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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마당] 비대면 문화예술교육 가능성 무궁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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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01-20 22:54:30 수정 : 2022-01-20 22:5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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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모바일로 영상작품 보겠냐? 나라도 유튜브나 넷플릭스 본다.” 하루아침에 전시장이 문을 닫고 우후죽순 온라인 상영회가 열리던 작년 이맘때쯤 짧은 영화를 만드는 동료 작가가 푸념 섞인 소릴 했다. 코로나19 유행의 소용돌이 속에서 비대면화의 급물살을 타고 많은 문화예술 콘텐츠가 온라인으로 장소를 옮겼다. 납작하고 작은 화면을 엄지손가락으로 쓱쓱 넘기며 누군가의 창작물을 빠르게 소비하는 일은 어느새 익숙해진 듯하지만, 어떤 ‘예술적 경험’을 했다고 하기엔 ‘온라인’은 아직 어색하고 혼란스럽다.

지난해 시각장애인을 대상으로 비대면 문화예술교육 콘텐츠를 만드는 프로젝트에 기록자로 참여하게 됐다. 콘텐츠 개발을 맡은 작가들과 함께 머리를 맞대고 막막해했다. 그동안 얼마나 시각에 의존해서 살았는지, 여태 ‘비대면 방식’이라고 여겨왔던 온라인 전시나 온라인 수업마저도 얼마나 ‘시각적인’ 대안이었는지 새삼 깨달았다. 낯선 세계에 조금씩 적응하며 우리는 여러 가지 질문을 떠올렸다. 본다는 게 뭘까? 보고도 못 봤던 때는 없었나?

이려진 시각예술작가

개발이 진행되면서 자연스럽게 ‘시각장애인 대상’ 비대면 콘텐츠에서 시각장애인과 비시각장애인이 ‘함께 놀 수 있는’ 콘텐츠로 개발의 초점이 옮겨졌다. 그 결과 무기 제작이나 검도, 활쏘기 등 무술 동작을 소리로 듣고 따라할 수 있도록 만든 오디오 가이드가 탄생했다. 연주 방법을 전혀 몰라도 직접 소리를 내는 방법을 찾을 수 있는 11가지 창작 타악기도 만들었다.

비장애인과 시각장애인들을 초대해 두 콘텐츠를 선보이는 시간을 가졌다. 막상 사람들과 만나 콘텐츠를 움직여보니 생각지도 못한 감상과 피드백이 쏟아졌다. 사용자들은 무기를 만지고, 선택하고, 이름 지으면서 자신의 사연을 털어놓았다. 소리 나는 기구 앞에 한참을 서서 파도 소리를 만들던 한 사용자는 최근 전화벨 소리, 알람 소리 외에 소리를 들었던 기억이 없다고 고백했다.

어느 시각장애인 가족이 들려준 이야기가 떠오른다. 시각장애인과 함께 살면서도 도통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떤 세상에서 사는지, 뭐가 재미있는지 알 수가 없었는데 같이 무기와 악기를 두드리고 움직이면서 오랜만에 옛날이야기를 할 수 있어 좋았다고 했다.

콘텐츠와 함께 보낼 안내서를 만들면서 오랜만에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는 기분이 들었다. 종이와 연필만으로도 부족함이 없었듯, 지금 우리가 가진 매체를 끈질기게 실험하고 조금씩 경험을 늘려간다면 어느새 생각지도 못한 곳까지 닿아 생각지도 못한 사람들과 함께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것이다. 어떻게든 만나고 싶다는 마음만은 변함없을 것이기에 우리의 시도에 실패란 없다. 어쩌면 더 잘 만나기 위해, 아직은 어색한 발걸음이나마 내디뎌본다.


이려진 시각예술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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