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고통 수반된 농산물 협상…전략적 판단 필요”
지난 5∼10일(현지시간) 미국을 방문했던 여한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이 미국과 협상 타결이 지연된 배경으로 제조업 협력이 잘못된 전략이 아니냐는 질의에 “미국이 제조업 협력에 흡족하지 않아서는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여 본부장은 다음번 방미 때는 “관계부처와 이해관계자, 국회 협의를 거쳐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와 ‘랜딩존’에 도달할 수 있는 우리 정부안을 만들어 주고받기 협상을 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14일 밝혔다.

여 본부장은 이날 세종정부청사에서 지난주 미국 워싱턴을 방문한 결과와 다음달 1일부터 부과하기로 다시 한 번 유예된 25% 상호관세를 놓고 향후 20여일 간 어떻게 협상을 추진할지 계획을 전했다. “새 정부가 들어선 뒤 한 달여간 대내적으로 협상체제를 확대, 일신하고 짧은 시간에도 미국 측 협상 파트너와 실질적으로 논의를 진전했다”고 자평한 여 본부장은 남은 20여일을 “우리에게 랜딩존을 찾기 위한 선택과 결정의 시간”이라고 말했다. 여 본부장은 양국이 합의할 수 있는 범위를 좁히고 협상을 타결할 방안을 랜딩존으로 표현하고 있다.
대선 후 지난달 12일 취임한 여 본부장은 이후 워싱턴을 두 번 방문했다. 취임 열흘 만인 지난달 22일부터 28일까지 방미했던 여 본부장은 지난주에 다시 방미해 닷새가량 머물며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무역대표부(USTR) 대표,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부 장관을 각각 총 3차례 만났다. 그럼에도 현재 상황을 “축구 후반전에 선수가 교체돼 전력질주를 하다가 결국 연장전에 돌입한 상황”이라 빗댄 여 본부장은 “시간 때문에 실리를 희생하지는 않으려는 생각”이라며 “20여일이 부족한 시간이지만 굵직한 큰 그림 차원의 합의는 가능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우리나라는 제조업 강점을 살려 미국과 ‘제조업 르네상스 파트너십’을 강화한다는 협상 전략을 펼치고 있다. 미국이 여러 제조업 경쟁력이 약화한 상황에서 우리 정부는 반도체, 자동차, 조선 등 여러 산업 분야 협력이 유망하다고 판단했다. 이런 상황을 활용해 우리나라가 무엇을 내주고 미국으로부터 관세를 인하받는 윈-루즈(win-lose) 틀의 ‘제로섬’이 아닌 미국 제조업 복원을 도우면서 우리나라 제조업에도 새로운 성장동력을 불어넣는 윈윈 방식의 ‘포지티브섬’으로 양국 이익의 규모를 키운다는 방침이다.

여 본부장은 “미국 통상 협상은 경제이슈뿐 아니라 정치적 이슈가 중요하다”며 “그만큼 미국 중소기업의 제조업에 집중해 상품교역 분야 무역적자에 초점이 맞춰졌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제조업 협력 방식이 미국의 무역적자를 해소하는 데 즉각적 효과를 보기 어려운 전략이 아니냐는 질의에는 “미국 무역적자를 줄이면서도 양국 핵심산업을 성장할 논의에 진전을 이뤘다”며 “(미국) 무역적자 감소가 중장기적으로 일어나는 부분은 분명히 있으나 트럼프 대통령 임기 4년 안에도 일어날 수 있다”고 답했다.
제조업 협력안 도출과 동시에 USTR이 매해 작성하는 ‘국별 무역장벽 보고서(NTE 보고서)’에 언급된 비관세 장벽도 협상 대상이다. 여 본부장은 “우리가 어떤 걸 수용하고 거부할지 관계부처, 국회와 협의하고 의논 중”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어떤 통상협상이든 농산물이 고통스럽지 않았던 협상은 없다”며 “하지만 이후 산업 경쟁력이 강화돼 농산물도 우리가 전략적으로 판단할 부분”이라고 덧붙였다.
지난 10일 귀국한 여 본부장은 이번주 관계부처와 국회 등에 방미 결과를 공유하고 향후 추진사항을 협의한다. 이 과정에서 비관세 장벽 개방을 비롯한 관련 내용을 논의할 전망이다. 여 본부장은 “국내에서 관계부처와 협의하고 국회 등으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아 가는(협의를 진행하는) 과정이 미국과 협상 못지않게 중요하다”며 “다음 방미 땐 국내에서 필요한 절차를 거쳐서 랜딩존을 염두에 두고 합의를 시도하는 형태가 돼야 할 것이라 본다”고 말했다.
정상회담 관련해서는 “현재 장관급에서 최대한 진전을 보이고 양국 이슈를 줄여나가는 게 중요한 시점”이라면서도 “적절한 시점에 정상회담이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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