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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자·여성 감독·노배우’… 절망과 시련 속에서도 그들의 꿈·도전은 아름답다

입력 : 2021-11-14 19:28:04 수정 : 2021-11-14 19:2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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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 공연가 3편의 화제작

‘엔젤스 인 아메리카’ 국립극단 초연작
反동성애 1980년대의 美사회 그려내

‘명색이 아프레걸’ 박남옥 감독이야기
아이 업고 레디 고… 집념의 영화촬영

‘더 드레서’ 코로나 조기 폐막 재공연
배우 송승환 맞춤연기로 완성도 높여
엔젤스 인 아메리카

소수자의 삶을 통해 조명하는 미국 현대 사회, 그리고 전후 척박한 현실 속에서 불굴의 의지로 작품을 만든 한국 첫 여성 영화감독과 인생의 황혼을 바라보는 셰익스피어극 전문 노배우. 연말 공연가에서 세 편의 화제작이 개막한다. 빼어난 작품과 배우, 제작진이 함께하는 무대에서 깊은 감동이 기대된다.

◆비주류의 목소리

‘녹천에는 똥이 많다’, ‘그을린 사랑’ 등에서 탁월한 연출력을 보여준 신유청이 또 다른 화제작을 선보인다. 1993년 토니상, 퓰리처상, 드라마데스크상 등을 석권한 연극 ‘엔젤스 인 아메리카’. 퓰리처상 위원회가 “‘새천년’을 앞둔 20세기 말 미국의 삶을 가장 독창적인 방식으로 보여 준 최고의 희곡”이라고 상찬한 작품이다. 이후 알 파치노, 메릴 스트리프 출연 TV영화로 골든글로브상과 에미상을 받았다.

1980년대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시절 반동성애적 분위기의 사회 속에서 신체적, 심리적으로 버텨야 했던 동성애자들의 모습을 은유적 서사로 풀어낸다. 사회의 다양한 소수자이자 타자들이 충돌하면서 조화를 찾아가는 서사의 보편성에 의미를 두고 국립극단이 국내 초연 제작에 나섰다. 뉴욕을 배경으로 에이즈에 걸린 프라이어와 그의 동성 연인 루이스, 몰몬교로서 자신의 성 정체성에 괴로워하는 남자 조와 약물에 중독된 그의 아내 하퍼, 극우 보수주의자이며 권력에 집착하는 악명 높은 변호사 로이 이야기가 축을 이루며 교차한다.

특히 이번 무대에선 배우 정경호가 프라이어 역으로 연극 데뷔한다. 신유청 연출은 “전염병이 창궐하여 분열이 초래된 이 시대의 한국 사회에 이 작품이 어떤 메시지를 던져줄지, 또한 특정 시대와 국가의 색이 강한 번역극임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연극으로 어떻게 자리 잡을지 많은 고민을 했다. 그 결과 겉으로 드러난 사회적 문제들보다 내면의 죄의식, 양심 등과 같은 보편적인 것에 집중했다”고 전했다. 총 8시간에 달하는 대작인데 1, 2부로 나뉜다. 이번에 선보일 ‘파트 원: 밀레니엄이 다가온다’는 3시간 45분 분량이며 내년 2월 다시 ‘파트 투: 페레스트로이카’를 선보인다. 명동예술극장에서 11월 26일부터 12월 26일까지.

명색이 아프레걸

◆“실패한 사랑 따위, 끄떡없어

“망한 세상 있는 힘을 다해 사랑하려면 상처도 수치심도 먼지 털어내듯 날려버려.”

‘명색이 아프레걸’은 우리나라 최초 여성 영화감독 박남옥 이야기다. 한국전쟁 직후 격동의 시기에 생후 6개월 된 아기를 업고 수많은 배우, 스태프 점심밥까지 손수 차려가며 영화 ‘미망인’을 남긴 인물이다. 1940년대 처음 접한 영화의 매력에 빠져 촬영장을 누볐던 박남옥은 전후 오랜만에 동료들을 만나 “전쟁도 끝났으니 ‘전쟁미망인’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영화를 만들자”고 의기투합한다. 친언니로부터 투자받은 돈으로 자신의 집에 세트를 짓고, 일본에서 온 촬영기사 김영준을 소개받는다. 시련과 절망 속에서도 자신이 동경하던 영화를 포기하지 않고 ‘미망인’을 만들어 가는 과정을 입체적으로 담아낸다. 관록의 김광보 연출과 고연옥 작가 콤비에 작곡가 나실인이 함께 호흡을 맞췄다. 지난해 국립창극단·국립무용단·국립국악관현악단이 9년 만에 함께 모여 만든 초연은 “전통예술의 색깔이 살아있되 전통의 문법에 얽매이지 않은 작품”이란 호평을 받았으나 사회적 거리두기 때문에 단 5일만 공연돼 아쉬움을 남겼다. 올가을 재개관한 해오름극장으로 옮겨진 더 큰 무대는 이경은 안무가가 합류한다. 박남옥 삶의 공간과 ‘미망인’ 영화 속 공간으로 나뉜 무대에 대형 LED를 활용한 더욱 모던하고 세련된 미장센이 선보일 예정이다. 서울 남산 국립극장 해오름에서 12월 17일부터 31일까지.

더 드레서

◆인생의 황혼에서 바라본 삶과 인생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인 1942년 겨울, 영국 어느 지방의 한 극장. 16년 동안 셰익스피어 전문 배우 ‘선생님’의 드레서로, ‘노먼’은 누구보다 가까운 곳에서 선생님과 함께 살아왔다. 그렇게 227번째 ‘리어왕’ 공연 막이 오르기 직전, 선생님이 갑자기 이상한 행동을 보이기 시작한다. 무대감독과 단원들은 선생님의 상태에 공연을 취소하자고 하지만 노먼은 관객들을 실망하게 할 수 없다며 예정대로 공연을 올리려 한다. 그러나 배우들의 숫자는 턱없이 부족하고, 선생님은 첫 대사마저 잊어버리고 만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공연 5분 전 공습경보까지 울리기 시작한다.

20세기 후반 최고의 연극 중 하나로 평가받는 작가 로널드 하우드의 ‘더 드레서(THE DRESSER)’. 지난해 공연에서 배우 송승환이 평생 쌓은 연기를 보여준 작품으로 호평받았다. 그러나 코로나19로 조기 폐막했던 이 작품이 다시 공연된다. 배우이자 제작자로 활동해 온 송승환은 셰익스피어 전문 극단 대표이자 배우이기도 한 주인공 ‘선생님(Sir)’역을 맞춤옷을 입은 듯 표현한다. 또 배우 오만석이 선생님 곁을 지키는 든든한 모습과 강렬한 존재감으로 노먼의 캐릭터를 완성도 높게 표현한다. 록밴드 야다의 보컬로 가요계에 데뷔해 공연과 드라마, 영화를 통해 배우로 활동 영역을 넓힌 김다현도 노먼 역으로 재연 무대에 합류한다. 국립정동극장에서 16일부터 내년 1월 1일까지.


박성준 기자 alex@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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