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가 갈구한 동방의 가치, ‘어질 인(仁)’ 속 씨앗의 생명력
공자(孔子)는 일찍이 혼탁한 난세를 개탄하며 파격적인 선언을 남겼다. “도(道)가 행해지지 않으니, 구이(九夷, 동이)에 가서 살고 싶다”(『논어』 자한 편)는 고백이다. 의아해하는 제자들에게 공자는 단호하게 답했다. “그곳은 군자가 사는 곳이다.” 성인(聖人) 공자가 그토록 갈구하던 ‘인(仁)’의 실체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우리는 흔히 이를 ‘어질다’는 관념적 형용사로 풀이하지만, 그 본질적 생명력은 ‘씨앗 인(仁)’에 박혀있다. 산조인(대추씨), 아마인(아마씨), 도인(복숭아씨) 등 한방 약재에서 씨앗의 가장 깊숙한 알맹이를 ‘인’이라 부르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껍질을 벗겨냈을 때 드러나는 그 작고 단단한 알맹이야말로 생명의 정수이기 때문이다.
씨앗은 비록 작으나, 그 안에 거대한 나무로 성장할 모든 역동적인 과정(process)과 우주의 에너지가 응축되어 있다. 결국 공자가 갈망했던 동방의 군자국(君子國)은 화려한 겉치레의 나라가 아니었다. 생명의 근원인 ‘씨앗’을 소중히 품고, 그 안에 담긴 무한한 가능성을 길러내는 모성적 인(仁)의 가치가 면면히 살아있는 나라였다. 단단한 자기 껍질을 깨고 나온 씨앗이 ‘자아’를 넘어 ‘타자’와 호흡하며 큰 나무로 성장하듯, 한반도는 개체와 전체가 깊이 공감하고 상호작용하는 생명력이 충만한 공동체였다. 공자가 지향했던 인류 정신의 원형과 정체성이 바로 이 땅, 어머니의 품을 닮은 한반도에 이미 예비되어 있었는지 모르겠다.
◆ 칼날의 정복사를 이긴 홍산의 미소, 어머니의 품에서 시작된 국통(國統)
인류사는 오랫동안 국가의 탄생을 강인한 군사력과 정복을 일삼는 남성 군주의 전유물로 기록해 왔다. 승자의 기록인 역사는 피의 연대기와 영토 확장이라는 남성적 서사에 경도되어 있었으나, 정작 한민족의 기원과 정통성을 설명하는 서사의 심연에는 반복적으로 ‘어머니’라는 존재가 흐르고 있다.
그 유구한 증거는 5,500년 전 요하(療河)의 대지에 뿌리 내린 홍산문화(紅山文化)에서부터 발견된다. 여신묘(女神廟)에서 출토된 형형한 눈빛의 여신상은 박물관에 박제된 유물의 차원을 넘어, 생명과 풍요를 관장하던 태초의 여성 신성이 지닌 생명력을 보여준다. 한민족의 국가 공동체는 그 시작부터 무력이 아닌 생명을 품는 모성적 가치에 뿌리를 두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러한 상징적 맥락은 우리 건국 신화 속에서 더욱 선명해진다. 하늘의 뜻을 지상에 안착시킨 단군신화의 웅녀, 고구려의 기틀을 닦은 주몽의 생모 유화부인, 그리고 신라 박혁거세와 알영부인을 보살폈다는 사소성모에 이르기까지, 우리 역사의 변곡점마다 ‘어머니’는 공동체의 탄생을 주도하는 성스러운 주역이었다.
우리의 건국 서사 속 국가는 차가운 철권 통치의 대상이 아니다. 대신에 생명을 잉태하고 기르는 따스한 어머니의 품을 닮아 있다. 이 모성적 이미지는 한민족이 국가를 바라보는 근원적인 시각이자, 시대를 거듭하며 계승되어 온 독특한 문화적 유전자가 아닐까? 결국, 한민족이 꿈꾸는 이상 국가는 정복의 산물이 아니라, 모든 생명을 품어 안는 ‘어머니의 마음’이 발현된 평화 공동체인 것이다.
◆ 여성성불론(女性成佛論) - 삼국통일의 기틀을 마련하다
서구 고대사가 국가의 형성을 권력과 정복의 서사로 풀이할 때, 한민족은 생명과 조화의 상징으로 공동체의 질서를 세워 나왔다. 유독 한민족의 고유한 사상적 전통에서는 공동체의 질서를 설명할 때 생명과 조화를 중시하는 상징이 자주 등장한다. 우리 민족 고유의 ‘풍류(風流)’나 ‘한(韓)’ 사상에 깃든 천지인 합일의 세계관, 그리고 ‘홍익인간’의 이념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러한 사상은 하늘의 뜻이 땅의 생명과 만나 인간의 삶 속에서 완성되어야 한다는 거대한 상생의 철학이다. 억겁의 세월 동안 우리 민족은 인간을 만물과 분리된 지배자로 보지 않았으며, 하늘과 땅 그리고 인간이 하나의 호흡으로 조화를 이루는 지극한 경지를 추구해 왔다.
이 장엄한 질서의 한복판에서 생명을 잉태하고 길러내는 ‘어머니’는 단순히 한 가정을 지탱하는 존재를 넘어, 천지의 기운을 몸으로 받아내 지상에 생명의 뿌리를 내리게 하는 우주적 통로이자 가장 강력한 상징으로 자리해 왔던 것이다. 따라서 한민족의 도덕적 이상은 차가운 법질서보다는, 만물을 차별 없이 품어 안는 어머니의 자애로운 모성 안에서 그 해답을 찾아왔다.
이와 같은 여성적 상징은 역사 속에서도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난다. 신라의 경우 선덕여왕의 즉위는 동아시아 역사에서도 매우 이례적인 사건이었다. 당시 신라는 혈통적 정통성을 중시하는 골품제 사회였다. 그러나 골품이 지배하는 신라의 정치 질서 속에서 여성이 군주로 추대된 사건은, 고대 한반도에서는 여성이 그저 남성의 대역이 아니라 왕실 정통성을 계승할 수 있는 당당한 주체자였음을 의미한다.
여기에는 당시 신라 불교계에서 발흥한 ‘여성성불론(女性成佛論)’이 결정적인 사상적 토대가 되었다. 여성 역시 그 몸 그대로 수행과 깨달음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이 혁신적인 인식은, 여성의 존재를 우주적 질서와 맞닿는 가치로 격상시켰다. 후일 선덕여왕이 스스로를 『승만경』의 주인공인 승만부인(勝曼夫人)에 비유한 것은 이러한 인식이 당시대 상황 속 어떤 위상이었는지를 가늠하게 한다. 이는 여왕의 권위를 세속의 정치 권력을 넘어 백성을 품고 공동체를 구원하는 도덕적·영적 지도력의 상징으로 승화시킨 고도의 통치 철학이었다. 결국 신라의 여성 군주는 무력이나 정복이 아닌, 정신적 권위와 자애로운 지도력으로 국가의 정당성을 확보했다. 이는 한민족 역사 속에서 여성의 지위가 단순한 사회적 역할을 넘어, 공동체의 명운을 짊어진 성스러운 위상으로 이해되어 왔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 흔들리는 왕조를 붙든 ‘조용한 권위’, 인수대비와 경국대전의 완성
한국 역사에서 ‘어머니’의 권위는 신화적 상징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실제 역사 속에서도 국가의 명운을 지탱하는 가장 실질적인 보루로 나타나는데, 조선 9대 임금 성종의 어머니 인수대비(소혜왕후 한씨)가 그 전형이다. 흔히 성종대를 성리학적 국가 질서가 완성된 황금기로 평가하지만, 법제와 의례가 정비된 문화적 토양 뒤에는 왕실의 중심을 단단히 붙든 어머니의 정치가 있었다.
조선 왕조는 세조의 계유정난(1453)이라는 참혹한 왕권 찬탈의 기억에서 채 벗어나지 못한 상태였다. 불과 17년 뒤인 1470년, 열세 살의 어린 성종이 보위에 올랐을 때, 정국은 여전히 폭풍 전야와 같았다. 만약 왕실의 기강이 조금이라도 흔들렸다면 ‘제2의 계유정난’이 일어나 왕조의 근간이 뿌리째 뽑혔을지도 모를 불안한 정국이었다. 이 서슬 퍼런 권력의 각축장 속에서 왕실 내부의 균형을 유지하며 정치 질서의 무게중심을 잡은 인물이 바로 인수대비였다.
인수대비는 단순히 어린 아들을 대신해 권력을 휘두른 통치자가 아니었다. 그녀는 『내훈(內訓)』을 통해 왕실과 사회가 지향해야 할 도덕적 가치를 세우는 한편, 보이지 않는 곳에서 왕조의 지속성을 떠받치는 ‘조용한 권위’로 기능했다. 정치 전면의 칼날 같은 힘은 아니었으나, 그 자애롭고도 엄격한 모성적 권위야말로 조선이 제도적 안정(경국대전 완성)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한 보이지 않는 뿌리였다. 결국 조선의 태평성대는 전면에 나선 국왕의 통치력과 그 뒤를 묵묵히 받친 어머니의 헌신적 권위가 맞물려 빚어낸 역사적 합작품이었던 셈이다.
『경국대전』은 조선 왕조가 지향했던 국가 통치 질서를 집대성한 법전이다. 태조 이후 여러 차례 편찬 작업이 이어졌지만, 국가 운영의 기본 틀이 완전히 정비된 것은 성종대에 이르러서였다. 이 시기는 정치적 격변을 겪은 조선 왕조가 점차 제도적 안정을 찾아가던 시기이기도 했다. 성종이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랐던 점을 고려하면, 왕실 내부의 질서와 정치적 균형이 유지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한 문제였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인수대비는 왕실의 중심을 지키며 왕조의 권위를 안정시키는 역할을 했다.
결과적으로 성종대에 이루어진 제도 정비와 문화적 안정은 여러 역사적 조건이 맞물려 이루어진 것이었다. 『경국대전』의 편찬 역시 이러한 시대적 흐름 속에서 완성된 국가 질서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조선왕조가 성종대에 이르러 문화적·정치적 안정기를 맞이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이러한 ‘어머니의 권위’가 자리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국가의 역사는 언제나 전면에 드러난 권력의 이야기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역사에 보이지 않는 존재가 역사의 흐름을 지탱하기도 한다.
◆ 독생녀(獨生女)의 강림, 하늘부모님 시대를 여는 인류 문명의 대전환
1970년대 이후 서구 사회에서 등장한 여성신학은 기독교 전통 속에서 사용되어 온 ‘하나님 아버지’라는 표현이 남성 중심 사회 구조와 결합되어 이해되어 온 측면이 있다고 비판하였다. 성서의 창조 서술에서 인간이 남자와 여자로 창조되었다는 점에 주목하며, 하나님 역시 남성과 여성의 속성을 함께 지닌 존재로 이해될 수 있다는 해석이 제기된 것이다. 이러한 논의는 하나님을 단순한 부성적 존재가 아니라, 보다 포괄적인 존재로 이해하려는 신학적 시도 가운데 하나로 평가된다.
가정연합의 신학 역시 하나님을 ‘하늘부모님’으로 이해한다. 『원리강론』에 따르면 하나님은 양성과 음성의 속성을 함께 지닌 이성성상의 존재이며, 창조이상이 완성될 때 하나님은 무형의 참부모 하늘부모님으로 나타나고 아담과 해와는 인류의 참부모가 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하나님은 단순히 ‘부성신’으로만 이해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 인류의 참부모로 이해되는 존재이다.
한편 한국의 신화와 역사 속에는 공동체의 기원을 설명하는 이야기들이 전해 내려온다. 웅녀와 유화부인과 같은 인물들은 단순한 허구적 상징이라기보다, 한민족이 자신의 기원과 정체성을 기억해 온 방식 속에서 형성된 이야기들이다. 신화는 때로 역사적 사실과 상징이 뒤섞인 서사이지만, 그 속에는 공동체가 스스로의 뿌리를 이해하려 했던 오래된 기억이 담겨 있다. 이러한 역사적 기억 속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것은 공동체의 탄생과 생명의 기원을 여성의 존재와 연결해 이해하는 전통이다. 웅녀가 인고의 시간을 견뎌 새로운 문명의 시작을 준비하는 이야기나, 고구려 건국 서사 속에서 유화부인이 등장하는 이야기 역시 그러한 인식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가정연합에서 말하는 독생녀는 이러한 신화적 서사와 동일한 범주에 속하는 존재는 아니다. 독생녀는 실제 역사 속에서 하늘부모님의 섭리를 실현하기 위해 등장한 인류의 참어머니를 의미한다. 가정연합은 한학자 총재를 이러한 독생녀의 실체로 이해하고 있으며, 참부모 사상 속에서 인류가 하나의 가족으로 살아가는 평화 세계의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따라서 독생녀는 단순한 상징적 개념이 아니라, 하늘부모님의 섭리를 역사 속에서 실현하는 실존적 존재로 이해된다. 이 시대에 선포된 참부모 사상은 인류가 서로 대립하고 경쟁하는 질서를 넘어 하나의 가족 공동체로 나아가야 한다는 새로운 문명적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 모성의 숨결, 인류 평화의 문명을 잉태하다
이제 우리는 역사를 바라보는 시선을 조금 다르게 가질 필요가 있다. 그동안 요하 문명을 ‘변방의 신화’ 정도로 치부해 왔지만, 최근 고고학 연구는 홍산 문화와 같은 동북아 고대 문명이 결코 단순한 신화의 영역에만 머물지 않았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 문명 속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상징 가운데 하나가 바로 생명을 품고 길러내는 ‘어머니’의 존재였다. 웅녀로 상징되는 건국 서사는 한민족이 공동체의 탄생을 이해하는 독특한 방식 가운데 하나였으며, 이러한 인식은 역사 속에서도 다양한 형태로 이어져 왔다.
가정연합 경전 『참부모경』은 이러한 한민족의 정체성을 ‘한(韓)’ 사상과 연결하여 설명한다. 말씀에 따르면 ‘한(韓)’이라는 말은 단순한 민족 명칭이 아니라 하늘의 뜻을 세상에 펼치는 사명을 지닌 민족을 의미한다. 또한 ‘한’은 하나와 합일을 뜻하며, 우주 만물을 포용하는 크고 넓은 의미를 담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한민족은 하늘의 뜻을 역사 속에서 실현하는 역할을 맡은 민족으로 이해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한민족 역사 속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어머니의 권위’ 역시 단순한 문화적 상징을 넘어 공동체를 유지하고 생명을 이어가는 중요한 가치로 이해될 수 있다. 신화 속 웅녀에서부터 역사 속 선덕여왕과 인수대비에 이르기까지, 한민족의 역사에는 공동체의 중심을 지키는 여성의 권위가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나 왔다.
가정연합은 이러한 역사적 흐름 속에서 오늘날 인류의 참어머니로 등장한 존재를 ‘독생녀’로 이해한다. 독생녀는 단순한 상징적 개념이 아니라, 하늘부모님의 섭리를 역사 속에서 실현하는 실존적 존재를 의미한다. 가정연합은 한학자 총재를 이러한 독생녀의 실체로 이해하며, 참부모 사상은 인류가 서로 대립하는 문명을 넘어 하나의 가족 공동체로 나아가야 한다는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결국 우리가 말하는 ‘어머니의 나라’란 특정한 권력 구조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생명을 중심에 두는 문명의 질서를 의미한다. 힘과 정복의 논리가 아니라 생명과 돌봄의 가치가 중심이 되는 세계, 그리고 인류가 하나의 가족으로 살아가는 평화의 문명을 의미한다. 한민족의 오랜 역사 속에서 이어져 온 어머니의 전통은 이제 ‘참어머니’라는 이름으로 인류 문명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고기훈 박사(한국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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