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반 고흐·윌리엄 터너… 획일에서 벗어나 회화의 새 장 열다 [김한들의 그림 아로새기기]

입력 : 2021-02-27 10:00:00 수정 : 2021-02-26 19:32:14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52) 다른 방식으로 볼 때 열리는 세상

네덜란드·英 대표 화가 반 고흐·터너
당대 작품서 볼 수 없는 새로운 시도
눈앞 장면 아닌 그 너머 세계 묘사
대기·빛 등 자기만의 色·표현법 찾아

대세에 편승 못하면 소외 두려움 커
주식·부동산 안하면 뒤처진다 여겨
다른 사람 뒤쫓다 소중한 시간 낭비
나를 위해 살아가는 삶이 더 유익
바다 위의 도시, 베네치아의 모습을 그린 유화. 유채 물감으로 표현한 물의 기운에서 섬세함이 느껴진다. ‘마리아 델라 살루테 입구에서 본 베네치아(Venice, from the Porch of Madonna della Salute)’(1835) 뉴욕 메트로폴리탄미술관 제공

#예술가가 등장하는 영화와 함께하는 여유

넷플릭스, 왓챠 등 OTT 서비스에 빠져 지낸 지난 몇 달이었다. 연초에 여유 시간을 즐기려 추천받은 드라마를 보다 보니 3월이 코앞이 됐다. 하루에 두어 시간을 꼬박꼬박 투자했는데 생각해보면 크게 남은 것은 없었다. 이쯤 즐겼으니 그만하고 그 시간을 비슷한 형식이지만 다른 방법으로 써보기로 했다. 그리고 시작한 일은 예술을 다루거나 예술가가 등장하는 영화를 보는 것이었다. 빈센트 반 고흐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를 보았고 ‘미스터 터너’가 생각났다. 윌리엄 터너가 등장하는 영화인데 찾지 못해 보지 못한 점은 아쉽다.

조지프 말러드 윌리엄 터너(Joseph Mallord William Turner, 1775~1851)는 영국을 대표하는 화가다. 영국 최고의 미술상인 ‘터너상(Turner Prize)’의 이름이 그에게서 왔다. 국립미술관인 테이트 갤러리에서 매해 뛰어난 젊은 미술가를 선정해 수여하는 상이다. 영국 정부에서는 그의 주요 작품들이 해외 판매되는 것을 가로막아 그 작품들을 지킨 적도 있다. 그의 얼굴은 지난해 20파운드 화폐의 전면에 등장했다. 화폐의 모델이 경제학자 애덤 스미스에서 그로 바뀐 것이다. 터너를 향한 국가적인 관심과 애정을 짐작해 볼 수 있다.

#19세기 영국을 대표하는 화가, 윌리엄 터너

조지프 말러드 윌리엄 터너는 1775년 런던의 코벤트가든 근처에서 태어났다. 이발사였던 아버지는 일찍이 터너의 그리기 재능을 발견했다. 둘째 자식의 죽음 이후 아내는 정신병을 앓고 있었다. 어려운 환경이었지만 그는 아들을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지원하는 모습을 보였다. 자신의 가발 가게에 작품을 걸어두고 소개하기도 했다. 덕분에 터너는 열네 살이 되던 해에 왕립 아카데미에 입학할 수 있었다. 영국 최고 권위의 미술학교에 입성하게 된 것이다.

 

터너는 입학 이후 첫 몇 년은 주로 드로잉과 수채화 그림을 그렸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기초를 닦은 이후 스무 살 무렵 유화 작업을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학교에서 ‘바다의 낚시꾼(Fishermen at sea)’(1796)이라는 작품을 전시했다. 미술 수재들 사이에서도 남다른 능력을 인정받은 셈이었다. 24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왕립 아카데미의 준회원이 되었다. 3년 뒤에는 정회원에 이름을 올리는 영예를 얻었다.

터너는 인물화, 역사화도 그렸지만, 특히 풍경을 그린 그림으로 유명했다. 일찍부터 17세기 네덜란드 풍경 화가들에게 가진 관심의 영향이었다. 그는 10대 중반부터 스코틀랜드 등으로 길을 떠나 그곳의 풍경을 그렸다. 그렇게 그린 그림은 고요하고 평화로운 분위기로 사람들에게 인기를 얻었다. 아미앵 조약으로 영국과 프랑스 사이 전쟁이 종결한 뒤에는 프랑스를 거쳐 유럽 대륙에 갔다. 루체른 호수 등을 그렸고 루브르 박물관에서 다양한 미술을 보기도 했다.

이렇게 여행을 통해 그는 새로운 자연과 문화를 경험했다. 이러한 경험들은 그의 작품에 변화를 가져왔다. 풍경과 사건, 경험과 재현, 그리고 색채에 관한 연구에 깊이를 더했다. 전과 다른 실험을 화면 위에 펼쳤고 혹평을 받는 날도 있었다. 다시 작업을 인정받은 뒤에는 왕립 아카데미에서 교수를 거쳐 회장까지 역임했다. 죽은 뒤에는 국가적 주요 인사들을 안치하는 세인트 폴 대성당에 묻혔다.

안개와 파도에 휩싸인 고래잡이배를 그린 작품. ‘노예선’(1840)’과 닮은 바다의 모습이 있다. ‘포경선(Whalers)’(1845) 뉴욕 메트로폴리탄미술관 제공

#대기와 빛의 움직임을 담은 풍경

터너의 풍경화가 지금까지 사랑받는 큰 이유 중 하나는 독창성이다. 하지만 이 독창성이 처음부터 인정받았던 것은 아니다. 이미 명성을 쌓은 화가였던 터너는 1840년 ‘노예선(The Slave Ship)’을 발표했다. 타는 듯한 하늘을 배경으로 폭풍우가 휘몰아치는 바다에 노예선이 휩쓸리는 작품이었다. 화면은 거친 붓질과 색의 사용으로 채워져 그 순간의 상황과 분위기가 느껴지게 했다. 동시에 희뿌연 화면 속에 등장하는 대상들은 전부 불분명하게 그려진 것처럼 보였다.

안정적인 구도 속에 섬세한 묘사로 정확히 재현하는 그림이 인정받는 시대였다. 사람들은 알아볼 수 없는 회반죽 덩어리라는 혹평을 쏟아냈다. 터너의 눈에 이상이 생겼으며 미쳐가고 있다는 소문도 돌았다. 그의 어머니가 가졌던 정신병력 때문에 뒷말은 더 무성해졌다. 1년여가 지나도 상황이 나아지지 않자 지친 터너는 스위스로 휴식을 찾아 떠났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후에야 사람들은 새 작업의 가치를 인정했다.

이렇게 터너가 혹독한 일을 겪으면서도 이루고자 한 목표는 명확했다. 어느 시대에도 어느 나라에도 없는 새로운 형식의 풍경화를 그리는 것이었다. 그는 눈앞의 장면을 그대로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그 너머의 것을 표현하려 시도했다. 뇌에서 재구성되기 전의 풍경과 그 순간의 심상 같은 것이었다. 풍경을 감상과 관조의 대상이 아니라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았음을 알 수 있다. 이를 성공적으로 드러내는 과정에서 안개, 물보라 등이 그림에 등장했다. 대기와 그사이를 관통하는 빛의 움직임은 작업에서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터너는 왕립 아카데미 입학 이후 수채화와 유화 작업에 모두 공을 들였다. 수채화 작업을 꾸준히 하는 것은 당시 화가 사이에서 드문 일이었다. 덕분에 그는 수채화와 유화의 성질을 확실히 파악해 자기만의 표현법을 찾았다. 수채로도 자연의 웅장한 느낌을 그렸고 유채를 젖은 듯 칠해 흐릿한 시각적 효과를 연출해냈다. 이러한 붓질을 통해 대기와 빛의 움직임은 색채로 환원해 효과적으로 나타났다.

‘마리아 델라 살루테 입구에서 본 베네치아(Venice, from the Porch of Madonna della Salute)(1835)’는 앞서 언급한 작가 작업의 특징을 볼 수 있는 작품이다. 1819년 첫 베네치아 여행에서 도시에서 받은 인상을 담아 드로잉을 그렸다. 1833년 두 번째 베네치아 방문에서 오랜 시간 머물며 유화로 그려냈다. 2년 뒤 왕립 아카데미에서 선보여져 관객들의 호평을 받은 바 있다.

살루테 성당의 입구에서 바라본 베네치아의 풍경이 고스란히 담겼다. 대운하를 따라 떠 있는 듯 지어진 건축물들이 아름답다. 도시를 가로질러 흐르는 운하의 잔물결이 햇빛에 비쳐 아름답다. 거기서 피어오르는 물방울들이 장면을 더 신비롭게 만든다. 터너는 이 빛의 반짝임과 물의 흐릿한 기운을 놓치지 않고 화면 전반에 반영했다. 당대 다른 화가들의 작품에서는 볼 수 없는 부분과 표현이다.

알프스의 풍경을 공기와 빛까지 세밀하게 표현한 수채화. 존 러스킨이 소장했던 것으로 유명한 작품이다. ‘추크 호수(The Lake of Zug)’(1843) 뉴욕 메트로폴리탄미술관 제공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보고 사는 법

작년부터 자주 들은 신조어 중에 FOMO(Fear of Missing Out)라는 말이 있다. 놓치는 것의 두려움, 즉 대세에서 나만 소외됐다는 두려움을 의미한다. 일과 중 일정 시간을 OTT 서비스에 투자한 것은 이런 연유가 컸다. 모두가 보았다는 드라마를 나만 보지 않은 것에서 어쩐지 불안이 느껴졌다. 관련 이야기가 나오면 혼자 이해하지 못하고 소외된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주식과 부동산을 하는 것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의 상황들이 생겨났다. 주식이나 부동산을 하지 않으면 자신을 뒤처진 듯 여기게 되었다. 그러던 중 최근 음성 기반 SNS인 클럽하우스가 화제가 되며 이에 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나에게 하루 중 가장 소중한 시간은 조용히 휴식을 취하는 때다. 그 휴식의 시간마저 누군가의 말을 듣고 말을 나누는 데 써야 한다니.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갑갑해졌고 FOMO에서 벗어나겠다 다짐했다.

반 고흐와 윌리엄 터너는 모두 시대의 취향과 다른 그림을 그린 작가들이다. 그리고 그들의 시도가 결국 회화에 새로운 장을 열었다. 터너에게 받은 영향을 발전시켜 모네 등이 인상주의 작업을 시작한 것은 유명하다. JOMO(Joy of Missing Out)라는 말도 있다. 생활 패턴이나 취향이 명확한 경우에는 이런 삶이 더 어울리겠다. 스마트폰에서 본 것 말고 내가 생각한 것을 말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물론 다 놓치면 안 되겠지만 말이다.

김한들 큐레이터·국민대학교 미술관, 박물관학 겸임교수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