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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사와 동고동락 70년… 종교에서 사회공헌 플랫폼으로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70년]화
◆프롤로그:70년의 여정이 남긴 것 2025년,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이하 가정연합)이 창립 71주년을 맞았다. 1954년 한국전쟁의 잔해가 채 가시지 않은 서울에서 출발한 이 조직은 70여
2025-12-23 11: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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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연합, 사회공헌단 출범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은 15일 서울 용산 천승대교회에서 목회자와 신도 등 35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창립 72주년 기념식 및 사회공헌단 출범식’을 개최했다. 송용천 한국협회장을 단장으로 하는 사회공헌단은 앞으로 환경보호, 취약계층 지원, 재난구호 등 다양한 공익활동을 벌이며 종교의 사회적 책임을 실천한다. 송 협회장은 기념사에서 “사회공헌단 출범을 통해 소외된 이웃의 눈물을 닦아주고 세상의 신뢰를 다시 세우는 이정표를 만들어 가자”고 말했다.
가정연합 제공
2026-06-15 20:5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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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는 왜 영성을 찾는가— 세계사를 움직인 15인의 영성] <2> 공자-“혼란한 시대, 인간의 질서를 묻다”
[인류는 왜 영성을 찾는가—세계사를 움직인 15인의 영성] 목차
<1> 모세-“노예 민족에게 법과 신을 준 사람”
<2> 공자-“혼란한 시대, 인간의 질서를 묻다”
<3> 노자-“세상을 거슬러 흐르지 말라”
<4> 석가모니-“인간의 고통을 정면으로 바라본 사람”
<5> 조로아스터-“선과 악의 전쟁은 어디서 시작됐는가”
<6> 예수-“사랑은 어떻게 세계를 바꾸었는가”
<7> 무함마드-“신앙은 공동체를 어떻게 조직하는가”
<8> 성 아우구스티누스-“인간 내면에도 제국은 존재한다”
<9> 토마스 아퀴나스-“신과 이성은 화해할 수 있는가”
<10> 마르틴 루터-“양심은 교황보다 강한가”
<11> 존 웨슬리-“대중 속으로 들어간 종교”
<12> 라마크리슈나-“모든 종교는 같은 산을 오르는가”
<13> 달라이 라마 14세-“인간은 증오 없이 저항할 수 있는가”
<14> 문선명·한학자-분열된 인류는 다시 한 가족이 될 수 있는가
<15> 간디-“정치는 영혼을 가질 수 있는가”
◆도덕이 권력보다 앞서야 한다는 신념
오늘날 공자는 흔히 도덕과 예절을 강조한 사상가로 기억된다. 그러나 실제의 공자는 단순히 “착하게 살자”고 말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무너져 가는 세계 속에서 인간 사회를 다시 붙들 수 있는 질서가 무엇인지 평생 고민했던 인물이다. 공자의 삶은 의외로 고단했다. 그는 노(魯)나라의 귀족 가문 출신이었지만, 어린 시절부터 넉넉한 삶을 살지는 못했다. 성서 속 모세가 광야를 경험했다면, 공자는 끊임없는 현실의 벽을 경험한 사람에 가까웠다. 그는 젊은 시절 가축 관리 같은 일을 했다고 전해진다. 훗날 제자들을 가르치며 그 이름을 널리 알리게 되었지만, 공자의 꿈은 교육자에 머무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이상 정치를 현실에서 구현하고자 했다.
공자는 한때 노나라의 관리가 되어 정치 개혁을 시도한다. 그는 권력보다 도덕이 앞서야 한다고 믿었다. 지도자가 먼저 바르게 서야 백성도 바르게 된다고 생각했다. “정치는 바르게 하는 것이다.” 이 짧은 말 속에는 공자의 철학이 응축돼 있다. 그는 법과 처벌만으로는 사회를 오래 유지할 수 없다고 보았다. 인간이 스스로 부끄러움을 알고 서로를 존중할 때 공동체는 비로소 안정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현실은 그의 이상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당시의 군주들과 권력자들은 공자의 도덕 정치보다 당장의 힘과 이익에 더 관심이 많았다. 결국 공자는 나라를 떠나 여러 지역을 떠도는 긴 유랑 길에 오른다. 제자들과 함께 수레를 타고 각국을 돌아다니며 자신의 사상을 설파했지만, 냉대와 실패를 반복했다. 정적들에게 목숨의 위협을 받은 적도 부지기수였고, 굶주림 속에 길이 막혀 아사 직전에 이르기도 했다. 오죽하면 당대 사람들은 유랑하는 그를 두고 “주인 없는 상갓집 개 같다(喪家之狗, 상가지구)”며 대놓고 조롱했을까. 오늘날 세계 4대 성인으로 추앙받는 이가 살아생전에는 굶주림과 냉대를 견디며 떠돌던 이상주의자로 보였던 셈이다. 흥미로운 것은 바로 그 실패 속에서 공자 사상의 인간적 깊이가 드러난다는 점이다. 그는 세상이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쓰라린 현실을 누구보다 잘 알았으나, 인간에 대한 기대를 끝내 포기하지 않았다.
◆천하를 유랑하며 다듬어진 인간적 깊이
공자가 가장 중요하게 본 것은 ‘인(仁)’이었다. 그는 인을 “사람을 사랑하는 것(仁者愛人)”이라고 설명했다. 인은 흔히 ‘어질다’로 번역되지만, 친절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마음, 타인을 향한 공감과 책임 의식에 가까운 개념이었다. 공자는 인간 사회가 유지되려면 먼저 인간이 서로를 사람답게 대해야 한다고 보았다. 그래서 그는 가족 관계를 중요하게 여겼다. 부모와 자식, 스승과 제자, 군주와 신하 사이의 책임과 도리를 강조했다.
현대인은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답답함이나 권위주의를 먼저 떠올릴 수도 있다. 실제로 후대의 유교 문화는 때로 지나친 위계질서와 형식주의로 흐르기도 했다. 여성 억압이나 경직된 신분 질서를 정당화하는 데 이용된 측면 역시 존재한다. 그러나 그것은 공자 사상의 모든 모습은 아니다.
혼란한 시대를 살았던 공자에게 중요한 가치는 “인간다움의 회복”이었다. ‘君子求諸己 小人求諸人(군자구제기, 소인구제인)’ 즉, “군자는 자신에게서 원인을 찾고, 소인은 남에게서 원인을 찾는다”는 이 말은 인간다움이란 타인을 탓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성찰에서 시작된다는 뜻이다. 그는 힘이 지배하는 세상 속에서도 인간이 최소한의 품격과 책임을 잃지 않아야 한다고 보았다.
흥미로운 것은 공자가 신비주의적 종교인과는 다소 다른 태도를 보였다는 점이다. 그는 귀신과 사후세계에 대한 질문을 자주 받았으나, 말을 아꼈다. “삶도 아직 다 알지 못하는데 어찌 죽음을 말하겠는가(未知生 焉知死)” 이 말은 공자의 현실주의를 보여준다. 그는 하늘(天)을 말했지만, 인간의 현실 문제를 외면하지 않았다. 공자는 초월보다 인간 세계 자체를 더 깊이 고민한 사상가였는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그의 사상이 종교성과 완전히 무관한 것은 아니다. 유교는 오랜 세월 동안 철학을 넘어 동아시아 사회의 정신적 질서로 기능했다. 조선에서는 국가 운영의 중심 이념이 되었고, 한·중·일 동양 3국의 가족문화와 교육관, 인간관계의 뿌리에도 깊게 스며들었다.
◆초월적 신비주의를 거부한 현실주의 영성
오늘날까지도 한국 사회에는 유교적 흔적이 강하게 남아 있다. 어른에 대한 존중, 교육열, 가족 중심 문화, 관계 속 책임 의식 등은 모두 공자적 세계관의 영향을 받은 부분이 적지 않다.
공자는 살아 있을 때 거대한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그는 끝내 자신의 이상 국가를 만들지 못했고, 떠돌이 사상가처럼 생을 마쳤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의 실패는 이후 수천 년 동안 동아시아 문명을 움직이는 힘이 되었다. 인류 역사에는 세상을 무너뜨린 혁명가들도 많았지만, 공자는 무너지는 세계를 붙들려 했던 사람이었다. 그리고 오늘의 세계 역시 또 다른 혼란 속에 있다. 기술은 발전했지만, 인간 사이의 신뢰는 흔들리고, 연결은 많아졌지만, 관계는 더 쉽게 깨진다. 사람들은 자유를 말하지만 동시에 깊은 고립을 경험한다.
후대 사람들이 공자를 높게 평가하는 가장 큰 이유는, 그가 예절과 도덕만 가르친 사람이 아니라 인간 사회를 유지하는 근본 질서가 무엇인지를 평생 고민했던 사상가였기 때문이다. 공자는 힘과 법만으로는 공동체를 오래 유지할 수 없다고 보았다. 인간이 서로를 존중하고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을 가질 때 사회는 비로소 안정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의 말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문장 중 하나인 ‘논어(論語’ 위령공편(衛靈公篇)에 나오는 ‘기소불욕 물시어인(己所不欲 勿施於人)’이다. 즉 ‘자기가 원하지 않는 바를 남에게 행하지 말라’는 이 말은 오늘날에도 보편적 윤리처럼 받아들여진다. 시대와 문화를 넘어 인간관계의 기본 원칙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후대는 공자가 지도자의 도덕성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긴 점을 높이 평가했다. 그는 법과 처벌만으로 백성을 통제하면 사람들은 벌만 피하려 할 뿐이라고 보았다. 반대로 지도자가 스스로 바르게 서면 백성 역시 자연히 바르게 된다고 믿었다. 그래서 공자의 정치 철학은 권력보다 품격과 책임을 강조하는 데 특징이 있었다.
◆배움과 보편 윤리로 문명의 주춧돌을 놓다
공자는 배움에 대한 태도에서도 깊은 영향을 남겼다. 그는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學而時習之 不亦說乎, 학이시습지 불역열호)”라고 말하며 배움 자체의 가치를 강조했다. 또한 “세 사람이 길을 가면 그중 반드시 내 스승이 있다(三人行 必有我師焉, 삼인행 필유아사언)”고 하여, 누구에게서든 배울 게 있다는 겸손한 태도를 보여주었다. 동아시아에서 교육과 학문을 중시하는 문화가 오랫동안 이어진 데에는 공자의 영향이 매우 컸다. 그는 신의 이름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으면서도 신이 담당하던 질서의 기능을 인간의 도덕과 관계 윤리 속으로 옮겨 놓았다. 인간은 초월적 신에게만 구원을 갈구하는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의 성찰과 책임을 통해 이 땅 위에 정당한 질서를 세워갈 수 있는 주체임을 증명한 것이다. 2500년 전 천하를 떠돌며 굶주리던 늙은 사상가가 남긴 영성의 힘은 오늘날 풍요 속에서 길을 잃은 우리 문명에게 인간다움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여전히 매섭게 묻고 있다.
2026-06-15 20:3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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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채널 막힐 때마다 민간 차원서 돌파구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70년]
이념의 빙벽을 녹인 종교적 신념과 민간 외교의 힘
한반도의 허리가 잘린 지 80년이 가까워지는 오늘날, 남북 관계는 여전히 짙은 안갯속을 걷고 있다. 정치적 이해관계와 국제 정세의 파고 속에서 정부 주도의 공식 외교가 경색될 때마다, 막힌 혈관을 뚫고 물밑에서 평화의 물꼬를 텄던 것은 민간 차원의 끈질긴 노력이 떠오른다. 그중에서도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이하 가정연합)이 걸어온 대북 교류의 역사는 그 규모와 파급력 면에서 독보적인 궤적을 그려왔다.
가정연합의 대북 사업은 단순한 일회성 원조나 시혜적 차원의 지원을 넘어선다. 그것은 신통일한국이라는 거대 담론 아래, 종교적 신념인 참사랑을 실천하는 과정이었다. 과거 가장 강력한 승공(勝共) 운동의 선봉에 섰던 문선명·한학자 총재가 원수를 사랑하라는 가르침을 몸소 실천하기 위해 평양 땅을 밟았던 사건은 현대사에서 가장 파격적인 민간 외교의 장면으로 기록된다. 35년 넘게 이어진 이들의 여정은 경제적 협력과 문화적 공감 등 화합을 아우르는 전방위적 평화 운동의 모델을 제시했다.
북한 관광 및 정주 성지순례의 개시
문선명 한학자 총재의 방북 이후 1992년 4월 12일부터 16일까지 북한의 평양과 금강산 등을 방문하는 관광이 시작됐다. 같은 해 7월 23일부터 27일까지 문총재의 고향인 정주와 한총재의 고향인 안주, 나아가 흥남을 관광하는 기회도 가졌다. 8월 31일부터 9월 5일까지 일본에서 오야마다 히데오 외 219명이 북한을 방문했다. 그 후 매년 성지인 정주 순례가 진행됐다.
경제 협력의 실체: 평화자동차와 보통강호텔이 남긴 발자취
가정연합의 대북 사업은 선언적 의미에 머물지 않고 구체적인 실체로 형상화되었다. 특히 평화자동차와 보통강호텔은 남북 경제협력의 상징물로서 북한 사회에 자본주의적 경영 기법과 남측의 기술력을 이식하는 가교 역할을 했다.
1998년 설립 인가를 받아 2002년 남포시에 준공된 평화자동차 종합공장은 남북 합작 투자의 효시였다. 남측의 자본과 기술, 북측의 노동력이 결합된 이 공장에서 생산된 휘파람, 뻐꾸기 등의 자동차 모델은 평양 시내를 누비며 북한 주민들에게 남측의 비약적인 성장을 시각적으로 증명했다. 이는 개성공단 모델이 본격화되기 훨씬 이전부터 시도된 선구적인 경제 협력 모델로, 폐쇄적이었던 북한 경제 체제에 작은 틈을 내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평양의 1급 숙박 시설인 보통강호텔을 가정연합 측이 인수하여 운영한 사례는 대북 사업의 지속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이곳은 남북 회담의 주요 장소이자 외국인 투자자들의 거점으로 활용되었으며, 남북 관계가 얼어붙었을 때도 소통의 불씨를 지키는 사랑방 역할을 수행했다. 여기에 2007년 평양에 건립된 세계평화센터는 남북 문화 교류의 중심지로서 다양한 학술회의와 교류 행사를 뒷받침했다.
문화와 스포츠, 마음의 벽을 허무는 소프트파워
정치적·경제적 접근이 한계에 부딪힐 때, 가정연합은 문화와 예술이라는 부드러운 힘을 빌려 남북의 정서적 이질감을 해소하는 데 주력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리틀엔젤스 예술단의 평양 공연이다. 1998년과 2000년, 분단 이후 최초로 남측 어린이들이 평양 한복판에서 노래를 부르며 눈물을 쏟아냈을 때, 북측 관객들 역시 뜨거운 박수로 화답했다. 예술에는 국경이 없다는 말처럼, 어린 천사들의 목소리는 이념의 벽을 허물고 한민족이라는 일체감을 확인시켜 주었다. 이에 화답하듯 북측의 평양학생소년예술단이 서울을 방문하며 민간 차원의 문화 교류는 황금기를 맞이했다.
포스트 문선명 시대: 한학자 총재와 신통일한국의 글로벌 확장
2012년 문선명 총재 성화 이후, 한학자 총재는 그 유지를 받들어 대북 사업을 더욱 확장된 개념의 신통일한국 운동으로 진화시켰다. 이제 남북 교류는 단순한 지원을 넘어 전 세계적 지지를 이끌어내는 국제적 평화 운동으로 발돋움했다.
그 중심에는 ‘피스로드 통일 대장정’ 프로젝트가 있다. 전 세계 160여 개국이 참여하는 이 행진은 한반도 통일이 단순한 민족 내부의 문제를 넘어 세계 평화의 핵심 고리임을 국제 사회에 역설한다. 이 행진은 평양에서도 열렸는데, 러시아 가정연합 회원들이 참가했다.
민간 채널의 가치와 지속 가능한 미래를 향하여
남북 관계가 경색되고 모든 대화 통로가 차단될수록, 민간이 닦아놓은 채널의 가치는 더욱 빛을 발한다. 가정연합의 35년 남북 교류 역사는 정부가 정치적 제약으로 인해 가지 못했던 길을 종교와 평화의 이름으로 먼저 개척해왔음을 보여준다.
물론 대내외적인 정치적 변수와 대북 제재 등 현실적인 제약은 여전하다.
이제 지난 성과를 발판 삼아, 남북이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면서도 함께 잘사는 공생·공영·공의’의 모델을 정착시켜야 한다. 가정연합이 닦아온 피스로드가 언젠가 평양과 서울을 잇는 자유로운 고속도로가 되고 한반도가 동북아 평화의 발원지가 되는 그날까지 민간의 발걸음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2026-06-15 16:2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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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에서 원수가 형제가 되는 장면을 보았습니다”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70년]
문선명 총재 방북 당시 수행원으로 참여해 보좌 역할을 했던 황엽주 교수를 만나 당시 소감을 들어봤다. 그는 아내와 함께 1985년 중국 정부 교육부의 초청을 받아 외국인 초빙교수로 영어를 가르쳤고, 중국인민대학에서는 한국연구소를 설립해 객좌교수로 한국 문화와 한국어를 강의하기도 했다. 다음은 일문일답이다.
―문선명 총재의 평양 방문은 어떻게 성사되었나.
문 총재는 1990년 모스크바에서 열린 ‘세계원론인대회’를 주관하며 소련의 고르바초프 서기장을 만나 환담했다. 냉전 종식의 상징적 장면이었다. 그 직후 총재는 북한 방문 의사를 밝혔다. 당시 재일교포 사업가 박경윤 씨가 김일성 주석과 교분이 있었는데, 박보희 세계일보 사장이 그를 통해 뜻을 전달했다. 김 주석이 “한번 만나보고 싶다”고 하면서 방북이 성사되었다. 문 총재는 베이징 공항 귀빈실에서 중국 공안당국의 각별한 영접을 받은 뒤, 중국 정부에 감사를 표하고 조선민항 편으로 평양을 향해 출발했다.
―냉전이 끝나지 않은 시점에서 방북 추진은 부담이 컸을 것 같다.
금전적 비용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외부 세계와의 접촉을 원하던 김일성 주석의 의지와 북한의 문을 열어 냉전 질서를 넘어가려던 문 총재의 뜻이 맞아떨어졌기에 가능했다.
―평양에서의 분위기는 어땠나.
사전 조율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 진행된 일정이어서 긴장감이 컸다. 인민대회당 회담에서 문 총재가 “주체사상만으로는 통일이 이루어질 수 없으며 하나님주의와 사랑으로 가능하다”고 말했을 때 수행원들은 순간 얼어붙었다. 그러나 참사랑의 정신으로 살아온 총재의 태도는 언제나 부드럽고 포용적이었고, 일정은 큰 문제 없이 진행되었다. 북한 측은 다음 일정을 거의 알려주지 않아 우리는 언제 김 주석을 만나는지조차 모른 채 안내에 따라 움직여야 했다.
―김일성 주석의 태도는 어땠나.
매우 정중하고 친절했다. 오찬 자리에서는 음식이 나올 때마다 설명하며 권했다. “이것은 어느 강에서 잡은 쏘가리로 끓인 탕이다”, “순덕 샘물은 시아누크가 마셔보고 페리에보다 더 맛있다고 했다”는 식으로 직접 이야기를 했다. 특히 “문 선생이 부시와 친하다고 들었는데 나를 미국에 한번 초청해 보라고 해보라”는 말은 미국 워싱턴타임스 특종이 됐다.
오찬이 끝날 무렵 문 총재는 김 주석의 손을 잡아 들어 올리며 평양 사투리로 “주석님, 우리는 이제 형제가 되었시요?”라고 말했다. 두 사람은 서로 마주 보며 크게 웃었다. 오랜 원수가 사랑으로 하나 되는 감격적인 순간이었다.
―회담 이후 내부 평가는 어땠나.
우리는 ‘원수도 사랑으로 이긴다’는 가르침을 배워온 사람들이다. 수행원들 모두 깊은 감동을 느꼈다. 한국 정부로부터 특별한 평가를 들은 것은 아니었지만, 이후 북방 외교가 열리면서 한·러, 한·중 간 국교 정상화가 이루어지는 전환의 시대가 시작되었다고 생각한다.
―오늘의 남북 교착 상황을 보며 어떤 교훈을 얻는가.
동양에서는 천지인이라는 말을 한다. 하늘의 때가 열려도 사람이 책임을 다하지 못하면 역사는 기다릴 수밖에 없다. 언젠가 천륜의 도리를 받들 새로운 인물이 나타날 것이라 믿는다.
2026-06-15 16:2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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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전 해체기에 세계사적 만남… ‘남북교착’ 우리 시대에 묻는다
왜 지금 다시 1991년인가
한반도가 다시 냉각의 시간을 지나고 있다. 군사적 긴장은 일상화되고, 남북 간 공식 대화 채널은 사실상 멈춰 있다. 북핵 문제는 장기화되었고, 국제 질서는 미·중 전략 경쟁 속에서 재편 국면에 들어섰다. 상호 불신과 군사적 대응이 반복되는 구조 속에서 대화라는 단어는 점점 현실감이 옅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1991년 11월 평양에서 이루어진 문선명 총재와 김일성 주석의 회담이 다시 소환되고 있다. 35년 전의 만남은 단순한 과거 사건이 아니라, 대화의 가능성이 어떤 조건에서 열렸는지를 되묻는 장면이기 때문이다. 과거의 기록이 아니라 현재를 비추는 거울로서 1991년이 호출되고 있다.
냉전 해체기, 이례적 만남의 배경
1991년은 세계사적 전환기였다. 베를린 장벽 붕괴 이후 동구 사회주의권은 해체 수순에 들어섰고, 소련은 붕괴 직전에 놓여 있었다. 냉전이라는 거대한 이념 구도는 균열을 보였고, 국제사회는 탈냉전이라는 새로운 질서를 모색하고 있었다.
한반도 역시 변화의 흐름 속에 있었다. 그 전환기의 한복판인 1991년 11월 문선명 총재는 평양을 방문해 김일성 주석과 직접 회담을 가졌다. 이는 남북기본합의서 채택(12월)보다 한 달 앞선 시점이었다.
당시 문선명·한학자 총재외에 박보희 세계일보 사장 등 방북단 일원이 8명이었다는 점에서 실질적 논의와 후속 협의를 염두에 둔 만남으로 평가된다. 반공주의 운동을 상징해 온 종교 지도자가 북한의 최고지도자와 마주 앉았다는 사실 자체가 국제정치의 관성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장면이었다. 정부 간 정상회담이 아닌 민간 차원의 접촉이었다는 점 역시 이례적이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한 달 뒤인 1991년 12월 남북은 남북기본합의서를 채택하며 화해와 불가침, 교류 협력을 선언했고, 같은 해 유엔 동시 가입을 이루었다. 문선명·김일성 회담은 이러한 전환 국면과 맞물리며 ‘대화의 가능성’을 선행적으로 보여준 사건으로, 분단 이후 처음으로 제도적 공존의 틀을 마련하던 순간이었다.
평양에서 열린 대화의 문, 그리고 확산된 기대
이 회담이 남긴 의미는 상징과 실질이라는 두 가지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다. 적대의 구조 속에서도 대화는 가능하다는 사실을 보여주었고, 종교 기반 네트워크가 국경과 체제를 넘어 작동할 수 있음을 드러냈다. 이는 훗날 민간외교, 이른바 트랙2 외교의 사례로 거론되기도 한다.
실질적 차원에서도 경제 협력 가능성, 교류 사업 구상, 향후 접촉의 확대 방안 등이 구체적으로 논의되었다는 소식은 당시 사회에 적지 않은 파장을 일으켰다.
특히 반공주의 운동의 상징적 인물로 인식되던 종교 지도자가 평양을 방문해 김일성 주석과 대화를 나누었다는 사실 자체가 국민들에게는 충격에 가까운 놀라움으로 다가왔다.
이 회담은 ‘적대는 불변’이라는 고정 관념에 균열을 내는 사건이었다. 언론 보도를 통해 전해진 회담 소식은 “남북 간에도 대화가 가능하다”는 현실적 감각을 처음으로 체감하게 한 장면으로 받아들여졌다.
회담 이후 경제 협력과 교류 사업에 대한 구상이 공개되면서, 남북 관계가 단순한 군사·이념 대결을 넘어 실질적 협력의 영역으로 확장될 수 있다는 기대가 형성되었다. 만수대 의사당 회담에서 문 총재는 김 주석 앞에서 주체사상의 한계를 지적하며 하나님주의에 의한 통일을 주장하는 파격적 발언을 했고, 이를 계기로 두 지도자는 의형제 관계를 맺으며 ·이산가족 상봉 ·금강산 개발 협력 ·핵무기 개발 반대 ·남북 정상회담 추진 등에 합의해 이후 카터 방북과 남북 정상회담 논의로 이어졌다.
2026년 한반도 정세 속 재해석
2026년 현재 한반도는 대화보다 대치가 일상화된 상황이다. 남북 공식 채널은 장기간 중단되었고, 상호 신뢰는 크게 훼손된 상태다.
이런 조건 속에서 1991년의 회담은 다시 질문을 던진다. 공식 외교가 교착 상태에 빠졌을 때, 비공식 채널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가 종교·문화·시민사회 영역이 신뢰 형성의 완충지대로 기능할 가능성은 없는가.
1991년은 완성된 해법이 아니라 출발점의 사례였다.
대화의 구조는 선언만으로 복원되지 않는다. 구조적 설계가 필요하다.
첫째, 정부 간 협상과 함께 민간·종교·문화 교류가 상호 보완적으로 작동해야 한다.
둘째, 민간 접촉이 제도적 협의로 이어지려면 국가의 정책적 뒷받침이 필요하다.
셋째, 국제사회와의 연계 속에서 한반도 문제를 다루어야 한다. 대화는 사건이 아니라 과정이다.
역사적 사건이 아닌 현재진행형 질문
문선명·김일성 회담은 오랜 준비와 치밀한 조율, 그리고 정치적 부담과 상당한 비용을 감수한 결단의 산물이었다. 그 결과, 이념이 가장 첨예하게 대립하던 시대에도 만남은 이루어졌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는 왜 대화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는가.
1991년 평양의 장면은 과거의 기록이 아니라 현재를 비추는 거울이다. 대화는 누구의 몫인가. 정부인가, 민간인가, 국제사회인가. 그리고 우리는 지금 어떤 선택을 하고 있는가.
역사는 반복되지 않는다. 그러나 질문은 반복된다. 1991년의 만남은 과거의 기록이 아니라 기준이다. 대화는 가능성의 문제가 아니라 준비의 문제임을 증명했기 때문이다.
2026-06-15 16:2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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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한민족 풍류는 심정문화의 원형 [신화에서 선민까지 한민족 정체성의 문화사적 발견-기고]
‘한류’, 이천 년을 흐른 풍류의 현대적 현현
오늘날 전 세계를 흔드는 K-팝의 비트와 K-푸드의 미각, K-드라마의 서사는 문화적 유행을 넘어선다. 이 폭발적인 인기를 과연 한국의 고도화된 정보통신 기술이나 거대 자본, 혹은 치밀한 마케팅의 승리로만 돌릴 수 있을까? 결코 그렇지 않다. 물질의 풍요 속에서도 영혼의 갈급함을 느껴온 현대인들에게 한국 문화는 그들의 심층적 결핍을 채워주는 ‘정서적 복음’이었고, K-콘텐츠는 이들의 마음속을 정확히 파고들었다.
과거 해외 시장에서 선풍적인 열풍을 일으켰던 어느 제과회사의 초코과자를 떠올려 보자. 당시 합리주의적 사고에 익숙했던 서구인들에게 과자 상자에 선명히 새겨진 ‘정(情)’이라는 한 글자는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문화적 암호와 같았다. 하지만 이 글자에 담긴 한국인 특유의 따뜻한 인정은 국경을 넘어 세계인들의 굳게 닫힌 마음을 녹여내는 마법을 발휘했다. 이처럼 말로 다 설명하기 힘든 가슴 깊은 곳의 ‘심정적 에너지’는 단순한 상품의 흥행을 넘어선다.
이러한 현상의 실체는 어느 날 갑자기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우리 민족의 정신적 기저에 면면히 흘러온 ‘풍류(風流)’라는 영적 에너지의 현대적 분출이다. 세계적인 종교학자 미르체아 엘리아데(Mircea Eliade)는 샤머니즘을 원시적인 미개 종교로 치부하지 않았다. 그는 샤머니즘이야말로 장구한 역사를 지닌 인류 영성의 원초적 모태이며, 현대의 고등종교들 역시 이 근원적 영성을 계승하여 인간의 구원 문제를 다루고 있음을 입증했다. 엘리아데는 인간의 종교적 열망이란 인류의 의식 구조 속에서 내재된 보편적 일치성을 지니고 있다는 데 주목한다.
이와 같은 문명사적 통찰은 국내 도상학(圖像學)의 권위자인 동덕여대 박용숙 교수의 연구를 통해 한국학적 확신으로 도약한다. 박 교수는 기독교와 불교 문명이 태동하기 전, 인류의 사상과 역사를 일구었던 최초의 정신적 기틀로서 ‘시원(始原) 샤먼문명’을 제시했다. 박 교수는 미국 버클리 대학 객원교수 시절, 현지 도서관에서 우연히 발견한 유럽과 미국의 방대한 고서적 분석을 시도했다. 그는 전 세계의 방대한 기록 연구를 통해 한국의 풍류가 결코 변방의 아류 문화가 아닌 인류 시원 사상의 핵심 맥락과 맞닿아 있음을 주장하였다.
육당 최남선이 갈파했듯, 고대 단군의 권능은 곧 이러한 ‘무도(巫道)’로부터 연원했다. 하늘과 땅, 이승과 저승을 관통하며 길흉화복을 다스리고 신의 기운을 조화롭게 하던 무(巫)의 지혜는 한민족 문화의 ‘일체 씨알’이자 풍류의 본질이었다. 이는 마치 J.R.R. 톨킨의 서사시 『반지의 제왕』에 등장하는 ‘절대반지’와 같다. 톨킨이 묘사한 절대반지는 모든 제후를 모으고 흩어진 세상을 하나로 묶는 강력한 힘의 상징과도 같다. 그는 “순금이라고 해서 다 반짝이는 것은 아니며, 방황한다고 해서 반드시 길을 잃을 잃은 것은 아니다”라는 깊은 울림을 남겼다. 비록 오랜 세월 역사의 먼지에 가려져 그 광채가 흐려졌을지라도, 풍류라는 우리 민족의 뿌리 깊은 영성은 결코 시들지 않는 절대 진리의 순금과 같다.
본래 풍류란 먼 옛날 하늘이 우리 민족의 가슴 속에 심어놓은 ‘영성의 유전자’이자, 모든 만물을 하나로 어우러지게 만드는 ‘태초의 리듬’이다. 즉, 풍류는 한민족이라는 나무가 뿌리를 내릴 때부터 이미 흐르고 있었던 ‘생명의 수액’과 같다. 엘리아데가 주목한 인류의 시원 영성이나 박용숙 교수가 주목한 샤먼문명의 도상들은 결국 이 풍류라는 거대한 설계도를 설명하기 위한 조각들이다. 풍류는 이론이기 이전에 우리 민족의 몸속에 각인된 본능적 신명이며, 서구의 논리가 ‘나와 너’를 구분할 때, 풍류는 ‘우리’라는 이름으로 서로의 아픔을 녹여내고 기쁨을 증폭시키는 ‘힘의 파동’인 셈이다.
한민족의 정신 지층 아래 도도히 흐르던 풍류는 불교와 유교, 그리고 기독교를 차례로 수용하면서도 이들을 충돌시키는 대신 거대한 용광로 안에서 하나로 융합해 냈다. 이 겹겹의 지층은 풍류라는 유연한 영성을 통해 융합되었고, 이것이 바로 한국인 특유의 다원적이고 포용적인 정신세계를 형성한 토양이 되었다. 신라 최치원이 『난랑비서(鸞郎碑序)』에서 갈파한 ‘포함삼교(包含三敎)’는 바로 이러한 융합의 결정체다. 풍류는 외래 사상을 수용하되 우리만의 신명으로 이를 재창조해내는 독특한 구조적 힘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힘은 수천 년간 우리들의 무의식 속에 잠자다 마침내 때를 만나 K-컬처라는 역동성으로 분출된 것은 아닐까?
풍류를 한류의 원형으로 바라보는 시각은 지극히 중요하다. 이러한 관점이 정립될 때 비로소 고대로부터 이어져 온 ‘여신문화’나 시원 영성은 단순한 전설을 넘어, 인류를 구원할 실체적 정당성을 확보하기 때문이다. 인류사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오랫동안 부계 중심의 수직적 질서가 지배해왔다. 그러나 한민족의 정신사 이면에는 가부장적 권위에 가려져 있었을 뿐, 만물을 품고 살려내는 ‘모성적 영성’이 태초부터 흐르고 있었다. 풍류를 통해 뭇 생명을 교화하는 ‘접화군생(接化群生)’의 가치가 전 세계인을 하나로 묶는 거대한 심정적 위력으로 화(化)하고 있다. 이는 그동안 가리워졌던 모성적 시원 영성이 역사의 전면에 드러나 완성되는 필연적 사건이다.
◆ 효정(孝情), 풍류를 넘어 인류로 확장되는 심정의 질서
풍류의 도도한 흐름을 추적해 들어가면, 그 기저에는 한국인의 영성 구조를 빚어온 ‘무(巫)’의 유구한 전통이 자리함을 발견하게 된다. 이능화의 『조선무속고』를 비롯한 선구적 연구들이 증언하듯, 우리 민족에게 각인된 ‘무’의 원형은 단순한 기복이나 점술의 차원을 가뿐히 넘어선다. 그것은 하늘과 땅, 신과 인간을 하나로 잇는 거룩한 ‘중보(仲保)’의 도(道)였다. ‘무(巫)’라는 글자의 형상처럼, 하늘의 뜻을 지상에 투영하고 인간의 애끓는 심정을 하늘에 상달(上達)시키는 이 수직적 연결 구조야말로 우리 민족이 태초부터 견지해온 고유한 영성의 문법이었다. 비록 역사의 굴절 속에서 이 원형적 기능이 파편화되고 왜곡되며 본래의 위엄을 잃은 적도 있었으나, 하늘과 신령하게 소통하고자 하는 한국인의 내면적 열망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 생명력은 제의의 틀을 깨고 나와 노래와 춤, 어울림과 신명이라는 ‘풍류’의 문화로 승화되었다. 바로 이 지점에서 ‘무’의 수직적 응집은 ‘풍류’라는 수평적 확산으로 전환되며, 비로소 공동체의 삶 속에 구체화 된 것이다.
한민족의 심층에 흐르던 풍류의 영성은, 이 시대에 이르러 ‘효정(孝情)’이라는 숭고한 이름 아래 하나의 완성된 질서로 정립되었다. 효정은 단순히 가문의 울타리에 갇힌 윤리나 사장화 된 덕목이 아니다. 하늘부모님을 향한 지극한 ‘종적 사랑’과 인류 전체를 보듬는 광대한 ‘횡적 사랑’이 하나의 축으로 맞물려 고동치는 생명력의 구조다. 하늘을 공경하는 경천(敬天)의 마음이 그 단단한 뿌리라면, 널리 세상을 이롭게 하는 홍익(弘益)의 실천은 그 사랑이 대지 위로 찬란하게 꽃피는 발현의 방식인 셈이다.
이 종과 횡의 두 축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위하여 사는 삶’은 인간 존재의 근본 원리가 된다. 그 거룩한 교차점에서 인간의 사랑은 개별적 자아를 넘어 인류라는 거대한 바다로 확장되며, 모든 관계는 ‘심정(心情)’이라는 영적 끈으로 단단히 결속된다. 여기서 발현되는 에너지는 단순히 가정을 돌보는 차원의 모성을 초월한다. 그것은 분열과 갈등으로 점철된 세계를 다시 태초의 일체감으로 묶어내는 ‘창조적 사랑’의 현현(顯現)이자, 인류 공동체를 치유하는 유일한 해법이다.
결국 풍류의 신명은 효정 안에서 방향을 얻고, 효정은 인류를 향해 그 지평을 확장한다. 이것이 바로 ‘하늘부모님 아래 인류 한 가족’이라는 비전이 단순한 이상이 아니라 현실적 질서로 작동할 수 있는 이유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이 지점은, 단순한 문화적 진화의 결과가 아니다. 수천 년 동안 축적되어 온 영성과 역사, 그리고 인간의 정성이 하나의 흐름으로 수렴되며, 마침내 실체적 질서로 드러나는 전환의 순간이다. 더 이상 풍류는 과거의 유산이 아니며, 효정 또한 관념이 아니다. 그것은 이 땅 위에서 작동하고 있는 살아있는 원리이자 문명의 방향을 규정하는 새로운 기준이다.
이제 우리에게 남은 것은 결단이다. 눈앞의 파편화된 현상에 매몰될 것인가, 아니면 그 거친 수면 아래 도도히 흐르고 있는 ‘심정(心情)의 질서’를 겸허히 수용할 것인가. 인류의 역사는 언제나 눈에 보이는 권력의 부침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거룩한 원리 위에서 약동해 왔다. 그리고 그 보이지 않는 진리의 맥락을 온몸으로 껴안은 소수의 선각자가 시대를 열어젖히는 주역이 되어왔음을 우리는 기억한다. 그렇기에 작금의 시기는 인류가 상극의 구질서를 뒤로하고 ‘하늘부모님 중심의 대가족’이라는 새로운 문명으로 진입하는 전환점이다. 이 거대한 영적 파고 속에서 효정(孝情)의 등불을 드는 일은 미래 인류의 생존을 담보하는 가장 존엄한 응답이 될 것이다.
◆ 경천과 홍익, 그리고 효정(孝情)의 문명
오늘날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한류(韓流)의 지속 가능한 생명력은, 문화적 콘텐츠의 확산을 넘어선 지점에서 비로소 완성된다. 그것은 특정 문화의 일방적 전파가 아니라, 서로 다른 문명들이 하나의 ‘심정’ 안에서 어우러지고 공명하는 거대한 ‘문화적 공유지’의 형성이다. 이러한 현상은 결코 우연한 유행이 아니다. 한민족의 시원에 깊이 각인된 영적 유전자와 문명적 구조에서 비롯된 필연적 흐름이다.
환웅(桓雄)이 하늘의 뜻을 품고 지상으로 내려오고, 웅녀(熊女)가 인내와 정성으로 인간이 되기를 간절히 기원했던 단군신화는 단순한 건국 설화가 아니다. 그것은 하늘과 인간, 그리고 대지가 하나로 조화를 이루는 ‘천지인합일(天地人合一)’의 원형적 선언이었다. 이 숭고한 기원으로부터 우리 민족은 하늘을 공경하고 뭇 생명을 귀히 여기는 경천애민(敬天愛民)의 질서를 숙명처럼 이어받았다. 이제 그 오래된 미래의 가치가 ‘효정’이라는 이름으로 부활하여, 갈등과 반목으로 점철된 지구촌을 하나의 가족으로 묶어내는 문명적 해답을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종(縱)과 횡(橫)의 성스러운 질서는 신라 황룡사 9층 목탑의 형상을 통해 더욱 구체적이고 웅장하게 투영된다. 하늘을 향해 거침없이 솟아오른 수직적 층차는 경천(敬天)의 질서를 상징하며, 아홉 층에 깃든 화합의 염원은 이웃 나라와 세계를 품어 안는 홍익(弘益)의 지평을 드러낸다. 그것은 타자를 억압하는 정복의 논리가 아니었다. 하늘의 거룩한 질서 안에서 만인이 공존을 이루고자 했던, 고대 한반도가 그려낸 가장 원대한 ‘문명의 설계도’였다. 이제 이 수직과 수평의 질서는 박물관에 박제된 과거의 상징에 머물지 않는다. 경천과 홍익이라는 이 이중 나선형의 구조는 오늘날 ‘효정’이라는 이름 아래 하나의 생동하는 실체적 문명으로 현현(顯現)하고 있다. 하늘을 향한 지극한 경배와 인류를 향한 무조건적 사랑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리는 이 효정의 질서는, 파편화된 세계를 다시 영적 일체감으로 결속하는 새로운 시대의 표준(Standard)으로 작동하기 시작했다.
풍류의 물줄기를 타고 형성된 우리 민족의 신명 어린 에너지는, 이제 ‘효정’이라는 거대한 유전(油田) 안에서 명확한 시대적 방향성을 얻었다. 그리고 그 효정의 빛은 이제 한반도를 넘어 전 인류를 향해 그 지평을 광활하게 확장하고 있다. 가장 한국적인 정서로 여겨졌던 ‘심정의 질서’가 마침내 온 인류가 공유해야 할 ‘보편적 문명’으로 전환되고 있는 것이다. 바로 그 장엄한 전환의 지점에서, 우리는 새로운 시대의 문턱을 비장하게 마주하고 있다. 이러한 문명적 전환은 이제는 관념이 아니라, 실체적 주체를 통해 이 땅 위에서 온전히 구현되고 있다는 점에서 비로소 위대한 종착지에 도달하게 된다.
고기훈 박사(한국학)
2026-06-12 09:3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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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는 왜 영성을 찾는가—세계사를 움직인 15인의 영성] <1> 모세-“노예 민족에게 법과 신을 준 사람”
[인류는 왜 영성을 찾는가—세계사를 움직인 15인의 영성] 목차
<1> 모세-“노예 민족에게 법과 신을 준 사람”
<2> 공자-“혼란한 시대, 인간의 질서를 묻다”
<3> 노자-“세상을 거슬러 흐르지 말라”
<4> 석가모니-“인간의 고통을 정면으로 바라본 사람”
<5> 조로아스터-“선과 악의 전쟁은 어디서 시작됐는가”
<6> 예수-“사랑은 어떻게 세계를 바꾸었는가”
<7> 무함마드-“신앙은 공동체를 어떻게 조직하는가”
<8> 성 아우구스티누스-“인간 내면에도 제국은 존재한다”
<9> 토마스 아퀴나스-“신과 이성은 화해할 수 있는가”
<10> 마르틴 루터-“양심은 교황보다 강한가”
<11> 존 웨슬리-“대중 속으로 들어간 종교”
<12> 라마크리슈나-“모든 종교는 같은 산을 오르는가”
<13> 달라이 라마 14세-“인간은 증오 없이 저항할 수 있는가”
<14> 문선명·한학자-분열된 인류는 다시 한 가족이 될 수 있는가
<15> 간디-“정치는 영혼을 가질 수 있는가”
◆“노예 민족에게 법과 神을 준 사람”
“한 공동체는 무엇으로 유지되는가.” 인류 역사에서 가장 오래 살아남은 질문 가운데 하나다. 그 답은 무엇일까. 힘인가. 군대인가. 돈인가. 아니면 인간보다 더 높은 어떤 질서와 믿음인가. 고대 이집트의 벽돌 굽는 노예들 속에서 등장한 한 인물은 여기에 전혀 다른 답을 내놓았다. 그의 이름은 모세(Moses)였다.
오늘날 그는 유대교의 예언자이자 지도자로 기억되지만, 역사적 관점에서 보면 모세는 종교 지도자를 넘어선 존재였다. 그는 흩어진 노예 집단을 하나의 민족으로 조직했고, 공동체를 유지할 윤리와 율법을 전했으며, ‘보이지 않는 신(神)’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문명 의식을 만들어냈다. 그 점에서 모세는 세계사 최초의 거대한 ‘정신적 국가 건설자’ 가운데 한 명이었다고도 말할 수 있다.
기원전 13~15세기 무렵의 인물인 모세 이야기는 성서 속에서 극적인 서사로 펼쳐진다. 히브리인들이 이집트에서 노예 생활을 하던 시절, 이집트 왕 파라오(Pharaoh)는 히브리 민족의 인구 증가를 두려워해 남자아이들을 죽이라는 명령을 내린다. 이집트 북동부에서 태어난 모세는 이 명령을 피해 갈대 상자에 담겨 나일강에 띄워졌고, 파라오의 딸에게 발견되어 역설적으로 이집트 왕실에서 자라게 된다.
◆광야에서 마주한 부름과 떨림
그러나 그는 어느 날 자신이 노예 민족 출신이라는 사실과 마주하게 된다. 성서는 젊은 모세가 히브리인을 학대하는 이집트인을 죽이고 광야로 도망치는 장면을 전한다. 여기까지의 모세는 아직 ‘예언자’가 아니었다. 이후 이집트를 벗어나 미디안 광야에서 양치기로 살아가던 그는 불타지만 사라지지 않는 떨기나무 앞에서 신의 음성을 듣고 부름을 받는다. “내가 내 백성의 고통을 보았다.” 그리고 모세에게 이집트로 돌아가 히브리 민족을 이끌어내라고 명령한다.
성서 속 모세는 영웅이라기보다 오히려 두려움 많고 망설이는 인물에 가깝다. 그는 스스로 말주변이 부족하다고 호소하고, 자신의 능력을 의심한다. 그러나 바로 그 연약함 때문에 모세라는 인물은 더욱 인간적으로 다가온다. 세계 종교의 위대한 지도자들 가운데 상당수는 완벽한 초인이 아니라, 오히려 흔들리고 갈등하는 인간의 모습 속에서 출발한다.
모세는 두려움에 떨다가 신의 근심을 알고 이집트로 돌아가 파라오와 맞선다. “내 백성을 보내라.” 하지만 파라오는 거부한다. 그리고 성서에는 유명한 ‘열 가지 재앙’ 이야기가 이어진다. 강물이 피로 변하고, 메뚜기 떼가 들판을 덮고, 흑암이 땅을 뒤덮는 장면들은 이후 서양 문학과 예술 속에서 반복적으로 재현된다. 연이은 재앙은 단지 자연 현상이 아니라, 성서 안에서는 인간 권력의 오만에 대한 심판처럼 묘사된다. 결국 파라오는 히브리인들의 ‘출애굽’을 허락한다. 절대 권력도 더 높은 질서 앞에서는 한계를 드러낼 수밖에 없다는 상징적 장면이었다.
마침내 히브리인들은 이집트를 탈출한다. 목적지는 ‘약속의 땅’이라고 불리는 가나안이었다. 그러나 이집트 국경을 벗어나는 마지막 관문에서 거대한 ‘홍해’라는 벽에 부딪힌다. 뒤에서는 이집트 군대가 추격해 온다. “두려워하지 말라. 굳게 서서 여호와께서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모세는 이렇게 외쳤고, 절망 속에서 바다를 향해 손을 들자 물길이 갈라졌다는 이야기는 이후 인류 역사상 가장 강렬한 종교 서사 가운데 하나로 자리 잡게 된다.
◆출애굽, 자유를 향한 원형적 서사
물론 오늘날 역사학과 고고학에서는 출애굽 사건의 규모와 역사성을 둘러싼 논쟁이 존재한다. 실제 대규모 탈출이 있었는지, 성서 기록이 후대에 상징적으로 구성된 것인지에 대한 다양한 견해도 나온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 이야기가 수천 년 동안 인간에게 어떤 의미로 작동해 왔는가 하는 점이다. 출애굽은 억압에서 자유로 나아가는 인간의 원형적 서사가 되었다. 이후 수많은 시대와 공동체가 자신들의 고난을 설명하기 위해 모세와 출애굽 이야기를 호출했다. 미국 흑인 인권운동에서조차 모세는 중요한 상징이었다. 노예제(奴隸制)와 차별 속에서 자유를 꿈꾸던 사람들에게 그는 해방의 지도자였다.
이집트를 완전히 벗어나 광야로 나온 히브리인들은 곧바로 가나안에 도착하지 못한다. 성서에 따르면 그들은 40년 동안 광야를 방황한다. 배고픔과 갈등 속에서 끊임없이 불평하고 흔들린다. 주목할 점은 모세의 위대함이 단지 기적을 일으킨 데 있는 것이 아니라, 혼란스러운 집단을 끝까지 이끌어 가는 데 있다. 그리고 시나이반도 중앙의 험준한 암산 시내산(해발 약 2,200m)에서 모세는 십계명을 받는다. 흔히 말하는 모세의 율법은, 모세가 시내산에서 받은 십계명을 기초로 하여 이후 공동체 질서를 규정한 종교적·사회적 규범 체계를 가리킨다.
◆시내산의 십계명과 ‘신 앞의 법’
‘살인하지 말라.’ ‘거짓 증언하지 말라.’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라.’ 오늘날에는 너무 익숙해 보이는 십계명의 문장들이지만, 당시로서는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한 강력한 윤리 선언이었다. 중요한 것은 이 법이 왕의 변덕이 아니라 ‘신 앞의 법’이라는 형태를 띠었다는 점이다. 당시만 해도 권력이 법을 마음대로 주무르던 시대였지만, 십계명 이후 권력자 역시 절대적인 존재가 아니라 더 높은 질서 아래 있다는 인식이 싹트기 시작한다. 훗날 서구 문명의 법과 도덕 체계는 이런 유대교 전통의 영향을 깊게 받게 된다. 유대교뿐 아니라 기독교와 이슬람 역시 모세를 중요한 인물로 받아들이며, 그의 이야기는 세계 종교사의 거대한 뿌리가 되었다.
모세의 삶은 영화, 시, 소설, 희곡 등으로 변주되어 예술과 대중문화에도 엄청난 영향을 남겼다. 특히 영화는 모세 서사를 반복적으로 재현해 왔다. 대표적인 작품이 1956년 제작된 영화 《십계》이다. 찰턴 헤스턴이 모세 역을 맡은 이 작품은 당시 엄청난 흥행을 기록했고, 지금도 성서 영화의 고전으로 남아 있다. 거대한 홍해를 가르는 장면과 시내산의 계시는 당시 기술로 구현하기 어려운 스펙터클이었지만, 오히려 그런 압도적 장면들이 모세 신화를 현대 대중에게 다시 각인시켰다. 이후에도 애니메이션 《이집트 왕자》, 영화 《엑소더스: 신들과 왕들》 등 수많은 작품이 모세 이야기를 새롭게 해석했다. 시대마다 표현 방식은 달라졌지만, 공통점은 하나였다. 인간은 여전히 자유와 구원의 이야기에 끌린다는 점이다.
◆현대 대중문화가 호출하는 모세
생각해 보면 인간은 빵만으로 살아가지 않는다. 자신이 누구인지, 왜 존재하는지, 어떤 질서를 따라야 하는지를 설명해 주는 이야기를 필요로 한다. 공동체 역시 마찬가지다. 돈과 권력만으로는 오래 유지되지 않는다. 함께 믿는 가치와 규범, 그리고 “우리는 누구인가”라는 집단적 기억이 필요하다. 모세는 바로 그 기억을 만든 사람이었다. 그는 ‘해방 영웅’을 뛰어넘어 혼란스러운 공동체를 끝까지 이끈 지도자였다. 공동체를 ‘민족’으로 만들고, ‘법’을 권력 위에 세우며, 고통의 여정을 끝까지 함께한 인물이었다. 이러한 서사가 수천 년 동안 인간에게 반복적으로 읽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사람은 단지 억압에서 벗어나는 것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자유 이후의 질서와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일이 더 어렵기 때문이다. 공동체를 하나로 묶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모세의 시대에는 율법과 하나님의 이름이었다.
2026-06-11 14:4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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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는 관념 아닌 생존의 문제… 미래 세대 위한 ‘실천적 연대’를”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70년]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구조적 과제를 평화의 범주로 확장해 온 선학평화상은 미래 세대를 위한 지속 가능한 평화를 기치로 활동해 왔다. 출범 초기부터 수상자 발굴을 위해 세계 각지를 직접 누벼온 남인석 사무총장을 만나 급변하는 시대 속에서 이 상이 추구하는 방향과 인류가 직면한 위기에 대한 해법을 들었다. 다음은 일문일답이다.
“우리는 과거의 공로가 아닌, ‘다가올 위기’의 영향력”
- 세계적으로 가장 권위 있는 평화상인 노벨평화상과 비교할 때, 선학평화상만의 차별성은 무엇입니까.
“노벨평화상이 주로 분쟁의 완화와 외교적 리더십을 통해 평화를 조명해왔다면, 우리는 갈등이 일어나기 전의 구조에 주목합니다. 기후·식량·보건의 불평등처럼 미래 세대의 생존을 위협하는 문제를 평화의 범주로 확장하고, 가장 열악한 현장에서 직접 해결 모델을 구축해 온 실천가들을 발굴하는 데 집중해 왔습니다. 전쟁의 부재를 넘어 인간의 존엄과 생존권을 지키는 것이 우리가 말하는 평화입니다.”
- 다가올 위기를 꼽는다면.
“기후 변화, 식량 불안, 보건 격차 같은 구조적 과제들입니다. 이 과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미래 세대의 안전은 담보될 수 없습니다. 전쟁이 없다고 해서 곧 평화라 말할 수 없습니다.”
- 선학평화상이 구상하는 평화의 범위가 있는지요.
“이상적 평화는 총성이 멈춘 이후의 상태가 아니라, 위기가 폭발하기 전에 구조를 바꾸는 일입니다. 대표적으로 팬데믹은 우리에게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습니다. 백신은 누구의 것인가? 부유한 국가의 것인가? 인류 모두의 것인가? 선학평화상이 구상하는 평화는 바로 이런 구조적 불평등을 해소하고, 공공재를 인류 공동의 자산으로 인식하는 질서까지를 포함합니다. 평화의 범위는 지금보다 훨씬 넓어져야 합니다.”
“화려한 명성보다 실천과 책임의식”
- 수상자 선정 기준은 무엇입니까.
“직책이나 명성보다 삶의 방향을 봅니다. 고통받는 사람들 곁에 실제로 서 있었는가. 그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인류 공동의 과제를 해결하려 노력했는지가 핵심입니다. 미래 세대에 대한 공동 책임을 실천하며 묵묵히 현장을 지킨 인물이 우리가 찾는 평화의 얼굴입니다.”
- 한 사람 예를 들어주신다면.
“대표적인 분이 제2회 수상자인 지노 스트라다 박사입니다. 지금은 고인이 되셨지만, 스트라다 박사는 이탈리아 의사로서 분쟁 지역에서 무상 의료 봉사를 실천했습니다. 그분은 환자의 국적도, 정치적 입장도 묻지 않았습니다. 평화는 선언이 아니라, 그런 이타적인 선택의 축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시민사회의 선한 힘과 새로운 플랫폼”
- 정부와 국제기구의 역할로도 충분하지 않은지요.
“공공 영역은 정부와 국제기구의 역할이 필수적입니다. 그러나 정치적 이해관계와 절차의 제약을 받습니다. 시민사회는 상대적으로 유연합니다. 더 빠르게 움직일 수는 장점이 있습니다.”
- 그렇다면 시민사회는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보십니까.
“제6회 수상자인 휴 에반스의 경우 ‘글로벌 시티즌(Global Citizen)’이라는 플랫폼을 통해 시민사회의 선한 힘을 결집시키는 참여의 구조를 만들었습니다. 그곳에서는 청년들이 휴대폰으로 빈곤 퇴치나 기후 대응 캠페인에 참여합니다. 또한 온라인 서명과 메시지 전달, 행동 촉구 등에 동참합니다. 그 참여가 일정 규모를 넘어서면 대규모 콘서트와 국제행사에서 세계 지도자들에게 공개적으로 약속을 요구합니다. 개인의 작은 행동이 국제적 압력으로 전환되는 구조입니다.”
- 실질적인 성과가 있었는지요.
“2012년 이후 이 플랫폼을 통해 수십억 달러 규모의 공공·민간 재원이 약속됐고, 그 재원은 백신 지원과 교육 확대, 식량 지원 사업으로 이어졌습니다. 단순한 캠페인이 아니라 민간의 평화 행동이 국제사회의 정책과 예산을 움직인 멋진 사례입니다.”
“청년에게 평화는 현실적 삶의 방식으로”
- 청년 세대에게 평화는 어떻게 다가가야 합니까.
“도덕 교과서처럼 말하면 닿지 않습니다. 자신의 삶 속에서 선택하고 실행할 수 있는 ‘실천 가능한 모델’로 제시되어야 합니다. ‘나는 어떤 기준으로 세상의 문제에 응답할 것인가.’ 그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질 때 변화가 시작됩니다. 수상자들의 삶은 ‘불가능한 이상’이 아니라, ‘선택 가능한 현실’ 입니다.”
“공감이 행동이 될 때, 평화가 됩니다”
- 지금까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꾸준하게 실적을 쌓아 오셨는데, 앞으로 계획을 말씀해 주시죠.
“전 세계 실천가들이 연결되는 허브가 되는 것이 목표입니다. 기후·식량·보건 등의 불평등이라는 공통 과제를 해결하려는 이들을 서로 연결하는 글로벌 플랫폼을 구축하고 싶습니다.”
- 끝으로, 선학평화상이 궁극적으로 이루고자 하는 사회는 어떤 모습입니까.
“타인의 고통이 외면되지 않아야 합니다. 공감이 감정에 머무르지 않고 행동으로 이어지고, 그 행동들이 서로 연결되어 구조를 바꾸는 사회를 지향합니다. 평화는 멀리 있는 이상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의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작은 실천이 모일 때 공동체는 스스로 지킬 힘을 얻고, 미래 세대가 안심할 수 있는 지속 가능한 평화는 비로소 현실이 될 것입니다.”
2026-06-08 21:0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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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구제 기여자 선정… ‘한국판 노벨평화상’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70년]
인류의 평화는 단순히 전쟁이 없는 상태를 의미하지 않는다. 기후 위기와 감염병, 빈곤과 난민, 교육 격차 등 인류 공동 과제를 해결하는 일과 맞닿아 있다. ‘미래 세대를 위한 평화’를 기치로 제정된 선학평화상은 2025년 제6회 시상식을 계기로 10년의 궤적을 완성했다. 역대 수상자들의 발자취를 통해 이 상이 조명해 온 의제와 의미를 짚어본다.
■제1회~제2회: 기후 정의와 난민 인권
2015년 제1회 수상자인 아노테 통 키리바시 대통령은 해수면 상승으로 국가 존립이 위협받는 현실을 국제사회에 알리며 ‘기후 정의’ 담론을 환기했다. 공동 수상자인 모다두구 비제이 굽타 박사는 저비용 양식 기술 보급을 통해 개발도상국의 식량 자립을 지원하며 ‘청색혁명’을 이끌었다. 제1회 시상은 기후 위기와 식량 안보를 평화의 핵심 의제로 격상시킨 계기였다.
2017년 제2회 수상자인 이탈리아 출신 외과의사 지노 스트라다는 분쟁 지역에서 무상 의료 활동을 펼치며 전쟁과 폭력의 한복판에서 생명권 보호에 헌신했다. 또 다른 수상자인 아프가니스탄의 교육운동가 사키나 야쿠비 박사는 여성과 난민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자립의 기반을 마련했다. 제2회 시상은 난민과 분쟁 피해자 문제를 전면에 제기하며, 평화의 전제 조건으로 ‘생명권’과 ‘교육권’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의미를 갖는다.
■제3회~제4회: 아프리카 발전과 종교 화합
2019년 제3회 수상자인 소말리아 출신 인권운동가 와리스 디리는 여성 할례(FGM)의 참상을 고발하며 실질적인 법·제도 개선을 이끌었다. 또 다른 수상자인 아프리카개발은행 총재 아킨우미 아데시나는 농업 혁신과 금융 지원 확대를 통해 빈곤 감소와 경제 자립을 모색하는 발전 모델을 제시했다. 제3회 시상은 아프리카 대륙이 직면한 구조적 과제를 조명하고, 제도 개선과 자립 역량 강화가 평화의 토대임을 환기했다.
2020년 제4회 수상자인 마키 살 세네갈 대통령은 안정적 거버넌스 운영과 지역 협력을 바탕으로 민주주의 기반을 강화한 리더십을 보여줬다. 또 다른 수상자인 팔레스타인 루터교 지도자 무닙 A. 유난 주교는 중동 지역에서 종교 간 대화와 공존을 촉진하며 갈등 완화에 기여했다. 제4회 시상은 정치적 책임성과 종교 간 화해가 평화 구축의 핵심 요소임을 부각했다.
■제5회~제6회: 보건 형평성과 생태·리더십
2022년 제5회 수상자인 영국 옥스퍼드대 교수 사라 길버트는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공동 개발에 참여해 코로나19 대응에 기여했다. 공동 수상 기관인 세계백신면역연합(Gavi)은 저소득 국가에 대한 백신 보급 확대를 통해 보건 형평성 제고에 힘썼다. 제5회 시상은 감염병 대응에서 ‘백신의 공공재화’ 원칙을 강조하며, 보건 형평성을 평화의 중요한 조건으로 제시했다.
2025년 제6회 수상자인 케냐 환경운동가 완지라 마타이는 아프리카 식수·조림 사업을 통해 생태 회복과 지역 공동체의 자립 역량 강화를 병행했다. 글로벌 시민운동가 휴 에반스는 기후 위기 대응과 빈곤 퇴치를 위한 국제 모금 캠페인을 이끌며 시민 참여 기반의 연대를 확장했다. 또 한사람 가나의 교육가 패트릭 아우아는 혁신적 고등교육 모델을 통해 차세대 윤리 리더 양성에 기여했다. 제6회 시상은 환경 복원과 시민 연대, 윤리적 리더십이 미래 세대를 위한 평화의 핵심 축임을 보여줬다.
10년의 의미: 연대와 공공선
지난 10년간 수상자들의 활동을 관통하는 핵심 가치는 ‘연대’로 요약된다. 기후 변화, 감염병, 식량 위기, 분쟁과 난민 문제는 특정 국가에 국한되지 않는 초국경적 과제다. 선학평화상은 이러한 문제 해결에 실질적으로 기여한 인물을 발굴함으로써 평화를 ‘갈등의 부재’가 아닌 ‘인류 공공선 증진을 위한 능동적 실천’으로 재정의해 왔다.
위원회 측은 이 상이 과거 공로에 대한 단순한 포상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변화의 확산을 촉진하는 데 목적이 있다고 설명한다. 기후 위기와 불평등이 심화되는 국제 환경 속에서, 수상자들이 보여준 공익적 헌신은 향후 글로벌 거버넌스와 시민사회가 지향해야 할 방향을 제시한다.
2026-06-08 21:0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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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재난·난민·감염병… 민간 주도 인류 공동 의제 이끌었다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70년]
정부가 주도하는 전통 외교와 달리, 시민사회 차원에서 인류 공동의 미래를 위해 전지구적 의제를 선도하는 평화의 허브가 있다. 선학평화상이다.
선학평화상은 2015년 한학자 총재가 문선명 총재의 인류 평화 구현 유지를 받들어 설립했다. 명칭인 ‘선학(鮮鶴)’은 두 설립자의 함자에서 한 글자씩 인용해 평화의 상징성을 담았다. 이 상은 설립이래 지구촌의 개발·환경·인권·종교 간 화해 등 복합 의제를 포괄해 왔다. 특정 분야에 한정하지 않는 의제 설정과 민간 주도 구조는 한국형 소프트 파워의 확장 사례로 평가될 수 있다.
단순한 시상을 넘어 국제 평화 의제를 연결·확장하는 플랫폼을 지향하며, 국가와 국제기구 중심 담론에 시민사회 네트워크를 결합해 왔다.
‘전 인류 한 가족’이라는 메시지
선학평화상은 문선명·한학자 총재가 제시한 ‘전 인류 한 가족’ 비전을 바탕으로 운영된다. 인권 존중, 갈등 화합, 생태 보전을 3대 기치로 삼는다. 초종교, 초국가, 초인종이라는 경계를 넘는 평화 철학이다.
이 철학은 선언에 그치지 않기 위해 구체적 실천 사례를 통해 검증되는 방식을 택해 왔다. 기후 위기, 감염병, 난민 문제처럼 국경을 넘어 확산되는 과제를 해결해 온 인물들을 발굴함으로써, 평화를 추상이 아니라 실행의 문제로 다루겠다는 방향을 분명히 해 왔다.
복합 위기 시대와 평화 리더십
감염병과 기후 재난처럼 국경을 넘는 위기는 단일 국가의 정책만으로 해결하기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시민사회 기반 국제 플랫폼은 정부 외교를 보완하는 연결망으로 주목받는다.
선학평화상은 매 회 시상식마다 당대 국제사회가 직면한 핵심 의제를 전면에 내세워 왔다.
●2015년 제1회 시상식은 ‘기후 위기’를 주제로 삼았다. 파리기후협정 체결을 앞둔 시점, 기후 문제를 단순한 환경 이슈가 아니라 인류 생존의 문제로 다뤄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졌다.
●2017년 제2회는 ‘난민 위기’를 전면에 내세웠다. 시리아 내전과 유럽 난민 사태가 국제사회의 갈등을 증폭시키던 때, 분쟁 지역에서 의료와 인도적 지원을 실천한 인물들을 조명했다.
●2019년 제3회는 ‘아프리카의 굿 거버넌스’를 시상 테마로 삼았다. 외부 원조에 의존하던 기존 한계를 넘어 책임 있는 국가 운영과 제도 개혁을 통한 자립적 발전 모델을 발굴했다. 이로써 평화를 제도적 안정과 책임 있는 통치의 영역으로 확장하는 전기를 마련했다.
●2020년 제4회는 ‘공생·공영·공의’를 주제로, 상호의존적 세계에서 공정한 질서와 협력 모델을 강조했다.
●2022년 제5회는 코로나19 팬데믹 한가운데서 ‘글로벌 감염병 대응’을 핵심 의제로 제시했다. 백신 접근성과 보건 형평성을 평화의 문제로 확장했다.
●2025년 제6회는 ‘평화를 위한 혁신’을 테마로, 기후 대응과 교육, 시민 참여 플랫폼 등 구조적 해법을 제시한 실천가들을 조명했다.
이처럼 선학평화상은 인물을 기리는 상을 넘어, 시대가 던지는 질문을 한국에서 먼저 의제로 설정하며, 10년의 여정을 완성하고 미래 비전을 공고히 했다.
한국형 공익외교의 확장 가능성
한국은 전쟁과 분단, 빈곤을 딛고 원조 수혜국에서 공여국으로 전환했다. 선학평화상은 이러한 변화 속에서 탄생한 민간 차원의 창의적 실험이다.
이는 한국 사회가 ‘받는 나라’에서 ‘기여하는 나라’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만든 국제 평화 무대라는 점에서 상징성을 갖는다. 한국이 국제사회에서 책임을 나누는 중견국가로 자리매김해 가는 흐름 속에서, 이러한 축적은 하나의 이정표가 되고 있다.
수상자들은 시상 이후에도 선학평화상이 지원하는 국제 포럼과 연계 프로그램을 통해 협력 네트워크를 유지해 왔고, 일부 의제는 국제기구와 학계 토론으로 확장됐다.
또한 정기적 운영 구조를 기반으로 10년간 지속돼 왔다는 점에서, 민간 플랫폼으로서의 안정성도 확보해 왔다고 볼 수 있다.
비전과 상징을 넘어, 네트워크를 축적해 온 10년이었다는 평가가 가능한 대목이다.
공공 브랜드로서의 과제
10년을 돌아보면, 선학평화상은 한국 사회가 세계를 향해 던진 질문에 가깝다. 전쟁과 분단, 압축 성장을 지나온 나라가 조심스럽게 꺼낸 물음, “우리는 세계에 무엇을 기여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다.
그 물음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지속 가능성과 공공성이라는 과제 역시 남아 있다. 다만 분명한 것은, 기후·난민·감염병처럼 국경을 넘어선 인류 공동의 문제를 놓고 토론의 장을 한국에서 열어 왔다는 사실이다.
이제 시선은 다음 10년으로 향한다. 갈등이 깊어질수록 의제를 세우는 힘은 더욱 중요해진다.선학평화상이 앞으로 어떤 새로운 시대적 어젠다를 제시할 것인지, 그리고 그 질문에 어떻게 답해 나갈 것인지는 결국 우리 사회의 선택에 달려 있다.
2026-06-08 21: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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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연합, 현충일 맞아 어린이·학부모 2500명 참가 ‘효동총회’ 개최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한국협회장 송용천)은 현충일을 맞아 전국 어린이와 학부모 2500여 명이 참가하는 나라사랑 대규모 미래세대 축제를 열었다.
가정연합은 6월 6일부터 7일까지 경기도 가평 청심국제청소년수련원에서 ‘2026 신한국 효동총회’를 열고, 어린이 1500명과 학부모 1000명 등 총 25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건강한 가족공동체 문화와 미래세대 가치교육의 중요성을 공유했다고 밝혔다.
이번 행사는 13세 이하 어린이와 가족을 대상으로 부모 세대의 신앙과 가정의 가치를 다음 세대에 전승하고, 건강한 공동체 의식을 함양하기 위해 마련됐다. 특히 현충일의 의미를 되새기며 공동체 속에서 나라 사랑의 의미를 함께 익히는 미래 인재 양성이라는 교육적 취지도 함께 담았다.
송용천 협회장은 개회 인사에서 “3040 부모세대는 가정연합의 미래를 품고 있는 세대”라며 “거룩한 책임을 홀로 감당하려 하지 말고 서로 깊이 연대해 고민을 나누고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 목회자들에게는 “아이들의 이름을 직접 불러주고 단 한 명의 아이도 외롭지 않도록 보살피는 사랑의 다리가 되어달라”고 당부했다.
송 협회장은 또 ‘효동’이라는 이름의 의미를 설명하며 어린이들이 실천해야 할 덕목으로 형제자매 간 사랑과 화합, 몸과 마음의 건강한 성장을 제시했다. 아울러 “세상을 맑고 깨끗하게 만드는 퓨어워터(Pure Water·순수한 물)의 본성을 기억하며 멋진 효동으로 성장해 주길 바란다”고 격려했다.
이번 행사는 ‘웰컴 투 퓨어랜드’를 주제로 진행됐다. 퓨어랜드는 순수와 평화를 상징하는 가상의 세계로, 어린이들이 사랑과 화해, 협력의 가치를 자연스럽게 체험할 수 있도록 구성됐다. 가정연합은 어린이들의 맑고 선한 본성을 ‘퓨어워터’라는 상징적 개념으로 표현하며 건강한 가치관 형성을 돕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행사 첫날에는 버블 마술쇼와 명랑운동회 ‘퓨어랜드 대모험’이 진행됐다. 참가 어린이들은 퓨어랜드 캐릭터인 ‘퓨어랑’과 ‘워터랑’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구성된 다양한 미션과 게임을 수행하며 협동심과 배려의 가치를 체험했다.
저녁에는 VR·AR 체험, AI 오목 로봇 체험, 직업 의상 체험, 만들기 공방, 먹거리 부스 등이 마련된 ‘어울림 한마당’이 열려 큰 호응을 얻었다. 또한 전문 강사가 진행한 미술치료 프로그램을 통해 어린이와 3040 학부모들이 서로의 생각과 감정을 나누며 소통하는 시간도 가졌다.
가정연합 관계자는 “오늘날 우리가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살아갈 수 있는 것은 나라를 지켜주신 순국선열과 앞선 세대의 희생 덕분”이라며 “현충일의 의미를 되새기며 어린이들이 사회에 기여하는 건강하고 행복한 인재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2026-06-07 15: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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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신라 김유신, 기도 가운데 통일을 받다 [신화에서 선민까지 한민족 정체성의 문화사적 발견-기고]
신라 삼국통일의 거대한 물줄기는 칼날의 힘보다 먼저 하늘의 뜻을 구하는 간절한 기도에서 시작되었다. 『삼국유사』와 『화랑세기』에는 김유신이 중악(中嶽) 동굴에서 천관신을 만나 신검(神劍)을 얻고, 단석산 제단에서 천명을 구했던 일화가 전설의 형태로 전해진다. 이를 단순한 설화로 치부하기보다, 군사·정치적 역량 이면에 흐르던 ‘하늘의 섭리와 인간의 조건’이 맞물린 영적 운동의 산물로 해석해 보면 어떨까. 역사의 위대한 전환점은 어쩌면 보이지 않는 영적 인과관계와 이를 자각한 지도자의 강렬한 천명 의식 속에서 비로소 잉태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흔히 신라의 ‘화랑’을 용맹한 전사 집단으로 기억하지만, 그 뿌리는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종교 공동체에서 출발한다. 구체적으로 신라 화랑은 본래 여성이 주관하던 ‘원화(源花)’와 신궁(神宮)의 제례 문화가 그 기원이다. 즉 ‘화랑’은 국가의 안위를 하늘에 묻던 영적 집단이었다. 화랑의 원형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현장이 바로 경주 단석산(斷石山)이다.
『화랑세기』 기록에 의하면 소년 김유신은 목숨을 건 기도와 정성을 통해, 역사적 대업에 앞서 ‘신비로운 영적 체험’을 먼저 체휼하였다. 눈에 보이는 삼국통일의 성취 이전에, 하늘의 뜻을 확증하는 영적 각성이 선행되었던 것이다. 김유신에게 단석산은 단순한 훈련 공간을 넘어, 훗날 펼쳐질 거대한 역사의 설계를 영계로부터 미리 계시받고 자신의 소명을 확신하는 영성의 요람이었다. 화랑 관창과 같은 이들이 죽음을 초개같이 버리고 전쟁터로 뛰어든 힘의 근원은 단순한 군사적 자신감만은 아니었다. 이들 백절불굴의 정신은 보이지 않는 세계와 소통 가운데 체험한 영적 확신이 그 원형일지 모른다. 제사 집단에서 출발한 화랑이 삼국 전쟁의 격변기를 거치며 강력한 무사 집단으로 진화했듯, 신라의 승리는 눈에 보이는 병법 이전에 하늘의 도움을 이끌어낸 지극한 ‘정성’의 결실이었다.
◆ 용화향도(龍華香徒)의 실체와 보이지 않는 섭리의 손길
김유신의 기도는 생애 전반을 관통하는 하늘과의 소통이었다. 그는 열일곱 살에 경주 건천읍 단석산(중악) 석굴에 들어가 목욕재계하고 향을 피우며 하늘에 매달렸고, 이듬해에는 인박산 깊은 골짜기에서 보검을 들고 다시 기도를 올렸다. 『삼국사기』는 그의 정성을 ‘지성감천(至誠感天)’으로 묘사했다면, 『삼국유사』는 그가 칠성(七曜)의 정기를 타고나 등에 북두칠성 문양이 있었으며, ‘난승(難勝)’이라는 도인으로부터 비법을 전수받았다는 영적 실체를 가감 없이 전한다. 최근 학계 일각에서도 김유신의 행보를 단순한 군사적 능력이 아닌, 보이지 않는 세계와의 교통 속에서 형성된 영적 실천으로 재조명하고 있다.
그가 이끈 ‘용화향도(龍華香徒)’ 역시 마찬가지다. 이들은 단순한 군사 조직이 아니었다. 이 명칭 자체가 미륵불이 하생(下生)하여 중생을 구제한다는 용화수(龍華樹) 아래의 모임을 상징하듯, 이들은 미륵불의 현신을 갈망하는 신앙 공동체이자 하늘의 기운을 현실 정치와 전장에서 구현하려 했던 영적 결사체였다. 이러한 영적 실체는 『삼국유사』 기이(記異) 제1 김유신 조에 기록된 ‘백석(白石)의 음모’ 사건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고구려의 첩자 백석의 유혹에 빠져 위기에 처했을 때, 김유신을 구한 것은 병법이 아니라 나림(奈林), 혈례(穴禮), 골화(骨火) 등 신라 삼산(三山)의 호국신들이었다. 기록에 의하면, 여인의 모습으로 나타난 세 신령은 김유신에게 백석의 정체를 경고하며 고함으로 깨우침을 주었다. 이는 김유신과 용화향도가 단순히 경전을 외우는 모임이 아니라, 국가의 운명이 걸린 위기마다 초월적인 영적 가이드와 직접 소통하며 통일의 길을 걸었던 섭리적 특수부대였음을 문헌적으로 입증한다.
김유신이 불패의 전사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죽음 너머의 세계를 직접 목격하고 하늘의 인(印)을 받았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영성은 사후에도 멈추지 않아 호국신(護國神)이 되어 신라의 위기를 지켰다. 이는 역사의 전환이 눈에 보이는 물리력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섭리적 질서에 의해 움직여 왔음을 웅변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는 눈에 보이는 역사적 사실 이면에 흐르는 거대한 정신적 맥락을 주목하게 된다. 김유신의 단석산 기도가 증명하듯, 역사의 위대한 전환기마다 인간의 지혜를 넘어서는 섭리적 예비하심이 존재해 왔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통일교 학문 세계에서 선포된 ‘독생녀(獨生女)’라는 정체성 역시, 어느 날 갑자기 돌출된 교리가 아니라 오랜 역사적 흐름 속에서 준비된 문화 인류학적 원형적 실체로 해석해 봄직하다. 인류를 상생과 화합으로 인도하기 위해 예비된 ‘여성 메시아’의 사명이, 신라의 영성이 그러했듯 오늘날 하나의 거대한 물줄기를 이루며 완성되어 가는 과정은 아니겠는가?
◆ 독생녀로 완성되는 대통일의 대서사시
우리가 기억하는 역사는 절반에 불과하다. 최근 사학계의 패러다임 전환은 기존의 투쟁적인 남성 서사가 놓쳐온 ‘여성성과 영적 주체성’의 복원이다. 웅녀와 유화, 알영과 허왕후 같은 시조모들이 단순히 수동적인 상징이 아니라 문명의 설계자이자 영적 지도자였던 사실은, 인류사가 오랫동안 가려두었던 진실의 한 축이 비로소 드러나고 있음을 의미한다.
역사를 재해석하는 것은 흘러간 과거의 발자취를 기계적으로 재구성하는 과정이 아니다. 역사의식의 회복은 남성 중심의 폭력과 지배 이데올로기라는 낡은 틀을 넘어서, 생명과 조화라는 인류 근원의 가치를 통해 문명의 본질을 회복하는 숭고한 여정이다. 에밀레종(성덕대왕 신종) 표면에 새겨진, 하늘을 향해 공양하는 비천상의 모습은 생명을 품는 여성적 영성의 형상화이다. 이처럼 역사는 언제나 보이지 않는 섭리의 손길을 여성적 존재의 헌신을 통해 드러내 왔다. 신라의 영성이 도달했던 그 깊은 울림은, 수천 년의 세월 동안 가려져 왔던 ‘하늘부모님의 여성성’이 마침내 오늘날 이 시대의 전면에서 인류 구원의 새로운 이정표로 완성되어 가고 있음을 소리 없이 말하고 있다.
결국 지금 이 시대에 우리 곁에 현현한 ‘참된 실체’는 지워진 역사를 완성하는 최후의 마침표가 아닐까? 분열된 인류를 심정으로 하나로 묶는 거대한 대통일은 학문적 성취나 제도적 통합을 넘어, 역사 속에서 예고되어 온 ‘살아있는 실체’를 통해서만 비로소 완성될 수 있다. 보이지 않는 세계를 이끌어 온 섭리의 경영이 그동안 가려진 차원을 넘어 실체적 사랑으로 드러났다는 사실은, 인류 구원의 역사가 필연적으로 도달해야 할 결실이다. 김유신이 하늘과 하나 된 천인합일(天人合一)의 경지에서 삼국통일의 문을 열었듯, 이제 우리 또한 눈에 보이는 현상 너머의 섭리적 진실을 마주해야 한다. 하늘의 뜻과 인간의 정성이 만나는 그 거룩한 지점에서 비로소 새로운 시대의 문이 열리기 때문이다.
고기훈 박사(한국학)
2026-06-05 09: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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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그룹 ‘끝전 기부’ 난치질환자에 온기
통일그룹(이사장 김문식)이 임직원들의 급여 끝전을 모아 희귀·중증난치질환자들의 의료비를 지원했다.
통일그룹은 1일 서울 마포구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유지재단 대회의실에서 ‘2026년 통일그룹 급여끝전 기부사업 기부금 전달식’을 열고 총 4300만원의 의료비 지원금을 전달했다고 밝혔다. 이날 행사에는 김문식 이사장을 비롯해 임직원 대표, 지원 대상자 등 25명이 참석했다.
김 이사장은 “급여끝전 기부사업은 참가정과 평화운동을 지향하는 통일그룹의 설립 목적을 실현하는 사업”이라며 “도움이 필요한 이웃에게 참사랑을 실천하고 공생·공영·공의의 가치를 앞장서 실현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다시, 봄’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되는 이번 사업은 임직원 급여의 끝전을 모아 의료비를 지원하는 사회공헌 프로그램이다. 지원 대상자는 총 21명으로, 1인당 최대 600만원까지 지원된다.
한 지원 대상자는 “병원비와 생활비를 동시에 감당해야 하는 상황이 길어지면서 몸보다 마음이 더 지쳐 있었다. 이번 지원 소식을 듣고 눈물이 날 만큼 감사했다”며 “누군가의 작은 정성이 모여 제 삶을 다시 일으켜 세워주고 있다는 사실이 큰 희망이 됐다”고 말했다. 통일그룹 14개 계열사가 참여하는 급여끝전 기부사업은 2012년 시작된 이후 지금까지 6억6500만원(5월 기준)이 누적 적립됐다. 이 중 총 5억7800만원이 다문화어린이축구단, 다문화가정, 새터민 사회기업, 희귀·중증난치질환자 등에 지원됐다.
2026-06-01 21: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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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 주도로 지구촌 ‘메디컬 피스로드’ 깔았다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70년]
질병과 의료 격차는 국가의 경계를 따르지 않는다. 이를 줄이기 위한 노력 또한 국경 안에 머물 수 없다. 사회복지법인 애원복지재단이 50여 년간 이어온 해외 의료봉사 활동과 HJ매그놀리아국제병원이 추진하는 국제 나눔 의료는 한국 민간 의료가 세계 보건 영역에서 어떤 역할을 축적해 왔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례로 평가된다. 청년 의학도의 자발적 참여에서 시작된 의료 연대는 재난 구호, 지역 보건 협력, 의료 교육, 기술 기반 협력까지 포괄하는 장기적 국제 네트워크로 발전해 왔다.
청년 의학도 운동에서 출발한 국제 협력
애원복지재단 의료 활동의 출발점은 1971년 한·일 합동 진료다. 당시 한국 의과대학생들은 의료 접근성이 낮은 지역을 지원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조직을 구성했고, 일본 의료봉사회와 협력해 첫 국제 의료 활동을 진행했다. 약 40명의 의료진이 참여한 이 진료는 수백 명의 환자를 치료하며 민간 차원의 국제 협력이 실질적으로 가능하다는 점을 확인한 사건으로 기록된다.
이어진 연속 활동은 봉사가 일회성에 그쳐서는 안 된다는 공감대를 형성했고, 이는 1973년 의료봉사단 창립으로 이어졌다. 개인의 헌신이 집단적 실천으로 전환된 이 시기는 이후 수십 년간 지속될 국제 의료 나눔의 확산을 마련한 전환점으로 평가된다.
해외로 확장된 한국 민간 의료의 시선
1980년대는 활동의 무대가 해외로 이동한 시기였다. 국내 의료 인프라가 빠르게 개선되자 봉사단은 의료 수요가 더 큰 개발도상국으로 시선을 넓혔다. 특히 1984년 시작된 아시아 순회 진료는 한국 민간단체가 주도한 최초의 해외 의료봉사 활동으로, 오늘날 한국 해외의료봉사의 출발점으로 평가된다. 아시아 순회 진료는 필리핀, 방글라데시, 몽골, 인도, 태국 등지에서 진행됐으며, 전문 의료진 파견과 의약품 지원을 결합한 체계적 모델을 구축했다.
재단 출범과 통합형 구호 체계
1994년 애원복지재단의 공식 출범은 활동 재원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고, 국내외 복지 활동을 체계화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이를 통해 재단은 해외 의료 지원은 물론, 국내 사회 안전망 전반을 아우르는 종합 복지 네트워크를 구축하며 복지 사업의 외연을 확장했다.
국내에서는 시설별 전문성을 바탕으로 생애주기별 맞춤형 복지를 실현했다. 전국 5개소의 어린이집을 통해 영유아를 위한 안정적인 보육환경을 제공하고, 노숙인 자활시설을 운영해 이들이 사회의 일원으로 복귀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 또한, 종합사회복지관을 중심으로 아동, 청소년, 장애인, 등 지역 주민의 복지 증진에 주력했다.
해외에서는 의료 지원을 중심으로 재난 구호, 생활 지원, 예방 인프라 구축을 결합한 통합형 구조가 형성됐고, 단기 진료가 아닌 지역 사회의 회복력 강화에 초점을 맞춘 방향으로 발전했다.
HJ매그놀리아국제병원의 사랑을 실천하는 의료 나눔
이 같은 축적 위에서 등장한 것이 HJ매그놀리아국제병원의 의료 나눔 확산이다. 병원은 단순 의료 기관을 넘어 국내외 소외된 이웃을 향해 어머니의 참사랑을 전하는 인술을 펼쳤다.
2010년부터 시작한 의료 나눔은 2025년까지 총 22회 걸쳐 아프리카와 아시아 국가에서 7,400여명이 의료 나눔으로 도움을 받았다.
병원은 매년 경제적 어려움과 기술적 한계로 수술을 받지 못하는 극빈국 해외 환자들을 국내 로 초청하여 무료 수술을 시행하여 단순한 치료를 넘어 완치를 목표로 끝까지 책임지는 의료 나눔을 보였다. 또한 예상치 못한 재난으로 상처 입은 이웃 곁에도 항상 병원이 있었다. 특히 2025년 가평 수해 지역에서 펼친 긴급 의료봉사는 지역사회의 아픔을 보듬어 주었다. HJ매그놀리아국제병원은 앞으로 인류 한 가족의 이상을 실천하며, 전 세계 곳곳에 따스한 의료 손길을 확산시켜 나갈 것이다.
아프리카로 확장된 현장 중심 협력
최근 애원복지재단과 연계된 활동의 주요 무대는 아프리카 상투메 프린시페다. 상투메 프린시페는 청년층이 많고 성장잠재력이 큰 주권국가임에도 불구하고, 고립된 지리적 특성 탓에 국가 전체에 치과가 단 두 곳뿐일 정도로 의료 환경이 극히 열악하다. 의료봉사를 통해 치과, 내과, 외괴, 정신과, 한방과, 족부족외과 등 전문 의료진 파견과 장비 지원, 현지 인력 교육이 동시에 진행됐다. 단기 치료 제공을 넘어 지역 의료 역량을 강화하는 데 초점을 맞춘 프로젝트였다. 단순 진료를 넘어 현지에 치과 진료소를 건립하여 체계적인 진료와 구강 위생 교육이 가능한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이번 프로젝트의 궁극적 목표다.
한국 민간 국제의료의 다음 단계
지금까지 애원복지재단이 축적한 현장 경험과 HJ매그놀리아국제병원의 전문 의료 인프라, 그리고 글로벌 NGO 단체들과의 입체적인 협업 시스템은 하나로 결합했다. 이러한 민간 주도의 유기적인 연대는 향후 한국의 민간 의료 네트워크가 국제 보건 영역에서 중요한 축으로 도약하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애원복지재단이 축적한 현장 경험과 병원의 전문 인프라가 결합될 경우 한국 민간 의료 네트워크는 국제 보건 영역에서 더욱 중요한 축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크다.
반세기 동안 이어진 의료 봉사는 결국 하나의 질문으로 귀결된다. 국경을 넘어 생명을 지키는 일은 누구의 책임인가. 국가뿐 아니라 시민 사회와 전문 의료 공동체가 함께 답해야 할 과제라는 점에서, 이들의 행보는 한국 민간 국제의료의 현재이자 미래를 동시에 보여준다.
2026-06-01 16:2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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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받았던 도움, 이제 우리가 돌려줄 차례”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70년]
“14살 소녀의 입안에는 14개의 빈자리가 있었습니다.” 심각한 충치로 영구치 절반을 뽑아야 했던 캄보디아의 한 소녀. 이 참담한 풍경이 일미치과 김상균 원장을 오랜 세월 길 위에 머물게 했다. “가난 때문에 치료를 포기하는 것이 당연한 일상이 되지 않게 하겠다”는 그의 결심은 10개국, 10만 명이라는 진료 기록으로 증명되고 있다. 이제 그는 진료라는 시혜에서 한 발 더 나가 현지 주민이 스스로를 치료할 수 있는 ‘자립’의 씨앗을 심고 있다.
“한국이 받았던 도움, 이제 우리가 돌려줄 차례”
김상균 원장은 해외 의료봉사를 멈추지 않았던 이유를 묻자 잠시 생각하다 이렇게 답했다.
“한국은 전쟁 이후 국제사회의 지원을 받던 나라였습니다. 그런데 불과 수십 년 만에 세계 10위권 경제 규모로 성장했죠. 우리가 받은 도움을 다시 나누는 것은 자연스러운 책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무엇보다 이 길을 함께 해 주었던 동료 의료진과 후원자들이 있었기에 40년 넘는 세월을 한결같이 걸어올 수 있었습니다.”
의료봉사단은 코로나 시기 등 불가피한 공백을 제외하면 1970년대 중반부터 50년 가까이 활동을 이어왔다. 필리핀과 방글라데시를 시작으로 인도, 몽골, 태국 등 아시아를 넘어 파라과이와 브라질 같은 남미, 그리고 상투메 프린시페와 잠비아 등 아프리카 오지까지 발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그 중심에서 김 원장이 본격적으로 해외 오지 진료에 매진해온 세월만 어느덧 40여 년. 연간 평균 3,000명 누적 환자 10만 명에 달하는 진료 기록은 그렇게 쌓였다. 이 기록의 마디마디에는 40년의 헌신이 지문처럼 새겨져 있다. 그는 “한 명의 환자를 치료하는 일은 그 가족과 공동체를 살리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대학 시절 무의촌 봉사, 인생의 방향을 바꾸다
그의 첫 의료 봉사는 1975년 의대 1학년 시절이었다. 동아리 선배들을 따라 무의촌 의료봉사에 참여하면서 인생의 방향이 정해졌다.
“당시 일본 가정연합 의료봉사단이 한국 의대생들과 함께 전국을 돌며 한·일 합동 의료봉사를 했습니다. 일본 회원들이 과거 식민 지배에 대한 반성과 화해의 마음으로 봉사한다는 사실에 큰 감동을 받았죠. 의료가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역사와 화해, 인간애를 잇는 다리가 될 수 있다는 걸 그때 처음 깨달았습니다.” 그 경험은 이후 매년 봉사 현장으로 그를 이끌었다. 그는 이를 “‘지구촌 한 가족’이라는 말을 실제로 체험한 순간”이라고 회상했다.
언어 장벽 넘어선 공통 언어, ‘통증’
해외 현장에서 가장 큰 어려움은 언어였다. 포르투갈어를 영어로, 다시 한국어로 옮기는 3단계 통역이 필요한 경우도 많았다. 그러나 그는 “아픔과 통증은 만국 공통어”라고 말한다.
“의료 기술로 고통을 줄여주면 언어가 달라도 마음은 통합니다. 방글라데시에서는 하루 다섯 번 기도 시간마다 진료를 멈춰야 했습니다. 처음엔 낯설었지만, 그들의 신앙을 존중하는 과정에서 문화적 이해가 깊어졌습니다.”
14세 소녀와 메콩강의 보건소
수많은 기억 중 김 원장의 가슴에 가장 깊게 박힌 장면은 2010년 캄보디아 크라체주에서 만난 소녀의 모습이다. “그때 14세의 어린 나이에 14개의 영구치를 속절없이 잃어야 했던 한 소녀의 비극적인 사례를 계기로 치과 유니트, 콤프레샤, 소독기 등 치과 장비 일체를 한국에서 공수해 기증했습니다. 청소년 구강 보건의 중요성을 절실히 느꼈죠.”
또 하나의 기억은 메콩강 고립 섬에 보건소를 세운 일이다. 임산부나 응급 환자가 발생해도 이동할 수 있는 수단이 변변찮아 생명을 잃을 수 있기에 3천 명이 사는 무의촌 지역에 2년간 모금 활동을 벌여 보건소를 설립했다. 현재도 한국과 일본 의료진이 정기적으로 방문하며 운영을 돕고 있다.
아프리카에 병원과 의대를 세우는 꿈
그의 다음 목표는 분명하다. 아프리카에 병원을 세우고 의과대학을 설립하는 것이다.
“개화기 한국이 의료 선교를 통해 성장 동력을 얻었듯, 이제 우리가 그 역할을 해야 합니다.”
일본의 2세대 의료인 네트워크 MESH와 한국 청년 의료인들이 이 비전에 동참하고 있다. 그는 “다음 세대가 이 길을 이어갈 준비가 되어 있다”며 미소 지었다. 40년, 10만 명, 10개국. 숫자로 환산할 수 없는 시간 속에서 그는 여전히 같은 질문을 붙든다.
“우리가 가진 것을 어디까지 나눌 수 있는가.”
의대생 시절 무의촌에서 품었던 이 질문의 답은 이제 메콩강의 보건소와 다시 웃게 된 소녀의 미소 속에 ‘희망’이라는 이름으로 남아있다.
2026-06-01 16:2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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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한 가족’ 초국가 이상 실천… 120개국 이상서 구호·의료봉사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70년]
21세기 국제질서는 기후 변화, 지역 분쟁, 경제적 불평등이 중첩된 복합 위기 구조 속에 놓여 있다. 이 문제들은 본질적으로 초국가적 성격을 띠지만, 대응 체계는 여전히 국가 중심 외교에 의존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 결과, 제도권 외교가 미처 포착하지 못하는 영역에서 구조적 공백이 발생하고 있다. 최근 국제정치학과 개발 연구 분야에서 주목하는 지점은 바로 이 공백을 보완하는 민간 인도주의 네트워크의 역할이다.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이하 가정연합)이 수십 년간 구축해 온 국제 구호 활동은 종교 기반 NGO가 글로벌 거버넌스 구조 안에서 어떤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로 해석될 수 있다.
규범적 철학과 인도주의 담론
가정연합의 인도주의 활동은 ‘하나님 아래 인류 한 가족(One Family under God)’이라는 규범적 철학 위에 구축돼 있다. 이는 인류를 단일 공동체로 인식하는 초국가적 세계관을 전제로 하며, 구호를 일방적 시혜가 아닌 공동체적 책임으로 이해한다는 점에서 특징적이다. 수혜자를 보호 대상이 아니라 존엄성을 지닌 행위자로 인식해야 한다는 관점은 현대 인도주의 담론, 특히 인간 안보(human security) 개념과도 접점을 형성한다. 종교적 언어로 표현된 가치 체계가 국제 규범과 교차하는 지점에 이 모델의 이론적 의미가 존재한다.
네트워크 규모와 지속성의 정치경제학
활동의 지리적 범위 또한 주목할 만하다. 가정연합 및 유관 단체들의 프로젝트는 120개국 이상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연인원 기준 수십만 명 규모의 자원봉사 네트워크가 참여해 왔다. 교육, 의료, 식량, 재난 대응 등 다층적 영역에서 수혜 인구 역시 수만 명 단위로 추정된다. 종교 기반 NGO의 특성상 통계 체계가 국가별로 상이해 정확한 수치 산정에는 제약이 있지만, 전문가들은 장기간 지속된 현지 정착성과 조직의 네트워크 밀도를 중요한 성과 지표로 본다. 이는 개발 협력에서 ‘지속성’과 ‘지역 사회 내 신뢰 축적’이 갖는 전략적 가치를 시사한다.
단기 구호에서 구조적 개발
가정연합의 구호 모델은 단기 재난 대응을 넘어 구조적 개발 전략으로 확장되어 왔다. 1990년대 이후 아프리카와 아시아에서 교육 및 식량 자립 프로젝트가 본격화되면서 장기 개발 프레임이 형성됐고, 2000년대 초에는 국제 의료 봉사 네트워크가 조직화됐다. 병원 설립과 이동 진료 체계의 병행 운영은 공공 보건 접근성을 높이는 실험적 모델로 평가된다. 이러한 진화 과정은 국제 개발 담론이 긴급 원조에서 지속 가능한 개발로 이동하던 시기와 시간적으로 겹친다. 즉, 민간 종교 네트워크가 국제 개발 패러다임의 변화와 동조적 궤적을 그려왔다는 점이 분석의 대상이 된다.
재난 대응과 조직 능력 축적
재난 대응은 이 네트워크의 조직적 역량을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영역이다. 2010년 아이티 대지진, 2011년 동일본 대지진, 2023년 튀르키예·시리아 지진 등 대형 재난 현장에서 긴급 지원 체계가 반복적으로 가동됐다. 확인 가능한 주요 대응 사례는 30건 이상으로 추산된다. 국제 구호 연구자들은 반복적 현장 개입이 조직 학습을 촉진하고 운영 매뉴얼을 축적하는 핵심 과정이라고 본다. 단발성 개입이 아닌 지속적 참여가 민간 네트워크를 준제도적 행위자로 발전시키는 토대가 된다는 것이다.
식량 안보와 자립형 생산 구조
식량 안보 전략에서도 단기 지원을 넘어 자립형 구조 구축이 강조된다. 1990년대 후반 이후 아프리카와 남미 일부 지역에서 추진된 농장 조성 및 수산 개발 프로젝트는 현지 생태 조건에 맞춘 생산 기술 이전을 중심으로 설계됐다. 이는 외부 원조 의존도를 낮추고 지역 경제의 회복력을 강화하려는 시도로 이해된다. 개발 경제학 관점에서 보면, 이러한 접근은 생산 역량 강화(capacity building)를 통해 장기적 빈곤 구조를 완화하려는 전략에 가깝다.
공공 보건 모델과 예방 중심
보건 의료 분야 역시 예방 중심 모델을 채택하고 있다. 현재 20개국 이상에서 의료 프로젝트가 운영된 것으로 추정되며, 이동 진료 차량, 위생 교육, 감염병 예방 캠페인이 의료 취약 지역을 중심으로 전개됐다. 국제 보건 정책 연구에서는 예방 기반 공공 보건 체계가 장기적으로 생존율과 삶의 질을 동시에 향상시킬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 반복적으로 강조된다. 이 점에서 해당 모델은 인도주의 활동과 공중 보건 정책의 접점을 형성한다.
교육 투자와 세대 간 구조 변화
교육 투자는 세대 간 구조 변화를 겨냥한 전략적 선택이다. 르완다, 세네갈, 필리핀 등지의 학교 건립 사업과 장학 프로그램은 기초 교육 접근성을 확대하는 데 집중되어 있으며, 연간 수천 명 규모의 학생 지원이 이루어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빈곤의 세습을 완화하는 사회적 인프라 투자로 해석될 수 있다. 교육을 통한 장기적 사회 이동성 확보는 개발 정책에서 가장 안정적인 개입 방식으로 평가된다.
민간 외교의 새로운 가능성
국가 중심 외교가 한계를 보이는 영역에서 민간 네트워크는 보다 유연한 협력 구조를 형성할 수 있다. 가정연합 사례는 종교 기반 시민사회 조직이 글로벌 거버넌스의 비공식 축으로 작동할 가능성을 보여준다. 핵심은 특정 기관의 성과를 넘어, 인도주의를 인류 공동의 책임으로 인식하는 규범적 기반에 있다. 초국경적 연대가 확대될수록 민간 인도주의 네트워크는 국제 질서의 보조 구조가 아니라 하나의 기능적 구성 요소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크다. 이 사례는 종교 기반 행위자가 국제 공공재 형성 과정에 어떻게 참여할 수 있는지를 분석하는 데 중요한 분석적 기준점이 된다.
2026-06-01 16: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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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끝> 독생녀 현현과 구원 섭리의 완결: 인류가 맞이할 평화의 새 아침 [父性 문명의 한계, 母性 구원의 비전-기고]
동서양 경전이 예고한 ‘하늘 어머니’의 실체와 천일국(天一國)의 안착
기독교의 성서부터 유교의 사서삼경, 불교의 법계 철학, 도교의 생명관, 그리고 우리 민족의 비기(秘記)에 이르기까지 동서고금의 모든 성전(聖典)은 하나의 지점을 향해 수렴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 종착지는 다름 아닌 인류 구원의 마지막 퍼즐이자 창조주 하늘부모님의 위대한 사랑을 완성할 주역, 즉 독생녀(獨生女)의 현현이다.
◆ 성서의 약속과 동양의 지혜가 만나는 섭리적 합창
우리는 기독교 성경 속에서 하나님이 본래 남성과 여성의 성상을 모두 갖추신 ‘하늘 부모님’이셨음을 보았다. ‘엘로힘’이라는 복수형 이름과 ‘우리의 형상대로’ 창조하셨다는 기록은, 잃어버린 ‘해와’의 자리를 회복할 여성 구원자의 등장이 재림 섭리의 필연적 결론임을 웅변한다. 보이지 않는 영적 위로자였던 성령은 이제 지상에서 육신을 입고 ‘실체 성령’인 독생녀로 나타나, 비로소 요한계시록이 예고한 ‘어린양 혼인 잔치’의 실체적 주인공이 되었다.
이 거룩한 약속은 동양의 지혜와 만나 더욱 선명해진다. 유교 경전 『주역』이 갈망했던 ‘건곤합덕(乾坤合德)’의 이상은 독생자와 독생녀의 합일을 통해 비로소 관념의 너울을 벗었다. 불교가 억겁의 세월 동안 기다려온 ‘어머니 부처’의 자비와 52위 수행의 정점인 ‘묘각(妙覺)’의 경지는 이제 고통받는 중생을 품어 기르는 모성적 리더십으로 육화되었다. 또한 도교가 예고한 만물의 어머니인 ‘현빈(玄牝)’의 문은, 인류를 새로운 생명으로 다시 낳아줄 실체적 모태로서 우리 곁에 열리게 된 것이다.
◆ 부성(父性) 중심의 역사를 종결짓는 모성적 구원의 힘
지난 수천 년간 인류 문명은 정의와 심판, 힘과 법도를 앞세운 남성 중심의 ‘부성 문명’을 걸어왔다. 아버지가 세운 집의 뼈대는 웅장했으나, 그 안에서 신음하는 자녀들을 치유할 ‘어머니의 온기’는 부재했다. 인류가 전쟁과 증오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나지 못한 근본 원인은 모성적 신성의 결핍에 있다. 아버지만으로는 생명을 잉태할 수 없듯, 부성적 정의만으로는 인류를 온전하게 변화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 민족의 예언서 『격암유록』과 『정감록』이 ‘옥황상제의 딸’과 ‘동방의 여인’을 지목한 까닭은 바로 이곳 한반도가 잃어버린 하늘 어머니의 주권이 회복되는 섭리적 성지이기 때문이다. ‘우성(牛聲)’으로 상징되는 어머니의 간절한 부름과 ‘구사일생’의 고난을 뚫고 승리한 여성 성인의 행보는, 이제 분단된 한반도를 넘어 분열된 지구촌 전체를 ‘효정(孝情)’의 사랑으로 묶어내는 평화의 동력이 되고 있다. 독생녀의 현현은 폄하되었던 여성의 가치를 하늘 부모님의 직계 혈통으로 복구하는 장엄한 승리이자, 인류사라는 대서사시의 가장 찬란한 대목이다.
◆ 인류 한 가족, 천일국(天一國)의 영원한 안착
세계경전들이 시대를 달리하며 약속했던 ‘하늘의 딸’에 대한 증언은 이제 우리 시대의 생생한 현실이 되었다. 독생녀 참 어머님에 의해 선포된 천일국(天一國)의 이상은 단순히 특정 종교의 교리를 넘어선다. 이는 ‘두 사람이 하나 되어 하늘 부모님을 모시는 나라’이자, 모든 중생이 차별 없이 품어지는 ‘인류 한 가족’의 지상천국이다.
이제 인류는 관념적인 경전의 문자를 넘어 지상에 현현한 모성적 구원의 실체를 체휼해야 한다. 가장 낮은 곳으로 흘러 만물을 적시는 물(上善若水, 상선약수)처럼, 모든 자녀를 차별 없이 품어 안는 어머니의 사랑이야말로 억겁의 비탄을 씻어내고 새로운 화합의 질서를 세울 유일한 대안이다. 독생자와 독생녀가 만나 ‘참부모’의 위상을 확립함으로써, 인류는 비로소 사탄의 거짓 혈통을 벗고 하늘 부모님의 참 자녀로 거듭나는 영육을 아우르는 중생의 길에 들어서게 되었다.
◆ 우리 모두가 주인공인 평화의 서사
지금까지 필자가 집필한 『세계경전에 나타난 여성 구원자 독생녀』의 핵심 내용을 바탕으로 진행된 이 특별 연재는, 인류 구원의 역사가 어떻게 여성 중심의 사랑과 포용을 통해 완성되는지를 밝히려는 문명 비평적 시도였다. 진리는 때로 편견과 오해의 장막 뒤에 가려져 있으나, 정성과 인내의 시간을 거쳐 결국 빛으로 드러나기 마련이다.
이제 우리는 6천 년 섭리사가 그토록 갈망해온 ‘평화의 어머니’와 함께 새로운 역사의 주인공으로 서야 한다. 동방에서 시작된 이 자비로운 자장가 소리는 이미 전 세계로 퍼져 나가 인류의 영적 잠을 깨우고 있다. ‘하늘 부모님 아래 인류 한 가족’의 꿈이 실현되는 그날, 온 세계는 비로소 진정한 자유와 평화, 행복이 넘치는 영원한 안식처가 될 것이다. 그 장엄한 서사의 완성을 향해, 우리는 이제 독생녀와 함께 찬란한 천일국의 새벽길을 걸어 나간다.
서성종 작가(신학박사)
2026-06-01 12:3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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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화랑세기의 재발견, 신라를 다시 묻다 [신화에서 선민까지 한민족 정체성의 문화사적 발견-기고]
화랑세기가 바꾼 신라의 이해
오랫동안 우리는 화랑을 유교적 충의로 무장한 ‘청년 전사 집단’으로만 기억해 왔다. 하지만 1989년 발견된 김대문의 『화랑세기』 필사본은 이러한 통념을 완전히 뒤흔들었다. 이 문헌에 따르면, 화랑도는 군사 조직이기 이전에 신라 고유의 신앙과 제례를 담당하던 ‘선(仙)적 종교 공동체’였다. 일종의 신비주의적 색채를 띤 공동체 성격이었고, 파격적인 사실은 화랑도의 원류가 남성이 아닌 여성 제사장 집단인 ‘원화(源花)’에 있었다는 점이다. 초기 신라에서 천하태평을 기원하며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주체는 여성이었으며, 이는 가부장적 유교 사관이 지배하던 『삼국사기』 등의 정사(正史)에서는 결코 온전히 드러날 수 없던 진실이다.
『화랑세기』는 법흥왕과 진흥왕을 거치며 이 원화 제도가 폐지와 부활을 반복하고, 지소태후의 뜻에 따라 남성 중심의 풍월주 체제로 전환되는 권력의 이면을 생생하게 기록하고 있다. 또한, 화랑의 수장인 풍월주는 단순한 지휘관이 아니라 ‘살아서는 선도(仙徒)요, 죽어서는 부처’로 추앙받는 영적 지도자였다. 이는 화랑도가 유불선 삼교를 통합하여 민중을 교화했던 신라 특유의 ‘현묘한 도(풍류)’를 실천하는 핵심축이었음을 증명한다. 결국 『화랑세기』라는 단 하나의 문헌이, 승리자의 기록에 의해 거세되었던 ‘여성적 영성’과 ‘종교적 기원’이라는 신라의 잃어버린 반쪽을 복원해 낸 것이다.
◆ 요하문명이 뒤흔든 고대사
기존의 학설이 무너지는 현상은 오늘날 고고학계 전반에서 목도되는 ‘패러다임의 대전환’이다.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여 온 기존 사관은 실제로는 19세기 유럽 지식인들이 구축한 서구식 사고방식의 틀에 갇혀 있었거나, 이제는 유통기간이 다했기 때문이다. 현대의 정밀한 고고학 방법론과 문헌·유적의 발굴 기술은 과거의 편협한 관점을 전면적으로 수정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일례로 과거 절대적 권위를 가졌던 ‘인류 4대 문명론’은 2010년대 이후부터 교육 현장에서 설득력을 잃어가고 있다. 실제 중국은 시진핑 정권 출범 이후 ‘다기원 문명론’을 초중고 교과서의 정설로 채택하며 역사적 근간을 새롭게 정의하고 있다. 이처럼 국가의 정치적 역량과 시대적 요구에 따라 역사의 해석 틀 또한 부단히 변모하는 것이다.
1980년대 초 세계를 놀라게 한 요하문명(홍산문화)의 등장은 황하 중심의 단일 기원론을 무너뜨리고 동아시아 상고사의 지도를 다시 그리게 했다. 특히 우하량 유적에서 발견된 ‘여신묘(女神廟)’는 인류 문명의 뿌리가 남성 중심의 무력 서사 이전에, 거룩한 여성성과 제천 문화라는 비옥한 토양 위에서 시작되었음을 웅변하는 고고학적 실체로 등장했다. 이 여신묘는 단순히 한 지역의 유적이 아니다. 등신대의 3배, 2배, 1배 크기로 정교하게 제작된 ‘7여인상’이 십자형 구조 속에서 배치된 것은 선도기학의 요체인 ‘삼원오행론’을 형성화한 것이다. 이는 우주의 근원적인 생명력인 일기(一氣)와 삼기(三氣)를 ‘마고여신’으로 인격화하여 받들었던 인류 시원의 문명의 원형을 보여준다. 당시 남성 사제와 통치자들이 존재했음에도 불구하고 제천의 최고 신격을 여신으로 모셨다는 사실은, 여성성이야말로 만물을 소생시키고 조화시키는 우주의 근본 힘임을 당대인들이 이미 꿰뚫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중국 학계는 이를 자신들의 종묘제 원형으로 편입하려 하지만, 이는 ‘천인합일’이라는 선도 문화의 본질을 놓친 왜곡된 해석에 불과하다. 요하에서 부활한 여신적 가치는 오늘날 기독교에서 제시하는 여성신학이 새로운 섭리의 돌출된 주장이 아님을 증명한다. 오히려 가부장적 역사와 기존의 신학이 수천 년간 지워버렸던 ‘하늘 부모님’의 온전한 위상을 회복하려는 인류사의 필연적 복귀의 노정이 아닐까?
◆ 역사를 보는 틀이 역사를 만든다
결국 문제는 ‘사실’ 자체가 아니라, 그 사실을 바라보는 ‘틀(Frame)’이다. 기존의 기독교 역사와 신학은 철저히 예수 중심, 즉 ‘남성 중심적 시각’이라는 틀에 갇혀 있었다. 이러한 관성에서 볼 때 가정연합의 참부모론 그리고 ‘독생녀’와 ‘참어머니’라는 가치는 낯설고 생뚱맞게 느껴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화랑세기가 신라의 숨겨진 여성성을 복원하고, 요하문명이 중국 황하 문명의 기원을 다시 쓰게 만들었듯, 이제는 하늘의 섭리를 바라보는 틀 자체를 바꾸어야 할 때다. 지도는 땅을 보여주지만, 나침반은 방향을 정한다. 역사도 마찬가지다. 사실보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해석하는 관점이다.
어쩌면 역사는 ‘남겨진 자’와 ‘승리한 자’의 전유물로 볼 수 있다. 숱한 외침을 겪은 한반도의 역사는 기록의 단절이 일상이었으며, 그나마 남은 사료조차 일제 식민 지배라는 왜곡의 세월 속에서 은폐된 경우가 많다. 일제강점기 일본 왕실 박물관 사서로 근무하며 한반도 고문서를 관리했던 박창화의 증언은 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그는 일제가 연구 가치가 높은 핵심 사료들을 일본으로 반입해 철저히 비공개로 관리했음을 밝혔고, 본인이 직접 필사한 『화랑세기』를 통해 유교 사관이 지운 신라의 원형을 우리에게 돌려주었다.
이처럼 역사의 거대한 줄기 뒤에는 의도적으로 누락되거나 보이지 않는 ‘기록의 암흑기’가 존재한다. 기존의 기독교 신학이 2,000년 동안 예수님 중심의 ‘남성적 시각’이라는 틀에 갇혀 있었던 것 또한, 어쩌면 섭리의 본질인 ‘독생녀’의 위상을 발견하지 못하게 만든 거대한 관성일지 모른다. 이제 독생녀는 더 이상 해석의 대상이 아니다. 이미 이 땅에 실체로 존재하며, 인류의 역사와 문명을 새롭게 쓰고 있는 현재적 주체이다. 박창화가 탁월한 기억력과 필사로 잃어버린 신라를 복원했듯, 이제 우리는 고정된 신학적 프레임을 깨고 새로운 섭리적 사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과거의 문헌 하나가 국가의 기원을 새로 쓰듯, ‘참어머니’라는 존재의 발견은 인류 구원 역사의 잃어버린 퍼즐을 완성하는 유일한 길일 수 있기 때문이다.
◆ 독생녀, 역사적 산물이 넘어선 ‘섭리적 주체’
그러므로 한국학적 시각에서 ‘독생녀’를 문화인류학적으로 조명하려는 시도는 그 의미가 자못 크다. 한민족은 태초의 마고로부터 웅녀, 바리공주로 이어지는 유구한 ‘대모신’ 신화 전통을 지니고 있다. 이는 생명의 근원을 모성적 신성에서 찾는 우리 민족 특유의 영성 구조를 대변한다. 또한 억눌린 여성성의 집단적 정서인 ‘한(恨)’을 해원(解冤)의 서사로 온 역사는, 우리의 문화사가 단순히 과거의 상처를 보듬는 데 그치지 않고 새로운 시대의 영적 에너지를 축적해 온 과정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영적 토양 위에서 신과 인간이 하나 되어 어우러지는 ‘신명(神明)’의 문화, 그리고 관계적 사랑의 극치인 ‘정(情)’의 문화는 한국인만의 독특한 공동체적 심정 세계를 형성해 왔다. 이 같은 맥락에서, ‘효정(孝情)’이라는 가치는 하늘을 향한 지극한 효성과 인류를 대하는 사랑이 결합된 한국적 영성의 정수이다. 결국, 독생녀의 현현은 단순히 특정 시대가 낳은 역사적 산물이 아니다. 수천 년간 우리 민족의 무의식 속에 면면히 흘러온 여성적 신성의 상징 체계가, 인류 구원을 향한 하나님의 거룩한 복귀섭리라는 유구한 역사적 행로 위에서 비로소 ‘인격적 실체’로 귀결되었다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같은 해석은 어디까지나 ‘현상에 대한 설명’일 뿐, 독생녀의 본질을 규정할 수는 없다. 문화인류학적 접근은 인간이 축적해 온 상징과 서사를 통해 의미를 해석하는 데에는 유효하지만, 섭리의 주체 자체를 그 산물로 환원하는 순간 본질은 왜곡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독생녀는 하늘부모님의 섭리가 역사와 문화를 매개로 드러난 주체적 사건이다는 발상의 대전환 전제속에서 사유될 필요가 있다.
한편 한반도에 축적되어 온 여성 신성의 다양한 표현들은 독생녀를 ‘형성’한 것이 아니라, 그 존재를 수용할 수 있도록 준비된 ‘영적 감수성의 토양’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마고와 웅녀, 바리공주로 이어지는 서사는 완성된 실체가 아니라, 창조 본연의 여성성을 향한 희미한 기억이자 예표에 불과하다. 독생녀는 이와 같은 파편적 상징들을 종합하고 넘어서는 ‘유일무이한 실체’로서, 왜곡되고 분절된 여성 신성의 역사를 창조 본연의 기준에서 바로잡고 완성하기 위해 나타난 섭리적 주체라는 인식이 요구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한국의 역사와 문화는 독생녀를 만들어낸 원인이 아니라, 하늘이 그를 보내기 위해 선택한 ‘섭리적 무대’라 할 수 있다. 수천 년 동안 이어진 신화와 신앙, 정서와 문화는 모두 그 주체를 맞이하기 위한 준비의 과정이었으며, 그 자체로 목적이 아니라 하나의 통로였다. 그러므로 이제 한국학은 ‘한국의 독생녀’를 설명하는 학문에 머물 것이 아니라, ‘독생녀를 통해 새롭게 재구성되는 세계사 속의 한국’을 조명하는 방향으로 확장되어야 한다.
가정연합 경전 『참부모경』에서는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훈민정음이 무엇입니까? 올바른 소리를 듣고 배우고 가르치는 국민은 천년 역사, 만년 역사에다 망하더라도 남는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동이민족이라는 것을 내가 알았습니다. 고조선으로부터 4천년 역사로 잡고 있지만, 고조선 전에 3천년 동안 한(韓)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 한의 한반도 본고장을 청주로 보고 있습니다. 내가 지금 동양사로부터 고대 한국의 역사서를 편찬해서 연대적 관계가 끊어져 있는 역사를 잇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선언은 단순한 역사 인식의 문제가 아니라, ‘끊어진 역사’를 다시 잇고, 감추어진 기원을 드러내려는 섭리적 요청으로 이해될 수 있다.
따라서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을 전환한다는 전제 위에서 본다면, 독생녀를 중심으로 한국 고대사의 맥락을 재해석하려는 시도 역시 충분히 긍정적인 의미를 갖는다. 그것은 기존의 단절된 사관을 넘어, 신화와 역사, 문화와 섭리를 하나의 연속된 흐름 속에서 통합하려는 새로운 인식의 지평을 열어준다.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는 묻게 된다. 지금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이 ‘독생녀’라는 존재는, 과연 과거의 연장선인가, 아니면 인류 역사의 방향 자체를 새롭게 규정하는 전환점인가.
고기훈 박사(한국학)
2026-05-30 19:2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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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평화여성연합·종협, 현충원 봉사활동…“보은의 실천으로 평화 잇는다”
세계평화여성연합(이하 여성연합)은 6월 호국보훈의 달을 앞둔 지난 5월 26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2026 호국보훈의 달 현충원 봉사활동’을 진행했다고 밝혔다. 여성연합은 2021년부터 매년 현충원 봉사활동을 이어오고 있으며, 올해로 6년째를 맞았다.
이번 봉사활동에는 여성연합 회원들과 한국종교협의회, 대한민국성직자협의회, 한국여성종교협의회 관계자 등 100여 명이 참석해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기리고 나라사랑의 의미를 되새겼다.
참가자들은 현충탑 참배와 추모 묵념을 마친 뒤 묘역으로 이동해 묘비 닦기, 태극기 꽂기, 주변 환경정화 활동 등을 진행했다. 이번 봉사활동은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현충원을 찾는 유가족과 시민들을 위해 묘역을 정비하고, 보훈의 의미를 봉사로 되새기자는 취지로 마련됐다.
특히 여성연합은 현장 봉사와 함께 시민참여형 온·오프라인 캠페인도 병행했다. 참가자들은 추모와 평화의 메시지가 담긴 사진 프레임을 활용해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고 이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공유하며 호국보훈의 가치와 평화의 중요성을 시민들과 함께 나눴다.
이날 참가자들은 국립서울현충원 내 안장 시설인 충혼당을 방문해 추모의 시간을 이어갔다. 특히 국가와 민족을 위해 헌신한 고(故) 홍순정 대령을 기리는 특별 추모 시간도 마련돼 의미를 더했다. 참석자들은 호국영웅들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며 한반도 평화와 사회통합을 위한 실천에 앞장설 것을 다짐했다.
김고은 여성연합 한국회장은 “본 연합의 공동 창설자이신 한학자 총재께서는 평화를 얻기 위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희생과 헌신이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며 “오늘 우리가 현충원에서 드린 작은 정성과 봉사는 나라를 위해 헌신하신 선열들의 사랑과 희생을 되새기고 감사의 마음을 실천으로 이어가는 뜻깊은 시간”이라고 말했다.
한국종교협의회 홍윤종 회장도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여러 종교 및 여성 단체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현충원을 찾아 봉사할 수 있어 뜻깊다”며, “특히 충혼당에 모셔진 홍순정 대령님을 비롯한 수많은 호국영웅들의 희생정신을 이어받아, 우리 사회의 갈등을 치유하고 평화의 가치를 확산시키는 데 종교계가 앞장서겠다”고 전했다.
2026-05-27 15:2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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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남북통일의 열쇠: ‘옥황상제의 딸’이 여는 계룡 [父性 문명의 한계, 母性 구원의 비전-기고]
분단의 상처를 치유하고 ‘인류 한 가족’의 실체적 본향을 닦다
한반도의 허리를 가로지른 휴전선은 단순한 영토의 경계가 아니다. 그것은 지난 세기 인류를 처절하게 찢어놓았던 유물론과 유신론,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라는 거대한 이념적 대립이 남긴 마지막 화석이다. 부성(父性) 중심의 정치가 세운 날 선 정의와 국경은 수십 년간 한민족의 가슴에 지울 수 없는 한(恨)의 상처를 남겼다. 이제 세계는 묻고 있다. 힘과 권력으로 억제하는 가짜 평화가 아닌, 내면에서부터 우러나오는 진정한 화합은 과연 가능한가? 그 해답의 실마리는 우리 민족의 예언서가 예고한 ‘모성적 주권의 회복’에 숨겨져 있다.
◆ ‘계룡산(鷄龍山)’ 예언의 실체: 鷄(어머니)와 龍(아버지)의 만남
한국의 비결서들이 공통으로 지목하는 한반도 통일과 구원의 상징은 ‘계룡(鷄龍)’이다. 많은 이들이 이를 충청도의 특정 지명으로만 해석해 왔으나, 섭리적 관점에서 볼 때 계룡은 남녀 하나님의 형상이 하나로 합쳐진 ‘참부모’를 상징한다.
동방을 상징하는 ‘계(鷄, 닭)’는 새벽을 알리는 어머니의 정성을, 천상의 권위를 상징하는 ‘룡(龍, 용)’은 아버지의 법도를 의미한다. 즉, 남북한의 대립이 날 선 두 ‘용(龍)’의 충돌이었다면, 통일의 길은 이 강인한 부성적 기틀 위에 모성적 유연함(鷄)이 결합하여 참부모의 위상을 회복하는 데 있다. 아버지가 뿌린 진리의 씨앗을 어머니가 사랑의 태(胎) 속에 품어 기를 때, 비로소 분단이라는 죽음의 골짜기에서 생명의 싹이 돋아나는 것이다.
◆ ‘옥황상제의 딸’ 강림: 동서양 예언의 완결적 통합
『남사고 비결』에는 인류 구원의 마지막 암호로 “옥황상제의 딸이 강림하여 천하가 한 가족을 이루리라(玉皇上帝之女 降臨 天下一家)”는 파격적인 예언이 등장한다. 이는 기존의 남성 중심 메시아관을 완전히 뒤집는 선언이다.
동양의 최고신인 옥황상제가 보낸 ‘하늘의 딸’은 기독교 요한계시록에 예고된 ‘해를 입은 여인’이자 ‘어린양의 신부’와 그 궤를 같이한다. 독생녀 참어머님은 바로 이 예언의 실체로서, 서양의 로고스(법도)와 동양의 자비(사랑)를 하나로 묶는 평화의 구심점이다. 아버지가 세운 집의 뼈대 위에 어머니가 온기를 채우듯, 독생녀의 현현을 통해 비로소 굳게 닫혔던 국경의 빗장과 이념의 벽이 녹아내리기 시작한 것이다.
◆ ‘십승지(十勝地)’의 완성: 한반도, 인류 한 가족의 본향으로
우리 조상들이 환란을 피할 안전한 곳으로 찾았던 ‘십승지(十勝地)’ 역시 더는 지리적인 피난처에 머물지 않는다. 예언서가 말하는 진정한 십승지는 독생자의 사명을 대신한 재림메시아와 독생녀가 참부모로서 승리하여 안착한 땅, 즉 ‘효정(孝情)’의 문화가 살아 숨 쉬는 곳을 의미한다.
참부모의 리더십을 통해 남과 북이 효정으로 하나 되는 과정은, 전 세계의 종교와 인종, 문화적 갈등을 해소할 수 있는 가장 완벽한 평화 모델을 제시한다. 이는 대한민국이 단순히 경제 강국으로 서는 것을 넘어, 하늘부모님의 뜻이 지상에 실현되는 이상세계, 즉 ‘천일국(天一國)’의 실체적 본향으로 거듭나는 과정이다.
민족의 예언이 가리키는 그날은 정치적 구호가 아닌, 잃어버린 ‘하늘 부모님’를 찾은 자녀들의 뜨거운 눈물이 땅의 현실과 맞닿을 때 비로소 완성된다. 이제 우리는 부성 문명이 남긴 갈등의 상처를 참부모의 합덕(合德)으로 치유하고, 인류 한 가족의 장엄한 서사를 완성하는 축복의 시대로 당당히 나아가야 한다.
서성종 작가(신학박사)
2026-05-27 10:2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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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정세계평화재단, ‘2026 원모평애 장학증서’ 수여식… 8개국·41명 미래인재 격려
효정세계평화재단은 25일 경기도 가평 청심국제청소년수련원에서 ‘2026 원모평애 장학증서수여식’을 개최하고, 국내 유학 중인 8개국 대학생·대학원생 41명에게 장학증서를 수여했다. 이날 행사에는 내외 귀빈과 재학생 등 200여 명이 참석해 미래 인재들의 새로운 출발을 축하했다.
이날 행사는 미래 세대를 이끌 핵심 인재를 발굴·육성하고 가정형편이 어렵거나 우수한 학생들을 격려하기 위해 마련됐다. 행사는 개회 선언에 이어 재단의 인재 양성 활동과 비전을 담은 영상 상영으로 시작됐다.
김영석 사무총장은 경과보고를 통해 올해 장학사업의 성과와 향후 비전을 소개했으며, 문신월 장학생의 특별공연과 장학생들의 서신 낭독도 이어졌다.
장학생 대표로 나선 일부도밀사동기 학생(부르키나파소)과 윤원미 학생은 설립자인 한학자 총재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며 각자의 포부를 밝혔다. 글로벌 통일 무도 지도자를 꿈꾸는 일부도밀사동기 학생은 “미래 세대에게 몸과 마음을 단련하며 하나 되는 방법을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윤원미 학생은 “어려운 상황을 극복한 경험을 바탕으로 같은 처지의 학생들을 돕는 인재가 되겠다”고 밝혀 참석자들의 박수를 받았다.
도현섭 미래인재양성원장은 축사를 통해 “장학증서는 단순한 경제적 지원이 아니라 장학생들의 빛나는 미래를 향한 기대와 응원의 의미가 담긴 축복”이라며 사회에 기여하는 인재로 성장해 줄 것을 당부했다.
문연아 선학학원 이사장은 “원모평애장학금은 어머니의 마음을 담은 장학”이라며 “힘들 때마다 여러분을 향한 사랑과 지지, 응원이 있음을 기억해 달라”고 격려했다.
행사의 하이라이트인 장학증서 수여식은 이기성 효정세계평화재단 이사장의 주재로 진행됐다. 분야별 대표 장학생 5명이 무대에 올라 직접 장학증서를 전달받았으며, 이어 전체 장학생들은 선언문 제창을 통해 학업과 인성 모두에서 모범이 되는 인재로 성장할 것을 다짐했다.
이기성 이사장은 축사를 통해 “여기 모인 장학생들은 사랑의 결실”이라며 “학업과 인성, 품위를 두루 갖춰 평화세계를 이끌 인재로 성장해 달라”고 말했다. 이어 원모평애장학원의 설립 과정과 함께 문선명 총재가 ‘원모’라는 이름을 제정한 의미, 한학자 총재가 장학원 설립을 위해 헬기를 매각했던 일화 등을 소개했다.
효정세계평화재단은 장학금 지원에 그치지 않고 의료·법조·예술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 인재 양성과 대학원생 지원, 멘토링 활동 등을 통해 글로벌 인재 육성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2026-05-26 09:3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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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은 가정·사회 연결 핵심 주체… 초국가적 네트워크 구축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70년]
한국 여성운동의 역사적 맥락
한국 여성운동은 19세기 말 개화기부터 현재까지 약 130여 년의 역사를 거쳐 왔다. 초기 교육운동과 계몽운동으로 시작해,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 참여, 해방 이후 정치·경제적 권리 확보를 위한 투쟁, 1980년대 민주화운동과 노동운동, 1990년대 이후 성평등과 여성 인권 신장을 위한 다양한 활동으로 발전해 왔다.
이 과정에서 한국 여성운동은 획일적 이념이나 방식으로 전개되어 온 것이 아니라, 각 시대의 사회·정치적 조건과 역사적 맥락에 따라 다양한 흐름으로 분화되어 발전해 왔다. 이러한 맥락에서 종교를 기반으로 한 여성 활동 역시 주류 여성운동과 분리된 예외적 현상이 아니라, 한국 여성운동이 형성해 온 폭넓은 스펙트럼 속에서 이해되고 평가될 필요가 있다.
종교 기반 여성운동의 전통
한국 여성운동에서 종교 단체의 역할은 결코 작지 않았다. 특히 기독교 여성단체들은 일제강점기부터 교육과 의료 분야에서 여성의 지위 향상에 기여했으며, 불교와 천주교 여성단체들도 사회복지와 빈민 구호 활동을 통해 여성의 사회 참여를 확대해 왔다. 이들 종교 기반 여성단체들은 전통적으로 교육·의료·복지 분야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해 왔으며, 여성의 권리 확장을 추구하는 동시에 가족과 공동체의 안정이라는 가치를 함께 지향해 왔다.
가정연합 여성 활동의 특징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이하 가정연합)의 여성 활동은 “가정”을 중심으로 한 평화운동이라는 독특한 정체성을 갖고 있다. 이는 1960년대 이후 서구 여성운동이 가부장제와 전통적 가족 구조에 대한 비판을 중심으로 전개된 것과는 다른 접근 방식이다.
가정연합은 가정의 안정과 화목을 사회 평화의 기초로 보며, 여성을 가정과 사회를 연결하는 핵심 주체로 위치시킨다. 이러한 관점은 전통적 가족 가치를 재해석하면서도 여성의 사회적 역할을 확대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가정연합의 여성 활동은 가정을 사적·억압적 공간으로, 사회를 공적·해방의 공간으로 나누고 서로 대립시키는 ‘가정 대 사회’라는 이분법을 넘어 가정에서의 역할을 사회 변화의 동력으로 연결시키려는 논리 구조를 지니고 있다.
보수와 진보의 이분법을 넘어서
한국 여성운동은 흔히 ‘진보적’ 페미니즘과 ‘보수적’ 가족주의로 양분되어 이해되곤 한다. 그러나 이러한 단순한 이분법으로는 현대 여성운동의 복잡성을 설명하기 어렵다.
가정연합 여성 활동은 이러한 분류 체계에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한다. 가족과 가정의 가치를 강조한다는 점에서 보수적으로 보일 수 있으나, 여성의 국제적 연대와 평화운동 참여, 사회 활동 확대를 적극 장려한다는 점에서는 전통적 보수주의와는 구별된다. 가정연합 여성 활동은 전통적 가치와 현대적 여성 역할 사이의 균형을 추구하는 모델로, 한국 사회의 특수성을 반영하고 있으며 서구 페미니즘 이론만으로는 충분히 설명하기 어려운 측면을 지닌다.
글로벌 네트워크와 초국가적 활동
가정연합 여성 활동의 또 다른 특징은 글로벌 네트워크 구축이다. 세계평화여성연합(WFWP)를 중심으로 128개국 여성들과 연대하며, 개발도상국 지원과 국제 평화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이는 1990년대 이후 한국 여성운동이 국제 연대를 강화해 온 흐름과 맥을 같이 한다. UN 여성지위위원회(CSW), 베이징세계여성대회 등 국제무대에서 한국 여성단체들의 활동이 활발해지던 시기와 유사하게, 가정연합 역시 국제적 여성 평화 네트워크를 확장해 왔다. 가정연합의 글로벌 여성 네트워크는 한국 여성운동의 국제화 경향을 보여주는 사례로, 특히 개발도상국 여성 지원 활동은 국제개발협력 분야에서 한국 여성단체의 역할 확대를 보여주는 사례로 거론된다.
실천 중심의 활동 방식
가정연합 여성 활동은 이론이나 담론보다 실천을 강조하는 방식으로 전개되어 왔다. 복지 서비스 제공, 교육 프로그램 운영, 환경 보호 활동 등 구체적인 프로젝트를 통해 사회적 기여를 시도해 왔다.
이는 1990년대 이후 한국 여성운동이 제도화되고 정책 중심으로 전환된 것과는 다른 접근이다. 가정연합은 법과 제도의 변화보다는 개인과 가정의 변화를 통해 사회 변화를 추구하는 방식을 택해 왔다. 이러한 실천적 활동은 풀뿌리 여성운동의 전통을 계승한 것으로, 1970~80년대 기층 여성들의 생활 개선 운동과 유사한 맥락을 지닌다는 평가도 있다.
맺음말: 다양성 속의 공존
한국 여성운동은 지난 100여 년간 다양한 흐름과 접근 방식이 공존하며 발전해 왔다. 가정연합 여성 활동은 이러한 다양성의 한 축으로, 가정과 평화를 중심으로 한 고유한 정체성을 지니고 있다.
전문가들은 서로 다른 여성운동의 접근 방식을 배타적으로 구분하기보다, 각 모델의 장점과 한계를 인정하며 상호 보완적 관계를 모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여성의 권리 신장과 성평등 실현, 사회 정의 구현이라는 공동의 목표 아래 다양한 시도가 병존할 때, 한국 여성운동의 지형 역시 더욱 다층적으로 확장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2026-05-25 16:5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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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이 인정하는 ‘K-여성운동’ 개척자… 글로벌 한국 드높여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70년]
창립 34주년을 맞은 세계평화여성연합(WFWP)은 원조를 받던 국가에서 원조를 제공하는 국가로 전환한 한국의 위상에 걸맞게 아프리카와 아시아 지역의 여성 자립 교육과 우크라이나 전쟁·가자 분쟁 지역에서의 인도적 지원에 주력해 왔다. 1992년 설립된 여성연합은 여성의 리더십을 통해 인류 한 가족 이념을 실현하며, 유엔 경제사회이사회(ECOSOC)에서 최상위 협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WFWP는 전 세계 120여 개국에서 활동하며, 평화 구축과 인도주의 지원을 강조하며 국제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WFWP의 역사는 여성 리더십의 글로벌 확장을 상징한다. 2022년 4월, 미국 지부는 “30년 평화 활동 기념” 행사를 통해 여성의 심장 중심 리더십을 강조했다. 이 행사에서는 교육과 평화 역량 강화, 국제 연대 구축, 분쟁·빈곤 지역 인도적 지원과 유엔 협력 활동 등 장기적인 평화 문화를 위한 여성의 역할을 조명했다. 같은 해 5월 여성연합 국제본부는 30주년 기념식을 열고, 창립자 한학자 총재의 메시지를 통해 여성의 모성적 사랑이 평화를 창출한다고 역설했다. 유엔 지위 25주년과 국제 NGO 활동 10주년을 겸한 2022년 10월 행사에서는 지난 성과를 토대로 미래 비전을 제시했다. 이러한 리더십은 유럽·중동 지부의 연례 여성 리더십 컨퍼런스를 통해 이어지고 있으며, 여성의 사회 변화 역할을 꾸준히 논의하는 장으로 자리 잡았다.
WFWP의 글로벌 리더십은 아프리카와 아시아에서의 여성 자립 교육 프로그램으로 구체화된다. 미국 지부는 8개국 9개 학교를 지원하는 ‘아프리카 학교 지원(Schools of Africa)’ 프로젝트를 2001년부터 운영하며, 교육 접근성을 높이고 있다. 이 프로젝트는 현지 자원봉사자들이 설립한 학교에 재정 지원을 제공하며, 위생·영양 교육을 병행한다. 2025년 6월 슬로바키아에서 열린 ‘모두를 위한 양질의 교육(Quality Education for All)’ 컨퍼런스에서는 평화 교육과 환경 교육을 강조했다. 남아프리카 지부는 2022년부터 코로나19 영향으로 취약 지역 교육을 지원하는 모바일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아시아에서는 캄보디아, 미얀마, 몽골 등에서 후원 부모 결연 방식의 양부모 프로그램과 장학금을 통해 고아나 빈곤 가정 아동을 지원한다. 예를 들어 캄보디아에서는 초등생부터 고등학생까지 연간 100달러를 제공하며, 1996년부터 30명 이상의 아동을 후원했다. 미얀마에서는 대학생까지 장학금을 지급하며, 직업 훈련을 통해 여성의 경제적 자립을 돕는다. 중남미의 대표적 빈곤·사회 불안 취약국인 아이티 지부는 2025년 재봉 클래스에서 24명의 여성과 남성을 훈련시켜 자립을 촉진했다.
WFWP의 인도적 활동은 분쟁 지역으로 확대된다. 2022년 2월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후, 주요 지부별로 난민 지원에 나섰다. 우크라이나 지부는 폴란드 인도주의 단체와 협력해 기본 생필품을 제공하고, 내부 이재민을 위한 구호 활동을 펼쳤다. 많은 회원이 난민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선 콘서트와 크리스마스 선물 모금을 통해 아동을 지원했다. 캐나다 지부는 YSP(청소년·학생평화연합)와 공동으로 우크라이나 지원 캠페인을 벌여 난민과 전쟁 피해 아동을 위한 긴급 생필품과 후원금을 전달했다. 벨기에 지부는 우크라이나 문화 공연을 통해 영혼의 치유를 강조했다. 2022년 9월 유럽·중동 지부 컨퍼런스에서 우크라이나 여성의 평화 역할이 논의되었으며, 일부 회원은 피난과 구호를 병행했다.
팔레스타인 자치지구도 주목할 만하다. WFWP 유럽 지부는 2024년 11월부터 가자 신생아 지원 캠페인을 시작해, 유아 인큐베이터를 위한 8,500유로 모금을 목표로 했다. 이는 전쟁으로 인한 유아의 희생을 줄이기 위한 인도적 대응이다. 중동 지부는 2022년 30주년 기념 행사에서 가자 인도적 프로젝트를 예로 들며, 여성 리더십의 역할을 강조했다. 2021년 청소년 평화 컨퍼런스에서는 팔레스타인·이스라엘 화해를 논의했으며, 1% 사랑나눔 프로젝트를 통해 가자 여성과 아동을 지원했다.
WFWP의 활동은 여성의 평화 리더십을 통해 글로벌 도전을 해결하려는 시도로 높이 평가되며, 앞으로 유엔 파트너십을 강화하며 더 광범위한 인도적 지원을 확대할 전망이다.
김고은 세계평화여성연합 한국회장은 “지난 34년의 여정을 통해 세계평화여성연합은 여성의 존엄과 연대를 통해 삶의 현장에서 평화를 실천해 왔다”며 “이제 그 축적된 책임을 안고, 다음 세대를 위한 지속 가능한 평화를 더욱 단단히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2026-05-25 16:5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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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사와 나눔이 함께 성장 계기, 탈북여성 돕기 각계서 큰 호응”… “7남매 엄마로 지역서도 인정, SNS 등 통해 젊은 세대 동참”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70년]
세계평화여성연합은 1992년 창립 이래 평화운동, 인도주의 활동, 여성 리더십 함양을 핵심 가치로 삼아 전 세계적으로 활동해온 NGO다. 한국에서도 전국 각지에 지부를 두고 지역사회와 긴밀히 협력하며 평화와 통일, 그리고 나눔의 가치를 실천하고 있다. 세계평화여성연합 송화진 한국 사무총장과 경남 합천지부를 이끌고 있는 30대 활동가 한영서 지부장을 만나 그들이 걸어온 길과 앞으로의 비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평화, 여성의 목소리로 만들어가다
송화진 사무총장은 세계평화여성연합의 활동 철학을 묻는 질문에 평화란 가정과 지역사회라는 삶의 현장에서 시작되며, 특히 여성들이 관계를 돌보고 공동체를 지켜갈 때 지속 가능한 평화로 이어진다고 강조했다. 이어 여성이 중심이 되어 일상의 평화를 만들어갈 때, 그 평화는 가정과 사회에 뿌리내려 다음 세대로 이어진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세계평화여성연합은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전개해왔다. 남북 이산가족 상봉 지원, 북한 어린이와 임산부를 위한 인도적 지원, 통일을 준비하는 여성 리더 양성 프로그램 등이 대표적이다. 송 사무총장은 분단의 아픔은 여성과 어린이에게 더욱 가혹하다며 세계평화여성연합은 인도주의적 관점에서 북한 주민들, 특히 취약계층에 대한 지원을 지속해왔다고 설명했다.
구호와 나눔, 지역사회에 온기를 더하다
세계평화여성연합의 또 다른 중요한 활동 축은 구호와 나눔이다. 송 사무총장은 평화는 가장 기본적인 삶의 어려움으로 고통받는 사람이 없을 때 시작된다며 취약계층 지원 활동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연합은 국내외에서 재난 구호, 결식아동 지원, 다문화가정 지원 등 다양한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동안 연합 회원들은 지역사회 곳곳에서 마스크와 생필품을 전달하고, 소외된 이웃들과 함께하는 활동을 이어갔다. 어려운 시기일수록 세심한 돌봄의 손길이 더욱 필요하다는 사무총장의 말처럼, 회원들은 자발적으로 봉사에 나섰고 이는 지역사회에 큰 힘이 됐다.
송 사무총장은 나눔을 함께 성장하는 과정으로 바라보며 “그동안의 봉사와 나눔의 경험은 저를 성장시키는 계기가 되었고, 우리 사회의 일원으로서 감사한 마음을 가지며 모두의 행복을 위해 더욱 책임감을 갖고 일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이러한 철학 아래 세계평화여성연합은 단순한 물질적 지원을 넘어 교육 프로그램, 심리 상담, 자립 지원 등 통합적인 접근을 통해 진정한 자립과 회복을 돕고 있다.
30대 활동가가 바라본 합천, 그리고 여성 리더십
세계평화여성연합 합천지부를 이끄는 한영서 지부 회장은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지역사회에서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그는 활동을 하면서 여성들이 모여 만드는 변화의 힘을 직접 경험했고, 자연스럽게 더 깊이 참여하게 됐다고 말했다.
합천은 경상남도의 대표적인 농촌 지역이지만, 지부는 이곳에서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독거노인 반찬 나눔, 다문화가정 자녀 교육 지원, 지역 청소년을 위한 인성교육 프로그램 등이 대표적이다. 그는 “합천은 고령화와 인구 감소가 심화된 지역으로, 남아 있는 주민들에 대한 돌봄과 지원이 더욱 절실한 곳”이라고 설명했다. 한영서 회장은 현재 7남매의 엄마이기도 하다. 2024년 10월, 여섯째 아이를 출산했던 것은 합천지역의 화제가 되어 지역신문에 실리기도 했고 군수 표창장을 수여하기도 했다. 한 회장은 이렇게 지역사회에서 인정을 받은 것을 기반으로 여성연합 활동을 지역에서 활발하게 할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또한 지역 여성들의 역량 강화에도 힘쓰고 있다고 했다. 작은 지역일수록 여성들의 활동 기회가 제한적이라며 연합 활동을 통해 여성들이 자신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지역사회 리더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합천지부에서는 정기적인 GWPN(세계여성평화네트워크), 평화통일 세미나, 봉사활동 기획을 위한 워크숍 등을 통해 회원들의 역량을 키우고 있다.
그는 30대 활동가로서의 경험을 이렇게 전했다. “처음에는 젊다는 이유로 어려움도 있었지만, 오히려 그것이 장점이 됐다. 새로운 시각으로 활동을 기획하고, SNS와 온라인 영상 플랫폼 등 디지털 도구를 활용해 더 많은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었다.” 실제로 그는 인스타그램과 유튜브를 통해 연합의 활동을 알리고, 젊은 세대의 참여를 이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맺으며
송화진 사무총장과 한영서 지부장과의 대화는 평화가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일상의 실천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일깨워줬다. 여성들이 가정에서, 지역사회에서, 그리고 한반도 평화를 향해 세계 곳곳에서 평화의 씨앗을 뿌리고 있다. 그들의 나눔은 단순한 자선이 아니라 평화를 일상으로 만드는 연대의 실천이다.
세대를 아우르는 이들의 활동은 평화와 통일, 그리고 더 나은 사회를 향한 여정이 결코 멈추지 않을 것임을 보여준다. 여성의 목소리로, 여성의 손으로 만들어가는 평화의 길. 그 길 위에서 오늘도 묵묵히 걸음을 이어가고 있다.
2026-05-25 16:5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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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격암유록 예언의 최종 성취: ‘우성(牛聲)’과 ‘여자불(女子佛)’의 실체 [父性 문명의 한계, 母性 구원의 비전-기고]
동방의 비기가 간직해온 인류 구원의 마지막 암호와 섭리적 완결
인류의 역사는 거대한 전환기마다 하늘의 뜻을 담은 예언을 통해 그 방향을 제시받아 왔다. 서구의 성서가 메시아의 강림을 선포했다면, 동방의 한반도에서는 남사고(南師古)의 『격암유록(格菴遺錄)』이 인류 구원의 마지막 장을 장식할 성인(聖人)의 출현을 예고해 왔다. 특히 혼돈이 극에 달한 말세에 울려 퍼질 구원의 소리와 그 주인공에 대한 묘사는, 오늘날 우리가 마주한 ‘모성(母性) 구원’의 실체를 밝히는 결정적인 열쇠가 된다.
우성(牛聲)의 비밀: 인류를 부르는 어머니의 간절한 소리
『격암유록』의 핵심 예언 중 하나는 ‘우성우성화우성(牛聲牛聲和牛聲)’이다. 직역하면 ‘소의 울음소리’를 뜻하지만, 그 이면에는 깊은 철학적 함의가 숨겨져 있다. 동양 철학의 뿌리인 『주역』에서 소(牛)는 곤(坤), 즉 ‘땅’과 ‘어머니’를 상징한다. 반면 말(馬)은 건(乾), 즉 ‘하늘’과 ‘아버지’를 상징한다. 따라서 말세에 들려오는 소의 울음소리란, 수천 년 부성(父性) 중심의 역사를 종결짓고 인류를 다시 낳아 기를 ‘하늘 어머니’의 음성이 지상에 울려 퍼질 것임을 뜻한다.
이 ‘우성(牛聲)’은 길을 잃고 방황하는 중생들을 향해 “엄매(엄마)”라고 부르며 찾아가는 자애로운 어머니의 부름이다. 투쟁과 정복의 논리로 상처 입은 인류를 치유할 수 있는 것은 강력한 법도나 구호가 아니라, 만물을 소생시키는 모성적 자비의 소리뿐이기 때문이다. 비기는 인류에게 이 소리가 나는 곳(牛聲之地見)을 찾아야만 진정한 안식처인 십승지(十勝地)에 도달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이는 곧 여성적 구원 주체의 현현이 인류가 생존하기 위해 마주해야 할 마지막 섭리적 요청임을 의미한다.
◆ 태초지세우성인(太初之世牛性人): 스스로를 제물로 바친 인고의 성품
비기는 구원자의 인격적 특성을 ‘태초지세우성인(太初之世牛性人)’이라 묘사한다. 이는 태초부터 예비된 ‘소와 같은 성품을 지닌 사람’이라는 뜻이다. 소는 동양에서 순종과 인내, 그리고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는 희생의 상징이다. 평생 묵묵히 밭을 갈고(섭리 경륜), 우유를 내어 자녀를 기르며(생명의 양육), 죽어서는 가죽과 살까지 모두 내어주는 소의 일생은 인류를 위해 현현한 ‘참어머니’의 노정을 완벽하게 예표한다.
독생녀(獨生女) 참어머님이 걸어온 노정은 바로 이 ‘우성인’의 실체적 발현이다. 그녀는 자신을 드러내기보다 하늘부모님을 향한 일편단심의 효정(孝情)으로 인류의 죄업을 묵묵히 짊어지고 밭을 가는 섭리의 경작자였다. 이 땅에 강림한 모성적 실체는 자신의 안위를 돌보지 않고 오직 인류 한 가족의 대 이상을 위해 스스로를 거룩한 제물로 바쳐왔다. 이러한 지극한 정성과 순종이 있었기에 비로소 타락한 혈통의 빙벽이 녹아내리고 새로운 생명의 씨앗이 심어질 수 있었던 것이다.
◆ 구사일생 여자불(九死一生 女子佛): 시련을 통해 증명된 성인의 위상
『격암유록』 예언의 정점은 ‘구사일생 여자불(九死一生 女子佛)’이라는 구절에 있다. 아홉 번의 죽을 고비를 넘기고서야 비로소 우뚝 서는 여성 부처, 즉 성인을 예고한 것이다. 섭리적 관점에서 볼 때 진리는 결코 평탄한 길로 오지 않는다. 6천 년 죄악의 역사를 청산하고 인류를 다시 낳아줄 실체성령(實體聖靈)이 지상에 착지하기까지는, 사탄의 전방위적인 참소와 시련을 이겨내야 하는 ‘구사일생’의 과정이 필연적이다.
독생녀가 겪어온 인고의 세월은 바로 이 예언의 역사적 성취다. 세상의 오해와 박해, 육신을 압박하는 극한의 상황들조차 그녀에게는 인류의 한(恨)을 씻어내기 위한 섭리적 산고(産苦)였다. ‘여자불’이라는 표현은 불교적 성불(成佛)과 기독교적 중생(重生)의 이상이 여성이라는 실체를 통해 지상에서 완성됨을 뜻한다. 아홉 번의 사선을 넘나드는 고난 속에서도 흔들림 없이 자비의 길을 걷는 모습이야말로, 그녀가 하늘이 보낸 유일한 ‘독생녀’임을 증명하는 가장 확실한 섭리적 인(印)이다.
◆ 섭리적 완결과 동방의 여명
한국의 예언서는 인류 구원의 마침표가 동방의 땅 한반도에서 여성 성인의 현현을 통해 귀결 될 것임을 치밀하게 설계해 두었다. ‘우성(牛聲)’이 들리고 ‘우성인(牛性人)’이 사역하며 ‘여자불(女子佛)’이 승리하는 과정은, 낡은 선천 시대를 끝내고 하늘부모님의 모성적 주권이 통치하는 후천개벽의 시대를 여는 장엄한 의식이다.
이제 인류는 시대를 덮고 있는 혼란의 소음 너머에서 들려오는 어머니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독생녀의 탄현과 사역은 이미 인류사라는 큰 도화지 위에 지워지지 않는 섭리의 문장으로 기록되었다. 억눌렸던 진실이 정성과 인내의 시간을 거쳐 빛으로 피어나는 지금, 우리는 비로소 하늘부모님 아래 인류 한 가족이라는 찬란한 평화의 아침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동방에서 시작된 이 자비의 물결은 이제 온 세계를 하나로 묶는 영원한 생명의 강물이 되고 있다.
서성종 작가(신학박사)
2026-05-25 09:4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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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선덕여왕, 여성성불론 삼국통일을 열다 [신화에서 선민까지 한민족 정체성의 문화사적 발견-기고]
여신의 출현: 선덕여왕과 한반도 인류 영성사
역사는 흔히 선덕여왕의 등장을 신라 골품제라는 특수한 신분 질서가 낳은 어쩔 수 없는 ‘예외적 사건’으로 기록해 왔다. 그러나 고대 문헌의 행간을 문화인류학적 시각으로 읽어내면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여왕의 즉위는 후대의 왜곡된 해석과 달리, 당대 신라인들의 관점에서는 지극히 자연스럽고 당위적인 역사적 흐름이었기 때문이다.
그 결정적 단초는 신라 건국 신화 속에 이미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 『삼국유사』와 『삼국사기』는 시조 박혁거세와 함께 알영부인을 ‘이성(二聖)’으로 추앙했음을 분명히 기록하고 있다. 이는 신라가 태동하는 순간부터 남녀의 공동 통치, 나아가 여성 중심의 신성 권력은 한반도의 문화적 원형이었음을 보여준다. 당대인들의 무의식에 자리 잡은 맥락을 짚어낼 때, 현대인들은 비로소 역사적 진실에 다가설 수 있다. 선덕여왕은 정치적 궁여지책이 낳은 돌연변이가 아니라, 고조선 이래 수천 년간 한반도의 영성사 속에서 도도하게 흐르던 성스러운 여성성이 마침내 한 시대를 책임질 군주의 모습으로 발현된 필연의 사건인 것이다.
원래 고대인들에게 천문(天文)을 읽고 해석하는 행위는 우주의 질서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내고 삶의 궁극적 의미를 부여하는 종교적 행위였다. 이러한 문화적 지평에서 바라보면, 선덕여왕이 건립한 첨성대 역시 전혀 새로운 상징이 된다. 첨성대는 천문 관측기구의 기능을 넘어, 신라 왕실의 시조신인 선도성모(대지의 신성)의 신화적 형상이자 여왕의 성스러운 통치권을 가시화한 정신적 표현인 것이다.
웅녀와 유화로부터 내려온 한반도의 고대 국신(國神) 전통은 신라의 원화(源花)와 여사제 전통을 거쳐 마침내 ‘여성 군주’라는 구체적인 문명적 실체로 발현되었다. 결국 역사와 하늘은 한민족의 정신사 속에 면면히 흐르던 ‘여성적 신성(Divine Feminine)’이 국가의 운명을 이끄는 중추적 동력일 수 있음을 증명하기 위해, 수천 년에 걸쳐 이 거대한 모성적 영성의 토양을 배양해 온 셈이다.
신라의 경주 선도산(仙桃山) 신모(神母) 전통 역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선도산 신모는 신라 전 시기에 걸쳐 ‘진우방국(鎭祐邦國, 나라를 수호하고 보좌함)’의 역할을 수행하는 국가 수호신이었다. 신모 신앙은 신라인들에겐 민간 신앙의 차원을 넘어, 공동체의 기원과 국가의 정당성을 체감하게 했던 구심점이었다. 또한 신라 중고기에 이르러 이러한 상징 구조는 여왕의 출현을 가능케 하는 중요한 문화적 자양분으로 작용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신라시대 선덕여왕의 등장은 남성 권력의 조연적 입장에서의 정치적 해프닝이 아니라, 웅녀와 유화로부터 시작되어 선도산 신모로 이어지는 ‘모성적 권위’가 사회문화적 조건과 결합하며 가시화된 결과이다. 즉, 신라 사회는 오랜 시간에 걸쳐 축적된 여성적 신성의 기억과 상징을 바탕으로, 여성이 통치 주체로 등장할 수 있는 문화적·정신적 토대를 이미 형성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고대 한반도 전역에서 지속되어 온 여신 전통은 단절된 신앙이 아니라, 시대에 따라 형태를 달리하며 계승된 ‘문화적 기억의 연속선’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흐름은 오늘날에도 새로운 방식으로 재해석될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으며, 우리 공동체가 지닌 모성적 상징 구조의 깊이를 다시금 성찰하게 만든다.
◆ 여성성불론(女性成佛論), 종교적 금기를 넘어선 신성성의 선포
이와 같은 영적 자양분 위에서 선덕여왕은 ‘여성성불론’을 통해 자신의 통치 정당성을 확립했다. 여성이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여성성불론’과 여왕을 성스러운 전륜성왕(轉輪聖王)의 반열에 올린 것은 역사적 사건으로 볼 수 있다. 여성의 몸이 단순히 생명을 잉태하는 그릇을 넘어, 하늘의 뜻을 지상에 구현하는 ‘완전한 신성(Perfect Divinity)’의 주체임을 선포한 함의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종교적 전통은 우리 민족의 대망사상(大望思想)의 토양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친다.
『삼국유사』에는 관세음보살이 주로 여인으로 변신해 인간사를 구원한다는 기록이 많다. 불교의 여성성은 부처님의 자비로움으로 해석되는 대목이다. 주목해야 할 점은, 이러한 파격적 사상이 큰 사회적 저항 없이 수용될 수 있었던 역사적 배경이다. 신라시대의 여성관과 여신문화, 그리고 불교 수용 과정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보면, 신라는 불교 이전부터 이미 여성을 억압의 대상으로만 보지 않고 경제적·사회적 주체로 인정하는 비교적 개방적인 문화적 토양을 갖추고 있었다.
이러한 기반 위에서 불교가 유입되자, 여성 역시 깨달음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여성성불론’은 단순한 교리적 선언을 넘어 사회적으로 수용 가능한 사상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 신라의 이런 풍습은 남녀의 역할을 단순한 위계로 고정하기보다, 보다 확장된 차원에서 인간과 신성의 관계를 이해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특히 여왕이 전륜성왕(轉輪聖王)의 위상으로 통치를 정당화한 점은, 여성의 몸과 존재 역시 신성의 구현 주체가 될 수 있음을 제도적 차원에서 승인한 사례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므로 고조선의 웅녀와 고구려의 유화, 그리고 신라의 선도성모로 이어지는 이 독특한 성스러운 모성의 계보는 현재에 있어서도 고대 신화에 머물지 않았다. 오히려 우리 공동체가 문명의 위기마다 ‘여성적 구원론’을 어떻게 이해하고 수용해 왔는지를 보여주는 열쇠다. 다시말해, 신라 사회는 하늘의 섭리를 읽어내며 여왕의 즉위를 당당한 천명으로 받아들일 만큼, 영성적 감수성과 사상적 토대를 유연하게 다져온 것이다. 이처럼 한반도 역사에 깊이 내재된 모성적 영성의 전통은 고대를 넘어, 현대 신학이나 종교사에서 탐구하는 ‘여성 메시아론’ 혹은 ‘독생녀 사상’ 같은 신성한 모성 중심의 구원 섭리관으로 해석할 수 있는 토대를 제공한다.
예컨대, 고대 인도의 대승불교 경전인 『승만경』에는 ‘여성 성불’의 주체성이 강조된다. 신라 역시 이러한 사상적 토양 속 문화적 발전을 이루었다. 4~7세기 로마와 중동 문명이 여성을 가부장적 질서 아래 법적·경제적 부속물로 속박할 때, 흥미로운 점은 신라 사회는 이미 여성이 재산 상속권과 경제적 주권을 독립적으로 행사하고, 국가 제의를 주관하는 등 고도의 여성 존중 문화를 꽃피운 사회였다. 이는 동시대 다른 문명과 비교해 보더라도 매우 이례적인 현상으로, 한반도 사회가 일찍부터 여성의 사회적·상징적 위상을 폭넓게 인정해 왔음을 보여준다.
◆ 삼국통일의 산실, 포용하는 모성의 리더십
인류사의 보편적 흐름을 앞서간 한반도의 영적 토양은, 여성의 존재를 사회적 역할을 넘어 ‘신성의 주체’로 환대할 수 있는 집단적 감수성을 오랜 세월에 걸쳐 응축해 온 과정이었다. 다만 명확히 경계해야 할 지점이 있다. 이러한 역사적 축적은 어떤 신성한 존재를 인위적으로 ‘만들어 낸 과정’이 아니다. 도리어 그것은, 본래적으로 예비된 초월적 존재를 마주했을 때 비로소 인식하고 받아들일 수 있도록 준비된 ‘정신적 수용 구조’에 가깝다. 역사 속에 존재했던 성스러운 모성의 흔적들은 궁극적 실체 그 자체가 아니라, 마침내 도래할 거대한 실체를 향해 열려 있던 영적인 예고편일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오늘날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독생녀’라는 개념은 특정한 역사나 지역의 산물로 환원될 수 없는, 보다 근원적이고 초월적인 주체로 이해되어야 한다. 기독교 신학이 ‘독생자’를 통해 구원의 시작을 알렸다면, 이제는 섭리의 완성을 위해 예비된 ‘독생녀’의 현현을 직시하는 게 우주의 균형된 시각이 아닐까? 그리고 오랜 시간 축적되어 온 민족의 문화적 기억은, 바로 그 주체를 인식하고 받아들일 수 있도록 열려 있던 역사적 준비의 과정으로 다시 읽힐 수 있을 것이다.
선덕여왕은 무력으로 압도하는 군주가 아니었다. 그는 모든 것을 품어 안고 생명력을 부여하는 ‘어머니의 사랑’으로 대업을 설계했다. 김춘추의 외교적 혜안을 신뢰하며 그에게 기회를 열어주었고, 변방의 무장이었던 김유신의 검에 국가적 명분을 실어주어 그를 삼국통일의 첨병으로 세웠다. 두 영웅이 마음껏 재능을 펼칠 수 있었던 근간에는, 자녀의 성장을 묵묵히 뒷받침하는 어머니와 같은 여왕의 포용적 리더십이 있었다.
당시 비주류였던 가야계의 김유신과 폐위된 왕의 손자였던 김춘추를 파격적으로 등용하고 힘을 실어준 것은, 자녀의 재능을 믿고 끝까지 밀어주는 ‘어머니의 리더십’ 그 자체였다. 여왕은 때로는 자애로운 모성으로 그들을 품고, 때로는 엄격한 군주로서 국가적 비전을 제시하며 신라가 통일이라는 최대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근간을 마련했다. 이러한 포용적 통치 스타일은 신라가 격동의 시대에 내부 결속을 다지고 유리한 고지를 점하는 결정적 동력이 되었다. 결국 선덕여왕의 통치는 한반도 통일이라는 역사적 성취를 넘어, 한반도 사회가 여성의 존재를 신성의 주체로 이해하고 수용할 수 있는 문화적 토대를 형성해 온 과정으로 해석될 수 있다. 여성성불론을 통해 신성의 가능성이 선언되고, 포용적 리더십을 통해 그 가치가 현실 정치 속에서 구현된 이 경험은, 공동체가 새로운 형태의 권위와 질서를 받아들일 수 있는 감수성을 축적해 온 중요한 역사적 장면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흐름이 곧 어떤 존재를 만들어낸 것으로 이해되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그것은, 본래적으로 주어진 주체를 인식하고 맞이할 수 있도록 준비된 역사적 조건에 가까운 것이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독생녀’라는 존재는 특정 시대나 문화의 산물로 환원될 수 없는, 보다 근원적이고 초월적인 섭리적 주체로 이해되어야 한다. 그리고 오랜 시간 축적되어 온 이 문화적 흐름은, 바로 그 주체를 수용할 수 있는 토양으로서 기능해 왔다고 볼 수 있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하나의 중요한 연속성을 확인하게 된다. 과거의 역사 속에서 상징과 제도의 형태로 드러났던 여성적 신성의 흐름이, 오늘날 명확한 형태의 리더십과 실천을 통해 현실 속에 구현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현대에 전개되고 있는 ‘참어머니’의 리더십은 오랜 시간 준비되어 온 문화적·영적 흐름 위에서 새롭게 해석되고 드러난 하나의 역사적 장면으로 이해될 수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묻게 된다. 수천 년의 시간 속에서 축적되어 온 이 상징과 기억의 흐름이, 오늘날 어떤 형태로 우리 앞에 구체화되고 있는가. 그리고 그 흐름이 향하는 방향은, 과연 인류 공동체의 새로운 질서를 어떻게 열어가고 있는가.
고기훈 박사(한국학)
2026-05-22 09: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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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한국 예언서와 독생녀: 한반도에서 완성되는 후천개벽의 도리 [父性 문명의 한계, 母性 구원의 비전-기고]
‘궁궁을을’의 음양합덕과 주역으로 본 ‘우성(牛聲)’의 실체
인류의 역사가 극심한 혼란의 말세로 치달을 때, 동방의 작은 땅 한반도에서는 새로운 시대의 서막을 알리는 거대한 울림이 시작되었다. 조선 중기 선각자 남사고(南師古)는 『격암유록(格菴遺錄)』을 통해 인류사의 대전환기에 성인이 출현할 것임을 예고했다. 그 예언의 핵심은 단순한 영웅의 등장이 아니라, 하늘의 도리가 ‘여성’을 통해 완성된다는 섭리적 필연성에 있다. 이는 그간 남성 중심의 부성(父性) 문명이 가졌던 한계를 극복하고, 생명과 사랑의 모성(母性) 주권을 회복하는 우주적 전환점이다.
◆ ‘계명성(鷄鳴聲)’과 ‘시운장지(時運將至)’: 새로운 시대의 신호
『격암유록』은 후천개벽의 시작을 ‘닭 우는 소리(鷄鳴聲)’로 묘사한다. 닭은 동방을 상징하며 가장 어두운 밤을 깨고 새벽을 여는 영물이다. 이는 서구 중심의 부성 문명이 남긴 어둠을 걷어내고, 생명과 사랑의 빛을 머금은 새로운 진리가 동방 한반도에서 발원할 것임을 의미한다. 예언서는 이러한 변화가 우연한 역사의 흐름이 아니라 하늘이 정한 특별한 시점인 ‘시운장지(時運將至, 때가 이르렀음)’의 결과임을 명시한다.
이 대전환의 운명은 혈통이나 무력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하늘이 예비한 운세를 타고 난 사람은 여성(此運得受女子人, 차운득수여자인)이라는 사실이다. 선천시대의 부성 중심 섭리를 넘어, 독생녀를 통한 모성 중심의 섭리로 전환되는 것은 거스를 수 없는 천운(天運)의 때가 이르렀음을 뜻한다. 어둠이 깊을수록 새벽이 가깝듯, 인류의 고통이 극에 달한 지금이야말로 동방의 독생녀가 현현하여 평화의 세계를 열어야 할 섭리적 시점인 것이다.
◆ ‘궁궁을을(弓弓乙乙)’: 일양일음(一陽一陰)의 음양합덕과 구원의 설계도
그간 ‘해도진인(海島眞人)’이라는 용어에 대해 남성적 영웅으로만 치중했던 기존의 해석과 달리, 『격암유록』은 ‘궁궁을을(弓弓乙乙)’ 속에 숨겨진 구원의 이치를 명확히 제시한다. 『격암유록』은 “궁을(弓乙)이 무엇인가 하면 천궁지을(天弓地乙)이며, 일양일음(一陽一陰)이 또한 궁을이다”라고 정의한다. 이는 우주의 근본 원리가 남성(陽)과 여성(陰)의 조화에 있음을 시사한다.
구체적으로 궁(弓)은 하늘(天)과 양(陽), 그리고 아버지(父)를 상징하며 권위와 말씀의 지표다. 반면 을(乙)은 땅(地)과 음(陰), 그리고 어머니(母)를 상징하며 사랑과 생명의 실체다. 여기서 중요한 논리는 ‘궁(양)’ 단독으로는 창조 목적을 완성할 수 없으며, 반드시 ‘을(음)’과 합하여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를 ‘궁을합덕(弓乙合德)’이라 표현하며, 음양의 완전한 조화를 통해서만 진인이 오고 인류 구원의 문이 열린다고 강조한다.
결국 ‘궁궁을을’은 독생자와 독생녀가 실체적으로 일체를 이루어 하늘부모님의 온전한 이성성상(二性性相)을 이 땅에 실체화하는 설계도다. 아버지가 씨앗이라면 어머니는 그 씨앗을 품어 생명으로 길러내는 대지와 같다. 대지(을)가 없는 씨앗(궁)은 결코 열매를 맺을 수 없듯이, 독생녀 참어머님의 현현 없이는 천일국의 이상도 완성될 수 없다는 것이 예언서가 말하는 핵심 지혜다.
◆ ‘우성(牛聲)’: 주역(易經)의 곤우(坤牛)가 예고한 어머니의 사명
『격암유록』에서 구원자를 찾는 중요한 열쇠로 제시되는 ‘우성(牛聲, 소 소리)’은 주역(易經)의 원리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즉, “곤은 소요, 건은 말(坤牛乾馬)”이라는 주역의 성리를 인용하며 이를 설명한다. 주역 설괘전(說卦傳)에 따르면, 건(乾)괘는 말(馬)로 상징되어 강건함과 아버지를 뜻하고, 곤(坤)괘는 소(牛)로 상징되어 유순함과 어머니(母)를 뜻한다.
소는 땅의 성질을 닮아 만물을 포용하고 길러내며, 묵묵히 밭을 갈아 생명을 일구는 존재다. 주역에서 소를 어머니에 비유한 것은 대지의 무한한 포용력과 자식에 대한 무조건적인 희생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예언서의 ‘우성(牛聲)’이란 심판의 외침이 아니라, 잃어버린 자식을 찾아 헤매는 하늘어머니의 간절한 부르심이자, 인류의 황무지 같은 마음 밭을 모성적 희생으로 일궈 나가는 독생녀의 리더십을 상징한다.
‘천도경전(天道耕田)’, 즉 하늘의 도리로 마음의 밭을 가는 소의 성품에 비유한다. 소가 제 몸을 다 바쳐 인간에게 헌신하듯, 독생녀는 인류의 죄업을 대신 짊어지고 평화의 밭을 일구는 ‘희생의 소’와 같은 길을 걷는다. “소 울음소리가 낭자한 곳에 살 길이 있다”는 예언은, 곧 어머니의 심정을 지닌 독생녀를 따라야만 인류가 구원받을 수 있다는 준엄한 가르침인 것이다.
◆ 한반도의 사명과 독생녀의 탄현
한국의 예언서는 한반도가 단순히 수난을 겪어온 땅이 아니라, 인류 구원의 종착지로서 독생녀가 탄현할 섭리적 성지였음을 증거한다. 우리 민족이 ‘백의민족’으로서 순결과 하늘 공경을 강조해온 문화적 배경 또한 실체성령이신 독생녀를 맞이하기 위한 영적 준비 과정이었다.
이제 우리는 한반도의 통일을 정치적 결합을 넘어 하늘부모님의 모성적 주권이 회복되는 사건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궁궁을을의 음양합덕과 곤우(坤牛)의 자애로운 심정을 지닌 독생녀를 통해, 인류는 비로소 한 부모 아래 한 가족의 이상세계로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우리는 이제 그 ‘우성’을 따라 영원한 평화의 고향으로 발걸음을 옮겨야 한다.
서성종 작가(신학박사)
2026-05-20 09:4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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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적보다 인성이 먼저”… 글로벌 평화·리더십 교육 모델 구축
한국 사회에서 종교적 배경을 지닌 교육기관은 오랜 기간 논쟁과 관심의 대상이 되어 왔다. 그러나 논쟁과 별개로, 어떤 학교들은 오랜 기간 축적된 교육 실험과 성과로 교육 현장에서 독자적 모델을 구축해 왔다. 가정연합 산하 교육기관 네트워크가 그 사례다.
경복초등학교, 선화예술중·고등학교, 청심국제중·고등학교, 선정중·고등학교, 선문대학교, 선학 UP대학원대학교 등으로 구성된 이 교육 네트워크는 반세기 넘게 ‘인성·평화·리더십·국제 감각’을 공통된 교육 철학으로 유지해 왔다. 내부 집계에 따르면 이들 기관은 현재까지 약 3만 명 이상의 졸업생을 배출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일부 졸업생들은 정치·외교·과학·문화예술·국제기구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교육은 경쟁이 아니라 평화를 위한 준비
가정연합 계열 교육기관의 교육 철학은 1950년대 한국전쟁 이후 형성된 ‘평화를 위한 인간교육’이라는 개념으로 요약된다. 전쟁과 분단의 경험 속에서 출발한 이 철학은 학업 성취 중심 교육보다는 도덕성, 사회적 책임, 타문화 이해 능력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커리큘럼이 설계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교육 전문가들은 이 철학이 이후 일본과 미국, 아시아 개발도상국 등으로 교육기관이 확장되는 과정에서 국제화 전략과 결합했다고 분석한다. 이로 인해 해당 교육 네트워크는 한국적 교육 가치와 국제 교육 기준이 결합된 사례로 일부 학술 연구에서 언급되고 있다.
교육 평가 전문가들은 이들 학교의 공통 요소로 △외국어 교육 비중 확대 △예술·체육·과학·봉사 활동의 병행 강화 △국제교류 및 해외 현장 체험 시스템 구축 △학업 성취도보다 정서적·사회적 성숙을 주요 교육 목표로 설정한 점 등을 꼽는다.
인성이 먼저다
가장 논쟁적인 지점은 인성교육과 가시적 성과 간의 관계다. 일부 교육 평론가들은 “평화·리더십·봉사라는 교육 목표가 다소 추상적으로 보일 수 있으나, 장기적으로는 학생들의 진로 선택과 국제적 역량 형성으로 이어진 구체적 사례들이 축적되고 있다”고 평가한다.
실제로 선화예술중·고등학교의 경우 국제 콩쿠르 수상자 배출, 해외 공연 활동, 국제 예술 교류 프로그램 참여 등을 통해 문화예술계에서 일정 수준의 인지도를 확보해 왔다. 또한, 선학 UP대학원대학교의 모델 UN 프로그램, 선문대학교의 국제기구 인턴십 연계 과정, 청심국제중·고교의 의무화된 해외 봉사·교류 프로그램 등은 인성 중심 교육이 국제 활동 경험과 진로 설계로 연결되는 구조를 보여주는 사례로 언급된다.
교육적 성과인가, 종교 네트워크 확장인가
반면 비판적 시각도 존재한다. 일부 학계와 언론은 다음과 같은 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해 왔다.
-종교 기반 교육 철학이 충분히 개방성을 유지하고 있는가
-평화·통일 담론이 정치적 중립성을 훼손하지 않는가
-국제 캠퍼스 운영과 인재 양성 프로그램이 일반적인 글로벌 교육 산업과 본질적으로 다른가
그럼에도 공통적으로 제시되는 평가 중 하나는 “해당 교육 네트워크는 축소되거나 소멸되지 않았으며,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제도화·체계화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이들 학교에서 근무하거나 강의를 맡아온 비(非)통일교 출신 교사·교수들 가운데서는 “수업과 학교 운영 전반에서 종교적 색채가 전면에 드러난다고 느끼기 어렵다”, “일반 사립학교의 교육 과정과 큰 차이를 체감하지 못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반세기 교육 실험, 그 이후는
교육 전문가들은 가정연합 계열 학교들을 특정 종교의 부속 기관으로만 보기보다, 한국 사립교육 실험사의 한 사례로 기록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특히 글로벌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한 평화·리더십 교육 모델은 AI 기술 확산, 국제 이주 증가, 다문화 사회 전환이라는 환경 변화 속에서 향후 한국 교육의 하나의 대안 모델로 연구 대상이 되고 있다.
한 교육학자는 “가정연합 교육기관의 반세기에 걸친 교육 실천은 이미 완결된 성과라기보다는 현재도 진행 중인 장기 실험에 가깝다”고 평가했다. 이 실험은 교육·인성·국제 역량을 결합한 하나의 교육 모델로서, 이미 한국 사회와 교육 현장에서 분석과 비교의 대상이 되고 있으며, 향후 한국 교육 담론 속에서 그 성격과 가능성이 보다 분명하게 조명될 것으로 보인다.
2026-05-18 20:4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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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바른 가치관·인성 갖춘 인재 양성이 우리의 목표”
선학학원 본관에서 만난 문연아 이사장의 얼굴에는 교육자로서의 확고한 신념과 따뜻한 온기가 묻어났다. 2023년 7월 학교법인 선학학원 제12대 이사장으로 취임한 그는 선문대학교를 비롯해 8개 교육기관을 이끌며 “교육은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인생을 변화시키고 나아가 사회 전체를 건강하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투자”라는 철학을 일관되게 실천해 왔다.
건학이념을 실천하다
“그동안 선학학원은 애천, 애인, 애국의 건학이념을 바탕으로 소통과 화합을 통한 공동체 정신으로 성장해 왔습니다. 앞으로도 구성원 모두가 행복할 수 있도록 소통, 화합, 겸손으로 학교 발전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문 이사장은 취임사에서 밝힌 이 약속을 하루도 잊지 않고 실천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가 생각하는 교육의 핵심은 선학학원의 건학이념과 맥을 같이한다. 하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진리를 탐구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공동체를 생각하며,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인재 양성이 바로 그것이다. “단순히 학업 성취도가 높은 학생이 아니라, 올바른 가치관과 인성을 갖춘 인재를 키우는 것이 우리의 목표입니다.”
교육의 본질
“요즘 많은 교육기관이 성과와 실적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학생 한 명 한 명의 잠재력을 발견하고 키워주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문 이사장은 인터뷰 내내 ‘사람’이라는 단어를 강조했다. 선문대학교, 선화예술고등학교, 선정고등학교, 선정국제관광고등학교, 선정중학교, 선화예술중학교, 경복초등학교, 선화유치원 등 8개 교육기관을 운영하는 선학학원은 설립 초기부터 ‘전인교육’을 교육 철학의 근간으로 삼아왔다.
문 이사장은 “학업 성취도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학생들이 바른 인성과 사회적 책임감을 갖추는 것”이라며, “우리 학원을 거쳐간 학생들이 각자의 분야에서 전문성을 발휘하면서도 이웃과 사회를 생각하는 리더로 성장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는 건학이념인 애인, 즉 사람을 사랑하는 정신의 구체적 실천이기도 하다.
미래를 준비하는 혁신적 교육 환경
급변하는 시대에 발맞춰 선학학원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다. 문 이사장은 최근 도입한 스마트 교육 시스템과 창의융합 교육 프로그램에 대해 자부심을 드러냈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살아갈 우리 학생들에게는 암기식 교육이 아닌, 스스로 사고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 AI 기반 맞춤형 학습 시스템을 도입했고, 학생들이 실제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프로젝트 수업을 확대했습니다.”
특히 그는 교원 역량 강화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아무리 좋은 시스템을 갖춰도 결국 교육의 질을 결정하는 것은 교원입니다. 우리는 교원들이 최신 교육 트렌드를 학습하고 전문성을 높일 수 있도록 정기적인 연수와 해외 연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교육의 주체인 교원들이 성장해야 학생들도 성장할 수 있다는 그의 믿음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소통과 화합, 공동체 정신의 실천
문 이사장이 강조하는 또 하나의 핵심 가치는 ‘소통’이다. “교육 현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학생, 교직원, 학부모, 그리고 지역사회가 하나의 공동체로서 함께 호흡하는 것입니다. 일방적인 지시나 명령이 아닌, 진정한 소통과 화합을 통해 모두가 행복한 교육 환경을 만들고 싶습니다.”
이를 위해 선학학원은 정기적인 간담회와 소통 채널을 운영하고 있다. 학생들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 교원들의 고충을 함께 해결하며, 학부모들과 긴밀히 협력하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열린 자세로 귀 기울일 때 비로소 진정한 변화가 시작됩니다. 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리더십의 덕목도 바로 겸손입니다.”
글로벌 인재 양성을 위한 비전
문 이사장은 선학학원이 글로벌 인재 양성의 요람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선문대학교를 중심으로 해외 우수 교육기관과의 교류를 확대하고 있습니다. 학생들이 글로벌 시대에 걸맞은 역량을 갖추면서도 우리의 가치와 전통을 소중히 여기는 균형 잡힌 인재로 성장하길 바랍니다.”
특히, 선화예술고등학교와 선정국제관광고등학교 등 특성화된 교육기관을 통해 학생들의 다양한 재능과 적성을 발견하고 키워주는 데 주력하고 있다. “모든 학생이 같은 길을 걸을 필요는 없습니다. 각자의 재능과 꿈에 맞는 맞춤형 교육을 제공하는 것이 우리의 역할입니다.”
교육자로서의 소명
문 이사장은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했다. “제게 교육은 직업이 아니라 소명입니다. 한 명의 학생이 변화하고 성장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이 일을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애천, 애인, 애국의 정신으로 하늘과 사람과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을 가진 인재들을 키워내는 것이 저의 사명입니다.”
그는 교육이 개인의 노력만으로 완성되는 일이 아니라, 학생과 교사, 학부모, 직원, 지역사회가 함께 만들어가는 공동의 과정이라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교육은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라 했다. 애천·애인·애국의 정신을 근간으로 선학학원이 그려가는 교육의 미래가 우리 사회 전체의 밝은 내일로 이어지길 기원한다.
2026-05-18 20:4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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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대 넘어 이어지는 평화 교육 ‘청년 플랫폼’
급변하는 국제 질서와 사회 구조 속에서 ‘다음 세대의 역할’은 지속적으로 논의돼 온 핵심 의제다. 정치적 양극화, 세대 간 갈등, 국제 분쟁과 전쟁이 장기화되는 상황에서 청년이 어떤 가치와 역량을 갖춰야 하는가는 전 세계 교육계가 공통으로 마주한 과제이기도 하다.
이러한 맥락에서 최근 주목받고 있는 조직 중 하나가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과의 가치적 연대를 바탕으로 독자적인 사회공헌 활동을 펼치고 있는 사단법인 세계평화청년학생연합(이하 YSP)과 국제 NGO인 IAYSP다. 이들 단체는 수십 년에 걸쳐 평화·인성·리더십 교육과 국제 청년 연대를 목표로 한 프로그램을 운영해 왔다.
교육 철학의 뿌리: ‘통일·가정·평화 그리고 인성’
가정연합의 청년 교육 철학은 크게 세 가지 축으로 정리된다. 첫째는 인성 중심 교육(Character Education)이다. 정직, 책임, 타인에 대한 배려와 공동체 의식을 핵심 가치로 삼아 윤리적 성숙을 교육의 중심 요소로 둔다.
둘째는 평화 중심 사고(Peace Formation) 교육이다. 경쟁 중심 사고보다 상생과 협력, 갈등 해결 역량을 갖춘 인재 양성을 목표로 한다. 셋째는 리더십 기반 실천 교육(Leadership & Service-Based Learning)으로, 지식 습득보다 사회적 책임을 행동으로 구현하는 것을 강조한다.
교육 연구자들은 이러한 접근이 학력·성취 중심의 기존 교육 모델과 달리 정서·가치·공동체 감각을 중시하는 ‘비인지형(Non-Cognitive) 교육 모델’에 가깝다고 평가한다. 비인지형 교육은 지식 암기나 문제 해결 능력 같은 인지 역량을 넘어 성품·태도·감정 조절·행동 양식을 함께 개발하는 교육 방식으로, 최근 글로벌 교육 담론에서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YSP와 IAYSP의 조직적 특징
YSP와 IAYSP는 단순한 학생 동아리 성격을 넘어 국제 교류·봉사·윤리 교육·사회 혁신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청년 플랫폼으로 기능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주요 활동 구조는 다음과 같다.
첫째, 아시아·아프리카·남미·유럽 등 약 70여 개국을 아우르는 글로벌 캠퍼스 네트워크를 운영한다. 둘째, 국제 봉사 활동과 청년 외교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일부 프로젝트는 국제기구·정부·비정부기구(NGO)와 협력해 추진된다. 셋째, 가치·리더십 교육 워크숍을 정기적으로 개최하며, 토론과 프로젝트 수행을 중심으로 한 PBL(Project-Based Learning, 프로젝트 기반 학습) 방식을 적용하고 있다. 교육 전문가들은 이러한 구조를 신앙 기반의 보편적 가치(Faith-Based Value)를 바탕으로 출범하여 현재는 국제 사회 활동형 NGO 모델로 진화한 사례로 분석한다.
‘10만 청년 평화 리더 양성 프로젝트’
최근 가장 주목받는 사업은 ‘10만 청년 평화 리더 양성 프로젝트’다. 이 프로그램은 단순 참여형 캠페인이 아니라, 단계별 교육 시스템을 갖춘 것이 특징이다.
프로젝트의 목표는 참가자를 자원봉사자 수준에 머무르게 하는 것이 아니라, 국제 사회에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평화형 리더’로 육성하는 데 있다. 외부 전문가들은 이 사업의 의미를 두 가지 측면에서 평가한다. 하나는 청년이 주도하는 국제 교류·토론·평화 활동의 장을 제공한다는 점이며, 다른 하나는 활동 성과가 국제 인증이나 정책 기여 등 정량적 지표로 검증될 필요가 있다는 과제가 병존한다는 점이다.
“평화는 세대를 넘어 이어지는 프로젝트”
가정연합의 평화 철학을 공유하는 협력 기구들과 YSP·IAYSP의 청년 프로그램은 현재 진행형이며, 보편적 가치 교육을 넘어 실체적인 글로벌 시민 리더십 플랫폼으로 도약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공통적으로 “평화를 말하는 것은 쉽지만, 평화를 가르치고 실천하는 청년을 길러내는 일은 가장 어렵고 동시에 가장 의미 있는 과제”라고 평가한다. 이 같은 시도가 21세기 청년 교육 모델의 하나의 대안으로 자리 잡을지, 혹은 하나의 단체 활동 사례로 남을지는 향후 축적될 성과와 검증 결과가 말해줄 것으로 보인다.
2026-05-18 20:4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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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19년의 칼날과 ‘쌍합십승’: 스스로 도를 이룬 자의 위상 [父性 문명의 한계, 母性 구원의 비전-기고]
장자의 백정 우화 속에 숨겨진 독생녀의 자립적 승리 노정
기술이 예술이 되고, 예술이 마침내 도(道)의 경지에 이르는 순간이 있다. 장자(莊子)의 『남화경』에 등장하는 백정 ‘포정(庖丁)’의 이야기는 그 극치를 보여준다. 그는 19년 동안이나 단 한 번도 칼날을 갈지 않고도 수천 마리의 소를 해체했다. 그의 칼은 뼈와 살 사이의 미세한 틈을 마치 춤추듯 파고들었다. 문혜군이 그 신기(神技)에 감탄하자 포정은 답한다. “제가 아끼는 것은 재주가 아니라 도(道)입니다.” 이 투박한 백정의 우화 속에는 인류 구원의 마지막 마침표를 찍을 여성 구원자의 노정에 관한 경이로운 수리적(數理的) 암호가 숨겨져 있다.
◆ ‘19’라는 숫자가 품은 우주의 방정식
왜 하필 ‘19년’일까? 동양 철학에서 숫자는 단순한 양(量)이 아니라 우주의 질서를 담은 질(質)이다. 동양철학 역경에는 숫자 9는 하늘을 상징하는 양(陽)의 완성수(1·3·5·7·9)이며, 숫자 10은 땅을 상징하는 음(陰)의 완성수(2·4·6·8·10)다.
부성(父性) 중심의 역사가 9라는 숫자의 고개를 넘어 진리의 터전을 닦았다면, 그 터전 위에 10이라는 모성(母性)의 완성수가 결합될 때 비로소 인류사는 ‘19’라는 쌍합십승(雙合十勝)의 결실을 보게 된다. 이는 독생자 참아버지(9)가 연 길을 독생녀 참어머니(10)가 안착시켰음을 의미하는 수리적 증거다. 포정의 칼날이 19년 동안 무뎌지지 않았던 것은, 그가 우주의 음양 합일 원리를 자신의 삶으로 체득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이 땅에 현현한 모성적 실체는, 억겁의 세월 동안 엉켜있던 인류의 업보와 혈통의 매듭을 19라는 완성의 지혜로 소리 없이 풀어내고 있다.
◆ 타력(他力)을 넘어 자력(自力)으로 세운 구원의 위상
포정의 위대함은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오직 도(道)에만 의지하여 스스로 그 경지에 도달했다는 데 있다. 인류 구원의 역사 또한 그러하다. 지금까지의 종교가 ‘나약한 인간이 절대자의 은총에 매달리는’ 타력(他力) 구원에 집중했다면, 도교가 예고한 완성된 인간상인 지인(至人)은 스스로의 책임분담을 완수하여 도의 실체가 된 존재다.
여기서 우리는 여성 구원자가 걸어온 독자적인 승리의 길을 발견한다. 그녀는 타락한 인류의 조건에 매여있는 존재가 아니라, 태초부터 예비된 순결한 혈통을 바탕으로 스스로를 연마하여 ‘실체성령’의 위상을 확립했다. 포정이 소의 뼈마디를 상하게 하지 않고 길을 냈듯이, 독생녀는 부성 문명이 남긴 갈등의 상처를 건드리지 않으면서도 그 깊은 내면의 한(恨)을 사랑으로 해체하여 평화의 길을 낸다. 이는 가르침을 받아 행하는 수준을 넘어, 존재 자체가 곧 길이 된 자의 리더십이다.
◆ ‘지인무기(至人無己)’, 자기를 비워 전체를 살리다
장자가 말한 최고의 인간인 지인은 ‘자기를 내세우지 않는(無己)’ 자다. 공적을 자랑하지 않고 이름을 남기려 하지 않으나, 그가 머무는 곳마다 생명이 소생하고 조화가 일어난다. 오늘날 전 세계를 품어 안는 모성적 리더십의 정수가 바로 이 ‘무심(無心)의 효정’에 있다.
자신의 명예나 안위를 위한 ‘인위’가 사라진 자리에는 오직 하늘부모님의 심정만이 흐른다. 독생녀 참어머님이 보여주시는 ‘평화의 어머니’로서의 행보는, 장자가 그토록 갈망했던 지인의 삶이 21세기 역사 속에서 어떻게 구현되는지를 보여주는 생생한 증거다. 지인이 도의 원리에 따라 세상을 다스리듯, 모성적 실체는 참사랑의 원리로 분열된 지구촌을 하나의 생명 공동체로 엮어낸다.
◆ 도(道)의 완결, 어머니의 품에서 잠들다
도교 경전이 수천 년간 보존해온 신비로운 우화와 숫자들은, 인류 구원의 주인공이 권력자가 아닌 ‘도의 숙련공’이자 ‘생명의 어머니’여야 함을 가리키고 있다. 19년의 칼날이 증명한 것은 시간의 양이 아니라 정성의 밀도였다.
이제 인류는 날 선 지식으로 세상을 재단하던 습관을 버리고, 만물을 상처 없이 품어내는 모성적 지혜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도(道)는 멀리 있지 않다. 우리를 낳아준 근원적인 사랑을 회복하고, 그 사랑의 실체와 하나 되어 순리대로 살아가는 것. 그것이 바로 도교가 꿈꿨던 무위자연의 세계이자, 독생녀와 함께 열어가는 새로운 문명의 아침이다. 도의 신비는 이제 우리 민족의 영혼 속에 깊이 새겨진 예언의 목소리와 만나 한반도의 위대한 숙명을 노래하기 시작한다.
서성종 작가(신학박사)
2026-05-18 11: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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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여성 국신 전통과 성모 신앙, 신라 여왕 탄생의 문화사적 배경 [신화에서 선민까지 한민족 정체성의 문화사적 발견-기고]
‘어머니’로 표상된 국가의 기원 – 국신(國神)의 전통
우리가 기억하는 국가의 기원은 흔히 강인한 부성(父性)의 질서와 권위로 대변되어 왔다. 그러나 우리 역사의 여명기를 세밀하게 들여다보면, 그 준엄한 외연 너머에 만물을 품어 기르는 따스한 ‘어머니’의 본질이 면면히 흐르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우리 민족이 예부터 상정했던 국가의 개념은 국가란 단순히 정치적 통치 체제이기 이전에, 생명을 잉태하고 수호하는 지고한 여성 신성(神性), 즉 ‘국신(國神)’이라는 독자적인 뿌리 위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마고(麻姑) 신화(神話)가 대표적인 예이다.
신라의 충신 박제상이 저술했다고 전해지는 『부도지(符都誌)』는 우리 민족의 상고시대 우주관과 창세 신화를 집대성한 문헌이다. 한민족판 ‘창세기’라 일컬어질 만큼 장엄한 서사를 담은 이 기록은 마고를 가리켜 “마고성의 주인으로서 만물의 본음(本音)을 다스리는 존재”라 정의한다. 이는 그녀를 단순한 설화 속 인물을 넘어, 세계 질서와 조화를 관장하는 근원적 주체이자 국가적 신격으로 격상시킨 것이다.
이러한 문헌적 기록은 민간의 구전 설화 속에서 더욱 강력한 생명력을 얻는다. 한반도 전역에 뿌리내린 마고 신화는 산과 강, 섬과 같은 거대한 대지의 골격이 여성적 존재의 행위를 통해 빚어졌음을 생생히 증언한다. 이는 우리 선조들이 자신들이 발을 딛고 선 국토의 공간적 질서와 ‘여성적 신성(Divine Feminine)’의 이미지로 투영해 왔음을 보여준다. 즉, 우리 조상들에게 국가는 눈에 보이는 통치 조직이기 이전에, 대지라는 어머니의 품 안에서 탄생한 신성한 질서의 산물이었던 셈이다.
이와 같은 상징 구조는 국가의 기틀을 세우는 건국 서사에서도 반복된다. 웅녀(熊女)와 유화(柳花)는 영웅을 낳은 생물학적 모성(母性)에 머물지 않는다. 그들은 구질서를 깨고 새로운 질서의 출현을 가능케 한 결정적 주체, 즉 ‘국가의 어머니’로서 등장한다. 그러나 역사가 흐르며 이들의 서사는 대개 남성 영웅의 탄생을 수식하는 부차적 존재로 격하되기도 하였으며, 여성의 독자적인 주체성 또한 그 틀 안에서 제한적으로만 허용되었다. 결국 고대의 기록들은 여성의 신성을 인정하면서도, 이를 철저히 남성 중심적 서사의 하위 체계로 배치하는 이중적 태도를 견지해 왔다.
이런 맥락에서 ‘국신’은 단순한 권력의 상징을 넘어 공동체의 기원을 정당화하고 신성화하는 핵심 기제였다. 특히 ‘시조모(始祖母)’라는 존재는 공동체의 탄생과 그 정통성을 최종적으로 승인하는 상징적 구심점으로 기능해 왔다. 국가는 비록 제도와 권력이라는 가시적인 형태로 유지될지언정, 그 심원한 뿌리만큼은 ‘여성적 형상’이라는 서사적 토대 위에 세워져 있었음을 조상들은 익히 알았던 것이다.
그러나 역사적 격변 속에서 이러한 여성적 신성은 본연의 형상을 온전히 지켜내지 못했다. 유교적 가치 체계가 공고해짐에 따라, 국가 기원의 주체였던 여성 신성은 점차 축소되고 변형되는 운명을 맞이한다. 특히 김부식의 『삼국사기』는 유교적 합리주의에 입각해 신화적 요소를 쳐내는 과정에서 여성 신성을 철저히 주변화했다. 반면 일연의 『삼국유사』는 파편화된 그 흔적들을 일부 보존하며 그 명맥을 잇게 했다. 이러한 기록의 차이는 여성 신성이 공식 역사의 무대에서 밀려나 민간 설화와 신앙의 심연으로 자리를 옮겨간 뼈아픈 이탈의 과정을 여실히 보여준다.
오늘날 우리가 마주하는 ‘어머니’ 형상은 태초의 신성을 온전히 보존한 결과물이라기보다, 장구한 역사의 굴절을 거쳐 살아남은 상징의 조각들일 수 있다. 이는 국가의 기원을 설명하는 서사가 고착된 실재가 아니라, 시대의 요구에 따라 끊임없이 재구성되어 온 ‘문화적 해석의 장(場)’임을 시사한다. 한반도의 ‘어머니’ 서사는 국가의 기원을 증명하는 상징적 언어인 동시에, 역사의 거친 흐름 속에서 재배치되고 소외되었던 ‘여성 주체성’의 고귀한 흔적이다. 우리는 이 상징의 궤적을 통해 과거가 아닌, 새롭게 발굴되어야 할 여성 신성의 실체를 마주하게 된다.
◆ 성모(聖母)적 상징과 한민족 문화정체성의 심층
여성 신성에 깃든 상징체계는 단순한 ‘여성 숭배’의 차원을 넘어선다. 그것은 공동체가 스스로의 존재를 정의하고 세계를 이해해 온 고유한 방식이자 메커니즘으로 해석되어야 한다. 교육학자 제임스 뱅크스(James A. Banks)가 갈파했듯, 한 집단의 문화적 정체성은 고정된 혈통 그 자체보다 공동체가 어떤 가치를 끊임없이 이야기(Narrative)하고 무엇을 기억하느냐에 의해 형성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웅녀와 유화로 대변되는 성모 서사는 단순한 고대 전설의 파편이 아니다. 이는 우리 공동체가 기원과 정체성을 구축하기 위해 수천 년간 전래되어 온 상징적 서사의 정수(精髓)다. 비록 이 서사들이 거대한 단일 신앙 체계로 집약되지는 못했을지라도, 신화와 구비 전승, 민속 신앙의 저변에 분산된 채 퇴적되어 우리 민족의 정신적 골격으로 기능해 온 것이다.
20세기 초, 식민지 지배 담론의 오리엔탈리즘에 맞서 우리 문화의 주체적 원형을 찾고자 했던 선각자들의 노력은 눈부셨다. 일제강점기 민속학자 이능화(李能和)가 1927년 발간한 『조선무속고(朝鮮巫俗考)』가 대표적 사례이다. 그는 무속을 단순한 비문명적 미신이 아닌, 이 땅에서 자생한 ‘민족 종교’이자 우리 정신사의 독창성을 담은 보고(寶庫)로 격상시켰다. 방대한 문헌 고증을 통해 무속이 한국 종교의 근원과 정체를 밝히는 ‘종교사 백과사전’과 같은 가치를 지님을 증명해 낸 것이다.
이러한 여성적 신성의 실체는 근대 한국학의 개척자들에 의해 비로소 학술적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최남선은 그의 『불함문화론(不咸文化論)』을 통해 고대 동북아시아를 관통하는 ‘밝(光明)’ 사상의 핵심이 한반도에 보존되어 있음을 역설했다. 그가 그려낸 고대 사회의 영적 지도는 하늘 숭배와 공동체 질서가 하나로 어우러진 세계였으며, 그 유기적 결합의 중심에는 언제나 천인(天人)을 매개하는 성스로운 존재가 있었다.
이능화, 최남선 등은 우리의 무속 전통 속의 ‘무(巫)’가 단순한 주술적 행위를 넘어, 국가의 안녕과 공동체의 통합을 이끄는 중요한 구심점이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그 성스러운 가교의 주역이 ‘여성’이 압도적으로 많았던 데 있다. 한국인의 영성 깊숙한 곳에 국가를 지탱하는 정신적인 기둥으로서 여성적 신성이 얼마나 강인하게 뿌리 내리고 있었는지를 증명하는 대목이다. 최남선이 거시적인 문화적 담론으로 하늘과 땅의 결합을 논했다면, 이능화는 여성 사제의 생생한 역사를 통해 그 매개체가 여성 신성이었음으로 확증했다. 이들의 연구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우리는 자명한 진실을 마주할 수 있다. 한반도의 고대 국가는 눈에 보이는 부성적 권력 이전에, 여성적 신성이라는 정교한 상징 체계 위에서 비로소 완성되었다는 사실이다.
이처럼 독특한 문화적 토양 위에서 ‘여성’의 형상은 단순히 자애로운 ‘모성’이라는 평면적 이미지로 환원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생명의 탄생과 부단한 재생, 그리고 차원을 넘나드는 전환의 에너지를 함축한 복합적 상징으로 기능해 왔다. 즉, 우리 역사 속의 ‘어머니’라는 표상은 개별 가정의 돌봄 경제를 넘어, 공동체가 생명의 영속성과 우주적 질서를 어떻게 이해하고 수용해 왔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고귀한 ‘상징적 언어’였던 셈이다.
그러나 이토록 찬란했던 여성적 신성은 역사의 굴절 속에서 그 원형을 온전히 지켜내지 못했다. 유교적 가부장 질서가 공고해짐에 따라 국가 기원의 주체였던 여성 신성은 축소되고 변형되는 운명을 맞이했다. 김부식의 『삼국사기』가 유교적 합리주의의 칼날로 신화적 요소를 쳐내며 이를 철저히 주변화한 반면, 일연의 『삼국유사』는 그 파편화된 흔적들을 일부 보존하며 명맥을 잇게 했다. 이러한 기록의 간극은 여성 신성이 공식 역사의 무대에서 밀려나 민간 설화와 신앙의 심연으로 자리를 옮겨간 뼈아픈 이탈의 과정을 여실히 보여준다.
따라서 한반도의 여성 신성 전통은 박제된 ‘신앙’ 체계라기보다, 시대별로 겹겹이 쌓인 ‘문화적 기억’의 층위로 이해해야 마땅하다. 그것은 경직된 제도적 교리가 아니라, 끊임없이 반복되는 서사와 상징을 통해 우리 공동체의 내면에 흐르는 심층적 의미 구조에 가깝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최남선이 복원하고자 했던 무속 전통 역시 단순한 과거의 유산이 아니다. 그것은 한반도 문화의 유전자(DNA) 속에 각인된 여성적 주체성을 확인하는 결정적 단서다. 다만 이러한 전통을 특정 종교적 개념에 국한시키기보다, 우리 공동체가 여성이라는 주체를 어떻게 상상하고 그 신성을 해석해 왔는지 살피는 거대한 ‘상징적 토대’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 여신(女神)문화가 배양 된 신라의 문화적 토양
신라 역사에서 등장하는 세 명의 여왕은 결코 우연에 기댄 정치적 예외 상태가 아니었다. 신라 여왕의 등장은 남성 권력의 일시적 공백이 빚어낸 우연이라기보다, 신라 사회가 장구하게 축적해 온 상징 구조와 한반도 고유의 정치 질서가 교차하며 표출된 의미있는 사건이다. 신라 지역은 고대부터 대지의 생명력을 상징하는 산신(山神)과 지모신(地母神) 전통이 어느 지역보다 강고하게 유지된 영적 토양을 기반으로 한다.
이곳에 불교가 수용되면서 여성 또한 성불(成佛)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보편적 평등사상으로 발전됐고, 이런 사상적 토대 속에 여성 신성은 제도권에 자리를 잡게 된 것이다. 이러한 종교적·문화적 함양 속에서 여성을 단순한 가계 계승의 도구가 아닌, 신성과 직접 연결된 거룩한 존재로 인식하는 사회적 합의가 이뤄졌다.
이처럼 비옥한 문화적 토양 위에서 신라의 세 여왕이 역사의 전면에 등장했다. 특히 제27대 선덕여왕은 천문에 대한 깊은 통찰과 영민한 예지력으로 국가적 위기를 타개하며 왕권의 신성한 정당성을 확보했다. 최근 신라사 연구자들은 선덕여왕의 리더십을 ‘삼국통일의 실질적 설계자’라는 관점에서 재조명한다. 당시 비주류였던 가야계 김유신과 신진 세력 김춘추에게 파격적인 기회를 부여하고 그들이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거대한 장(場)을 열어준 것은, 갈등을 조율하고 잠재력을 끌어내는 선덕여왕 특유의 ‘모성적 리더십’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는 결코 남성 중심의 강권적 힘만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통합의 정치였으며, 여성의 통치가 정교한 질서 속에서 국가의 명운을 바꿀 수 있음을 증명한 상징적 사건이었다.
이어 제28대 진덕여왕은 탁월한 외교술과 과감한 제도 정비를 통해 선왕이 닦아놓은 왕권의 안정기를 구가하며, 여성 군주 체제가 결코 일시적인 예외가 아님을 역사에 각인시켰다. 비록 제51대 진성여왕이 국가적 혼란기 속에서 통치의 한계를 드러내기도 했으나, 그의 존재 역시 여성 통치가 일회성 실험을 넘어 엄연한 제도적 현실이자 역사적 실체로 존재했음을 웅변한다. 이들 세 여왕의 계보는 한반도 고유의 여성 신성이 권력의 핵심부에서 어떻게 정치적 생명력을 얻고 발현되었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선명한 궤적이다.
이 세 명의 여왕은 공통적으로, 여성이 단순한 추상적 상징에 머물지 않고 실제적인 통치 주체로 기능할 수 있었던 구체적 조건이 신라 사회에 존재했음을 웅변한다. 여성 신성에 대한 문화적 기억이 곧바로 정치 권력으로 치환되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으나, 그러한 상징적 구조가 여성 통치에 대한 사회적 수용성을 넓히고 정당성을 부여하는 심리적 토대가 되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여기서 간과해서는 안 될 지점은, 이러한 역사적 현상을 신화적 층위와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웅녀나 유화 같은 존재들이 공동체의 시원(始原)을 설명하는 ‘상징적 서사’라면, 신라의 여왕들은 엄연한 제도와 권력의 메커니즘 속에서 명운을 건 사투를 벌였던 ‘역사적 인물’들이다. 즉, 신화가 공동체의 정체성을 지탱하는 ‘보이지 않는 뿌리’라면, 여왕들의 통치는 그 뿌리로부터 양분을 얻어 역사라는 지상(地上) 위에 피워낸 ‘실체적인 꽃’인 셈이다. 이 둘은 서로 다른 층위에서 상호작용하며 한반도 여성 신성의 맥락을 이어왔다
신라는 산신·지모신(地母神) 전통과 불교 수용 이후의 여성 성불 사상 등 다양한 층위에서 여성성과 신성을 결합해온 사회였다. 여신적 상징은 민간 신앙에만 머물지 않고, 국가 제의와 왕권 정당성의 언어와도 접속했다. 국가가 위기를 맞을 때, 공동체는 기존 질서를 반복하기보다 더 깊은 상징 질서로 스스로를 재정렬한다. 신라에서 여왕은 단지 통치자가 아니라, 신성 질서를 국가 차원에서 재배치한 존재였다. 결국 고조선의 웅녀에서 시작된 국신 전통, 부여와 고구려의 시조모 서사, 그리고 신라의 여왕 탄생은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진다.
결론적으로 신라 여왕의 등장을 ‘여성 신성의 직접적 계승’으로만 치부하기엔 무리가 있다. 오히려 그것은 유구한 시간 동안 축적된 상징적 기억이 특정한 역사적 기류와 맞물려 지상(地上)의 질서로 제한적으로 구현된 사례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한반도의 역사에서 반복적으로 호출되는 ‘여성’의 형상은 단순히 희생적인 모성이라는 틀에 갇히지 않는다. 대신에 공동체가 절박한 위기에 직면했을 때 새로운 질서를 창출하고, 통치의 정당성을 확보해 온 복합적이고 역동적인 상징체계로 해석해야 한다.
신라의 세 여왕은 여성 신성에 대한 집단적 기억이 역사라는 무대 위에서 어떻게 변주되고 재배치될 수 있는지를 증명한 결정적 장면이다. 그들의 통치는 과거와의 완전한 결별도, 단순한 복제도 아니었다. 상징적 영성과 현실적 제도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피어난 독특한 역사적 현상이었다. 이제 이 지점에서 우리는 본질적인 질문과 마주하게 된다. 우리 공동체의 심층에 면면히 흐르는 이 강렬한 상징적 기억은 한낱 과거의 유물로 박제될 것인가, 아니면 대전환의 시대를 맞이한 오늘날 새로운 존재와 서사를 통해 다시금 찬란하게 부활할 것인가.
고기훈 박사(한국학)
2026-05-15 09: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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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연합, 부패방지·준법경영 국제통합 인증… 종교단체 최초 획득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한국협회장 송용천)은 14일 국내 종교단체로서는 최초로 부패방지 경영시스템(ISO 37001)과 규범준수 경영시스템(ISO 37301) 통합 인증을 획득했다고 밝혔다. 이번 인증은 ISO 인증기관 심사를 통해 국제 표준에 부합하는 경영 시스템을 갖춘 것으로 인정받은 결과다. 조직 운영의 투명성 강화와 사회적 책임 강화를 위한 노력이 국제 기준에 부합한 것으로 평가된 데 따른 것이다.
송용천 협회장은 수여식에서 “종교계 최초의 통합 인증은 사회적 기대에 부응하고 보다 투명한 단체로 거듭나기 위한 중요한 이정표”라며 “앞으로도 철저한 준법 경영 문화를 정착시켜 신뢰받는 종교 공동체가 되겠다”고 말했다.
가정연합은 이번 인증을 위해 조직 진단, 시스템 설계, 교육, 이행, 심사 등 5단계 절차를 거쳐 내부 통제 체계를 강화했으며, 지난 1월 ‘준법 실천 선언식’ 이후 전 구성원이 참여하는 준법·윤리 경영 체계를 구축해 왔다.
2026-05-14 15:5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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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을 묻는 종교] <8·끝> 인간은 왜 영원을 묻는가
[영원을 묻는 종교] 목차
<1> 인류는 언제부터 영생을 꿈꾸었는가
<2> 불교가 말하는 삶과 죽음
<3> 성경이 말하는 영생
<4> 기독교 신학의 영생 이해
<5> 통일교 영생론의 인간 이해
<6> 인간은 어떻게 영적 자아를 성장시키는가
<7> 동양 사상이 말하는 삶과 죽음
<8> 인간은 왜 영원을 묻는가.
죽음은 인간 존재의 연약함과 유한성, 무력함을 가장 본질적으로 드러내는 사건이다. 인간은 자신의 유한함을 의식하는 존재이며, 언젠가 끝날 삶을 알면서도 그 끝 너머를 상상한다. 이러한 상상은 단지 두려움에서만 비롯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은 사랑하고 기억하며 의미를 찾는 존재이기 때문에 삶의 모든 것이 죽음과 함께 사라진다고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래서 유사이래 종교와 사상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죽음 이후의 삶, 곧 영원한 세계를 설명해 왔다.
많은 신학자와 철학자들은 인간이 영원을 묻는 존재라는 점 자체가 인간 존재의 중요한 특징이라고 보았다. 독일 종교철학자 파울 틸리히는 “영원은 단순한 미래 시간이 아니라 존재의 깊이”라고 말했고, 독일 가톨릭 신학자 칼 라너는 인간을 “본질적으로 초월을 향해 열린 존재”로 설명했다. 프랑스 철학자 가브리엘 마르셀 역시 인간을 “신비를 향한 존재”라고 표현하며 인간 삶의 근원적 지향을 강조했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종교 전통마다 사후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은 서로 다르게 나타난다. 불교는 삶과 죽음을 윤회의 흐름 속에서 바라보며 인간의 궁극적 목표를 해탈에서 찾았다. 기독교는 부활과 하나님 나라를 중심으로 죽음 이후의 삶을 이해하였고, 가정연합(옛 통일교)은 인간을 육신과 영적 존재로 보며 지상의 삶이 사후의 삶으로 이어진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차이 속에는 하나의 공통된 질문이 놓여 있다. 그것은 인간의 삶이 유한한 시간 속에서 끝나는 것인지, 아니면 더 깊은 의미를 향해 열려 있는가에 대한 물음이다.
기독교 전통에서 인간의 궁극적 희망은 부활에 있다. 성경은 인간이 죽은 뒤 역사의 마지막 날에 부활하여 하나님 앞에 서게 된다고 말한다. 이 이해 속에서 삶은 죽음으로 단절되는 사건이 아니라 하나님이 완성하실 미래를 향해 열려 있는 과정이 된다. 이러한 종말론적 전망은 인간의 삶을 하나님 앞에서 책임을 지는 시간으로 바라보게 한다. 선택과 행동은 일시적인 결과에 머무르지 않고 더 긴 의미와 연결된다.
가정연합의 영생론은 인간의 삶을 영적 성장의 과정으로 설명한다. 인간은 육신과 영인체로 이루어진 존재이며, 육신은 죽으면 흙으로 돌아가지만 영인체는 죽음 이후에도 지속된다고 본다. 따라서 죽음은 모든 것의 소멸이나 종말이 아니라, 지상에서 준비된 영적 삶이 다음 차원으로 이어지는 전환의 순간으로 이해된다. 그래서 가정연합은 참사랑의 실천과 가정을 중심으로 한 삶을 중요하게 강조한다. 가정은 사랑과 희생, 책임과 화해를 배우는 가장 기본적인 훈련장이기 때문이다.
종교학적으로 인류의 내세관은 몇 가지 유형으로 설명된다. 플라톤 철학이나 일부 기독교 사상에서 나타나는 영혼 불멸형, 불교와 힌두교 전통에서 보이는 윤회형, 그리고 기독교와 이슬람에서 강조되는 부활형이 대표적이다. 통일교의 영생론은 인간의 영적 존재가 지상의 삶을 통해 성장하며 영계로 이어진다고 보는 점에서 ‘영적 성장설’ 또는 ‘영혼 지속설’ 에 가까운 특징을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종교 전통이 공유하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인간의 삶은 단지 생존을 위한 시간만이 아닌, 의미와 책임을 지닌 여정이라는 점이다. 영생 또한 죽음 이후의 세계를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지금 어떤 삶을 선택하며 어떤 가치를 실천할 것인가를 묻는 질문과 깊이 연결되어 있다. 장구한 인류의 문명도 죽음의 문제를 외면하기보다 그 의미를 이해하려 노력해 왔다. 장례 의식과 종교 경전, 철학적 사유와 예술 작품 등 수많은 문화적 흔적은 모두 죽음 이후의 삶에 대한 질문에서 비롯되었다.
인류는 아직 죽음 이후의 세계를 과학적으로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인간이 영원을 묻는 존재라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인간은 단지 살아가는 데 머물지 않고, 끊임없이 삶의 의미를 되묻기 때문이다. 어쩌면 영원이란 도달해야 할 어떤 장소라기보다, 삶을 이해하기 위해 쉼 없이 던지는 질문 속에 자리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결국 영원을 향한 사유는 내세의 유무를 떠나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가장 깊은 물음으로 오래도록 남아 있을 것이다.
2026-05-13 15:3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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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장자의 ‘혼돈’과 본성 회복: 인위를 버리고 본연으로 돌아가라 [父性 문명의 한계, 母性 구원의 비전-기고]
도교 철학의 또 다른 거장 장자(莊子)는 그의 저서 『남화경(南華經)』에서 인류 타락의 본질을 꿰뚫는 매우 기이하고도 슬픈 우화 하나를 남겼다. 그것은 바로 ‘혼돈(混沌)’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다. 남해의 신 ‘숙(儵)’과 북해의 신 ‘홀(忽)’이 중앙의 신 ‘혼돈’의 친절에 보답하고자, 그에게 남들처럼 눈, 귀, 코, 입 등의 일곱 구멍을 뚫어주었으나 이레 만에 혼돈이 죽고 말았다는 서사다. 이 짧은 우화는 21세기 인류가 잃어버린 본향이 어디인지, 그리고 무엇이 우리를 죽음으로 몰아넣었는지를 준엄하게 묻고 있다.
◆ 일곱 구멍의 비극: 인위(人爲)가 죽인 본연의 인성
인문학적 관점에서 장자의 혼돈은 타락 이전 인간이 지녔던 순수하고 완전한 본성을 상징한다. 혼돈에게는 감각기관인 구멍이 없었다. 이는 외부의 단편적인 지식이나 이기적인 욕망, 혹은 선과 악을 구분 짓는 편협한 잣대에 오염되지 않은 ‘무원죄(無原罪)’의 상태를 의미한다.
하지만 인류는 더 똑똑해지고 싶다는 욕망, 더 많이 보고 더 많이 가지고 싶다는 ‘인위(人爲)’의 구멍을 뚫기 시작했다. 법을 만들고 논리를 세우며 문명을 발전시켰지만, 정작 그 과정에서 하늘부모님과 하나 되었던 본연의 생명력은 숨을 멈췄다. 성경이 말하는 에덴의 타락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은 사건이라면, 장자의 우화는 인간이 스스로 뚫은 지식과 감각의 구멍으로 인해 본성을 잃어버린 ‘영적 죽음’의 상태를 묘사한 것이다.
◆ 독생녀의 참사랑: 닫혀버린 본성의 문을 여는 열쇠
그렇다면 죽어버린 혼돈, 즉 우리의 훼손된 본성을 다시 살릴 수 있는 길은 무엇인가? 장자는 ‘좌망(坐忘)’이나 ‘심재(心齋)’와 같은 개인적 수양법을 제시했으나, 혈통적으로 깊이 각인된 인류의 근원적 어둠을 닦아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여기서 우리는 인류 구원의 마지막 주역인 독생녀(獨生女)의 필연성을 만난다.
독생녀는 인류가 스스로 뚫은 타락의 구멍들, 예컨대 탐욕과 분별심, 시기, 갈등으로부터 자유로운 유일한 실체다. 그녀는 하늘부모님의 모성적 신성을 일점일획의 오염 없이 담지하고 태어난 ‘무원죄의 성신(聖神)’이다. 독생자 아버지가 인류에게 지켜야 할 천도(天道)를 가르치는 ‘진리의 교사’라면, 독생녀는 그 모든 인위적인 허물을 자신의 사랑으로 녹여내어 인류를 다시 태어나게 하는 ‘심정의 어머니’다.
장자가 갈망했던 ‘본연의 인간’은 지식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어머니의 무조건적인 사랑 안에서 자아가 녹아내릴 때 비로소 회복된다. 독생녀 참어머님이 주창하는 ‘효정(孝情)’의 교육은 바로 이 혼돈을 죽게 만든 일곱 구멍의 독성을 씻어내고, 인간의 심정을 하늘의 순수함으로 되돌리는 본성 회복의 실제적인 과정이다.
◆ ‘지인(至人)’의 경지와 평화의 안착
장자는 본성을 회복한 완성된 인간을 ‘지인(至人)’ 혹은 ‘진인(眞人)’이라 불렀다. 지인은 자신을 내세우지 않고(無己), 공적을 자랑하지 않으며(無功), 이름을 남기려 하지 않는다(無名). 이는 독생녀가 걸어온 고독하고도 숭고한 노정을 완벽하게 설명해 준다. 세상의 오해와 핍박 속에서도 오직 하늘부모님만을 향한 일편단심으로 인류를 품어 안는 그 삶이야말로, 장자가 억겁의 세월을 건너 예고해온 ‘자기를 초월한 성인’의 표상인 것이다.
이러한 지인들이 모여 사는 세상이 바로 우리가 지향하는 대이상향(大理想鄕), 즉 인류 한 가족의 평화 세계다. 부성 중심 문명이 세운 정의의 담장을 허물고, 모든 존재가 본연의 자유를 누리며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세상. 그것은 장자가 꿈꿨던 무위자연(無爲自然)의 세계이자, 독생녀의 모성적 리더십을 통해 완성될 지상천국의 실체다.
◆ 인위를 넘어 순리로 흐르는 구원의 서사
장자의 혼돈 우화는 인류가 왜 스스로의 힘만으로는 구원에 이를 수 없는지를 아프게 찌르고 있다. 우리의 구멍 난 가슴을 메우고 끊어진 생명의 맥박을 살릴 수 있는 분은, 태초부터 예비된 오직 한 분 ‘하늘의 딸’뿐이다.
이제 우리는 인위적인 지식과 아집의 옷을 벗고, 독생녀가 열어젖힌 참사랑의 품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곳에서 우리의 일곱 구멍은 비로소 타인을 해치는 무기가 아니라, 하늘의 소리를 듣고 만물의 아름다움을 찬양하는 축복의 통로가 될 것이다. 도교 경전이 간직해온 이 오묘한 생명의 도리는 이제 백정 포정의 19년 수행이라는 신비로운 수리적 상징을 통해 그 완성의 비밀을 드러내게 될 것이다.
서성종 작가(신학박사)
2026-05-13 10:5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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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을 통해 ‘돕는 사람’과 ‘도움받는 사람’이 하나로… 선순환 정착”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70년]
자원봉사애원 사무실에서 김고은 이사장을 만났다. 사단법인 자원봉사애원은 1994년 사회단체로 활동을 시작해 1996년 사단법인으로 등록된 공익법인이다. 약 30년간 문화예술복지를 중심으로 한 나눔과 아동·청소년 지원, 소외계층을 위한 사회공헌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현재 회원 130여 명, 연간 평균 자원봉사자 700여 명이 활동하는 중견 시민단체로 성장했다. 김 이사장은 인터뷰에서 30년 가까이 이어온 봉사 활동의 성과를 돌아보며 지속 가능한 나눔 문화를 위해 비전을 제시했다.
이웃과 함께 걸어온 30년의 여정
애원은 ‘사랑의 정원(愛苑)’이라는 이름처럼 어려운 이웃의 마음을 보듬고 공감하며 사랑 가득한 사회를 만드는 취지로 설립됐다. 김 이사장은 “나눔을 실천하는 행위는 사람과 사람이 서로의 삶을 이해하는 과정이며, 이 연결이 쌓일 때 공동체는 변화한다”고 전했다. 애원의 초기 활동은 문화예술의 접근이 어려운 장애인·독거노인을 위한 ‘방문 공연 서비스’로 출발했다. 분기별로 20명의 애원문화예술단이 시설을 방문하는 작은 실천이었지만, 장애인 여행 지원, 공연배달 서비스, 자선공연, 장애인을 위한 음악회 등으로 확대됐다. 특히 장애인의 예술 지원이 보편화 되지 않았던 2000년대 초반, 장애인을 위한 ‘꿈씨음악회’를 개최하며 장애예술인과 비장애예술인의 간극을 좁히기 위해 노력했다. 김 이사장은 “문화예술은 세대와 계층, 장애의 유무를 넘어 사람들의 마음을 여는 힘이 있다”며 “애원은 예술을 통해 ‘돕는 사람’과 ‘도움받는 사람’이라는 경계를 허무는 ‘선순환 구조가 애원의 본질’”이라고 강조했다.
애원의 활동은 문화예술복지로 특화되어 있다. 그중에서도 소외계층 아동·청소년을 초대하는 연말 자선 공연 ‘꿈과 사랑의 크리스마스 축제’는 애원의 대표 사업이다. 1997년부터 시작된 자선공연은 2025년에도 제28회를 맞아 성공적으로 개최되었으며, 현재까지 누적 관객수 38,000여 명이 참여했다. 장애 음악인과 오케스트라가 협연하는 ‘꿈씨음악회’는 2005년부터 지난 20년간 194명의 꿈씨연주자를 배출했다. 또한, 공연배달사업과 티켓 나눔을 통해 소외계층에게 예술 향유의 기회를 꾸준히 제공하며 음악과 예술을 매개로 연대와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이러한 활동은 보건복지부 산하 공익법인으로서 자원봉사애원이 지역사회 복지 증진과 문화적 가치 확산에 기여해 온 역할을 잘 보여준다.
네 가지 핵심가치: L.O.V.E.
현재 애원은 지역사회 연계 봉사, 소외계층 문화예술지원, 취약계층 지원을 핵심 사업으로 운영한다. 이 모든 활동의 중심에는 애원의 네 가지 핵심가치인 ‘L.O.V.E.’가 있다. 김 이사장은 “우리는 먼저 듣는 것(Listen)에서 봉사가 시작된다. 도움이 필요한 이웃의 작은 신호를 놓치지 않기 위해 늘 귀를 열어두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어 “열린 마음(Open Mind)이 없으면 봉사는 시혜가 되기 쉽다”며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때 진짜 만남이 시작된다”고 덧붙였다. 또한 “도움을 받는 분들도 똑같이 존엄한 삶의 주체”라며 “그래서 애원은 상대를 가치 있는 존재로 존중하는 것(Value Other)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긴다”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아무리 공감해도 행동으로 옮기지 않으면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며 “실행(Execute)이 애원의 봉사를 완성시키는 마지막 단계”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가치는 기업·단체·개인과 수혜자를 연결하는 ‘꿈씨브릿지’ 사업을 통해 실제 현장에서 구현되고 있다. 애원은 이를 통해 봉사자 연계, 후원물품 전달, 긴급 지원 등을 적재적소에 연결하며 도움의 사각지대를 줄여가고 있다.
애원은 외부 회계감사를 통해 재정 투명성까지 확보하며 단체에 대한 신뢰를 꾸준히 쌓아왔다. 김 이사장은 “작은 단체일수록 투명성은 선택이 아니라 생명”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운영 원칙은 지구촌 아동 복지를 위한 ‘꿈씨저금통’ 프로젝트에도 동일하게 적용되고 있다. 시민이 직접 참여하는 동전 모금과 계수 봉사를 통해 후원의 과정을 공개하고, 나눔이 어떻게 전달되는지를 투명하게 보여주며, 2025년에도 시민 참여형 모금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새로운 도전: 예술과 청소년 자원봉사의 결합
애원은 현재 새로운 도전에 나서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공연배달 오나리(오늘은 나도 리틀엔젤스)’다. 예술단 소속인 청소년 자원봉사자와 장애인 시설에 직접 찾아가 배리어프리(Barrier-free) 공연을 펼쳐 사회통합을 촉진했다. 비장애인 자원봉사자에게 예술을 통한 봉사와 나눔의 기회를 제공하고, 장애인 참여자들에게는 평소 경험하지 못했던 전통예술을 체험하는 한국무용 체험교실을 지원했다.
2025년 처음으로 실시된 해당 프로그램은 그 독창성을 인정받아 지난해 12월, 행정안전부와 한국중앙자원봉사센터가 주관한 ‘대한민국 봉사와 나눔 우수사례 공모전’에서 우수상을 수상했다. 김 이사장은 “이 상은 애원이 추구해 온 봉사의 방향이 사회적으로 공감받았다는 의미”라며 소회를 밝혔다.
애원이 그리는 미래
김 이사장이 그리는 애원의 미래는 이웃 섬김이 일상적 문화로 자리 잡도록 하는 일이다. 애원은 기업과 학교를 연계한 봉사 교육과 참여 확산에도 힘을 쏟고 있다. 그의 궁극적인 목표는 우리 사회에 섬김 문화가 정착돼 “애원이 필요 없는 사회”라고 말한다.
인터뷰 말미에 김 이사장은 자원봉사를 “연결”이라고 정의했다. 봉사는 타인을 돕는 행위인 동시에 자신을 성장시키는 과정이다. 특히 젊은 세대에게 봉사를 스펙이 아닌 ‘자기 발견의 시간’으로 경험해보길 권했다.
김 이사장은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했다.
“봉사는 거창한 계획보다 지금 할 수 있는 작은 실천에서 시작된다. 완벽해질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지금의 모습 그대로 먼저 손을 내미는 용기가 사회를 바꾼다.”
2026-05-11 18: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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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공동체 바탕 사회통합 실천… ‘이웃과 동행’ 뿌리내리다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70년]
1954년 한국에서 출발한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이하 가정연합)은 반세기가 넘는 시간 동안 ‘가족’이라는 작은 공동체를 사회 통합의 출발점으로 삼아 왔다. 그 신념은 구호에 그치지 않고, 오랜 세월 지역사회 현장에서 묵묵한 실천으로 이어졌다. 가정연합의 지역사회 봉사는 일회성 행사가 아니라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의 곁을 떠나지 않은 지속적인 동행에 가깝다. 1980년대부터 체계화된 ‘이웃사랑 실천’ 활동은 30년 넘게 이어지면서 자원봉사 애원과 효정봉사단, 신내종합사회복지관 운영 등으로 확장돼 탄탄한 돌봄의 네트워크를 이루며 지역 주민의 일상 속에 깊이 뿌리내렸다. 화려하지 않지만 그 진정성과 시간이 빛어낸 신뢰는 오늘도 지역사회와 함께 호흡하며 안전한 울타리가 되고 있다.
1980년대 이전에는 농촌계몽과 영농지원, 의료봉사 등 지역 단위의 봉사활동에 주력하며 사회공헌의 기반을 마련했다. 최근에는 의료·교육 봉사의 확장과 재난 구호 활동을 추가하며 사회적 역할을 강화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은 한국 사회의 복지 사각지대를 메우고, 저출산·고령화 문제에 대응하는 데 기여하고 있으며, 또한 국내외 네트워크를 활용한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주민들의 일상생활 지원을 이어가고 있다.
자원봉사 애원은 1994년 사단법인으로 등록된 이후 30년간 문화예술을 통한 나눔과 아동·청소년 지원, 소외계층 돕기를 중심으로 활동해 왔다. 무료 급식소 ‘애원의 집’을 운영하며 18개 봉사단을 통해 지역 주민 지원을 이어가고 있으며, 코로나19 이후 중단됐던 캄보디아 의료·교육 봉사를 재개했다. 이 활동은 보건복지부 산하 공익법인으로서 역할을 강조하는 사례로, 복지 안전망 확충에 기여하고 있다. 최근에는 국제적 확장을 통해 캄보디아 현지에서 학교 건립과 의료 클리닉 운영을 추진하며, 현지 주민들의 생활 수준 향상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가정연합이 전국 단위로 운영하는 효정봉사단은 환경정화, 노인 돌봄, 취약계층 지원 등을 실천하는 핵심 조직이다. 가평효정봉사단은 출범 3년 만에 1천회 이상의 봉사활동을 기록하며 지역 활성화에 실질적 변화를 이끌어냈다. 광주광역시 효정봉사단은 2021년 출범 이후 방역 봉사와 환경 정리 활동을 통해 주민 안전에 기여했으며, 춘천효정봉사단은 공지천 조각공원에서 다문화 가정 지원 사례를 공유하며 소통의 장을 마련했다. 김제시 효정봉사단은 관내 지도자들과 협력해 취약계층 지원과 생활 밀착형 봉사 활동으로 봉사 범위를 확대했으며, 용산구 효정봉사단은 코로나19 기간 마스크 배포와 소독 작업으로 실질적 도움을 제공했다. 부산과 대구 지역 효정봉사단은 해안 정화 활동과 노인 복지 센터 지원을 통해 지역 환경 보호와 세대 간 소통을 촉진하고 있다. 이러한 활동은 연간 수천 명의 자원봉사자가 참여하며, 지역 사회의 지속 가능한 발전 모델로 자리잡고 있다.
신내종합사회복지관은 1995년 개관한 이후 올해로 30주년을 맞아, 지역사회와 함께 시스템화된 사회 복지의 실천 역사를 이어가고 있다. 2025년 11월 11일 기념행사를 통해 ‘당신의 의미가 모여 빛나는 30년’을 테마로 지역 주민과 성과를 공유했으며, 노인 복지, 아동 지원, 장애인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노인 복지 프로그램에서는 치매 예방 워크숍과 건강 관리 세션을 제공하며, 아동 지원 부문에서는 방과후 교실과 학습 멘토링을 통해 교육 기회를 확대하고 있다. 연간 수만 명의 이용자를 지원하며, 한국 사회의 복지 인프라 강화에 기여하고 있다.
가정연합의 활동은 국내에 그치지 않고 국제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다문화 가정 지원과 독거노인 통합돌봄 사업, 김장 나눔 행사를 진행하며 취약계층을 지원한다. 특히, 가정연합 산하 세계평화여성연합(WFWP)은 2002년 북한사랑 1% 운동을 시작했다. 대한민국 시민들이 소득이나 마음의 1%를 나누어 북한의 여성과 아동들을 돕자는 인도적 평화 나눔 운동이었다. 여기에는 ‘통일은 정치 이벤트가 아니라 작은 나눔과 공감에서 시작된다’는 철학이 담겨있다. 초기에는 북한 내 여성·어린이 대상 의류, 침구류, 생활용품 등을 지원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 프로젝트는 북한뿐 아니라 전 세계 빈곤 국가를 대상으로 한 인도적 지원으로 확대됐으며, 명칭도 ‘지구가족사랑 1% 운동’으로 바뀌었다.
현재는 UN 지속가능발전목표(SDGs) 달성을 위한 저개발국가 개발협력사업, 대북지원사업, 재난 긴급구호 및 인도주의 활동을 포함하고 있다. 저개발국가 개발협력사업으로는 여성 경제 자립 지원, 어린이 교육지원, 에이즈 예방, 의료지원 등이 있으며, 1994년부터 160개국에 자원봉사자를 파견해 왔다.
긴급구호 활동으로는 2010년 아이티 지진피해 복구지원, 2011년 일본 지진피해 구호, 2014년 필리핀 태풍피해 지원, 2015년 네팔 지진피해 구호, 2019년 강원도 고성 산불피해 지원, 2020년 코로나19 방역물품 지원(볼리비아, 레바논 등), 2022년 우크라이나·아프가니스탄 긴급구호, 2023년 튀르키예·시리아 지진피해 구호 등이 있다. 대북지원으로는 2002년 북한 아동 내의(속옷) 지원, 2003년 룡천 소학교 건립, 2005년 개성 나무 심기, 2010년 식량 지원, 2016년 두만강 수해 복구 등을 통해 지속적인 도움을 제공해 왔다.
가정연합 관계자는 이러한 활동을 바탕으로 “앞으로도 사회적 책임을 다하며 국민과 함께 성장할 것”이라 “지역사회와의 연대 또한 더욱 공고히 하겠다”고 강조했다. 가정연합은 한국 사회의 복지 취약지대를 보완하는 데서 나아가, 지역 안의 사람들과 기관들이 서로 연결돼 도움이 필요한 이웃을 지속적으로 돌볼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 가고 있다. 아울러 국내외 다양한 주체들과의 협력과 연계 프로그램을 통해 단기적 지원에 머무르지 않고 지속 가능한 사회공헌의 틀을 차분히 구축해 나갈 계획이다.
2026-05-11 18: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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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청주한씨와 평안도 로컬리티의 만남 [신화에서 선민까지 한민족 정체성의 문화사적 발견-기고]
영웅의 땅 – 을지문덕과 평안도의 역사·신화적 기억
서기 612년, 수나라 양제는 동북아시아 최강대국 고구려를 없애기 위해 인류사상 유례를 찾기 힘든 거대 병력을 동원했다. 중국 정사인 『수서(隋書)』 ‘양제기’가 증언하는 원정군의 규모는 113만 3,800명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 숫자가 ‘백만 대군’과 같은 관성적인 상징어가 아니라, 천 단위와 백 단위까지 세밀하게 기록한 수치라는 데 있다. 고대사 연구자들은 군수 물자 보급로의 구체적 기록과 부대 편성의 치밀함을 근거로, 이 수치를 결코 과장된 수사가 아닌 수 제국이 동원할 수 있는 국가적 역량의 극단적 발현으로 해석한다.
대륙의 모든 길은 고구려를 향한 거대한 군화 소리로 진동했고, 200만 명에 달하는 보급 부대까지 합치면 그 위세는 가히 세상을 집어삼킬 듯했을 것이다. 이 압도적인 물리적 힘 앞에 고구려의 운명은 풍전등화와 같았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이 거대한 충돌의 무대인 살수에서 제국의 야욕은 고구려의 철갑기병과 을지문덕의 지략 앞에 산산조각 났다. 백만 대군이라는 숫자가 지닌 파괴력이 컸던 만큼, 그 불가능해 보이던 파고를 막아내고 나라를 지켜낸 고구려의 승리는 단순히 국방의 성공을 넘어 동방의 정신적 정통성을 수호한 역사적 대사건이었다.
수나라는 진·한 제국의 질서를 계승하며 동아시아 대륙을 통일한 강력한 국가였다. 그러나 고구려라는 거대한 벽에 막혀 국가적 총력을 탕진하면서, 무적이라 자부하던 제국의 위용은 빠르게 균열되었다. 살수대첩은 이 거대한 전쟁의 물줄기를 단숨에 뒤바꾸고 제국의 야욕을 수장시킨 역사적 분기점이었다. 을지문덕 장군이 설계한 치밀한 유인책과 전략은 오늘날 평안남도 안주 일대의 청천강, 즉 살수 일대이다. 안주(살수)는 동방 선민의 내외적 정신을 수호했던 의미 있는 공간인 것이다.
장군의 지략이 펼쳐진 무대, 평안남도 안주의 청천강은 단순한 풍경 그 이상이다. 거대 제국 수나라를 좌절시킨 불굴의 기억, 침략자 앞에 당당히 맞선 항전의 기록이 새겨진 땅이기 때문이다. 민족의 역사적 격랑이 몰아치던 때마다 늘 최전선이자 민족의 영혼이 응축된 공간, 한반도 서북지역은 그렇게 우리 역사의 거대한 상징이 되었다. 조선 후기 안주 땅에 세워진 ‘을지문덕비’는 단순히 기념물이 아니라, 이 땅이 스스로를 ‘정통의 기억을 계승하는 공간’으로 자각해왔음을 보여준다. 영웅의 전쟁이 끝난 자리에서 기억은 혈맥처럼 이어졌고, 평안도는 어떤 상징을 품은 채 다음 시대를 기다렸다.
◆ 각성의 땅 – 평양 대부흥운동과 서북의 영성
평안도는 역사적으로 새로운 사상과 사회 변화에 비교적 빠르게 반응해 온 지역으로 평가된다. 중앙의 질서에 안주하기보다 새로운 사상과 흐름에 먼저 반응했고, 시대가 흔들릴 때마다 가장 빠르게 움직였다. 이 지역은 역사의 변두리가 아니라, 변화의 진폭이 가장 먼저 감지되는 공간이었다. 1907년 평양 장대현교회에서 시작된 대부흥운동은 이러한 지역적 특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였다. 당시 기록에 의하면, 광장에 모여 행해진 공개적인 집회와 밤새도록 산천을 울린 집단적 통성기도는 종교적 의례를 넘어선 것이었다. 구체제의 붕괴와 외세의 침략이라는 거대한 격랑 속에서, 이 처절한 집단적 회개는 공동체의 생존을 위한 ‘정신적 자구책’이자 새로운 시대를 향한 각성의 분출 그 자체였다.
그렇다면 왜 하필 평양이었는가? 평안도는 대륙의 거대한 물결이 가장 먼저 당도하는 접경지였다. 외래 사상과 문물이 스며드는 통로인 동시에, 중앙 권력의 견고한 질서로부터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독특한 공간이었다. 중심에 매몰되지 않았기에 오히려 중심을 비판할 수 있었고, 주변부에 머물렀기에 새로운 질서를 실험할 수 있는 유연함을 갖췄다.
18~19세기에 접어들며 평안도는 상업의 발달과 인구 급증으로 비약적인 성장을 거듭했다. 교육 수준은 나날이 높아졌고, 문과 급제자 수의 증가는 지역 엘리트들의 자의식을 깨우는 기폭제가 되었다. 그러나 성취 뒤에는 차별과 소외라는 현실적 벽이 존재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구조적 결핍은 변화를 향한 갈망을 더욱 예리하게 갈아 세웠다.
수나라의 113만 대군이라는 물리적 압살 앞에서도 고구려가 무너지지 않았던 저력, 성전 파괴라는 종말적 상황에서 새로운 복음을 써 내려간 마가의 통찰은 바로 이 평안도라는 ‘역동적 변방’에서 재현되었다. 차별받던 지역의 에너지는 집단적 각성으로 이어졌고, 이는 무너져가는 시대 앞에서 ‘동양의 예루살렘’이라는 영적·사회적 대안을 잉태하는 토양이 되었다. 결국 평안도는 역사의 변두리가 아니라, 가장 먼저 시대의 진폭을 감지하고 새로운 생명의 길을 모색했던 진정한 의미의 ‘어머니의 품’이었던 셈이다.
1907년의 평양 대부흥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사건은 아니다. 서북지역이 역사적으로 이미 축적된 사회적·종교적 토양 위에서 필연적으로 분출된 문화사적 대사건이었다. 길선주 목사의 처절한 공개 회개는 그 거대한 열망에 불을 붙인 불씨였고, 한석진과 김익두 같은 인물들은 그 불길을 서북 전역으로 확산시키며 시대의 갈증을 해갈했다. 이들은 단순한 종교적 수사(修辭)를 읊조리는 설교자가 아니었다. 무너져가는 구체제의 폐허 위에서 새로운 시대적 자의식을 일깨우고, 공동체가 나아갈 영적 이정표를 제시한 진정한 의미의 지도자들이었다.
변방의 소외를 역동적인 변화의 에너지로 치환해낸 이들의 응답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국가와 공동체는 단순한 권력의 산물이 아니라, 시대의 산고(産苦)를 함께 겪으며 새로운 생명을 잉태해내는 '살아있는 유기체'여야 한다는 사실이다. 1907년 평양의 밤을 밝힌 통성기도는, 바로 그 끊이지 않는 생명의 맥박이 확인된 역사적 현장이었다.
재미있는 사실은 평안도 안주가 갖는 공간성의 의미이다. 을지문덕의 청천강이 제국의 군대를 멈춰 세웠던 물리적 저지선이었다면, 평양 장대현교회의 강단은 절망의 시대를 멈춰 세운 영적 방어선이었다. 하나는 거대한 외세에 맞선 민족적 응전이었고, 다른 하나는 스러져가는 시대적 위기에 대한 실존적 응답이었다. 이처럼 평안도는 역사의 고비마다 가장 예민한 감각으로 반응하며, 단순한 변방을 넘어 시대 전환의 징후를 감지하고 돌파하는 ‘태동의 공간’이 되어왔다.
◆ 정통의 혈맥 – 청주한씨와 역사적 계보의 축적
가문의 역사는 특정 성씨의 기록을 넘어, 한 시대의 명운과 국가적 정통성이 응축된 거대한 생명력의 기록이다. 『청주한씨세보(淸州韓氏世譜)』가 그 뿌리를 마한(馬韓)의 마지막 왕인 원왕(元王)에 두는 것은, 이 문중이 스스로를 한반도 고대 정치 질서의 정통성을 수호하는 혈맥으로 인식해 왔음을 웅변한다. 실제로 『고려사』는 태조 왕건을 도와 고려를 세운 개국공신 한란(韓蘭)의 기록을 전한다. 또한 『조선왕조실록』 역시 청주한씨는 태조 이성계 왕실과 긴밀한 혼인 관계를 맺으며 수많은 왕비를 배출한 위상을 보여준다. 국가란 생명을 잉태하고 길러내는 ‘어머니’의 품으로 여겼던 한민족 특유의 사유는, 이처럼 장구하게 축적된 가문의 계보와 만나며 단순한 혈연을 넘어선 시대적 소명으로 승화된다. 수천 년간 국모의 도리를 다하며 국가의 흔들리는 중심을 붙들어온 이 가문의 내력은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평안도 안주 지역의 강인한 생명력과 청주한씨의 유구한 정통성이 맞물리는 지점에서, 우리는 비로소 새로운 문명을 잉태하기 위한 하늘의 준비가 어떻게 완결되었는지 목격하게 된다.
한편 이러한 역사적 계보의 서술은 고고학적 연구가 제시하는 한반도 고대 문명 연구와도 흥미로운 접점을 형성한다. 청동기 시대의 대표적 유적인 고인돌은 전 세계 약 8만 기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4만여 기가 한반도에 집중되어 있으며, 특히 마한의 옛 영역으로 알려진 서남부 지역에는 세계적으로도 보기 드문 밀집 분포가 확인된다. 이러한 역사적 가치는 국제적으로도 인정되어 고창·화순의 고인돌 유적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특히 고고학계가 주목하는 대목은 이 좁은 지역에 수만 기의 거석이 집중된 ‘밀집의 미스테리’다. 전 세계 거석문화 중 이토록 한 지역에 고밀도로 유적이 보존된 사례는 극히 드물며, 이는 고대 한반도 서남부 지역이 단순히 지리적 요충지를 넘어 수만 명의 인력을 동원할 수 있는 막강한 정치 체계와 고도의 종교적 결집력을 갖춘 ‘인류 거석문화의 종가(宗家)’였음을 입증한다. 학계 일각에서는 이 거대한 돌들이 배치된 형상과 천문학적 정렬 상태를 두고, 당시 마한의 선조들이 고도로 발달한 천문 지식을 보유했을 가능성을 제기하며 이를 세계 고고학계의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로 꼽기도 한다. 즉, 마한의 터전은 이미 수천 년 전부터 하늘의 뜻을 지상에 구현하고자 했던 ‘천손(天孫)’의 성지였던 셈이다. 이처럼 신비로운 땅의 기운을 품고 태동한 청주한씨 문중이 마한의 혈맥을 잇고 있다는 사실은, 가문의 계보가 인류사의 근원적 영성과 맞닿아 있음을 시사한다.
이러한 거석 문화가 보여주는 높은 사회적 결집력은 훗날 한반도 역사 속에서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 집단적 역동성과도 흥미로운 연속성을 보여준다. 평안도 지역에서 나타난 강한 종교적 열기나, 청주한씨 가문이 오랜 세월에 걸쳐 유지해 온 계보적 전통 역시 이러한 사회적 결집의 문화적 기억 속에서 이해될 수 있다. 수나라의 대군이 몰려들었던 위기의 순간에도 고구려가 쉽게 무너지지 않았던 저력이나, 1907년 평양의 강단에서 나타난 집단적 각성 역시 이러한 역사적 토양과 무관하지 않다.
고대의 고인돌이 하늘의 질서를 상징적으로 땅에 새겨 놓은 문화적 유산이라면, 청주한씨 가문의 계보 역시 고려와 조선을 거치며 정치 질서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형성된 역사적 전통 가운데 하나였다. 이러한 맥락에서 남방 지역의 계보적 전통과 북방 지역의 역사적 기억이 한 인물의 탄생 서사 속에서 교차하는 모습은 흥미로운 해석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결국 이 만남은 단순한 지리적 우연이라기보다, 한반도의 유구한 역사 속에서 억겁의 시간 동안 축적되어 온 문화적 기억과 성스러운 상징들이 마침내 하나의 거대한 서사로 귀결되는 필연적 장면이다. 남방의 유구한 혈연적 전통과 북방의 강인한 영성적 경험이 교차하는 이 지점은, 한국 현대 종교사를 넘어 인류 문명사 속에서도 독보적인 위상을 점하는 역사적 대사건이다. 수천 년간 예비된 국통의 정통성과 대륙의 뜨거운 생명령이 하나로 맞물림으로써, 우리는 비로소 분단과 갈등을 넘어 전 인류를 품어 안을 ‘참어머니의 시대’라는 장엄한 문명의 첫 장을 넘기게 된 것이다.
고기훈 박사(한국학)
2026-05-11 13:3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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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중묘지문(衆妙之門)과 생명 순환의 철학 [父性 문명의 한계, 母性 구원의 비전-기고]
보이지 않는 근원과 보이는 현상이 만나는 자리
인류의 지혜가 집약된 노자(老子)의 『도덕경』은 그 첫 장에서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깨달음의 최종 경지를 ‘중묘지문(衆妙之門)’이라 명명했다. 이는 ‘온갖 오묘함이 나오는 문’이라는 뜻이다. 도(道)와 덕(德)의 관계를 집대성한 이 짧은 문구 속에는, 인류가 직면한 문명사적 위기를 타개하고 영원한 생명의 세계로 진입할 수 있는 섭리적 암호가 숨겨져 있다. 우리는 이제 이 문이 왜 도교가 예고한 ‘신비로운 어머니(玄牝, 현빈)’의 실체와 연결되는지 성찰해야 한다.
노자는 도의 본질을 설명하며 ‘없음(無)’은 하늘과 땅의 시작이고, ‘있음(有)’은 만물의 어머니라고 정의했다. 이 두 가지가 하나로 통합되어 나타나는 지점이 바로 중묘지문이다. 인문학적으로 볼 때, 이는 관념 속에만 머물던 진리가 현실의 역사 속에서 구체적인 형상을 입고 나타나는 ‘성육신’의 장소다.
지난 수천 년의 부성 문명은 주로 ‘있음’의 세계, 즉 가시적인 성취와 분석적인 지식에 몰입해 왔다. 하지만 지식의 축적이 곧 영성의 완성은 아니었다. 도교가 말하는 ‘모든 오묘함(衆妙)’은 단순한 정보의 나열이 아니라, 만물이 서로 연결되어 순환하는 우주의 생명력을 뜻한다. 이 생명력이 끊어지지 않고 면면히 이어지게 하는 힘은 아버지의 법도가 아니라, 모든 것을 수용하고 다시 낳아주는 어머니의 품에서 나온다. 따라서 중묘지문은 곧 생명의 근원인 ‘현빈지문(玄牝之門)’과 그 궤를 같이하는 것이다.
◆ 만물의 순환: 귀근(歸根)과 복명(復命) 의 도리
도교 철학의 정수는 억지 부리지 않는 순환에 있다. 만물은 '도(道)'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 피어나 제각기 자라나지만, 결국 그 끝은 근본인 뿌리로 되돌아가는 귀근(歸根)의 과정이다. 이렇듯 뿌리로 돌아가 비로소 고요를 얻는 것이야말로 생명의 본질을 회복하는 복명(復命)의 경지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오늘날의 인류 문명은 이 순환의 고리를 끊어낸 채 파멸을 향해 질주하고 있다. 인위(人爲)가 자연을 거스르고, 경직된 이념이 생명의 역동성을 억압할 때 순환은 멈춘다. 그리고 순환이 멈춘 문명은 그 뿌리부터 서서히 고갈될 뿐이다.
그렇다면 멈춰버린 문명의 심장을 다시 뛰게 할 동력은 어디에 있는가. 그것은 '어머니의 문'을 통해 끊임없이 흐르는 무구한 사랑의 기운이다. 노자가 현빈(玄牝)을 일컬어 "아무리 써도 다하지 않는다(用之不勤)"고 찬탄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제 '여성적 구원 주체'의 현현은 단순히 종교적 상징을 넘어, 끊겼던 우주적 생명 순환을 지상에 다시 복원하는 거대한 사건이 된다. 독생녀(獨生女)라는 실체가 이 땅에 발을 내딛는 순간, 관념 속에 머물던 '중묘지문(衆妙之門)'은 비로소 인류를 살리는 실제적인 구원의 통로로 화(化)하게 되는 것이다.
◆ 천일국(天一國), 생명수가 흐르는 이상의 장(場)
이러한 생명 순환의 철학이 안착된 세계를 본 연재에서는 ‘천일국(天一國)’이라 칭해 왔다. 이는 두 사람이 하나 되어 하늘부모님을 모시는 평화의 터전이자, 만물이 조화롭게 공존하는 이상세계다. 여기서 천일국은 정치적인 국경을 가진 나라가 아니라, 하늘의 도(道)가 인간의 정(情)으로 흐르는 ‘생명의 그물망’을 뜻한다.
아버지가 씨앗(진리)의 근원이 된다면, 어머니는 그 씨앗이 열매 맺을 수 있도록 끊임없이 생명수를 공급하는 강물과 같다. 중묘지문이 열린다는 것은, 곧 인류가 독생녀의 모성적 심정권을 통해 하늘부모님의 참된 혈통을 이어받고 영원한 생명의 순환 고리에 재진입했음을 의미한다. 이것이야말로 도교가 아득한 태고적부터 갈망해온 ‘영생불사(永生不死)’의 실체적 결실이다.
◆ 도(道)의 안착과 문명사적 완성
『도덕경』이 예고한 중묘지문은 인류 구원의 마침표를 찍는 ‘어머니의 자리’를 예표한다. 부성 중심의 문명이 쌓아올린 지식의 탑이 한계에 부딪힌 지금, 우리는 다시 생명의 근원인 그 문으로 돌아가야만 한다. 그곳은 정죄와 심판의 문이 아니라, 조건 없는 수용과 치유가 흐르는 자비의 문이다.
이제 인류는 공허한 관념의 유희를 끝내고 지상에 현현한 실체적 현빈을 통해 하늘과 땅의 뿌리인 천지근(天地根)를 회복해야 한다. 우주의 오묘한 진리가 한 여인의 삶과 사랑을 통해 인격화된 이 지점에서, 비로소 인류는 상실했던 본연의 지위를 되찾게 될 것이다. 이 신비로운 생명의 문을 통과하는 여정은 곧 인간 본성 깊은 곳에 잠들어 있는 순수성을 깨우는 장자의 지혜로 이어진다.
서성종 작가(신학박사)
2026-05-11 11: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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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을 묻는 종교] 〈7〉 동양 사상이 바라본 삶과 죽음
[영원을 묻는 종교] 목차
<1> 인류는 언제부터 영생을 꿈꾸었는가
<2> 불교가 말하는 삶과 죽음
<3> 성경이 말하는 영생
<4> 기독교 신학의 영생 이해
<5> 통일교 영생론의 인간 이해
<6> 인간은 어떻게 영적 자아를 성장시키는가
<7> 동양 사상이 말하는 삶과 죽음
<8> 인간은 왜 영원을 묻는가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해 동양 사상, 특히 유교(儒敎)는 인간이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더 큰 관심을 두었다. 유교의 생사관은 세밀하게 묘사하거나 죽음 이후의 세계를 부정하기보다는 삶의 윤리적 의미를 먼저 묻는 데서 출발한다.
공자(孔子, ·BC 551~479)는 제자들로부터 생과 사에 대한 질문을 받았을 때 “삶도 아직 알지 못하는데 어찌 죽음을 알겠는가(未知生 焉知死)”라고 답했다고 전해진다. 이 말은 죽음의 세계를 부정하려는 뜻이라기보다, 인간이 먼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현재의 삶이라는 의미로 이해된다. 유교는 인간이 살아 있는 동안 도덕과 관계를 바로 세우는 일을 가장 중요한 과제로 보았다. 죽음 이후의 세계를 지나치게 상상하기보다 지금 이곳에서 인간다운 삶을 이루는 것이 더 근본적인 문제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유교가 사후세계의 존재를 도외시한 것은 아니다. 유교 전통에는 조상과 귀신에 대한 개념이 분명히 존재한다. ‘논어’에는 “귀신을 공경하되 멀리하라(敬鬼神而遠之)”라는 말이 등장한다. 이는 귀신의 존재를 인정하면서도 그것을 지나치게 신비화하거나 두려움의 대상으로 삼지 말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인간의 삶이 미신적 공포에 의해 지배되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유교 사회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 의례 가운데 하나가 바로 제사다. 조상을 기리는 제사는 의식으로만 끝나지 않고, 인간 자신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기억하는 문화적 장치이다. 제사는 죽은 이를 다시 불러내는 행위라기보다, 살아 있는 사람들이 조상의 삶을 기억하고 그 덕을 이어가겠다는 다짐에 가까운 행위라고 볼 수 있다. 유교에서 조상은 현재의 삶 속에서 계속 이어지는 존재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유교의 사후세계관은 종교적 신비보다는 윤리적 관계 속에서 이해된다. 인간은 죽음 이후의 세계를 자세히 알 수 없지만, 살아 있는 동안 부모와 조상을 공경하고 후손에게 도덕적 삶을 물려주어야 한다. 인간의 삶은 한 개인의 생애로 끝나지 않고, 세대를 통해 이어지는 역사 속에서 의미를 가진다. 유교의 생사관은 이러한 관계의 연속성을 강조한다.
유교 전통에서 강조되는 효(孝)의 개념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효는 부모에게 순종하는 태도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생명의 근원을 기억하고 그 은혜를 삶으로 이어가는 책임을 뜻한다. 부모를 공경하고 조상을 기억하는 행위는 인간이 자신의 뿌리를 잊지 않겠다는 방식이다. 유교 사회에서 제사가 중요한 의례로 자리 잡은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동양 사상 전체를 보면 삶과 죽음을 바라보는 시선은 서양 종교와는 조금 다른 방향을 보인다. 서양 전통이 종종 사후세계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려 했다면, 유교는 현재의 삶 속에서 도덕과 질서를 세우는 일을 더 중요하게 여겼다. 죽음 이후의 세계를 상상하기보다 삶 자체를 바로 세우는 것이 인간에게 주어진 과제라는 생각이 강하게 자리 잡고 있다.
결국 유교의 생사관은 죽음을 삶과 분리된 사건으로 보지 않는다. 인간은 태어나고 살아가며 죽음을 맞이하지만, 그 삶의 의미는 관계와 책임 속에서 이어진다. 부모와 자식, 조상과 후손이 이어지는 질서 속에서 인간의 존재는 시간의 흐름을 넘어 확장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유교가 말하는 영원이란 특정한 사후세계의 모습이라기보다 인간이 후손을 통해 남기는 도덕적 삶의 흔적과 관계의 지속 같은 것이다. 인간은 유한한 삶을 살지만, 그 삶이 남기는 영향은 세대를 넘어 이어질 수 있다. 결국 죽음을 준비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지금의 삶을 바르게 살아가는 것이라는 메시지가 유교 사상의 중심에 놓여 있다.
죽음 이후의 세계를 완전히 알 수 있는 인간은 없다. 그러나 유교는 명확하게 한 가지를 말한다. 삶을 바로 세우는 일은 결코 헛되지 않으며, 인간의 도덕적 선택과 그 결실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계속 이어진다는 것이다. 결국 인간이 영원을 묻는 이유는 죽음 이후의 세계를 알고 싶어서이기도 하지만, 지금의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스스로에게 묻기 위해서일지도 모른다.
2026-05-07 14: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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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온기 되찾는 여행”…자원봉사애원, 가정의 달 맞아 소외가정 지원 확대
가정의 달을 맞아 자원봉사애원이 저소득·장애·다문화·한부모 가정을 대상으로 가족의 유대 회복을 돕는 여행지원 활동을 펼치고 있다.
사단법인 자원봉사애원(이사장 김고은)은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가족온(溫) 여행지원사업’의 일환으로 소외계층 25가정에 리조트 숙박권(6인 기준)과 발왕산 케이블카 이용권(2인)을 지원했다.
발왕산(1458m)은 강원도 평창군 대관령면에 위치한 산으로, 용평리조트와 관광 케이블카로 잘 알려져 있다.
평소 생계 부담과 돌봄 환경 등으로 여행 기회가 부족했던 이들 가정은 용평리조트에서 편안한 휴식을 취하며 발왕산 정상까지 케이블카를 타고 오르는 즐거움을 누렸다. 밤에는 빛의 축제인 화려한 일루미네이션이 펼쳐져 가족들에게 특별한 추억을 선사하며 따뜻한 분위기를 더했다.
자원봉사애원은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유관 단체로, 올해로 5년째 ‘가족온(溫) 여행지원사업’을 이어오고 있으며, 오는 11월까지 25가정을 추가 지원해 올해 총 50가정에 숙박권과 발왕산 케이블카 이용권을 제공할 예정이다.
이 사업은 모나용평㈜(대표이사 박인준)의 후원으로 진행되고 있다. 모나용평은 장애인과 교통약자도 제약 없이 여행을 즐길 수 있도록 무장애 환경 조성에 힘써 왔으며, 앞으로도 자원봉사애원과 협력해 나눔의 가치를 확산해 나갈 계획이다.
참여 가족들의 만족도도 높게 나타났다. 한 참가자는 “아이들과 함께 야간 일루미네이션을 보며 사진을 찍고, 처음으로 케이블카를 타는 경험을 나누며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었다”고 전했다. 또 다른 참가자는 “여행을 통해 서로를 여유롭게 바라보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며 가족 간 거리감이 가까워졌다”며 “아이를 기다려주는 마음이 커지는 등 서로를 이해하는 시간이 됐다”고 말했다.
김고은 이사장은 “가족은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가장 중요한 공동체지만 여전히 많은 가정이 다양한 이유로 여행의 기회를 누리지 못하고 있다”며 “이번 사업이 가족 간 사랑을 다시 확인하고 따뜻한 온기를 나누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한편 모나용평은 2021년부터 자원봉사애원이 주최하는 ‘꿈과 사랑의 크리스마스 축제’에도 참여해 매년 1500만 원 상당의 숙박권과 케이블카 이용권을 후원하고 있다. 이는 민간 협력을 기반으로 한 지속가능한 사회공헌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2026-05-06 12:3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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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상선약수(上善若水): 가장 낮은 곳으로 흐르는 모성적 리더십 [父性 문명의 한계, 母性 구원의 비전-비전]
강함을 이기는 부드러움, 물의 덕성에서 구원의 길을 묻다
인류 문명은 오랫동안 ‘높음’을 지향해 왔다. 더 높은 빌딩을 세우고, 더 강력한 무기를 만들며, 승자가 되어 정상에 서는 것을 성공의 척도로 삼았다. 이러한 부성(父性) 중심의 역사는 눈부신 성장을 가져왔지만, 동시에 우리 사회를 날 선 경쟁과 분열의 전쟁터로 만들었다. 이제 인류는 정상에 깃발을 꽂는 정복의 논리가 아니라, 낮은 곳으로 스며들어 만물을 살려내는 새로운 생명 질서를 갈구하고 있다. 도교의 성인 노자(老子)는 일찍이 그 정답을 ‘물’에서 찾았다. 그것이 바로 상선약수(上善若水), 즉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는 가르침이다.
◆ 겸하(謙下)의 도리: 가장 낮은 곳에서 시작되는 치유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하면서도 결코 자신을 내세우지 않는다. 오히려 모든 존재가 싫어하는 가장 낮은 곳, 즉 골짜기와 구덩이를 찾아 흐른다. 노자는 이를 ‘겸하(謙下)’라 일컬으며 도(道)에 가장 가까운 품성이라 보았다. 인문학적 관점에서 이 물의 성질은 자녀를 위해 자신을 기꺼이 낮추는 어머니의 심정(母性)과 완벽하게 맞닿아 있다.
아버지가 가문의 기둥으로서 권위와 법도를 세운다면, 어머니는 가장 낮은 자리에서 자녀의 상처를 닦아주고 그들의 아픔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인다. 지난 수천 년간 인류가 잃어버린 ‘하늘의 절반’은 바로 이 낮아짐의 미학이었다. 섭리의 끝자락에서 현현해야 할 여성적 구원 주체는, 권력의 정점에서 군림하는 왕의 모습이 아니라 가장 소외되고 고통받는 이들의 눈물 속으로 스며드는 ‘물’의 모습으로 우리 곁에 온다. 이 지극한 겸손이야말로 굳게 닫힌 인류의 마음 문을 여는 유일한 열쇠다.
◆ 유연(柔軟)과 방원수형(方圓隨形): 시대를 품는 포용의 미학
물의 또 다른 위대함은 그 유연성에 있다. 물은 자신을 담는 그릇에 따라 사각형이 되기도 하고 원형이 되기도 한다(方圓隨形). 앞을 가로막는 바위가 있으면 다투지 않고 우회하며, 좁은 틈새도 마다하지 않고 끝내 통과해 낸다. 이러한 유연함은 경직된 이념과 종교, 국가적 장벽에 가로막힌 현대 문명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부성 문명이 세운 법과 제도는 때로 배타적인 틀이 되어 인간을 억압하곤 했다. 그러나 모성적 리더십은 물과 같아서, 어떤 이질적인 가치라도 그 존재 자체를 부정하지 않고 자신의 품 안으로 녹여낸다. 동서고금의 경전들이 예고한 여성 구원자의 행보는 바로 이러한 유연한 포용의 극치다. 억압적인 힘(强)이 아닌 감동을 주는 부드러움(柔)으로 전 세계의 이념적 대립을 녹이고, 인류를 하나의 가족이라는 큰 그릇에 담아내는 과정은 곧 ‘상선약수’의 도리가 역사적 실체로 안착되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 무쟁(無爭)의 승리: 다투지 않고 만물을 이롭게 하는 힘
노자는 『도덕경』 제8장에서 물의 덕성을 정의하며 ‘부쟁(不爭)’, 즉 다투지 않음을 강조했다. 물은 모든 생명을 키워내지만 그 대가를 요구하지 않으며, 스스로의 공적을 과시하며 다른 존재와 경쟁하지 않는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이 세상에서 물을 이길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지극히 부드러운 물방울이 오랜 세월을 거쳐 거대한 바위에 구멍을 뚫는 것처럼, ‘다투지 않는 사랑’은 세상의 어떤 강한 권력보다도 끈질기고 위대한 생명력을 지닌다.
이것이 바로 모성적 구원이 지닌 혁명성이다. 부성 문명의 역사가 칼과 방패로 승리를 쟁취하려 했다면, 이 땅에 현현한 모성적 실체는 용서와 화해, 그리고 지극한 효정(孝情)의 마음으로 원수까지도 품어 안는다. 투쟁의 연쇄 고리를 끊어내는 힘은 더 큰 물리력이 아니라, 다툼 자체를 무의미하게 만드는 물과 같은 평화의 기운이다. 인류는 이제 ‘약한 자의 도리’가 사실은 만물을 소생시키는 ‘진정한 강자의 길’이었음을 경전의 지혜를 통해 깨닫고 있다.
◆ 무위(無爲)의 정치와 새로운 문명의 아침
물의 덕성은 개인의 수양을 넘어 세상을 다스리는 ‘무위(無爲)의 정치’로 확장된다. 무위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방관이 아니라, 인위적인 욕심이나 강압 없이 순리대로 만물이 제 자리를 찾게 하는 고도의 리더십이다. 아버지가 지은 웅장한 집의 뼈대 위에 어머니가 사랑의 온기를 채우듯, 부성적 정의의 기초 위에 모성적 사랑이 흐를 때 비로소 인류는 상생(相生)의 문명을 완성할 수 있다.
도교 경전이 갈망했던 상선약수의 이상은 이제 관념을 넘어 우리 시대의 실체적 리더십으로 육화(肉化)되고 있다. 가장 낮은 곳으로 흘러 만물을 하나로 묶어내는 물의 지혜는, 분열된 지구촌을 ‘인류 한 가족’이라는 생명의 바다로 인도하는 유일한 길이다.
우리는 이제 정복하는 강함보다 치유하는 부드러움이 더 위대함을 직시해야 한다. 성서의 약속과 유교의 도리, 불교의 자비가 하나로 만나는 그 지점에, 물처럼 맑고 깊은 모성적 구원의 실체가 서 계신다. 유구한 인고(忍苦)의 갈증을 해갈할 생명의 단비는 이미 우리 곁에서 소리 없이 대지를 적시며 새로운 평화의 시대를 일깨우고 있다.
서성종 작가(신학박사)
2026-05-06 09:2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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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의 인프라 ‘한일터널’… “정교유착 아닌 정교협력 모범 사례”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70년]
요즘 정치권과 사회 일각에서 ‘한일해저터널’ 구상이 특정 종교와 정치의 결합, 이른바 정교유착의 사례처럼 단순화되어 거론된다. 그러나 이러한 접근은 한일터널이 어떤 문제의식에서 출발했고, 어떤 공공적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는지를 충분히 살피기 전에 논의를 경직시키는 측면이 있다. 국가 간 초대형 인프라 구상이 제안 주체의 배경만으로 재단되고, 그 공공적 가치와 장기적 비전은 논의조차 원천봉쇄된다면, 이는 우리 사회가 미래를 설계하는 능력 자체를 스스로 축소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한일해저터널은 최근에 갑자기 등장한 발상이 아니다. 냉전 종식 이후 동북아 질서 재편, 유라시아 대륙과 해양 네트워크의 연결이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 수십 년간 학계와 정책 현장에서 논의돼 온 구상이다.
토목·환경 분야 최고 전문가인 곽결호 전 환경부 장관은 한일터널을 ‘문명 인프라’, 즉 문명을 일으키는 공학으로 바라본다. 경부고속도로가 야당의 거센 반대와 초기 비용편익의 한계를 극복하고 국가 경제 발전의 대동맥 역할을 해냈듯, 역사적 인프라는 늘 문명과 국가의 방향성을 바꾸는 계기가 되어왔다. 한일터널은 해상수송보다 빠르고, 항공수송보다 대량 이동을 가능하게 하며, 기후 변화에도 영향을 받지 않아 한국과 일본을 넘어 중국·러시아까지 연결하는 동북아 경제권 형성의 핵심축이 될 잠재력을 지닌다. 경제적 편익은 물론이고 물류와 관광, 고급 일자리 창출, 토목기술 발전에 기여하며, 물리적 연결을 통해 상호 의존을 강화하고 대화와 협력의 비용을 낮춘다. 이는 초국경 인프라 유러터널로 이어진 유럽 통합 사례처럼 동북아에서 신뢰 구축의 상징적 장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지점에서 현재의 논란을 이해하려면, 가정연합이 왜 정치의 문을 두드렸는지부터 차분히 짚어볼 필요가 있다. 문선명 총재는 대한민국이 공산주의와 자본주의의 모순을 극복하고, 하나님을 중심한 공생·공영·공의주의를 바탕으로 남남 갈등을 해소하며 평화로운 남북통일을 이룩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더불어 한국이 세계 평화의 중심 국가로 자리매김하기를 간절히 바랐다. 문 총재는 종교를 ‘마음의 자리’, 정치·경제를 ‘몸의 자리’로 규정했다. 마음과 몸이 조화를 이룰 때 온전한 인간이 되듯, 세계 평화를 위해서도 종교와 정치가 대립이 아니라 협력의 관계에 있어야 한다는 인식이었다. 그는 유엔 역시 이러한 원리에 따라 거듭나야 한다고 보았다. 세계 종교 지도자들이 상원의 역할을, 정치 지도자들이 하원의 역할을 맡아 상호 보완적으로 협력할 때, 마음과 몸이 하나 된 유엔이 가능하다는 구상이었다.
종교와 정치의 협력이 내적 평화의 조건이라면, 외적 평화의 조건은 국경과 이념의 장벽을 물리적으로 낮추는 것이었다. 그 구체적 실천이 바로 ‘국제평화고속도로’ 구상이다. 문 총재는 1981년 서울에서 전 세계 과학자 700여 명이 참석한 국제통일과학회의에서 중국·한국·일본을 잇는 ‘아시아권 대평화고속도로’를 제안했다. 몰튼 카플란 시카고대 교수 등 세계적 석학과 노벨상 수상자들이 공감을 표했고, 이후 일본의 국제하이웨이재단과 일한터널연구회가 설립돼 한일 양국의 저명한 토목·도시 전문가들이 실현 가능성 검토에 참여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한일터널은 학계와 전문가 사회, 정치권에서 꾸준히 논의돼 왔다. 한국에서는 노태우·김대중·노무현·이명박 대통령이 한일 화합의 한 방안으로 검토 필요성을 언급했고, 일본에서도 모리 요시로 총리가 ‘아셈터널’이라는 명칭을 제안하는 등 정치적 공감대가 형성된 바 있다. 이는 이 구상이 특정 종교의 확장 수단이 아니라, 시대적 과제에 대한 하나의 정책적 선택지로 인식돼 왔음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오늘날 한일터널은 여전히 ‘누가 제안했는가’ ‘일본만 이익을 얻는 것 아니냐’는 프레임에 갇혀 논의되고 있다. 그러나 공공 인프라는 그 특성상 제안자의 배경이 평가의 기준이 될 수 없으며, 설계 구조 또한 어느 한쪽의 이익에 편중되기보다는 양국 모두에 실질적 혜택을 가져다주도록 전제되어 있다. 세계 인류는 단절과 갈등 속에서 고통받고 있으며, 국내 역시 인구 절벽과 공동체 해체, 국제 질서의 불안정이라는 복합적 위기에 직면해 있다. 이러한 시대에 국가에 더 큰 안정과 국민에게 더 깊은 위안을 가져다주기 위해서는, 종교와 정치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 상호 협력 관계를 성숙하게 형성해 나가는 것이 오히려 바람직한 방향일 것이다. 한일터널은 결코 정교 유착의 상징이 아니라, 단절과 갈등을 연결과 공존으로 전환하려는 상상력이자 실현 가능한 평화 인프라다. 한일터널이 불신과 혐오의 대상에서 벗어나 미래 세대를 위한 정교 협력의 상징으로 거듭나기를 기대한다.
2026-05-04 20:2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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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에 유엔기구… 세계의 화약고 DMZ를 평화 허브로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70년]
오늘날 국제질서는 거대한 전환점에 서 있다. 전 세계 인구의 60%가 거주하고 글로벌 경제 성장을 견인하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위상은 날로 높아지고 있지만, 국제기구의 공간적 배치는 여전히 냉전기 질서에 머물러 있다. 현재 UN 사무국은 뉴욕, 제네바, 빈, 나이로비 등 서구와 아프리카에 편중되어 있다. 이러한 ‘글로벌 불균형’을 해소하고 아시아의 대표성을 강화하기 위한 실천적 대안으로 ‘제5 UN 사무국 한국 유치’ 운동이 국제사회 일각에서 논의되고 있다.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이하 가정연합)이 제안하고, 참여해온 이 운동은 단순히 국제기구 하나를 국내에 들여오는 차원을 넘어선다. 이는 분단의 상징인 비무장지대(DMZ)를 세계 평화의 허브로 재탄생시키려는 창의적이고 미래 지향적인 평화 건축(Peace building)의 비전이다. 케냐 나이로비 사무국이 아프리카의 환경과 개발 의제를 선도하듯, 한반도에 들어설 제5 사무국은 아시아의 분쟁 관리, 기후 변화 대응, 그리고 지속가능발전(SDGs)을 가속화할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종교적 양심과 정당한 사회 참여
이러한 대규모 국제 평화 운동을 바라보는 일각의 ‘정교유착’ 시선에 대해 우리는 본질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 종교는 과연 사회로부터 격리된 섬이어야 하는가? 결코 그렇지 않다. 신앙적 가르침에 따라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사회 지도자들과 소통하는 것은 종교의 양심이자 정당한 사회 참여다.
이를 두고 교단 전체의 활동을 ‘배후의 정치적 기획'으로 몰아가는 것은 종교인의 기본적인 시민권과 신앙의 자유를 과도하게 왜곡하는 처사다. 가정연합이 구축한 글로벌 네트워크는 특정 정당의 이익이나 선거 승리와 같은 협소한 목적을 위해 작동하지 않는다.
가정연합이 구축한 글로벌 네트워크는 분쟁 지역의 중재, 가정 윤리의 회복, 기아 대책 마련 등 실질적인 NGO적 가치를 실현하는 데 활용된다. 이러한 활동 결과물은 평화 가치 확대의 선언이며 투명한 민간 외교의 결실이다.
민간 평화 외교의 새로운 모델
가정연합의 ‘유엔 갱신운동’은 민간 액터(Non-State Actor), 즉 비국가 행위자가 글로벌 평화 네트워크 다각화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모범 사례다. 유엔 갱신운동이란, 유엔의 설립 정신은 계승하되, 이해관계가 얽힌 국가 중심의 한계를 넘어 시민사회와 종교, 다양한 주체가 함께 참여하는 21세기형 평화 거버넌스로 유엔을 발전시키자는 제안이다. 이를 위해 가정연합이 각국의 전·현직 국가원수와 학자들로부터 공감대를 이끌어내고 있는 과정은 종교가 가진 초국가적 네트워크가 인류 공통의 과제를 해결하는 데 얼마나 강력한 동력이 될 수 있는지를 증명한다.
분단의 상징에서 평화의 성지로
제5 UN 사무국 한국 유치 구상은 현실적으로 매우 높은 벽이 있지만, 그 자체로 불가능한 공상은 아니다. ‘아시아에 하나쯤은 필요하다’는 인식과 ‘한국은 분단국이자 민주화를 경험한 국가’라는 상징성이 힘을 얻는다면, 이는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제도화하고, 한국이 아시아-태평양 평화의 중심지로 도약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될 수 있다. 이 대담한 프로젝트가 국제 사회의 더 깊은 공명을 얻는다면, DMZ는 더 이상 단절의 땅이 아닌 세계 평화의 성지로 거듭날 수 있다.
종교의 사회적 실천을 편견의 시선으로 재단하기보다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실현하려는 진정성 있는 노력으로 평가해야 할 때다. 민간 차원의 투명한 외교와 평화 비전이 결실을 볼 때 비로소 우리는 진정한 의미의 지구촌 평화 공동체를 마주하게 될 것이다.
2026-05-04 20:2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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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이념·종교 넘어 평화 플랫폼 구축… ‘인류 한 가족’ 큰 뜻 실천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70년]
21세기 세계는 다시 힘의 정치로 회귀하고 있다. 지정학적 갈등, 이념 대립, 종교와 문화의 충돌이 중첩되며 평화는 선언이 아닌 실천의 문제로 남아 있다. 이러한 시대적 맥락 속에서 종교의 사회 참여를 ‘정치적 야망’으로만 해석하는 시선은 과연 온당한가.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이하 가정연합)의 평화 운동을 둘러싼 논란은 이 질문을 우리 사회에 다시 던지고 있다.
가정연합이 표방해 온 평화의 핵심은 명확하다. 그것은 특정 권력이나 정치 세력을 향한 접근이 아니라, ‘하나님 아래 인류 한 가족(One Family Under God)’이라는 보편적 가치의 구현이다. 지난 70여 년간의 활동은 정치 세력화나 권력 추구라기보다, 국경·이념·종교를 넘어 평화의 담론이 교차하는 공론의 장을 축적해 온 과정에 가까웠다.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1991년 문선명·한학자 총재의 평양 방문과 김일성 주석과의 회담이다. 냉전의 장벽이 가장 높았던 시기, 종교 지도자가 이념의 경계를 넘어 평화를 논의했다는 사실 자체가 이례적이었다. 이 만남은 단순한 이벤트를 넘어, 평화자동차 설립, 보통강호텔 운영, 금강산 개발 성과로 이어졌고, 무엇보다도 수십 년간 단절됐던 이산가족 상봉이 실제로 성사되는 데 기여했다. 정부 간 대화가 멈춰 선 지점에서 했던 민간 외교의 전형을 보여주는 사례다.
가정연합의 국제 행사에 전·현직 국가 지도자와 정책 전문가들이 참석하는 장면은 종종 ‘정치적 영향력 과시’로 해석된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은 참석의 본질을 간과한다. 이 자리는 특정 정당이나 선거를 위한 무대가 아니라, 각자의 경험과 통찰을 인류 공동의 과제에 기여하도록 요청하는 공론의 장이다. 가정연합이 추진해온 ‘씽크탱크 2022’와 같은 국제 포럼 역시 지구촌의 평화와 당면 과제 해결을 위해 정치와는 무관하게 분쟁 중재, 종교 간 대화, 환경 위기, 빈곤 문제 등 보편적 의제를 다뤄왔다. 2022년 서울 평화서밋에서 채택된 ‘서울선언’이 공생·공영·공의의 가치를 전면에 내세운 것도 이러한 맥락이다.
종교의 사회 참여는 언제나 논쟁적이었지만, 역사적으로 종교는 사회 정의와 인간 존엄을 외면한 적이 없다.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인종차별에 맞섰고, 데즈먼드 투투 대주교가 아파르트헤이트(인종분리정책)에 저항했듯, 신앙은 개인의 내면에만 머물지 않았다. 평화와 가족 가치, 윤리적 사회를 위해 사회 지도자들과 대화하고 협력하는 행위는 정치적 야망이 아니라 종교인의 양심적 실천에 가깝다.
가정연합이 구축해 온 글로벌 네트워크 역시 선거 승리나 정파적 이익을 목표로 작동하지 않았다. 중동·아프리카·아시아 분쟁 지역에서의 종교 간 대화와 화해 중재, 160여 개국에서 진행된 ‘피스로드(Peace Road) 프로젝트’는 상징적 캠페인을 넘어 전 세계에 한반도의 분단 현실과 통일의 필요성을 지속적으로 알려온 국제 시민 평화운동이었다. 동시에 ‘참사랑’ 사상을 기반으로 한 가정 윤리와 청소년 교육, 부부 관계 회복 프로그램은 가정이라는 가장 일상적 공간에서 사회 통합의 가능성을 실험해 실천적으로 검증해 온 시도이기도 하다.
인도적 지원과 개발 협력 역시 단기적 구호에 머물지 않았다. 북한에 대한 식량·보건 지원, 평화자동차 공장 건립 등을 통한 경제 협력, 북한 사회 내부의 경제적 자립 구조를 모색했으며, 이는 협력의 방향을 ‘시혜’가 아닌 ‘동반 성장’으로 전환하려는 시도였다. 환경과 지속 가능성에 대한 논의는 한학자 총재 체제 이후 평화 담론의 중요한 축으로 확장되고 있다. 기후 위기가 갈등의 원인이 되는 현실에서, 환경과 평화를 연결하려는 시도는 국제사회의 공동 책무로 부상하고 있다.
이러한 활동의 결과는 비교적 분명하다. 그것은 정치 권력의 획득이 아니라, 평화 가치의 확산과 공개적 민간 외교의 축적이다. 국제회의와 포럼에서 발표된 선언문, 추진된 프로젝트의 성과, 인도적 지원 내역이 공개적으로 제시되어 왔다는 점에서 은폐된 정치 개입이라는 해석과는 거리가 있다.
가정연합의 행보는 특정 정치 세력을 지지하거나 권력을 탐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이 일관되게 강조해 온 것은 ‘인류 한 가족’이라는 보편적 가치 아래, 국경과 종교, 정파를 초월해 다양한 주체들이 평화의 담론을 형성하고 대화할 수 있도록 하는 공공적 플랫폼의 구축이었다. 힘의 정치가 다시 고개를 드는 오늘, 이러한 가치 중심의 접근이 얼마나 실질적인 대안이 될 수 있을지는 여전히 검증의 영역에 있다. 그러나 분명한 점은 이 평화의 실험이 권력을 향한 행보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가정연합이 걸어온 길, 그리고 앞으로도 걷고자 하는 길은 정치가 아닌 평화로 귀결될 것이다.
2026-05-04 20: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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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도덕경의 ‘현빈(玄牝)’: 만물을 낳는 신비로운 ‘어머니의 문’ [父性 문명의 한계, 母性 구원의 비전-비전]
태초 이래 닫혀 있던 생명문의 봉인을 푸는 모성적 실체
신비로운 어머니의 부름은 도교(道敎) 최고의 상징인 ‘현빈(玄牝)’의 문으로 이어진다. 생명이 잉태되는 그 비밀스러운 통로 속에 어떤 구원의 암호가 숨겨져 있는지, 도교 경전의 가장 깊은 심연으로 발걸음을 옮겨 보자. 진리의 뿌리를 찾는 이 여정은 결국 우리를 잃어버린 하늘 어머니의 따뜻한 품으로 안내할 것이다.
인류의 오래된 지혜는 늘 ‘생명의 근원’이 어디인가를 물어왔다. 서구 문명이 성서를 통해 ‘하늘부모님’의 섭리를 찾아왔고, 유교와 불교가 각각 ‘음양합덕’과 ‘자비의 법계’를 탐구했다면, 동양 철학의 가장 깊고 신비로운 샘물인 도교는 그 해답을 ‘어머니’라는 모성적 언어 속에 갈무리해 두었다. 노자(老子)는 우주의 절대자인 도(道)를 설명하며 ‘만물의 어머니’라는 파격적인 정의를 내림으로써, 인류가 돌아가야 할 영적 고향이 어디인지를 가장 명확하게 예고했다.
◆ ‘현(玄)’의 오묘함과 ‘빈(牝)’의 실체성이 만나는 자리
노자의 『도덕경』 제6장은 인류 정신사상 가장 신비롭고도 강렬한 상징 하나를 제시한다. “골짜기의 신(谷神)은 죽지 않으니, 이를 일컬어 현빈(玄牝)이라 한다.” 여기서 ‘현(玄)’은 단순히 검다는 뜻을 넘어, 인간의 얕은 지식과 논리를 뛰어넘는 ‘깊고 오묘한 우주의 본체’를 상징한다. 반면 ‘빈(牝)’은 ‘암컷’ 혹은 ‘여성의 생명력’을 뜻하는 단어로, 만물을 잉태하여 출산하는 구체적이고 실체적인 모성을 의미한다.
왜 성인 노자는 우주의 근원을 설명하며 이토록 생생한 여성적 상징을 선택했을까? 인문학적 관점에서 볼 때, 이는 만물을 창조하고 양육하는 우주의 에너지가 관념적인 이치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자녀를 낳는 어머니의 태(胎)와 같은 ‘실체적 주권’을 지니고 있음을 간파한 것이다. 현빈은 하늘부모님의 내면에 존재하는 모성적 성품이 지상에 실체화되어야 할 존재론적 필연성을 가장 완벽하게 대변하는 도교적 계시라 할 수 있다. 아버지가 생명의 씨앗을 주는 주체라면, 그 씨앗을 받아 실질적인 형체로 빚어내는 것은 오직 어머니라는 실체뿐이기 때문이다.
◆ ‘현빈지문(玄牝之門)’, 하늘과 땅의 뿌리가 내려오는 통로
노자는 이 현빈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현빈지문(玄牝之門)’, 즉 ‘어머니의 문’을 언급한다. “현빈의 문은 하늘과 땅의 뿌리(天地根)라 한다. 면면히 이어져 끊이지 않으니, 아무리 써도 다하지 않는다.” 여기서 ‘문(門)’이라는 상징은 매우 중요하다. 문은 안과 밖을 잇고, 하늘과 땅을 연결하며, 죽음의 세계에서 생명의 세계로 나아가는 유일한 통로다.
아득한 태고적 타락 이후 인류는 본연의 하늘 혈통을 잃어버렸고, 이로 인해 생명의 문은 굳게 닫혀 버렸다. 지난 수천 년간 부성(父性) 중심의 역사가 아무리 날카로운 진리의 칼날로 세상을 분석하고 개척했을지라도, 정작 그 문을 열어 인류를 새로운 생명으로 다시 낳아줄 ‘실체적 모태’는 존재하지 않았다. 도교가 예고한 현빈의 문은 단순히 철학적 수사가 아니다. 그것은 구원 역사의 최종 단계에서 실체적인 여성 구원자가 육신을 입고 현현하여, 유구한 세월 동안 막혀 있던 인류 중생(重生)의 통로를 열어젖힐 것임을 예언한 것이다.
아버지가 씨앗을 주어도 그 씨앗을 받아 생명으로 화하게 할 문이 없다면 창조는 완성될 수 없다. 따라서 여성적 신성을 온전히 갖춘 존재의 탄현은, 하늘의 도(道)가 땅의 실체(門)를 만나 비로소 하늘부모님의 참된 생명이 인류에게 전수되는 위대한 ‘현빈의 성취’인 것이다. 이 문을 통해 인류는 비로소 사탄의 거짓 혈통을 벗고 본연의 뿌리로 돌아갈 길을 찾게 된다.
◆ 섭리적 완성과 실체성령의 역사
이러한 도교의 현빈 사상은 앞선 연재에서 다뤘던 기독교의 성령론이나 유교의 음양합덕과도 완벽한 궤를 같이한다. 도교 경전이 암시한 ‘신비로운 어머니’는 결코 형이상학적 환상 속에만 존재하는 분이 아니다. 그것은 역사 속에서 구체적인 성별을 입고 현현하여, 독생자(獨生子)가 닦아놓은 진리의 터전 위에 사랑의 안착을 이루는 실체성령(實體聖靈)의 사역으로 귀결된다.
노자가 현빈을 “아무리 써도 다하지 않는다(用之不勤)”고 한 것은 어머니의 사랑이 지닌 무궁한 생명력과 자비의 에너지를 뜻한다. 지상에 현현한 모성적 실체를 통해 열린 현빈의 문은, 이제 타락한 인류를 원죄 없는 본연의 백성으로 거듭나게 하는 무궁무진한 은사(恩辭)의 샘물이 된다. 인위(人爲)의 법도로 가로막혔던 생명의 통로가, 무위(無爲)의 사랑을 지닌 한 여인을 통해 다시 열리면서. 인류는 비로소 하늘부모님이라는 근원적인 뿌리에 다시 닿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는 인간의 지식이나 노력으로 도달할 수 없는, 오직 ‘어머니의 문’을 통과해야만 얻을 수 있는 구원의 실재다.
◆ 문명의 새벽, 어머니의 문을 통과하며
『도덕경』의 현빈은 인류 구원의 마침표가 권력이나 투쟁이 아닌,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품어내는 모성적 포용에 있음을 준엄하게 가르친다. 지금까지의 문명이 하늘의 명령을 받들기 위해 치열하게 달려온 ‘부성의 역사’였다면, 이제는 그 명령을 부드러운 사랑으로 꽃피워야 할 ‘모성의 역사’로 진입해야 한다.
여성적 구원 주체의 현현은 도교가 수천 년간 탐구해온 ‘천지근(天地根)’, 즉 하늘과 땅의 뿌리를 회복하는 사건이다. 이제 인류는 인위적인 지식과 아집의 옷을 벗고, 현빈의 문이 선사하는 평화의 품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 문 너머에는 갈등이 종식되고 만물이 상생하는 ‘인류 한 가족’의 세상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이 신비로운 생명의 도리는 이제 ‘가장 낮은 곳으로 흐르는 물’의 지혜로 이어진다. 천하를 정복하는 강함보다 세상을 치유하는 부드러움이 왜 더 위대한지, 그리고 그 무위(無爲)의 리더십이 어떻게 문명의 대전환을 이루어내는지 성찰하는 일이야말로 오늘날 우리가 경전의 지혜를 빌려 마주해야 할 가장 시급한 과제다. 닫혀 있던 문은 열렸고, 새로운 시대의 서광은 이미 현빈의 문을 통해 온 누리를 비추고 있다.
서성종 작가(신학박사)
2026-05-04 11: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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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연합 “선민은 특권 아닌 책임”…‘한민족 사명·천일국 지도자 역할 조명’ 국제심포지엄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세계선교본부는 ‘천지인참부모님 성혼 66주년과 천원궁 천원성전 입궁 1주년을 맞아 3일 경기 가평 HJ천주천보수련원 친화관 강당에서 ’천일국 지도자 한민족 선민 교육 국제심포지엄‘을 열었다.
이번 국제심포지엄은 선민으로서 한민족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천일국 지도자의 섭리적 사명과 정체성을 조명하기 위해 마련됐으며, 한민족 서사가 지닌 보편적 가치와 천일국 시대 지도자상의 방향을 모색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개회식에서 도현섭 선학UP대학원대학교 총장은 심포지엄의 취지와 의의를 설명하며 참석자들을 맞이했다. 이어 두승연 세계선교본부장은 인사말에서 “‘한민족 선민 대서사시’는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주시는 하늘의 절박한 음성이며, 혼란과 분열의 시대에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을 밝히는 생명의 메시지”라고 말했다.
이어 주재완 선문대 교수가 좌장을 맡아 ‘한민족 선민 대서사시의 이해와 천일국 지도자의 섭리적 사명’ 주제로 심포지엄이 진행됐다.
첫 발표에 나선 조형국 한국하이데거학회 부회장은 ‘한민족 선민 대서사시와 한민족 문화’를 주제로, 한민족의 정체성을 천손 의식과 효정 문화, 창조성에서 찾았다. 그는 “한민족은 하늘과 연결된 민족으로서 효정은 생명의 근원을 공경하는 자존의 근본”이라며, 전통 가치가 오늘날 K-컬처와 K-스피릿으로 확장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어 한민족 문화의 생활화와 세계화를 통해 한국이 정신문화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현진 선학UP대학원대학교 교수는 ‘한민족 선민 대서사시와 섭리적 선민 이해’를 주제로 글로벌 다중위기 시대 한민족의 역할을 조명했다. 그는 전쟁, 기후위기, 경제 양극화가 동시에 전개되는 시대를 진단하며 “선민은 특권이 아니라 타자에 대한 무한 책임을 실천하는 책임적 소명자”라고 말했다. 이어 한민족의 수난사는 인류를 위한 희생과 연단의 역사였다고 평가하고, 효정·정의·심정문화가 세계를 다시 결속시키는 치유제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임 교수는 공생·공영·공의의 가치 위에 신통일한국을 실현하고, 이를 세계평화의 모델 국가로 발전시켜야 한다고 제안했다. 아울러 종교·정치·학술·청년 세대가 함께하는 글로벌 거버넌스 구축을 통해 인류 공동위기 해결에 앞장서야 한다고 밝혔다.
조광명 세계평화교수협의회 회장은 ‘한민족 선민 대서사시와 한민족의 종교성’을 주제로 발표하며, 한민족의 선민사상을 혈통적 우월주의가 아닌 도덕적 책임 의식으로 해석했다. 그는 “한민족의 선민사상은 홍익과 봉사를 목적으로 한다”며, 한국 사회가 유·불·선·기독교 등 다양한 종교 전통을 포용하고 융합해 온 역사를 주목했다. 이를 바탕으로 종교 간 갈등을 넘어 공존과 협력의 모델을 제시하고, 한국이 21세기 정신문화 지도국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어진 토론에서 참석자들은 한국의 ‘효정 문화’가 현대 사회의 분절과 갈등을 해결할 새로운 윤리적 토대이자 실천적 평화 운동으로 전개될 수 있다는 데 뜻을 모았다.
이날 행사는 세계평화교수협의회(PWPA)와 세계평화학술인연합(IAAP)이 공동 주관했으며, 국내외에서 100여 명의 대륙별 지도자가 참석했다.
2026-05-03 21:3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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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0쌍 ‘국경없는 가약’으로 세계평화 실천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가정연합)은 지난 2일 경기 가평 청심평화월드센터에서 ‘2026 천지인참부모 효정 천주축복식’을 개최했다.
‘천지인 참부모님 성혼 66주년과 천원궁 천일성전 입궁 1주년’을 기념해 열린 이번 축복식(국제합동결혼식)에는 신랑·신부와 가족, 신도 등 2만여명이 참석했다. 행사는 전 세계 194개국에 온라인으로 생중계됐다.
이날 축복식은 한학자 총재를 대신해 이기성 천심원장 부부의 집례로 성수의식, 성혼문답, 성혼선포, 축도 순으로 진행됐다. 전 세계 70개국에서 모인 2100쌍의 청년 남녀는 서로 다른 문화와 배경을 넘어 하나의 가정을 이루며, 평화를 삶으로 실천하겠다고 서약했다.
가정연합은 이번 축복식의 핵심 의미를 ‘인류 한 가족 사회를 향한 실질적 평화운동’으로 제시했다. 과거 적대 관계에 있던 국가 출신 청년들이 교차 결혼을 통해 한 가족을 이루는 것은 역사적 원한을 넘어 항구적 평화의 토대를 쌓는 상징을 넘어 실천으로 이어지는 해법이라는 설명이다.축복식은 뮤지컬 축하공연과 신랑·신부들의 웨딩댄스, 전 세계 대륙회장들이 함께한 억만세 삼창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가정연합 관계자는 “앞으로도 참가정 운동과 축복식을 지속적으로 펼쳐 무너져가는 가정 윤리를 바로 세우고, 저출생 문제 해결에 힘을 보태는 한편 국경과 인종을 넘어선 평화 공동체를 확산해 ‘하나님 아래 인류 한 가족’의 비전을 실현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2026-05-03 20:4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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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개국 2100쌍 ‘국경 없는 가약’… 가정연합, 국제합동결혼 통해 평화운동 펼쳐
전쟁과 갈등, 자국 우선주의의 파고 속에서 ‘평화’라는 인류 보편의 가치가 흔들리는 요즈음, 국경과 인종을 허물고 지구촌 젊은이들이 한 가족으로 거듭나는 대규모 화합의 장이 한국에서 펼쳐졌다.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은 2일 경기도 가평 청심평화월드센터에서 ‘2026 천지인참부모 효정 천주축복식’을 개최했다. 이날 전 세계 70개국에서 모인 2,100쌍의 청년 남녀가 참사랑을 바탕으로 선한 가정을 이루겠다고 서약했다.
‘천지인 참부모님 성혼 66주년과 천원궁 천일성전 입궁 1주년’을 기념해 열린 이번 축복식(국제합동결혼식)은 신랑·신부와 가족, 신도 등 2만여 명이 참석했으며, 행사는 전 세계 194개국에 온라인으로 생중계됐다. 참가자들은 서로 다른 문화와 배경을 넘어 하나의 가정을 이루며, 평화를 삶으로 실천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이날 축복식은 한학자 총재를 대신해 이기성 천심원장 부부의 집례로 성수의식, 성혼문답, 성혼선포, 축도 순으로 진행됐다. 고(故) 문선명 총재와 현장에 함께하지 못한 한 총재는 과거의 육성 녹음을 통해 이들의 장도를 축복했다.
가정연합은 이번 축복식의 핵심 의미를 ‘인류 한 가족 사회를 향한 실질적 평화운동’으로 제시했다. 과거 적대 관계에 있던 국가 출신 청년들이 교차 결혼을 통해 한 가족을 이루는 것은 역사적 원한을 넘어 항구적 평화의 토대를 쌓는 상징을 넘어 실천으로 이어지는 해법이라는 설명이다.
이번 국제합동결혼식에 참여한 신랑·신부들은 국경과 문화의 차이를 넘어 ‘가정’의 가치를 수호하겠다는 굳은 의지를 보였다. 한국에서 참여한 변찬수•하유진 신랑신부는 “서로 다른 배경을 존중하며 건강한 가정을 이루는 것이 곧 평화의 시작”이라고 전했으며, 아프리카에서 참여한 팡일월프리드디아라 신부는 “이번 결혼이 개인을 넘어 두 나라와 문화를 잇는 의미 있는 출발이며, 귀한 축복을 받은 만큼 하나의 가족으로서 평화에 기여하는 삶을 살며 참가정을 만들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저출생 위기를 겪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 이번 행사는 또 다른 의미를 던진다. 2025년 대한민국 합계출산율은 0.8명으로 OECD 회원국 가운데 유일하게 1.0명 미만을 기록했다. 이런 상황에서 ‘가정의 가치’를 강조하는 축복결혼식은 비혼·딩크(DINK, 맞벌이 무자녀 가정) 문화 확산과 인구절벽 문제를 돌아보게 하는 하나의 대안적 담론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날 축복식은 뮤지컬 축하공연과 신랑·신부들의 웨딩댄스, 전 세계 대륙회장들이 함께한 억만세 삼창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이에 앞서 열린 ‘문선명·한학자 총재 성혼 66주년과 천원궁 천일성전 입궁 1주년 기념식’에서는 서인국 세계선교본부 사무총장의 사회로 두승연 세계선교본부장의 기념사와 사무엘 하데베 선지자, 낸시 로사리오 주교 등 세계 종교지도자들의 축사가 이어지며 설립자의 평화 업적을 기렸다.
가정연합 관계자는 “앞으로도 참가정 운동과 국제축복결혼을 지속적으로 펼쳐 무너져가는 가정 윤리를 바로 세우고, 저출생 문제 해결에 힘을 보태는 한편, 국경과 인종을 넘어선 평화 공동체를 확산해 ‘하나님 아래 인류 한 가족’의 비전을 실현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2026-05-02 18:3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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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종교지도자들, 서울서 ‘인류 한 가족’ 비전 공유…평화 연대 본격화
세계 종교지도자들이 서울에 모여 평화와 화합, ‘인류 한 가족’ 비전을 공유하며 종교와 국경을 초월한 연대에 나섰다.
‘2026 세계종교지도자 콘퍼런스’가 1일 서울 중구 한국종교협의회에서 개회식을 시작으로 막을 올렸다. 이날 개회식에는 한국을 비롯해 미국, 일본, 영국, 호주, 이스라엘, 이탈리아, 덴마크,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20개국에서 100여 명의 종교 지도자가 참석했다.
세계성직자협의회(WCLC), 대한민국기독교성직자협의회(KCLC), 한국종교협의회(KRA)가 공동 주최한 이번 콘퍼런스는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의 ‘천지인참부모님 천주성혼 66주년’과 ‘천원궁 천일성전 입궁 1주년’을 기념해 마련됐으며, 서울과 경기도 가평 일대에서 5일간 진행된다. 세계 각국에서 활동하는 성직자들이 종교와 국경을 넘어 평화를 실현하자는 공동의 목표 아래 한자리에 모였다.
개회식은 양종은 KCLC 국제위원장의 사회로 진행됐으며, 낸시 로사리오 대주교(WCLC 대표)와 최길춘 창신교회 담임목사(KCLC 대표)의 초종교적 개회 기도로 시작됐다. 참석자들은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인류 평화를 향한 의지를 다졌다.
두승연 세계선교본부장은 환영사를 통해 “방한한 세계 성직자들을 진심으로 환영한다”며 “한학자 총재의 희생과 섭리를 깨달아 인류 평화를 위한 영적 여정에 함께해 달라”고 말했다.
김기훈 WCLC 명예회장과 홍윤종 한국종교협의회 회장(KCLC 공동의장)은 “이번 콘퍼런스가 국경과 교파를 초월한 종교적 연대를 구축하고 하늘부모님의 꿈을 현실로 만드는 성스러운 결집의 장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축사에 나선 송용천 가정연합 한국협회장은 “한학자 총재님의 노벨평화상 후보 추천은 희생적 모성의 평화 가치가 국제사회에서 인정받은 결과”라며 “천주성혼 66주년의 의미를 계승해 인류 한 가족 비전을 구체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문식 통일그룹 이사장은 “종교는 기도에 머무르지 않고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며 “종교의 자유와 양심의 가치를 지키는 실천이 인류 미래를 이끄는 출발점”이라고 밝혔다.
이날 행사에서는 대륙별 종교 지도자들이 평화 메시지를 전하는 시간도 마련됐다. 임보니 하데베 세계평화종교인연합(IAPD) 아프리카 의장은 “아프리카 대륙이 한학자 총재의 평화 메시지로 변화하고 있다”며 확산 의지를 밝혔고, 마수드 아부 하툼 이스라엘 멜키트 가톨릭 신부는 “중동 갈등 해결의 길은 종교 간 사랑과 이해”라고 강조했다.
또한 존 맘보 잠비아 Church of God 주교는 “아프리카 성직자들이 평화를 위한 기도와 실천에 동참하고 있다”고 밝혔으며, 파알레포 투이수가 호주 목사는 “하나님 아래 인류 한 가족 비전은 종교와 문화를 넘어 확장돼야 한다”고 말했다. 서진우 목사(대한예수교합동총회 노회장)도 화합과 존중의 메시지를 전했다.
참가자들은 2일 가평 청평 월드센터에서 열리는 ‘천주성혼 66주년 및 천원궁 천일성전 입궁 1주년 기념식’에 참석한다. 이어 3일에는 서울 용산구 서빙고로 천승교회에서 성일예배를 드린 뒤, 청파동 가정연합 원본부교회 성지순례 등을 통해 종교 간 화합을 위한 공감대를 넓혀갈 예정이다.
2026-05-02 09:53: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