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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만난세상] 사이다로 갈증을 풀 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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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3-03-27 23:38:10 수정 : 2023-03-27 23:3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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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사회 섹션 편집을 새로 배정받았다. 다른 언론사의 뉴스를 모니터링, 비교 분석하는 과정에서 학교 폭력 관련 콘텐츠가 폭발적으로 늘었음을 실감했다.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가 문제의식을 일깨우는 기폭제 역할을 했다. 가해자들이 ‘고데기’로 희생자의 몸을 지지는 장면은 시청자들의 분노를 자아냈다. 때마침 국가수사본부장 임명 과정에서 정순신 변호사 자녀의 학폭 사실이 드러났다. 극 중 주인공은 통쾌한 복수에 성공했지만, 현실은 솜방망이 처벌에 그쳤다. 피해자의 상처에 아랑곳하지 않던 가해자가 명문대에 진학한 것이다. 고구마가 목에 걸린 듯 숨이 턱 막힌다. 그래선지 처벌 강화 등 ‘사이다 응징’을 연호하는 보도가 끊이지 않으며, 상시적인 이슈 거리로 반복 소비되고 있는 형국이다.

강석현 편집부 기자

아마도 이러한 현상 이면엔 권선징악을 실현하지 못하는 법과 제도의 한계에 대한 탄식이 깔려 있는 듯하다. 우리나라의 학교폭력 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은 가해 학생에 대한 조치를 서면 사과부터 퇴학 처분까지 다양하게 규정하고 있으며, 심각한 경우엔 형사처벌도 가능하다. 하지만 징계가 결정된 이후 가해 측이 돈과 권력이 있다면 변호사를 동원해 처분을 늦추는 것이 관례처럼 행해지고 있다. 소송을 거치는 등 시간을 벌어 입시에 영향을 주지 않도록 ‘꼼수’를 부리는 것이다. 징계가 늦어지면 가해자와 피해자가 계속 마주하게 되면서 2차 가해가 일어나기도 한다. 국민적 공분이 무력감으로 바뀌는 지점이다.

처벌로 경각심을 높여 교실 안 폭력을 예방할 수 있음을 부정할 순 없다. 하지만 응징의 언어를 남발하는 것이 늘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더 글로리’와 같은 사이다 서사는 단순한 이분법 속에서 가해자를 절대적인 악으로 상정한다. 따라서 반복되는 갈등은 일방적이고 비상식적인 폭력일 뿐, 상호간의 대화로는 해결할 수 없는 것으로 여겨진다. 트라우마는 사적 복수의 정당성을 부여하는 장치가 되며 가해자들은 점차 또 다른 형태의 피해자로 자리바꿈한다. 법이 이루지 못한 정의를 좇아 먹먹함을 해소한 시청자들은 카타르시스를 느꼈지만 결국 남은 것은 끝없는 폭력의 도돌이표다. ‘더 글로리’라는 제목이 ‘복수의 끝엔 어떠한 영광도 없을 것’이라는 반어인 까닭이다.

사이다는 타는 목마름을 일시적으로 달래줄 뿐이다. 가해 학생에게 응당한 처분을 한다고 피해자의 상처가 말끔히 낫는 것은 아니다. 제2, 제3의 문동은에게 ‘내 편’이 없는 일상의 무게는 여전히 버겁다. 그들은 성인이 되고서도 말 못 할 후유증에 시달릴 만큼 오랜 기간 우울, 불안, 낮은 자아존중감, 자살 행동 등을 겪는다. 절대적 지지가 고통 극복의 핵심으로 꼽히지만, 피해 지원은 태부족한 실정이다. 가해자와 온전히 분리해 교육과 휴식을 제공하는 기숙형 쉼터는 전국서 단 한 곳에 불과하다. 정규직 전문상담교사가 배치된 곳도 전체 초·중·고의 35%에 그쳤다는 보도가 있다. 물이 흐르지 않는 땅에 봄은 오지 않는다. 피해자가 삶을 재건하는 과정에 국가의 기량과 관심을 최우선으로 배분할 때다.


강석현 편집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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