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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사와 동고동락 70년… 종교에서 사회공헌 플랫폼으로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70년]화
◆프롤로그:70년의 여정이 남긴 것 2025년,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이하 가정연합)이 창립 71주년을 맞았다. 1954년 한국전쟁의 잔해가 채 가시지 않은 서울에서 출발한 이 조직은 70여
2025-12-23 11: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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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칼럼] 해외 선교비의 과세 위험
지난 2월 27일 시행된 세법 시행령 개정으로 개신교계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시행 7개월째를 맞았지만 해외 선교비의 과세 범위와 기준을 둘러싼 혼란은 계속되고 있다. 정부와 교계의 협의로 당장의 과세는 피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오지만, 시행령이 그대로 유지되는 한 법적 불확실성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정부가 「상속세 및 증여세법 시행령」과 「법인세법 시행령」을 고쳐 외국 종교단체와 비거주자를 공익법인 범위에서 제외하면서 불거진 문제다. 현재 한국교회총연합과 한국세계선교협의회 등 개신교계 주요 단체들이 시행령 재개정과 제도 보완을 요구하고 있다. 정부가 귀담아들어야 한다.
국경으로 공익성 가르는 기준의 한계
개신교계로서는 선교비를 계속 보내자니 향후 과세 부담을 떠안을 수 있고, 송금을 멈추자니 현지 선교사와 학교·병원·구호사업이 흔들릴 수 있다. 특히 해외 교회 건축이나 학교·병원 설립처럼 여러 해에 걸쳐 추진해온 사업은 중단하기도, 종전 방식대로 지원하기도 어렵다. 과세 여부가 명확해질 때까지 해외 부동산 취득과 대규모 건축비 지원을 보류하라는 권고까지 나오는 이유다.
정부가 해외 공익법인을 이용한 편법 증여와 불투명한 자금 이전을 막으려는 취지는 이해할 수 있다. 종교적 목적을 내세웠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해외 송금에 세제 혜택을 줄 수는 없다. 국민의 헌금으로 운영되는 종교단체에는 높은 수준의 투명성과 책임이 요구된다.
문제는 공익성을 판단하는 기준이다. 개정 시행령은 종교사업을 수행하는 주체가 국내에 있는지 국외에 있는지를 중요한 기준으로 삼았다. 국내 거주자와 비영리내국법인이 운영하면 공익성을 인정받을 수 있지만, 외국법인이나 비거주자가 운영하면 같은 목적의 사업도 공익법인 범위에서 제외된다. 사업의 실제 내용과 자금의 사용 결과보다 법인의 소재지와 운영 주체를 앞세운 셈이다.
이 기준을 그대로 적용하면 모순이 생긴다. 국내 교회가 선교사 개인계좌로 돈을 보내기보다 현지법인을 세워 전용계좌로 관리하고, 학교와 병원을 법인 명의로 운영하는 것이 회계상 훨씬 투명하다. 그런데 외국법인이라는 이유로 공익성을 인정받지 못한다면 투명한 운영을 위해 법인화한 단체가 오히려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 정부가 장려해야 할 관리방식이 과세 위험을 키우는 역설이다.
해외 선교는 복음을 전하는 활동에 국한되지 않는다. 과거 외국인 선교사들이 어려웠던 한국에 학교와 병원을 세웠듯이, 오늘날 한국 선교사들은 세계 곳곳에서 학교와 병원, 고아원과 직업훈련원을 운영한다. 재난이 발생하면 현지 교회와 선교법인을 통해 식량과 의약품을 전달하고 피해 복구에도 나선다. 이러한 활동은 인도적 공익사업인 동시에 한국에 대한 신뢰를 높이는 민간외교 역할도 한다. 같은 교육·의료·구호사업이 국내에서 이뤄지면 공익활동으로 인정받고, 국경을 넘었다는 이유로 공익성을 의심받는다면 합리적이라고 보기 어렵다. 공익성은 국경 안에 있다는 이유로 생기고 국경 밖에 있다는 이유로 사라지는 가치가 아니다.
이번 개정은 개신교에만 적용되지 않는다. 천주교의 해외 교구와 수도회 지원, 불교의 해외 사찰과 포교당 운영, 원불교와 가정연합 등 여러 종교의 해외 교육·구호사업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 해외 선교 규모가 크고 교단·개별 교회·선교단체가 각기 송금하는 개신교계가 문제를 먼저 체감하고 있을 뿐이다. 특정 종교의 세금 문제로 좁혀 보면 제도의 결함을 놓치게 된다.
해법은 공익성의 판단 기준을 국내와 국외라는 형식에서 사업의 목적과 자금의 흐름, 사용 결과로 바꾸는 데 있다. 외국법인이라도 현지 국가에 정식 등록돼 있고, 사업계획과 예산을 사전에 승인받았으며, 전용계좌와 적격 증빙으로 자금의 사용처를 밝힌다면 공익성을 인정해야 한다. 사업이 끝난 뒤에는 회계보고서와 성과보고서를 제출하고 국내 지원단체가 이를 검증하도록 하면 된다.
종교계도 책임을 다해야 한다. 선교사 생활비와 현지 사업비를 구분하고 건축비·교육비·의료비·구호비를 세목별로 관리해야 한다. 선교사 개인계좌를 통한 포괄적 송금은 줄이고, 현지 영수증과 자산의 소유·처분 관계도 문서로 남겨야 한다. 목적 외 사용이나 개인 귀속이 확인되면 증여세와 가산세를 엄격하게 부과해야 한다. 이미 진행 중인 사업을 위한 경과조치도 필요하다. 기존 규정을 믿고 계약과 지원 약정을 맺은 학교·병원·예배당 건축사업에 새 기준을 즉시 적용하면 예측하지 못한 피해가 발생한다. 기존 사업에는 종전 규정을 적용하고 새로운 회계·관리체계를 갖출 수 있도록 2~3년의 유예기간을 두는 것이 합리적이다.
목적·흐름·결과 따지는 제도로 바꿔야
이번 조치는 국회가 만든 법률이 아니라 정부가 개정한 시행령이다. 정부가 결단하면 정상적인 해외 종교사업을 보호하는 조건부 인정제도와 경과규정을 마련할 수 있다. 종교계의 사후관리 방안을 객관적인 기준으로 제도화한다면 조세회피 방지와 종교의 자유도 함께 지킬 수 있다. 편법의 문을 닫는다고 선의의 길까지 막아서는 안 된다. 공익성은 법인의 주소가 아니라 돈이 어디에, 어떤 목적으로 쓰였으며 어떤 결과를 남겼는지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 투명하게 집행된 해외 선교비에는 길을 열어주고 불투명한 자금에는 엄격한 책임을 묻는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
2026-09-23 11:3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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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의 차이 인정하며 공동선 협력… 종교화합 씨앗 뿌리다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70년-글로벌 평화운동]
종교는 인류에게 사랑과 자비, 용서와 평화를 가르쳐 왔다. 그러나 신앙의 차이가 민족주의나 정치적 이해관계와 얽히면서 갈등과 폭력의 명분으로 이용되기도 했다. 같은 신을 믿으면서도 교파가 다르다는 이유로 서로를 배척했고, 서로 다른 종교는 오랫동안 높은 벽을 사이에 두고 마주했다.
초교파운동, 종교화합의 선구자 역할
문선명·한학자 총재는 세계평화를 위해서는 종교가 먼저 그 벽을 넘어야 한다고 보았다. 각 종교가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면서도 사랑과 용서, 희생과 봉사라는 공통의 가치를 중심으로 협력한다면 종교는 평화의 힘이 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옛 통일교)의 종교화합운동은 기독교 내부의 벽을 허무는 초교파운동에서 출발했다. 1966년 설립된 초교파기독교협회는 여러 교파가 참여하는 연합부흥회와 교리공청회 등을 열었다. 서로를 이단이나 경쟁 상대로 배척하기보다 대화와 이해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함께 실현하자는 취지였다.
1970년대에는 다른 종교와의 화합으로 범위가 확대됐다. 1970년 2월 출범한 한국종교협의회(한국종교인협회의 후신)에는 가톨릭·성공회·불교·유교·천도교·원불교·대종교 등 7개 종단이 참여하고 있었다. 그해 4월 통일교가 여덟 번째 종단으로 가입하면서 종교 간 대화와 협력의 장은 신종교로까지 넓어졌다.
통일교의 참여 이후 종교 간 학술회의와 공동행사, 종교신문인 ‘주간종교’ 발간 등 다양한 협력사업이 이어졌다. 서로의 교리와 문화를 이해하고 종교가 사회의 도덕성과 평화에 어떻게 기여할 것인지를 함께 모색했다.
한국에서 세계 종교의 만남으로
1980년대에는 종교화합운동이 세계로 확대됐다. 문선명·한학자 총재는 국제종교재단(IRF)을 중심으로 세계 여러 종교의 학자와 성직자들이 교류하고 공동연구를 할 수 있는 장을 넓혀갔다. 대표적인 사업이 1985년 11월 미국 뉴저지에서 열린 제1차 세계종교의회였다. 세계 85개국에서 600명 이상의 종교지도자와 성직자, 학자 등이 참가해 서로의 신앙과 전통을 이해하고 인류 공동의 문제에 대한 종교의 역할을 모색했다. 이 대회는 1893년 시카고 세계종교의회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기획된 국제 종교회의의 첫 출발이었다.
세계종교의회는 대화에만 머물지 않았다. 이 자리에서 서로 다른 종교의 청년들이 함께 봉사하는 종교청년봉사단(RYS)이 태동했다. 1986년 필리핀에서 열린 첫 봉사활동에는 세계 각국의 청년 120명이 참여했다. 이후 RYS는 학교와 공공시설 보수, 환경정비와 지역개발 등 다양한 활동을 벌이며 세계 각국으로 확대됐다. 함께 땀 흘리며 종교의 벽을 허무는 실천이었다.
268개 경전에서 공통의 가치 찾다
종교 간 대화의 목적은 서로 다른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상대를 적으로 여기지 않고 인류 공동의 문제 앞에서 협력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드는 것이었다. 이러한 대화와 공동연구는 ‘세계경전’ 편찬으로 이어졌다. 세계 각국의 종교학자와 종교지도자 40여 명이 참여해 268개의 경전과 55개의 구전 전통에서 뽑은 4000여 개의 구절을 주제별로 수록해 각 종교의 가르침을 비교할 수 있도록 했다.
‘세계경전’은 모든 종교가 같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종교마다 신관과 인간관, 구원관과 의례가 다르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인간의 존엄과 사랑, 자비와 정의, 평화 등 인류가 공유할 수 있는 가치에 주목했다. 종교화합은 신앙을 뒤섞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면서 공동의 선을 위해 협력하는 것이었다.
2026-09-21 20:5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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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교·기독교·이슬람교 지도자 모여 예루살렘 평화대행진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70년-글로벌 평화운동]
2003년 세계는 중동 전쟁과 갈등으로 크게 흔들리고 있었다. 3월 미국 주도의 이라크전쟁이 발발했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에서는 제2차 인티파다(팔레스타인 민중봉기)로 유혈 충돌이 이어지고 있었다. 국제사회가 ‘중동평화 로드맵’을 내놓으며 해법을 모색하던 그해 12월 22일, 예루살렘에 세계 각국의 종교인들이 모였다. 문선명·한학자 총재가 추진한 중동평화프로젝트(MEPI)의 일환으로 열린 이스라엘 평화대행진이었다. 유대교·기독교·이슬람교 지도자를 비롯해 정치인과 시민, 세계 84개국에서 온 참가자 등 약 2만 명이 함께했다.
왜 예루살렘이었나
서로 다른 종교인들이 한자리에서 평화를 외쳤다고 중동의 오랜 갈등이 하루아침에 사라질 수는 없다. 그러나 이날의 행진에는 종교가 갈등의 한 원인이 되어왔다면, 이제 그 갈등을 치유하는 일에도 앞장서야 한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었다.
예루살렘은 유대교와 기독교, 이슬람교가 모두 중요하게 여기는 성지를 품고 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갈등은 영토와 국가, 난민과 안보, 민족 정체성 등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어 단순한 종교분쟁으로 볼 수 없지만, 종교적 전통과 성지 문제 역시 갈등의 한 축이었다.
문 총재는 협정과 제도를 만드는 것은 정치의 영역이지만 오랜 세월 쌓인 불신과 증오까지 정치적 합의만으로 없애기는 어렵다고 보았다. 서로의 신앙과 고통을 이해할 때 정치적 평화를 뒷받침하는 마음의 평화도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2003년 들어 중동평화프로젝트가 본격화됐다. 그 해 2월 말 미국 워싱턴에서 중동평화를 위한 국제협의가 열렸고, 5월에는 미국의 기독교 성직자들이 예루살렘을 찾아 유대교 지도자들과 마주 앉았다. 5월 18일에는 기독교와 유대교 지도자들이 과거의 반목과 상처를 돌아보고 화해를 다짐하는 ‘예루살렘 선언’을 채택했다. 이후 9월에는 북미지역 참가자 122명이 예루살렘과 서안지구, 가자지구를 찾았고, 10월에도 평화사절단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지역을 방문했다. 마침내 12월 예루살렘 평화대행진으로 종교 간 화해운동은 절정에 이르렀다.
평화운동, 세계로 이어지다
평화대행진 이후에도 중동평화프로젝트는 계속됐다. 2004년 5월에는 세계 41개국 526명의 여성 지도자들이 참여한 ‘Women of Peace’ 평화사절단이 이스라엘과 서안지구, 가자지구를 찾았다. 7월에는 중남미와 카리브 지역 33개국 307명, 8월에는 오세아니아와 아프리카 34개국 300명이 잇따라 참여했다. 이후에도 평화사절단과 종교 간 회의, 청년활동과 봉사·문화교류 등이 이어지며 종교지도자 중심의 운동이 여성과 청년, 시민사회로 확대됐다.
문선명·한학자 총재가 추진한 중동평화운동은 정부 간 협상을 대신하려는 것이 아니었다. 정치와 외교가 해결하기 어려운 영역에서 종교와 시민사회가 할 수 있는 역할을 찾으려는 시도였다.
평화의 출발점을 가정에서 찾다
종교평화운동은 중동에만 머물지 않았다. 문선명·한학자 총재는 세계평화의 가장 작은 단위를 가정에서 찾았다. 2003년 미국에서 진행된 초종교·초교파 성직자 축복결혼식도 이러한 생각의 연장선에 있었다. 서로 다른 교단과 인종적 배경을 가진 성직자 부부들이 한자리에 모여 부부의 사랑과 가정의 평화, 성직자의 도덕적 책임을 다짐했다. 성직자가 사랑과 용서를 가르치기에 앞서 자신의 가정에서 이를 실천하고, 평화 역시 가장 가까운 인간관계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취지였다. 중동평화프로젝트와 성직자 축복운동은 방식은 달랐지만, 자신부터 화해와 사랑을 실천해야 한다는 같은 문제의식을 담고 있었다.
종교는 평화의 중재자가 될 수 있는가
종교가 현실의 분쟁을 해결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는 간단한 답을 내리기 어렵다. 중동에서는 국제사회의 수많은 중재에도 갈등이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교파와 종교의 벽을 넘어온 종교평화운동은 2000년대 들어 분쟁의 현장으로 들어갔다. 회의장에서 서로의 종교를 이해하는 데 머물지 않고 예루살렘의 거리에서 함께 걸었다. 종교 간 ‘대화’가 종교 간 ‘행동’으로 옮겨간 것이다.
2026-09-21 20:5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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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 넘어 세계 성직자 협력망 확대… 세계평화 기여 종교 역할 재정립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70년-글로벌 평화운동]
2000년 5월 미국의 17개 교단 성직자 120명이 한국을 찾았다. 교파와 인종의 벽을 넘어 교회가 사회적 화해와 세계평화에 기여하자는 취지였다. 이때 이들을 초청한 문선명·한학자 총재가 미국성직자협의회(ACLC)를 창설했다.
미국에서 시작된 성직자 연대
ACLC에는 백인·흑인·아시아계 등 서로 다른 배경의 성직자들이 참여했다. 이들은 함께 예배하고 교류하며 지역사회의 문제에 대응했다. 교회가 교세 확장과 교파 간 경쟁에 머물지 않고 가정회복과 인종·계층 갈등의 치유라는 공적 책임을 감당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시티 오브 레퓨지 교회의 노엘 존스 주교는 이 운동에 참여한 대표적인 기독교 지도자다. 아프리카계 미국인 목회자인 그는 인종과 교단의 경계를 넘어 성직자들이 연대하고 기독교의 사랑과 화해를 사회와 세계에서 실천해야 한다고 강조해 왔다.
2012년 문선명 총재 성화 이후 한학자 총재는 종교화합운동을 계승하면서 이를 세계 종교지도자들의 지속적인 협력체제로 발전시키는 데 힘을 기울였다. 그 중요한 결실 가운데 하나가 세계평화종교인연합(IAPD)이다.
2017년 11월 13일 서울에서 열린 IAPD 창설대회에는 세계 60여 개국에서 종교지도자와 신앙기반단체 관계자, 정치인과 학자, 시민사회 지도자 등 400여 명이 참여했다. 참가자들은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고 갈등과 빈곤, 테러와 극단주의를 극복하는 데 종교도 공동의 책임을 져야 한다는 데 뜻을 모았다. IAPD는 정치인과 학자, 경제인, 언론인 등 사회 각 분야의 지도자들과 협력해 세계적 과제의 해결에 나서는 것을 지향했다.
한국을 거쳐 세계로
미국에서 축적된 ACLC의 경험은 한국의 성직자 연대로도 이어졌다. 2019년 10월 서울에서 대한민국성직자협의회(KCLC)가 창립됐다. 창립대회에는 국내외 성직자 700여 명이 참석해 교파의 차이를 넘어 한반도 평화와 가정회복을 위해 협력할 것을 다짐했다.
KCLC는 분단과 이념, 지역과 세대의 갈등을 겪는 한국 사회에서 성직자들이 갈등의 한쪽에 서기보다 서로 다른 사람들을 연결하는 화해의 중재자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남북한 주민도 이념과 체제를 넘어 한민족, 나아가 한 가족의 관점에서 바라보자는 것이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사무엘 하데베 선지자도 KCLC 창립 과정에 참여했다. 그는 식민지배와 인종차별, 종족 갈등을 경험한 아프리카에서 서로 다른 종교와 공동체의 협력을 강조해 온 종교지도자다. 종교가 영혼을 위로하는 데 그치지 않고 가정과 청년, 빈곤과 사회갈등에도 책임을 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70여 개국 성직자들이 한자리에
KCLC 창립 두 달 뒤인 2019년 12월 28일, 미국 뉴저지 뉴어크의 프루덴셜센터에 세계 70여 개국에서 온 성직자들이 모였다. 기독교를 비롯해 이슬람교·힌두교·불교·유대교 등 여러 종교 지도자들이 인종과 국가, 교파의 차이를 넘어 평화를 위해 협력할 것을 다짐했다. 이날 세계성직자협의회(WCLC)가 공식 출범했다.
미국에서 시작된 ACLC의 성직자 연대와 세계 종교지도자들을 연결한 IAPD, 한국의 KCLC가 WCLC라는 세계적 네트워크로 이어지면서 종교평화운동은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었다. 오랜 기간 문선명·한학자 총재가 추진해 온 종교화합운동은 모든 종교를 하나로 만드는 것이 아니었다. 각 종교의 교리와 전통을 인정하면서 인간의 존엄과 생명, 사랑과 정의, 평화라는 공동의 가치를 위해 협력하자는 것이었다.
기독교 내부의 초교파운동에서 시작된 종교평화운동은 종교 간 대화와 분쟁 현장의 평화운동을 거쳐 세계 성직자들의 협력망으로 확대됐다. 교파의 벽에서 종교의 벽으로, 다시 인종과 민족, 국가의 벽을 넘어온 지난한 길이었다.
2026-09-21 20:5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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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소라 씨, 통일교 문제도 사실대로 말해야 [종교칼럼]
보수 성향의 작가·번역가인 노태정 씨는 유튜브 ‘노태정 팟캐스트’에서 정치·역사·종교 분야 인사들과 대담하며 고정 시청층을 확보하고 있다. 얼마 전 이 프로그램에 북한 인권단체 ‘모두 모이자’의 대표 리소라 씨가 출연했다. 재일북송교포 2세인 리 대표는 2007년 두 자녀를 데리고 탈북해 일본에 정착한 뒤 재일교포 북송사업의 책임 규명과 북한 인권 개선 운동을 펼쳐왔다.
리 대표는 이날 진행자 노태정 씨와의 대담에서 북한의 실상을 비판하던 중 통일교 문제를 꺼냈다. 북한의 인권 유린과 공산주의 체제의 폐해를 알려온 리 대표의 용기와 활동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통일교와 일본 정치권의 관계를 설명한 대목에는 사실관계가 불분명하거나 주관적 평가를 객관적 사실처럼 전달한 부분이 적지 않다. 리 대표는 범인이 어머니의 통일교 헌금으로 가정적 어려움을 겪은 뒤 그 분노를 아베 전 총리에게 돌렸고, 피살 사건을 계기로 통일교와 일본 정치권의 결탁이 폭로됐다는 취지로 말했다. 그러나 이러한 설명은 범인의 동기와 종교단체의 법적 책임, 일본 정치권의 대응을 하나의 인과관계로 묶을 위험이 있다.
아베 전 총리는 2022년 7월 선거 유세 도중 총격으로 사망했다. 이 사건의 본질은 범인의 현장 접근과 사제 총기 발사를 막지 못한 경호 실패에 있다. 개인의 특정 종교에 대한 원한이 살인으로까지 이어진 책임을 그 종교에 돌릴 수는 없다. 범인이 어머니의 헌금 문제로 통일교에 원한을 품었다는 것은 범행 동기에 해당하며, 종교단체의 법적 책임과는 구분해 판단해야 한다. 일본 법원은 위법한 헌금 권유로 피해가 발생했다는 정부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형사 범죄가 확정되지 않은 종교법인에 민사상 불법행위를 근거로 해산명령까지 내린 것이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는 원칙에 부합하는지는 여전히 따져볼 문제다.
리 대표가 “통일교는 처음에는 잘했지만 나중에 변질됐다”고 말한 대목도 지나치게 단정적이다. 처음에 무엇을 잘했으며, 언제부터 어떤 근거로 변질됐다는 것인지 구체적으로 밝혔어야 한다. 근거가 빠진 채 ‘변질’이라는 결론만 제시하면 시청자는 통일교의 역사와 일본 사회에서 수행한 역할을 균형 있게 이해하기 어렵다. 통일교와 국제승공연합이 일본에서 전개한 반공·승공운동은 냉전기 일본의 사상계와 정치 지형을 이해하는 데 빼놓을 수 없다. 1968년 창설된 일본 국제승공연합은 거리 강연과 전국 순회 유세, 기관지 발행, 대학가 토론 등을 통해 마르크스주의의 모순과 공산권의 인권 유린 문제를 알렸다. 1970년대 후반부터는 국가 기밀 보호와 스파이 방지법 제정을 촉구하는 국민운동에도 참여했다. 학생운동이 과격화하고 소련·중국·북한의 위협이 커지던 상황에서 회원들은 공산주의 세력의 거센 반발과 물리적 위협을 무릅쓰고 이론과 조직으로 맞섰다.
이들의 정치적 주장에 대한 평가는 엇갈릴 수 있다. 그러나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교육과 국민운동에 힘을 쏟고, 일본 사회에 공산주의의 문제점을 알리는 데 상당한 역할을 했다는 역사까지 지울 수는 없다. 하나님을 부정하는 공산주의에 맞서온 일본 가정연합이 범인의 개인적 원한과 아베 전 총리 피살 사건의 책임까지 떠안은 채, 법인 해산이라는 존립의 위기에 처해 있다. 이러한 역사와 처지를 충분히 살피지 않은 채 편향된 시각으로 일본 가정연합을 재단하는 것은 북한 공산 체제에 맞서온 리 대표의 활동 취지와도 어울리지 않는다.
리 대표가 통일교를 두고 “돈의 맛을 들여 폭주했다”고 표현한 것도 주관적 판단에 가깝다. 일본 가정연합 신자들 대다수는 검소한 삶을 살아왔다. 무엇보다 이들의 헌금이 세계평화운동과 개발도상국의 교육·봉사사업 등 다양한 공익 활동을 뒷받침해 온 측면도 함께 살펴야 한다. 근거를 밝히지 않은 채 자금과 정치적 결탁을 거론하는 것은 사실에 근거한 비판의 범위를 넘어서며, 신앙공동체 전체에 부당한 낙인을 찍을 수 있다.
지금 일본 가정연합 신자들은 해산명령으로 교회 출입이 막히고, 신앙공동체의 활동 기반마저 잃었다. 법인 해산이 신앙과 예배 자체를 금지하는 것은 아니지만, 신앙공동체의 존립에 중대한 타격을 준다. 그럼에도 신자들은 가정과 임시 공간 등에 모여 예배를 드리며 공동체의 재건을 소망하고 있다. 이들이 지켜온 신앙과 삶을 범인이 품은 개인적 원한이나 일부 정치권과 언론이 만든 프레임만으로 재단해서는 안 된다.
리 대표는 북한의 인권 실상과 공산주의 체제의 폐해를 알려왔다. 북한 체제와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모두 경험한 만큼 북한의 현실을 누구보다 생생하고 설득력 있게 증언할 수 있는 인물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사실에 충실해야 한다. 통일교 문제에서 확인되지 않은 주장과 편견을 사실처럼 전달하면 북한 실상에 관한 다른 증언까지 신뢰를 잃을 수 있다. 북한의 거짓을 비판하면서 또 다른 종교공동체를 충분한 근거 없이 규정한다면 주장의 설득력은 약해질 수밖에 없다. 리 대표가 앞으로도 통일교와 일본 가정연합을 언급하려면 근거를 분명히 밝히고, 사실과 평가가 뒤섞인 기존 발언은 바로잡아야 한다. 그것이 자신이 전하려는 북한 인권에 관한 진실까지 지키는 길이다.
2026-09-18 10: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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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받은 것을 다음 세대로 잇는 것이 평화”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70년-글로벌 평화운동]
장인혁 광명교회장(48, 전 아시아 청년학생국장·사진)은 지난 2013년 석사과정인 천주평화사관학교(UPA) 1기로 입학했다. 문선명 총재의 성화가 삶의 방향을 다시 생각하게 한 계기가 됐다. 그는 “개인적인 삶에는 최선을 다했지만, 공동체와 사회를 위해 무엇을 했는가를 돌아보게 됐다”며 “UPA에 들어간 것은 학교 하나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앞으로 어떤 삶을 살 것인가를 다시 선택한 것이었다”고 말했다.
UPA에서 원리와 신학, 목회뿐 아니라 공동체생활과 소통, 현장활동 등을 경험하면서 생각도 달라졌다. 입학 당시에는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채우는 데 관심이 컸지만, 교육을 받은 뒤에는 배운 것을 어떻게 다른 사람에게 전할 것인가를 고민하게 됐다.
“교육을 받기 전에는 ‘내가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를 많이 생각했다면, 지금은 ‘내가 배운 것을 누구에게 어떻게 전할 것인가’를 더 많이 생각합니다.”
졸업 후 3년간의 해외현장 과정에서는 아시아 청년학생국장으로 발령받아 필리핀과 태국, 캄보디아 등에서 청년들과 함께 활동했다. 특히 필리핀 국제평화지도자대학(IPLC)에서 학생들을 상담하면서 교육의 의미를 새롭게 발견했다. 경제적 어려움과 가정문제 등 다양한 사연을 가진 학생들을 만나면서 지식 전달에 앞서 자신과 타인을 존중하고 가정과 공동체에 대한 책임을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한다. 현지 공직자들과 중·고등학교를 찾아 인성교육을 하고 지역사회에서 가정과 자녀교육 프로그램도 진행했다. 이러한 경험은 그가 생각하는 평화의 의미도 바꾸었다.
“예전에는 평화라고 하면 전쟁이 없는 세상이나 국가 간 갈등을 해결하는 것을 먼저 생각했습니다. 지금은 한 가정에서 부모와 자녀가 서로 존중하고, 학교에서 친구의 다름을 받아들이고, 지역사회에서 서로 다른 사람들이 대화하며 문제를 해결하는 일상의 평화에 더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에게 ‘평화를 설계한다’는 것은 주변의 문제를 발견하고 사람을 연결해 함께 해결하는 삶이다. 그는 자신이 받은 교육과 경험을 다음 세대에 전하는 것을 중요한 과제로 꼽으며 “한 사람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그 사람이 또 다른 사람에게 좋은 영향을 주도록 돕는 것, 그것이 제가 생각하는 ‘평화를 설계하는 삶’”이라고 말했다.
2026-09-14 18:2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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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의 어려움을 내 것으로… 협력·실천 강조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70년-글로벌 평화운동]
한학자 총재가 추진해 온 미래세대 교육은 지식과 기술을 갖춘 청년을 공동체와 인류를 위해 책임을 다하는 지도자로 성장시키는 데 초점을 맞춰 왔다. 청년에게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에 못지않게, 배운 것을 누구를 위해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를 중요하게 본 것이다. 그 교육은 인성교육과 국제교류, 사회적 실천이라는 세 축으로 이어진다. 정직과 책임, 공감과 봉사를 삶의 기준으로 세우고, 서로 다른 문화와 종교, 국가의 청년들과 생활하며 타인을 이해하는 법을 배운다. 여기에 지역봉사와 환경보호, 교육지원과 공익활동 등을 통해 배운 가치를 행동으로 옮긴다. 인성과 만남, 실천이 연결될 때 청년은 문제를 발견하고 사람들과 협력해 해법을 만들어가는 지도자로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교육은 인공지능 시대에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청년들은 이전 어느 세대보다 많은 정보와 강력한 기술을 활용할 수 있지만, 그 힘을 어디에 사용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은 결국 사람이다.
글로벌 시대에는 다른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능력도 요구된다. 국적과 종교, 문화가 다른 사람과 대화하고 갈등을 조정하며 공동의 목표를 위해 협력하는 경험 자체가 지도자 교육이 된다. 한 총재가 강조해 온 지도력 역시 사람을 명령하고 이끄는 힘보다 구성원의 성장을 돕고 공동체의 어려움을 자신의 책임으로 받아들이는 자세에 가깝다. 청년을 ‘미래의 주역’이라고 부르는 것만으로 미래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능력을 발견하고 다른 사람과 협력하며, 그 능력을 공동체와 인류를 위해 사용하는 경험을 쌓도록 해야 한다. 인성과 실력을 갖춘 청년을 세우고 그들이 새로운 시대의 해법을 스스로 만들어가도록 하는 것, 그것이 미래세대 교육이 지향하는 길이다.
2026-09-14 18:2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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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격차 줄이자”… 전 세계서 인재 선발 첫해 40억 지원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70년-글로벌 평화운동]
청년이 꿈을 펼치기 위해서는 올바른 가치관과 함께 배움의 기회가 필요하다. 그러나 경제적 형편과 출신 지역, 국가의 교육환경에 따라 청년이 선택할 수 있는 미래는 크게 달라진다. 빈곤과 교육격차를 그대로 둔 채 개인의 노력만 강조한다면 잠재력을 펼쳐보기도 전에 꿈을 포기하는 청년이 생길 수밖에 없다.
한학자 총재는 교육기회의 격차를 줄이고 세계 각국의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2013년 원모평애재단을 출범시켰다. 첫해 세계 각국의 고등학생과 대학생 등 700여 명에게 약 40억 원의 장학금을 지원했고, 이듬해에는 52개국 1400여 명을 포함하는 대규모 장학사업으로 확대했다. 현재 장학사업은 원모평애장학원을 중심으로 이어지고 있다.
장학사업이 지향한 것은 단순한 학비 지원을 넘어선다. 장학생들이 자신의 꿈과 진로를 구체화하도록 멘토링과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장학생 간 교류와 봉사활동을 통해 자신이 받은 도움을 다시 사회에 돌려주도록 독려해 왔다. 장학금을 개인적 성공을 위한 지원금으로만 여기지 않고 미래에 또 다른 사람의 기회를 열어주는 ‘나눔의 책임’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것이다.
국가와 종교의 경계를 넘은 장학생 선발도 특징이다. 2016년에는 국내 10개 종단의 추천을 받은 학생 100명을 초종교 장학생으로 선발했다. 서로 다른 신앙을 가진 청년에게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면서 종교 간 이해와 연대의 토대를 넓히려는 시도였다. 세계 각국에서 한국으로 유학 온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장학사업도 진행해 아프리카와 아시아, 유럽과 미주 출신 학생들이 한국에서 공부하고 교류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
국제 장학사업은 교육지원인 동시에 사람과 사람, 국가와 국가를 연결하는 인적 네트워크를 만드는 일이기도 하다. 서로 다른 나라의 학생들이 함께 공부하면서 각자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고, 자국의 문제를 다른 나라의 경험과 비교한다. 이들이 귀국해 교육과 행정, 종교와 경제, 시민사회 등 각 분야에서 활동한다면 한국에서 형성한 관계와 경험은 국가 간 교류를 잇는 자산이 될 수 있다.
장학사업이 폭넓은 청년에게 배움의 기회를 제공한다면 천주평화사관학교(UPA)는 공적 사명을 수행할 평화 지도자를 집중적으로 양성하는 교육과정이다. 한 총재는 2013년 3월 UPA를 출범시켰다. 제1기에는 8개국 출신 43명이 입학해 석사과정과 함께 한국어와 한국문화, 지도자 소양, 강의 능력과 영성교육 등을 받고, 학위과정 이후에는 인턴십과 공적 현장활동을 수행하도록 했다.
‘사관학교’라는 명칭에는 지도자에게 요구되는 책임감과 훈련의 의미가 담겨 있다. 공동체의 어려운 일을 먼저 맡고, 위기 앞에서 물러서지 않으며 자신의 편의보다 공적 가치를 앞세우는 지도자를 길러내겠다는 뜻이다.
다양한 국적의 생도들은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체력단련과 외국어 습득뿐 아니라 발표와 소통능력을 키운다. 해외 현장활동도 소중한 경험이다. 서로 다른 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과 생활하며 갈등을 조정하고 협력하는 과정 역시 중요한 교육이다. 전문성과 자기관리 능력뿐 아니라 사람을 이해하고 함께 일하는 능력을 생활 속에서 훈련하는 것이다.
교육과정은 2020년 대학원 석사과정 중심에서 학부과정으로 확장됐다. 더 많은 청년이 신학과 인문학적 소양, 목회와 현장실무, 해외 언어연수와 글로벌 현장실습 등을 통해 종교지도자이자 평화활동가로서 필요한 역량을 갖출 수 있도록 교육의 폭을 넓혔다.
원모평애장학원이 청년에게 ‘배울 기회’를 열어주는 사업이라면 UPA는 그 배움을 ‘공적 책임’으로 발전시키는 지도자 교육이라 할 수 있다. 두 사업이 궁극적으로 청년에게 던지는 질문도 맞닿아 있다. ‘무엇이 될 것인가’를 넘어 ‘배운 것을 누구를 위해 사용할 것인가’라는 물음이다. 교육의 기회를 받은 사람이 자신의 전문성과 재능으로 또 다른 사람의 기회를 열어주는 선순환, 그것이 한 총재가 미래세대 인재 양성에 담아온 중요한 가치다.
2026-09-14 18:2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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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은 평화의 주역… 인성·공공성 갖춘 ‘책임있는 세계 시민’ 양성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70년-글로벌 평화운동]
2024년 9월, 서아프리카의 섬나라 상투메 프린시페에 세계 각국의 청년학생들이 모였다. 이들은 낡은 학교의 벽을 고치고 교실을 청소하며 현지 학생들과 함께 구슬땀을 흘렸다. 언어도, 자라온 환경도 달랐지만 ‘지역사회의 문제를 함께 해결한다’는 목표 앞에서는 원팀이었다.
세계평화청년학생연합(YSP)이 개최한 ‘2024 피스디자이너 글로벌 캠프’에 참가한 100여 명의 청년학생은 상투메 프린시페 교육부가 지정한 학교 네 곳에서 시설 보수와 환경정화 활동을 펼쳤다. ‘지도력·전문성·진실성의 향상’을 주제로 한 인성교육도 함께 받았다. 한학자 총재가 2019년 상투메 프린시페 국회에서 발표한 ‘평화선언’ 5주년을 맞아 마련된 이 캠프는 청년교육이 어떻게 평화운동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 현장이었다.
한 총재는 청년을 미래의 지도자를 넘어 오늘의 사회문제를 해결해야 할 평화의 주역으로 보았다. 젊음의 열정과 전문성만으로 평화로운 세계가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뛰어난 지식과 기술도 그것을 어떤 목적에 사용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가치관이 바로 서지 않으면 공동체를 위한 힘이 아니라 갈등과 경쟁의 도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총재가 청년교육에서 인성과 공공성을 강조해 온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인성은 자신의 말과 행동을 일치시키고 타인의 존엄성을 존중하며 개인의 성공을 공동체의 행복과 연결하는 내적 품성이다. 공공성은 자신의 지식과 재능을 개인의 이익에만 사용하지 않고 이웃과 사회, 인류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활용하려는 책임의식이다.
이러한 교육철학을 실천하는 대표적인 활동이 YSP의 ‘피스디자이너’ 운동이다. 2017년 한국에서 창설된 YSP는 국가의 경계를 넘어 청년들을 책임 있는 세계시민으로 성장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며, 2022년 유엔 경제사회이사회(ECOSOC) 특별협의지위를 획득했다.
피스디자이너는 평화를 이미 완성된 이론으로 받아들이는 데 머물지 않고 자신이 속한 학교와 마을, 국가의 문제를 직접 발견해 해결책을 설계하고 실행하는 청년을 뜻한다. 참가자들은 통일과 환경, 교육, 인권, 지역공동체 등의 문제를 조사해 과제를 선정하고 동료들과 프로젝트를 기획한다. 활동이 끝나면 성과와 한계를 평가하고 경험을 공유한다. 이 과정에서 지도력이 앞에서 명령하는 능력이 아니라 구성원의 의견을 듣고 서로 다른 능력을 연결해 공동의 목표를 이루는 힘임을 배운다.
2023년 스위스에서 진행된 피스디자이너 유엔캠프도 이러한 교육의 한 사례다. 참가 학생들은 제네바 유엔본부와 국제적십자위원회 등을 방문해 인권과 지속가능발전목표, 기후변화에 대한 국제사회의 대응을 배우고 자신들이 1년 동안 진행한 캠페인의 성과를 국제무대에서 발표했다. 국제기구 견학에 그치지 않고 자신들의 활동을 세계적 의제와 연결한 것이다.
피스디자이너가 청년의 사회적 실천을 강조한다면, ‘퓨어워터(Pure Water)’는 그 실천을 가능하게 하는 내면의 기준에 가깝다. 한 총재는 맑은 물이 오염된 곳을 씻어내고 생명을 살리듯, 순수한 마음과 올바른 가치관을 지닌 청년들이 갈등과 이기주의로 혼탁해진 세상을 맑게 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미래세대를 퓨어워터라고 불러왔다.
퓨어워터 교육은 신앙과 인성교육, 공동체생활, 봉사와 문화교류, 리더십 프로그램을 통해 정직과 책임, 공감과 봉사의 가치를 삶의 태도로 익히도록 한다. 2025년에는 한국과 일본, 미국, 유럽, 아프리카, 중남미, 아시아태평양 등에서 온 20·30세대 청년 약 1500명이 ‘퓨어워터 어셈블리’에 참여해 21일 동안 평화교육과 글로벌 리더 교육, 공동체 활동 등을 함께했다.
서로 다른 국적과 문화의 청년들이 함께 생활하고 협력하는 과정 자체가 평화교육이 된다. 타인을 배려하며 자신의 습관을 돌아보고, 의견이 충돌할 때 대화와 양보를 배우며, 맡은 역할을 끝까지 수행하면서 책임감을 익힌다. 세계평화가 나와 다른 사람과 조화롭게 살아가는 능력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생활 속에서 경험하는 것이다.
퓨어워터가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를 묻는 교육이라면, 피스디자이너는 ‘그 사람이 세상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묻는 실천이다. 올바른 내적 기준을 세우고 그 가치관을 사회문제 해결로 연결하는 것. 한 총재가 추진해 온 청년 인성교육은 평화를 배우는 청년을 넘어 스스로 평화를 설계하고 행동하는 청년을 세우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2026-09-14 18:2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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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연합 경남사회공헌단 출범… 토월천 정화로 첫발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가정연합·옛 통일교) 경남교구가 토월천 환경정화 활동을 시작으로 지역사회 봉사와 나눔을 위한 첫발을 내디뎠다.
가정연합 경남교구(교구장 연인기)는 13일 오후 경남 창원시 토월천에서 경남사회공헌단 출범을 기념하는 환경정화 활동을 펼쳤다. 경남지역 시·군 사회공헌단장들은 유용미생물군(EM)과 황토 등을 섞어 만든 흙공 300여 개를 하천에 던지며 수질 개선과 악취 저감에 힘을 보탰다.
이날 사용된 EM흙공은 창원가정교회 신자들이 지난달 30일 환경보호의 뜻을 담아 직접 제작해 약 2주 동안 숙성한 것이다. 참석자들은 하천 주변을 살피며 생활 속 환경보호와 지속적인 지역 봉사활동에 앞장설 것을 다짐했다.
이에 앞서 경남교구는 이날 창원가정교회 대성전에서 경남지역 21개 교회의 시·군 사회공헌단장과 단원 등 14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경남사회공헌단 출범식’을 열었다.
경남사회공헌단은 가정연합이 창립 72주년을 맞아 지난 6월 15일 전국사회공헌단을 출범시킨 데 따른 지역 조직이다. 가정연합의 핵심 가치인 ‘위하여 사는 참사랑’을 지역사회에서 실천한다는 취지로 환경정화와 취약계층 지원, 이웃 돌봄, 다문화가정 지원, 재난구호 등 폭넓은 사회공헌 활동에 나설 계획이다.
출범식에서는 이미자 경남사회공헌단장이 향후 활동계획을 발표했으며, 시·군 교회 사회공헌단장에 대한 임명장 수여와 비전선언문 낭독이 이어졌다.
연인기 경남교구장은 “경남사회공헌단 출범은 하나의 봉사조직을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가정연합이 믿고 실천해 온 참사랑과 위하여 사는 삶의 가치를 지역사회에서 구체적으로 구현하는 출발”이라고 말했다. 이어 “사회공헌은 한 사람을 이해하고 한 가정을 돌보며 어려운 이웃의 손을 잡아주는 작은 실천에서 시작된다”며 “어르신과 다문화가정, 미래세대를 돌보고 환경을 보전하는 활동을 통해 가정연합이 지역사회의 가장 가까운 이웃으로 서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강동훈 가정연합 사회공헌국장은 공동체의 회복과 치유를 위한 봉사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가정이 행복한 교회, 신자와 이웃을 위해 봉사하는 교회가 될 때 공동체가 다시 살아나고 새로운 이들도 함께할 수 있다”고 밝혔다.
참석자들은 비전선언문을 통해 참사랑을 실천하고 사회적 책임을 다하며, 꾸준한 행동으로 지역사회에서 신뢰받는 공동체를 만들어갈 것을 결의했다. 경남사회공헌단은 앞으로 ‘1교회 1봉사, 1지역 1희망’을 목표로 각 지역의 여건에 맞는 봉사활동을 발굴해 경남 전역으로 확산할 방침이다.
2026-09-14 10:5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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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칼럼] ‘종교 역수출’의 길을 연 김상철
한국 종교의 서구 ‘역수출’은 상상하기조차 어려웠던 시대에 일어났다. 1950년대 한국은 서구 선교사에게 복음을 배우고 국제사회의 원조를 받던 전쟁의 폐허 위에 있었다. 그런 때 서울의 작은 집에서 출발한 통일교가 창립 5년 만에 미국 선교에 나선 것이다. 돈도 조직도 변변치 않았던 신생 교회가 어떻게 태평양을 건너 세계적 기반을 닦을 수 있었을까. 그 길목에는 공직에 몸담으면서 해외 선교의 문을 연 김상철이 있었다.
1915년 서울에서 태어난 김상철은 연희전문학교 영문과(현 연세대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한 뒤 공직에 몸담았다. 6·25전쟁 당시에는 재무부 국고지출관으로 전주에서 근무했다. 인민군이 밀려오자 국군과 피란민을 따라 남쪽으로 향하던 그는 남원 인근에서 뜻밖의 영적 체험을 했다. 자색 옷을 입은 노인이 환상에 나타나 사람들이 가는 길을 따르지 말고 산기슭의 청룡사에 머물라고 했다. 그 말에 따라 그는 청룡사에 몸을 숨겼다. 뒤늦게 들으니 함께 남하하던 사람들은 죽거나 붙잡혔다고 했다. 인민군 보안서원들이 사찰까지 찾아와 바로 앞을 지나면서도 그를 발견하지 못한 일도 있었다. 김상철은 이를 영계의 보호로 받아들였다. 목숨을 건지면 남은 생애를 인류를 위해 바치겠다는 서원도 세웠다. 훗날의 선교 사명은 이때 이미 그의 내면에서 시작됐는지도 모른다.
김상철은 1954년 5월 문선명 총재와 유효원·이창환·유효민·박정화 등과 함께 서울에서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통일교) 창립에 참여한 초기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는 영문 전도지를 만들고 원리 말씀을 영어로 옮기는 일에도 힘을 보탰다. 그에게는 ‘다윗’이라는 이름과 함께 해외 개척선교사의 사명이 있다는 영적 메시지도 주어졌다고 한다.
그해 8월 뜻밖의 길이 열렸다. 유엔 개발원조 프로그램에 따라 정부가 선발한 공무원 연수생 3명 가운데 한 명으로 영국에 가게 된 것이다. 그는 웨일스대학교에서 사회정책과 후생을 연구하는 공식 일정을 수행하고, 여가에는 개인 자격으로 현지 기성교회를 찾아 통일교의 가르침을 알렸다. 당시 세계인의 눈에 비친 한국은 참혹한 전쟁을 치른 가난한 나라였고, 서구의 원조와 선교가 필요한 땅이었다. 그런 때 한국인 공무원이 영국에 건너가 한국에서 태동한 새로운 신앙과 사상을 알린 것이다. 서구에서 기독교를 받아들였던 한국이 이제는 자신이 해석하고 체계화한 종교사상을 서구에 전한, 말하자면 ‘신앙의 역수출’이었다.
1955년 김상철은 웨일스에서 열린 국제사도교회 연차대회 연단에도 섰다. 세계 각국의 교회 지도자와 평신도 등 3000여 명이 모인 자리였다. 당초 10분으로 예정됐던 그의 연설은 25분간 이어졌다. 그는 문선명 총재를 중심으로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새로운 기독교운동과 원리 말씀을 소개했다. 전쟁의 폐허 속에 있는 한국에도 세계를 향해 전할 수 있는 새로운 종교운동이 있음을 알린 것이다.
그의 연설을 계기로 사도교회는 이듬해 여호수아 맥케이브 목사를 한국에 파견했다. 맥케이브 목사는 80일간 머물며 통일원리를 공부하고 영문 번역도 도왔다. 비록 두 교단의 공식 제휴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서구 교회 인사가 한국을 찾아와 한국에서 시작된 신앙을 장기간 연구한 것은 의미 있는 일이었다. 과거에는 한국인이 서양 선교사에게 성경을 배웠다면, 이제는 서양 목사가 한국을 찾아와 한국에서 체계화된 종교사상을 공부한 것이다.
영국에서 돌아와 한동안 외무부에서 공직 생활을 이어가던 김상철은 1959년 가슴에 품어온 선교 사명을 실천하기 위해 미국으로 향했다. 그는 미국 서부 지역을 맡아 1960년 오리건주에 성 헬렌스 통일교회와 성경연구회를 세웠다. 1961년 말부터는 ‘새 시대를 위한 새소식’을 주제로 심령대부흥회를 열었고, 1962년에는 시애틀에 교회를 설립했다. 그해 포틀랜드에서 시카고까지 11개 주를 도는 40일 순회전도에도 나섰다. 자동차로 미 대륙의 3분의 2 이상을 달리는 강행군이었다. 1964년에는 약 3000마일을 달려 시카고에 교회를 세웠다. 일행은 경비를 아끼려고 모텔 대신 천막과 자동차, 공원에서 밤을 보내기도 했다. 그러한 악조건 속에서도 그는 미국 곳곳에 한국에서 출발한 종교의 이름을 알렸다.
초기 통일교의 성장은 원리라는 교리체계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김상철의 증언 곳곳에는 환상과 계시, 기도와 영적 체험이 등장한다. 당시 신도들에게 원리와 신령 역사는 신앙을 움직이는 두 축이었다. 새로운 진리를 발견했다는 확신이 방향을 제시했다면, 영적 체험은 낯선 땅에서 고난을 견디게 하는 힘이 됐다. 1972년 문 총재가 미국 활동을 본격화했을 때 그곳에는 이미 앞서간 선교사들이 닦아놓은 기반이 있었다. 김상철은 이후 국제기동부흥단과 초교파운동, 국제구호사업에 참여했고 1975년에는 통일신학대학원 원장을 맡아 세계에서 활동할 인재를 길러냈다.
지금은 한국의 종교와 문화가 세계로 진출하는 일이 낯설지 않지만, 1950년대에는 상상하기 어려웠다. 공직자였던 김상철은 원조를 받던 한국에서 서구로 신앙을 전했고, 그가 영국과 미국에 뿌린 작은 씨앗은 훗날 통일교의 세계적 기반으로 자라났다. 전쟁의 폐허 속에서도 세계를 향해 먼저 길을 떠난 사람이 있었던 것이다.
2026-09-11 17: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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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평화 머리 맞댄 세계 지도자·전문가들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70년-글로벌 평화운동]
세계적 평화 네트워크의 경험과 지혜가 향한 중요한 현장 가운데 하나는 한반도였다. 한반도의 분단은 남북한뿐 아니라 미국과 중국, 일본과 러시아의 이해가 얽힌 국제적 문제다. 북핵과 군사적 긴장, 경제제재와 인권, 이산가족과 문화적 단절 등 여러 과제가 중첩돼 있어 정부 간 협상만으로 지속 가능한 해법을 마련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싱크탱크 2022’ 출범… 반기문 전 총장이 위원장
한학자 총재는 세계 지도자와 전문가들의 지혜를 한반도 문제에 모으기 위해 2021년 ‘싱크탱크 2022’를 출범시켰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위원장을 맡았으며 전·현직 정상과 정치·외교·안보 전문가, 종교·경제·학술·언론·문화예술 지도자들이 참여해 한반도의 화해와 평화통일 방안을 모색했다.
논의는 비핵화와 외교안보에 국한되지 않았다. 비무장지대 유엔평화공원 조성, 남북 경제협력과 금강산 개발, 이산가족 상봉, 보건의료와 식량안보, 문화·스포츠 교류, 한일해저터널 등 사회·경제·문화 분야까지 포괄했다. 한반도 평화를 전쟁이 없는 상태를 넘어 남북 주민이 함께 살아갈 사회적 기반과 공동번영의 조건을 만드는 과정으로 본 것이다.
이러한 노력은 2022년 2월 서울에서 열린 ‘한반도 평화서밋’으로 이어졌다. 천주평화연합(UPF)과 캄보디아 정부가 공동주최하고 훈센 당시 캄보디아 총리와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공동위원장을 맡았다. 남북한 가운데 한쪽 이상과 외교관계를 맺은 157개국을 포함해 약 160개국이 참여했으며, 70개국의 세계 지도자 85명이 참석하거나 영상으로 의견을 전했다.
한반도와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크지 않은 국가의 지도자들까지 참여한 것은 한반도 평화를 남북과 주변 강대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 공동의 과제로 확장하려는 시도였다. 전쟁과 내전, 분단과 갈등을 경험한 각국 지도자들은 자국의 경험을 토대로 화해와 신뢰 구축, 국가 재건의 지혜를 공유했다. 한 총재는 이를 한반도에 연결해 한반도 평화가 동북아시아 안정과 세계평화로 이어지는 선순환을 만들고자 했다.
이러한 접근에는 한 총재가 강조해 온 민간외교의 특징이 담겨 있다. 정치적 입장이나 종교적 배경이 다른 지도자를 적과 동지로 나누기보다 공동의 문제를 함께 풀어야 할 인류 가족으로 바라보고, 서로의 경험과 고통을 들으며 대화의 공간을 넓혀 가는 방식이다. 이는 갈등하는 구성원을 포기하지 않고 대화의 자리로 불러 모으며 약자의 생명과 미래까지 책임지려는 한 총재의 ‘모성적 리더십’과도 맞닿아 있다.
물론 민간 차원의 글로벌 거버넌스가 조약을 체결하거나 법적 강제력을 행사할 수는 없다. 정상회의와 지도자 네트워크만으로 국가 간 이해충돌이나 전쟁을 해결할 수도 없다. 한반도 평화 역시 남북 당사자와 주변국 정부의 정치적 결단이 뒷받침돼야 한다.
인적 네트워크의 최종 목표는 한반도·세계평화 모색
그럼에도 민간 외교는 공식 외교가 멈춘 순간에도 대화의 통로를 완전히 닫지 않는 데 의미가 있다. 정부 간 관계가 악화되더라도 종교와 학술, 문화와 경제, 전직 지도자와 시민사회의 교류가 이어진다면 다시 대화를 시작할 신뢰의 자산이 남는다.
2005년 천주평화연합 창설에서 시작해 정상과 국회의원, 종교인과 학자, 언론인과 경제인, 여성과 청년으로 확장된 평화 네트워크는 결국 하나의 질문을 향해 있다. 국가와 종교, 인종과 이념의 경계를 넘어 인류가 어떻게 함께 살아갈 것이냐는 물음이다. 세계의 다양한 지도자를 만나게 하고 그 만남을 지속적인 관계와 협력으로 발전시켜 한반도와 세계의 평화를 모색하는 것, 그것이 한 총재가 구축해 온 글로벌 거버넌스가 지향해 온 길이다.
2026-09-07 16:5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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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급 지도자부터 시민사회까지 협력의 지평 확장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70년-글로벌 평화운동]
세계평화를 위한 협력은 정상과 정부 지도자들만으로 완성될 수 없다. 정책과 법률을 만드는 국회의원, 인간의 양심과 영성을 일깨우는 종교인, 사회문제를 연구하는 학자, 여론을 형성하는 언론인, 경제적 기회를 창출하는 기업인까지 모두가 각자의 전문성을 가지고 참여할 때 평화는 제도와 문화, 일상의 영역으로 확산될 수 있다.
한학자 총재의 평화 네트워크도 이런 방향으로 확대됐다. 2016년 대한민국 국회에서 출범한 세계평화국회의원연합(IAPP)은 세계 각국 국회의원들이 정당과 이념, 국경을 넘어 기후위기와 극단주의, 인도적 재난과 분쟁 등 공동의 문제를 논의하는 네트워크다. 국민을 대표하고 법률과 예산을 다루는 국회의원이 평화정책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도록 한 것이다.
종교·학술·언론·경제 분야로 협력의 틀 확대
2017년에는 세계평화종교인연합(IAPD)이 창설됐다. 한 총재는 종교가 교리와 교파의 차이로 갈등하기보다 사랑과 자비, 인간 존중이라는 보편적 가치를 중심으로 협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치가 법과 제도를 통해 외적 질서를 세운다면 종교는 인간의 내면을 변화시키고 증오와 원한을 화해와 용서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종교인연합은 국회의원연합과 협력하며 정치와 종교가 각자의 영역을 존중하면서 평화를 위해 힘을 모으는 구조를 지향했다.
평화 네트워크는 2020년 월드서밋을 계기로 학술·언론·경제 분야까지 넓어졌다. 세계평화학술인연합(IAAP), 세계평화언론인연합(IMAP), 세계평화경제인연합(IAED) 등이 출범했다. 학자는 세계 문제를 연구해 정책적 대안을 제시하고, 언론인은 사실과 책임에 기초한 보도로 갈등과 편견을 줄이며, 경제인은 빈곤과 불평등을 완화하고 공동번영을 뒷받침하는 역할을 맡는다는 취지였다. 여기에 여성과 청년, 문화예술 지도자 등의 네트워크까지 더해지면서 정상에서 시민사회로 이어지는 다층적 협력체계가 형성됐다.
이처럼 다양한 분야를 연결한 것은 오늘날 세계의 문제가 어느 한 영역의 활동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울 만큼 복합적이기 때문이다. 전쟁과 분쟁에는 군사·외교뿐 아니라 역사와 종교, 경제적 불평등과 잘못된 정보가 얽혀 있고, 기후위기는 식량과 빈곤, 난민과 국제안보로 이어진다. 따라서 정치인의 협상이나 종교인의 기도, 학자의 연구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서로 다른 분야의 지식과 경험, 자원을 연결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공생·공영·공의’라는 공동의 가치 아래 하나로
이러한 다층적 글로벌 거버넌스를 하나로 묶는 가치적 토대가 ‘공생·공영·공의’다. 공생은 부와 자원이 일부 국가나 계층에 독점되지 않고 삶에 필요한 자원과 기회를 함께 나누는 경제질서를, 공영은 지배와 대립을 넘어 공동체의 의사결정에 함께 참여하고 번영하는 정치질서를 지향한다. 공의는 개인과 국가가 사적 이익만을 좇지 않고 사랑과 정의, 책임과 봉사라는 보편적 가치에 따라 행동해야 한다는 공동윤리를 뜻한다.
한 총재는 공생이 없는 경제는 빈곤과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공영이 없는 정치는 권력투쟁과 국가이기주의에 빠지며, 공의가 없는 사회는 풍요와 제도를 갖추더라도 이기주의와 부패를 극복하기 어렵다고 보았다. 정상과 국회의원, 종교인과 학자, 언론인과 경제인, 여성과 청년이 각자의 역할을 다하면서 공동의 가치 아래 연결되는 것. 그것이 한 총재가 추구한 다층적 평화 네트워크였으며, 그 경험과 지혜는 다시 한반도라는 구체적인 평화의 현장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2026-09-07 16:5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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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 주도로 국가 간 연대 넓혀… 세계평화 ‘다리’ 놓다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70년-글로벌 평화운동]
2020년 2월 경기도 고양시 킨텍스에 세계 각국의 지도자들이 모여들었다. 전·현직 국가수반과 국회의장, 장관과 국회의원, 종교지도자와 학자, 언론인과 기업인, 여성·청년지도자 등 170개국, 6000여 명이 한자리에 참석했다. 국적과 인종, 종교와 정치적 이념은 달랐지만, 이들이 마주한 문제는 하나였다. 갈등과 분열이 심화되는 세계에서 어떻게 지속 가능한 평화를 실현할 것인가.
UPF 바탕 170개국 지도자 월드서밋 발전
‘공생·공영·공의를 통한 세계평화와 한반도 통일’을 주제로 열린 ‘월드서밋 2020’의 중심에는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한학자 총재가 있었다. 한 총재는 기후위기와 빈곤, 종교 갈등과 전쟁, 난민과 인권 문제는 어느 한 나라의 힘만으로 해결할 수 없으며 정치와 종교, 경제와 학문, 언론과 시민사회가 함께 책임을 나누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170개국 지도자들이 모인 월드서밋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다. 그 중심적 플랫폼은 문선명·한학자 총재가 2005년 창설한 천주평화연합(UPF)이었다. UPF는 세계 각국의 정치·종교·사회 지도자들을 ‘평화대사’로 연결하고 국제회의와 지도자 포럼, 종교 간 대화와 지역 평화사업을 통해 지속적인 협력의 통로를 만들어 왔다. 이러한 활동을 이어온 UPF는 2018년 유엔 경제사회이사회로부터 포괄적 협의지위를 부여받았다.
한 총재가 주목한 것은 정부 간 외교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영역이었다. 정부는 국가의 이익을 대표하기 때문에 국제정세와 이해관계에 따라 대화가 중단될 수 있다. 반면 민간외교는 정치적 이해를 넘어 사람과 사람 사이에 신뢰를 형성하고 대화의 가능성을 넓힐 수 있다. 한 총재는 이러한 민간외교를 국가와 국제기구, 종교와 시민사회, 전문가 집단이 공동의 문제를 함께 해결하는 글로벌 거버넌스로 발전시키고자 했다.
자국 이익 추구 정부 간 외교 빈 틈 메워
이러한 구상은 2018년 이후 세계 각 지역에서 열린 정상회의를 통해 구체화됐다. 2018년 세네갈 아프리카 서밋과 네팔 아시아·태평양 서밋에 이어 2019년 남아프리카공화국과 니제르·상투메프린시페, 알바니아 등에서 정상회의가 열렸다. 각국 전·현직 지도자와 국회의원, 종교지도자들은 빈곤과 교육, 종교 갈등, 청년실업, 기후환경 등 지역 현안을 논의했다.
특히 한 총재는 국가 운영 경험을 지닌 전직 정상들의 역할에 주목했다. 이들은 현직 지도자보다 정치적 부담에서 비교적 자유로워 분쟁 중재와 장기적 대안 제시에 나설 수 있고, 현직 정상과 연결될 경우 그 경험이 실제 정책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구상은 2019년 서울 월드서밋을 계기로 세계평화정상회의(ISCP)로 구체화됐다. 전·현직 국가수반과 정부 수반이 평화와 안보, 인간개발 등 국제사회의 주요 현안을 지속적으로 논의하는 지도자 네트워크였다. 여기에는 강대국뿐 아니라 아프리카와 태평양 도서국, 동남아시아와 발칸반도 국가의 지도자들도 참여했다. 국가의 크기와 경제력을 넘어 모든 나라를 인류 공동체의 동등한 구성원으로 바라보는 ‘인류 한 가족’의 관점이었다.
전·현직 정상들 모여 국가 운영 지혜 나눠
이러한 흐름은 2020년 월드서밋에서 집약됐다. 국가의 경계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국가와 국가 사이에 다리를 놓고, 공식 외교가 닿기 어려운 곳에 민간의 신뢰와 관계를 연결하는 것. 다양한 나라와 지도자들이 세계평화에 대한 책임을 함께 나누는 것이 한 총재가 추구한 글로벌 거버넌스의 출발점이었다.
2026-09-07 16:5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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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연합 ‘독생녀 교리’, 세계 신학계의 언어로 옮기다
양순석 역사신학자, 논문서 ‘실체성령’ 개념으로 체계적 변증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의 신학적 근간을 이루는 통일신학에서 ‘독생녀’는 핵심 교리다. 그러나 그동안 이 교리는 신앙적 선언과 섭리적 해석의 영역에서 주로 다뤄져 왔다. 특히 전통 기독교 신학에는 존재하지 않는 개념인 만큼 이를 어떤 신학적 언어로 설명할 것인지는 오랫동안 남은 과제였다. 역사신학자 양순석 박사(전 한민족선민연구원 연구위원)가 최근 발표한 논문 ‘성령의 실체화와 독생녀 강림: 실체성령 개념을 중심으로 한 역사신학적 변증’은 이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다.
‘성령의 육화’ 아닌 ‘성령의 실체화’
논문의 핵심 명제는 명확하다. 독생녀는 ‘성령의 육화’가 아니라 ‘성령의 실체화’, 곧 실체성령이라는 것이다. 양 박사에 따르면 여기서 독생녀란, 하나님 자체나 성령이 육화한 존재가 아니라, 타락하지 않은 순수한 혈통으로 태어나 하늘부모님(하나님)의 여성적 성상과 어머니 신성을 온전히 체현하고 신인애일체(神人愛一體)를 이룬 실체성령이자 실체 참어머니를 뜻한다.
양 박사가 두 개념을 엄격하게 구분한 것은 의미가 크다. 전통 기독교의 성육신은 하나님의 제2위격인 로고스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인간의 본성을 취했다는 교리다. 이에 비해 통일원리가 말하는 실체화는 무형의 하나님의 신성이 창조목적을 완성한 인간을 통해 온전히 드러나는 것을 뜻한다. 독생녀를 성령의 육화라고 표현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전통 신학과의 충돌을 피하면서 통일원리 고유의 관점에서 그 정체성을 설명하려 한 것이다.
양 박사는 독생녀 교리를 가정연합 내부의 주장에만 가두지 않는다. 초기 시리아 기독교에서 성령을 여성형으로 표현하고 어머니로 이해했던 전통, 초대교회의 동정 순교자들, 중세 유럽의 신부신비주의, 근대 성령운동과 한국 신령집단으로 이어지는 흐름을 폭넓게 추적한다. 기독교 역사에서 성령의 여성성과 모성, 그리스도를 맞이할 신부에 대한 열망이 끊임없이 나타났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기독교 2천 년의 신부 영성을 잇다
논문은 이러한 역사를 성령 섭리의 세 단계로 정리한다. 오순절 이후 성령이 영적으로 중생의 역사를 펼친 ‘무형의 역사’, 그리스도의 신부가 될 준비를 해온 ‘신부 준비의 역사’, 그리고 독생녀의 탄생으로 어머니 신성이 실체적으로 나타난 ‘실체 강림’이다. 교회를 그리스도의 신부로 본 교회론적 전통과 개별 영혼을 신부로 이해한 신비론적 전통도 독생녀의 강림에서 하나로 수렴한다고 해석한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독생자와 독생녀를 대칭적으로 설명하려는 시도다. 하늘부모님이 남성성과 여성성을 함께 지닌 이성성상(二性性相)의 존재라면, 그 형상이 남성과 여성의 실체를 통해 온전히 드러나야 한다는 것이다. 이 관점에서 독생자는 하늘부모님의 남성적 신성을 대표하고, 독생녀는 여성적 신성을 대표한다. 두 존재가 1960년 성혼식을 통해 참부모를 이룸으로써 요한계시록의 어린 양 혼인잔치가 실현되고, 무형의 하늘부모님이 실체 참부모로 현현했다는 것이 논문의 결론이다.
이 논문의 가장 큰 성과는 독생녀 교리를 단편적인 성서 구절이나 신앙적 고백에 그치지 않고, 기독교 2천 년의 성령론과 신부 영성의 역사 속에 자리매김하려 했다는 데 있다. 나아가 성부·성자 중심으로 전개돼 온 전통 신학이 충분히 밝히지 못했던 하나님의 여성성과 모성을 복원하고, 이를 ‘하늘부모님’이라는 통일신학의 신관으로 연결했다. 독생녀 교리를 설명할 수 있는 하나의 체계적인 신학적 틀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선구적인 시도라 할 만하다.
독생녀 교리를 신학의 언어로
다만 역사 속에 성령의 여성성과 신부 영성이 존재했다는 사실과 특정 인물을 실체성령으로 고백하는 것은 서로 다른 차원의 문제다. 전자는 문헌과 사료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역사적 사실이지만, 후자는 그 사실에 섭리적 의미를 부여한 신학적 해석이자 신앙고백이다. 두 지점 사이를 더욱 설득력 있게 연결하려면 성서 해석과 교회사적 근거, 통일원리 내부의 논리적 정합성에 대한 후속 연구가 필요하다. ‘역사신학적 변증’이 역사적 사실에 의한 객관적 증명을 의미한다기보다 역사의 흐름을 통일신학의 섭리관으로 재해석한 논증이라는 점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그럼에도 양 박사의 연구는 독생녀 교리를 둘러싼 논의를 새로운 단계로 끌어올렸다. 독생녀가 누구인가를 선언하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왜 독생녀가 기독교 역사와 신학의 귀결로 이해될 수 있는지를 설명하려 했기 때문이다. 독생녀 교리를 가정연합 내부의 신앙 언어에서 세계 신학계와 소통할 수 있는 학문적 언어로 옮기는 작업이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이 논문은 그 길을 여는 마중물이다.
2026-09-04 12:5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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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칼럼] 피를 팔아 교회 세운 청년, 알래스카 바다를 개척하다
종교의 역사는 이름 없이 땀 흘린 평신도들의 삶 위에 세워진다. 오늘날 세계 곳곳에 기반을 둔 통일교 역시 마찬가지다. 그 성장의 이면에는 젊음과 생업, 때로는 자신의 몸까지 내놓으며 개척에 나선 초기 신앙인들이 있었다. 최주찬은 그런 사람 가운데 한 명이었다.
1937년 일본 나고야에서 태어난 최주찬은 해방 후 한국으로 건너와 어려운 성장기를 보냈다. 1956년 통일교에 입교한 뒤 성균관대 영문학과에 진학했지만, 그의 청춘은 캠퍼스보다 개척지를 향했다. 대학 3학년을 앞두고 충북 괴산의 농촌으로 개척전도를 떠났다. 변변한 교회조차 없던 시절이었다. 그는 중학교에 가지 못한 청년들에게 한문과 영어를 가르치며 주민들과 가까워졌다. 그러던 중 낡은 방앗간을 발견하고 교회로 만들기로 마음먹었다.
문제는 돈이었다. 그는 친구와 함께 서울 세브란스병원을 찾아가 피를 팔았다. 그렇게 받은 매혈금과 가정교사를 하며 번 학비를 모아 헌 방앗간을 샀다. 지붕에 얹을 볏짚을 구하기 위해 농촌의 타작일까지 도왔다. 피를 뽑아 몸이 약해진 상태에서 타작기를 돌리다 손가락이 기계에 빨려 들어가는 사고까지 당했다. 다행히 손가락을 잃지는 않았지만, 병원에도 가지 못한 채 누워 있어야 했다. 그렇게 마련한 볏짚으로 지붕을 덮으며 첫 교회를 세웠다.
군 복무 후 천안지역 책임자가 된 뒤에도 사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먹을 것이 없어 학생들이 가져오는 고구마와 감자로 끼니를 때우기도 했다.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빵 장사를 했다. 이후 통일산업에서 생산한 B-3 산탄 공기총 판매에도 뛰어들었다. 자전거에 공기총을 싣고 다니며 판 돈을 모아 천안의 일본식 적산가옥을 구입해 다시 교회로 만들었다. 최주찬에게 교회는 누군가 지어주는 건물이 아니었다. 자신의 손으로 벌어, 자신의 손으로 세우는 곳이었다.
그의 삶을 크게 바꾼 것은 바다였다. 선교사 발령을 받고 미국으로 건너간 그는 문선명 총재와 함께 참치잡이에 나섰다. 뱃멀미로 고생하면서도 매일 바다에 나갔고, 그 과정에서 한 가지 결심을 세웠다. 예수의 어부 출신 제자 베드로처럼 ‘통일가의 베드로가 되자.’ 이후 그의 인생에서 바다는 치열한 사업장이면서 신앙의 현장이 됐다.
1979년 알래스카 코디악에 도착했을 때 그를 기다린 것은 허허벌판에 낡은 통나무집 한 채가 전부였다. 그는 약 8개월 동안 라면으로 끼니를 해결할 정도로 어려운 환경에서 버텼다. 그러나 코디악에 ‘하나님의 궁전’을 만들겠다는 생각으로 자리를 지켰고, 마침내 현지 통일교계 수산회사 ISA의 책임을 맡아 사업 기반을 다져나갔다.
혹한 속에서 땅을 녹여가며 수산공장을 건설했고 가공·냉동·수출 체계를 갖췄다. 이후 사업이 계속 성장해 ISA의 전성기에는 합숙 직원만 150명에 이르렀고, 연어 구매센터를 세워 가공한 수산물을 한국과 일본 등으로 내보냈다. 기록에는 한때 연간 수억 달러의 실적을 올렸다는 회고도 남아 있다. 1988년에는 국제 수산사업을 총괄하는 IOE 제2대 회장을 맡아 통일교 수산업의 총책임자로 활동했다.
그가 일군 사업의 결실은 다시 공동체로 돌아갔다. 드디어 코디악에 교회를 세우고, 아래층에는 ‘엔젤가든’이라는 유치원을 마련했다. 신앙 공간과 더불어 지역 주민을 위한 자녀 교육 공간을 함께 건립한 것이다. 한국에서 피를 팔아 낡은 방앗간을 교회로 만들었던 청년이 수십 년 뒤에는 알래스카에서 수산업의 기반을 닦고 교회와 교육 공간까지 세운 것이다.
미국 사회에서 그는 통일교인인 동시에 한국인이었다. 1988년 미국 북서부 시애틀 한인회장에 선출된 뒤 한인회관을 마련하겠다는 약속을 내걸었다. 모금 운동을 벌여 12만5000달러를 모았고, 결국 시애틀 도심 남쪽의 2층 건물을 매입해 한인회관을 장만했다. 그해 시애틀 한인 대표 올림픽위원과 평화통일 자문위원으로도 활동했다.
최주찬의 삶을 관통하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의 회고 마지막에는 그 답을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 있다. 그는 세상에 아직 헐벗고 굶주리는 사람이 많다는 사실을 안타까워하며, 바다의 무궁무진한 자원을 활용해 인류의 삶을 풍요롭게 해야 한다는 문선명·한학자 총재의 뜻을 마음에 새겼다. 훗날 알래스카가 인류의 식량난 해결과 세계평화를 위한 두 지도자의 구상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 믿은 것이다.
오늘날 통일교의 번듯한 외형만 본다면 그 역사의 한쪽을 놓치게 된다. 교회 한 채를 세우기 위해 자신의 피까지 팔고 사업 현장에 뛰어든 청년들이 있었고, 흙벽돌로 움막을 지어 예배당으로 삼아야 했던 개척교회의 애환도 있었다. 최주찬에게 신앙은 말로 고백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교회가 필요하면 직접 세웠고, 사업의 길이 막히면 새로운 길을 냈으며, 한인사회에 회관이 필요하자 약속한 건물을 끝내 마련했다. 그는 ‘수산업 개척자 베드로’가 되겠다는 다짐을 한시도 잊지 않았고, 일생의 태반을 바다와 사업 현장에서 보내며 하나씩 실천에 옮겼다. 최주찬을 비롯한 이들의 땀과 희생에는 통일교의 성장사뿐 아니라 대한민국이 세계로 뻗어나가던 시대의 개척정신도 함께 새겨져 있다.
2026-09-04 10:0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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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칼럼] 13년 구형과 2년 선고, 항소심의 저울
환자복을 입은 여든세 살의 종교지도자가 휠체어에 앉아 판결을 들었다. 징역 2년. 서울중앙지법은 8월 31일 한학자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총재에게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 청탁금지법 위반과 업무상 횡령 혐의로 징역 1년을 선고했다. 무죄 석방을 기다렸던 교인들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그러나 판결에 앞서 특검이 요구한 형량은 무려 13년이었다. 정치자금법 위반에 5년, 나머지 혐의에 8년을 각각 구형했다. 살인이나 강도 같은 강력범죄가 아닌 데다 한 총재가 초범이고 고령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례적으로 무거운 구형이었다. 같은 사건에서 통일교 측으로부터 정치자금 1억 원을 받은 권성동 전 의원에게 특검이 구형한 형은 4년이었다. 특검은 사건 전반을 직접 계획하고 실행한 윤영호 전 세계본부장에게도 이번 재판에서 3년 6개월을 구형했다. 그런데 한 총재에게는 그보다 세 배 이상 무거운 13년을 구형했다. 교단의 최고지도자라는 지위와 ‘정교유착의 정점’이라는 상징성까지 형량에 얹은 것은 아닌지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다.
1심 결과는 특검의 구형과 큰 차이를 보였다. 재판부는 일부 쪼개기 후원에 무죄를 선고하고, 증거인멸교사와 해외 정치인 자금 지급 관련 횡령 등은 특검의 수사 범위를 벗어났다며 공소를 기각했다. 쪼개기 후원금을 마련하기 위해 교단 계좌에서 돈을 이체한 행위도 횡령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특검법의 수사 대상은 헌법상 적법절차 원칙에 따라 엄격히 해석해야 한다며 특검의 수사범위 확대에 제동을 건 것이다.
그렇다고 징역 2년을 ‘무죄나 다름없는 판결’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법원은 권 전 의원에게 전달된 1억 원과 쪼개기 후원 대부분, 김건희 여사에게 제공된 가방과 목걸이에 대해서는 한 총재의 공모와 승인을 인정했다. 다만 13년 구형이 2년 선고로 줄었다는 것은 특검이 그린 중대범죄의 규모와 한 총재의 책임 정도가 재판에서 상당히 축소됐다는 뜻이다. 13년이라는 숫자가 과연 실체에 맞는 구형이었는지 특검은 돌아봐야 한다. 재판부는 사건 전반을 윤영호가 주도적으로 계획했고 한 총재가 이를 승인한 것으로 판단하면서도, 개인적 이익을 위한 범행이 아니고 형사처벌 전력이 없는 점 등을 양형에 반영했다. 가정연합은 선고 직후 한 총재가 불법행위를 지시하거나 그 목적을 알고 승인했다는 판단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항소 방침을 밝혔다.
이제 항소심이 살펴야 할 지점은 분명하다. 한 총재가 교단의 대외활동과 정치권 접촉이라는 큰 방향을 승인한 것과 현금 1억 원과 차명 후원, 고가 금품 제공이라는 구체적인 방법과 불법성까지 알고 승인한 것은 같은가. 윤영호의 보고와 한 총재의 승인을 인정한 근거가 그의 진술 외에 어떤 문건과 자금기록으로 보강되는가. 진술과 객관적 기록 사이의 모순은 충분히 해소됐는가.
1심도 이러한 증거와 법리를 검토해 결론을 내렸을 것이다. 항소심이 모든 것을 처음부터 다시 살피라는 뜻은 아니다. 다만 윤영호가 사건을 주도했다는 사실과 한 총재를 공동정범으로 처벌할 만큼 구체적인 범죄 인식이 있었다는 판단 사이에 증명의 공백은 없는지 더욱 엄격하게 살펴달라는 것이다. 징역 2년이라는 결과만 놓고 보면 절묘한 절충점처럼 비칠 수도 있다. 특검은 핵심 혐의의 유죄를 얻었고, 법원은 일부 무죄와 공소기각으로 수사의 과잉을 견제했다. 한 총재 측도 13년 구형이 2년으로 낮아져 항소할 공간을 확보했다. 어느 쪽도 완전히 이기거나 지지 않은 결과다. 그러나 형사재판은 서로의 체면과 명분을 나눠 갖는 협상이 아니다. 13년보다 크게 낮으니 가혹하지 않고, 무죄가 아니니 특검 수사도 틀리지 않았다는 식으로 2년을 유지해서는 안 된다. 여든을 넘긴 피고인에게 2년은 남은 생애의 중대한 일부다. 형량이 사회적으로 무난해 보인다는 이유로 유죄 판단의 토대까지 무난하게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이번 수사를 바라보며 종교계 일각에서 종교탄압을 우려하며 불안해하는 것도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니다. 종교지도자 역시 불법을 저질렀다면 처벌받아야 한다. 그러나 헌법이 종교의 자유와 정교분리를 함께 보장하는 것은 종교가 정치권력과 부당하게 결탁해서도 안 되지만, 국가권력 역시 종교의 자율적 영역을 함부로 침해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종교적 위계나 최고책임자라는 지위가 구체적인 공모와 고의에 대한 증명을 대신한다면 어느 종교도 안심하기 어렵다. 이번 사태로 가장 큰 상처를 입은 사람들은 정치권력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평범한 교인들이다. 그들이 정성껏 바친 헌금과 평생 지켜온 신앙까지 ‘정교유착’과 ‘금권 집단’이라는 말로 매도돼서는 안 된다. 교인들은 죄인이 아니다.
항소심은 1심이 만들어 놓은 정치적 균형을 관리하는 자리가 되어서는 안 된다. 특검의 체면도, 정부의 수사 성과도, 교단의 기대도 판단 기준이 될 수 없다. 한 총재가 각각의 불법행위를 구체적으로 알고 승인했다는 판단에 합리적인 의심의 여지가 없는지, 오직 증거와 법리에 따라 가려야 한다. 항소심의 저울에 올라야 할 것은 소수 종교에 대한 세상의 호오가 아니라 오직 증거와 책임의 무게다.
2026-09-03 17:3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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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을 빼고는 문선명 총재의 섭리를 말할 수 없다”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70년-글로벌 평화운동]
허양(78·사진)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초대 해양특별교구장은 충남 대전 출생으로, 1965년 소년 시절 통일교회에 입교했다. 1966년 충남 당진 송산교회 개척을 시작으로 47년간 목회했으며, 이 가운데 10년은 해외선교에 헌신했다. 2010년에는 문선명·한학자 총재의 수행보좌관과 세계순회사로 활동했고, 문선명 총재로부터 ‘세계선교사 교육 책임자’로 임명받았다. 다음은 허 교구장과의 일문일답.
―해양특별교구는 어떻게 맡게 됐나.
“문 총재님 성화 후 유럽 순회사로 활동하고 있었는데, 스페인을 순회하고 있을 때 한 총재님께서 부르셔서 귀국해 뵈었다. 총재님께서는 거문도와 여수 청해가든을 다녀오신 뒤 ‘해양섭리를 제외하고는 아버님(문선명 총재)의 섭리를 논할 수 없다. 해양 유업을 반드시 계승하고 완성해 바다의 무한한 자원으로 인류에게 새로운 비전과 희망을 제시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이어 ‘네가 아버님을 오래 수행하며 해양섭리를 잘 알고 있으니, 청해가든을 중심으로 신설한 해양특별교구를 맡아 달라’고 당부하셨다. 이후 청해가든에서 창립예배와 교구장 취임식을 갖고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문선명·한학자 총재에게 여수는 어떤 곳이었나.
“두 분은 여수의 자연을 무척 사랑하셨다. 디오션리조트와 호텔 등 숙박시설에 투자하며 지역 발전에도 힘을 쏟았다. 이러한 기반은 2012년 여수세계박람회의 성공적인 개최와 여수가 해양관광도시로 성장하는 데 적지 않은 역할을 했다고 본다. 지역 일자리 창출에도 기여해 여수 시민들의 존경을 받았고, 당시 강동석 여수엑스포 조직위원장도 총재 내외를 ‘숨은 공로자’로 평가해 박람회를 앞두고 초청했다. 문 총재께서는 박람회장을 둘러보며 축복해 주셨다. 문 총재께서는 해외 인사들에게 한려수도의 아름다움을 소개하기 위해 여수와 거문도를 오가는 유람선도 직접 구상했다. 선박에는 침실이 마련돼 있었지만, 단 한 번도 그곳에서 쉬거나 주무시지 않았다. 자신을 위한 배가 아니라 한국의 자연을 세계에 알리기 위한 배였기 때문이다.”
―여수 청해가든은 어떤 의미를 지닌 곳인가.
“청해가든은 해양특별교구의 중심이자 문선명·한학자 총재 두 분에게 매우 역사적인 장소다. 문 총재께서는 10년 가까이 이곳에서 정성을 들이며 ‘앞으로 바다를 지배하는 사람이 세계를 지배한다’고 교육하셨다. 85세 때에는 생애 85년을 탕감하는 조건을 세운다며 85일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바다에 나가셨다. 2011년에는 23시간 30분 동안 훈독회를 인도하셨는데, 지금도 가장 긴 훈독회로 기억된다.”
―청해가든에서는 어떤 교육이 이뤄졌나.
“미국 하와이에서 4차까지 진행되던 해양지도자 교육을 2004년부터 2012년 11월까지 청해가든으로 옮겨 68차까지 이어갔다. 이를 통해 모두 7200여 명의 해양지도자를 배출했다. 교육생들은 40일 동안 통일원리를 배우고 선박 운항 실습도 받았다. 경찰관 입회 아래 선박운항 자격증을 취득한 인원만 3000명이 넘는다. 총재님은 ‘물을 이용할 줄 모르는 민족은 궁핍하게 살 수밖에 없다’, ‘바다는 인류 식량과 무한한 자원의 보고이며, 바다를 개척하지 않으면 미래의 희망도 없다’고 강조하셨다. 특히 일본인 교육생들에게는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익혀 한일관계를 풀고 화합과 평화의 다리가 돼 달라’고 당부하셨다.”
―총재님을 오랫동안 수행했는데, 후버댐 낚시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달라.
“총재님은 미국 라스베이거스를 ‘지옥의 밑창’이라고 부르셨지만, 그만큼 반드시 회복하고 살려야 할 도시라는 뜻을 자주 강조하셨다. 이를 위해 라스베이거스에 동양의과대학을 세워 시민과 교민의 치유를 돕고자 했고, 후버댐에는 국제해양수련소 건립도 구상하셨다. 그리고 보트 다섯 척을 마련해 직접 낚시 정성을 들이셨으며, 폭염 속에서도 거의 매일 후버댐을 찾으셨다. 그때 총재님은 ‘세계 곳곳에서 하나님의 뜻을 위해 수고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그들을 생각하며 이 황무지 라스베이거스를 개척하고 있다’고 말씀하셨다.”
―지금도 잊지 못하는 문선명 총재의 말씀이 있다면.
“총재님은 하루 서너 시간밖에 주무시지 못했다. 그 때문인지 식사 중 잠시 졸다가도 이내 깨어나면 늘 미안한 표정을 지으셨다. 그러면서 ‘나는 서른 살까지 배부르게 살아본 적이 없다. 늘 죄인처럼 살았다. 하늘 앞에 책임을 다하지 못한 사람이 어떻게 편히 잘 수 있겠느냐. 감옥에서도 그랬고, 평생 긴장과 초조 속에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질 그날만 바라보며 새우잠을 잤다’고 말씀하셨다. 그 모습을 곁에서 지켜볼 때마다 눈물 외에는 달리 위로할 방법이 없었다.”
2026-08-31 17: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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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라시아·아메리카 잇는 국제평화고속도로 원대한 비전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70년-글로벌 평화운동]
문선명·한학자 총재의 해양평화 비전은 국제평화고속도로 프로젝트에서 가장 집약적으로 드러난다. 1981년 제10차 국제과학통일회의(ICUS)에서 제안된 한일해저터널은 부산과 일본 규슈를 연결해 동북아시아를 하나의 생활권으로 묶자는 구상이었다. 오랜 갈등과 분단의 상징이었던 바다를 협력과 교류의 길로 바꾸자는 발상이 담겨 있었다.
이 구상은 2005년 천주평화연합(UPF) 창설과 함께 베링해협 교량·해저터널 프로젝트로 확대됐다. 아시아와 북미를 연결해 유라시아와 아메리카를 하나의 육상 교통망으로 잇는 국제평화고속도로 구상이었다. 문선명·한학자 총재는 이를 군사적 대립과 분단의 상징이던 국경을 협력과 공동번영의 공간으로 전환하는 인류 공동 프로젝트로 제시했다. 막대한 군사비를 전쟁 준비가 아닌 인류의 미래를 위한 교통·물류 기반시설과 평화 인프라 구축에 돌리자는 제안이었다.
막대한 군사비, 교통·물류 등 인프라 구축 전환
해양비전은 물리적인 연결을 넘어 새로운 생활문화로도 확장됐다. 2012년 출범한 해양특별교구는 바다를 신앙과 인성교육, 환경보전이 결합된 영성 수련의 장으로 발전시켰다. 거친 자연 속에서 절제와 책임, 공동체 정신을 배우는 해양교육은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회복하는 실천으로 이어졌다. 문선명 총재가 오래전부터 강조했던 해양레저와 취미산업 역시 소비 중심의 여가가 아니라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생활문화를 지향했다.
이러한 철학은 오늘날 효정천원 프로젝트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경기도 가평 청평호 일대에서는 전기 유람선(HJ효정크루즈)을 활용한 친환경 수상관광 모델을 운영하고 있으며, 가평베고니아새정원과 신비동물원 등은 인간과 다양한 생명체가 함께 살아가는 생태 공간으로 조성되고 있다. 자연을 정복의 대상이 아니라 공존의 동반자로 바라보는 새로운 문명관이 담겨 있다.
이러한 구상을 아우르는 개념이 바로 신태평양문명권이다. 문선명·한학자 총재는 21세기를 대서양 문명에서 태평양 문명으로 전환되는 시대라고 보았다. 환태평양 지역에는 세계 인구의 대부분이 살고 있으며, 세계 경제와 물류, 자원의 중심도 이곳으로 이동하고 있다. 두 분은 이러한 시대에 강대국 중심의 패권 경쟁이 아니라, 환태평양 국가들이 협력과 공생의 질서를 만들어야 인류의 지속 가능한 미래가 열릴 수 있다고 강조했다.
신태평양문명권은 해양을 중심으로 동양과 서양, 대륙과 해양, 정신문명과 물질문명을 연결하는 새로운 문명 구상이다. 그 바탕에는 ‘하나님 아래 인류 한 가족’이라는 이상과 공생·공영·공의의 가치가 놓여 있다. 바다는 더 이상 국가 간 경쟁의 대상이 아니라 인류 공동의 생명 자산이며, 함께 지키고 함께 활용해야 할 미래의 터전이라는 인식이다.
동양·서양, 대륙·해양 잇는 신태평양문명권 주창
오늘날 인류는 기후위기와 생태계 파괴, 식량안보, 에너지 위기, 해양오염, 인공지능 확산에 따른 인간성의 위기까지 복합적인 문명 전환기를 지나고 있다. 이러한 시대일수록 자연과 인간, 기술과 생명이 조화를 이루는 새로운 발전 모델이 요구된다.
돌이켜 보면 1959년 경기도 야목의 작은 연못에서 시작된 물고기 잡기 교육과 1963년 인천에서 출항한 천승호는 단순한 해양 활동의 시작이 아니었다. 제주와 글로스터, 알래스카 코디악, 남미 판타날과 레다, 여수와 거문도, 그리고 국제평화고속도로에 이르기까지 이어진 긴 여정은 하나의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었다.
“어떻게 하면 인류가 함께 살아갈 수 있는가.” 문선명·한학자 총재는 그 답을 바다에서 찾고자 했다. 바다는 식량을 공급하는 창고이자 미래 자원의 보고였으며, 사람을 키우는 학교이자 국가를 연결하는 길이었다. 나아가 자연과 인간, 동양과 서양, 과학과 영성, 국가와 국가를 하나로 잇는 새로운 문명의 무대였다.
문선명·한학자 총재가 남긴 해양비전은 바다를 개발하는 기술보다 사람을 살리고 세계를 연결하는 철학을 먼저 제시했다. 그 철학은 반세기가 지난 오늘에도 기후위기와 식량안보, 생태문명과 국제협력이라는 인류 공동의 과제 앞에서 여전히 새로운 질문과 가능성을 던지고 있다.
2026-08-31 17: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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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는 ‘평화의 통로’… 협력·공생의 환태평양시대 이끌다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70년-글로벌 평화운동]
문선명·한학자 총재의 일관된 철학은 해양은 국경을 나누는 공간이 아니라, 서로 다른 문화와 문명을 이어주는 통로라는 것이었다. 이러한 구상은 ‘환태평양시대’라는 비전으로 구체화됐다. 문 총재는 21세기의 중심축이 대서양에서 태평양으로 이동할 것으로 내다봤다. 환태평양 지역에는 당시 세계 인구의 대부분이 거주하고 있었고, 세계 경제와 자원, 해상 물류의 중심도 이곳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그는 이 거대한 해양권이 경쟁과 패권이 아닌 협력과 공생의 공동체로 발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21세기 중심축은 대서양에서 태평양으로
이를 위해 태평양 연안을 잇는 세계적인 해양 거점이 구축됐다. 대한민국에서는 전남 여수와 거문도가 환태평양 시대를 준비하는 핵심 거점으로 자리 잡았다. 문 총재는 여수를 해양교육과 국제교류, 해양레저가 어우러진 세계적 해양도시로 육성하고자 했다. 특히 여수와 순천을 장차 해양권과 육지권을 연결하는 환태평양의 전략 거점으로 보고, 2003년 화양지구를 매입해 청해가든을 조성했으며, 소호동에는 디오션리조트와 호텔을 건립해 교육·관광·국제교류가 융합된 기반을 마련했다. 이러한 인프라는 여수세계박람회 유치와 성공적인 개최에도 힘을 보탰으며, 남해안을 미래 해양문명의 중심지로 발전시키는 밑거름이 됐다.
여수시 삼산면에 속한 거문도는 더욱 특별한 의미를 지녔다. 문 총재는 거문도를 세계 해양섭리의 상징적 거점으로 여겼다. 이곳에서 ‘평화메시지’를 완성하고 성지로 선포했으며, 세계 각국의 신도들에게 해양훈련과 정성을 권면했다. 훗날 ‘해양 천정궁’이 건립된 것도 바다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평화문명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태평양의 중심인 미국 하와이 역시 중요한 거점이었다. 하와이는 동양과 서양, 아시아와 아메리카를 연결하는 상징적인 공간이었다. 이곳에서는 미래 해양시대를 이끌 글로벌 인재 양성을 목표로 ‘하이스쿨 오브 퍼시픽(High School of the Pacific)’이 운영됐으며, 미국과 일본, 아시아 각국 청년들이 함께 해양훈련을 받으며 국제적 협력과 공동체 정신을 배웠다.
차가운 북태평양의 거친 어장 알래스카 코디악은 극기와 책임을 배우는 교육 현장이었다. 해양훈련은 혹독한 자연환경 속에서 이뤄졌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이어지는 공동생활과 조업을 통해 참가자들은 인내와 절제, 책임감과 협동심을 몸으로 익혔다. 이른바 ‘알래스카 정신’은 세계 각국 청년 지도자들에게 개척정신과 공동체 의식을 심어주는 교육철학으로 자리 잡았다.
여수·하와이·코디악… 해양 섭리 거점으로
이러한 해양교육은 미국 전역에 설립된 해양교회(Ocean Church)로도 이어졌다. 30여 개 해양교회는 신앙과 해양훈련, 레저와 관광, 지역사회를 연결하는 새로운 공동체 모델이었다. 문 총재는 “앞으로 세계적인 해양관광 시대가 올 것”이라며 해양교회를 통해 사람을 교육하고 미래 해양문화를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바다는 경제 활동의 공간인 동시에 인간성과 공동체를 회복하는 교육의 장이었다.
이러한 비전은 국제 스포츠와 문화교류로도 확장됐다. 2001년 창설된 세계스포츠낚시연합(WSFF)은 ‘낚시월드컵대회’를 통해 자연을 존중하고 규칙과 배려를 배우는 국제 평화교류의 장을 마련했다. 제1회 대회는 일본에서, 제2회 대회는 여수에서 개최됐다. 2003년 여수 낚시월드컵대회에서는 문선명 총재가 창설자 자격으로 개막연설을 했으며, 김대중 대통령을 비롯한 6개국 정상들이 축전을 보내 행사의 의미를 더했다. 대회는 2015년까지 이어지며 바다를 매개로 한 국제 우정과 민간외교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했다.
사람과 문명을 연결하는 해양 네트워크 실현
이처럼 여수와 거문도, 하와이와 코디악, 그리고 세계 각지의 해양 거점들은 하나의 공통된 목표를 향하고 있었다. 그것은 사람을 연결하고 문명을 이어가는 환태평양 해양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것이었다. 문선명·한학자 총재가 바라본 바다는 더 이상 국경을 가르는 경계선이 아니었다. 그것은 서로 다른 문화와 종교, 국가와 민족을 잇는 평화의 통로였다. 환태평양시대의 구상은 바다를 매개로 인류를 하나의 공동체로 연결하고, 공존과 번영의 새로운 문명을 열고자 한 원대한 비전이었다.
2026-08-31 17: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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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선명 총재 성화 14주기…추모의 마음 ‘사랑의 쌀’로 나눴다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이하 가정연합)이 문선명 총재 성화 14주기를 맞아 고인의 평화 유산을 되새기고 추모의 마음을 이웃을 위한 나눔으로 이어갔다.
가정연합은 28일부터 31일까지 경기도 가평군 HJ천주천보수련원에서 ‘문선명 천지인참부모 천주성화 14주년 기념행사’를 개최했다. 한국을 비롯해 미국, 일본, 유럽, 아시아 등 세계 각국의 신도들이 현장과 온라인으로 참여해 문 총재의 생애와 평화·통일을 위한 활동을 기렸다.
이번 행사는 기념식을 비롯해 본향원 참배, 기념예배, 특별성지순례 등으로 진행됐다. 행사의 초점은 문 총재가 평생 강조했던 참사랑과 평화의 가치를 오늘의 삶과 사회 속에서 어떻게 실천할 것인지 되새기는 데 맞춰졌다.
30일 HJ천주천보수련원에서 열린 기념예배에서 송용천 가정연합 한국협회장은 문 총재가 인종과 종교, 민족과 국가의 장벽을 넘어 인류가 한 가족으로 살아가는 평화세계를 이루기 위해 평생 헌신했다고 강조했다. 송 협회장은 “현재 교회가 어려움에 처해 있지만 투명한 소통과 책임 있는 운영을 통해 국민과 사회로부터 신뢰받는 가정연합으로 거듭나겠다”며 “문선명·한학자 총재가 강조해 온 참사랑과 평화의 가치를 삶 속에서 실천해 나가자”고 당부했다.
특히 이번 추모행사에서는 고인을 기리는 마음을 지역사회와 나누기 위한 ‘사랑의 쌀 기부’가 함께 진행돼 의미를 더했다.
가정연합과 선학학원, 한국문화재단, HJ매그놀리아의료재단, 세계평화여성연합, 세계평화청년학생연합 등 64개 기관과 신도들은 추모의 뜻을 담은 ‘쌀 화환’을 마련했다. 이렇게 모인 쌀은 10㎏들이 126포대, 모두 1.26t에 달한다. 기부된 쌀은 우리 사회의 소외계층을 돕는 나눔 활동에 사용될 예정이다.
가정연합은 이번 천주성화 14주년을 계기로 공동체 내부의 성찰과 쇄신을 바탕으로 이웃과 사회를 섬기며 평화와 공존의 가치를 실천하는 데 힘을 쏟을 계획이다.
2026-08-30 23: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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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걸으며 통일을 생각한다”…가정연합 청년들의 ‘원 코리아 챌린지’
걷기는 가장 단순한 여행이지만 함께 걸으면 이야기가 생긴다. 서로 다른 지역의 청년들이 산과 강, 바다와 접경지역을 함께 걸으며 한반도의 평화와 ‘하나 된 코리아’를 꿈꾸는 ‘I LOVE ONE KOREA CHALLENGE’가 전국에서 펼쳐지고 있다. 통일을 거대한 담론이나 먼 미래의 문제로만 바라보지 않고, 미래세대가 직접 국토를 걸으며 평화와 통일의 의미를 체험해 보자는 취지다.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이하 가정연합)은 7월부터 9월까지 전국 14개 교구에서 ‘원 코리아 챌린지’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가정연합 사회공헌국이 주관하고 미래인재국과 대외협력국이 협력해 마련한 이번 행사에는 29일 현재까지 스태프를 포함해 294명이 참가했다.
챌린지는 교구별로 2박 3일 일정으로 진행된다. 각 교구가 지역 특성과 참가자 여건에 맞춰 코스를 정하고 자연환경과 역사 현장을 체험하도록 한 것이 특징이다. 걷는 동안 참가자들이 평화와 통일에 대한 생각을 나누고 서로 격려하면서 공동체와 연대의 의미도 경험하도록 했다.
참가자들은 제주를 비롯해 영월, 인제, 속초·고성, 천안·용궐산, 변산반도, 담양, 봉화, 거제, 울산 간월산, 부산·문경 등 전국 곳곳을 걸었다. 산과 강, 바다를 누비고 분단의 역사가 남아 있는 접경지역을 찾아 한반도의 자연과 역사를 몸으로 체험했다.
지역별 코스에서는 평화와 통일을 생각해 볼 수 있는 프로그램도 이어졌다. 서울북부교구 청년들은 영월의 자연을 걸으며 평소 멀게만 느꼈던 남북통일을 자신들의 세대가 함께 고민해야 할 문제로 받아들이는 시간을 가졌다. 경기남부교구 참가자들은 발왕산 평화봉에 올라 한반도 평화를 기원했고, 함께 걷는 과정에서 얻은 평안이 분단선 너머의 이웃에게도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을 나눴다.
특히 강원교구 참가자들은 DMZ 통일전망대에서 북녘과 금강산을 바라보고 6·25전쟁 관련 역사자료를 살펴봤다. 이들은 분단 과정에서 치러진 희생과 오늘날 누리는 평화의 의미를 되새기며, 한반도의 화합과 통일이 세계 평화로 이어지기를 염원했다.
가정연합 관계자는 “이번 챌린지는 청년들이 함께 걷고 대화하며 일상에서 평화의 가치를 실천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며 “앞으로도 미래세대가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자신의 문제로 생각하고 연대와 협력의 가치를 체험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이어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2026-08-29 08:3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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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대전충남교구, 사회공헌 봉사팀 출범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대전충남교구는 ‘대전충남교구 사회공헌 봉사팀 출범식’을 열고 지역사회 봉사활동을 본격화한다고 26일 밝혔다.
지난 22일 충남 아산 선문대학교 본관 국제회의실에서 열린 출범식 행사에는 이상재 대전충남교구장과 이윤석 대전권 부교구장, 박형진 대전충남교구 사회공헌단장, 지역 교회 관계자와 자원봉사단원 등 80여명이 참석했다.
행사는 개회선언과 국민의례를 시작으로 환영사와 격려사, 사회공헌 봉사팀 활동 현황 보고, 임명장 수여, 기념촬영 등의 순으로 진행됐다.
대전충남교구는 대전과 천안, 아산, 공주, 서산, 당진, 보령, 예산, 태안, 서천, 청양 등 지역별로 20개 봉사팀을 구성했다. 봉사팀은 기존 봉사활동과 함께 환경보전과 자원순환, 취약계층 돌봄, 어르신 건강 지원, 역사·문화공간 관리 등 지역 밀착형 사회공헌 활동을 추진할 계획이다.
주요 사업으로는 저탄소 실천과 출산장려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온숲봉사단’, 사용하지 않는 휴대전화를 수거·재활용하는 ‘나누리 프로젝트’, 어르신 대상 건강 지원 활동을 하는 ‘대전 참사랑 쑥뜸봉사단’, 아산 은행나무길 환경·공간관리와 쌀 나눔 활동을 추진하는 ‘효정봉사단’ 등이 있다.
이상재 대전충남교구장은 “지역사회의 소외된 이웃과 어르신, 다문화가정 등을 대상으로 한 봉사활동을 확대하고, 환경과 사회적 가치 실천에도 관심을 갖겠다”며 “지역별 특성에 맞는 사회공헌 활동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박형진 대전충남교구 사회공헌단장은 “이번 출범을 계기로 지역별 봉사활동을 체계화하고 지속적인 사회공헌 활동으로 이어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대전충남교구 사회공헌단에 따르면 지난 6월과 7월 두 달 동안 41건의 봉사활동에 426명의 봉사자가 참여했다.
교구는 이번에 구성한 봉사팀을 중심으로 각 지역의 봉사활동을 확대하는 한편, 일회성 행사에 그치지 않고 지속적인 사회공헌 사업으로 발전시켜 나갈 방침이다.
2026-08-26 14: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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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는 사람을 바꾸는 학교였다”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70년-글로벌 평화운동]
윤태근 회장은 원래 낚시와는 거리가 먼 목회자였다.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에서 21년간 목회 사역을 하던 그는 1992년 문선명 총재의 부름을 받아 제주연수원장으로 부임하면서 바다와 인연을 맺었다. 이후 제주와 여수, 거문도는 물론 미국 알래스카 코디악과 브라질 판타날 등 세계 각지의 해양 현장에서 문 총재의 해양활동을 보좌했고, 제주에서는 3개월 동안 5만 명, 여수에서는 8년 동안 약 7000명의 일본 수련생을 대상으로 해양교육을 이끌었다. 이후 전 세계스포츠낚시연합 회장을 맡아 국제낚시월드컵 창설을 주도하고, 2001년 일본과 2003년 여수 대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했다. 그는 문선명 총재의 해양철학과 교육정신을 가장 가까이에서 체험한 증언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 다음은 윤 전 회장과의 일문일답이다.
- 제주는 가정연합의 해양섭리에서 어떤 곳인가.
문선명·한학자 총재가 생애의 중요한 시간을 바다에서 보내며 거친 파도와 맞섰던 것은 인류를 살릴 길을 바다에서 찾았기 때문이다. 특히 제주도는 해양 개척의 역사적 출발점이자, 두 분의 눈물 어린 기도와 정성이 깊이 스며 있는 해양섭리의 성지와도 같은 곳이다.
- 제주연수원장으로 부임하던 때를 되돌아본다면.
목회자로 21년 동안 사역하면서 낚시나 배, 바다를 접할 기회는 거의 없었다. 1992년 제주연수원장으로 부임했을 때만 해도 제가 해양사역을 하게 될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전환점은 문선명 총재를 수행하면서 찾아왔다. 총재님은 바다에서 돌아오는 저녁이면 낚시 장비를 하나씩 펼쳐 놓고 낚싯대와 낚싯줄, 추와 바늘의 용도까지 직접 설명해 주셨다. 총재님에게 낚시는 단순한 취미가 아니었다. 자연을 읽고 바다를 이해하는 고도의 기술이었다. 제주에서 시작된 해양교육은 세계선교를 준비하는 인재를 길러내는 과정이었고, 동시에 바다를 통해 하나님의 섭리를 배우는 훈련이었다. 총재님은 사람의 과거나 경력보다 가능성을 먼저 보셨다. 바다를 모르던 사람도 해양교육의 지도자로 성장할 수 있다고 믿으셨고, 제 삶이 바로 그 믿음의 증거라고 생각한다.
- 문선명 총재에게 낚시는 어떤 의미였으며, 가장 기억에 남는 일화가 있다면.
문 총재는 제주 지귀도에서 갯바위 낚시를 즐겨 하셨다. 수행하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어떤 일이든 한 번 집중하면 주변의 모든 것을 잊을 만큼 몰입하셨다는 점이다. 말씀을 시작하면 비행기 시간이나 다음 일정을 여러 차례 알려 드려도 쉽게 자리를 뜨지 않으셨다. 낚시도 마찬가지였다. 한 번 낚싯대를 드리우면 조수가 차올라 물이 무릎까지 올라와도 좀처럼 자리를 옮기지 않으셨다. 수행원들이 위험하다고 말씀드려도 묵묵히 낚싯대를 지켰고, 식사 시간을 넘기는 일도 흔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 이유를 알게 됐다. 총재님이 원한 것은 많은 물고기를 잡는 일이 아니라, 어떤 일이든 한순간도 흐트러짐 없이 최선을 다하는 삶의 자세였다. 함께한 사람들은 그 모습을 통해 자연스럽게 집중력과 책임감을 배웠다. 총재님에게 낚시는 기도였고, 바다는 영적 훈련의 현장이었다.
- 문 총재는 왜 평생 바다를 떠나지 않았나.
문 총재는 “바다는 쉬지 않고 움직여서 좋다”, “집에만 있으면 영적으로 어두워진다”고 자주 말씀하셨다. 안락함보다 바다에서 하나님을 찾는 삶을 선택하셨고, 맑은 바람과 끝없는 수평선 속에서 기도하며 인류의 미래를 구상하셨다. 어느 날은 “어머니는 몸이 아파도 아이가 울면 젖을 먹인다. 사랑하기 때문이다”고 말씀하셨다. 총재님의 바다에 대한 마음도 그와 같았다. 힘들어도 사랑했기에 바다를 떠나지 않았고, 팔십이 넘은 나이에도 거의 매일 바다로 나가셨다. 저는 그 모습을 보며 하나님께서 지구의 대부분을 바다로 창조하신 뜻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고, 제 신앙도 더욱 깊어졌다.
- 당시 교육생은 해양훈련을 통해 무엇을 느꼈을까.
처음 바다에 나온 청년들은 대부분 심한 멀미에 시달린다. 배 위에서는 몸도 가누기 어렵고, 두려움에 사로잡힐 때도 있다. 그런데 시간이 가면서 적응하게 된다. 수련을 마친 한 청년이 이렇게 간증했다. “처음에는 제가 견디지 못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새로운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어느 날 문 총재는 해양수련 이유를 이렇게 설명해 주셨다. “사람은 어떤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도록 정신과 체력을 단련해야 한다. 그래야 자아를 주관할 수 있다” 해양수련은 단순한 체험 프로그램이 아니었다. 바다는 사람을 강하게 만들고, 하나님 앞에 자신을 바로 세우게 하는 연단의 학교였다.
- 문 총재에게 얻은 가르침 하나를 소개한다면.
돌이켜보면 문선명 총재의 해양운동은 바다를 개발하는 운동을 넘어 사람을 변화시키는 운동이었다. 바다를 모르던 저에게 끊임없이 새로운 일을 맡기며 “해 보라”고 격려하셨다. 배를 배우고, 낚시를 배우고, 해양 생태계를 배우면서 저 역시 새로운 사람이 되었다. 총재님이 제게 남긴 가장 큰 가르침은 “사람은 정성을 다하면 자신의 전공과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다”는 믿음이었다. 그 믿음이 제 삶을 오늘 여기까지 이끌어 왔다.
2026-08-24 16:0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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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지는 고기를 고단백 식품으로… ‘피시 파우더’ 탄생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70년-글로벌 평화운동]
문선명·한학자 총재가 제시한 해양비전은 수산업 육성이나 해양경제 구상에 머물지 않았다. 스스로 식량을 생산하고 자립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드는 것이 해양섭리의 목표였다. 문 총재는 “배고픈 사람에게 빵을 나누어 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빵을 만드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이라고 강조했다. 이러한 철학은 1990년대 남미에서 본격적인 결실을 맺었다.
남극 크릴새우 가공해 긴급 구호 식량 공급
브라질 판타날(Pantanal)의 자르딘 새소망농장과 파라과이 레다(Leda)에서는 광대한 유휴지를 개간해 농업과 양식사업을 추진했다. 열대 늪지와 모기떼, 극심한 더위라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파라과이강을 중심으로 어로기술을 전수하고, 토종 어종인 빠꾸(Pacu) 양식 기반을 조성해 현지 주민들의 자립을 지원했다. 레다는 양식과 농업, 해양교육이 함께 이루어지는 국제 해양 거점으로 발전하며, ‘물고기를 주는 것이 아니라, 물고기를 기르는 법을 가르친다’는 해양비전을 실천하는 현장이 됐다.
해양비전은 곧 식량 가공기술 개발로 이어졌다. 문 총재는 상업성이 낮다는 이유로 버려지는 생선과 남극 크릴새우에 주목했다. 이를 활용해 개발한 것이 피시파우더(Fish Powder) 이다. 즉, 미국에서 버려지는 고기를 가루로 만들어 기아 해결의 방안으로 제시한 것이다. 피시파우더는 단백질 함량이 약 98%에 이르는 고단백 식품으로, 장기간 보관과 장거리 운송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었다. 내전이나 기근으로 식량 공급이 어려운 지역에도 안정적으로 전달할 수 있어 아프리카와 발칸반도, 중앙아시아 등지의 긴급 구호식량으로 활용됐다.
식량 문제 해결은 기술 혁신으로도 이어졌다. 미국 알래스카 코디악에는 국제수산회사(ISA)를 설립해 생선 가공과 수산물 생산 기반을 구축했고, 미국 주요 도시와 일본으로 수출하는 국제 유통망을 갖추었다. 미국 플로리다 탬파와 앨라배마의 마스터마린(Master Marine) 조선소에서는 기존 선박 제작 방식을 개선한 석고몰드 신건조공법을 개발했다. 이 공법은 값비싼 금형 없이도 소형 어선을 짧은 기간 안에 건조할 수 있어 생산성과 경제성을 크게 높였다.
이 조선기술은 한국에서도 이어졌다. 1988년 목포에 일흥조선을 설립해 레저용 보트와 화물선, 여객선 등을 건조·수리했고, 1999년에는 울산의 INP 중공업을 인수해 화학제품 운반선 등 특수선박을 생산했다. 이어 석고몰드 신건조공법을 개발해 특허를 획득했으며, 2011년 2월에는 이 공법으로 제작한 천정호(天艇號)를 여수에서 진수했고, 동년 8월에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같은 방식으로 크루즈급 보트 ‘원모선(圓母船)’을 제작해 진수했다. 가라앉지 않는 낚싯배로 알려진 ‘원호프’ 역시 이러한 기술 개발의 성과 가운데 하나였다. 이러한 기술은 선진국이 독점하던 조선기술을 보다 많은 나라가 활용할 수 있도록 하자는 ‘기술 공유’의 철학을 담고 있었다.
수산물 유통 분야에서도 새로운 길을 열었다. 가정연합 계열의 트루월드그룹(True World Group)은 미국 전역에 현대적인 냉동물류 시스템과 수산물 유통망을 구축했다. 당시 미국에서 생소했던 참치회와 다양한 수산식품을 보급하며 미국 최대 규모의 수산물 유통기업 가운데 하나로 성장했다. 이는 기업의 성장을 넘어 동양의 식문화와 서양의 유통 시스템을 연결한 새로운 시도로 평가받았다.
국제수산회사·신조선 공법… 수산물 유통 새 장
이처럼 남미의 양식사업과 피시파우더 개발, 국제수산회사(ISA), 마스터마린 조선기술, 트루월드그룹의 유통망은 서로 다른 사업처럼 보이지만 하나의 공통된 목표를 향하고 있었다. 바다를 통해 사람을 살리고, 기술을 나누며, 국가 간 격차를 줄이는 것이었다. 가정연합의 해양비전은 산업 자체를 목적으로 삼지 않았다. 산업은 사람을 살리기 위한 수단이었고, 기술은 함께 나누기 위한 자산이었다.
2026-08-24 16: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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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미래는 바다에 있다” 시대 흐름 통찰… 기아 해결 첫걸음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70년-글로벌 평화운동]
오늘날 세계는 바다를 미래 성장동력이자 국가 전략 산업의 핵심으로 주목하고 있다. 기후위기와 식량안보, 해양자원 확보가 인류 공동의 과제로 떠오르면서 해양의 가치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옛 통일교) 창시자 문선명·한학자 총재는 이러한 시대적 흐름을 수십 년 앞서 내다봤다. 두 분은 1960년대부터 “인류의 미래는 바다에 있다”고 강조하며 해양을 미래 문명의 터전으로 바라봤다.
굶주림에 고통 받는 이들 보며 해양 개척 시작
그 출발점에는 한 가지 절박한 문제의식이 있었다. 바로 인류의 기아 문제였다. 문 총재는 세계 곳곳에서 굶주림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보며, 육지의 한정된 자원만으로는 늘어나는 인류를 먹여 살릴 수 없다고 판단했다. 식량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바다를 개척해야 하며, 수산자원을 인류 공동의 생명 자원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신념이었다. 그는 “바다가 인류를 살릴 마지막 희망”이라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이러한 해양비전은 산업 개발보다 사람을 먼저 준비하는 일에서 시작됐다. 1959년 경기도 화성 야목에서 열린 전국 전도사 수련회에서 문 총재는 수련생들을 직접 연못과 방죽으로 데리고 나가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쳤다. 당시에는 단순한 야외 활동처럼 보였지만, 훗날 세계 해양 개척을 준비하는 첫 교육이었다. 그는 바다를 자연을 배우고, 책임과 협동, 개척정신을 익히는 삶의 학교로 바라봤다.
1963년 6월 인천 만석동에서는 18톤급 목선 천승호(天勝號) 진수식이 열렸다. 이 배는 당시로서는 첨단이었던 나일론 그물을 사용한 어선으로, 자재와 기술이 부족했던 시절 직접 건조한 상징적인 선박이었다. 작은 목선 한 척의 출항은 훗날 세계 각지로 이어질 해양 개척의 출발점이 됐다.
1972년에는 제주도와 지귀도를 중심으로 해양 활동 기반이 마련됐다. 문 총재는 제주를 한반도 해양섭리의 중요한 거점으로 보고 조선소와 양식장 건설, 해양훈련 등을 추진하며 남해안 개척에 정성을 기울였다. 이후 한국에서 시작된 해양 개척은 미국과 알래스카, 남미로 확대되는 계기가 됐다.
독창적 참치잡이 방법 ‘레버런문 시스템’ 고안
1974년 미국 매사추세츠주 글로스터에서는 미국 해양비전이 본격적으로 펼쳐졌다. 세계적인 참치 어장인 이곳에서 문 총재는 직접 제작한 ‘뉴호프(New Hope)’호를 타고 매일 새벽 바다에 나가 조업했으며, 참치가 잡히는 수온과 어군의 이동을 기록하고 통계를 축적했다. 또 참치가 선호하는 미끼를 연구하고 이를 토대로 조립식 장치를 이용한 독창적인 참치잡이 방법인 ‘레버런 문 시스템’을 고안해 미국 수산업계와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또한 참치잡이 대회를 개최하며 해양산업의 가능성을 넓혀 갔다.
해양 개척은 고기를 많이 잡는 기술을 개발하는 데 머물지 않았다. 바다를 통해 지도자를 양성하는 교육으로 이어졌다. 이후 오션 챌린지(Ocean Challenge) 프로그램과 해양교회(Ocean Church)가 운영되면서 세계 각국의 청년들은 항해와 조업, 공동생활을 통해 책임감과 협동심, 공동체 정신을 배우기 시작했다.
1980년대 들어 세계적인 청정 어장인 미국 알래스카 코디악은 해양비전의 핵심 거점이 됐다. 새벽 3~4시에 출항해 자정 무렵까지 이어지는 혹독한 조업은 어업을 넘어 인내와 절제, 끝까지 맡은 책임을 완수하는 ‘알래스카 정신’을 체득하는 과정이었다. 참가자들은 90㎏이 넘는 할리벗과 연어를 직접 낚으며 자연을 이해하고 스스로를 단련하는 법을 배웠다.
바다를 통해 인성교육 연결… 인류 미래 함께 준비
1978년에는 코디악에 국제수산회사(ISA)를 설립해 생선 가공과 수산물 생산 기반을 구축했고, 이곳에서 생산된 제품은 미국 주요 도시와 일본으로 수출됐다. 바다를 인성교육의 장이자, 인류의 식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실천의 무대로 확장되기 시작한 것이다.
문선명·한학자 총재의 해양비전은 처음부터 산업이나 기업의 성장을 목표로 하지 않았다. 바다를 통해 사람을 키우고, 지도자를 양성하며, 인류가 함께 살아갈 미래를 준비하는 데 그 목적이 있었다. 천승호에서 시작된 작은 항해는 제주와 글로스터, 알래스카 코디악을 거치며 ‘바다는 인류를 살리는 생명의 터전’이라는 철학으로 구체화됐다.
2026-08-24 16: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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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칼럼] 종교의 벽 앞에서 ‘대화’를 택한 사람, 이재석
종교는 사람을 하나로 묶기도 하지만 때로는 가장 높은 벽을 만들기도 한다. 같은 신을 믿으면서도 교파가 다르다는 이유로 갈라지고, 교리가 다르다는 이유로 상대를 배척한다. 하물며 서로 다른 종교가 만나 마음을 열고 대화하기란 더욱 어렵다. 그래서 종교 간 화합은 말하기는 쉽지만 실천하기는 어렵다. 한국 현대 종교사에서 이 벽을 허물기 위해 오랜 세월 현장을 뛰어다닌 사람이 있다. 이재석 전 한국종교협의회 회장이다.
1933년 충남 청양에서 태어난 그는 중앙대 법학과에 진학해 법관을 꿈꾸며 고등고시를 준비하던 청년이었다. 1956년 대학 3학년 때 우연한 계기로 통일교를 접하면서 삶의 방향이 바뀌었다. 이듬해에는 천안 개척전도에 나섰다. 그의 초기 신앙생활은 뜨거웠다. 1957년 여름 1주일 금식을 마친 뒤 천안으로 내려가 10개월 동안 골목골목을 돌며 전도했다. 당시 기성교회와 통일교의 관계는 적대적이었다. 장로교회를 찾아가 목사와 교리를 놓고 토론하다 “이단이 들어왔다”는 호통과 함께 교회 밖으로 쫓겨난 일도 있었다.
흥미로운 것은 바로 그 경험을 했던 사람이 훗날 기성교회와 통일교 사이에 다리를 놓는 일에 자신의 삶을 걸었다는 사실이다. 전환점은 1966년이었다. 서울 제3교회를 담임하던 이재석은 개신교 목사들과 함께 연합부흥회를 열기 시작했다. 그해 11월에는 기성교회 목사 5명과 함께 ‘기독교초교파운동본부’를 창립했다. 첫 사업으로 마련한 서울 시내 교역자 간담회에는 예상을 뒤엎고 27개 교파, 180명의 목사가 참석했다. 교파를 초월해 만나보자는 시도에 적지 않은 목회자들이 호응한 것이다. 이러한 행보는 개인적인 열정에서만 비롯된 것은 아니었다. 이는 인류의 평화와 화합을 지향하는 통일교의 초교파·초종교 정신과도 맞닿아 있었다.
그러나 벽은 높았다. 초교파운동본부가 통일교와 관련된 단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개신교계의 반발이 거세졌다. 예정된 연합부흥회가 무산되고, 함께 일하던 목회자들이 자리를 떠나는 일도 이어졌다. 당시 이재석이 남긴 한마디는 지금 읽어도 의미심장하다. 한국 교계가 “‘무슨 일’을 하느냐”보다 “‘누가 하느냐’에 관심이 더 큰 것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일의 가치보다 그 일을 하는 사람의 소속을 먼저 따지는 현실을 절감한 것이다. 일이 풀리지 않을 때면 남몰래 눈물을 흘릴 만큼 힘겨웠지만, 그는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그 벽을 넘기 위해 당시 한국 개신교계를 대표하는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강원용 목사에게 직접 대화를 청했다. 이재석은 “통일교회는 이미 외면할 수 없는 현실적인 존재”라며, 무시하거나 반대하기보다 “상호 이해하고 협력하는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호소하고 싶었다. 그러나 워낙 바쁜 강 목사를 만나기가 쉽지 않았다. 다음 날 부산에 간다는 이야기를 들은 이재석은 아예 부산행 비행기표를 샀다. 김포공항에서 강원용을 만난 그는 “비행기 안에서라도 말씀을 드리려고 나왔다”며 같은 비행기에 올랐다.
그 집념은 마침내 결실로 이어졌다. 1968년 9월 서울 수유리 아카데미하우스에서 기성교회 지도자 30명과 문선명을 비롯한 통일교 관계자 10명이 마주 앉았다. 홍현설 감리교신학대 학장이 기도하고 강원용이 개회사를 했으며, 문선명이 인사하고 유효원 협회장이 통일원리를 강의한 뒤 질의응답이 이어졌다. 비록 이 만남이 지속적인 대화로 이어지지는 못했지만, 통일교를 배척의 대상으로만 보지 않고 직접 만나 서로의 이야기를 들었다는 사실 자체는 주목할 만하다.
이재석의 발걸음은 교파 간 대화를 넘어 범종교적 화합으로 확장됐다. 가톨릭 박양운 신부, 성공회 조광원 신부 등이 참여한 한국종교문제연구원을 통해 교류를 넓혔고, 1970년에는 통일교가 여덟 번째 종단으로 한국종교인협회(현 한국종교협의회)에 가입하는 성과를 이끌어냈다. 기존의 7대 종단(가톨릭·성공회·불교·유교·천도교·원불교·대종교)과 함께 대화와 협력의 장에 참여하게 된 것이다. 그가 1988년 종협 회장을 맡아 종교 간 화해를 이끈 것은 이러한 신앙적 실천의 결실이었다.
당시 상황을 바라보는 시각과 평가는 종교적 입장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그의 삶에서 분명하게 읽히는 것은 끝까지 대화를 포기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종교화합은 서로의 교리가 같아지는 일이 아니다. 다름을 인정하면서도 이웃으로 만나 공동선을 위해 손을 잡는 일이다. 오늘 우리 사회 역시 종교와 정치, 이념과 세대를 둘러싼 갈등의 벽이 높다. 생각이 다른 사람과 대화하기보다 상대가 어느 편인가를 먼저 따지는 풍토도 강하다.
반세기 전 이재석이 발견한 한국 교계의 모습, ‘무엇을 하느냐’보다 ‘누가 하느냐’를 먼저 따지는 풍토가 과연 사라졌는지 돌아볼 일이다. 통일교라는 소수종교의 신앙인이었던 이재석의 삶을 다시 들여다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가 걸었던 초교파·초종교의 길은 한 개인의 집념인 동시에, 신앙적 이상을 종교 간 대화와 협력으로 구체화한 여정이기도 했다. 한 종교의 사회적 가치는 무엇으로 평가될까. 사회의 벽을 낮추고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며 살아온 이재석에게 그 질문의 답은 ‘대화’였다.
2026-09-03 17:3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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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한(韓)민족 선민(選民)이란 무엇인가? [신화에서 선민까지 한민족 정체성의 문화사적 발견-기고]
수천 년의 역사는 무엇을 준비했는가…선택의 끝은 ‘인류 한 가족’
프랑스 역사학자 페르낭 브로델(Fernand Braudel)은 역사를 사건의 연속이 아니라, 지리·환경·문화와 생활양식이 오랜 시간 축적되며 형성된 ‘장기지속(Longue Durée)’의 구조로 이해하였다. 브로델의 관점을 한반도에 적용한다면, 대륙과 해양이 만나는 한반도의 지리적 조건은 수많은 외침과 고난, 서로 다른 종교와 문화를 받아들이며 형성된 다층적 정체성 등이 오랜 시간 중첩되며 한민족 특유의 토양을 이루어 왔다. 고대 신화의 웅녀와 유화, 신라의 여성 통치, 고려의 비교적 유연한 여성의 지위, 그리고 조선 후기 이름 없는 어머니들이 지켜온 정성과 신앙에 이르기까지, 한민족의 역사에는 여성과 모성을 생명과 공동체의 근원으로 바라보는 문화적 기억이 오랫동안 이어져 왔다. 이러한 흐름은 문화사적으로 독생녀 섭리를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독특한 정신적 토양이 한반도에 깊숙이 체화되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통일사상의 시각에서 동북아 지역의 역사적 흐름은 1943년 평안도 안주에 강림한 독생녀를 맞이하기 위한 섭리적 준비 과정으로 새롭게 접근할 수 있다.
동국대학교 윤명철 교수가 제시한 ‘해륙사관(海陸史觀)’의 시각에서 보면 이 사실은 더욱 분명해진다. 해륙사관은 한반도의 역사를 대륙의 농경·유목 문화와 해양의 항해·상업 문화가 교차하는 역동적 공간으로 바라본다. 실제로 고구려와 발해의 북방 영토 경영부터 바다를 건너 일본 열도와 이어진 활발한 교류까지를 하나의 거대한 흐름으로 포섭하면, 한반도는 변방의 폐쇄된 영토가 아니라 대륙과 해양 문명이 융합하는 세계사적 무대라는 것이다. 이 거대한 접경 지대에서 이질적인 문화들은 충돌과 갈등을 넘어 서로를 흡수하고 변형하며 역동적인 문명적 전환을 이뤄내곤 했다.
◆ 400년의 기다림, 독생녀의 강림
1543년부터 1943년까지의 400년은 독생녀 강림을 향해 서로 다른 역사적 흐름이 존재했다. 전란과 외세의 침략으로 인한 민족의 고난, 유교적 질서 속에서도 이어진 여성들의 정성과 모성 문화, 무속과 불교에 남아 있던 여성적 구원의 상징, 근대 이후 확산된 남녀평등과 인간 존엄의 사상, 그리고 평안도를 중심으로 일어난 신령한 기독교 운동까지 서로 다른 역사와 문화의 흐름이 한 시대 안에서 만나고 있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문화사적으로 보면, 이러한 현상들은 각각 독립된 역사적 흐름일 수 있다. 그러나 섭리사관의 관점에서 이러한 현상의 내면을 살펴보면 그 오랜 준비의 끝에서 하나의 결정적인 사건과 만나게 된다. 바로 1943년 평안도 안주에서 이루어진 독생녀의 강림이다.
기독교 섭리사 역시 이러한 흐름과 맞물려 있다. 독생자를 중심으로 출발한 기독교는 2천 년의 역사를 거치며 세계적 기반을 형성했고, 동아시아와 한반도까지 전파되었다. 특히 19세기 말 이후 평안도를 중심으로 확산된 기독교 신앙과 신령운동은 새로운 시대와 구원의 주체를 기다리는 강렬한 종교적 열망을 형성하였다. 이러한 세계 기독교의 역사와 한민족의 오랜 문화적 준비가 교차하는 가운데 1943년 독생녀는 강림한 것이다. 이것이 통일사관의 시각이다.
섭리사관은 신이 우주와 역사를 주관하며, 역사는 분명한 의미와 목적이 있다고 전제한다. 그러므로 섭리사관에서의 기독교 역사는 단순한 지리적 이동이 아니라 어떤 목적을 향한 역사적 과정으로 해석된다. 동방에서 시작된 신앙은 서구 문명 속에서 제도와 사상을 형성했고, 대서양 문명권을 거치며 새로운 세계 질서를 만들어 냈다. 그리고 이제 세계의 중심이 태평양으로 이동하는 시대이다. 21세기 환태평양 문명권이 부상하는 이 시점에서, 이 도도한 문명적 귀착점은 대륙과 해양의 에너지가 교차하며 문명을 융합해온 한반도를 향해 정조준되어 있는 것이다.
동아시아의 종교문화 전통과 서구 기독교 문명이 만나는 접점에 놓인 한반도는, 오랜 세월 동안 서로 다른 사상과 종교가 공존하며 독특한 정신적 토양을 형성해 왔다. 유교의 윤리와 불교의 자비, 그리고 민간신앙의 생명력이 살아 있는 이 땅에서 기독교는 외래 종교가 아니라 또 하나의 정신적 자양분으로 받아들여졌다. 이러한 문화적 토양 속에서 기독교는 동아시아적 정서와 결합하며 새롭게 출발할 수 있었다.
◆ 독생녀에서 참부모로, 섭리의 새로운 시대
기독교 구속사의 거대한 흐름 속에서, 독생녀의 탄생은 오랜 세월 동안 은밀히 준비되어 온 하늘의 섭리가 마침내 역사적 실체로 결실을 맺는 중대한 전환점이다. 한민족의 뼈아픈 수난과 지극한 정성, 그리고 오랜 세월 이 땅의 가슴마다 서려 있던 모성문화와 대망신앙의 기다림은, 독생녀의 출현을 이해하는 중요한 역사·문화적 배경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독생녀의 출현을 이러한 문화적 조건만으로는 충분히 설명할 수 없다. 독생녀는 여성 신화의 연장이나 한민족의 모성문화가 만들어낸 역사적 산물이 아니라, 하늘부모님 복귀섭리의 중심 축이기 때문이다.
한반도 여성신화와 모성의 기억이 기독교 독생녀의 존재를 증명하는 직접적인 근거는 아니다. 오히려 이것은 한민족이 오랜 역사 속에서 생명과 구원, 하늘과 인간의 관계를 여성과 모성의 언어로 표현해 온 문화적 비유이다. 문화는 독생녀를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그 의미를 받아들일 수 있는 역사적 토양을 형성했던 것이다. 또한 독생녀의 섭리적 가치는 독생녀 출현 자체만으로는 전체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 통일신학에서 메시아는 궁극적으로 참부모로 현현해야 하기 때문이다.
생전의 문선명 총재는 독생자가 홀로 존재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독생녀를 만나 하나님을 중심으로 하나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즉 독생자와 독생녀의 만남과 성혼은 각각의 사명을 넘어 인류 앞에 참부모가 현현하는 섭리적 사건으로 규정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독생녀는 참어머니의 출생적 정체성이며, 독생자와 독생녀가 하나 되어 참부모를 이룸으로써 인류 구원 섭리는 새로운 단계로 나아가게 된다.
통일신학의 참부모 섭리는 ‘하늘부모님’이라는 신관을 통해 더욱 분명해진다. 한학자 총재는 2013년 하나님을 ‘하늘부모님’으로 모실 것을 선포하였다. 이는 하나님을 남성적 아버지의 표상에 한정하지 않고, 부성과 모성을 함께 품은 인류의 부모로 이해하는 신앙적 전환이었다. 남성과 여성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했다는 성서의 창조원리 역시 이러한 참부모론의 관점에서 새롭게 조명될 수 있다. 독생자와 독생녀가 참부모를 이루고, 참부모를 통해 인류가 하늘부모님의 자녀로 돌아간다는 섭리의 구조는 결국 구원의 목적이 한 개인이나 민족의 완성에 머물지 않음을 보여준다. 하늘부모님의 참사랑이 참가정으로 이어지고, 참가정이 민족과 국가를 넘어 확장될 때 비로소 ‘하늘부모님 아래 인류 한 가족’이라는 창조이상은 추상적 이상이 아니라 현실의 과제가 된다.
◆ 선민(選民)은 하늘의 뜻을 책임지는 민족이다
그렇다면 독생녀와 참부모를 맞이한 오늘, 한민족에게 ‘선민’이라는 이름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늘의 뜻을 먼저 알게 된 민족이라면 그만큼 먼저 책임지고, 먼저 사랑하며, 먼저 세계를 위해 살아야 한다. 따라서 선민은 혈통적 우월성이나 민족적 특권을 뜻하지 않으며 하늘로부터 선택받았다는 자부심보다 선택받은 목적을 실천하는 책임이 더욱 중요하다. 한민족이 독생녀를 맞이한 역사는 그래서 과거의 영광으로만 기억될 수 없다. 참부모를 통해 하늘부모님의 참사랑을 알게 되었다면, 이제 그 사랑을 민족의 울타리 밖으로 확장해야 한다. 선민의 사명은 자신이 선택되었음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통해 더 많은 사람이 하늘부모님의 사랑을 경험하도록 만드는 데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책임은 이미 여러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한일의 역사적 상처를 넘어 화해와 평화를 이루려는 노력, 서로 다른 국적과 문화를 넘어 참가정을 이루는 축복가정, 그리고 풍류와 정(情), 효정의 심정문화를 세계와 나누는 한류의 확산은 서로 다른 영역에 있지만, 하나의 방향을 가리킨다. 민족의 경계를 넘어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고, 서로 다른 문화를 품으며, 더 큰 공동체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이것이 선민의 사명이 세계로 확장되는 방식이다. 정치적으로는 화해와 평화이며, 문화적으로는 심정의 공명이고, 가정적으로는 국경과 인종을 넘어서는 참사랑의 실천이다. 한민족이 먼저 받은 사랑과 역사적 경험을 세계와 나눌 때, 선민이라는 이름은 더욱 아름다워진다.
이제 21세기 세계는 또 한 번의 대전환기에 들어섰다. 대서양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던 근대 문명 질서는 점차 환태평양 문명권으로 이동하고 있다. 수많은 인종과 언어, 자본과 기술이 뒤섞이는 이 거대한 흐름 속에서 한반도의 위치는 다시 주목받기 시작했다. 서로 다른 문명을 연결하고 갈등을 완충하며 새로운 공존의 길을 찾는 능력, 다시 말해 문화의 힘, 곧 소프트파워(soft power)가 중요해지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다시 ‘한(韓)’이라는 이름을 떠올리게 된다. ‘한’은 단순히 하나의 민족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다. 크고 깊다는 뜻을 품고 있으며, 서로 다른 것을 하나로 묶어 조화를 이루게 하는 통합의 상징이다. 대륙과 해양이 만나는 반도의 역사 속에서 형성된 이러한 정신은, 오늘날 환태평양 문명권 시대에 한민족이 감당해야 할 새로운 역할을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 한민족 선민 대서사시의 종착지는 ‘인류 한 가족’
지금까지 총 22회의 연재에서 우리는 한민족의 신화와 역사, 여성과 모성의 문화적 기억, 풍류와 심정, 수난과 정성, 기독교와 신령운동, 그리고 1543년부터 1943년까지 이어진 400년의 흐름을 따라왔다. 각각의 역사는 서로 다른 시대와 맥락을 갖고 있지만, 신앙의 관점에서 바라볼 때 하나의 질문으로 수렴된다. 왜 독생녀는 한민족 가운데 강림하였으며, 그 강림을 통해 하늘은 무엇을 이루고자 하였는가.
이제 그 질문에 대한 답도 분명해진다. 한민족 선민사의 의미는 독생녀를 탄생시킨 민족이라는 사실을 자랑하는 데 있지 않다. 독생녀를 맞이하고, 독생자와 독생녀가 참부모를 이루는 역사적 기반이 되었으며, 참부모를 통해 밝혀진 하늘부모님의 참사랑을 세계로 확장해야 할 책임을 부여받았다는 데 그 의미가 있다. 따라서 한민족 선민 대서사시의 방향은 한민족에서 시작하지만 한민족에서 끝날 수 없다. 하늘부모님이 어느 특정 민족만의 부모일 수 없듯이 참부모의 이상 역시 어느 하나의 국가와 인종에 머물 수 없기 때문이다. 선민의 사명이 완성될수록 그 경계는 오히려 넓어져야 한다. 한국인을 넘어 세계인으로, 민족을 넘어 인류로, 그리고 마침내 모든 사람이 하늘부모님의 자녀라는 보편적 공동체로 나아가야 한다.
한(韓)민족 선민(選民) 대서사시는 결국 ‘누가 하늘로부터 선택받았는가’를 말하기 위한 이야기가 아니다. 수천 년의 문화적 기억과 역사적 경험, 그리고 400년의 섭리적 준비가 독생녀의 강림으로 이어지고, 독생자와 독생녀가 성혼하여 참부모를 이룸으로써 하늘부모님의 창조이상이 역사 속에서 새로운 실체적 출발을 맞이한 과정을 밝히는 이야기이다. 그렇기에 선민은 과거의 영광이 아니라 오늘의 책임이다. 하늘을 공경하는 경천(敬天)의 종적 가치와 사람을 널리 이롭게 하는 홍익(弘益)의 횡적 가치, 그리고 하늘의 심정과 인간의 사랑을 연결하는 효정(孝情)의 정신은 이제 한민족 내부에 머물 수 없다. 먼저 받은 사랑을 세계와 나누고, 갈등하는 민족을 화해시키며, 국경과 인종을 넘어 서로를 한 가족으로 품는 삶으로 이어져야 한다.
선민의 완성은 선민만 남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모든 인류가 하늘부모님의 자녀임을 깨닫고 서로를 형제자매로 품는 세상을 여는 길일 것이다. 참부모 섭리가 열어온 길은 축복을 통해 참가정을 이루고, 민족과 국가를 넘어 세계를 향한 참사랑의 실천에 있다. 한민족이 그 섭리의 역사적 무대가 되었다면, 이제 한민족에게 남겨진 사명은 그 사랑을 인류에게 돌려주는 거룩한 의무일 것이다.
한민족에서 시작되었지만 한민족을 뛰어넘는 것, 하늘의 선택에서 시작되었지만 참사랑의 책임으로 그 뜻을 완성하는 것, 그리하여 마침내 하늘부모님 아래 인류가 하나의 가족을 이루는 것. 이것이 전체 칼럼의 여정을 통해 우리가 발견한 ‘한민족 선민’의 새로운 의미이며, 한민족 선민 대서사시가 향하는 마지막 지평이다.
고기훈 박사(한국학)
2026-08-21 09: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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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는 사람을 살리는 실천에서 시작된다”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70년-글로벌 평화운동]
지난 10여 년 동안 선학평화상을 받은 세계 각국의 수상자들은 서로 다른 언어와 문화, 종교를 지녔지만 한 가지 공통된 답을 내놓았다. 평화는 무엇보다 사람을 살리고, 인간의 존엄을 지키는 삶의 실천에서 시작된다는 것이다.
제1회 공동수상자인 키리바시의 아노테 통 전 대통령은 기후변화를 환경문제가 아니라 미래세대의 생존 문제로 바라봤다. 그는 “현재 삶의 터전을 지키면서 미래세대를 위한 일을 계속해 나가겠다”고 다짐했다. 같은 해 공동수상자인 인도의 수산과학자 모다두구 비제이 굽타 박사는 “굶주림이 존재한다면 진정한 평화는 없다”고 말했다. 기후와 식량이라는 서로 다른 분야였지만 두 사람 모두 생명을 지키는 일이 평화의 출발점임을 강조했다.
제2회 공동수상자들도 같은 길을 걸었다. 아프가니스탄의 교육운동가 사키나 야쿠비는 난민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동정이 아니라 교육이라고 말했다. 교육이야말로 잃어버린 존엄과 자신감을 회복시키는 길이라는 것이다. 이탈리아 의사 지노 스트라다는 전쟁터 한복판에서 평생 환자를 치료하며 “전쟁은 인류의 가장 큰 질병”이라고 단언했다. 사람을 살리는 의료와 사람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교육은 모두 평화를 만드는 또 다른 이름이었다.
2019년 수상자인 소말리아 출신 인권운동가 와리스 디리는 자신의 삶을 통해 평화를 이야기했다. 여성성기절제(FGM)의 피해자였던 그는 여성의 존엄을 지키는 일이 곧 평화라고 역설하며 “평화는 가정에서 시작되고 교육을 통해 완성된다”고 말했다. 공동수상자인 아킨우미 아데시나 아프리카개발은행 총재 역시 “식량안보가 보장되는 세계가 평화로운 세계”라며 빈곤과 기아를 해결하는 것이 지속 가능한 평화의 조건이라고 역설했다.
종교와 정치를 대표한 수상자들의 메시지도 다르지 않았다. 팔레스타인 출신 루터교 주교 무닙 유난은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한 가족”이라며 정의와 용서, 화해가 없는 평화는 존재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마키 살 전 세네갈 대통령은 평화는 다양성 속에서 서로를 존중하는 공존이라며 선학평화상 상금 전액을 아프리카연합 평화기금에 기부했다. 수상의 영예를 개인이 아니라 대륙의 평화를 위해 돌린 그의 선택은 선학평화상이 추구하는 실천의 가치를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코로나19 팬데믹은 평화의 의미를 다시 일깨웠다. 백신 개발을 이끈 영국 옥스퍼드대 사라 길버트 교수는 “모두가 안전해질 때까지 누구도 안전하지 않다”고 말했다. 백신은 특정 국가의 자산이 아니라 인류 공동의 생명을 지키는 공공재라는 그의 신념은 선학평화상이 말해 온 공생의 철학과 맞닿아 있었다.
선학평화상이 바라본 평화의 지평은 미래세대로까지 확장됐다. 케냐의 환경운동가 완지라 마타이는 협력과 봉사를 통해 미래세대를 위한 지속 가능한 지구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고, 글로벌 시티즌의 휴 에번스는 넬슨 만델라의 말을 인용해 “빈곤 퇴치는 자선이 아니라 정의의 실현”이라고 강조했다. 가나 아시시대학교의 패트릭 아우아 총장은 “청년 교육과 윤리적 리더십이 아프리카의 미래를 바꾸는 가장 확실한 평화의 투자”라고 역설했다.
역대 수상자들은 국적도, 종교도, 직업도 모두 달랐지만, 그들이 남긴 메시지는 놀라울 만큼 닮아 있었다. 평화는 사람을 먹이고, 병든 이를 치료하며, 아이들을 배움으로 이끌고, 인간의 존엄을 지키는 삶에서 시작된다는 것이다. 선학평화상이 지난 10여 년 동안 세계 곳곳의 숨은 평화 실천가들을 찾아온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한학자 총재가 말해 온 ‘하나님 아래 인류 한 가족’이라는 평화의 이상은 이들의 삶을 통해 추상적인 구호가 아니라 살아 있는 실천으로 증명되고 있다. 선학평화상은 공로를 기리는 상을 넘어, 인류가 어떤 삶을 평화라고 불러야 하는지를 세계에 제시하는 국제적 평화운동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2026-08-17 18:2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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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여성인권·식량안보… 인류가 직면한 절박한 과제 환기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70년-글로벌 평화운동]
제1회 선학평화상이 기후위기와 식량안보를 평화의 문제로 제시했다면, 이후 선학평화상은 시대마다 인류가 직면한 가장 절박한 과제를 새로운 평화 의제로 제시하며 국제사회의 관심을 이끌어 왔다.
제2회 선학평화상은 ‘글로벌 난민 위기’를 조명했다. 공동수상자인 이탈리아 외과의사 지노 스트라다는 국제 의료구호단체 ‘이머전시(Emergency)’를 설립해 전쟁과 분쟁의 최전선에서 수많은 생명을 살려냈다. 그는 치료비를 낼 수 있는지, 어느 민족과 종교에 속하는지를 묻지 않았다. 생명이 위급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동등하게 치료받아야 한다는 신념으로 인간의 ‘치료받을 권리’를 지켜냈다.
또 다른 공동수상자인 사키나 야쿠비는 전쟁으로 폐허가 된 아프가니스탄에서 여성과 난민을 위한 교육에 헌신했다. 여성의 교육이 제한되던 상황에서도 비밀학교를 운영하며 소녀들에게 배움의 길을 열어주었고, 교육과 직업훈련을 통해 난민들이 스스로 삶을 다시 세울 수 있도록 도왔다.
전쟁은 사람에게서 집과 가족만 빼앗는 것이 아니다. 치료받을 권리와 교육받을 권리, 미래를 선택할 권리까지 앗아간다. 선학평화상은 의료와 교육을 통해 인간의 존엄을 회복시킨 이들의 헌신을 조명하며 난민 문제 역시 국제사회가 손잡고 해결해야 할 과제임을 일깨웠다.
선학평화상이 세 번째로 주목한 분야는 여성의 존엄과 식량안보였다. 2019년 제3회 선학평화상 수상자인 소말리아 출신 인권운동가 와리스 디리는 자신이 겪은 여성성기절제(FGM)의 고통을 세상에 알리며 수많은 소녀를 폭력적인 관습으로부터 보호하는 국제운동을 이끌었다. 아킨우미 아데시나 아프리카개발은행 총재는 농업혁신을 통해 아프리카의 식량안보와 농민의 자립을 이끌며 지속가능한 발전의 길을 제시했다. 선학평화상은 두 사람을 공동수상자로 선정함으로써 여성에 대한 폭력과 굶주림으로 인한 구조적 빈곤 역시 인간의 존엄을 위협하는 평화의 문제임을 세계에 알렸다.
제4회 선학평화상은 종교와 정치의 사회적 책임에 주목했다. 팔레스타인 출신 루터교 주교 무닙 유난은 유대교·기독교·이슬람교 사이의 대화를 이끌며 종교가 갈등이 아니라 화해의 언어가 될 수 있음을 실천으로 보여주었다. 마키 살 당시 세네갈 대통령은 민주주의 제도를 개혁했고, 투명한 행정과 경제발전을 추진했으며, 아프리카의 모범적인 굿거버넌스를 구현한 점이 평가됐다. 제4회 선학평화상부터는 설립자의 평화 이상을 특별히 기리기 위해 ‘설립자특별상을 신설해 세계 평화에 탁월한 공헌을 한 지도자에게 수여했는데, 첫 수상자는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었다. 그는 기후변화 대응과 유엔 지속가능발전목표(SDGs) 확산에 기여했다. 수상자들의 면면은 종교와 정치, 국제기구가 인류 공동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를 보여주었다.
코로나19는 선학평화상이 또 하나의 평화 의제를 제시하는 계기가 되었다. 제5회 선학평화상 수상자인 영국 옥스퍼드대학교 사라 길버트 교수는 비교적 저렴하고 보급이 쉬운 코로나19 백신 개발을 이끌었고, 공동수상단체인 세계백신면역연합(Gavi)은 경제적 여건 때문에 백신을 구하기 어려운 국가와 취약계층에 백신이 공급될 수 있도록 국제협력을 이끌었다. 생명을 지키는 의학의 성과는 특정 국가의 자산이 아니라 모든 인류가 함께 누려야 할 공공재라는 점을 선학평화상은 강조했다. 훈센 당시 캄보디아 총리는 동남아시아의 평화와 지속가능한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설립자특별상을 받았다.
지난해 수여된 제6회 선학평화상은 미래세대로 시선을 넓혔다. 공동수상자 완지라 마타이는 산림 복원과 환경운동을 통해 지속 가능한 지구를 만드는 데 앞장섰고, 휴 에번스는 세계 시민들의 연대를 이끌어 빈곤퇴치와 국제협력을 확산시켰다. 패트릭 아우아 주니어는 가나에 아시시대학교를 설립해 윤리와 전문성을 갖춘 미래 지도자를 양성하며 교육을 통한 사회변화를 실천해 왔다. 설립자특별상은 민주주의와 평화 증진에 기여한 굿럭 조너선 전 나이지리아 대통령과 종교 간 화합과 영적 연대를 이끈 사무엘 하데베 남아프리카공화국 종교지도자가 공동 수상했다.
한학자 총재는 평화를 국가 간 외교에만 머물지 않는 인간 삶의 실천으로 보았다. 기후변화와 빈곤, 질병과 교육, 여성인권과 종교화합 등 인류 공동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헌신한 사람들을 세계와 연결하고 그들의 실천을 확산시키는 것 또한 평화를 이루는 길이었다. 선학평화상과 설립자특별상은 이러한 철학을 바탕으로 시대마다 새로운 평화 의제를 제시하며 국제사회의 공감과 참여를 이끌어 왔다.
역대 수상자들은 정치인과 종교인, 의사와 과학자, 교육자와 인권운동가, 국제기구와 시민단체 등이다. 활동 분야도, 국적과 문화도 서로 다르지만, 이들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가장 고통받는 사람들의 곁에서 인류가 해결해야 할 문제를 발견하고, 오랜 시간 자신의 삶으로 변화를 만들어냈다는 점이다.
선학평화상이 이들의 업적을 기리는 이유는 한 사람의 영웅을 칭송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들이 걸어온 길을 세계와 나누고, 더 많은 사람이 평화의 실천에 동참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상은 한 사람에게 수여되지만, 그가 보여준 용기와 헌신은 국경을 넘어 또 다른 평화를 낳는다. 선학평화상이 지난 10여 년 동안 세계를 향해 전해 온 가장 큰 메시지다.
2026-08-17 18:2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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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 곳곳 숨은 평화 영웅들 발굴… ‘K 노벨평화상’ 명성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70년-글로벌 평화운동]
태평양 한가운데 자리한 작은 섬나라 키리바시는 오랫동안 바다와 더불어 살아온 평화로운 나라였다. 그러나 기후변화로 해수면이 상승하면서 바다는 생명의 터전에서 국민의 생존을 위협하는 존재가 되었다. 국토 대부분이 해발 2m 안팎에 불과한 이 나라는 바닷물이 주거지와 농경지로 밀려들고 식수원까지 오염되는 현실 앞에서 국가의 미래를 걱정해야 했다.
당시 아노테 통 키리바시 대통령은 국제사회를 향해 끊임없이 호소했다. 기후위기는 먼 미래의 환경문제가 아니라 이미 한 국가와 국민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평화의 문제라는 절박한 외침이었다. 그러나 작은 섬나라의 목소리는 좀처럼 세계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2015년 제1회 선학평화상은 아노테 통 대통령을 공동수상자로 선정했다.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국제사회에 알리고 기후난민의 권리를 위해 헌신한 그의 활동을 높이 평가한 것이다. 공동수상자는 인도의 수산과학자 모다두구 비제이 굽타 박사였다. 그는 가난한 농민들도 작은 연못과 논에서 물고기를 기를 수 있는 저비용 양식기술을 개발해 방글라데시를 비롯한 아시아 빈곤지역에 보급했다. 값싼 단백질 공급원을 확보하는 동시에 농민들에게 새로운 소득을 안겨준 그의 연구는 식량안보와 빈곤퇴치를 함께 해결한 ‘청색 혁명’으로 평가받고 있다.
한 사람은 기후위기로 삶의 터전을 잃어가는 국민을 위해 싸웠고, 다른 한 사람은 굶주림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자립의 길을 열어주었다. 서로 다른 분야에서 활동했지만 두 사람은 인간의 생명과 존엄을 지키기 위해 헌신했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었다.
이들의 공동수상은 선학평화상이 바라보는 평화의 방향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첫 선언이었다. 평화는 전쟁이나 무력충돌이 없는 상태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기후위기로 삶의 터전을 잃지 않을 권리, 굶주림에서 벗어나 인간다운 삶을 살아갈 권리, 치료받고 교육받을 권리 역시 오늘날 인류가 함께 지켜야 할 평화의 가치라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 것이다.
선학평화상은 문선명·한학자 총재가 평생 강조해 온 ‘하나님 아래 인류 한 가족’의 평화 비전을 바탕으로 2013년 제정됐다. 문선명 총재 성화 이후 한학자 총재는 인류의 평화와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해 헌신한 인물들을 발굴하고 그들의 삶을 세계와 나누기 위해 이 상을 창설했다.
선학평화상은 격년제로 시상되며, 수상자에게는 메달과 상패, 그리고 총 100만 달러(약 14억~15억원)의 상금이 수여된다. 이는 세계적인 평화상 가운데서도 손꼽히는 규모다. 그러나 선학평화상의 가치는 상금의 크기에 있지 않다. 세계가 미처 주목하지 못한 평화의 실천가를 발굴하고, 그들의 삶을 인류 공동의 자산으로 확산시키는 데 있다.
한 총재가 선학평화상을 제정한 목적은 이미 세계적으로 명성을 얻은 인물에게 또 하나의 명예를 더하는 데 있지 않았다. 세계 곳곳에서 가장 어렵고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묵묵히 헌신해 온 숨은 평화의 실천가들을 찾아 그들의 삶을 인류 공동의 자산으로 선양하는 데 있었다.
아무리 위대한 실천이라도 세상에 알려지지 않으면 한 지역의 작은 이야기로 머물기 쉽다. 그러나 그 실천을 발견해 의미를 부여하고 국제사회에 소개하면 한 사람의 용기와 헌신은 또 다른 사람의 행동을 이끌어내는 희망의 씨앗이 된다. 한 총재가 선학평화상을 통해 이루고자 한 것도 바로 이러한 평화의 선순환이었다.
이런 점에서 선학평화상은 세계가 주목해야 할 평화 의제를 발굴하고 확산시키는 국제 평화운동이라 할 수 있다. 시대가 직면한 가장 절박한 문제를 찾아내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신의 삶을 바친 인물을 발굴하며, 그가 보여준 해법을 세계와 공유하는 것이다. 한학자 총재는 평화를 추상적인 이상이 아니라 인간의 삶 속에서 실천되어야 할 구체적인 행동으로 바라보았고, 선학평화상은 이러한 철학을 국제사회에서 구현하는 대표적인 결실이 되었다.
평화는 거창한 선언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고통받는 사람을 외면하지 않는 실천에서 시작된다. 선학평화상이 지난 10여 년 동안 세계 곳곳의 숨은 평화 영웅들을 찾아 조명해 온 이유도 여기에 있다.
2026-08-17 18: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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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 넘어 화합으로”…광복 81주년 ‘초종교 구국기도회’
광복 81주년을 맞아 국내 주요 종교 지도자들이 종파와 교리의 벽을 넘어 한자리에 모였다. 광복의 의미를 되새기는 데 그치지 않고 이념과 세대, 계층 간 갈등이 깊어진 한국 사회에서 종교가 화해와 통합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데 뜻을 모았다. 특히 신학과 한민족의 역사적·정신적 역할을 조명한 특강을 통해 대립과 갈등을 넘어 평화로 나아가기 위한 종교의 역할을 모색했다.
한국종교협의회(종협)와 한국자유총연맹 종교특별위원회, 바울로선교회,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중앙총회 서울총신노회는 15일 서울 종로구 한국기독교회관 대강당에서 ‘제81주년 광복절 기념 대한민국 평화·화합을 위한 초종교 구국기도회’를 개최했다.
‘광복의 빛으로 갈등을 넘어, 화합의 빛으로 미래를 열다’를 주제로 열린 이날 기도회에는 기독교와 불교, 천주교, 대종교, 유교,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등 6대 종단 대표와 성도 등 200여 명이 참석했다.
홍윤종 종협 회장은 대회사에서 “1945년의 광복이 빼앗긴 땅을 되찾은 해방이었다면 오늘날 이루어야 할 ‘진정한 광복’은 우리 사회의 내면적 갈등과 영적 상처를 치유하고 평화의 빛을 밝히는 것”이라며 “종교가 먼저 교단의 담장을 허물고 하나 될 때 상처 입은 세상을 치유하고 평화의 미래를 함께 열어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기철 한국자유총연맹 종교특별위원회 대표회장과 정하성 바울로선교회 명예회장, 김수만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중앙총회 서울총신노회장도 기념사를 통해 광복과 자유의 의미를 되새기고 종교인들이 국민 화합과 한반도 평화를 잇는 가교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행사의 무게를 더한 것은 종교가 갈등의 시대에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를 신학적·역사적 관점에서 살펴본 두 차례의 특강이었다.
첫 번째 강연자로 나선 김명용 온신학아카데미 원장(전 장로회신학대학교 총장)은 ‘몰트만의 만인구원론을 위한 신학적 지평’을 주제로 독일의 세계적인 신학자 위르겐 몰트만의 신학을 통해 구원과 화해의 의미를 짚었다.
김 원장은 하나님의 궁극적인 뜻은 특정 개인이나 집단만의 구원이 아니라 만유의 구원과 화해에 있다고 설명했다. 인간과 인간, 종교와 종교를 가르는 배제와 적대를 넘어 사랑과 용서, 화해를 지향해야 하며, 정치·사회적 갈등이 첨예할수록 종교가 진영의 논리에서 벗어나 사랑과 용서라는 본연의 가치로 돌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경득 한민족선민연구원 연구위원(전 선문대학교 부총장)은 “한민족은 수많은 역사적 시련을 겪으면서도 하늘을 향한 기도와 영성을 바탕으로 선민(選民)으로서의 공동체를 지켜왔다”며 “이러한 역사적 경험을 세계 평화에 기여하는 자산으로 발전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오늘날 전 세계인의 마음을 여는 한류(K-Culture)는 참사랑의 메시지를 전하는 영적 도구”라며, “한민족은 ‘거룩한 청지기’이자 ‘평화의 중재자’로서 남북 분단의 아픔을 극복하고 신통일한국과 인류 한 가족의 비전을 세계 앞에 완성해 나가야 한다”고 역설했다.
기도회에서는 안정수 목사(기독교), 진원 스님(불교), 백정현 회장(천주교), 이창구 위원장(대종교), 강희원 회장(유교), 변사흠 목사(가정연합) 등 6대 종단 대표자들이 ‘합심초 점화 및 헌화’에 참여했다.
종단 대표들은 이어 ‘초종교 합심 고천 기도문’을 함께 낭독하며 물질만능주의와 도덕성 상실을 극복하고 민족의 화합과 한반도 평화를 위해 종교인들이 힘을 모을 것을 다짐했다. 특히 3·1운동 당시 종교계가 교파를 넘어 독립운동에 힘을 모았던 역사적 경험을 되새기며 오늘의 사회적 갈등을 치유하는 데 종교가 앞장서야 한다는 뜻을 모았다.
행사에서는 참석자들의 결의를 담은 ‘2026 초종교 구국기도회 평화선언문’도 채택됐다. 한원전 목사가 대표 낭독한 선언문을 통해 참석자들은 초종교적 화합을 통한 사회 갈등 치유와 기도의 연대를 통한 한반도 분단 극복, 도덕성 회복과 ‘하나님 아래 인류 한 가족’ 실현을 위해 노력할 것을 선언했다.
참석자들은 마지막으로 태극기를 흔들며 ‘아리랑’을 합창하고 만세삼창을 외치며 광복의 의미와 국민 화합의 의지를 되새겼다.
2026-08-16 13:2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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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정세계평화재단 원모평애장학원, 다문화가정 청소년·대학생 24명 특별 장학생 선발
효정세계평화재단 원모평애장학원(이사장 이기성)이 다문화가정 청소년과 대학생 24명을 특별 장학생으로 선발하고 글로벌 인재 육성에 나선다.
원모평애장학원은 14일 경기도 가평군 설악면 HJ천주천보수련원에서 ‘다문화 특별 장학생 증서수여식’을 가졌다. 이날 행사에는 전국 각지의 다문화 국제가정과 관계자 등 약 2000명이 참석해 장학생들의 새로운 출발을 축하했다.
이번에 선발된 특별 장학생은 고등학생 10명과 대학생 14명이다. 장학원은 학업과 일상생활에서 모범적이고 성실한 태도를 보여온 학생들을 대상으로, 다문화적 배경과 경험을 강점으로 살려 글로벌 리더로 성장할 가능성을 종합적으로 심사해 선발했다고 밝혔다.
수여식에서는 장학생을 대표해 권영빈 군과 마타나폰 피우방 양이 이기성 이사장으로부터 장학증서를 받았다. 참석자들은 아낌없는 박수와 격려를 보내며 이들의 성장을 응원했다.
권영빈 군은 소감에서 “뜻깊은 장학금을 받게 돼 감사하다”며 “남들과 다른 성장 배경을 나만의 차별화된 강점으로 삼아 주변에 긍정적인 영향을 전파하는 사람으로 성장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이어 장학생 이수연 양은 “저의 가능성을 믿고 지원해 주신 데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며 “다문화적 배경을 극복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소중한 자산으로 여겨, 어떤 역경에도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사람으로 거듭나겠다”고 다짐했다.
원모평애장학원 관계자는 “장학생들의 성숙한 소감 속에서 글로벌 무대를 이끌어갈 미래 인재로서의 충분한 잠재력을 확인할 수 있었다”며 “앞으로도 장학생들과 지속적인 소통을 이어가고 긴밀한 네트워크를 구축해 이들이 세계를 무대로 도약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겠다”고 강조했다.
원모평애장학원은 이번 특별 장학사업을 계기로 다문화가정 자녀들이 서로 다른 언어와 문화적 소양을 고유의 경쟁력으로 발전시키고, 국제사회에서 문화적 가교 역할을 수행하는 글로벌 인재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지원을 지속할 방침이다.
2026-08-14 20:2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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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틀엔젤스와 함께 덩실덩실…장애의 벽 허문 한국무용
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한국무용 체험교실 ‘오늘은 나도 리틀엔젤스’(오나리)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장애인복지시설에서 신명나게 펼쳐졌다.
사단법인 자원봉사애원(이사장 김고은)과 리틀엔젤스예술단(이사장 문훈숙)은 지난달 31일부터 8월 14일까지 서울지역 장애인복지기관 5곳에서 장애인 121명을 대상으로 한국무용 체험교실 ‘오나리’를 진행했다고 14일 밝혔다.
한국무용 체험교실은 리틀엔젤스예술단의 전통무용 공연과 한국무용 기본 동작 배우기 등으로 진행됐다. 참가자들은 리틀엔젤스 단원들의 지도로 소고춤의 기본 동작을 익히며 흥겨운 시간을 보냈다. 부채와 소고(작은 북), 족두리, 갓 등 평소 접하기 어려운 전통 소품을 직접 만지고 착용해 보는 시간도 가졌다.
특히 올해는 처음으로 시각장애인복지관을 찾아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환영 공연에는 음성해설을 도입하고, 눈으로 동작을 따라 하기 어려운 참가자들을 위해 소리와 촉감, 신체 움직임을 중심으로 체험 프로그램을 구성했다. 장애로 인한 문화예술 향유의 장벽을 허무는 ‘배리어프리(Barrier-free)’를 현장에서 구현한 것이다.
리틀엔젤스 단원들도 프로그램에 앞서 장애인 인식개선 교육을 이수하고 참가자들의 일대일 멘토로 나섰다. 춤을 가르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서로의 움직임을 이해하고 맞춰가며 예술을 통한 교감의 시간을 가졌다.
한 참가자는 “멋진 공연도 보고 다양한 전통 소도구를 직접 만져볼 수 있어 정말 즐거웠다”며 “다음에도 꼭 다시 찾아와 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복지시설 관계자는 “장애인 이용자들은 이동의 제약이나 돌발 상황에 대한 우려 때문에 평소 문화예술을 접하기가 쉽지 않다”며 “직접 찾아와 수준 높은 한국무용을 보여주고 함께 호흡할 기회를 마련해줘 감사하다”고 전했다.
지난해 처음 시작된 ‘오나리’는 ‘제1회 대한민국 봉사와 나눔 우수사례 공모전’에서 우수상을 받았다. 올해도 ‘2026년 서울특별시 장애인 단체활동 및 행사 지원사업’에 선정돼 프로그램을 이어갔다.
김고은 자원봉사애원 이사장은 “지난해 우수상 수상을 통해 인정받은 문화예술 봉사의 가치를 올해 서울시 지원사업을 통해 더 많은 분과 나눌 수 있어 뜻깊었다”며 “앞으로도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예술로 어우러지며 장벽을 허무는 배리어프리 문화를 확산하기 위한 다양한 사업을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자원봉사애원은 앞으로도 ‘오나리’를 비롯해 문화예술을 접하기 어려운 이들을 직접 찾아가는 사회공헌 활동을 이어갈 계획이다.
2026-08-14 20:2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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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왜 한류는 세계인의 마음을 훔치는가 [신화에서 선민까지 한민족 정체성의 문화사적 발견-기고]
세계는 지금 K컬처에 열광하고 있다
지금 세계 문화의 중심에는 낯선 장면이 펼쳐지고 있다. 한 세기 넘게 서구가 주도해 온 문화 흐름 속에서, 이제 세계 곳곳의 젊은이들이 한국어 노래를 따라 부르고, 한국 음식에 도전하며, 한국 드라마 속 이야기에 눈물을 흘리고 있다. 이른바 ‘K컬처’라 불리는 현상이다. K-pop, K-드라마, K-푸드, K-애니메이션까지, 한국에서 만들어진 문화 콘텐츠가 국경을 넘어 하나의 세계적 문화 언어로 작동하고 있다.
세계인들이 한국 문화에 깊이 매료되는 이유를 자본주의 산업의 마케팅이나 상품의 완성도만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K컬처는 이미 하나의 문화적 생태계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K-pop 무대에서 등장한 ‘신(新)한복’은 전통 복식을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한 스타일로, 글로벌 대중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걸그룹 블랙핑크가 미국 방송에서 한복 스타일 의상을 입고 공연을 펼치자 ‘(한복)Hanbok’이라는 단어의 검색량이 급증했고, 전 세계 소비자들이 한국 전통 의상에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되었다. 이처럼 K-pop은 이제는 개별적 음악을 넘어 한국 문화 전체를 세계 무대에 드러내는 창구로 변모하고 있다.
K-드라마 역시 마찬가지다. 한류 드라마는 한국적 정서와 가치관을 세계에 전달하는 문화 매개체가 되었다. 가령 드라마 <대장금>과 같은 작품은 한국의 음식, 예절, 인간관계의 윤리를 세계 시청자들에게 소개하며 폭넓은 공감을 얻었다. 이러한 드라마의 성공은 한국 사회가 지닌 문화적 이야기와 가치가 세계적으로도 보편적 의미를 가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음식 분야에서도 같은 현상이 나타난다. 삼양식품의 불닭볶음면은 라면 상품을 넘어 해외 MZ 유튜버들의 ‘불닭 챌린지’라는 소비 문화와 결합하면서 세계적인 브랜드로 성장했다. 이후 SNS를 통해 사람들이 매운 라면을 먹는 장면을 공유하며 한국의 패스트푸드는 일종의 ‘놀이 문화’가 되었고, 이 과정에서 한국 음식은 한국의 매운맛이라는 원초적인 자극을 넘어, 도전하고 인증하며 즐기는 ‘K-푸드 트렌드’ 그 자체이자 젊은 날의 짜릿한 문화적 아이콘으로 깊숙이 각인된 것이다. 현재 불닭볶음면은 90여 개국 이상으로 수출되며 글로벌 K-푸드 열풍을 상징하는 대표적 사례가 되었다.
최근에는 애니메이션과 게임에서도 한국 문화의 상상력이 확장되고 있다. 한국적 세계관과 정서를 결합한 콘텐츠들은 동서양 문화 요소를 혼합한 독특한 서사를 만들어내며 새로운 문화적 실험을 이어가고 있다. 이러한 작품들은 한국 문화가 단순히 전통을 보존하는 수준을 넘어, 다양한 문명 요소를 융합해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창조적 역량을 보여준다.
이처럼 K컬처의 물결은 음악, 드라마, 음식, 애니메이션 등 다양한 영역에서 동시적으로 지구촌 흐름으로 확산하고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현상은 단발성 상품이나 세련된 콘텐츠의 성공이라는 좁은 틀로 다 설명되지 않는다. 그 폭발적 확산의 심층부에는 오랜 역사 속에서 체화된 한국 문화 특유의 정서와 세계관이 단단하게 뿌리내리고 있다. 타인의 아픔과 온기를 제 것 같이 품어 안는 ‘정(情)’의 결속, 공동체의 아픔을 함께 짊어지는 연대의 감각, 그리고 삶의 고단함조차 흥과 놀이, 예술적 승화로 바꾸어내는 특유의 ‘풍류(風流)’ 정신이 그 밑바닥에서 뜨겁게 요동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오늘날 세계가 진정으로 열광하는 것은 한국 콘텐츠의 화려함뿐만 아니라, 그 켜켜이 쌓인 문화적 결에서 뿜어져 나오는 고유의 정신적 에너지이다. 지금 세계는 한국의 노래를 듣고, 한국 음식을 맛보고, 한국의 서사를 공유하며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전혀 다른 차원의 감각적 지평을 마주하고 있다. 이것은 일상적인 문화 소비의 차원을 넘어, 지구촌이 새로운 삶의 문법과 소통하는 거대한 ‘문명 언어와의 조우’라 불러 마땅하다. 바로 이 묵직한 전환의 국면에서, 우리는 피할 수 없는 하나의 근원적 물음과 마주하게 된다. 왜 지금, 전 세계는 한국 문화의 숨결에 이토록 깊이 매료되는 것일까. 그 질문의 해답은 결국 한국 문화의 가장 깊은 영적 우물, 곧 풍류의 대지 위에서 비로소 선명하게 풀려나오기 시작한다.
◆ 풍류에서 한류까지, 풍류정신이 만든 한국 문화의 깊이
한국 문화의 깊이를 설명할 때 종종 ‘풍류(風流)’라는 단어가 등장한다. 그러나 풍류를 단순히 시를 짓고 음악을 즐기던 귀족적 취향 정도로 이해하는 것은 한국 문화의 본질을 놓치는 일이다. 풍류의 바탕에는 훨씬 오래된 문화층이 존재한다. 한국인에게 풍류란, “한(恨)이 서린 삶을 신명나게 풀어내어, 자연과 세상에 멋지게 품어 안는 한국인의 힘”이다. 이 과정에서 풍류는 무속·유교·불교·도교·기독교 등 다양한 종교와 사상을 우리식의 ‘멋’으로 녹여내고, 한과 고통마저 흥과 신명으로 풀어내는 한국인 특유의 강인한 낙천성으로 드러난다.
고조선 신화에서부터 이미 이러한 세계관은 분명하게 드러난다. 단군신화 속 웅녀의 이야기, 고구려 건국신화의 유화부인, 신라의 알영왕후와 선덕여왕, 고려 시대의 여성 중심 제의와 민속신앙까지, 한국 역사에는 유독 ‘여신적 상징’과 모성적 신성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이러한 전통은 아득한 옛이야기나 단순한 관념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수백 년의 세월 동안 공동체의 삶과 숨결 속에 뼈마디처럼 새겨져 내려온 살아 있는 섭리이다.
한국 사회의 종교 문화는 언제나 하나의 특징을 보여 왔다. 그것은 배타적 교리보다 포용적 심성이었다. 무속적 세계관 위에 불교가 들어왔고, 다시 그 위에 유교적 질서가 자리 잡았으며, 근대 이후에는 기독교까지 공존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 모든 종교들은 서로를 완전히 대체하기보다 한국인의 정서 속에서 서로를 흡수하며 공존했다. 이와 같은 문화적 토양 속에서 형성된 것이 바로 풍류 정신이다. 풍류는 단순한 예술 취향이 아니라 종교와 예술, 삶과 공동체가 하나로 이어지는 문화적 감각이었다.
이러한 한국적 특유의 풍류적 세계관은 오늘날 세계를 열광시키는 K컬처의 깊은 바탕에도 여전히 작동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큰 화제를 모은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그 대표적인 사례다. 이 작품은 표면적으로는 K-pop 걸그룹이 악령과 싸우는 판타지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서사의 핵심 구조는 한국 무속의 세계관을 바탕으로 구성되어 있다. 작품 속에서 헌터들은 노래와 춤을 통해 공동체의 에너지를 모아 악령을 물리치는데, 이러한 설정은 한국의 굿 의례와 밀접하게 연결된다. 실제로 작품은 굿의 공연적 특성을 현대적 대중문화 형식으로 변주한 것으로 분석된다. 굿은 노래와 춤, 의상과 무구, 그리고 관객의 참여가 결합된 종합적 공연 의례이며, 이러한 요소들이 케이팝 공연 형식과 결합하면서 새로운 문화적 서사가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굿의 본질적 기능에 대해 알아보자. 한국 무속에서 굿은 단순히 귀신을 쫓아내는 의식이 아니라 ‘해원(解寃)’, 즉 맺힌 한을 풀어 공동체의 조화를 회복하는 과정으로 이해된다. 한국 문화에서 귀신은 반드시 제거해야 할 존재라기보다, 풀리지 않은 한을 가진 존재이며 그 한을 풀어주어야 공동체가 평화를 회복할 수 있다고 여겨졌다.
바로 이 지점에서 한국 문화의 독특성이 드러난다. 서구 문화에서 악은 종종 제거하거나 파괴해야 할 대상으로 묘사되지만, 한국 문화에서는 갈등을 관계 속에서 풀어내고 화해시키는 방식이 강조된다. ‘퇴마’보다 ‘해원’이 중심이 되는 세계관이다. 이러한 정서는 수천 년 동안 한국 사회의 민속 신앙과 공동체 문화 속에서 축적되어 왔다.
이와 같은 한반도에 서린 문화적 심성은 오늘날 K컬처 속에서도 다양한 방식으로 재현되고 있다. 문화예술 평론가들은 K-pop 공연의 본질을 두고 무대 그 이상의 의미를 부여한다. 그들의 대체적인 분석에 의하면, 오늘날 전 세계를 매료시키는 K-pop 콘서트나 퍼포먼스는 무대와 관객, 그리고 관객과 관객이 집단적 에너지와 감정의 파동을 생생하게 주고받는 현대적 의미의 ‘축제적 의례’에 가깝다는 것이다. 나아가 K-드라마는 개인의 고립된 성공이나 파편화된 승리를 그리지 않는다. 현대인의 아픔을 보듬고 개인과 개인의 관계와 공동체를 회복해 가는 유기적 서사를 뚝심 있게 반복해서 그려낸다. 밥상 위의 온기와 식탁의 풍경을 전 세계로 확장하는 K-푸드 역시 단순한 미식의 영역을 넘어선다. K-푸드는 음식을 매개로 허물없이 마주 앉아 정을 나누는 공유의 식문화를 통해, 소외된 현대문명 속 개인들의 잃어버린 공동체의 따스한 정서를 소생시키는 치유의 언어로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 한류는 문명의 새로운 언어가 되고 있다
문화인류학적 관점에서 볼 때, 이것은 매우 중요한 현상이다. 세계 대중문화는 오랫동안 개인주의적 영웅 서사와 경쟁 중심의 가치에 익숙해 있었다. 그러나 한국 문화가 보여주는 서사는 다르다. 여기에는 공동체적 정서, 관계의 회복, 그리고 감정의 해원이라는 요소가 깊이 자리 잡고 있다. 이러한 문화적 특성은 오늘날 가정연합에서 강조하는 효정(孝情) 사상과도 깊이 연결된다. 효정은 하늘을 향한 효심과 인간을 향한 사랑이 함께 작동하는 가치 체계이다. 다시 말해 종적 가치(하늘에 대한 효)와 횡적 가치(인간에 대한 사랑)가 동시에 작동하는 구조다. 이러한 종횡의 균형은 한국 전통 문화 속에서도 오래전부터 존재해 왔다. 경천(敬天)의 정신과 홍익(弘益)의 정신이 함께 작동하는 세계관이 바로 그것이다.
풍류 정신 역시 이러한 균형 위에서 형성된 문화였다. 하늘을 향한 신앙적 감각과 인간 공동체를 향한 따뜻한 정서가 함께 작동하는 문화적 태도, 그것이 풍류였다. 그리고 바로 이 풍류적 세계관이 오늘날 K컬처라는 이름으로 다시 세계 속에서 살아 움직이고 있다. 세계인들이 K-pop에 열광하고 K-드라마에 감동하는 이유는 단순히 음악이나 영상의 완성도 때문만은 아니다. 그 안에는 인간이 오래도록 잃어버렸던 어떤 문화적 감각, 즉 관계와 공감, 그리고 공동체적 정서가 살아 있기 때문이다.
결국 한류의 깊은 뿌리는 현대 산업 문화 속에서 갑자기 등장한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 한국 문화 속에서 이어져 온 풍류 정신에서 비롯된 것으로 봐야 한다. 바로 그 풍류의 정신은, 오늘날 한국 문화가 세계 문명 속에서 수행해야 할 더 큰 사명과도 연결되어 있다. 한국인의 한은 단순한 슬픔이나 원망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고통과 억압, 상실의 경험을 통해 응어리진 마음이지만, 동시에 그 마음을 풀어내고 서로를 위로하며 공동체의 조화를 회복하려는 정서이기도 하다.
현대 사회에서 K컬처가 전하는 따스한 위로와 공동체의 회복은, 하늘을 향한 효심과 인간을 향한 참사랑이 종횡으로 맞물려 작동하는 ‘효정(孝情)’의 세계관에서 비롯된다. 성경 이야기가 말하듯, 아담과 해와의 타락은 하나님의 심장에 깊은 상처를 남겼고, 창조주는 자녀를 잃은 슬픔과 한을 품은 참부모로서 기나긴 복귀섭리의 고난을 견뎌내야만 했다. 인류 역사는 바로 이 상실된 참사랑의 원형을 회복하기 위한 눈물의 여정이었으며, 한국 문화의 깊은 심층에 흐르는 풍류의 정신은 하늘의 아픈 심정을 위로하고 고통받는 이웃을 품어 안는 실천적 힘으로 작용해 왔다. 그리고 이 기나긴 복귀섭리의 완성이자 하나님의 참사랑을 지상에 실체화하는 역사적 중심에는, 오랜 분열의 역사를 넘어 참부모의 사랑을 온전히 성취해 낸 ‘독생녀’의 섭리적 의미가 고스란히 자리하고 있다.
하늘부모님의 한(恨)의 심정은 인간의 언어로 완전히 설명하기 어려운 깊은 차원의 사랑이다. 부모의 마음을 아는 자식은 굳이 말로 설명하지 않아도 그 마음을 느끼게 된다. 마찬가지로 인간의 마음 깊은 곳에는 하늘부모님의 심정을 향한 어떤 공명(共鳴)이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바로 이러한 지점에서 오늘날 K컬처 현상을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다. 세계인들이 한국 문화에 깊이 공감하고 감동하는 이유는 단지 콘텐츠의 완성도 때문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한국 문화 속에는 인간의 깊은 슬픔과 상처를 공감하고 그것을 기쁨과 축제로 승화시키는 정서가 살아 있기 때문이다.
세계인들은 그 까닭을 명확히 말로 다 설명하지 못하지만, 한국 문화와 마주할 때 가슴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인간적인 따뜻함과 진한 감동을 고스란히 느낀다. 이 깊은 울림은 어쩌면 인류가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하늘부모님의 심정에 대한 무의식적 공명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오늘날 전 세계로 확산되는 K컬처의 흐름 역시 단순한 문화 산업의 성공으로만 볼 수는 없을 것이다. 그것은 독생녀가 강림한 시대 속에서 인류 문명이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는 과정 속에서 나타난 하나의 시대적 현상일 수도 있다. 세계는 아직 그 의미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 문화 속에 담긴 풍류의 정신과 효정의 가치가 지닌 깊이는, 앞으로 인류 문명이 나아갈 방향을 조용히 비추고 있다.
고기훈 박사(한국학)
2026-08-12 10:1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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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칼럼] 한학자 총재 변호인의 ‘마지막 반론’
검사의 구형은 뉴스가 된다. 몇 년을 구형했는지, 어떤 말로 피고인을 질타했는지가 다음 날 신문과 방송에 크게 보도된다. 그러나 같은 법정에서 그 공소사실을 반박한 변호인의 최후변론은 좀처럼 세상에 알려지지 않는다. 한쪽의 목소리만 크게 들리고 다른 한쪽의 목소리는 법정 안에 머무는 셈이다.
한학자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총재의 재판도 그렇다. 특검의 수사와 구형은 널리 알려졌지만, 결심공판에서 변호인들이 무엇을 주장했는지는 상대적으로 알려지지 않았다. 물론 그 주장이 옳은지는 재판부가 판단할 일이다. 그러나 유죄와 무죄를 떠나 우리 사회가 한번쯤 들여다볼 대목은 있다. 형사재판은 검사의 주장만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변호인 최후변론의 핵심은 의외로 단순했다. 이 사건에서 한 총재의 지시와 공모를 무엇으로 입증할 수 있느냐에 모아졌다. 변호인단은 먼저 특검의 수사범위를 문제 삼았다. 공소사실 가운데 권성동 의원 관련 정치자금, 이른바 쪼개기 후원, 횡령과 증거인멸교사 등이 특검법이 정한 수사대상과 합리적 관련성이 있는지를 따졌다. 압수수색 과정도 문제 삼았다. 제출된 증거 3410개 가운데 1619개가 영장에 기재된 범죄사실과 관련 없는 별건 압수수색을 통해 확보된 위법수집 증거라는 주장이다. 형사사법에서 실체적 진실 못지않게 적법절차가 중요한 이유다.
최후변론에서 더욱 눈길을 끈 것은 핵심 증인인 윤영호 전 세계본부장의 진술을 둘러싼 반박이었다. 변호인단은 윤 전 본부장이 법정에서 한 총재와의 공모 여부를 묻는 구체적인 반대신문에 증언거부권을 행사했다며, 실질적인 반대신문권이 보장되지 않은 진술을 유죄의 핵심 증거로 삼아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변호인 최후변론에서 가장 무게가 실린 대목은 윤영호를 ‘거짓말하는 사람’으로 몰아붙인 것이 아니라, 그의 진술을 문서 작성 시점과 출입기록, 다이어리, 과거 공개발언 등 객관적 자료와 하나씩 대조했다는 점이다. 윤 전 본부장은 2022년 1월 권 의원에게 1억 원을 전달한 뒤 한 총재에게 보고했다고 진술했다. 그런데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로 제시된 ‘특별보고’ 문건의 실제 작성 시점이 사건 당시가 아니라 1년 뒤인 2023년인 사실이 공판 과정에서 드러났다. 2022년 1월 3일에 한 총재에게 보고했다는 윤영호의 진술은 허위인 것이다.
대선 직후인 2022년 3월 10일 오전 7~8시쯤 권 의원의 감사 인사를 한 총재에게 전달했다는 진술에 대해서도 당시 경기도 가평 천정궁 출입기록과 윤 전 본부장의 다이어리 기록을 제시하며 시간상 불가능하다고 반박했다. 윤석열 당선인 예방을 한 총재에게 사전에 보고했다는 진술 역시 윤 전 본부장이 이후 공개행사에서 “말씀드리지 못했고 다음 날 보고했다”고 발언한 내용과 배치된다고 했다.
김건희 여사에게 제공했다는 목걸이도 마찬가지다. 윤 전 본부장은 2022년 7월 15일 김 여사의 해외순방 당시 불거진 목걸이 대여 논란을 한 총재에게 보고하고 지시를 받아 구매했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변호인단은 대통령실이 목걸이 대여 사실을 해명한 것은 한 달여 뒤인 8월 30일이었다며 진술의 시간적 모순을 지적했다. 아직 알려지지 않은 일을 어떻게 한 달 전에 보고할 수 있었느냐는 것이다. 변호인의 반박이 어디까지 받아들여질지는 재판부가 판단할 일이다.
한 사람을 유죄로 판단하려면 그가 누구인가가 아니라 무엇을 했는지를 물어야 한다. 유명 종교지도자인지, 사회적으로 호감을 얻는 인물인지, 논쟁적인 종교의 지도자인지는 형사책임을 판단하는 기준이 될 수 없다. 변호인단이 마지막으로 강조한 것도 바로 이 점이었다. “가정연합이 사회나 법조계에서 가지는 이미지나 소수 종교라는 프레임이 유죄의 근거가 될 수는 없습니다.” 이 말은 이번 재판을 넘어 우리 사회가 기억해야 할 대목이다.
이 최후변론이 던지는 의미는 한 총재 개인의 유무죄를 넘어선다. 수사기관이 제시한 하나의 서사만으로 형사재판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그 서사를 떠받치는 증거가 적법하게 수집됐는지, 핵심 증인의 진술은 반대신문을 견뎌냈는지, 그 진술이 문서와 기록, 시간의 앞뒤와 맞아떨어지는지를 끝까지 따져 물어야 한다. 변호인의 최후변론은 바로 그 지점을 파고들었다. 단순한 선처의 호소라기보다 수사와 언론 보도를 거치며 굳어진 하나의 사건 서사를 다시 증거의 자리로 되돌려 놓으려는 시도였다.
그래서 아쉬움도 남는다. 특검의 주장과 구형은 널리 알려졌지만 이에 맞선 변호인의 구체적인 반론은 우리 사회에 충분히 전달되지 않았다. 특히 재판 과정에서 일부 언론 보도에는 종교에 대한 선입견이 짙게 배어 있었고, 이른바 ‘사이비·이단’ 프레임은 사건의 실체를 가릴 만큼 광범위하게 덧씌워졌다. 그럴수록 한쪽 주장만 듣고 여론이 먼저 판결하지 않도록 양쪽의 논거를 함께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 변호인단은 최후변론에서 형사법의 오래된 이 원칙을 다시 꺼냈다. 이제 판단은 재판부의 몫이다. 어떤 결론이 내려지든 그 판단은 종교에 대한 호오도, 한 인물에 대한 선입견도 아닌 법정에서 확인된 증거 위에 서야 한다. 그것은 언젠가 법정에 설 수도 있는 우리 모두를 위한 원칙이기 때문이다.
2026-09-03 17:3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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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의료·가정으로 이어진 희망의 실천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70년-글로벌 평화운동]
한학자 총재는 평화를 국제회의의 연설이나 정상들의 합의문 속에서만 찾지 않았다. 평화는 사람들의 삶을 실제로 변화시킬 때 비로소 의미를 갖는다고 보았다. 그래서 그의 아프리카 평화운동은 언제나 실천으로 이어졌다.
그 실천은 여성의 인권을 지키는 일에서 시작해 농업과 교육, 의료봉사, 국가 간 협력으로 확장되었다. 이러한 평화관은 선학평화상 운영에서도 잘 드러난다.
제3회 선학평화상 후보는 ‘아프리카의 인권과 개발’에 초점을 맞췄다. 이에 따라 엄격하게 선정한 결과, 소말리아 출신 여성 할례 철폐운동가 와리스 디리와 나이지리아 출신 농업혁신가 아킨우미 아데시나를 공동 수상자로 선정하는데, 큰 이견이 없었다. 두 사람의 활동은 서로 달라 보이지만, 한 총재가 바라본 평화의 본질에서는 하나로 연결된다.
여성 인권 지키미·농업혁신가에 선학평화상
패션모델이기도 한 와리스 디리는 자신이 겪은 여성 생식기 절제의 아픔을 세상에 알리며, 수많은 소녀들이 같은 폭력을 겪지 않도록 국제사회의 행동을 촉구해 왔다. 여성에 대한 폭력이 관습이라는 이름으로 용인되는 사회는 결코 평화로울 수 없음을 일깨워 주었다.
현직 아프리카개발은행 총재인 아킨우미 아데시나는 농업혁신과 식량안보를 통해 아프리카 농민들의 삶을 바꾸는 데 힘써 왔다. 굶주림과 빈곤 역시 인간의 존엄을 무너뜨리는 구조적 폭력이라는 점에서 농업은 평화를 만드는 중요한 기반이었다. 여성의 안전과 식량, 농업과 인간개발은 모두 평화의 중요한 조건이라는 것이 한 총재의 생각이었다.
이 철학은 국가 단위의 실천으로도 이어졌다. 2019년 아프리카 서쪽 기니만에 있는 섬나라 상투메프린시페에서 열린 아프리카 정상회의에는 대통령과 총리, 국회의원 등 국가 지도부가 참석해 한 총재와 함께 신아프리카 프로젝트의 협력을 다짐했다.
다음 날 열린 효정가정축복축제에는 종교지도자와 시민들이 함께 참여해 가정의 가치와 공동체의 책임을 되새겼다. 이 자리에서 한 총재는 재난 대응을 위한 소방차를 기증했고, 이어 열린 청년학생축제에서는 젊은이들이 문화공연과 인성교육, 사회문제 해결 방안을 발표하며 평화의 주체로 나섰다. 이 행사에는 약 4만 명이 참여했고 국영방송이 이를 생중계했다.
아프리카에서 한 총재가 주목한 것은 청년이었다. 그는 청년을 미래의 지도자인 동시에 오늘의 공동체를 변화시키는 평화의 설계자로 보았다. 지속 가능한 발전은 다음 세대가 올바른 가치관과 전문성을 갖추고 지역사회의 문제를 해결할 때 가능하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 씨앗은 이후에도 이어졌다. 2024년 상투메프린시페에서는 ‘피스디자이너 글로벌 캠프’가 열려 청년들이 지도력과 전문성을 배우고, 학교 보수와 환경정화 활동에 참여했다. 평화를 말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마을과 학교를 직접 변화시키는 실천으로 이어진 것이다.
이러한 봉사는 의료 분야로도 이어졌다. 고레섬에 긴급수송선을 기증했던 한 총재의 평화 구상은 ‘메디컬 피스로드’, 곧 국제 의료봉사로 확대됐다.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의 국제 의료봉사는 코로나19로 일시 중단됐으나 2024년 재개됐으며, 여러 나라 신자로 구성된 의료진이 내과와 치과, 안과, 정신건강, 한방의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약 3000명의 주민을 진료했다. 국적도 언어도 달랐지만, 생명을 살리려는 마음만은 하나였다.
한 총재는 의료봉사를 단순한 자선이 아니라 인간의 존엄과 생명의 권리를 지키는 일로 보았으며, 병든 이를 치유하는 일이야말로 ‘인류 한 가족’이라는 가치를 실천하는 가장 중요한 책임이라고 여겼다.
그의 평화운동은 더 넓은 미래를 응시하고 있었다. 국제평화고속도로의 출발점을 아프리카 최남단 희망봉으로 제시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국제평화고속도로는 사람과 사람, 국가와 국가, 대륙과 대륙 사이의 단절을 잇는 평화의 상징이다. 과거 노예무역의 길과는 달리 공동번영과 화해를 이뤄내는 길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고레섬의 ‘돌아오지 못하는 문’이 강제 이별의 상징이었다면, 국제평화고속도로는 자유로운 만남과 협력, 소통의 상징이라 할 수 있다.
평화는 다음 세대를 위해 책임을 다하는 삶의 방식
돌이켜 보면 한 총재의 아프리카 평화운동은 하나의 일관된 흐름을 보여 준다. 역사의 상처를 기억하는 일에서 출발해 인간의 존엄을 회복하고, 자립의 정신을 세우며, 교육과 의료, 청년과 가정을 통해 평화를 생활 속에서 실천하는 여정이었다. 그에게 평화는 전쟁이 없는 소극적 상태가 아니라 상처 입은 사람을 기억하고 서로를 가족처럼 돌보며 다음 세대를 위해 오늘의 책임을 다하는 적극적인 삶의 방식이었다.
2018년 세네갈 고레섬에서 시작된 기도는 하나의 의식으로 끝나지 않았다. 그 기도는 교육과 봉사, 의료와 청년운동으로 이어졌고, 오늘도 사람들의 삶 속에서 계속되고 있다. 결국 한학자 총재가 말한 ‘신아프리카 비전’은 특정 대륙만의 과제가 아니라, 상처를 치유하고 사람을 세우며 함께 번영하는 인류 공동의 평화 과제라 할 수 있다.
2026-08-10 20:3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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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존·협력의 새로운 문명 ‘신아프리카’ 비전 제시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70년-글로벌 평화운동]
세네갈 고레섬에서 시작된 한학자 총재의 기도는 과거를 위로하는 데서 끝나지 않았다. 그 기도는 “아프리카는 앞으로 어떤 대륙이 되어야 하는가”라는 물음으로 이어졌다. 여기서 한 총재가 제시한 답이 바로 ‘신아프리카’ 비전이다. 그 핵심에는 ‘주인의식’이라는 가치가 자리한다.
2006년 케냐 나이로비와 탄자니아 다르에스살람에서 열린 집회에서 한 총재는 한국의 새마을운동과 새마음 운동 정신을 소개하며, 발전은 외부의 지원보다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의식 변화에서 시작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나라는 내 나라”라는 책임감이 희망의 출발점이라고 호소했던 것이다.
한국의 새마을·새마음 운동 소개… 자립심 고취
이러한 관점은 경제 중심의 개발론과는 차이가 있다. 경제 성장은 필요하지만, 그것을 이끌어 갈 사람의 가치관과 공동체 의식이 함께 성장하지 않으면 진정한 발전도 오래 지속될 수 없다는 생각이었다.
한 총재는 평화 역시 정부의 노력만으로 만들 수 없다고 보았다. 정치와 종교, 시민사회가 함께 참여할 때 비로소 사회 전체가 변할 수 있다고 믿었고, 국가 간 외교를 넘어 다양한 평화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데 힘을 기울였다. 이러한 철학은 천주평화연합(UPF)을 중심으로 한 세계평화국회의원연합, 세계평화종교인연합, 세계평화족장연합 등 다양한 국제 협력체로 구체화되었다.
이 같은 구상은 2018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에서 열린 아프리카 서밋에서 더욱 선명하게 드러났다. ‘아프리카의 평화와 인간개발’을 주제로 열린 이 회의에는 60개국의 정치·종교·시민사회 지도자들이 참석했다.
이 회의가 주목받은 이유는 평화와 경제발전을 별개의 문제로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교육의 기회가 부족하고 의료를 받지 못하며, 여성에 대한 폭력이 지속되고 청년들이 미래를 잃어버린 사회 역시 평화롭다고 말하기 어렵다.
그래서 한 총재는 평화와 인간개발을 함께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 철학을 가장 잘 보여 주는 개념이 ‘공생·공영·공의 주의’이다. 공생은 함께 살아가는 관계, 공영은 성장의 결실을 함께 나누는 것, 공의는 정의와 책임 위에 공동체를 세우는 원칙이다. 그는 이 세 가치가 조화를 이룰 때 지속 가능한 평화와 발전이 가능하다고 보았다.
한 총재가 특별히 주목했던 인물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넬슨 만델라였다. 2018년 만델라 탄생 100주년을 맞아 열린 기념행사와 아프리카 서밋에서 그는 만델라를 27년의 수감 뒤에도 보복보다 화해를 선택한 지도자로 평가했다. 또한 그 정신이 오늘의 교육과 가정, 시민문화 속에서 실천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아프리카는 세계를 밝히는 새로운 등불
이러한 생각은 2019년 요하네스버그에서 열린 ‘아프리카대륙 서밋’에서 다시 한번 강조되었다. 한 총재는 이 자리에서 신아프리카 비전을 공식 선언하며, 아프리카가 세계 평화를 밝히는 새로운 등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가 기대한 것은 서구를 따라가는 아프리카가 아니었다. 오히려 서구 중심의 근대화가 남긴 경쟁과 갈등을 넘어 공존과 협력의 새로운 문명을 만들어 가는 아프리카였다. 이를 위해 그는 평화의 출발점을 언제나 가정에서 찾았다. 서로를 존중하고 책임을 다하는 태도는 가정에서 배우고 공동체 속에서 실천된다. 그래서 참가정 운동과 효정가정축복운동은 책임 있는 시민과 건강한 공동체를 세우기 위한 평화운동으로 이해되었다.
케이프타운과 요하네스버그에서 열린 ‘초종교 평화축복’ 행사 역시 다양한 종교와 민족이 함께 평화와 가정의 가치를 확인하는 자리였다. 신아프리카는 선언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교육과 봉사, 의료와 복지, 청년의 참여를 통해 현실 속에서 구현될 때 비로소 생명력을 갖는다. 그래서 한 총재의 아프리카 평화운동은 철학을 넘어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키는 실천으로 이어졌다.
2026-08-10 20:2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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阿 노예들을 위한 해원의 기도… 역사적 원한을 화해로 바꾸다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70년-글로벌 평화운동]
2018년 1월, 세네갈 수도 다카르 앞바다의 작은 섬 고레섬(Goree Island)에 한 여성이 조용히 섰다. 대서양이 바라다보이는 그곳은 오랫동안 ‘돌아오지 못하는 문(Door of No Return)’으로 불려 왔다. 수백 년 전 서아프리카에서 끌려온 많은 아프리카인이 가족과 고향을 뒤로한 채 이 문을 지나 노예선에 올랐고, 끝내 고향을 다시 밟지 못했다.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한학자 총재는 약 두 시간 동안 그 섬에 머물며 이름조차 남기지 못한 희생자들의 영혼을 위로하는 기도와 성별 의식을 치렀다. 피부색과 종교, 국적을 넘어 인간의 존엄을 회복하기 위한 해원의 기도였다.
고레섬은 오늘날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 됐지만, 인류 역사에서 가장 비극적인 기억을 간직한 곳이다. 15세기부터 19세기까지 이곳은 대서양 노예무역의 주요 거점 가운데 하나였다. 수많은 아프리카인이 인간이 아닌 상품으로 취급돼 이곳을 거쳐 대서양 너머로 팔려나갔고, 가족과 공동체는 무너졌다. 살아남은 이들은 타국에서 노예로 살아야 했으며, 많은 이들은 대서양을 건너다 생을 마감하기도 했다.
“신의 이름으로 저질러진 가장 가혹한 역사”
한 총재는 이를 “신의 이름으로 저질러진 가장 가혹한 역사”라고 통렬히 비판하며 반드시 기억하고 치유해야 할 상처라고 말했다. 이날 기도에는 세네갈 정부 관계자와 기독교·이슬람 지도자들도 함께했다. 서로 다른 종교가 희생자들의 영혼을 위해 한자리에 모인 모습은 평화가 인류 공동의 가치임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고레섬 방문은 추모에 그치지 않았다. 한 총재는 고레섬 주민들의 긴급환자 이송과 재난 대응을 위해 응급수송선 한 척을 쾌척했다. 과거의 희생을 기억하는 기도가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돌보는 실천으로 이어진 것이다.
이것이 한 총재가 추구한 평화였다. 평화는 선언이 아니라 과거를 기억하고 현재의 고통을 덜어 주는 실천 속에서 완성된다는 것이다. 고레섬에서의 기도는 역사적 원한을 화해로 바꾸려는 영적 실천이자 상처 입은 공동체를 다시 일으키려는 인간적 헌신이었다.
한 총재는 아프리카를 바라보는 시선도 남달랐다. 그는 아프리카를 빈곤과 분쟁의 대륙이 아니라 오랜 문명과 풍부한 문화, 젊은 세대의 가능성을 품은 미래의 대륙으로 보았다. 그래서 필요한 것은 일방적인 원조가 아니라 스스로 미래를 열어 갈 자신감과 주인의식을 키우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역사의 치유와 인간의 변화, 공동체의 자립이 함께 이루어질 때 아프리카가 세계 평화를 이끄는 새로운 중심이 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고레섬을 ‘눈물의 섬’이 아닌 ‘평화의 섬’으로 다시 태어나기를 기원했고, 이 발상은 이후 ‘신아프리카’ 비전으로 이어졌다. 신아프리카는 원조에 의존하는 아프리카를 넘어 인간의 존엄을 회복하고 자립과 협력, 화해와 공동번영을 이루며 하나님 중심의 가치를 실현하는 새로운 아프리카를 뜻한다.
‘눈물의 섬’ 아닌 ‘평화의 섬’으로 부활 기원
고레섬에서 올린 한 번의 기도는 종교의식만은 아니었다. 그것은 상처 입은 대륙을 향한 위로이자, 아프리카가 인류 평화의 새로운 주체가 되기를 바라는 희망의 선언이었다. 그리고 그 선언은 이후 아프리카 곳곳에서 펼쳐질 ‘신아프리카 평화운동’의 첫걸음이 되었다.
2026-08-10 20:2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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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끝마을 해남서 평화의 길 잇는다”… ‘2026 피스로드 통일대장정’ 개최
광복 81주년과 한국전쟁 76주년을 맞아 한반도 평화통일과 세계평화를 기원하는 ‘2026 피스로드 해남군 통일대장정’이 8일 땅끝마을 전남 해남군 해남읍 해남문화예술회관에서 성황리에 열렸다.
피스로드 조직위원회가 주최하고 남북통일운동국민연합이 주관한 이번 행사는 조국의 광복과 자유대한민국의 수호를 위해 희생한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의 뜻을 기리고, 평화적인 남북통일과 세계평화를 향한 지역사회의 의지를 결집하기 위해 마련됐다. 이날 현장에는 지역 지도자와 평화대사, 군민 등 200여 명이 참석해 배너 사인식, 특강, 평화메시지 낭독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함께하며 평화의 의미를 되새겼다.
박종서 해남 국민연합 회장은 대회사를 통해 “평화는 총과 무기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하며 사랑하는 마음에서 시작된다”며 한반도 평화통일을 위해 모두의 뜻을 하나로 모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동하 해남군 피스로드 공동실행위원장은 “평화는 함께 만들어 가는 실천적 운동”이라며 “오늘 해남에서의 발걸음이 남북을 잇고 평화통일을 앞당기는 소중한 씨앗이 될 것”이라는 기대를 밝혔다.
이어 명현관 해남군수를 대신해 참석한 김병성 해남 부군수는 축사를 통해 “이번 행사는 평화통일을 향한 해남군민의 염원을 하나로 모으고 확산하는 뜻깊은 평화운동”이라며 지역사회의 지속적인 관심과 참여를 당부했다.
민경매 해남군의회 의장(해남 평화대사)은 “땅끝 해남에서 시작된 평화운동이 한반도를 넘어 세계로 확산될 수 있도록 군민과 함께 뜻을 모으고 지속해서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안길섭 전남평화대사협의회장은 격려사에서 “남북통일은 우리 민족의 숙원이며, 분단의 아픔을 넘어 남과 북이 함께 번영하는 한반도를 만드는 것이 우리의 꿈”이라며 “피스로드를 통해 민간 차원의 국민적 통일운동을 힘차게 펼쳐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날 행사의 하이라이트인 특강에서 김석진 국민연합 중앙회장은 “전쟁과 갈등으로 에너지·식량·물류가 위협받는 지금, 평화는 인류 생존을 가장 현실적인 과제”라며 “피스로드 통일대장정은 사람과 국가를 하나의 끈으로 이어 갈등을 치유하고 공동번영의 길을 만들어가는 실천적 세계평화운동”이라고 그 가치를 역설했다.
참석자들은 평화메시지 낭독과 배너 사인식을 통해 한반도의 평화로운 미래와 통일을 향한 의지를 다졌으며, 지역사회 전반으로 평화와 통일의 가치를 확산해 나갈 것을 다짐했다.
올해로 10회째를 맞이한 해남군 통일대장정은 지역 주민과 평화대사들이 주도적으로 참여하며 평화통일에 대한 공감대를 넓히는 지역의 핵심 평화운동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한편, 국민연합은 올해에도 전국 각지에서 피스로드 통일대장정을 이어가며 한반도 통일과 세계평화를 향한 국민적 관심과 참여를 지속해서 확산해 나갈 계획이다.
2026-08-10 16:5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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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칼럼] 한 사람을 심판하려 초가삼간 태울 순 없다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한학자 총재가 서울구치소에 구속된 지 어느덧 1년에 가까워지고 있다. 지난해 9월 구속된 이후 가정연합은 지도자의 장기 부재라는 초유의 상황을 맞고 있다. 오는 8월 말 1심 선고를 앞둔 지금 신도들의 불안감도 갈수록 커지고 있다.
재판 결과를 예단할 생각은 없다. 혐의가 있다면 증거와 법리로 가리고, 잘못이 확인된다면 그에 합당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종교 지도자라고 법 앞에 예외일 수 없고, 거대한 종교단체라고 성역이 될 수도 없다.
그러나 한 사람의 형사책임을 묻는 것과 그가 이끌어온 종교공동체의 국제적 기반까지 흔드는 것은 다른 문제다. 지금 우리 사회가 냉정하게 살펴야 할 지점도 여기에 있다. 한 총재의 장기 부재 이후 가정연합의 국제 활동은 눈에 띄게 동력을 잃고 있다. 국제합동축복결혼식을 비롯해 월드서밋과 아프리카 서밋, 종교 간 연대운동, 기후·환경 문제에 대한 국제적 대응 등 굵직한 글로벌 프로젝트가 예전 같은 활기를 찾기 어렵다.
이 활동들은 단순한 종교행사의 연속이 아니었다. 정치·종교·시민사회를 연결하고 세계 각국의 지도자를 한국과 이어온 민간외교의 플랫폼이기도 했다. 실제로 2018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에서 열린 아프리카 서밋에는 60개국의 정치·종교·시민사회 지도자들이 참석했다. 국제회의에 그치지 않고 청년교육과 의료봉사, 환경과 지역사회 지원으로 활동 영역도 넓어졌다.
2025년 제6회 시상식을 치른 선학평화상의 앞날도 걱정스럽다. 2013년 제정된 이 상은 기후위기와 식량안보, 난민과 의료, 여성인권과 교육, 종교화합과 빈곤퇴치 등 인류가 직면한 문제를 ‘평화의 의제’로 제시하고 그 해결에 헌신한 인물들을 발굴해 한국으로 불러왔다. 2027년 제7회 시상식이 불투명해진다면 이를 과연 한 종교단체의 손실로만 치부할 수 있을까.
국제적 네트워크는 돈과 조직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세계 곳곳에서 평화를 실천하는 사람들을 찾아 한국으로 불러들이고, 전·현직 국가 지도자와 종교지도자, 국제기구 관계자들을 한자리에 모으는 힘은 수십 년간 사람과 사람 사이에 쌓인 신뢰에서 나온다. 한번 끊어진 ‘신뢰의 자본’은 막대한 비용을 들여도 쉽게 복원되지 않는다.
더욱 주목할 것은 가정연합의 국제 활동이 대한민국에 가져온 경제적·민간외교적 효과다. 가정연합 자체 통계에 따르면 2003년부터 2025년까지 집계가 확인되는 21개 연도 동안 한국을 찾은 해외 신도는 모두 479만 8226명으로, 연평균 약 22만 8500명에 이른다. 2025년 한 해에만 34만 명이 넘었다. 2003년 이전 방문객을 제외하고도 20여 년 동안 약 480만 명이 한국을 찾은 셈이다.
많은 해외 신도들에게 한국은 가정연합이 태동한 ‘신앙의 조국’이다. 이들은 국제행사와 성지순례, 교육과 수련을 위해 한국을 찾아 숙박·식사·교통·관광·쇼핑 등에 비용을 지출했다. 정확한 지출액은 별도로 따져봐야겠지만, 1인당 국내 지출액을 100만 원으로만 잡아도 연간 약 2300억 원, 20여 년간 누적 약 4조 8000억 원을 한국에 풀었다. 그러나 돈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세계 각국에서 온 사람들이 한국을 직접 경험하고 자기 나라로 돌아갔다는 사실이다. 연평균 20만 명이 넘는 외국인이 종교적·문화적 동기로 한국을 찾았다면, 그것은 정부가 막대한 예산을 들여도 쉽게 구축하기 어려운 민간외교의 통로다.
안타깝게도 그 통로가 지금 좁아지고 있다. 법학과 사회과학에서는 형사사법 조치가 당사자를 넘어 가족과 조직, 공동체에 미치는 영향을 ‘부수적 결과’라고 설명한다. 법은 한 개인의 위법행위에 책임을 묻지만, 현실에서는 그 과정에서 애초에 의도하지 않았던 사회적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 지도자의 상징성과 국제적 역할이 큰 종교공동체라면 그 파장은 더욱 클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가정연합에 책임이 없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정치권력과 종교의 관계가 어떠해야 하는지, 왜 국민에게 의혹과 불신을 샀는지 뼈아프게 성찰해야 한다. 조직 운영과 의사결정에 문제가 있었다면 바로잡아야 한다. 세계평화를 말해 온 종교라면 사회적 신뢰를 회복하는 데도 누구보다 엄격해야 한다. 다만 지도자 개인의 형사책임과 세계 각국의 신도들이 연결된 종교공동체의 미래는 구별해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우리 속담에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운다’는 말이 있다. 잘못 하나를 바로잡으려다 더 큰 것을 잃어서는 안 된다는 경계다. 한 사람의 책임을 묻는 과정에서 수십 년간 대한민국을 거점으로 구축해 온 국제 평화 네트워크가 무너지고, 연평균 20만 명이 넘는 해외 신도를 한국으로 불러오던 통로가 막힌다면 우리 사회는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는 것인가.
이제 1심 판결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법원은 정치도, 여론도, 종교적 이해관계도 아닌 오직 증거와 법리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 동시에 행위와 책임 사이의 비례성이라는 법의 기본정신도 중요하다. 법은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 존재하지, 한 공동체의 미래까지 무너뜨리기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나아가 이번 사태가 과연 특정 종교만의 위기인지 우리 사회 전체가 한 번쯤 되물어야 할 시점이다.
2026-09-03 17:3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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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평군 평화대사협의회, ‘한민족 선민 대서사시’ 강연회 개최…지역 미래 비전 모색
가평군 평화대사협의회는 6일 경기도 가평군 가평읍 벨리웨딩홀에서 지역 지도자와 평화대사 등 2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가평군 지도자 초청 한민족 선민 대서사시 강연회’를 개최했다.
이번 강연회는 한민족의 역사와 정체성을 되돌아보고 평화와 상생의 가치를 공유하는 한편, 지역사회의 미래 비전을 함께 모색하기 위해 마련됐다. 행사는 식전영상, 개회선언, 국민의례, 내빈소개, 환영사, 축사, 격려사, 특별강연 등 순으로 진행됐다.
육도수 가평군 평화대사협의회 회장은 환영사에서 “지역사회 발전과 평화문화 확산을 위해서는 지도자들의 지속적인 관심과 참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평화와 화합의 가치가 지역사회 전반으로 확산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김종성 가평군의회 의장은 축사를 통해 “가평의 발전을 위해서는 군민 모두가 힘을 모아야 하며, 평화대사들이 지역사회의 리더로서 화합과 발전을 이끄는 역할을 해주길 바란다”고 전했다.
이어 이종효 천주평화연합(UPF) 가평군지부장은 “이번 강연을 통해 우리 민족의 역사 속 인물과 사건을 돌아보고 한민족의 역사관을 함께 살펴보는 뜻깊은 시간이 되고, 충·효·열의 정신이 가정의 행복과 세계평화를 이루는 소중한 가치임을 함께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기성 HJ천주천보수련원 원장은 격려사에서 “오늘 강연이 가평의 새로운 비전과 사명을 함께 고민하는 뜻깊은 자리가 되기를 바란다”며 “평화를 실천하는 지도자의 역할과 책임을 바탕으로 지역사회의 화합과 발전을 위해 평화대사들이 지속적으로 힘써 달라”고 당부했다.
특별강연은 HJ천주천보수련원 전유상 교육국장이 ‘한민족 선민 대서사시’를 주제로 진행했다. 전 국장은 한민족의 역사와 정체성을 바라보는 다양한 관점을 소개하고, 우리 민족의 역사적 가치와 평화의 의미를 설명했다. 또한 지역사회 발전과 세계평화를 위한 실천 방안을 참석자들과 함께 공유했다.
가평군 평화대사협의회 관계자는 “앞으로도 교육과 봉사활동 등 다양한 사업을 통해 평화문화 확산과 지역사회 발전에 기여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2026-08-07 09:5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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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한일교류와 선민의 인류사적 확장 [신화에서 선민까지 한민족 정체성의 문화사적 발견-기고]
선민(選民)이라는 개념을 잘못 이해하면, 자칫 배타적 민족주의로 왜곡될 수 있다. 하늘부모님의 심정 속에서 선민의 위상은 혈통적 가계도 혹은 특정 민족에 고정된 유전적 의미는 아니기 때문이다. 선민은 하늘의 뜻을 먼저 알고, 나보다 상대를 더욱 위하여 사는 삶을 생활 속에서 실천하겠다는 자발적 자각을 전제로 한다. 한민족 선민사상을 이야기하는 이유는 특정 민족의 특권적 지위를 주장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 핵심은 국경과 인종의 경계를 넘어 하늘의 참사랑을 인류 공동체 속에 실현할 보편적 평화의 길을 모색하는 데 있다.
특히 8월은 한국과 일본 양국 모두에게 역사적 기억과 상처의 굴곡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달이다. 이러한 시기에 참된 사명감은 과거의 대립 구도를 넘어 양국이 나아가야 할 새로운 섭리적 지평을 제시한다. 최근 일본 교회의 시련 속에서 깊은 실의와 상실감을 겪고 있는 일본 통일교 신도들에게, 선민의 확장은 단순한 위로를 넘어 거대한 역사적 희망의 불씨가 된다. 섭리의 중심에서 참부모님을 모시고 시련을 딛고 일어선 그들의 헌신이야말로, 혈통의 경계를 넘어선 본질적 섭리의 증거이기 때문이다. 양국의 신도들이 함께 아픔을 치유하고 하나로 결속할 때, 역사는 국경을 초월한 인류사적 차원으로 나아간다.
이러한 한일 양국의 연대와 섭리적 확장은 가정연합의 대표적 사회철학인 공생공영공의주의(共生共榮公義主義)와 통일사상의 수수법이라는 강력한 이론적 틀 위에서 비로소 그 실천적 완성을 이룬다. 공생은 경제적 차원에서 자원과 삶의 기반을 함께 나누어 상생을 실현하는 원리이고, 공영은 정치사회적 차원에서 모든 구성원이 공동체의 책임과 운영에 주체적으로 참여하는 원리이며, 공의는 공동윤리를 바탕으로 도덕적 사회통합을 이루어내는 원리이다. 이 세 가지 실천 원리는 서로 분리된 개념이 아니라, 주체와 대상이 공통목적을 중심으로 상호작용하여 새로운 합성체를 형성하는 수수법에 의해 유기적으로 연결된다. 목적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이 ‘발전적 수수작용’은 한국과 일본의 신도들이 국경을 넘어 더 높은 차원의 평화이상세계를 창출하는 ‘발전적 사위기대’로 구체화된다. 고통 속에서도 서로의 짐을 지고 위하여 사는 삶을 실천하는 한일 양국 신도들의 발걸음은, 공생공영공의의 섭리를 지상에 실체화하는 구체적인 실천이다.
◆ 한일교류와 참부모 섭리의 문화사적 의미
한일 관계 또한 이러한 관점에서 새롭게 해석되어야 한다. 고대 한반도가 일본에 영향을 주었다는 역사적 사실은 분명 존재하지만, 이를 일방적인 문화 전달이나 우월성의 논리로 해석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문화인류학의 관점에서 문명은 언제나 상호 교류 속에서 형성되기 때문이다. 가령 고대 한일 간의 교류와 기술 전파의 흐름은 『일본서기』와 같은 역사적 기술을 통해서도 엿볼 수 있으며, 대표적으로 오사카성 등 일본의 거점 건축과 도시 인프라 형성 과정에는 백제시대부터 일본에 전수 된 선진 토목과 건축 기술이 깊이 체화되어 있었다. 이처럼 문명의 성취는 일방적 전수가 아니라, 양 지역의 상호 작용과 끊임없는 노력 속에서 함께 성장해 온 결실이었다.
이 같은 역사적 연관성은 일본 각지에 남아 있는 신사와 전승을 통해 지금도 구체적으로 확인된다. 예를 들어 일본 사이타마현에는 고구려 왕족을 모시는 고려신사(高麗神社)가 존재하는 데, 이곳은 8세기 고구려 유민들의 정착과 함께 형성된 함께 형성된 대표적인 도래인 신사이다. 또한 가고시마 지역의 옥산신궁은 16세기 조선의 도공들이 단군을 조상신으로 모시며 세운 신사로 알려져 있다. 또한 규슈의 히코산 일대에서는 환웅과 연결되는 전승이 확인되는 등 한반도 고유의 삼신 신앙 형태가 발견된다. 이처럼 일본의 신토 전통 속에는 한반도의 천신 신앙이 깊이 스며들어 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이러한 신앙과 제의가 단순히 오래된 전통으로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대를 기다려 온 역사적 기억을 함께 간직하고 있다는 점이다. 일본 무나카타 대사의 여신 신앙과 이즈모 대사의 신맞이 의례를 비롯한 일본의 해양 및 여성신 관련 전통에는 바다 건너에서 찾아올 존재를 맞이하려는 상징적 의미가 오랫동안 이어져 왔다. 흥미롭게도 이러한 고대 일본의 여성신 신앙과 제의문화의 형성 과정에는 한반도에서 전해진 문화와 천신 신앙의 영향이 스며들어 있다는 여러 연구와 학설도 존재한다. 물론 이에 대해서는 다양한 견해가 있지만, 적어도 한일 양국이 오랜 세월 문화적 교류를 통해 상호 간 깊이 연결되어 왔다는 사실만큼은 부인하기 어렵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일본 사회에서 오랫동안 이어져 온 ‘기다림’의 전통은 종교적 관습을 넘어 새로운 시대를 향한 문화적 열망으로도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기다림은 통일교 신학의 관점에서는 참부모를 맞이하기 위한 섭리적 준비 과정으로 해석된다. 이러한 오랜 기다림은 마침내 독생녀의 현현을 통해 역사 속에서 구체적인 실체를 갖게 되었고, 독생자와 독생녀가 하나 되어 참부모를 이루심으로써 하늘부모님의 참사랑이 인류 가운데 실현되는 새로운 섭리 시대를 열게 되었다.
◆ 한류와 풍류정신
한국 문화의 정체성을 탐구한 여러 연구는 한국인의 정신세계 깊은 곳에 풍류정신이라는 고유한 문화적 전통이 자리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신라 말 학자 최치원은 『난랑비서』에서 풍류를 유·불·선을 아우르면서도 그 이전부터 전해 내려온 우리 민족 고유의 도(道)라고 설명하였다. 풍류정신은 단순히 예술적 감성이나 미학이 아니라, 인간과 자연 그리고 하늘을 하나의 생명 질서로 이해하는 한국 고유의 정신문화였다. 이러한 풍류정신의 근저에는 태고부터 이어져 온 자연친화적 신앙과 하늘을 공경하는 문화가 자리하고 있었다. 이는 자연을 그저 삶의 환경으로 바라본 것이 아니라, 인간과 자연 그리고 하늘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세계관이었다. 이러한 정신문화는 시간이 흐르면서 보이지 않는 하늘의 뜻을 마음으로 헤아리고, 생명의 소중함과 공동체의 조화를 중시하는 심정문화로 발전하였다.
통일교 신학에서 심정은 인간의 감정이 아니라 하늘부모님과 인간을 이어 주는 가장 근원적인 내면의 능력이다. 인간은 타락으로 인해 하늘부모님의 심정을 온전히 체휼하지 못하게 되었지만, 양심과 심정을 통해 하늘의 사랑과 슬픔을 부분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존재로 남아 있다고 본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풍류정신은 하늘을 향한 인간의 본래적 심정이 오랜 세월 한국 문화 속에 축적되어 온 정신적 유산으로 이해할 수 있다.
오늘날 전 세계가 K-팝, 드라마, 영화 등 한류 문화에 깊이 공감하는 이유 역시 단순히 뛰어난 한국의 문화산업의 경쟁력만으로는 충분히 설명하기 어렵다. 문화와 언어는 서로 다르지만, 인간 안에는 양심과 심정이라는 보편적 내면이 존재한다. 한국 문화가 지닌 따뜻한 정(情), 공동체의식, 배려와 공감의 정서는 바로 이러한 보편적 심정과 만나면서 국경과 인종을 넘어 세계인의 마음을 움직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다시말해, 풍류는 한민족의 심정문화이고, 한류는 그 심정문화가 현대 문명을 통해 세계와 만나는 새로운 문화적 언어라 할 수 있다.
◆ 한(韓)민족 선민(選民)의 새로운 의미 : 열린 민족주의
이러한 관점에서 한민족의 선민성은 특정 민족의 우월성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하늘을 향한 심정을 먼저 간직하고, 이를 세계와 나누는 문화적 책임을 의미한다. 통일교 신학이 강조하는 하늘부모님의 참사랑 역시 이러한 심정을 인류 보편의 가치로 확장하는 데 그 본질이 있다. 따라서 오늘날 한류의 세계적 확산은 한국 문화의 성공을 넘어, 하늘을 향한 심정문화가 세계와 공명하며 인류 한 가족의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새로운 세계 문화사적 흐름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민족의 고유한 정체성을 상징하는 ‘한(韓)’은 인류가 지향해야 할 총체적 사상의 시원이다. ‘한’이라는 한 글자 안에는 ‘크다, 전체, 밝다’라는 외적 확장성과 더불어 ‘하나님, 한뜻’이라는 내적 근원성이 공존한다. 이는 어둠과 죄악이 물러간 아침 태양의 광명한 세계를 의미하며, 맑고 깨끗한 본연의 성품으로 전체와 하나 되어 어우러지는 화합과 자유, 평등과 평화의 가치를 담고 있다.
즉, ‘한’은 하늘부모님의 속성을 닮은 인류 본연의 청사진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한민족’은 단순히 한반도라는 지리적 경계나 단일 혈통이라는 생물학적 개념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그러한 편협한 시각은 ‘한’이 가진 포용과 통합의 정신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진정한 의미의 한민족은 하늘부모님을 중심삼고 참사랑을 공유하며 실천하는 인류애에 있다. 피부색과 국경을 초월하여, 하늘 심정을 체휼하고 그 뜻을 위해 함께 호흡하는 모든 사람이 곧 ‘한민족’이라는 거대한 심정의 공동체에 속하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하늘이 선택한 민족’을 뜻하는 ‘선민(選民)’의 개념 역시 새롭게 정립되어야 한다. 선민은 타민족 위에 군림하는 특권적 지위가 아니라, 오히려 인류를 위해 먼저 십자가를 지고 헌신해야 하는 책임 있는 사명의 자리이다. 하늘이 한 민족을 먼저 택하신 이유는 그들을 통해 참사랑의 모델을 세우고 전 세계로 그 사랑을 확산시키기 위함이다. 따라서 선민이란 하늘의 큰 사랑을 먼저 받은 만큼, 그 사랑을 온누리에 돌려주어야 할 참사랑 실천의 의무가 배양된 존재들이다. 독생녀께서 이 땅에 강림하신 섭리적 배경에는, 바로 이러한 ‘한’의 정신을 실체화하여 전 인류를 하나의 심정공동체로 묶으시려는 하늘의 간절한 소망이 담겨있다. 이제 우리는 혈통적 민족주의의 좁은 틀을 벗어나야 한다. 전세계 인류가 하늘부모님 아래 한 가족이 되어 참사랑을 나누는 ‘글로벌 한민족’으로 거듭날 때 선민의 사명은 완성될 것이다.
◆ 한일 축복가정과 선민의 확장
우리는 흔히 고대 한일 관계를 국가 간의 딱딱한 외교나 갈등의 역사로만 기억한다. 그러나 『일본서기(日本書記)』 「계체기」는 1,500년 전 한반도 남부와 일본 열도 사람들이 얼마나 살갑게 섞여 살았는지를 놀라운 비유로 증언한다.
“이 사현은 백제와 가깝게 이웃해 있어, 아침저녁으로 통행하기 쉽고, 닭과 개의 주인도 누가 주인인지를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이다(此四縣近連百濟, 旦暮易通 雞犬難別)”
닭 울음소리와 개 짖는 소리조차 누구의 것인지 분간할 수 없을 만큼 가깝게 지냈다는 이 묘사는, 당시 한일 양국의 국경이라는 인위적 장벽을 넘어, ‘심정과 문화가 하나로 흐르는 단일 생활권’을 형성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이처럼 고대 백제와 일본의 관계는 단순한 국가 간의 외교가 아니라 문명적 공동체를 형성했던 이웃이었다. 실제로 일본 고대 사회에는 많은 백제계 이주민 집단이 형성되어 있었고, 그들은 정치와 문화 네트워크의 중심적 역할을 수행하였다. 백제 문화는 일본 고대 문명의 형성에 영향을 줬고, 대표적인 게 불교문화이다.
일본 고대사를 연구한 후쿠오카대학 모모사키 유스케 교수는 “고대 일본의 호족 세력들은 중국과 직접 교류하던 백제와 가야의 문화·정보·자원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며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다.”고 설명한다. 실제로 1990년대부터 일본 각지에서 한반도계 유물이 대규모로 발견되고 있으며, 일본 나라현립박물관에서는 이러한 자료들을 정리한 ‘한반도계 유물’이 편찬되기도 했다.
이러한 고고학적 발견들은 고대 일본 사회에서 백제 문화의 영향력이 상당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증거로 평가된다. 이 같은 관계는 일본에 남아 있는 여러 유적과 신사에서도 확인된다. 일본 와카야마현의 스다하치만 신사(隅田八幡神社)에 전해 내려오는 청동거울이 있다. 이 거울에는 48자의 명문이 새겨져 있으며 그 가운데 사마(斯麻)라는 이름이 등장한다. 학계에서는 이 사마가 백제 제25대 왕 무령왕의 이름으로 보는 게 정설이다. 실제로 충남 공주 무령왕릉에서 발견된 지석에서도 그의 이름이 사마(斯麻)로 기록되어 있어 동일 인물임이 확인된다. 일본에서 국보 2호로 지정되어 있는 청동거울은 고대 한일 교류의 깊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오랜 세월 대륙과 대서양을 중심으로 전개되어 온 세계 문명사의 흐름이 이제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하고 있다. 통일교 『평화경』 강연문은 “인류 문명의 발전은 지구를 한 바퀴 돌아 대서양 문명권에서 태평양 문명권으로 이동하는 시대에 이르렀다. 태평양은 단순한 바다가 아니라 서로 다른 문명과 민족을 연결하는 거대한 교차로”라 밝힌다. 이러한 시대적 조류 속에서 한국과 일본은 지리적·문화적 차원에서 태평양 문명권의 중심축을 이루고 있다. 양국이 근현대사의 갈등과 상처를 치유하고 인류 공동체의 미래를 위해 협력한다면, 단순한 경제 블록을 넘어 새로운 평화 문명의 원형을 전 세계에 제시하는 주역이 될 것이다.
문명사적 전환 속에서 등장한 존재는 바로 한일 축복가정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다문화가정 공동체이다. 서로 다른 민족과 문화가 가정을 통해 결합하는 축복가정은 단순한 국제결혼이 아니라, 인류가 하나의 가족으로 연결되는 미래 문명의 모델이라 할 수 있다. 이때 그 중심을 이루는 정신이 바로 효정(孝情) 사상이다. 효정은 하늘과 부모를 향한 수직적 사랑인 ‘효’와 형제와 이웃을 향한 수평적 사랑인 ‘정’이 결합된 심정 세계를 의미한다. 효가 종적 질서를 세우는 사랑이라면, 정은 인간 공동체를 확장하는 횡적 사랑이다. 효가 하늘을 경외하고 모시는 경천애인이라면, 정은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하는 홍익인간의 철학인 것이다. 이 두 사랑이 균형을 이룰 때 인간은 가정을 넘어 사회와 국가, 더 나아가 인류 전체를 하나의 가족으로 바라보게 된다.
따라서 한일 축복가정은 단지 두 나라의 관계를 개선하는 사회적 현상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것은 효정의 사랑을 기반으로 민족의 경계를 넘어서는 인류 가족 공동체의 씨앗이 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한민족의 선민 사명은 특정 민족의 선택이나 특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인류 문명을 연결하고 확장하는 책임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한일 축복가정은 바로 그 책임이 구체적인 삶의 형태로 나타난 사례이며, 태평양 문명권 시대에 인류가 하나의 가족으로 나아가는 길을 보여주는 작은 시작이다.
◆ 환태평양문명권 시대, 한민족의 인류 가족
인류 역사는 언제나 바다를 따라 이동해 왔다. 고대의 지중해가 그러했고, 근대의 대서양이 그러했듯이 이제 세계사의 중심축은 태평양으로 옮겨가고 있다. 태평양은 단순한 해양 공간이 아니라 서로 다른 문명과 민족이 만나는 거대한 역사적 무대이다. 동쪽의 아메리카와 서쪽의 아시아가 마주하는 이 바다는, 인류가 갈등의 시대를 넘어 새로운 공존의 질서를 모색하는 미래 문명의 바다이기도 하다. 이러한 전환의 시기에 한반도와 일본열도는 태평양 문명의 동쪽 문을 여는 두 축으로 자리하고 있다.
이 변화의 흐름 속에서 이미 조용히 역사를 만들어 온 사람들이 있다. 바로 하늘을 숭상하고 인류를 사랑하는 마음을 실천해 온 한일 축복가정들이다. 이들은 서로 다른 민족과 문화를 가정 안에서 화해시키며 살아온 사람들이다. 때로는 역사와 정치의 갈등이 양국 관계가 흔들릴 때에도 그들은 가정이라는 가장 작은 공동체 속에서 화해와 이해의 길을 보여주었다. 한일 축복가정들은 자연스럽게 한일 양국의 민간 외교관이 되었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늘 양국의 평화사절단 역할을 묵묵히 감당해 왔다.
결국 태평양 문명권 시대에 한민족이 감당해야 할 사명은 분명하다. 그것은 특정 민족의 번영을 넘어 인류를 하나의 가족으로 묶는 심정의 문명을 여는 일이다. 하늘을 공경하고 인간을 사랑하는 경천애인의 정신, 그리고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는 홍익인간의 철학은 바로 그 길을 가리키고 있다. 한일 축복가정들이 보여 준 삶의 이야기는 그 가능성을 이미 증명하고 있다. 태평양의 거대한 물결 위에서 이제 한민족의 선민 사명은 새로운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그것은 한 민족의 선택이 아니라, 인류 전체를 한 가족으로 이끄는 책임의 역사이다.
고기훈 박사(한국학)
2026-08-06 13:4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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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는 왜 영성을 찾는가— 세계사를 움직인 15인의 영성] <15·끝> 마하트마 간디(Mahatma Gandhi)-“정치는 영혼을 가질 수 있는가”
인간은 왜 권력을 가지면 폭력에 기대게 될까. 국가는 왜 정의를 표방하면서도 전쟁과 억압을 반복하는가. 정말 인간은 증오와 보복 없이는 세상을 바꿀 수 없는가. 20세기 인류는 제국주의 식민 지배와 이념적 학살을 경험하며 치를 떨었다. 오직 군사력과 총칼만이 세계의 질서를 재편하던 그 야만의 시대에 한 남자가 전혀 다른 방식의 저항을 들고 역사의 전면에 등장했다. 군대도, 무기도 없이 오직 맨몸과 양심, 그리고 영혼의 힘만으로 제국에 맞선 그의 이름은 마하트마 간디((Mahatma Gandhi)였다.
그는 흔히 ‘비폭력의 성인’이라는 박제된 이미지로 기억되지만, 실제로는 현실 정치의 한 복판에서 치열하게 싸우며 정치와 영성을 결코 분리할 수 없다고 믿었던 힌두교 수행자였다. 간디는 인간 내면의 영적 도덕성이 변하지 않으면 그 어떤 독립도 또 다른 폭력의 악순환을 낳을 뿐이라고 경고하며, 냉혹한 권력 투쟁의 영역에 도덕이 스며들 수 있는지를 평생 실험했다.
◆폭력의 시대, 영혼의 힘으로 제국에 맞선 거인
간디는 1869년 인도 서부 구자라트 지방의 독실한 힌두교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의 가문은 대대로 재상을 배출할 만큼 유복했고, 어머니는 철저한 채식주의와 단식, 영적 정화를 실천하는 엄격한 힌두교도였다. 간디는 조혼 풍습으로 13세에 결혼했으나, 아내와 아들 하나를 남겨두고 19세에 홀로 영국의 명문 법률학교인 이너 템플(Inner Temple)에서 유학하며 엘리트 변호사로 성장했다.
그의 삶을 바꾼 전환점은 1893년 가족과 함께 이주한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찾아왔다. 인도인 소송 사건을 맡기 위해 이주한 남아공에서 그는 유색인종이라는 이유로 기차 1등석에서 강제로 쫓겨난 모멸적 사건을 겪으며, 제국주의 문명의 야만성을 정면으로 응시하기 시작했다. 이후 20년간 남아공에 체류하며 억압적인 인종차별에 맞서 상대를 파괴하지 않는 독창적인 저항 방식을 실천해 나갔다.
간디가 제창하고 평생 실천한 세 가지 핵심 이념은 아힘사(Ahimsa, 불살생·비폭력), 브라마차리아(Brahmacharya, 성적 금욕·정화), 사티아그라하(Satyagraha, 진리 파지·영혼의 힘)인데, 이는 모두 힌두교의 유구한 종교적·철학적 전통에 깊은 뿌리를 두고 있다. 아힘사는 모든 생명체 안에 우주의 신성인 ‘아트만(Atman)’이 깃들어 있다고 믿기 때문에 타인을 해치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과 신성을 해치는 것과 같다고 보는 것이다. 브라마차리아는 성적 에너지를 분출하지 않고 내면으로 수렴할 때, 그것이 영적 깨달음을 얻기 위한 거대한 정신적 에너지(오자스, Ojas)로 전환된다고 믿었다. 흔히 ‘비폭력 저항’을 뜻하는 간디의 신조어 ‘사티아그라하’는 ‘진리’를 뜻하는 사티아(Satya)와 ‘붙잡음’을 뜻하는 아그라하(Agraha)의 합성어로, 힌두교 고대 경전인 ‘우파니샤드’는 “오직 진리만이 승리한다”고 가르치며, 진리를 우주의 근본 원리이자 신(God) 자체로 동치시킨다. 힌두교도에게 진리를 추구하고 고수하는 것은 삶의 가장 숭고한 다르마(Dharma, 도덕적 의무)이다.
여기서 잠시, 힌두교란 어떤 종교일까. 힌두교는 단일한 교조나 성전 대신 인도의 유구한 역사 속에서 자라난 다양한 신앙 체계의 거대한 융합체이다. 이 종교는 우주의 근본 원리인 브라흐만(Brahman)과 개인의 영혼인 아트만(Atman)이 본래 하나라는 깨달음을 통해 삶과 죽음이 반복되는 윤회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해탈을 궁극적 목적으로 삼는다. 신앙인들은 자신이 지은 행위의 결과인 업(Karma)에 따라 다음 생이 결정된다고 믿으며, 인생의 각 단계에서 마땅히 행해야 할 도덕적·종교적 의무인 다르마를 지키는 것을 삶의 지표로 삼는다. 힌두교의 예배 의식과 신앙 형태는 다신교적 면모를 띠어 우주의 창조신 브라흐마, 유지신 비슈누, 파괴신 시바 등 수많은 신 중 자신이 선택한 신을 정성껏 섬기는 박티(Bhakti, 절대적 헌신)가 중심을 이룬다. 신도들은 매일 집안의 제단이나 사원에서 신상에게 꽃과 음식을 바치고 불빛을 흔드는 푸자(Puja, 예배의식)를 행하며, 몸과 마음을 통제하는 요가(Yoga)와 고행, 그리고 갠지스강 같은 성지 순례를 통해 영혼을 정화하고 신성과 합일하고자 노력한다.
◆힌두 신앙의 유산과 보편적 양심이 낳은 ‘사티아그라하’
간디는 이러한 힌두 신앙을 온몸으로 체화했으며, 그의 사상과 영성의 정수는 바로 ‘사티아그라하’에 집약되어 있다. 간디에게 사티아그라하는 소극적 불복종이 아닌 적극적인 ‘진리의 힘’이자 ‘영혼의 힘’을 의미했다. 간디는 폭력이 증오를 낳는다는 우주의 인과율을 신뢰했고, “수단이 목적을 결정한다”고 확신했다. 폭력이라는 오염된 수단으로 얻은 신생 국가 역시 필연적으로 폭력적인 괴물이 될 뿐이기에, 적의 양심을 깨워 친구로 변화시키는 것만이 진정한 승리라고 보았다.
이 영적 원리는 힌두교의 불살생 신앙인 ‘아힘사’에만 머물지 않았다. 간디는 매일 아침 신약성경의 ‘산상수훈’을 읽으며 “원수를 사랑하고 오른뺨을 치거든 왼뺨도 돌려대라”는 예수의 가르침에서 커다란 영적 충격을 받았다. 또한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의 저서 ‘하느님의 나라는 너희 속에 있다’를 읽고 깊은 교감을 나누며, 종교의 외피를 넘어선 보편적 양심의 힘을 신뢰하게 되었다.
‘그의 목적은 인도의 자유였고, 그의 전략은 평화였으며, 그의 무기는 인류애였다.’ 훗날 영화 ‘간디’의 포스터를 장식하기도 한 이 문구처럼 21년간의 남아공 생활을 접고, 1915년 고국 인도에 영웅으로 귀환한 간디는 영국 식민 통치에 맞선 범국민적 독립운동을 진두지휘했다. 영국 제국을 무너뜨리고 3억 5천만 명의 민족을 해방시키기 위해 일어선 이 한 명의 비범한 인간은 일부 지식인과 엘리트에 국한되어 있던 민족운동을 노동자와 농민, 불가촉천민, 여성에 이르기까지 전 계층이 참여하는 역사상 유례없는 ‘전국적 대중운동’으로 확장시켰다. 그는 영국의 소금 독점법에 반대해 결행한 400km 구간의 ‘소금 행진’에서 민중들은 무자비한 매질 앞에서도 맨몸으로 맞서며 제국의 도덕적 정당성을 뒤흔들었다. 또한 그가 손수 물레를 돌려 인도의 전통 의복을 짜 입은 것은 식민지 경제 구조를 거부하고 인간의 신성한 노동으로 자립하겠다는 거룩한 경제적 저항이었다.
간디는 안으로 철저한 금욕과 절제를 고수하는 수도자였으며, 37세에는 성적 금욕(브라마차리아)을 실천했다. 그의 완고한 보수적 여성관과 카스트 제도의 근본적 폐지 대신 신분 간 화합을 우선시한 정치적 판단은 현대 사회학적 관점에서 비판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가 인류 역사상 최초로 국가 간의 거대한 이권이 충돌하는 정치 영역 한복판에 ‘개인의 도덕과 도덕적 의무’라는 영성적 질문을 가장 무겁게 던진 인물이라는 사실이다.
그의 철저한 영성적 통찰을 보여주는 가장 대표적인 선언이 바로 그가 경고한 ‘일곱 가지 사회악’이다. 간디는 사회를 파멸로 이끄는 치명적인 죄악으로 △노동 없는 부 △양심 없는 쾌락 △인격 없는 지식 △도덕 없는 상거래 △인류애 없는 과학 △희생 없는 종교 △원칙 없는 정치를 꼽았다. 정치를 권력 획득의 기술이나 계산으로 보지 않고 인간 영혼의 성숙도를 증명하는 무대로 이해했던 그였기에 이렇듯 도덕이 거세된 사회 구조의 야만성을 매섭게 꾸짖을 수 있었던 것이다.
◆피로 물든 분열 속에서도 스러지지 않은 평화의 유산
또한 그는 “진정한 평화는 단순히 전쟁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정의가 살아있는 상태”라고 확신했다. 강자가 총칼로 약자를 굴복시켜 만든 고요함은 가짜 평화일 뿐이며, 오직 신성한 양심과 정의가 강물처럼 흐를 때에만 참된 평화가 도래한다는 영적 선언이었다. 간디의 사상을 가장 잘 보여주는 말로 널리 알려진 표현이 있다. “눈에는 눈으로 대응하면 결국 온 세상이 눈먼 사람이 되고 만다.” 그는 또 “세상에서 보고 싶은 변화가 있다면 먼저 그 변화가 당신 자신이 되어야 한다.”는 삶의 자세를 강조했다. 그의 관심은 상대를 무너뜨리는 데 있지 않았다. 인간의 양심을 일깨워 함께 변화하는 데 있었다. 그는 폭력이 또 다른 폭력을 낳는다고 보았다. 총으로 얻은 승리는 결국 더 큰 증오를 남길 수 있다고 단언한 것이다.
간디의 영적 투쟁은 마침내 1947년 인도의 독립이라는 결실을 보았으나, 역사는 그에게 잔인한 아픔을 안겼다. 영국이 물러나면서 힌두교도 중심의 인도가 세워지면 차별받을 것을 우려한 이슬람 지도자들이 “이슬람교도들만의 나라를 따로 세우겠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결국 1947년 8월 인도 대륙은 인도와 파키스탄으로 피를 흘리며 갈라지게 된다(당시 파키스탄에 속했던 동파키스탄은 훗날 방글라데시로 독립한다.). 평생 종교 간의 화합과 공존을 위해 단식기도를 올렸던 간디는 깊은 절망과 영적 고통에 휩싸였다.
그의 비극은 영국의 총칼이 아닌, 동족의 증오로부터 찾아왔다. 1948년 1월 30일, 이슬람과의 화해를 주장하는 간디를 배신자로 여긴 한 극단적 힌두 민족주의자의 총탄에 의해 간디는 생을 마감했다. 그는 쓰러지는 순간에도 자신의 이마에 손을 얹어 살인자를 용서한다는 사인을 보냈고, 그의 입에서는 평생 붙들었던 신의 이름 “헤람(오, 신이시여)”이 흘러나왔다. 그의 영적 투쟁은 훗날 마틴 루서 킹의 비폭력 민권운동과 넬슨 만델라의 화해 정치로 계승되며 세계사에 거대한 평화의 족적을 남겼다.
인류는 왜 영성을 찾는가. 시대는 달라져도 사람은 여전히 사랑과 진리, 정의와 희망을 갈망하기 때문이다. 역사는 끊임없이 변해 왔지만, 인간을 끝내 일으켜 세운 것은 언제나 영혼의 힘이었다. 그 갈망이 있는 한, 인류의 영성은 앞으로도 새로운 시대를 비추는 등불로 남을 것이다.
[인류는 왜 영성을 찾는가—세계사를 움직인 15인의 영성] 목표
<1> 모세-“노예 민족에게 법과 신을 준 사람”
<2> 공자-“혼란한 시대, 인간의 질서를 묻다”
<3> 노자-“세상을 거슬러 흐르지 말라”
<4> 석가모니-“인간의 고통을 정면으로 바라본 사람”
<5> 조로아스터-“선과 악의 전쟁은 어디서 시작됐는가”
<6> 예수-“사랑은 어떻게 세계를 바꾸었는가”
<7> 무함마드-“신앙은 공동체를 어떻게 조직하는가”
<8> 성 아우구스티누스-“인간 내면에도 제국은 존재한다”
<9> 토마스 아퀴나스-“신과 이성은 화해할 수 있는가”
<10> 마르틴 루터-“양심은 교황보다 강한가”
<11> 존 웨슬리-“대중 속으로 들어간 종교”
<12> 라마크리슈나-“모든 종교는 같은 산을 오르는가”
<13> 달라이 라마 14세-“인간은 증오 없이 저항할 수 있는가”
<14> 문선명·한학자-분열된 인류는 다시 한 가족이 될 수 있는가
<15> 간디-“정치는 영혼을 가질 수 있는가”
2026-08-04 09:3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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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이 인정하는 ‘K-여성운동’ 개척자… 글로벌 한국 드높여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70년]
창립 34주년을 맞은 세계평화여성연합(WFWP)은 원조를 받던 국가에서 원조를 제공하는 국가로 전환한 한국의 위상에 걸맞게 아프리카와 아시아 지역의 여성 자립 교육과 우크라이나 전쟁·가자 분쟁 지역에서의 인도적 지원에 주력해 왔다. 1992년 설립된 여성연합은 여성의 리더십을 통해 인류 한 가족 이념을 실현하며, 유엔 경제사회이사회(ECOSOC)에서 최상위 협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WFWP는 전 세계 120여 개국에서 활동하며, 평화 구축과 인도주의 지원을 강조하며 국제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WFWP의 역사는 여성 리더십의 글로벌 확장을 상징한다. 2022년 4월, 미국 지부는 “30년 평화 활동 기념” 행사를 통해 여성의 심장 중심 리더십을 강조했다. 이 행사에서는 교육과 평화 역량 강화, 국제 연대 구축, 분쟁·빈곤 지역 인도적 지원과 유엔 협력 활동 등 장기적인 평화 문화를 위한 여성의 역할을 조명했다. 같은 해 5월 여성연합 국제본부는 30주년 기념식을 열고, 창립자 한학자 총재의 메시지를 통해 여성의 모성적 사랑이 평화를 창출한다고 역설했다. 유엔 지위 25주년과 국제 NGO 활동 10주년을 겸한 2022년 10월 행사에서는 지난 성과를 토대로 미래 비전을 제시했다. 이러한 리더십은 유럽·중동 지부의 연례 여성 리더십 컨퍼런스를 통해 이어지고 있으며, 여성의 사회 변화 역할을 꾸준히 논의하는 장으로 자리 잡았다.
WFWP의 글로벌 리더십은 아프리카와 아시아에서의 여성 자립 교육 프로그램으로 구체화된다. 미국 지부는 8개국 9개 학교를 지원하는 ‘아프리카 학교 지원(Schools of Africa)’ 프로젝트를 2001년부터 운영하며, 교육 접근성을 높이고 있다. 이 프로젝트는 현지 자원봉사자들이 설립한 학교에 재정 지원을 제공하며, 위생·영양 교육을 병행한다. 2025년 6월 슬로바키아에서 열린 ‘모두를 위한 양질의 교육(Quality Education for All)’ 컨퍼런스에서는 평화 교육과 환경 교육을 강조했다. 남아프리카 지부는 2022년부터 코로나19 영향으로 취약 지역 교육을 지원하는 모바일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아시아에서는 캄보디아, 미얀마, 몽골 등에서 후원 부모 결연 방식의 양부모 프로그램과 장학금을 통해 고아나 빈곤 가정 아동을 지원한다. 예를 들어 캄보디아에서는 초등생부터 고등학생까지 연간 100달러를 제공하며, 1996년부터 30명 이상의 아동을 후원했다. 미얀마에서는 대학생까지 장학금을 지급하며, 직업 훈련을 통해 여성의 경제적 자립을 돕는다. 중남미의 대표적 빈곤·사회 불안 취약국인 아이티 지부는 2025년 재봉 클래스에서 24명의 여성과 남성을 훈련시켜 자립을 촉진했다.
WFWP의 인도적 활동은 분쟁 지역으로 확대된다. 2022년 2월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후, 주요 지부별로 난민 지원에 나섰다. 우크라이나 지부는 폴란드 인도주의 단체와 협력해 기본 생필품을 제공하고, 내부 이재민을 위한 구호 활동을 펼쳤다. 많은 회원이 난민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선 콘서트와 크리스마스 선물 모금을 통해 아동을 지원했다. 캐나다 지부는 YSP(청소년·학생평화연합)와 공동으로 우크라이나 지원 캠페인을 벌여 난민과 전쟁 피해 아동을 위한 긴급 생필품과 후원금을 전달했다. 벨기에 지부는 우크라이나 문화 공연을 통해 영혼의 치유를 강조했다. 2022년 9월 유럽·중동 지부 컨퍼런스에서 우크라이나 여성의 평화 역할이 논의되었으며, 일부 회원은 피난과 구호를 병행했다.
팔레스타인 자치지구도 주목할 만하다. WFWP 유럽 지부는 2024년 11월부터 가자 신생아 지원 캠페인을 시작해, 유아 인큐베이터를 위한 8,500유로 모금을 목표로 했다. 이는 전쟁으로 인한 유아의 희생을 줄이기 위한 인도적 대응이다. 중동 지부는 2022년 30주년 기념 행사에서 가자 인도적 프로젝트를 예로 들며, 여성 리더십의 역할을 강조했다. 2021년 청소년 평화 컨퍼런스에서는 팔레스타인·이스라엘 화해를 논의했으며, 1% 사랑나눔 프로젝트를 통해 가자 여성과 아동을 지원했다.
WFWP의 활동은 여성의 평화 리더십을 통해 글로벌 도전을 해결하려는 시도로 높이 평가되며, 앞으로 유엔 파트너십을 강화하며 더 광범위한 인도적 지원을 확대할 전망이다.
김고은 세계평화여성연합 한국회장은 “지난 34년의 여정을 통해 세계평화여성연합은 여성의 존엄과 연대를 통해 삶의 현장에서 평화를 실천해 왔다”며 “이제 그 축적된 책임을 안고, 다음 세대를 위한 지속 가능한 평화를 더욱 단단히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2026-08-03 20:4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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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사와 나눔이 함께 성장 계기…탈북여성 돕기 각계서 큰 호응"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70년]
세계평화여성연합은 1992년 창립 이래 평화운동, 인도주의 활동, 여성 리더십 함양을 핵심 가치로 삼아 전 세계적으로 활동해온 NGO다. 한국에서도 전국 각지에 지부를 두고 지역사회와 긴밀히 협력하며 평화와 통일, 그리고 나눔의 가치를 실천하고 있다. 세계평화여성연합 송화진 한국 사무총장과 경남 합천지부를 이끌고 있는 30대 활동가 한영서 지부장을 만나 그들이 걸어온 길과 앞으로의 비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평화, 여성의 목소리로 만들어가다
송화진 사무총장은 세계평화여성연합의 활동 철학을 묻는 질문에 평화란 가정과 지역사회라는 삶의 현장에서 시작되며, 특히 여성들이 관계를 돌보고 공동체를 지켜갈 때 지속 가능한 평화로 이어진다고 강조했다. 이어 여성이 중심이 되어 일상의 평화를 만들어갈 때, 그 평화는 가정과 사회에 뿌리내려 다음 세대로 이어진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세계평화여성연합은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전개해왔다. 남북 이산가족 상봉 지원, 북한 어린이와 임산부를 위한 인도적 지원, 통일을 준비하는 여성 리더 양성 프로그램 등이 대표적이다. 송 사무총장은 분단의 아픔은 여성과 어린이에게 더욱 가혹하다며 세계평화여성연합은 인도주의적 관점에서 북한 주민들, 특히 취약계층에 대한 지원을 지속해왔다고 설명했다.
구호와 나눔, 지역사회에 온기를 더하다
세계평화여성연합의 또 다른 중요한 활동 축은 구호와 나눔이다. 송 사무총장은 평화는 가장 기본적인 삶의 어려움으로 고통받는 사람이 없을 때 시작된다며 취약계층 지원 활동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연합은 국내외에서 재난 구호, 결식아동 지원, 다문화가정 지원 등 다양한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동안 연합 회원들은 지역사회 곳곳에서 마스크와 생필품을 전달하고, 소외된 이웃들과 함께하는 활동을 이어갔다. 어려운 시기일수록 세심한 돌봄의 손길이 더욱 필요하다는 사무총장의 말처럼, 회원들은 자발적으로 봉사에 나섰고 이는 지역사회에 큰 힘이 됐다.
송 사무총장은 나눔을 함께 성장하는 과정으로 바라보며 “그동안의 봉사와 나눔의 경험은 저를 성장시키는 계기가 되었고, 우리 사회의 일원으로서 감사한 마음을 가지며 모두의 행복을 위해 더욱 책임감을 갖고 일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이러한 철학 아래 세계평화여성연합은 단순한 물질적 지원을 넘어 교육 프로그램, 심리 상담, 자립 지원 등 통합적인 접근을 통해 진정한 자립과 회복을 돕고 있다.
30대 활동가가 바라본 합천, 그리고 여성 리더십
세계평화여성연합 합천지부를 이끄는 한영서 지부 회장은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지역사회에서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그는 활동을 하면서 여성들이 모여 만드는 변화의 힘을 직접 경험했고, 자연스럽게 더 깊이 참여하게 됐다고 말했다.
합천은 경상남도의 대표적인 농촌 지역이지만, 지부는 이곳에서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독거노인 반찬 나눔, 다문화가정 자녀 교육 지원, 지역 청소년을 위한 인성교육 프로그램 등이 대표적이다. 그는 “합천은 고령화와 인구 감소가 심화된 지역으로, 남아 있는 주민들에 대한 돌봄과 지원이 더욱 절실한 곳”이라고 설명했다. 한영서 회장은 현재 7남매의 엄마이기도 하다. 2024년 10월, 여섯째 아이를 출산했던 것은 합천지역의 화제가 되어 지역신문에 실리기도 했고 군수 표창장을 수여하기도 했다. 한 회장은 이렇게 지역사회에서 인정을 받은 것을 기반으로 여성연합 활동을 지역에서 활발하게 할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또한 지역 여성들의 역량 강화에도 힘쓰고 있다고 했다. 작은 지역일수록 여성들의 활동 기회가 제한적이라며 연합 활동을 통해 여성들이 자신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지역사회 리더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합천지부에서는 정기적인 GWPN(세계여성평화네트워크), 평화통일 세미나, 봉사활동 기획을 위한 워크숍 등을 통해 회원들의 역량을 키우고 있다.
그는 30대 활동가로서의 경험을 이렇게 전했다. “처음에는 젊다는 이유로 어려움도 있었지만, 오히려 그것이 장점이 됐다. 새로운 시각으로 활동을 기획하고, SNS와 온라인 영상 플랫폼 등 디지털 도구를 활용해 더 많은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었다.” 실제로 그는 인스타그램과 유튜브를 통해 연합의 활동을 알리고, 젊은 세대의 참여를 이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2026-08-03 20:4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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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은 가정·사회 연결 핵심 주체… 초국가적 네트워크 구축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70년]
한국 여성운동의 역사적 맥락
한국 여성운동은 19세기 말 개화기부터 현재까지 약 130여 년의 역사를 거쳐 왔다. 초기 교육운동과 계몽운동으로 시작해,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 참여, 해방 이후 정치·경제적 권리 확보를 위한 투쟁, 1980년대 민주화운동과 노동운동, 1990년대 이후 성평등과 여성 인권 신장을 위한 다양한 활동으로 발전해 왔다.
이 과정에서 한국 여성운동은 획일적 이념이나 방식으로 전개되어 온 것이 아니라, 각 시대의 사회·정치적 조건과 역사적 맥락에 따라 다양한 흐름으로 분화되어 발전해 왔다. 이러한 맥락에서 종교를 기반으로 한 여성 활동 역시 주류 여성운동과 분리된 예외적 현상이 아니라, 한국 여성운동이 형성해 온 폭넓은 스펙트럼 속에서 이해되고 평가될 필요가 있다.
종교 기반 여성운동의 전통
한국 여성운동에서 종교 단체의 역할은 결코 작지 않았다. 특히 기독교 여성단체들은 일제강점기부터 교육과 의료 분야에서 여성의 지위 향상에 기여했으며, 불교와 천주교 여성단체들도 사회복지와 빈민 구호 활동을 통해 여성의 사회 참여를 확대해 왔다. 이들 종교 기반 여성단체들은 전통적으로 교육·의료·복지 분야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해 왔으며, 여성의 권리 확장을 추구하는 동시에 가족과 공동체의 안정이라는 가치를 함께 지향해 왔다.
가정연합 여성 활동의 특징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이하 가정연합)의 여성 활동은 “가정”을 중심으로 한 평화운동이라는 독특한 정체성을 갖고 있다. 이는 1960년대 이후 서구 여성운동이 가부장제와 전통적 가족 구조에 대한 비판을 중심으로 전개된 것과는 다른 접근 방식이다.
가정연합은 가정의 안정과 화목을 사회 평화의 기초로 보며, 여성을 가정과 사회를 연결하는 핵심 주체로 위치시킨다. 이러한 관점은 전통적 가족 가치를 재해석하면서도 여성의 사회적 역할을 확대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가정연합의 여성 활동은 가정을 사적·억압적 공간으로, 사회를 공적·해방의 공간으로 나누고 서로 대립시키는 ‘가정 대 사회’라는 이분법을 넘어 가정에서의 역할을 사회 변화의 동력으로 연결시키려는 논리 구조를 지니고 있다.
보수와 진보의 이분법을 넘어서
한국 여성운동은 흔히 ‘진보적’ 페미니즘과 ‘보수적’ 가족주의로 양분되어 이해되곤 한다. 그러나 이러한 단순한 이분법으로는 현대 여성운동의 복잡성을 설명하기 어렵다.
가정연합 여성 활동은 이러한 분류 체계에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한다. 가족과 가정의 가치를 강조한다는 점에서 보수적으로 보일 수 있으나, 여성의 국제적 연대와 평화운동 참여, 사회 활동 확대를 적극 장려한다는 점에서는 전통적 보수주의와는 구별된다. 가정연합 여성 활동은 전통적 가치와 현대적 여성 역할 사이의 균형을 추구하는 모델로, 한국 사회의 특수성을 반영하고 있으며 서구 페미니즘 이론만으로는 충분히 설명하기 어려운 측면을 지닌다.
글로벌 네트워크와 초국가적 활동
가정연합 여성 활동의 또 다른 특징은 글로벌 네트워크 구축이다. 세계평화여성연합(WFWP)를 중심으로 128개국 여성들과 연대하며, 개발도상국 지원과 국제 평화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이는 1990년대 이후 한국 여성운동이 국제 연대를 강화해 온 흐름과 맥을 같이 한다. UN 여성지위위원회(CSW), 베이징세계여성대회 등 국제무대에서 한국 여성단체들의 활동이 활발해지던 시기와 유사하게, 가정연합 역시 국제적 여성 평화 네트워크를 확장해 왔다. 가정연합의 글로벌 여성 네트워크는 한국 여성운동의 국제화 경향을 보여주는 사례로, 특히 개발도상국 여성 지원 활동은 국제개발협력 분야에서 한국 여성단체의 역할 확대를 보여주는 사례로 거론된다.
실천 중심의 활동 방식
가정연합 여성 활동은 이론이나 담론보다 실천을 강조하는 방식으로 전개되어 왔다. 복지 서비스 제공, 교육 프로그램 운영, 환경 보호 활동 등 구체적인 프로젝트를 통해 사회적 기여를 시도해 왔다.
이는 1990년대 이후 한국 여성운동이 제도화되고 정책 중심으로 전환된 것과는 다른 접근이다. 가정연합은 법과 제도의 변화보다는 개인과 가정의 변화를 통해 사회 변화를 추구하는 방식을 택해 왔다. 이러한 실천적 활동은 풀뿌리 여성운동의 전통을 계승한 것으로, 1970~80년대 기층 여성들의 생활 개선 운동과 유사한 맥락을 지닌다는 평가도 있다.
2026-08-03 20:3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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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출생 시대, 가정의 가치 되새긴다”… 가정연합, 하계 미래세대 효정특별수련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옛 통일교)이 저출생 시대를 맞아 미래세대의 신앙 정체성을 확립하고 가정의 가치를 되새기기 위한 ‘2026 하계 미래세대 효정특별수련’에 들어갔다.
이번 특별수련은 지난 7월 2일부터 오는 8월 9일까지 전남 여수 청심국제해양청소년수련원과 경기 가평 청심국제청소년수련원에서 모두 다섯 차례에 걸쳐 진행된다. 청년과 중·고등학생 등 연인원 1500여 명이 참가해 세대별 맞춤형 교육을 받게 된다.
가정연합은 이번 수련에서 연령별 성장 단계와 신앙적 필요를 고려한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저출생 위기 속에서 가정의 의미와 공동체의 가치를 되새기고 인류 평화를 이끌 미래 인재를 양성하는 데 교육의 초점을 맞췄다.
청년 과정은 사회 진출을 앞둔 청년들이 직면한 진로와 삶의 고민을 영성의 관점에서 성찰하도록 구성됐다. 창시자의 생애를 통해 공적인 삶의 자세와 사회적 책임을 되새기고, ‘한민족 선민 대서사시’ 강의를 통해 한민족이 지닌 섭리적 역사와 세계를 향한 청년 리더의 사명감을 키우도록 했다.
중·고등학생 과정은 자아 정체성 확립에 초점을 맞췄다. ‘축복’, ‘정체성’, ‘기본신앙’을 주제로 한 교육을 통해 자신이 하늘부모님의 사랑을 받는 소중한 존재임을 돌아보고, ‘드림마이크’ 프로그램에서는 진로와 미래 비전을 구체화하며 서로의 꿈을 응원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번 수련의 특징은 개인의 신앙교육을 넘어 미래세대가 결혼과 가정의 의미를 올바르게 이해하고 건강한 가정과 공동체를 이끌어 갈 책임 있는 인재로 성장하도록 돕는 데에도 초점을 맞췄다. 가정연합은 이를 저출생과 가족 해체가 심화되는 시대에 미래세대가 갖춰야 할 핵심 가치교육의 하나로 보고 있다.
이와함께 강의 중심 교육을 넘어 체험과 소통을 중시했다. 참가자들은 ‘효정천원 순례길’을 걸으며 자연 속에서 자신을 성찰하고, ‘심정카페’와 ‘화동회’ 프로그램에서는 신앙적 고민과 삶의 비전을 함께 나누며 ‘하늘부모님 아래 인류 한 가족’이라는 공동체 의식을 체험하고 있다.
가정연합은 이러한 교육을 통해 미래세대가 신앙과 인성을 함께 갖춘 글로벌 평화리더로 성장하는 기반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1954년 한국에서 창립된 가정연합은 문선명·한학자 총재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하늘부모님 아래 인류 한 가족’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세계 194개국에서 활동하고 있다. 교단은 '퓨어워터(Pure Water)'를 순수한 신앙과 인성을 갖춘 미래세대를 뜻하는 인재상으로 제시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이러한 미래 인재 육성을 위한 체계적인 교육 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운영해 나갈 계획이다.
2026-08-03 13:4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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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평화·통일 위해…” 전주서 ‘피스로드 2026 통일대장정’
광복 81주년을 기념해 한반도 평화 정착과 통일을 기원하는 ‘피스로드 2026 전북 전주시 통일대장정’ 행사가 30일 전주시 전북보훈회관 강당에서 열렸다.
전주시 평화통일지도자협의회와 남북통일운동국민연합, 참가정실천운동본부가 공동 주관한 이날 행사에는 호국불교 조계종 진각 대종사와 김영구 전 국회의원, 전영배 더불어민주당 전북도당 노인대책위원장 등 100여명이 참석해 한반도 평화와 통일 의지를 다졌다.
행사는 하나로예술단의 식전공연을 시작으로 경과보고 영상 상영, 환영사와 대회사, 축사, 평화 메시지 낭독, 통일의 노래 합창, 만세삼창 등 순으로 진행됐다.
정병수 전북 공동실행위원장은 “전북은 정여립의 대동사상과 동학농민혁명 정신이 살아 있는 지역”이라며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위한 활동을 전주와 전북에서 더욱 의미 있게 추진해 나가자”고 말했다.
온영두 전주시 공동실행위원장은 “통일 문제는 무엇보다 진정성을 갖고 접근하는 것이 중요하기에 평화 정착과 통일을 위한 다양한 활동에 적극 동참해 달라”고 당부했다.
조경태 공동실행위원장 또한 “피스로드는 길 위에서 평화를 외치는 행사에 그치지 않고 사람과 사람, 지역과 국가를 연결하며 화해와 공존의 길을 열어가는 희망의 대장정”이라며 “평화와 통일은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함께 만들어 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축사에 나선 진각 대종사와 김영구 전 국회의원, 전영배 민주당 전북도당 노인대책위원장도 “통일은 정파와 종교, 세대와 계층을 넘어 모두가 함께 지혜를 모아 추진해야 할 시대적 과제”라며 지속적인 평화·통일 운동의 필요성에 입을 모았다.
장익창 상임고문(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전북교구장)은 이날 ‘선배의 땀을 이어, 평화의 대한민국으로-선배 세대와 함께 세우는 대한민국의 미래’를 주제로 특강을 통해 “세대 간 신뢰와 화합을 바탕으로 더 따뜻한 평화 공동체를 만들어 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2026-07-30 15:3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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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는 왜 영성을 찾는가—세계사를 움직인 15인의 영성]<14> 문선명·한학자(Sun Myung Moon·Hak Ja Han Moon)-“분열된 인류는 다시 한 가족이 될 수 있는가”
인류 역사에서 20세기는 가장 거대한 충돌과 분열의 시대였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겪은 인류는 핵무기의 공포와 자본주의 대(對) 공산주의라는 이념적 냉전 속에서 극도의 불안을 마주해야 했다. 이러한 격변의 한복판에서 인류 구원과 세계 평화의 길을 독특한 영성으로 개척한 인물이 있다. 바로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옛 통일교)의 설립자인 문선명 총재와 그의 바통을 받아 가정연합을 이끌어온 한학자 총재다. 두 사람은 세계 통일교 신도들로부터 ‘참부모’로 존경받으며,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부모와 자녀’의 관계로 새롭게 정립했다. 또한 현실 세계의 모순 해결을 시도한 거대한 종교 운동을 전개했다.
문선명 총재는 1920년 평안북도 정주의 전통적인 유교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가 15세 되던 해 온 가족이 기독교로 개종했으며, 16세 무렵 부활절 새벽 기도 중 특별한 종교적 체험을 하게 된다. 예수가 나타나 역사 속에서 미처 이루지 못한 사명을 이어달라고 당부했다는 이 사건은 훗날 통일교 신앙의 결정적 출발점이 된다. 이후 문 총재는 하루 두세 시간의 수면만 취할 정도로, 철두철미하게 하나님과 인류를 위해 전 생애를 바치는 삶을 살았다.
◆참사랑과 이상가정이 평화 세계의 출발점이다
오랜 영적 탐구와 성경 연구를 통해 정립된 그의 사상은 통일교의 핵심 교리서 ‘원리강론(原理講論)’으로 집대성되었다. 이 책은 20세기 한국에서 탄생해 세계 여러 언어로 번역·보급된 보기 드문 종교 사상 체계로, 창조와 타락, 복귀와 완성이라는 큰 틀 안에서 인간과 역사를 하나의 원리로 설명하려 했으며, 성경을 일관된 논리 체계로 해석했다. 특히 인류 타락의 원인과 구원 섭리를 체계적으로 풀어내면서, 메시아의 사명을 개인의 구원에 한정하지 않고 ‘이상가정의 실현’과 ‘하나님의 창조이상 회복’으로 확장했다. 문 총재는 인간 문제의 근원을 ‘사랑의 붕괴’에서 찾았으며, 사랑을 회복한 가정이 평화세계로 나아가는 출발점이라고 보았다.
한국전쟁의 참화가 휩쓸고 간 직후 그는 부산에서 허름한 토담집을 짓고 선각자들을 불러 모으면서 진리 전파에 나섰다. 1954년에는 서울에서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를 정식 창립했다. 그를 통해 새로운 인생관과 우주관을 공감한 이들이 하나, 둘 새 사람으로 변모하며 구세 운동에 뛰어들었다. 그의 운동이 세계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냉전 시기 확고하게 천명한 반공 메시지 덕분이었다. 그는 공산주의를 비판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그 대안으로 인간의 존엄과 책임, 하나님 중심의 가치관을 바탕으로 새로운 세계관을 제시하며 자유세계 지도자들과 연대해 세계적인 사상운동을 전개했다. 1985년, 냉전이 여전히 지속되던 시기에 그는 “공산주의는 곧 종언을 맞을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천명했다. 그리고 6년 뒤인 1991년 공산주의 종주국 소련이 실제로 해체되면서, 그의 지지자들은 이를 시대를 앞서 내다본 통찰로 평가했다.
그의 활동은 예배당 안에만 머물지 않고 정치와 경제, 언론과 문화는 물론 바다로까지 이어졌다. 그는 일찍부터 “인류의 미래는 바다에 있다”고 강조하며 해양을 인류의 식량 문제와 환경, 세계평화를 함께 준비하는 미래 문명의 공간으로 바라보았다. 미국 매사추세츠 글로스터와 알래스카 코디악, 하와이, 한국의 여수와 거문도 등 세계 곳곳에서 해양을 통한 인재 양성과 실천 운동을 펼친 것도 이러한 비전의 연장선이었다. 종교가 현실의 고통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그의 신념이 ‘해양 섭리’라는 독특한 실천 비전으로 구체화된 것이다.
1976년 미국 워싱턴 모뉴먼트 광장에서 열린 그의 종교 집회에는 30만 명이 모였다. 그는 이 자리에서 미국 사회의 도덕적 위기와 영적 쇄신을 역설하며 미국 사회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그런가 하면 국경과 인종, 문화를 초월하여 수만 쌍이 한자리에서 연을 맺은 ‘국제합동축복결혼식’은 “인류는 한 가족”이라는 그의 신념을 시각적으로 증명한 대표적 실천 사례였다. 오늘날 축복결혼에 참여한 많은 가정들이 세계 각국에서 그 이상을 실천하려는 신앙공동체를 이루고 있으며, 이들이 인류 화해와 평화의 문화 정착에 어떤 역할을 해 나갈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문 총재는 교리적 복잡함 대신에 “위하여 살라”는 직관적인 생활 윤리를 처방했다. 개인은 가정을 위하고, 가정은 사회를 위하며, 사회는 국가를 위하고, 국가는 세계를 위하여 사는 이타적 질서 속에서 평화가 실현된다는 것이 그의 신념이었다. 이러한 이타적 질서가 실현될 때 인류는 국경과 인종을 넘어 ‘한 가족’으로 연결될 수 있다고 보았다. 문 총재의 “위하여 살라”는 가르침에 대해 한 저명인사는 “마치 천국에 오르는 사다리 같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부성의 시대를 넘어 생명을 살리는 ‘모성적 영성’의 선언
문선명 총재와 사명을 함께하며 통일교 영성의 또 다른 축을 담당한 이가 바로 한학자 총재다. 1943년 평안남도 안주에서 태어난 그녀는 해방과 분단, 전쟁의 상처를 몸소 겪으며 성장했다. 1960년 문선명 총재와 성혼(聖婚)했는데, 통일교 신학은 이를 평범한 혼인이 아닌, 인류가 역사 속에서 상실했던 ‘참된 가정’과 ‘참부모의 현현’을 이루는 중대한 섭리적 사건으로 받아들인다.
2012년 문 총재 성화(별세) 이후 전권을 계승한 한학자 총재의 영성은 ‘어머니(모성)’라는 상징으로 대변된다. 그녀는 인류의 역사가 오랫동안 남성 중심의 강한 부성(父性)의 언어로 움직여 왔으며, 그 결과 경쟁과 지배, 전쟁과 정복이라는 깊은 상처를 남겼다고 진단했다. 이제는 문명의 방향을 바꾸어 생명을 품고 살려내는 모성적 가치(돌봄, 화해, 생명, 공존)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그녀의 주장이다.
이러한 사상은 통일교 신학 내에서 ‘독생녀론’과 ‘하늘부모님’ 사상으로 한층 더 심화되었다. 이는 전통적인 남성 중심 메시아 서사를 넘어 인류의 온전한 회복을 위해서는 여성적·모성적 차원의 구원이 필수적이라는 선언이다. 일부 한국학 담론과 통일교 신학에서는 한민족의 제천 문화와 영적 섭리를 한 총재의 가계 및 성씨(韓)와 연결하여 동방의 역사적 결실로서 세계 평화를 이끌 여성 지도자의 등장을 설명하기도 한다.
한 총재 역시 거대한 담론에 앞서 평화의 기초를 ‘가정’에 두었다. 1990년대 미국 사회가 이혼율 급증과 청소년 문제로 흔들릴 때, 미국 국회의사당 연설을 시작으로 40일간 미 전역을 돌며 도덕적 기반으로서의 부모와 가정의 역할을 역설한 것은 보수적 가족 가치 회복 운동으로 큰 주목을 받았다. 이를 계기로 미국 정부가 공식 선포한 ‘부모의 날(Parents’ Day)’ 제정에는 한 총재의 이러한 공로가 짙게 배어 있다. 그녀의 행보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냉전 종식 직후인 1992년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의 공개 강연으로 정점에 달했다. 사회주의 체제의 심장부이자 중국 정치의 상징 공간에서 한국의 여성 지도자가 평화와 인류 공동체, 여성의 사명을 주제로 연설한 것은 극히 이례적인 사건으로, 이념의 벽을 허물고 ‘하나님 아래 인류 한 가족’의 비전을 제시한 시대를 앞선 평화운동으로 평가받았다.
두 사람의 사상과 활동을 관통하는 종교적 귀결점은 바로 ‘참부모 사상’이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고들 말한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도 쉽게 사라지지 않는 것이 있다. 자식을 향한 부모의 사랑이다. 문선명·한학자 총재는 바로 그 부모의 사랑을 하나님과 인간, 나아가 인류 공동체를 연결하는 가장 근원적인 힘으로 이해했다. 그들이 말한 ‘참부모’란 끝없이 베풀고 품으며, 부모의 사랑을 삶으로 실천하는 존재였다. 그 사랑으로 분열된 인류를 하나의 가족으로 회복하는 것이 두 사람이 평생 추구한 이상이었다.
따라서 인간 구원의 과정은 잃어버린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를 다시 회복하는 데 그 중심이 있다. 이들이 전 세계 신도들로부터 ‘참부모’로 불리는 이유 또한, 타락한 인류에게 하나님의 참사랑을 실천하는 새로운 가정의 모델을 제시하고 전수하는 영적 멘토의 역할을 자임했기 때문이다. 사실상 두 사람은 신앙과 섭리 역사 속에서 절대적 조화를 이룬 일심동체(一心同體)·혼연일체(渾然一體)의 삶을 살았다. 즉, ‘둘이면서 하나’였던 완벽한 일체감의 경지였다.
◆구원받은 개인을 넘어 회복된 가정으로, 분열의 시대에 던진 화두
두 사람이 펼친 참가정 운동은 기성 종교계와 사회로부터 거센 비판과 이단 논쟁을 불러일으켰음에도 불구하고, 인종과 국가, 문화의 장벽을 넘어 인류를 한 가족으로 묶으려는 세계적 실험으로 빠르게 확산됐다. 통일교회는 이를 하나님의 창조이상 회복 과정으로 설명한다. 특정 인물의 신격화나 권위 구조에 대한 경계의 시선은 지금도 존재한다. 그러나 두 사람의 영성 운동이 한국에서 출발해 세계 종교사와 국제사회에 적지 않은 영향을 남겼다는 점 또한 부인하기 어렵다.
이들은 종교를 내세의 위안에 머물게 하지 않고 냉전과 빈곤, 가정 해체 등 현실 문제와 연결하려 했으며, 동시에 과학자·교수·종교학자들을 연결하는 국제회의를 후원하며 학문과 종교, 과학의 융합 가능성을 모색했다. 문화 역시 평화의 언어라고 보았다. 두 사람은 리틀엔젤스예술단, 유니버설발레단 등 다양한 문화예술단체를 육성해 냉전 시대 세계 각국을 순회하며 효(孝)와 정(情), 평화의 정신이 담긴 한국 문화를 세계에 알리는 민간 문화외교사절 역할을 톡톡히 수행케 했다. 오늘날 세계는 혐오와 분열, 전쟁과 공동체 해체라는 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런 시대일수록 문선명 총재의 ‘위하여 살라’는 가르침과 한학자 총재가 강조해 온 모성적 돌봄의 가치, 그리고 ‘하나님 아래 인류 한 가족’의 이상은 지구촌 평화를 위한 하나의 중요한 길이 될 수 있음을 다시 성찰하게 한다.
[인류는 왜 영성을 찾는가—세계사를 움직인 15인의 영성] 목차
<1> 모세-“노예 민족에게 법과 신을 준 사람”
<2> 공자-“혼란한 시대, 인간의 질서를 묻다”
<3> 노자-“세상을 거슬러 흐르지 말라”
<4> 석가모니-“인간의 고통을 정면으로 바라본 사람”
<5> 조로아스터-“선과 악의 전쟁은 어디서 시작됐는가”
<6> 예수-“사랑은 어떻게 세계를 바꾸었는가”
<7> 무함마드-“신앙은 공동체를 어떻게 조직하는가”
<8> 성 아우구스티누스-“인간 내면에도 제국은 존재한다”
<9> 토마스 아퀴나스-“신과 이성은 화해할 수 있는가”
<10> 마르틴 루터-“양심은 교황보다 강한가”
<11> 존 웨슬리-“대중 속으로 들어간 종교”
<12> 라마크리슈나-“모든 종교는 같은 산을 오르는가”
<13> 달라이 라마 14세-“인간은 증오 없이 저항할 수 있는가”
<14> 문선명·한학자-분열된 인류는 다시 한 가족이 될 수 있는가
<15> 간디-“정치는 영혼을 가질 수 있는가”
2026-07-30 14:24: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