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행정부 요구에 주미 대사도 교체키로
지난 2월 미국 백악관을 방문했다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한테 모욕만 당하고 쫓겨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확실히 고분고분해졌다. 미 행정부의 무기 지원 재개 방침에 즉각 고마움을 표한 것은 물론 트럼프의 요구를 받아들여 총리를 교체하는 개각까지 단행한 것이다.

14일(현지시간)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젤렌스키는 이날 미 행정부가 우크라이나에 패트리엇 방공 미사일을 비롯해 첨단 무기를 공급키로 한 직후 트럼프와 전화 통화를 갖고 감사의 뜻을 밝혔다. 통화 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글에서 젤렌스키는 “매우 좋은 대화였다”며 “우크라이나를 돕고 살상을 방지하면서 지속 가능하고 정의로운 평화를 구축하기 위해 협력할 준비가 되어 있는 트럼프 대통령께 감사의 인사를 드렸다”고 밝혔다. 이어 “나는 트럼프 대통령과 더 자주 대화하고 계속해서 우리의 조치를 긴밀히 조율해 나가기로 합의했다”고 덧붙였다.
이날 트럼프는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실망했다”며 “수십억 달러어치의 미국 무기가 우크라이나로 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푸틴이 향후 50일 이내에 우크라이나와의 평화 협정 체결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러시아 상품에 혹독한 관세를 매길 것이라는 경고도 했다.
한편 AFP 통신에 따르면 젤렌스키는 이날 우크라이나 행정부 2인자인 총리를 바꾸는 개각 계획을 공개했다. 2020년 3월부터 5년 넘게 재직해 온 데니스 슈미할 현 총리를 국방부 장관으로 보내고, 루스템 우메로프 현 국방장관을 주미 대사로 임명하는 내용이다. 후임 총리에는 여성 경제 전문가인 율리아 스비리덴코 부총리 겸 경제부 장관이 내정됐다.

총리가 국방장관으로 내려앉는 것이 얼핏 ‘강등’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가 2022년 2월부터 벌써 3년 넘게 전쟁을 치르고 있는 국가라는 점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 국방장관의 위상이 사실상 총리 이상이라는 뜻이다. 젤렌스키는 “슈미할의 풍부한 경륜은 국방장관직에 분명히 유용할 것”이라고 말해 슈미할에 대한 강한 신임을 드러냈다.
사실 이번 개각은 주미 대사를 교체하는 것이 핵심이다. 옥사나 마르카로바 현 대사는 조 바이든 전 대통령 시절인 2021년 2월 미국에 부임했다. 그는 민주당 바이든 행정부와 좋은 관계를 유지했으나 정권 권체 후 공화당 인사들은 그를 “민주당에 지나치게 편향된 인물”이라며 비난해왔다. 이에 지난 4일 트럼프와 젤렌스키가 통화할 당시 트럼프가 “주미 대사를 바꿔달라”고 요구했으며 젤렌스키가 이를 받아들인 것으로 전해진다. 우메로프 신임 주미 대사 내정자는 국방장관으로 일하며 트럼프 행정부 인사들과 수시로 접촉한 경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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