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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모와 신생아 건강, 돌보지 않는 나라] 초보 엄마도 걱정 없어… 출산 가정에 ‘베테랑 간호사’ 출동

입력 : 2018-05-29 19:50:53 수정 : 2018-05-29 19:5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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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국의 가정 방문 서비스 / 英 1900년대 초부터 국가 관리 체계화 / 부모 불안감으로 인한 아동학대 예방 / 소득격차 따른 아동발달 불평등도 줄여 / 유럽 모델 발전시킨 호주 ‘매쉬’ 서비스 / ‘원조’ 英에 역수출… 美·한국 등도 도입 1950년대 영국에서 방문 간호사로 활동했던 제니스 워스는 엄마의 젖을 세차게 빨고 있는 한 신생아를 보며 고민에 잠겼다. ‘젖이 충분하지 않나 보네. 분유를 먹이라고 할까.’

당시 영국에는 분유 예찬을 펴는 사람들이 많았다. 제니스는 산모의 집안을 둘러보았다. 부엌은 좁았고 지저분한 가재도구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이 집에서 젖병 소독은 어떻게 하지?’, ‘소독은커녕 깨끗하게 씻기라도 할까?’ 당시 이스트엔드 빈민가의 여성들은 청결하게 생활하지 않았고, 그럴 수 있는 환경도 아니었다.

제니스는 더 먹기 위해 애쓰는 아기를 보면서도 산모에게 “계속 모유 수유를 하라”고 조언했다. 지금 환경에서는 모유가 부족해도 분유를 먹이는 것보다 안전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는 영국 BBC에서 방영돼 화제를 모은 드라마 ‘콜 더 미드와이프’의 원작 회고록에 나오는 한 대목이다. 만약 위의 산모가 아기를 안고 의료기관을 방문해 “모유가 충분하지 않은가 봐요”라고 물었다면 의료진은 뭐라고 대답했을까. “그럼 분유를 먹이세요”라고 했을 가능성이 높다. 기관은 가정의 내밀한 상황과 환경을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방문 간호사들은 각 가정의 상황에 맞는 조언을 하며 영국 아이들의 건강을 돌봤다.

◆영국을 필두로 유럽 전역에 영유아 가정방문서비스 확산

영국에서 간호사 등 전문인력의 영유아 가정방문이 이뤄진 건 1850년대부터다. 1900년대 초부터는 보건당국의 관리하에 이뤄졌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국민건강보험법(NHS)에 규정돼 가정방문 보건의료서비스 체계가 확립됐다. 현재 영국뿐만 아니라 덴마크와 핀란드, 스웨덴, 독일 등 대부분의 유럽국가가 영유아 가정방문서비스를 도입해 운영하고 있다.

이들 국가가 하나같이 내세우는 가장 큰 목적은 ‘아동의 건강한 발달’이다. 영국 NHS에 따르면 간호사 등 방문 인력은 산모와 아이의 건강상태를 확인하고 부모교육을 실시한다. 부모가 아이의 발달과정을 잘 이해하고 있는지, 적절한 상호작용을 하는지, 산후 우울증이 있는지 등을 살피고 적절한 사회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안내한다. 유럽 전역에 이런 서비스가 확산된 것은 핵가족화로 양육지식과 경험이 없는 세대가 늘어나면서였다. 자녀양육에 대한 두려움과 환경적 어려움이 산후우울증으로 이어지고, 부모의 불안정한 상태가 아동학대로 연결되는 것을 예방하기 위함이었다.

◆미국도 ‘오바마케어’로 도입

1990년대에 유럽의 영유아 가정방문서비스를 눈여겨본 미국 학자들은 유럽제도를 소개하며 미 정부에 영유아 가정방문서비스의 도입을 촉구했다.

아동·가족복지 전문가인 실라 캐머만과 알프레드 칸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는 1993년 발표한 ‘유럽의 가정방문’이라는 제목의 보고서에서 “3세 미만 영유아를 대상으로 한 유럽의 가정방문서비스는 아동의 건강과 발달 향상에 기여하고 있다”며 “저마다 다른 환경에서 태어난 아동 간 격차와 불평등을 줄이는 데도 효과적”이라고 평가했다.

이들은 유럽의 서비스가 소득수준 등에 관계없이 모든 출산 가정에 보편적으로 이뤄진 점을 강조했다. 캐머만 교수는 “모든 가정을 대상으로 실시하지 않으면 도움이 필요한 수많은 아동이 혜택을 못 받게 된다”고 지적했다.

이런 미국 학자들의 바람은 2009년 버락 오바마 정부가 출범하면서 이뤄졌다. 미국 정부는 유럽처럼 가정방문이 확산되면 건강관리와 부모교육을 통해 아동학대를 줄일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하지만 유럽의 경우 국가의 지원을 국민의 권리로 인식하는 사회문화를 바탕으로 서비스가 확산되면서 이에 대한 과학적 연구분석이 충실히 이뤄지지 않았다. 앞서 세계보건기구(WHO)는 ‘한 세대 안에 격차 줄이기’ 보고서(2008)에서 “산모와 아이는 출산 직후와 조기 아동기에 지속적인 보살핌을 받아야 한다”며 조기 아동기 프로그램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영국 정부도 건강 불평등 완화 국가전략보고서(2010)에서 “집중적인 가정방문 프로그램은 각 가정의 사회경제적 차이에 따른 아동 발달의 격차를 줄일 수 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미국 정부는 일반적인 평가가 아닌 확실한 과학적 근거를 요구했다. 미 당국은 검증을 거쳐 19개 산전 및 조기 아동기 가정방문 프로그램을 도입했고, 그중 하나가 호주의 지속방문 서비스 모형인 ‘매쉬’(MIECHV)였다. 미 정부가 지난 5년간 영유아 가정방문 프로그램에 투자한 예산은 약 15억달러(1조5000억원)에 이른다.

영국 간호사가 임신부의 가정을 방문해 산모에게 건강상태를 묻고 있다.
영국 국민건강보험(NHS) 홈페이지 캡처
◆남호주 신청률 98%…국민이 권리로 인식

호주는 1990년대에 영유아 가정방문서비스를 도입했다. 유럽보다 시기는 늦었지만 프로그램을 더 세밀하게 발전시켰다.

린 켐프 웨스트시드니대 교수는 2002년 경제적 어려움과 사회적 단절, 부부갈등 등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정을 지속적으로 돕기 위한 프로그램인 매쉬를 개발했다. 켐프 교수는 “아동의 건강과 발달에는 개인과 가족, 지역사회 등 여러 요인이 영향을 미친다”며 “지속방문 프로그램은 어려움을 겪는 가족들을 사회가 지지하면서 부모의 양육 자신감을 키우고, 아동과의 상호작용을 좋게 만드는 프로그램”이라고 설명했다.

서울시의 만 0∼2세 영유아 가정방문서비스인 ‘서울아기 건강 첫걸음’도 매쉬를 적용하고 있다. 매쉬는 가정방문서비스의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영국으로까지 수출됐다. 현재 호주와 영국, 미국, 한국(서울시)에서 시행 중이다.

하지만 남호주 주정부의 영유아 가정방문서비스 신청률은 98%에 달한 반면 지난해 서울아기 사업의 신청률은 24.5%에 그쳤다. 서울시에서만 추진하다 보니 인지도가 낮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중앙정부 차원의 서비스는 전혀 없다.

켐프 교수는 “호주의 모든 가정과 아동은 간호사의 방문서비스를 받을 자격과 권리가 있고 이러한 프로그램에 대한 국민 지지도가 높다”고 말했다.

이현미 기자 engin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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