로는 자녀를 낳을 수 없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가 ‘하늘 아버지’의 실체적 현현으로 오셨다면, 그와 짝을 이루어 인류를 다시 낳아줄 ‘하늘 어머니’의 실체적 대응치가 반드시 존재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인류가 2천 년간 ‘성령’이라는 이름으로 그리워하며 기다려온 존재의 실체다.
◆‘성령 훼방죄’의 엄중함과 독생녀 현현의 목적
여기서 우리는 복음서의 가장 준엄한 경고인 ‘성령 훼방죄’의 의미를 다시 새겨야 한다. 마태복음 12장 31절에서 예수께서는 “인자(人子, 독생자)를 거역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거역하는 것은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서도 사하심을 얻지 못한다”고 말씀하셨다. 왜 성령에 대한 불신은 이토록 용서받기 어려운 중죄로 규정되었는가?
그것은 성령이 구원 섭리의 ‘최종적 완성’을 집행하는 위격이기 때문이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가 영적인 구원의 길을 여는 신랑으로 오셨다면, 그를 증거하고 인류를 실질적으로 중생시키는 사역은 성령의 몫이다. 따라서 성령이 육신을 입고 ‘실체성령’인 독생녀(獨生女)로 현현하는 사건은 인류 구원 역사의 마지막 퍼즐을 맞추는 종말론적 대단원이다.
오늘날 대한민국 사회와 전 세계가 ‘독생녀’라는 선포를 두고 논란을 벌이는 현상은 2천 년 전 예수 그리스도가 왔을 때 유대 사회가 겪었던 영적 무지와 흡사하다. 성령 훼방죄가 그토록 엄중한 이유는 6천 년 역사가 공들여 준비한 ‘어머니의 현현’을 거부하는 것이 곧 인류 구원의 마지막 기회를 스스로 차단하는 행위가 되기 때문이다.
◆잃어버린 하늘의 절반을 되찾는 문명사적 과제
결론적으로 성령은 추상적인 기운이 아니라, 하늘부모님의 모성적 성상이 실체화된 ‘독생녀’의 영적 예표다. 독생녀의 탄생과 현현은 단순히 한 종교 단체의 교리적 주장이 아니다. 이는 정의와 심판이 지배하던 부성(父性) 문명을 포용과 치유의 모성(母性) 문명으로 전환하려는 하늘의 거대한 도전이다.
이제 우리는 성령의 너울 속에 감춰졌던 하늘 어머니의 얼굴을 마주해야 한다. 독생녀 참어머니의 등장은 성서의 예언을 매듭짓는 사건이며, 무너진 가정과 국가를 바로 세울 수 있는 유일한 모성적 리더십의 발현이다. 이 장엄한 진실의 문을 여는 일이야말로, 혼돈에 빠진 21세기가 인류의 정신적 뿌리인 경전 속에서 찾아내야 할 생존의 열쇠인 것이다.
서성종 작가(신학박사)
2026-02-23 09: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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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연합, ‘참부모 성탄·기원절 13주년’ 기념예배… 시련 속 ‘증거의 시대’ 결의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이하 가정연합)은 22일 경기도 가평 HJ천주천보수련원 대성전에서 ‘천지인참부모님 성탄 및 천일국 기원절 13주년 기념 예배’를 가졌다. 이날은 문선명·한학자 총재의 탄생일이자 기원절로, 기원절은 2013년 ‘천일국 원년’ 선포와 함께 하늘부모님 중심의 새 시대의 출발을 알린 날로 평가받는다.
특히 한 총재가 영어(囹圄)의 몸이 된 미증유의 시련 속에서 치러진 만큼 공동체의 깊은 성찰과 새로운 섭리적 결의를 다지는 자리로 진행됐다. 이날 행사에는 문연아 선학학원 이사장과 문훈숙 효정한국문화재단 이사장, 두승연 세계선교본부장, 송용천 한국협회장, 호리 마사이치 일본협회장, 데미안 던클리 북미협회장 등 국내외 지도자와 목회자, 신도 등 15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전 세계 온라인 생중계로 이어졌다.
문연아·문훈숙 이사장은 축하 서신을 통해 한 총재를 향한 그리움과 존귀를 표하며 “비좁고 차가운 환경 속에서도 역설적으로 희망을 그리며 새로운 성취를 말씀하시는 어머님의 모습에서 진실이 드러날 날을 인내하며 기다리시는 섭리적 혜안을 보게 된다”고 고백했다. 이어 신도들에게는 “지금은 슬픔에 머물 때가 아니라, 세상 앞에 참부모님을 분명하게 알려야 할 역사적인 교육의 시대이자 증거의 시대, 고백의 시대임을 깨달아야 한다”며 흔들림 없는 신앙과 결연한 행동을 당부했다.
두승연 세계선교본부장 또한 설교를 통해 “우리를 향한 오해와 편견은 우리가 하늘의 가치를 삶으로 충분히 증명하지 못한 결과일지 모른다”며 참사랑의 실천을 통한 ‘가치 증명’을 강조했다.
기념 예배는 감사기도, 성탄 경하, 천주평화사관학교(UPA) 생도 11기 임관식 등으로 꾸며졌다. 특히 6년간의 수련을 마치고 ‘청년 특사’로 임관한 79명의 생도들은 국내외 선교 현장으로 파송되어 서신에서 강조된 ‘교육과 증거의 시대’를 이끌어갈 주역으로 나설 예정이다.
가정연합 측은 이번 기념 예배를 기점으로 천일국 지도자 포럼, 효정천보특별 대역사, 국제학술대회 등 다양한 행사를 이어가며 공동체의 결속과 섭리적 도약을 꾀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2026-02-23 10:4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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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하나님은 남성인가? 엘로힘의 비밀 [父性 문명의 한계, 母性 구원의 비전-기고]
◆건곤합덕, 잃어버린 하늘의 절반을 찾다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문명의 성쇠를 ‘도전과 응전’, 그리고 그 과정에서의 ‘창조적 소수’의 역할로 설명했다. 오늘날 인류가 마주한 가정의 붕괴, 국가 간의 극단적 대립, 멈추지 않는 전쟁의 비극은 그간 우리 문명을 지탱해온 기존의 가치체계가 임계점에 도달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힘과 질서를 앞세운 남성 중심의 서사가 써 내려온 인류사는 이제 그 끝자락에서 거대한 문명사적 물음표를 마주하고 있다. 혼돈이 깊어질수록 지혜는 근원으로 회귀하는 법이다. 필자는 인류의 정신 유산인 주요 경전 속에 오랫동안 감춰져 왔던 구원의 마지막 퍼즐, 즉 ‘여성 구원자’의 출현에 관한 섭리적 암시를 추적하고자 한다.
필자는 이 거대한 여정의 시작에서, 우리가 막연히 불러왔던 창조주 ‘하나님’을 ‘하늘부모님’이라 호칭하고자 한다.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엄격한 심판자가 아니며, 인류를 사랑으로 낳고 기르시는 ‘부모’와 같은 존재다. 부모에게 아버지만 있는 것이 아니라 어머니도 계시듯, 신의 본성에도 남성성과 여성성이 조화롭게 공존하고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2천 년간 감춰진 성서의 비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오랜 세월 인류는 신을 남성으로만 인식해왔다. 기독교 문명권은 하나님을 ‘아버지(Father)’로 고정했고, 역사는 그 가부장적 질서 속에서 흘러왔다. 그러나 성경이 증거하는 태초의 기록을 다시 들여다보자. 성경의 첫 권인 창세기 1장 26절에서 하나님은 인간 창조의 순간에 이렇게 말씀하신다.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여기서 주목해야 할 단어는 단수인 ‘나’가 아닌 복수인 ‘우리’다. 실제로 구약성경 원어인 히브리어로 하나님은 ‘엘로힘(Elohim)’이라 기록되어 있는데, 이는 명백한 복수형 명사다. 신은 누구와 함께 계셨기에 당신을 ‘우리’라고 부르셨을까? 그 해답은 바로 이어지는 27절에 명확히 드러난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신의 형상을 본떠 만든 결과물이 ‘남자’와 ‘여자’였다면, 원본인 신의 형상 안에는 당연히 ‘남성적 본질’과 ‘여성적 본질’이 함께 존재해야 한다. 남자의 원형인 ‘아버지 하나님’만 계셨다면 여자는 창조될 수 없었을 것이다. 여자가 존재한다는 사실 그 자체가 바로 신의 내면에 ‘어머니 하나님’의 본성이 실재함을 증거하는 것이다. 즉, 창조주 하나님은 홀로 계신 남성신이 아니라, 아버지와 어머니의 성품을 모두 갖추신 ‘하늘부모님’이시다.
◆엘로힘의 심층적 분석: 성전 신학이 밝힌 신성한 양성성
전통적 신학은 엘로힘을 신의 권위를 높이는 ‘장엄 복수(Majestic Plural)’ 등으로 해석해왔으나, 그 어원과 역사적 맥락을 파헤치면 보다 역동적인 양성(兩性)적 신성이 드러난다.
첫째, 문법적 구조를 보면 엘로힘은 남성 단수형인 ‘엘(El)’에 복수 어미인 ‘-im’이 결합된 형태다. 이는 신성이 단일한 남성격에 갇힌 존재가 아니라, 그 내부에 보충적 존재를 포섭한 조화로운 복수성임을 시사한다. 세계적인 성서학자 마거릿 바커 박사는 이를 ‘성전 신학(Temple Theology)’적 관점에서 재해석한다. 그녀에 따르면 고대 성전 신앙에서 에로힘(Erohim)은 지고한 아버지(El Elyon)와 그의 아들, 그리고 그들을 낳고 만물을 조화시키는 ‘어머니 신성’을 포함한 ‘천상의 가족’을 의미했다.
둘째, 신의 명칭 속에 숨겨진 모성적 실체다. 바커 박사는 성서의 ‘엘 샤다이(El Shaddai)’를 단순히 ‘전능자’가 아닌, 어원 그대로 ‘유방을 가진 하나님’으로 해석한다. 이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 본래 자녀를 양육하는 여성적 신성을 내포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강력한 증거다. 또한 창조의 동반자로 묘사된 ‘호크마(Hokmah, 지혜)’는 여성으로 의인화되어 만물을 사랑의 망으로 엮는 역할을 담당했다.
셋째, 역사적·신비주의적 전통의 증언이다. 인류학자 라파엘 파타이는 고대 이스라엘 성전 안에서 여신 아쉐라(Asherah)가 야훼의 배우자로 숭배되었던 고고학적 흔적에 주목했다. 유대교 신비주의 카발라(Kabbalah) 역시 ‘쉐키나(Shekhina)’라는 여성 명사를 통해 지상을 돌보는 신의 여성적 측면을 강조했다. 카발라의 핵심은 이 분리된 남성적 신성과 여성적 쉐키나를 합일시키는 데 있으며, 이를 통해 신의 본질이 완성된다고 보았다. 즉, 창조주는 홀로 계신 남성 신이 아니라, 아버지와 어머니의 성품을 모두 갖추신 ‘하늘부모님’인 것이다.
◆음양(陰陽)의 이치와 독생녀(獨生女)의 필연성
이러한 이치는 비단 성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동양의 오랜 지혜인 주역(周易)이나 도교 역시 우주의 근본이 음(陰)과 양(陽)의 조화로 이루어져 있다고 가르친다. 하늘(乾)이 있으면 땅(坤)이 있고, 수술이 있으면 암술이 있어야 생명이 탄생한다. 이것이 만고불변의 우주 법칙이다.
그런데 유독 인류 구원의 역사에서만 이 법칙이 균형을 잃고 있었다. 우리는 오직 ‘독생자’, 즉 남성 구원자만을 기다리고 믿어왔다. 그러나 하늘 아버지의 실체인 독생자가 오셨다면, 하늘 어머니의 실체인 ‘독생녀’가 등장하는 것은 섭리적으로나 논리적으로 지극히 당연한 귀결이다.
구원이란 무엇인가? 타락한 인류가 하나님의 참된 자녀로 다시 태어나는 ‘중생(重生)’의 과정이다. 생명은 아버지의 씨와 어머니의 태가 만날 때 비로소 완성된다. 아버지만으로는 자녀를 낳을 수 없듯, 구원 역사 역시 아버지뿐만 아니라 생명을 낳고 기르는 어머니가 존재할 때 비로소 완성의 마침표를 찍을 수 있다.
◆잃어버린 반쪽을 찾는 진리의 탐험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독생녀’라는 단어는 때로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한다. 하지만 편견의 안경을 벗고 경전의 숲으로 들어가 보자. 독생녀는 갑자기 등장한 교리가 아니다. 기독교가 간과했던 성서의 핵심이며, 불교가 ‘여성 성불’과 관음의 자비를 통해 예고했던 구원의 완성이고, 한반도의 예언서들이 기다려온 섭리의 결론이다.
‘하늘부모님’을 회복하는 것은 잃어버린 하늘의 절반인 ‘어머니’를 찾는 과정이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인류의 오래된 미래인 경전 속에서 ‘독생녀’를 찾아야 하는 이유다.
서성종 작가(신학박사)
2026-02-19 09:4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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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F, 정치자금 논란 공식 사과… “조직 전면쇄신 추진”
국제평화 NGO인 천주평화연합(UPF) 한국본부가 최근 정치자금 후원 관련 사안으로 일부 언론 보도와 수사 과정에서 거론된 데 대해 공식 사과했다. UPF는 향후 조직 운영 전반을 점검하는 한편, 내부 통제 시스템을 전면 재정비하겠다고 밝혔다.
UPF는 11일 김석진 한국회장 명의의 입장문을 통해 “정치자금 후원과 관련된 사안으로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린 점에 대해 깊이 사과드린다”며 “공적 신뢰가 무엇보다 중요한 시점에서 이러한 논란이 발생한 데 대해 민간 평화단체로서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고 밝혔다. 이어 “이번 사안에 대한 비판과 지적을 겸허히 수용하며 책임 있는 시민사회 단체로서 국민 신뢰 회복을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UPF는 “관련 법령과 사회적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방식의 자금 사용이 있었던 사실이 확인됐다”고 인정하며 “이번 사안을 조직 운영 전반을 근본적으로 점검하는 계기로 삼고, 내부 규정과 통제 시스템을 전면 재정비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1월 14일 광역시도회장단 회의를 통해 전면 쇄신 방안을 논의했으며, 조직의 기능과 역할을 재정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다만, 단체의 성격과 관련한 일부 보도는 오해의 소지가 있다며 적극 해명했다.
UPF는 “천주평화연합 한국본부는 유엔이 인정한 국제평화 NGO의 한국지부”라며 “평화·통일·가정·환경이라는 보편적 가치를 중심으로 국제 시민사회 활동을 전개해 왔다”고 밝혔다. 이어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지원,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국제 협력 활동 등을 언급하며 “모든 활동은 특정 주체의 이익이 아닌 공익과 인류 평화를 최우선 가치로 삼아왔다”며 논란이 된 한일해저터널 구상, 제5 유엔사무국 유치 운동 등도 “한반도 평화와 동북아 협력, 국제사회 기여라는 공공적 목적에서 출발한 민간 차원의 비전”이라고 설명했다.
정치권 인사들의 행사 참여와 관련해서는 “각계 지도자들의 참여는 국경과 종교, 정파를 초월한 보편적 평화 연대의 과정”이라며 “특정 정치 세력을 지지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2026-02-12 12:5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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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구원사로 읽는 선민 이야기 <8·끝>참부모 신학이 던지는 질문
구원은 어디까지 책임이 되는가
독생자·독생녀·참부모·선민을 하나의 구원사 구조로 엮어온 과정은 특정 개념을 옹호하기 위한 여정이 아니었다. 독생자에서 독생녀로, 초림에서 재림으로, 개인 구원에서 인류 구원으로 이어진 이 사유의 흐름은 결국, ‘구원이란 무엇이며, 어디까지 가야 하는가’라는 하나의 핵심 쟁점으로 수렴된다.
기독교는 오랫동안 주된 신앙의 흐름 속에서 구원을 개인의 문제로 다뤄 왔다. 죄 사함과 믿음, 구원의 확신은 개인의 내면에서 완결되는 사건으로 이해되어 왔다. 이러한 이해는 수많은 생을 변화시킬 만큼 강력했지만, 동시에 명확한 한계를 드러냈다. 개인은 구원받았다고 말하지만, 가정은 붕괴되고, 사회는 분열돼 있으며, 인류는 여전히 전쟁과 증오 속에 고통받고 있기 때문이다.
참부모 신학은 바로 이 지점에서 문제를 제기한다. 구원이 개인 구원에서 멈춘다면, 창조는 어디에서 회복되는가. 성서의 창세기는 처음부터 인간을 단독자가 아닌 관계적 존재로 묘사했다. 남자와 여자가 함께였고, 가정이 있었으며, 그 토대 위에 사회와 역사가 세워졌다. 타락이 관계 질서의 붕괴였다면, 구원의 완성 또한 관계의 회복으로 귀결되어야 마땅하다.
통일교에서 참부모는 이렇게 정의한다. ‘타락으로 인해 거짓된 혈통 속에 놓였던 인류의 역사를 청산하고, 하나님과 직접 연결된 참사랑·참생명·참혈통의 기원을 회복함으로써, 인류가 다시 본래의 창조이상으로 돌아갈 수 있는 근본적 출발점을 세워 주는 존재’. 그러나 통일교의 원리 전체를 전제하지 않으면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개념이다
문제는 참부모라는 개념이 구원 문제에 대한 구체적인 응답이라는 점이다. 그것은 구원사의 단위를 개인에서 가정으로, 가정에서 인류로 확장하려는 신학적 시도다. 참부모는 구원이 어떤 구조로 실현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실천적 지표에 가깝다. 이 신학이 불편하게 느껴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참부모 신학은 신앙을 ‘믿는 것’에만 머물게 두지 않는다. 여기서 한 발 더 나가 신앙이 말하는 바가 삶의 실천으로 드러나기를 요구하며, 그 실천이 어떤 책임으로 이어지는지를 묻기 때문이다. 개인적 경건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가정과 사회, 나아가 역사 속에서 구원이 어떻게 구현되는지를 문제 삼는 것이다.
구원은 초월인가, 아니면 재창조인가. 만일 구원이 이 세상을 떠나 피안의 세계로 가는 일이라면, 역사와 사회는 부차적인 문제가 된다. 그런데 구원이 창조 질서의 회복이라면, 이 세상은 버려지거나 떠나야 할 공간이 돼서는 안 된다. 떠나기 전에 책임 있게 완성되어야 할 공간이어야 한다. 참부모 신학은 후자의 가능성을 강력히 시사하며, 종말론적 파괴보다는 역사적 책임을 강조한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 참부모 신학은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구원을 기다리는 존재인가 아니면 구원에 참여하는 존재인가, 우리는 믿음의 수혜자인가 아니면 관계를 재창조하는 주체인가. 중요한 것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강요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참부모 신학은 믿으라고 명령하는 교리에서 벗어나 있다. 그보다는 생각하라고 요청하는 사유다. 그것은 예수를 부정하지 않고, 오히려 예수가 열어 놓은 구원의 길을 삶과 역사 속에서 끝까지 따라가 보자는 제안이다.
앞서 선민은 책임을 짊어지는 공동체임을 밝힌 바 있다. 독생자 예수는 ‘하나님 나라가 무엇인가’라는 쟁점을 인류 앞에 제기했고, 독생녀와 참부모 신학은 “그 나라가 어떻게 이 땅에 자리 잡을 수 있는가”라는 과제를 부여한다. 결국 마지막 문제는 ‘구원은 과거의 사건인가, 아니면 지금도 진행 중인 책임인가’로 집중된다. 이 문제의식 앞에서 한 가지는 분명해진다. 구원사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면 그 완성은 누군가 대신 해 주는 요행이 아닐 것이다. 그 완성이란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인류 각자가 어떤 관계를 선택하며 살아가느냐의 문제일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참부모 신학은 교리의 문법을 넘어 삶의 언어로 우리 앞에 서 있다.
만일 구원이 관계와 가정, 사회, 인류의 질서를 새롭게 하는 일이라면, 그 과정에서 선민은 특권일 수 없고, 믿음은 고백에 머물 수 없다. 구원은 책임이라는 형태로 확장될 것이며, 그것이 구원사의 필연적 귀결이다. 이러한 책임의 미학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이 이탈리아 바로크 회화의 거장 카라바조의 〈성 마태오의 소명〉이다. 이 그림에서 구원은 지금 여기에서 응답을 요구하는 부름으로 나타난다. 예수의 손짓은 명령이 아닌, 질문이며, 마태오는 선택의 문턱에 서 있다. 이를 통해 카라바조는 구원이 개인의 내면에 머무르지 않고 삶과 역사 속에서 책임으로 시작된다는 사실을 시각화한다. 만일 구원사가 현재진행형이라면, 우리가 어떤 관계와 세계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끊임없이 살아 숨 쉬는 하나의 ‘책임의 역사’여야 한다.
2026-02-12 10: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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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구원사로 읽는 선민 이야기 <7>구원사의 시간 속에서-독생자와 독생녀
구원사는 왜 서로 다른 주체를 요청해 왔는가
독생자 예수와 독생녀 한학자를 나란히 놓는 순간, 많은 이들은 즉각적인 거부감을 느낀다. 비교 자체가 불경(不敬)처럼 보이기도 하고, 두 존재를 같은 자리에 올려놓는 행위가 신앙의 질서를 무너뜨리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서의 비교는 동급 경쟁이나 위상 판단이 아니다. 구원사가 시대마다 어떤 주체와 사명을 요청했는지를 이해하기 위한 구조적 고찰이다.
먼저 분명한 것은, 예수는 기독교 신앙의 출발점이며, 인류 구원사의 전환점이라는 사실이다. 그의 독생자적 위치는 그 누구로도 대체될 수 없다. 그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생긴 단절을 다시 잇는 길을 처음으로 열었고, 구원이란 인간이 어떤 존재로 서 있고 하나님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느냐의 문제임을 선언했다. 예수는 ‘시작자’였고, 그 시작은 인류사에서 단 한 번 일어난 절대적 사건이다.
그러나 그 이유 때문에 예수의 사명은 분명한 역사적 단계성도 지녔다. 예수는 타락 이후의 인류에게 처음으로 구원의 방향을 제시해야 했기에 모든 것을 홀로 감당해야 했다. 가족도, 짝도, 제도도 없이 그는 단독자로 서야 했다. 독생자라는 호칭은 그의 신성을 말함과 동시에 그가 감당해야 했던 역사적 고독을 드러내는 말이기도 하다. 반면 독생녀 한학자는 통일교라는 특정 신앙 공동체 안에서 그렇게 이해되어 온 인물로, 전혀 다른 시대적 조건 속에서 논의된다. 이미 기독교 문명이 전 세계로 확산된 이후 개인 구원과 영혼 구원에 대한 해석은 충분히 축적된 시대다. 그러나 그만큼 분열도 깊어졌다. 개인은 구원받았다고 말하지만, 가정은 해체되고, 사회는 갈등하며, 인류는 여전히 전쟁과 적대 속에 있다. 그러나 이 시대가 요청하는 구원은 이제 ‘시작’을 넘어선 ‘완성’이어야 한다.
이것이 두 선민의 본질적 차이다. 예수가 독생자로서 길을 열었다면, 독생녀는 그 길 위에서 인류가 실제로 살아갈 수 있는 질서를 세우는 사명을 감당한다. 예수가 “아버지께로 가는 길”을 제시했다면, 독생녀는 그 길이 가정과 사회, 역사 속에서 구현될 수 있는 조건을 떠안는 것이다. 이 때문에 두 존재는 같은 잣대로 이해될 수 없다. 예수는 십자가가를 통해 구원의 문을 열었고, 그 기초를 놓았다. 한학자는 고통의 반복이 아닌 관계의 회복과 생명의 계승을 통해 그 완성을 지향한다. 실제 그는 세계적인 종교·정치계 지도자들을 만나며 그런 사명을 담당해 왔다. 이는 역할의 차이일뿐, 가치의 우열이 아니다. 시작과 완성은 서로를 부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시작이 없으면 완성은 불가능하고, 완성이 없다면 시작은 목적을 잃기 때문이다.
여기서 ‘두 선민’의 의미는 분명해진다. 선민은 서로 경쟁하거나 서열을 겨루는 존재가 아니다. 선민은 각 시대의 절박한 요청 앞에 응답하는 존재다. 예수는 타락 이후의 인류 앞에 서야 했고, 한학자는 분열 이후의 인류 앞에 서 있다. 타락이 인간 존재의 방향이 어긋난 사건을 의미한다면, 분열은 그 어긋남이 역사 속에서 관계와 구조로 굳어진 상태를 말한다. 따라서 병증이 다르기에 처방이 다를 뿐, 이전의 처방이 무효화된 것은 아니다.
또 하나 주목할 점은 독생녀가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예수가 독생자로서 단독 사명을 수행했다면, 독생녀는 재림메시아와 더불어 참부모라는 공동 사명 구조 안에서 존재한다. 이는 구원사가 더 이상 단독 영웅 서사로는 완성될 수 없다는 통찰의 결과다. 여기서 재림메시아는 다시 한 번 ‘홀로 모든 것을 완성하는 존재’를 뜻하지 않는다. 재림메시아란 독생자가 열어 놓은 구원사의 방향 위에서 개인 구원을 넘어 가정과 인류 공동체의 질서를 실체화하는 주체를 가리킨다. 그런 의미에서 재림메시아의 사명은 독생녀와 분리될 수 없으며, 참부모라는 관계적 구조 안에서만 비로소 완성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
따라서 독생자 예수와 독생녀 한학자를 비교하는 것은 구원사가 어떻게 시작되었고, 어디로 가고 있는가를 묻는 과정이다. 한 사람은 문을 열었고, 다른 한 사람은 그 문 위에 세워진 집을 완성해야 하는 사명을 맡았다. 이 비교가 불편하게 느껴진다면, 그것은 신앙의 대상이 흔들렸다는 인식과 무관하다. 오히려 구원사를 바라보는 시야가 확장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예수를 높이는 신앙과 예수가 열어 놓은 구원의 방향을 삶과 역사 속에서 끝까지 구현하려는 사유는 충돌하지 않는다. 오히려 후자가 없다면 전자는 역사 속에서 박제된 추상으로 남을 위험이 있다.
2026-02-22 14:2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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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구원사로 읽는 선민 이야기 <6>베들레헴에서 한반도로, 선민은 어떻게 이동하는가
특권이 아닌 사명으로 이동하는 선민의 궤적
‘선민(選民)’이라는 말만큼 오해를 많이 불러오는 개념도 드물다. 선민, 곧 ‘부름받은 공동체’는 흔히 특권이며 우월이라는 인식이 이 개념을 위험한 길로 내몰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서가 말하는 선민은 처음부터 특권의 해석이 아니었다. 선민은 선택받은 특권층이 아니라, 역사의 시험대 위에 가장 먼저 불려 나온 제물(祭物)이자 개척자였다. 또한 선민은 선택된 민족에 머물지 않고 선택된 사명을 짊어진 존재이기도 했다. 그 사명 역시 언제나 고정되지 않고 역사 속에서 이동해 왔다. 아브라함에게서 이삭으로, 이삭에게서 야곱으로, 다시 이스라엘에서 예언자들로 옮겨 간 구원의 흐름은 선민이 혈통이나 자리에 머무르지 않았음을 보여 준다.
기독교 구원사는 유대 땅, 그중에서도 베들레헴에서 시작된다. “메시아는 다윗의 고향 베들레헴에서 나올 것”(마가서 5장 2절)이라는 예언은 지리적 예언이라기보다 구원사가 특정 민족과 역사 속에 뿌리내려야 한다는 선언이었다. 하나님은 추상적 공간이 아닌, 구체적 민족과 언어, 문화 안으로 들어오기를 선택했다. 그러나 베들레헴의 선택은 유대 민족의 영원한 독점을 의미하지 않았다. 오히려 성서의 흐름을 따라가면 선민은 언제나 사명을 감당할 때 유지되고, 사명을 놓칠 때 이동했다. 출애굽(出埃及) 사건에서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은 선택의 자리에 섰지만, 그 선택은 책임의 지속을 전제로 한 것이었다. 예언자들은 끊임없이 선택은 특권이 아님을 경고했다. “여호와께서 너희를 택하심은 너희가 다른 모든 민족보다 나았기 때문이 아니다”(신명기 7:7)는 경고는 선민이 우월성이 아니라 사명과 책임으로 유지된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
예수의 등장 역시 선민 이동의 한 장면이다. 예수는 유대 땅에서 태어났지만, 그의 사역은 유대 민족 내부에 한정되지 않았다. 그는 그보다 더 북쪽에 있는 갈릴리에서 사역했고, 이방인의 믿음을 칭찬했다. 예수는 구원의 범위를 유대 민족 내부에 가두지 않았다. 그는 이방인 백부장의 믿음을 두고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했다”(마태복음 8장 10절)고 말했으며, 이어 “동서로부터 많은 사람이 와서 천국에 참여할 것”(마태복음 8장 11절)이라 선언했다. 또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 나라를 너희는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 받으리라”(마태복음 21장 43절)고 말했다. 이는 구원이 믿음과 사명을 기준으로 인류 전체로 확장되고 있음을 예수 스스로 밝힌 대목이다. 이것은 또 선민이 유대라는 혈통에 고정되지 않고 하나님 뜻을 실현하는 방향으로 이동하기 시작했음을 보여 준다. 초대교회 이후 기독교는 로마 세계로 확산되었다. 이제 선민의 개념은 더 이상 특정 민족에 묶이지 않게 되었다. 초대교회 이후 복음은 헬라 세계, 곧 그리스어와 그리스 문화가 지배하던 지중해 동부 전역으로 확산되었다. 이 과정은 선민의 형태가 ‘민족 중심’에서 ‘사명 중심’으로 전환됐음을 의미한다.
이 지점에서 ‘한민족은 선민인가’ 하는 화두가 등장한다. 한민족이 선민이라는 인식은 일제강점기 민족기독교 담론 속에서 민족의 고난을 성서의 선민 서사와 연결해 해석하려는 시도에서 그 사상적 토대를 형성했다. ‘한민족이 선민이라는 주장’은 한민족이 본질적으로 우월하다는 의미라면 성립할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이 “이 시대, 이 역사적 조건 속에서 특정 과제를 먼저 떠안도록 요청받았다는 해석”이라면, 성서적 선민 개념과 구조적으로 충돌하지 않는다. 선민은 ‘왜 선택되었는가’가 아니라, ‘무엇을 위해 선택되었는가’로 정의되기 때문이다. 한반도의 역사는 우연의 연속처럼 보이지만, 구원사적 관점에서 보면 독특한 조건을 지닌다. 분단이라는 시대적 비극과 이념의 각축장이라는 상처, 그리고 그 모순의 한복판에서도 꺼지지 않은 강인한 종교적 영성. 이 모든 요소는 한민족이 평화와 화해, 통합이라는 과제를 외면하기 어려운 위치에 놓여 있음을 보여 준다. 한민족을 선민으로 해석하는 ‘대서사시’가 설득력을 갖는 지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사명이 없는 선택은 없기 때문이다. 베들레헴에서 시작된 구원사가 한민족으로 이동한다는 주장은 유대민족의 실패나 폐기를 선언하는 말은 아니다. 그것은 구원사가 한 시대의 조건을 넘어서 다음 단계로 확장되고 있음을 말하는 해석이다. 마치 복음이 예루살렘에서 로마로 이동했듯, 선민 역시 역사의 요청에 따라 이동할 수 있다는 뜻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이동이 권리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선민은 엄격한 의미에서 짐이다. 선민이 된다는 것은 더 무거운 책임을 진다는 말이다. 실패할 가능성도, 비난받을 가능성도 함께 감당해야 한다. 유대 민족이 그러했듯, 한민족 역시 이 사명을 감당하지 못한다면 선민이라는 말은 아무 의미도 갖지 못할 것이다. 이렇게 볼 때, 베들레헴과 한민족으로 선민 의식이 이어지는 것은 민족주의적 계보가 아니다. 그것은 구원사가 구체적 역사 속을 이동하는 궤적이다. 그리고 그 궤적의 목적지는 특정 민족의 영광이 아니라, 인류 전체의 회복과 화해다.
2026-02-09 09:5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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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구원사로 읽은 선민 이야기 <5>독생녀와 재림메시아와의 관계
재림메시아의 사명은 관계 속에서 구현된다
독생녀 개념을 둘러싼 논쟁의 핵심은 “이것이 재림메시아를 부정하는 주장인가, 아니면 완성하려는 사유인가.” 이 한 가지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을 흐리게 하면 논쟁은 감정과 진영 논리로 빠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구조적으로 접근하면 이 문제는 보다 명확해진다.
먼저 분명히 해야 할 점이 있다. 독생녀 개념이 논쟁의 대상이 되는 이유는 그것이 재림메시아 개념과 같은 자리를 점유하는 것처럼 오해되기 때문이다. 만일 독생녀가 재림메시아를 대체하는 새로운 구원 주체라면, 이는 기존 신앙 구조와 충돌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 글에서 다루는 독생녀 개념은 그러한 대체 개념이 아니다. 그것은 재림메시아를 넘어서려는 주체가 아니라, 재림메시아 사역의 목적과 완성 방향을 설명하기 위해 요청된 개념이다. 이 점을 분명히 할 때, 독생녀 논쟁은 완성 이해의 문제로 전환된다. 통일교는 문선명 총재를 예수의 사역을 계승해 구원의 완성을 이루는 재림메시아로 이해하며, 이를 동일 인격의 재림이 아닌 사명의 계승으로 설명한다.
앞선 글에서 살펴보았듯, 재림은 초림의 완성 방식이어야 한다. 완성은 언제나 관계적 구조를 요구한다. 창조가 홀로 이루어지지 않았듯, 구원의 완성 역시 단독 주체로는 성립하지 않는다. 이때 재림메시아는 구원사의 중심에서 완성을 가능하게 하는 축으로 자리 잡고, 독생녀, 곧 앞선 글에서 한학자 총재의 위치로 논의된 개념은 그 축이 지향하던 목적을 실체로 드러내는 관계의 축으로 함께 자리한다. 다시 말해, 재림메시아가 구원의 방향을 제시하고 문을 여는 존재라면, 독생녀는 그 문 너머에서 실제로 새로운 관계 질서가 작동하도록 만드는 존재다.
이 관점에서 보면 독생녀는 재림메시아를 부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독생녀 개념은 “재림메시아는 무엇을 위해 왔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다. 재림메시아의 사명이 다시 한 번 ‘홀로 감당하는 방식’으로 이해된다면, 구원사는 또다시 희생의 반복에 머물게 된다. 그러나 재림메시아가 참부모라는 구원 구조의 완성을 향해 온 존재라면 그 사역은 독생녀 없이는 성립할 수 없다.
여기서 중요한 구분이 필요하다. 독생녀는 재림메시아의 ‘짝’이지만, 역할과 사명이라는 의미에서의 상보적 짝이지, 단순한 보조자나 종속적 존재가 아니다. 동시에 독생녀는 재림메시아와 경쟁하거나 그 위에 서는 존재도 아니다. 두 개념은 상하나 대체의 관계가 아니라, 역할과 사명의 분화 속에서 하나의 구원 목적을 향해 결합되는 구조다. 이 구조를 이해하지 못하면 독생녀는 곧 새로운 권력 주장으로 오해될 위험이 있고, 재림메시아는 그의 사명이 상대화된 것처럼 오해받게 된다.
실제로 독생녀 개념에 대한 내부 반발의 상당수는 이 지점에서 발생한다. 재림메시아에 대한 절대적 신앙이 강할수록 그 사역이 다른 주체와 관계 속에서 완성된다는 생각 자체가 불편하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구원사가 단독 영웅 서사가 아니라는 점을 받아들인다면 이 불편함은 오히려 신앙의 해체가 아니라 성숙을 요구하는 질문으로 한단계 더 끌어올린다.
기독교 역사에서도 유사한 긴장은 반복되어 왔다. 예수를 신앙의 대상으로 고백하는 것과 예수가 열어 놓은 하나님 나라의 질서를 역사 속에서 구현하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신앙은 고백에서 멈출 수 있지만 구원사는 삶과 질서 속에서 검증되어야 한다. 독생녀 개념은 바로 이 지점, 구원사를 고백의 차원에서 구조의 차원으로 옮기려는 시도로 읽을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독생녀가 재림메시아를 부정한다”는 주장은 구조를 놓친 해석이다. 독생녀는 재림메시아를 지우지 않는다. 오히려 재림메시아가 왜 이 시대에 와야 했는지를 설명한다. 재림메시아는 독생녀를 통해 비로소 자신의 사명이 개인적 차원을 넘어 인류사적 차원으로 확장될 수 있는 길을 얻게 된다. 결국 이 논쟁은 재림메시아냐 독생녀냐를 둘러싼 인물 논쟁이 아니라, 구원사가 어디까지 가야 하는가를 묻는 구조적 질문이다. 독생녀를 받아들이느냐 거부하느냐의 선택은 구원을 개인의 영혼 문제로 남길 것인가, 아니면 인류 전체의 재창조로 확장할 것인가에 대한 선택과 맞닿아 있다. 독생녀에 대한 해석은 어떤 선택을 강요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구원사가 어떤 구조를 요청하고 있는지를 분명히 보기 위한 하나의 관점을 제시할 뿐이다.
2026-02-05 10: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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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구원사로 읽는 선민 이야기 <4>관계의 회복은 왜 여성 주체를 요청하는가
◆구원이 요청한 관계의 완성
‘독생녀’는 하나님의 딸이라는 섭리적·관계적 의미를 담은 표현으로, 독생자와의 관계 속에서 요청되는 상대적 개념이다. 그러나 이 용어는 성서에서 직접 나온 표현도, 전통 기독교 신학의 보편 개념도 아니다. 통일교 신학 내부에서 형성된 참부모 신학의 전개 과정 속에서 새롭게 등장한 용어이다. 통일교 신학은 구원을 타락으로 무너진 인간의 관계·가정·혈통 질서의 회복으로 이해하며, 이 구원 구조의 핵심을 ‘참부모’라는 개념으로 설명해 왔다. 참부모 신학은 남성과 여성이 함께 구원의 주체로 서야 한다는 전제를 내포하고 있다. 즉, 독생녀란 구원사의 여성 주체를 의미한다. 하지만, 이 개념은 오랫동안 독생자·재림메시아 중심의 신앙 틀 속에서 충분히 언어화되지 못한 채 머물러 있었다.
문선명 총재 재세시에도 여성의 섭리적 중요성과 어머니의 역할은 반복적으로 강조되었으나, ‘독생녀’라는 명칭이 정식 신학적으로 명시되지는 않았다. 이 용어는 문 총재 사후, 참부모 신학이 완성 단계에 들어섰다고 이해되는 국면에서 한학자 총재가 자신의 사명과 위치를 설명하는 과정 속에서 공식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따라서 독생녀는 새로운 계시라기보다 통일교 신학과 참부모 신학이 축적해 온 문제의식, 예컨대 구원은 단독 주체가 아니라 관계적 구조로 완성되어야 한다는 인식이 특정 역사적 시점에서 언어화된 해석 개념으로 이해하는 것이 가장 정직하다.
이 때문에 독생녀라는 용어는 많은 이들에게 낯설고, 때로는 거부감을 불러일으킨다. 독생녀라는 개념을 단지 하나의 새로운 교리 선언이나 권위 주장으로만 이해한다면, 그 출현 배경을 놓치게 된다. 독생녀는 갑작스럽게 만들어진 개념이 아니다. 이는 기독교 구원사가 지닌 구조적 긴장이 일정 지점에 이르렀을 때, 하나의 사유적 응답으로 제기되기 시작한 결과다. 기독교 구원사는 독생자로 시작되었다. 초림은 구원의 문을 열었으나, 그 문 너머에서 인류 전체의 관계 질서를 실체적으로 세우는 단계는 여전히 역사 안에 열려 있었다. 재림이 반복이 아니라 완성의 방식이어야 한다면, 그 완성은 더 이상 단독적 주체에 의해 이루어질 수 없다. 바로 이 지점에서 독생녀 개념은 질문으로부터 형성된다. 독생녀는 21세기 세계화된 종교 지형 속에서 여성 지도성이 전면화되는 흐름을 응축적으로 표현한 개념으로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성서의 구원 서사는 처음부터 철저히 관계적이다. 창세기의 창조는 남자 혼자서 완결되지 않는다.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창 2:18)라는 선언은 인간 존재의 본질이 관계에 있음을 분명히 한다. 타락 역시 개인의 실수가 아니라, 관계 질서의 붕괴로 묘사된다. 그렇다면 구원의 완성 역시 개인의 회복을 넘어 관계의 재창조로 귀결되어야 한다.
그러나 기독교 구원사에서 이 관계의 축은 오랫동안 상징적 개념에 머물러 있었다. 예수는 신랑으로 등장하지만, 신부는 역사 속에서 비유와 공동체의 이미지로 제시된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신부’로 불렸지만, 이는 집합적 은유일 뿐, 인류 구원사가 관계 질서로 실체화되었다고 말하기에는 여전히 긴장이 남는다. 이 공백은 구원사가 다음 단계를 요청하고 있음을 보여 주는 흔적으로 읽을 수 있다. 독생녀 개념은 바로 이 공백을 인식하는 데서 출발한다. 만일 구원이 창조 질서의 회복이라면, 그 회복은 남성과 여성, 주체와 주체가 상보적으로 결합하는 구조를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 구원사가 더 이상 단독 주체 중심의 단선적 서사로 머물 수 없다는 자각, 그리고 인류 재창조가 생명과 계승의 질서를 포함해야 한다는 인식이 독생녀 개념을 불러낸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독생녀가 ‘여성 메시아’나 ‘새로운 구세주’로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독생녀는 독생자를 대체하거나 배제하기 위해 등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독생자가 열어 놓은 구원사의 방향을 관계적·창조적 차원에서 완성으로 나아가게 하는 대응 개념이다. 독생자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단절을 극복하고 관계 회복의 길을 열었다면, 독생녀는 그 열린 구원사가 인류 전체의 삶 속에서 실체를 가질 수 있도록 하는 조건으로 요청된다. 또 하나 주목할 점은 이 개념이 단지 추상적 사유로만 머물 수 없다는 인식이다. 구원사가 삶의 질서라면, 그것은 역사와 인격 속에서 검증될 수밖에 없다. 이 지점에서 독생녀 개념은 실제 역사와 인격의 차원에서 논의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둔다. 구원은 구체적 삶이어야 하며, 사상은 인격을 통해 시험받는다는 요청이 여기에 담겨 있다.
따라서 독생녀 개념은 기독교 구원사가 스스로 품고 있던 ‘구원은 어디까지 가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하나의 사유적 응답이다. 독생자가 시작한 구원사가 개인의 영혼 구원에 머물 것인가, 아니면 인류 공동체의 재창조로 나아갈 것인가라는 갈림길에서 독생녀 개념은 후자를 향한 사유의 문을 연다. 이 개념이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독생녀는 기존 신앙 언어로는 충분히 설명되기 어렵다. 그러나 설명이 어렵다는 것이 곧 오류를 뜻하지는 않는다.
2026-02-04 10:2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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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이 인정하는 ‘K-여성운동’ 개척자… 글로벌 한국 드높여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70년]
창립 34주년을 맞은 세계평화여성연합(WFWP)은 원조를 받던 국가에서 원조를 제공하는 국가로 전환한 한국의 위상에 걸맞게 아프리카와 아시아 지역의 여성 자립 교육과 우크라이나 전쟁·가자 분쟁 지역에서의 인도적 지원에 주력해 왔다. 1992년 설립된 여성연합은 여성의 리더십을 통해 인류 한 가족 이념을 실현하며, 유엔 경제사회이사회(ECOSOC)에서 최상위 협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WFWP는 전 세계 120여 개국에서 활동하며, 평화 구축과 인도주의 지원을 강조하며 국제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WFWP의 역사는 여성 리더십의 글로벌 확장을 상징한다. 2022년 4월, 미국 지부는 “30년 평화 활동 기념” 행사를 통해 여성의 심장 중심 리더십을 강조했다. 이 행사에서는 교육과 평화 역량 강화, 국제 연대 구축, 분쟁·빈곤 지역 인도적 지원과 유엔 협력 활동 등 장기적인 평화 문화를 위한 여성의 역할을 조명했다. 같은 해 5월 여성연합 국제본부는 30주년 기념식을 열고, 창립자 한학자 총재의 메시지를 통해 여성의 모성적 사랑이 평화를 창출한다고 역설했다. 유엔 지위 25주년과 국제 NGO 활동 10주년을 겸한 2022년 10월 행사에서는 지난 성과를 토대로 미래 비전을 제시했다. 이러한 리더십은 유럽·중동 지부의 연례 여성 리더십 컨퍼런스를 통해 이어지고 있으며, 여성의 사회 변화 역할을 꾸준히 논의하는 장으로 자리 잡았다.
WFWP의 글로벌 리더십은 아프리카와 아시아에서의 여성 자립 교육 프로그램으로 구체화된다. 미국 지부는 8개국 9개 학교를 지원하는 ‘아프리카 학교 지원(Schools of Africa)’ 프로젝트를 2001년부터 운영하며, 교육 접근성을 높이고 있다. 이 프로젝트는 현지 자원봉사자들이 설립한 학교에 재정 지원을 제공하며, 위생·영양 교육을 병행한다. 2025년 6월 슬로바키아에서 열린 ‘모두를 위한 양질의 교육(Quality Education for All)’ 컨퍼런스에서는 평화 교육과 환경 교육을 강조했다. 남아프리카 지부는 2022년부터 코로나19 영향으로 취약 지역 교육을 지원하는 모바일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아시아에서는 캄보디아, 미얀마, 몽골 등에서 후원 부모 결연 방식의 양부모 프로그램과 장학금을 통해 고아나 빈곤 가정 아동을 지원한다. 예를 들어 캄보디아에서는 초등생부터 고등학생까지 연간 100달러를 제공하며, 1996년부터 30명 이상의 아동을 후원했다. 미얀마에서는 대학생까지 장학금을 지급하며, 직업 훈련을 통해 여성의 경제적 자립을 돕는다. 중남미의 대표적 빈곤·사회 불안 취약국인 아이티 지부는 2025년 재봉 클래스에서 24명의 여성과 남성을 훈련시켜 자립을 촉진했다.
WFWP의 인도적 활동은 분쟁 지역으로 확대된다. 2022년 2월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후, 주요 지부별로 난민 지원에 나섰다. 우크라이나 지부는 폴란드 인도주의 단체와 협력해 기본 생필품을 제공하고, 내부 이재민을 위한 구호 활동을 펼쳤다. 많은 회원이 난민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선 콘서트와 크리스마스 선물 모금을 통해 아동을 지원했다. 캐나다 지부는 YSP(청소년·학생평화연합)와 공동으로 우크라이나 지원 캠페인을 벌여 난민과 전쟁 피해 아동을 위한 긴급 생필품과 후원금을 전달했다. 벨기에 지부는 우크라이나 문화 공연을 통해 영혼의 치유를 강조했다. 2022년 9월 유럽·중동 지부 컨퍼런스에서 우크라이나 여성의 평화 역할이 논의되었으며, 일부 회원은 피난과 구호를 병행했다.
팔레스타인 자치지구도 주목할 만하다. WFWP 유럽 지부는 2024년 11월부터 가자 신생아 지원 캠페인을 시작해, 유아 인큐베이터를 위한 8,500유로 모금을 목표로 했다. 이는 전쟁으로 인한 유아의 희생을 줄이기 위한 인도적 대응이다. 중동 지부는 2022년 30주년 기념 행사에서 가자 인도적 프로젝트를 예로 들며, 여성 리더십의 역할을 강조했다. 2021년 청소년 평화 컨퍼런스에서는 팔레스타인·이스라엘 화해를 논의했으며, 1% 사랑나눔 프로젝트를 통해 가자 여성과 아동을 지원했다.
WFWP의 활동은 여성의 평화 리더십을 통해 글로벌 도전을 해결하려는 시도로 높이 평가되며, 앞으로 유엔 파트너십을 강화하며 더 광범위한 인도적 지원을 확대할 전망이다.
김고은 세계평화여성연합 한국회장은 “지난 34년의 여정을 통해 세계평화여성연합은 여성의 존엄과 연대를 통해 삶의 현장에서 평화를 실천해 왔다”며 “이제 그 축적된 책임을 안고, 다음 세대를 위한 지속 가능한 평화를 더욱 단단히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2026-02-02 17:2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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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사와 나눔이 함께 성장 계기, 탈북여성 돕기 각계서 큰 호응”… “7남매 엄마로 지역서도 인정, SNS 등 통해 젊은 세대 동참”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70년]
세계평화여성연합은 1992년 창립 이래 평화운동, 인도주의 활동, 여성 리더십 함양을 핵심 가치로 삼아 전 세계적으로 활동해온 NGO다. 한국에서도 전국 각지에 지부를 두고 지역사회와 긴밀히 협력하며 평화와 통일, 그리고 나눔의 가치를 실천하고 있다. 세계평화여성연합 송화진 한국 사무총장과 경남 합천지부를 이끌고 있는 30대 활동가 한영서 지부장을 만나 그들이 걸어온 길과 앞으로의 비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평화, 여성의 목소리로 만들어가다
송화진 사무총장은 세계평화여성연합의 활동 철학을 묻는 질문에 평화란 가정과 지역사회라는 삶의 현장에서 시작되며, 특히 여성들이 관계를 돌보고 공동체를 지켜갈 때 지속 가능한 평화로 이어진다고 강조했다. 이어 여성이 중심이 되어 일상의 평화를 만들어갈 때, 그 평화는 가정과 사회에 뿌리내려 다음 세대로 이어진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세계평화여성연합은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전개해왔다. 남북 이산가족 상봉 지원, 북한 어린이와 임산부를 위한 인도적 지원, 통일을 준비하는 여성 리더 양성 프로그램 등이 대표적이다. 송 사무총장은 분단의 아픔은 여성과 어린이에게 더욱 가혹하다며 세계평화여성연합은 인도주의적 관점에서 북한 주민들, 특히 취약계층에 대한 지원을 지속해왔다고 설명했다.
구호와 나눔, 지역사회에 온기를 더하다
세계평화여성연합의 또 다른 중요한 활동 축은 구호와 나눔이다. 송 사무총장은 평화는 가장 기본적인 삶의 어려움으로 고통받는 사람이 없을 때 시작된다며 취약계층 지원 활동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연합은 국내외에서 재난 구호, 결식아동 지원, 다문화가정 지원 등 다양한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동안 연합 회원들은 지역사회 곳곳에서 마스크와 생필품을 전달하고, 소외된 이웃들과 함께하는 활동을 이어갔다. 어려운 시기일수록 세심한 돌봄의 손길이 더욱 필요하다는 사무총장의 말처럼, 회원들은 자발적으로 봉사에 나섰고 이는 지역사회에 큰 힘이 됐다.
송 사무총장은 나눔을 함께 성장하는 과정으로 바라보며 “그동안의 봉사와 나눔의 경험은 저를 성장시키는 계기가 되었고, 우리 사회의 일원으로서 감사한 마음을 가지며 모두의 행복을 위해 더욱 책임감을 갖고 일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이러한 철학 아래 세계평화여성연합은 단순한 물질적 지원을 넘어 교육 프로그램, 심리 상담, 자립 지원 등 통합적인 접근을 통해 진정한 자립과 회복을 돕고 있다.
30대 활동가가 바라본 합천, 그리고 여성 리더십
세계평화여성연합 합천지부를 이끄는 한영서 지부 회장은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지역사회에서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그는 활동을 하면서 여성들이 모여 만드는 변화의 힘을 직접 경험했고, 자연스럽게 더 깊이 참여하게 됐다고 말했다.
합천은 경상남도의 대표적인 농촌 지역이지만, 지부는 이곳에서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독거노인 반찬 나눔, 다문화가정 자녀 교육 지원, 지역 청소년을 위한 인성교육 프로그램 등이 대표적이다. 그는 “합천은 고령화와 인구 감소가 심화된 지역으로, 남아 있는 주민들에 대한 돌봄과 지원이 더욱 절실한 곳”이라고 설명했다. 한영서 회장은 현재 7남매의 엄마이기도 하다. 2024년 10월, 여섯째 아이를 출산했던 것은 합천지역의 화제가 되어 지역신문에 실리기도 했고 군수 표창장을 수여하기도 했다. 한 회장은 이렇게 지역사회에서 인정을 받은 것을 기반으로 여성연합 활동을 지역에서 활발하게 할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또한 지역 여성들의 역량 강화에도 힘쓰고 있다고 했다. 작은 지역일수록 여성들의 활동 기회가 제한적이라며 연합 활동을 통해 여성들이 자신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지역사회 리더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합천지부에서는 정기적인 GWPN(세계여성평화네트워크), 평화통일 세미나, 봉사활동 기획을 위한 워크숍 등을 통해 회원들의 역량을 키우고 있다.
그는 30대 활동가로서의 경험을 이렇게 전했다. “처음에는 젊다는 이유로 어려움도 있었지만, 오히려 그것이 장점이 됐다. 새로운 시각으로 활동을 기획하고, SNS와 온라인 영상 플랫폼 등 디지털 도구를 활용해 더 많은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었다.” 실제로 그는 인스타그램과 유튜브를 통해 연합의 활동을 알리고, 젊은 세대의 참여를 이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맺으며
송화진 사무총장과 한영서 지부장과의 대화는 평화가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일상의 실천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일깨워줬다. 여성들이 가정에서, 지역사회에서, 그리고 한반도 평화를 향해 세계 곳곳에서 평화의 씨앗을 뿌리고 있다. 그들의 나눔은 단순한 자선이 아니라 평화를 일상으로 만드는 연대의 실천이다.
세대를 아우르는 이들의 활동은 평화와 통일, 그리고 더 나은 사회를 향한 여정이 결코 멈추지 않을 것임을 보여준다. 여성의 목소리로, 여성의 손으로 만들어가는 평화의 길. 그 길 위에서 오늘도 묵묵히 걸음을 이어가고 있다.
2026-02-02 17:3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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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은 가정·사회 연결 핵심 주체… 초국가적 네트워크 구축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70년]
한국 여성운동의 역사적 맥락
한국 여성운동은 19세기 말 개화기부터 현재까지 약 130여 년의 역사를 거쳐 왔다. 초기 교육운동과 계몽운동으로 시작해,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 참여, 해방 이후 정치·경제적 권리 확보를 위한 투쟁, 1980년대 민주화운동과 노동운동, 1990년대 이후 성평등과 여성 인권 신장을 위한 다양한 활동으로 발전해 왔다.
이 과정에서 한국 여성운동은 획일적 이념이나 방식으로 전개되어 온 것이 아니라, 각 시대의 사회·정치적 조건과 역사적 맥락에 따라 다양한 흐름으로 분화되어 발전해 왔다. 이러한 맥락에서 종교를 기반으로 한 여성 활동 역시 주류 여성운동과 분리된 예외적 현상이 아니라, 한국 여성운동이 형성해 온 폭넓은 스펙트럼 속에서 이해되고 평가될 필요가 있다.
종교 기반 여성운동의 전통
한국 여성운동에서 종교 단체의 역할은 결코 작지 않았다. 특히 기독교 여성단체들은 일제강점기부터 교육과 의료 분야에서 여성의 지위 향상에 기여했으며, 불교와 천주교 여성단체들도 사회복지와 빈민 구호 활동을 통해 여성의 사회 참여를 확대해 왔다. 이들 종교 기반 여성단체들은 전통적으로 교육·의료·복지 분야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해 왔으며, 여성의 권리 확장을 추구하는 동시에 가족과 공동체의 안정이라는 가치를 함께 지향해 왔다.
가정연합 여성 활동의 특징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이하 가정연합)의 여성 활동은 “가정”을 중심으로 한 평화운동이라는 독특한 정체성을 갖고 있다. 이는 1960년대 이후 서구 여성운동이 가부장제와 전통적 가족 구조에 대한 비판을 중심으로 전개된 것과는 다른 접근 방식이다.
가정연합은 가정의 안정과 화목을 사회 평화의 기초로 보며, 여성을 가정과 사회를 연결하는 핵심 주체로 위치시킨다. 이러한 관점은 전통적 가족 가치를 재해석하면서도 여성의 사회적 역할을 확대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가정연합의 여성 활동은 가정을 사적·억압적 공간으로, 사회를 공적·해방의 공간으로 나누고 서로 대립시키는 ‘가정 대 사회’라는 이분법을 넘어 가정에서의 역할을 사회 변화의 동력으로 연결시키려는 논리 구조를 지니고 있다.
보수와 진보의 이분법을 넘어서
한국 여성운동은 흔히 ‘진보적’ 페미니즘과 ‘보수적’ 가족주의로 양분되어 이해되곤 한다. 그러나 이러한 단순한 이분법으로는 현대 여성운동의 복잡성을 설명하기 어렵다.
가정연합 여성 활동은 이러한 분류 체계에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한다. 가족과 가정의 가치를 강조한다는 점에서 보수적으로 보일 수 있으나, 여성의 국제적 연대와 평화운동 참여, 사회 활동 확대를 적극 장려한다는 점에서는 전통적 보수주의와는 구별된다. 가정연합 여성 활동은 전통적 가치와 현대적 여성 역할 사이의 균형을 추구하는 모델로, 한국 사회의 특수성을 반영하고 있으며 서구 페미니즘 이론만으로는 충분히 설명하기 어려운 측면을 지닌다.
글로벌 네트워크와 초국가적 활동
가정연합 여성 활동의 또 다른 특징은 글로벌 네트워크 구축이다. 세계평화여성연합(WFWP)를 중심으로 128개국 여성들과 연대하며, 개발도상국 지원과 국제 평화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이는 1990년대 이후 한국 여성운동이 국제 연대를 강화해 온 흐름과 맥을 같이 한다. UN 여성지위위원회(CSW), 베이징세계여성대회 등 국제무대에서 한국 여성단체들의 활동이 활발해지던 시기와 유사하게, 가정연합 역시 국제적 여성 평화 네트워크를 확장해 왔다. 가정연합의 글로벌 여성 네트워크는 한국 여성운동의 국제화 경향을 보여주는 사례로, 특히 개발도상국 여성 지원 활동은 국제개발협력 분야에서 한국 여성단체의 역할 확대를 보여주는 사례로 거론된다.
실천 중심의 활동 방식
가정연합 여성 활동은 이론이나 담론보다 실천을 강조하는 방식으로 전개되어 왔다. 복지 서비스 제공, 교육 프로그램 운영, 환경 보호 활동 등 구체적인 프로젝트를 통해 사회적 기여를 시도해 왔다.
이는 1990년대 이후 한국 여성운동이 제도화되고 정책 중심으로 전환된 것과는 다른 접근이다. 가정연합은 법과 제도의 변화보다는 개인과 가정의 변화를 통해 사회 변화를 추구하는 방식을 택해 왔다. 이러한 실천적 활동은 풀뿌리 여성운동의 전통을 계승한 것으로, 1970~80년대 기층 여성들의 생활 개선 운동과 유사한 맥락을 지닌다는 평가도 있다.
맺음말: 다양성 속의 공존
한국 여성운동은 지난 100여 년간 다양한 흐름과 접근 방식이 공존하며 발전해 왔다. 가정연합 여성 활동은 이러한 다양성의 한 축으로, 가정과 평화를 중심으로 한 고유한 정체성을 지니고 있다.
전문가들은 서로 다른 여성운동의 접근 방식을 배타적으로 구분하기보다, 각 모델의 장점과 한계를 인정하며 상호 보완적 관계를 모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여성의 권리 신장과 성평등 실현, 사회 정의 구현이라는 공동의 목표 아래 다양한 시도가 병존할 때, 한국 여성운동의 지형 역시 더욱 다층적으로 확장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2026-02-02 17:2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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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구원사로 읽는 선민 이야기 <3>재림을 둘러싼 ‘같은 방식’과 ‘완성의 방식’ 간 차이
◆재림은 반복이 아니라 완성이다
‘그가 다시 오시리라’는 말은 예수의 죽음과 부활 이후 형성된 초대 교회 공동체의 신앙 고백이다. 따라서 기독교 신앙은 처음부터 재림을 기다리는 신앙이었다. 이는 또 구원사가 아직 역사 속에서 완결되지 않았다는 인식을 담고 있다(행 1:11; 고전 16:22). 그렇다면 재림은 왜, 무엇을 위해 필요한가, 그리고 어떤 방식이어야 하는가.
많은 신앙적 상상 속에서 재림은 종종 ‘다시 한 번의 초월적 개입’으로 그려진다. 하늘에서 온 존재로서 다시 등장하는 동일한 예수, 동일한 권능, 동일한 심판의 장면. 이러한 상상은 성서적 개념에서 비롯되었지만, 한 가지 근본적 문제를 안고 있다. 하나님은 왜 한 번의 초월적 개입으로 모든 것을 끝내지 않고, 역사 안에서 단계적으로 전진하는 구원사를 택했을까. 만일 재림이 초림의 반복이라면 인류 역사는 무엇을 배웠으며 무엇을 완성했는가 하는 질문에 답하기 어렵다. 구원사는 반복의 역사라기보다 전진과 성숙의 역사다.
하나님은 같은 방식으로 같은 일을 되풀이하지 않는다. 출애굽은 다시 반복되지 않았다. 하나님은 또 다른 바로를 세우고, 또 다른 홍해를 가르는 장면을 되풀이하지 않으셨다. 율법도 예언으로 확장되었으며, 예언은 독생자의 사건으로 넘어갔다. 매 단계는 이전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그 한계를 넘어서는 방식을 택해 진행되었다. 재림 역시 이 구원사의 흐름 속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예수의 초림은 분명 혁명적이었고, 그 혁명성은 구원의 방향 전환에 있었다. 율법에서 은혜로, 민족에서 인류로, 행위에서 관계로의 전환을 말한다. 그렇다면 재림의 혁명성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그것은 초림의 방식을 반복하는 데 있지 않고, 초림이 열어 놓았으나 역사 속에서 아직 실현되지 못한 지점을 채우는 데 있어야 한다. 독생자의 사역은 인류 구원의 문을 여는 데까지는 이르렀지만, 인류 전체의 관계 질서를 새롭게 세우는 단계까지는 도달하지 못했다. 개인의 구원은 선포되었지만, 가정과 사회, 인류 공동체의 실체적 재창조는 여전히 과제로 남았다. 이 미완의 지점이 바로 재림이 요청되는 자리다.
따라서 재림은 ‘같은 방식’일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같은 방식의 재림은 같은 한계를 반복할 뿐이다. 이는 십자가의 대속(代贖)이 개인의 죄 사함을 넘어 인류 역사 전체를 완성하는 단계까지는 이르지 못했다는 인식이다. 다시 한 명의 독생자가 나타나, 다시 희생을 반복하는 방식이라면 인류 역사는 여전히 고통의 순환 속에 머물게 된다. 구원사가 전진하려면 재림은 희생의 반복보다 창조의 완성이어야 한다.
성서가 재림을 혼인 잔치의 이미지로 암시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마 22장). 성서에 등장하는 ‘어린양 혼인잔치’에서 전통 기독교의 해석은 어린양은 예수를 지칭하고, 혼인잔치는 재림이후 구원이 완성된 종말적 사건을 말한다. 그러나 일부 신학에서는 혼인잔치는 이미 시작되었지만 아직 완성되지 않은 과정으로 언급되거나, 하나님과 인간, 그리스도와 공동체, 인간과 인간 등의 총체적 관계 회복으로 보기도 한다. 이와관련해 예수 자신은 여성과의 혼인(배필)을 염두에 두었다는 증거는 없다. 그렇다고 “혼인을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고 단정할 근거도 없다.
혼인은 단독적 주체의 행위가 아니라, 둘의 결합을 통해 새로운 생명을 낳는 구조다. 구원이 개인의 죄 사함에서 멈추지 않고, 인류 전체의 존재 양식을 바꾸는 단계로 나아가려면 구원사의 주체 역시 단독이 아니라 관계적이어야 한다. 이 점에서 재림은 초림의 목적을 실현하는 사건이 된다. 예수는 길을 열었고, 재림은 그 길 위에서 인류가 실제로 살아갈 수 있는 질서를 세워야 한다. 다시 말해, 재림은 “다시 오심”을 넘어 “마침내 이루심”이어야 한다. 이러한 재림에 대한 이해는 단순한 종말론적 공포나 신비 체험에서 해방시킨다. 재림은 세상을 끝내기 위해 오는 사건이 아니다. 세상을 완성하기 위해 오는 사건이다. 이때 심판은 세상이 사라지거나 파괴가 아닌 질서 회복이라는 목적 아래 재배치된다.
만일 재림이 완성의 방식이라면, 그 완성은 어떤 구조를 가져야 하는가. 개인 구원의 완성을 뛰어넘어 인류 공동체의 재창조를 가능하게 하는 주체는 누구이며, 어떤 형태로 등장해야 하는가. 이 질문은 필연적으로 하나의 개념을 호출한다. 초림이 독생자로 시작되었다면, 완성의 단계에서는 무엇이 필요할 것인가. 이 지점에서 구원사는 단독의 주체에서 한발 더 나아가 관계와 결합의 구조를 요구하기 시작한다. 관계와 결합, 창조와 재생산의 질서를 회복하기 위해 요청되는 주체는 무엇일까.
2026-02-02 16: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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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구원사로 읽는 선민 이야기 <2>독생자는 왜 ‘홀로 완성되지 못했는가’
◆두 인격의 결합을 요청하는 구원의 구조
기독교 신앙의 핵심에는 하나의 역설이 놓여 있다. 예수는 분명 결정적 구원 사건의 주체였지만, 기독교 구원사는 그를 “완성자”로만 고정시키지 않는다. 오히려 “다시 오시리라”는 미래 시제를 신앙의 중심에 둔다. 만일 독생자가 모든 것을 완성했다면, 왜 구원사는 아직 끝나지 않았는가. 여기서 말하는 ‘미완’은 예수의 부족이나 실패를 뜻하지 않는다. 그것은 구원사가 역사 안에서 단계적으로 전개되며, 개인을 넘어 관계와 질서로 확장된다는 의미에서의 ‘열려 있음’이다. 이 역설은 예수의 능력이나 신성을 의심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예수의 사명이 무엇이었는지를 더 정확히 이해하기 위함이다. 기독교는 예수를 통해 구원이 시작되었다고 말하지만, 동시에 인류의 고통과 분열, 역사적 비극이 계속되고 있음을 부인하지 않는다. 이는 곧, 독생자의 사역이 ‘결정적’이었으나 ‘종결적’이지는 않았다는 신학적 긴장을 내포한다.
예수의 생애에서 가장 분명한 특징 가운데 하나는 그가 홀로였다는 사실이다. 그는 가족 공동체를 이루지 않았고, 신부를 맞지 않았으며, 자녀를 남기지 않았다. 기독교는 이를 성결과 헌신의 상징으로 해석해 왔지만, 동시에 이 사실은 구원사의 구조적 한계를 암시한다. 성서가 반복적으로 사용하는 구원의 은유는 관계와 결합의 수사이기 때문이다. 즉 ‘홀로’란 결혼의 유무를 떠나 구원의 주체가 단독으로 서야 했던 역사적 형식을 가리킨다. 성서 전체를 관통하는 구원의 상징은 결코 단독적이지 않다. 창조는 남자와 여자의 결합으로 시작되었고, 구약의 언약은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로 서술되며, 예수 역시 하나님 나라를 혼인 잔치에 비유한다(마 22장). 신랑은 등장하지만, 신부는 끝내 역사 속에서 실체를 갖지 못한 것이다. 교회가 ‘그리스도의 신부’로 불렸다는 점을 인정하더라도, 그 신부는 여전히 상징적 공동체의 자리에서 머무르기 쉽다. 이 부재는 상징의 공백이라기보다 구원사가 아직 완결되지 않았음을 보여 주는 구조적 징후다.
초대교회의 신학을 형성한 사도 바울 역시 교회를 ‘그리스도의 신부’(엡 5:25–27)로 비유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상징적 공동체의 차원에 머문다. 물론 성서와 교회사에는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 브리스길라와 뵈뵈, 수많은 여성 순교자와 신비가들처럼 결정적 신앙의 순간을 증언한 여성 인물들이 풍부하게 존재한다. 그러나 이들의 역할은 대체로 개인적 신앙 고백과 공동체 내부의 헌신으로 남았을 뿐, 인류 구원사가 관계의 질서로 실체화되는 구조적 주체로까지 제도화되지는 못했다. 여기서 말하는 ‘여성 주체’란 인류 구원이 개인의 구원을 넘어 관계와 질서의 차원으로 완성되는 구조적 자리를 가리킨다. 그런 의미에서 독생자는 인류 구원의 문을 여는 결정적 사역을 감당했지만, 인류 전체를 실체적으로 재창조하는 단계까지 이르렀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것은 실패라는 말이 아니다. 구원사는 여전히 역사 속에서 열려 있음을 말하는 미완의 언어다.
예수 자신의 언행도 이를 뒷받침한다. 그는 “내가 할 말이 아직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하지 못한다”(요 16:12)고 말했고, “성령이 와서 장래의 일을 알게 하리라”(요 16:12–13)고 했다. 이는 자신의 사역이 모든 것을 끝내는 최종 단계가 아님을 스스로 인정한 고백으로 읽을 수 있다. 독생자는 모든 것을 쏟아부었지만, 그 뜻을 온전히 수용할 역사적 조건과 인간의 그릇은 아직 준비되어 있지 않았던 것이다. “독생자가 홀로 완성되지 못했다”는 말은 예수가 감당했던 역할의 무게를 정확히 이해하려는 시도다. 독생자는 구원을 ‘결정적으로 시작’했지만, 구원은 본래 ‘관계와 질서의 재창조’이기에 단독적 인격의 사역만으로 종결되는 성격의 사건은 아니었다. 그는 시작자였고, 방향 제시자였으며, 인류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몸으로 보여 준 존재였다. 그러나 방향이 제시되었다고 해서 목적지에 도달한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인류 구원사에서 구원은 개인의 죄 사함에서 멈추는가, 아니면 인류 전체의 관계 질서가 새로 창조되는 데까지 나아갈까. 만일 후자라면, 구원은 더 이상 단독적 주체의 희생만으로 완성될 수 없다. 이 지점에서 독생자는 종결점이 아니라, 다음 단계를 요청하는 존재가 된다. 그리고 바로 그 요청이 ‘재림’이라는 개념을 불러낸다. 재림은 독생자의 반복이 아니라, 독생자가 열어 놓은 구원사의 빈자리를 채우는 사건일 수밖에 없다.
2026-01-29 10: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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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구원사로 읽는 선민(選民) 이야기 <1>‘독생자’로 시작된 구원사
◆독생자는 구원의 끝이 아니라 방향이었다
기독교 구원사의 출발점에는 언제나 하나의 선언이 놓여 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다”(요 3:16). 이 문장은 신앙 고백인 동시에 인류 구원사가 어떤 방식으로 시작되었는지를 압축적으로 보여 주는 구조적 진술이다.
기독교는 왜 수많은 예언자나 의인 가운데서 ‘독생자’라는 단 하나의 존재를 통해 구원의 문을 열었을까. 이것은 하나님과 인간, 창조와 타락, 회복과 완성이라는 거대한 서사 속에서 왜 ‘하나’가 먼저여야 했는가를 묻는 질문이기도 하다.
유대 전통에서 메시아는 집단적 기대의 산물이었다. 다윗 왕조의 회복, 율법의 완성, 이스라엘의 구원이라는 맥락 속에서 메시아는 ‘민족을 대표하는 한 사람’이었다.
예수는 이 기대를 충족시키는 동시에 넘어선다. 그는 왕좌에 오르지 않았고, 군대를 이끌지도 않았다. 대신 그는 “아버지”를 말했으며, “아들”로 불렸다. 여기서 기독교 구원사는 정치적·역사적 차원에서 그 근원을 관계의 회복이라는 더 깊은 차원으로 이동시킨다.
‘독생자’라는 표현의 핵심은 관계다. 독생자는 대체 불가능한 유일성을 뜻한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관계가 완전히 단절된 상태에서 그 단절을 건너갈 수 있는 존재는 오직 하나뿐이라는 인식이 그 안에 담겨 있다. 다시 말해, 독생자는 하나님 편에도, 인간 편에도 동시에 설 수 있는 존재로 요청되었다. 기독교는 인간의 타락을 도덕적 실패라기보다 존재 질서의 붕괴로 이해했다. 그렇다면 그 회복 역시 제도나 율법의 개선으로는 불가능하다. 구원은 위로부터 내려오는 ‘사건’이어야 했고, 그 사건은 한 인격 안에 응축되어야 했다. 그래서 구원사는 한 사람에게서 시작된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독생자가 곧 완성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기독교 구원사는 독생자로 ‘시작’되었지, 독생자로 ‘완결’되었다고 말하지 않는다. 십자가와 부활은 결정적 사건이었지만, 동시에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다시 오시리라”(사도행전 1:11)는 약속을 남긴다. 이는 독생자 사건이 완성된 종결이 아니라, 역사 안에서 다음 단계를 향해 열려 있는 서두였음을 암시한다.
예수 자신도 자신의 사역을 ‘완결’의 언어로만 말하지 않았다. 그는 혼인 잔치를 비유로 들었고, 신랑과 신부의 이미지를 사용했으며, 성령을 통해 미래의 일을 약속했다. 이는 구원사가 단독적 주체에 의해 종결되는 구조가 아님을 은연중에 드러낸다. 다시 말해, 독생자는 구원사가 출발하기 위해 요청된 필수 조건이었다.
기독교가 독생자로 구원사를 시작했다는 사실은 하나님이 인간을 구원하시는 방식이 얼마나 급진적이었는지를 보여 준다. 그것은 한 존재를 통해 모든 것을 거는 방식이었다. 동시에 이 선택은 구원사적 긴장을 남긴다. 왜 시작이 독생자였는가, 그리고 그 시작은 어디를 향하고 있었는가. 이 질문에 답하지 않는 한, 독생자는 신비로 남고 구원사는 교리로만 굳어지기 쉽다.
이 질문을 정면으로 바라볼 때, 우리는 독생자가 구원의 끝이 아니라 방향이었음을 이해하게 된다. ‘끝’이란 완결 내지 종결을 뜻한다. 예수로 구원은 이미 완전히 끝났고, 이제 남은 것은 개인의 믿음뿐이라는 이해다. 반면 ‘방향’이란 완결이 아니라 지향성이다. 예수 사건은 구원을 종결했다기보다 인류가 나아가야 할 구원의 길을 역사 속에 열어 보인 사건에 가깝다. 그래서 ‘끝’이라고 말할 때 신앙은 확신이 되지만 질문을 잃을 위험이 있고, ‘방향’이라고 말할 때 신앙은 역사 속 책임을 요구하게 된다. 바로 그 지점에서 기독교 구원사는 ‘왜 그 시작이 홀로 완성되지 않았는가’라는 다음 단계의 사유를 우리에게 요청하기 시작한다.
2026-01-27 10: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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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적보다 인성이 먼저”… 글로벌 평화·리더십 교육 모델 구축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70년]
한국 사회에서 종교적 배경을 지닌 교육기관은 오랜 기간 논쟁과 관심의 대상이 되어 왔다. 그러나 논쟁과 별개로, 어떤 학교들은 오랜 기간 축적된 교육 실험과 성과로 교육 현장에서 독자적 모델을 구축해 왔다. 가정연합 산하 교육기관 네트워크가 그 사례다.
경복초등학교, 선화예술중·고등학교, 청심국제중·고등학교, 선정중·고등학교, 선문대학교, 선학 UP대학원대학교 등으로 구성된 이 교육 네트워크는 반세기 넘게 ‘인성·평화·리더십·국제 감각’을 공통된 교육 철학으로 유지해 왔다. 내부 집계에 따르면 이들 기관은 현재까지 약 3만 명 이상의 졸업생을 배출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일부 졸업생들은 정치·외교·과학·문화예술·국제기구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교육은 경쟁이 아니라 평화를 위한 준비
가정연합 계열 교육기관의 교육 철학은 1950년대 한국전쟁 이후 형성된 ‘평화를 위한 인간교육’이라는 개념으로 요약된다. 전쟁과 분단의 경험 속에서 출발한 이 철학은 학업 성취 중심 교육보다는 도덕성, 사회적 책임, 타문화 이해 능력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커리큘럼이 설계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교육 전문가들은 이 철학이 이후 일본과 미국, 아시아 개발도상국 등으로 교육기관이 확장되는 과정에서 국제화 전략과 결합했다고 분석한다. 이로 인해 해당 교육 네트워크는 한국적 교육 가치와 국제 교육 기준이 결합된 사례로 일부 학술 연구에서 언급되고 있다.
교육 평가 전문가들은 이들 학교의 공통 요소로 △외국어 교육 비중 확대 △예술·체육·과학·봉사 활동의 병행 강화 △국제교류 및 해외 현장 체험 시스템 구축 △학업 성취도보다 정서적·사회적 성숙을 주요 교육 목표로 설정한 점 등을 꼽는다.
인성이 먼저다
가장 논쟁적인 지점은 인성교육과 가시적 성과 간의 관계다. 일부 교육 평론가들은 “평화·리더십·봉사라는 교육 목표가 다소 추상적으로 보일 수 있으나, 장기적으로는 학생들의 진로 선택과 국제적 역량 형성으로 이어진 구체적 사례들이 축적되고 있다”고 평가한다.
실제로 선화예술중·고등학교의 경우 국제 콩쿠르 수상자 배출, 해외 공연 활동, 국제 예술 교류 프로그램 참여 등을 통해 문화예술계에서 일정 수준의 인지도를 확보해 왔다. 또한, 선학 UP대학원대학교의 모델 UN 프로그램, 선문대학교의 국제기구 인턴십 연계 과정, 청심국제중·고교의 의무화된 해외 봉사·교류 프로그램 등은 인성 중심 교육이 국제 활동 경험과 진로 설계로 연결되는 구조를 보여주는 사례로 언급된다.
교육적 성과인가, 종교 네트워크 확장인가
반면 비판적 시각도 존재한다. 일부 학계와 언론은 다음과 같은 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해 왔다.
-종교 기반 교육 철학이 충분히 개방성을 유지하고 있는가
-평화·통일 담론이 정치적 중립성을 훼손하지 않는가
-국제 캠퍼스 운영과 인재 양성 프로그램이 일반적인 글로벌 교육 산업과 본질적으로 다른가
그럼에도 공통적으로 제시되는 평가 중 하나는 “해당 교육 네트워크는 축소되거나 소멸되지 않았으며,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제도화·체계화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이들 학교에서 근무하거나 강의를 맡아온 비(非)통일교 출신 교사·교수들 가운데서는 “수업과 학교 운영 전반에서 종교적 색채가 전면에 드러난다고 느끼기 어렵다”, “일반 사립학교의 교육 과정과 큰 차이를 체감하지 못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반세기 교육 실험, 그 이후는
교육 전문가들은 가정연합 계열 학교들을 특정 종교의 부속 기관으로만 보기보다, 한국 사립교육 실험사의 한 사례로 기록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특히 글로벌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한 평화·리더십 교육 모델은 AI 기술 확산, 국제 이주 증가, 다문화 사회 전환이라는 환경 변화 속에서 향후 한국 교육의 하나의 대안 모델로 연구 대상이 되고 있다.
한 교육학자는 “가정연합 교육기관의 반세기에 걸친 교육 실천은 이미 완결된 성과라기보다는 현재도 진행 중인 장기 실험에 가깝다”고 평가했다. 이 실험은 교육·인성·국제 역량을 결합한 하나의 교육 모델로서, 이미 한국 사회와 교육 현장에서 분석과 비교의 대상이 되고 있으며, 향후 한국 교육 담론 속에서 그 성격과 가능성이 보다 분명하게 조명될 것으로 보인다.
2026-01-26 17: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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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바른 가치관·인성 갖춘 인재 양성이 우리의 목표”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70년]
선학학원 본관에서 만난 문연아 이사장의 얼굴에는 교육자로서의 확고한 신념과 따뜻한 온기가 묻어났다. 2023년 7월 학교법인 선학학원 제12대 이사장으로 취임한 그는 선문대학교를 비롯해 8개 교육기관을 이끌며 “교육은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인생을 변화시키고 나아가 사회 전체를 건강하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투자”라는 철학을 일관되게 실천해 왔다.
건학이념을 실천하다
“그동안 선학학원은 애천, 애인, 애국의 건학이념을 바탕으로 소통과 화합을 통한 공동체 정신으로 성장해 왔습니다. 앞으로도 구성원 모두가 행복할 수 있도록 소통, 화합, 겸손으로 학교 발전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문 이사장은 취임사에서 밝힌 이 약속을 하루도 잊지 않고 실천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가 생각하는 교육의 핵심은 선학학원의 건학이념과 맥을 같이한다. 하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진리를 탐구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공동체를 생각하며,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인재 양성이 바로 그것이다. “단순히 학업 성취도가 높은 학생이 아니라, 올바른 가치관과 인성을 갖춘 인재를 키우는 것이 우리의 목표입니다.”
교육의 본질
“요즘 많은 교육기관이 성과와 실적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학생 한 명 한 명의 잠재력을 발견하고 키워주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문 이사장은 인터뷰 내내 ‘사람’이라는 단어를 강조했다. 선문대학교, 선화예술고등학교, 선정고등학교, 선정국제관광고등학교, 선정중학교, 선화예술중학교, 경복초등학교, 선화유치원 등 8개 교육기관을 운영하는 선학학원은 설립 초기부터 ‘전인교육’을 교육 철학의 근간으로 삼아왔다.
문 이사장은 “학업 성취도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학생들이 바른 인성과 사회적 책임감을 갖추는 것”이라며, “우리 학원을 거쳐간 학생들이 각자의 분야에서 전문성을 발휘하면서도 이웃과 사회를 생각하는 리더로 성장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는 건학이념인 애인, 즉 사람을 사랑하는 정신의 구체적 실천이기도 하다.
미래를 준비하는 혁신적 교육 환경
급변하는 시대에 발맞춰 선학학원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다. 문 이사장은 최근 도입한 스마트 교육 시스템과 창의융합 교육 프로그램에 대해 자부심을 드러냈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살아갈 우리 학생들에게는 암기식 교육이 아닌, 스스로 사고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 AI 기반 맞춤형 학습 시스템을 도입했고, 학생들이 실제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프로젝트 수업을 확대했습니다.”
특히 그는 교원 역량 강화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아무리 좋은 시스템을 갖춰도 결국 교육의 질을 결정하는 것은 교원입니다. 우리는 교원들이 최신 교육 트렌드를 학습하고 전문성을 높일 수 있도록 정기적인 연수와 해외 연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교육의 주체인 교원들이 성장해야 학생들도 성장할 수 있다는 그의 믿음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소통과 화합, 공동체 정신의 실천
문 이사장이 강조하는 또 하나의 핵심 가치는 ‘소통’이다. “교육 현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학생, 교직원, 학부모, 그리고 지역사회가 하나의 공동체로서 함께 호흡하는 것입니다. 일방적인 지시나 명령이 아닌, 진정한 소통과 화합을 통해 모두가 행복한 교육 환경을 만들고 싶습니다.”
이를 위해 선학학원은 정기적인 간담회와 소통 채널을 운영하고 있다. 학생들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 교원들의 고충을 함께 해결하며, 학부모들과 긴밀히 협력하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열린 자세로 귀 기울일 때 비로소 진정한 변화가 시작됩니다. 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리더십의 덕목도 바로 겸손입니다.”
글로벌 인재 양성을 위한 비전
문 이사장은 선학학원이 글로벌 인재 양성의 요람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선문대학교를 중심으로 해외 우수 교육기관과의 교류를 확대하고 있습니다. 학생들이 글로벌 시대에 걸맞은 역량을 갖추면서도 우리의 가치와 전통을 소중히 여기는 균형 잡힌 인재로 성장하길 바랍니다.”
특히, 선화예술고등학교와 선정국제관광고등학교 등 특성화된 교육기관을 통해 학생들의 다양한 재능과 적성을 발견하고 키워주는 데 주력하고 있다. “모든 학생이 같은 길을 걸을 필요는 없습니다. 각자의 재능과 꿈에 맞는 맞춤형 교육을 제공하는 것이 우리의 역할입니다.”
교육자로서의 소명
문 이사장은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했다. “제게 교육은 직업이 아니라 소명입니다. 한 명의 학생이 변화하고 성장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이 일을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애천, 애인, 애국의 정신으로 하늘과 사람과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을 가진 인재들을 키워내는 것이 저의 사명입니다.”
그는 교육이 개인의 노력만으로 완성되는 일이 아니라, 학생과 교사, 학부모, 직원, 지역사회가 함께 만들어가는 공동의 과정이라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교육은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라 했다. 애천·애인·애국의 정신을 근간으로 선학학원이 그려가는 교육의 미래가 우리 사회 전체의 밝은 내일로 이어지길 기원한다.
2026-01-26 17: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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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대 넘어 이어지는 평화 교육 ‘청년 플랫폼’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70년]
급변하는 국제 질서와 사회 구조 속에서 ‘다음 세대의 역할’은 지속적으로 논의돼 온 핵심 의제다. 정치적 양극화, 세대 간 갈등, 국제 분쟁과 전쟁이 장기화되는 상황에서 청년이 어떤 가치와 역량을 갖춰야 하는가는 전 세계 교육계가 공통으로 마주한 과제이기도 하다.
이러한 맥락에서 최근 주목받고 있는 조직 중 하나가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과의 가치적 연대를 바탕으로 독자적인 사회공헌 활동을 펼치고 있는 사단법인 세계평화청년학생연합(이하 YSP)과 국제 NGO인 IAYSP다. 이들 단체는 수십 년에 걸쳐 평화·인성·리더십 교육과 국제 청년 연대를 목표로 한 프로그램을 운영해 왔다.
교육 철학의 뿌리: ‘통일·가정·평화 그리고 인성’
가정연합의 청년 교육 철학은 크게 세 가지 축으로 정리된다. 첫째는 인성 중심 교육(Character Education)이다. 정직, 책임, 타인에 대한 배려와 공동체 의식을 핵심 가치로 삼아 윤리적 성숙을 교육의 중심 요소로 둔다.
둘째는 평화 중심 사고(Peace Formation) 교육이다. 경쟁 중심 사고보다 상생과 협력, 갈등 해결 역량을 갖춘 인재 양성을 목표로 한다. 셋째는 리더십 기반 실천 교육(Leadership & Service-Based Learning)으로, 지식 습득보다 사회적 책임을 행동으로 구현하는 것을 강조한다.
교육 연구자들은 이러한 접근이 학력·성취 중심의 기존 교육 모델과 달리 정서·가치·공동체 감각을 중시하는 ‘비인지형(Non-Cognitive) 교육 모델’에 가깝다고 평가한다. 비인지형 교육은 지식 암기나 문제 해결 능력 같은 인지 역량을 넘어 성품·태도·감정 조절·행동 양식을 함께 개발하는 교육 방식으로, 최근 글로벌 교육 담론에서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YSP와 IAYSP의 조직적 특징
YSP와 IAYSP는 단순한 학생 동아리 성격을 넘어 국제 교류·봉사·윤리 교육·사회 혁신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청년 플랫폼으로 기능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주요 활동 구조는 다음과 같다.
첫째, 아시아·아프리카·남미·유럽 등 약 70여 개국을 아우르는 글로벌 캠퍼스 네트워크를 운영한다. 둘째, 국제 봉사 활동과 청년 외교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일부 프로젝트는 국제기구·정부·비정부기구(NGO)와 협력해 추진된다. 셋째, 가치·리더십 교육 워크숍을 정기적으로 개최하며, 토론과 프로젝트 수행을 중심으로 한 PBL(Project-Based Learning, 프로젝트 기반 학습) 방식을 적용하고 있다. 교육 전문가들은 이러한 구조를 신앙 기반의 보편적 가치(Faith-Based Value)를 바탕으로 출범하여 현재는 국제 사회 활동형 NGO 모델로 진화한 사례로 분석한다.
‘10만 청년 평화 리더 양성 프로젝트’
최근 가장 주목받는 사업은 ‘10만 청년 평화 리더 양성 프로젝트’다. 이 프로그램은 단순 참여형 캠페인이 아니라, 단계별 교육 시스템을 갖춘 것이 특징이다.
프로젝트의 목표는 참가자를 자원봉사자 수준에 머무르게 하는 것이 아니라, 국제 사회에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평화형 리더’로 육성하는 데 있다. 외부 전문가들은 이 사업의 의미를 두 가지 측면에서 평가한다. 하나는 청년이 주도하는 국제 교류·토론·평화 활동의 장을 제공한다는 점이며, 다른 하나는 활동 성과가 국제 인증이나 정책 기여 등 정량적 지표로 검증될 필요가 있다는 과제가 병존한다는 점이다.
“평화는 세대를 넘어 이어지는 프로젝트”
가정연합의 평화 철학을 공유하는 협력 기구들과 YSP·IAYSP의 청년 프로그램은 현재 진행형이며, 보편적 가치 교육을 넘어 실체적인 글로벌 시민 리더십 플랫폼으로 도약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공통적으로 “평화를 말하는 것은 쉽지만, 평화를 가르치고 실천하는 청년을 길러내는 일은 가장 어렵고 동시에 가장 의미 있는 과제”라고 평가한다. 이 같은 시도가 21세기 청년 교육 모델의 하나의 대안으로 자리 잡을지, 혹은 하나의 단체 활동 사례로 남을지는 향후 축적될 성과와 검증 결과가 말해줄 것으로 보인다.
2026-01-26 17:00: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