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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한 처벌, 범죄인인도 목적 아냐"…17년간 판례 살펴보니 [FACT IN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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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0-07-15 06:00:00 수정 : 2020-07-16 10:3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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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결 직후 거센 비판… 17년간 57건 인도심사 중 '법정형' 비교 이번이 유일
법조계 관계자들 "재판부 판단 일리 있지만 인도거절 근거로 적절치 않아"
세계 최대 아동 성 착취물 사이트 '웰컴 투 비디오' 운영자인 손정우 씨가 지난 6일 오후 법원의 미국 송환 불허 결정으로 석방되어 경기도 의왕 서울구치소를 나서던 중 취재진에게 고개를 숙이고 있다. 연합뉴스

“법정형이 더 높은 청구국으로 범죄인 송환하는 건 범죄인인도제도 기본취지 아니다.”

 

지난 6일 아동 성착취물 사이트 ‘웰컴 투 비디오(W2V)’ 운영자 손정우(24)씨의 미국 송환을 거절한 서울고등법원 형사20부(재판장 강영수) 결정문엔 이런 내용이 담겼다.

 

재판부 판단의 근거는 크게 3가지다. ▲초국가적 ‘네트워크기반 범죄’라서 범죄 관할지가 중요하지 않은 점 ▲범죄인 인도 시 국내 성착취물 수사에 지장 생길 수 있는 점 ▲법정형 높은 국가로의 범죄인 인도는 범조인인도제도의 기본취지가 아닌 점이다.

 

판결 직후 거센 비판이 일었다. 지난 7일 올라온 강영수 부장판사 자격박탈 청원은 현재 동의 인원 50여만 명에 달한다. 한국 사법체계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이 기저에 깔려있다. 디지털과 아동성범죄 법정형이 상대적으로 낮은 한국이 아닌 미국에서 손씨를 처벌해야 한다는 여론이 적잖은 게 사실이다.

 

재판부가 범죄인인도제도 취지를 언급한 걸 놓고 반발이 컸다. 재판부는 “범죄인인도조약의 목적은 ‘범죄의 예방과 억제’”라며 “법정형이 더 높은 청구국 형사법에 따라 범죄인을 처벌하도록 하는 것이 기본취지나 입법목적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청구국 법정형이 높단 이유로 범죄인을 인도하면 범죄인인도제도 취지에 어긋나는 것일까? 14일 세계일보는 재판부의 이런 해석이 타당한지 살펴봤다.

세계 최대 아동 성 착취물 사이트 '웰컴 투 비디오' 운영자 손정우씨의 범죄인 인도심사 세 번째 심문이 열린 지난 6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 마련된 중계 법정에서 취재진이 스크린을 통해 중계되는 재판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연합뉴스

◆ 17년간 57건의 인도심사 중 ‘법정형’ 비교는 이번이 유일

 

세계일보는 법원을 통해 지난 2004년부터 올해까지 총 57건의 인도청구 결정문을 입수했다. 재판부가 그간 범죄인인도제도 취지를 어떻게 해석했는지 살펴보기 위해서다.

 

손씨 이전엔 범죄인도제도 취지를 해석해 거절 근거로 삼은 사례는 없었다. 청구국과 피청구국 간의 법정형 차이를 언급한 적도 없었다. “법정형이 더 높은 청구국으로 범죄인 송환하는 건 범죄인인도제도 기본취지 아니다”란 문제의 구절은 여러모로 이례적이다.

 

우선 인도청구를 거절한 자체가 59건 중 6건에 그쳤다. 공범 관계였던 3건을 합치면 손씨를 제외하고 3건만 거절한 셈이다.

국제 수사기관 공조수사로 폐쇄된 ‘웰컴 투 비디오(W2V)’. 경찰청 제공

범죄인 인도법에 따르면 ‘정치적 성격’의 범죄이거나 ‘절대적 사유’, ‘임의적 사유’가 있는 범죄면 인도청구를 거절할 수 있다. 절대적 사유는 공소시효가 끝났거나 관련 재판이 이미 진행 중인 경우, 인도적 사유란 범죄인이 자국민이거나 범죄 일부 또는 전부를 국내에서 범한 경우 등에 해당한다.

 

손씨에 앞서 인도 거절 결정이 나온 3건 중 2건은 범죄가 정치적 성격을 띠는 경우였다. 지난 2013년 일본 야스쿠니 신사에 불을 지른 중국인 류창에 대한 일본의 인도청구, 지난 2006년 베트남 전복을 목표로 각종 테러를 기획한 베트남인 응우옌흐우짜인에 대한 베트남의 인도청구였다. 나머지 1건은 지난 2006년에 한국인 호주 유학생 3명의 집단폭행 및 감금 사건으로 공소시효가 끝난 경우였다.

 

양국 간 법정형 차이가 크지만 범죄인을 인도한 경우에도 이를 비중 있게 다룬 결정문은 찾아볼 수 없었다.

edn(N번방 성착취 강력처벌 촉구시위) 회원들이 지난 10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손정우의 미국 송환을 불허한 사법당국을 비판하고 있다. 뉴스1

지난해 5월에는 미국 방산업체 레이시언사의 방산기술이 담긴 USB를 한국으로 반출해 관련 사업을 벌인 이모씨가 인도심사를 받았다.

 

결정문에 따르면 이씨 범죄는 미국에선 무기수출통제법 위반으로 20년 이하의 징역형을 받을 수 있다. 한국에선 대외무역법 위반으로 7년 이하의 징역형을 받는다. 법정형이 3배 가까이 차이가 있지만 재판부는 이 점을 결정 과정에 반영하지 않았다.

 

이씨 측은 손씨와 마찬가지로 “범죄 일부를 대한민국 영역에서 범했다”는 점을 들어 인도거절을 요청했지만 이 역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재판부는 “해당 사정을 고려하더라도 공정하고 합리적인 형사사법정 실현을 위해 청구국에서 재판을 받는 게 바람직하다”고 반박했다.

 

10년 전 미국에서 재판을 받다 한국으로 도피한 음주 뺑소니범에 대한 지난달 29일 판결도 마찬가지다. 손씨와 불과 일주일 차를 두고 나온 판결로, 재판부 구성원도 같다.

한국에서 음주운전자의 사망사고는 3년 이하의 징역을 받는다. 같은 범죄에 대해 캘리포니아에선 지난 2016년 징역 15년 선고가 나온 바 있다. 이 역시 결정문은 별도로 언급하지 않았다. “이미 미국에서 수사와 기소가 이뤄졌고, 판결선고기일까지 지정됐으며, 사건 피해자와 목격자가 미국에 있다”는 점을 근거로 인도 결정을 내렸을 뿐이다.

 

손씨는 지난 2015년 7월부터 2018년 3월까지 다크웹에서 아동·청소년 성착취물 사이트인 ‘웰컴 투 비디오’를 운영하며 성 착취물을 배포한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돼 1년6개월형을 선고받아 복역하고 출소했다. 미국에서는 아동 포르노를 다운만 받아도 징역 5∼15년을 선고받는다. 손씨가 미국에서 처벌받았다면 최소 징역 20년에서 무기징역까지도 가능했다는 얘기가 나온다.

 

◆ 법조계 관계자들, “원론적으론 맞는 말이지만..."

 

법조계 관계자들에 자문한 결과, “원론적으론 맞는 말이나, 인도거절 근거로 삼기엔 적절치 않다”는 의견이 대체로 많았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승재현 박사는 세계일보와 통화에서 “범죄인인도제도의 정확한 취지는 어느 나라에서 범죄인을 수사하고 재판해야 가장 효과적인지를 따지기 위한 것이라, 재판부 판단에도 일리는 있다”고 설명했다.

세계 최대 아동 성 착취물 사이트 '웰컴 투 비디오' 운영자 손정우씨의 아버지가 재판을 참관하고 나오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는 그러면서도 “범죄인인도제도 취지를 언급하지 않아도, 다른 근거들로 이미 (인도거절) 설득력은 충분했다”라며 “손씨를 미국으로 송환하라는 여론이 압도적인 상황에서, 형량 높은 국가로의 인도는 제도 취지가 아니란 주장은 불필요한 오해를 만들 수 있다”는 의견을 전했다.

 

송기훈 변호사(법무법인 수륜아시아)는 통화에서 “손씨 사례의 경우 범죄인인도제도 취지는 반분명적 범죄를 국제사회 이름으로 처벌하겠단 취지가 담겨있다”며 “원론적으로 재판부 판단도 맞지만 법정형 비교는 본질적 부분이 아닌데 인도결정의 주요 근거인 듯 결정문에 적시한 것이 적절치 않다”고 주장했다.

 

법무부 양성평등정책 특별자문관을 맡고 있는 서지현 검사는 지난 7일 SNS에서 “범죄진압과정에서 국제적 협력을 증진함을 목적으로 한다”는 범죄인인도법 제1조에 따르면 손씨 인도가 오히려 취지에 부합한다고 밝혔다.

 

박혜원 인턴기자 won0154@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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