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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우만 파는 거 맞으세요?”…“딱 봐도 미국산 알목심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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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0-06-21 07:08:39 수정 : 2020-06-21 07: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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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우로 둔갑한 미국 소고기… 원산지 표시 위반 작년 7배↑

#1. 경기 남부의 한 한우 판매장. 일반 소비자들은 찾지 않을 법한 한적한 도로가에 위치한 이 매장은 유명 인터넷 쇼핑몰에 입점한 한우 판매 마켓의 주문을 받아 고객에게 직접 고기를 보낸다. 출입문에는 황소 사진이 붙어 있고 안내판에는 ‘토종 한우만 취급한다’고 강조한다.

 

지난 11일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농관원) 경기지원 기동단속반 중앙팀이 이곳을 찾았다.

 

“사장님, 한우만 파는 거 맞으세요?” 

 

“그럼요. 여기 쓰여 있잖아요.” 

 

“냉장고 좀 보겠습니다.”

지난 11일 경기 남부의 한 한우 판매점에서 농산물품질관리원 경기지원 기동단속반이 원산지표시법을 위반한 것으로 의심되는 판매점 사장을 추궁하고 있다.

냉장고를 열자마자 보인 플라스틱 상자에 버젓이 ‘젖소’라고 적혀 있다. 겹겹이 쌓인 상자는 젖소, 육우, 한우가 뒤섞여 있다. 냉동실에 들어간 김철희 팀장이 커다란 고깃덩어리를 들고 나왔다. “딱 봐도 미국산 알목심이네.”

 

“한우일 텐데….” 사장의 목소리가 기어들어간다. 포장작업 중이던 고기 옆엔 영어가 표기된 비닐포장도 나뒹군다.

 

“저희가 O마켓 OO에서 두 차례 한우를 사 유전자를 분석한 결과 모두 한우가 아닌 거로 나왔습니다. 왜 그러셨습니까?”

 

처음엔 “한우가 아닐 리 없다. 미국산이 왜 여기 있는지 모르겠다”고 잡아떼던 사장이 한 시간 만에 원산지표시법 위반 사실을 시인한다. “죄송합니다. 제가 뭐에 씌었는지….”

 

#2. 두 번째로 찾아간 곳은 경기 부천 아파트촌의 평범한 정육점이다. 고기 진열대에는 캐나다·칠레산 돼지고기, 국내산 육우 등이 가지런히 진열돼 있다. 원산지표시 위반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냉장고와 식육거래기록부를 살피던 단속반이 “왜 온라인에서 한우가 아닌 걸 한우로 판매했냐”고 물었다.

 

사장은 인터넷 한우 전문몰을 운영하며 주문받은 고기를 이곳 정육점에서 작업해 배송했다. 이날 정육점 냉장고에서는 한우가 한 점도 발견되지 않았다.

 

그는 곧바로 육우를 팔았다고 시인했다.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닙니다. 원래 한우를 판매하다가 좀 안 맞아서….” 단속반은 사장을 축산물위생관리법 위반 혐의로 경찰에 고발조치했다.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경기지원 기동단속반이 지난 11일 원산지표시법을 위반한 것으로 의심되는 경기 남부의 한 한우 판매점 냉장고를 조사하고 있다. 냉장고에서는 미국산 소고기와 국내산 육우, 젖소 등이 발견됐다. 

◆농축산물 온라인 거래 급증… 원산지 둔갑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영향으로 소비자들의 온라인 농축산물 구매가 급증하는 가운데 원산지표시를 속이는 업체도 크게 늘었다. 먹거리 안전과 신뢰성에 비상이 걸렸다.

 

농림축산식품부 소속 농관원은 유통과 소비문화의 변화를 반영한 통신판매 특별단속을 지난 3월 3일부터 4월29일까지 실시했다. 전국 138개 단속반을 투입해 조사한 결과 원산지표시 위반업체 105개가 적발됐다. 지난해 동기의 7배 수준으로 급증했다.

 

거짓표시 업체는 64개, 미표시는 41개였다. 부과된 과태료는 2275만원으로 작년 240만원의 9.5배에 달했다. 품목별로는 김치류가 22.9%로 가장 많았다. 대부분 중국산 김치를 국산으로 표시하거나 표시하지 않은 경우다. 이어 돼지고기 17.1%, 쇠고기 12.9%, 쌀(가공품 포함) 10.7% 순으로 적발됐다.

 

업종별로는 일반음식점이 40.9%, 통신판매업체 40.0%, 가공업체 10.5%, 건강기능식품판매업 3.8% 순이었다.

 

받을 물건을 직접 볼 수 없는 비대면 쇼핑의 단점은 농축산물 거래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신선도가 떨어지는 경우가 많고 원산지나 품종·축종을 속이기도 쉽다. 소비자들은 판매 채널의 브랜드를 믿고 사거나, 홈페이지 설명과 사진을 꼼꼼히 살핀 뒤 구매를 결정하지만 이조차 안심할 수 없다.

가뭄에 홍수까지 더해지며 지난달 채소 가격이 1년 전보다 10% 이상 오르고 소비자물가가 전년 동기에 비해 2.2% 상승한 가운데 1일 오후 서울 양재동 하나로마트에서 시민들이 채소를 고르고 있다./2017.8.1./이재문기자

이날 세계일보가 동행 취재한 두 군데 업체 중 한 곳은 유명 인터넷 쇼핑몰에 입점한 축산물 업체의 주문을 처리하는 곳이었다. 다른 한 곳은 한우의 부위별 사진과 요리법 등을 소개하며 ‘100% 우리 한우만 판매한다’고 광고하는 전문 한우몰이었다.

 

20년간 농축산물 품질관리 현장을 누빈 김 팀장은 “단속을 나가 보면 인터넷이나 모바일에 소개된 것과 달리 열악한 곳이 많다”며 “홈페이지는 전문업체에서 그럴듯하게 꾸며준 것이라 완전히 믿기 어렵다”고 말했다.

 

◆달라진 유통환경에 관리·단속도 진화

 

3∼4월 통신판매 특별단속에는 총 5367명이 투입돼 1만8316건을 조사했다. 지난해(8622명, 4만195건)보다 투입 대비 높은 성과를 거뒀다.

 

농관원은 “코로나19 확산으로 방문 단속이 어려워져 통신판매와 부정유통 신고 위주로 단속했다”며 “조사 대상은 줄었지만 적발 건수는 늘었다”고 설명했다.

 

농축산물 온라인 통신 거래가 증가함에 따라 농관원은 올해 사이버단속 전담반을 전년 12개반 54명에서 19개반 75명으로 확대했다. 효율적인 단속을 위해 폼목별로 모니터링하는 기존 방식에서 사이버공간을 기능·콘텐츠별로 나눠 감시하는 방식으로 전환했다.

 

디지털포렌식, 원산지검정법 등 과학 단속 기법도 적극 활용한다. PC·노트북·휴대폰에 남은 디지털 정보를 분석하는 ‘디지털포렌식’ 수사는 2017년 1건(1대)으로 시작해 지난해 33건(75대)으로 늘었다. 생산자와 판매자 간 거래내역, 조직적인 범죄 모의 등 증거를 확보할 수 있어 디지털포렌식이 수사에 큰 역할을 한다고 농관원은 설명했다.

 

농축산물의 원산지와 품종·축종은 일반 소비자들이 구분하기 어렵다. 감독당국의 홍보·관리·단속 등 강화를 통해 판매자들이 법을 준수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최선이다.

 

노수현 농산물품질관리원장은 “농축산물의 온라인 통신판매 거래가 증가함에 따라 단속 효율성을 높이고 단속 범위를 국민이 많이 소비하는 채널과 품목 위주로 넓혀 실시하고 있다”며 “국민의 알 권리를 보장하고 건강을 지키기 위해 앞으로도 농축산물 원산지 관리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식품 관련 범죄 교묘해져… 터무니없이 싸면 의심을”

 

“원산지표시법 위반은 자영업자들이 한두 번 실수로 저지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하지만 최근엔 조직화·대형화한 범죄가 상당수 적발돼 주의 깊게 살피고 있습니다.”

​농산물품질관리원 서영주(사진) 원산지관리과장은 18일 통화에서 변화하는 원산지표시법 관련 위반 트렌드를 설명했다. 부정 유통에 따른 경제적 이득이 사업을 확장할수록 불어나기 때문에 점점 대형화하고 교묘해진다는 것이다. 축산물 유통에서 최근 이런 현상이 두드러진다.

 

“대형 조직을 적발하려면 업체를 모니터링하고 잠복해 관련 증거를 확보해야 하기 때문에 2∼3년 정도 기간이 소요됩니다. 단순히 현장 단속으로는 어려운 일이라 디지털 포렌식 등 과학수사를 통한 증거 확보가 중요합니다.”

 

서 과장은 지난해보다 올해 특별 단속 실적이 크게 향상된 데 대해 “방식을 바꾸지는 않았지만 이전엔 소비자들과의 접점인 최종 산물에 대해서만 단속했다면, 올해부터는 원료에서부터 가공되는 과정까지 꼼꼼히 들여다봤다”며 “비대면 판매 채널이 다양해지면서 업체들이 우후죽순 늘어 기획 단속, 범위 확대, 집중 단속 등으로 효율성을 추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모든 업체를 감시할 수 없는 탓에 농관원은 명예감시원 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현재 소비자단체 등으로부터 추천받은 1만700여명이 명예감시원으로 활동하면서 평소 음식점이나 온라인 업체 등 이용 시 원산지표시 위반이 의심되는 업체를 적극 신고한다.

 

식품 관련 부정행위가 날로 교묘해지는 가운데 평범한 소비자들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서 과장은 “가격이 터무니없이 저렴하거나, 평소 먹던 것과 생김새·맛·색깔 등이 다르면 의심해 봐야 한다”며 “농관원 홈페이지를 통해 신고하면 부정한 사례로 밝혀질 경우 최대 1000만원까지 포상금을 지급한다”고 안내했다. 이어 “고기는 축산물 이력제 홈페이지나 앱에서 포장지에 표시된 축산물코드를 검색해 이력을 확인하는 것이 좋다”며 “감독기관이 단속·관리를 강화하는 동시에 소비자들이 까다로운 눈을 갖고 적극적으로 신고한다면 식품 부정판매는 더욱 빨리 줄어들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희원 기자 azahoit@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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