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을 대표로 한 문재인 대통령의 대북 특사단 방북으로 교착 상태에 빠졌던 북·미 대화가 재개될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대북 특사단을 매개로 간접 대화를 나눴다.
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 간 간접 대화에도 불구 아직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부 장관의 4차 방북을 통한 북·미 대화가 재개될 조짐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 북한은 종전 선언을 먼저 하자고 버티고 있고, 미국은 북한의 핵 시설 리스트 제공 등 비핵화 조치의 실질적인 이행이 선행돼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북·미 양측 간 대립으로 6.12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에 따른 북핵 후속 협상이 결렬될 위기에 직면해 있는 게 현실이다. 그러나 북·미 간 치열한 대치 상황에서도 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이 끝없이 서로 칭찬을 주고받으며 무한 신뢰를 보내고 있다. 두 지도자가 악조건 속에서 ‘밀어’를 속삭이는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고, 바로 이 때문에 북핵 협상이 타결될지 모른다는 기대감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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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왼쪽 세번째)이 이끄는 문재인 대통령 대북 특별사절단 대표들이 5일 평양 조선노동당 본관 진달래관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오른쪽 첫번째)과 2018년 3차 남북정상회담 일정과 남북관계 진전, 비핵화 방안 등을 논의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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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을 비롯한 대북 특사단을 배웅하는 김 위원장의 모습.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이 옆에 서서 함께 배웅하고 있다. |
◆김정은-트럼프 브로맨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6일(현지시간) 김 위원장이 정 실장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자신의 신뢰는 변함없다”고 밝힌 데 대해 “김 위원장에게 감사하다”고 화답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김 위원장의 발언을 소개한 뒤 “우리는 (비핵화를) 함께 해낼 것이다!”고 강조했다. 이는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할 일이 여전히 산적해 있다”고 신중한 반응을 보인 것과는 대조적인 태도이다.
정 실장은 이에 앞서 방북 결과를 설명하는 기자회견에서 “김 위원장은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 대한 자신의 신뢰는 변함없다는 점을 분명히 밝혔다”고 말했다. 정 실장은 “최근 북·미 협상에 다소 어려움이 있으나 그럴 때일수록 자신의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신뢰는 계속 유지될 것이라고 강조했다”고 전했다. 정 실장은 이어 “김 위원장은 자신의 참모는 물론이고 그 누구에게도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부정적 이야기를 한 번도 한 적 없음을 특히 강조했다”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24일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4차 방북을 전격 취소토록 하면서 중국 책임론을 거론하고, 김 위원장에게는 신뢰를 보내는 입장을 밝혔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미 협상이 교착 상태에 빠졌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시인하면서도 “그동안 김 위원장에게 안부를 전하고 싶다”면서 “그를 곧 만나길 고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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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하는 트럼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이 20일(현지시간) 워싱턴 백악관 집무실에서 한 서방 언론과 인터뷰를 하면서 북핵 문제 등에 관한 견해를 밝히고 있다. 워싱턴=AP연합뉴스 |
◆트럼프의 속내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에게 ‘구애’의 손을 내미는 이유는 최근 워싱턴 정가에 파문을 일으킨 밥 우드워드 워싱턴 포스트(WP) 편집인의 저서 ’공포, 트럼프의 백악관’에 기술돼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9월 유엔 총회 연설을 통해 북한을 완전히 파괴하겠다고 위협을 가했을 당시에 롭 포터 당시 백악관 선임 비서관에게 “이것은 지도자 대 지도자, 사나이 대 사나이, 나와 김(정은)에 관한 것”이라고 말했다고 우드워드가 소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오로지 자신만이 김 위원장에게 핵무기를 포기하도록 설득할 수 있다고 믿고, 사상 처음으로 북·미 정상회담을 개최하기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한 미국의 전통적인 우방국 지도자보다는 스트롱맨이나 독재자에 각별한 관심을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과 함께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 등과 잘 지내는 게 미국의 국익에 도움이 된다고 믿는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들 철권 통치자를 내심 부러워한다고 미국 언론이 꼬집기도 했다.

◆김정은의 생각
김 위원장은 변칙 스타일의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에 절호의 기회를 줄 수 있다고 믿는 것 같다고 미국의 언론 매체 ‘슬레이트’(Slate)가 6일 보도했다. 이 매체는 “북한이 트럼프를 ‘평화의 사도’로 여기고 있고, 폼페이오 장관 등 트럼프 대통령의 측근 인사들이 트럼프 대통령의 뜻과 달리 행동하고 있다는 이유로 이들에게 공격을 퍼붓는다”고 전했다.
북한이 집요하게 요구하고 있는 종전 선언에 대해서도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 정상회담에서 김 위원장에게 약속했으나 트럼프 대통령의 외교·안보 참모진이 이를 막고 있다는 게 북한 측의 판단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싱가포르 정상회담 당시에 김 위원장에게 회담이 끝난 직후에 곧바로 한국전 종전 선언문에 서명하겠다는 약속을 했었다고 미국의 언론 매체 복스(Vox)가 보도했었다.
북한은 또 최근에 제임스 매티스 미 국방장관이 한·미 연합 군사 훈련을 재개하려고 했으나 트럼프 대통령이 이를 제지한 사실을 주목하고 있다고 이 매체가 지적했다. 북한은 이로 인해 트럼프 대통령과 그의 외교·안보 참모진을 떼어놓으려는 전략을 동원하고 있다고 슬레이트가 분석했다.
워싱턴=국기연 특파원 ku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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