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1…’ 마케팅서 아이폰 성능 홍보 ‘일석이조’
지난달 애플은 가장 큰 연례행사인 WWDC에서 자신들이 투자한 영화 ‘F1 더 무비’를 자랑하는 데 한참의 시간을 쏟았다.
전 세계의 애플 개발자들을 위한 행사라 좀 뜬금없었지만 애플은 아랑곳하지 않고 여러 마케팅을 이어갔다. F1 영화 예고편을 처음 공개할 땐, 아이폰을 운전석 스티어링휠처럼 진동시켜 화제를 모았고 애플 지도 애플리케이션(앱)에는 F1 경기가 벌어지는 세계의 서킷을 표시하면서 영화를 알렸다. 미국의 애플페이 사용자들에겐 극장표 할인권도 제공했다. 이렇게 애플이 작정하고 영화를 밀어주자 F1은 개봉 단 2주 만에 약 3억달러(약 4000억원)의 수입을 올리며 최단기간에 역대 가장 흥행에 성공한 카레이싱 영화가 됐다.

제작비도 아끼지 않았다. 영화 제작진은 F1 주최 측은 물론 시합에 참여하는 10개 팀 전체를 설득해 실제 경기장에서 영화를 촬영했다. 레이서도, 차량도, 관객도 전부 진짜였다. 애플은 심지어 실감 나는 촬영을 위해 F1 차량에 달기 위한 초소형 카메라를 직접 개발했다. 물론 “최신 아이폰에도 사용된 카메라 기술”이라는 홍보도 잊지 않았다.
이렇게 얘기하면 애플이 영화 사업도 잘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정반대였다. 애플은 영상 스트리밍 콘텐츠 사업인 애플TV+를 시작했는데, 이 산업은 넷플릭스, 디즈니, 아마존 등의 경쟁자들도 뛰어들어 엄청난 규모로 경쟁하며 성장한 상태였다. 이 와중에 애플은 경쟁사들과 달리 투자하는 영화마다 실패를 반복하고 있었다. 경쟁사인 넷플릭스는 최근 한국에서도 인기였던 ‘케이팝 데몬헌터스’ 같은 영화를 매년 여러 편씩 꾸준히 만들며 성공시켜 왔지만 애플은 ‘에일리언’으로 유명한 리들리 스콧 감독의 영화 ‘나폴레옹’에 1억3000만달러의 제작비를 투자하고도 흥행과 비평 양쪽에서 참패했고, 또 다른 거장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과 만든 ‘플라워 킬링 문’ 또한 2억달러를 들이고도 흥행에 실패했다.
심지어 영화계에서는 이번 투자가 잘못되면 애플이 극장용 영화에서는 완전히 발을 떼고 상대적으로 비용이 적게 드는 TV 드라마에만 집중할 거라는 루머도 돌았다. 하지만 애플은 하나씩 실패에서 배웠다. 영화 전문가가 부족해 직접 자체 스튜디오를 만들어 영화계 인물들을 채용했고, 할리우드 대형 제작사들과 비교해 마케팅 예산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아들인 뒤 전사적인 마케팅 역량을 영화에 쏟아부으며 물량 공세를 벌였다. 무엇보다 영화가 실패하더라도 마케팅 과정에서 아이폰의 성능을 자랑했고, 애플 서비스들을 함께 알려서 실패 위험도 줄였다. 심지어 F1 영화의 감독을 맡았던 조지프 코신스키는 한 인터뷰에서 “지금까지 영화를 찍으면서 이 정도로 예산을 줄인 경험은 처음”이라는 의외의 얘기를 꺼냈다. 영화 속 배우의 유니폼과 차량에 마치 실제 F1 경기처럼 기업 스폰서 광고를 유치해 광고비를 받으면서 개봉 전 이미 4000만달러(약 500억원) 이상을 벌어들였기 때문이다.
익숙하지 않은 영역에 도전하는 일은 누구에게나 힘든 일이다. 하지만 한 분야에서 이미 세계 1위의 자리에 오른 사람이 엉뚱한 분야에서 도전자가 되어 초보자처럼 배우고 익혀가며 성공을 거두는 일은 더 쉽지 않은 일이다. 영화도 재미있게 봤지만 돈을 벌기 위한 산업으로서의 영화판에서 살아남은 애플의 성공담에 더 큰 재미를 느끼게 된다.
김상훈 실버라이닝솔루션즈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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