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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인희의세상보기] ‘초국적 가족’ 유대가 주는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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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0-01-06 23:27:07 수정 : 2021-03-25 13:5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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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에 흩어져 사는 가족들 / IT 발전 등에 ‘장거리 사랑’ 실천 / 서로간의 소통·교류 더욱 활발 / 가족은 주거 공유?… 편견일 뿐!

세종시 인근에 위치한 우리 집 농장 주위에는 이주노동자들이 거주하는 원룸이 여럿 있다. 행복도시 외곽에 새로운 생활권 조성이 시작되면서 지난해부터 떠나갔던 이주노동자들이 속속 다시 돌아왔다. 덕분에 피부색도 다양하고 외모도 각양각색인 이주노동자들이 함께 어울려 다니는 광경에 익숙해졌고, 이들이 왁자지껄 떠들며 지나갈 때면 난생 처음 들어보는 외국어가 도대체 어느 나라 말일지 궁금증이 밀려오곤 했다.

최근 들어서는 이들이 스마트폰으로 화상통화를 하는 광경이 부쩍 자주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말을 알아듣진 못해도 그들의 표정만으로 고국에 두고 온 아내와 자녀, 부모님과 통화하고 있음을 어렵지 않게 알아챌 수 있었다. 만면에 웃음을 지은 채 보란 듯이 큰소리로 화상통화를 하는 모습 속에 그들이 왜 이주노동자의 길을 택했는지에 대한 답이 자리하고 있는 듯했다.

함인희 이화여대 교수 사회학

그러고 보니 글로벌리제이션의 직접적 영향력이 가족의 일상생활 속으로 스며들기 시작한 지도 제법 오랜 시간이 지난 것 같다. 이제 더 이상 낯설지 않은 이주노동자 가족이야말로 이의 전형적 사례에 다름 아닐 것이다. 이들처럼 한 가족의 구성원이 국경을 넘어 이 나라 저 나라에 살면서 가족 간의 유대를 지속해 가는 현상을 일컬어 ‘초국적 가족’(transnational family)이라 칭한다.

초국적 가족은 개념상 다문화가족과는 다소간의 차이가 있다. 다문화가족이라 할 때는 부부와 자녀가 동일한 국가(한국)에 거주하는 데 반해, 초국적 가족이라 할 때는 가족 구성원이 두 개 이상의 국가에 흩어져 살고 있는 경우를 의미한다. 여기에 더하여 다문화가족이 구성원의 국적 및 인종 혹은 민족 배경이 다양하다는 특징을 지니는 반면, 초국적 가족의 경우는 다문화적 배경을 지닐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초국적 가족의 범주 폭을 보다 넓힌다면, 결혼이민자 가족이든 이주노동자 가족이든 유학생 가족이든 한국에 있는 가족과 고국에 두고 온 가족 사이에 일련의 상호관계를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경우를 모두 포함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흥미로운 사실은 이 나라 저 나라에 뿔뿔이 흩어져 살고 있는 초국적 가족일수록 ‘우리는 한가족’임을 공고히 하고 서로간의 유대감 및 결속력을 다지고자 더욱 활발한 소통과 교류를 하고 있음이 다양한 연구를 통해 확인되고 있다는 점이다. 전 세계에 흩어져 생활하는 가족끼리 주거니 받거니 하며 친밀한 관계를 이어가는 현상을 일컬어 독일 사회학자 엘리자베트 벡 게른스하임은 ‘장거리 사랑’이라 칭하기도 한다. 오늘날 초국적 가족의 장거리 사랑은 정보통신기술의 눈부신 발전과 항공권 구입비의 감소에 힘입어 시간과 공간의 구애를 받지 않고 폭발적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음은 물론이다.

이들 초국적 가족이 장거리 사랑을 실천하는 가장 대표적 방법이 ‘송금’이란 사실은 익히 알려져 있다. 가장 대표적인 송금 형태는 직접적으로 경제적 도움을 주는 것인데, 초국적 가족 간에는 경제적 도움을 일상생활의 한 부분으로 자연스럽게 수용하고 있어 이를 굳이 의식하지 않는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이 이외에도 가전제품 등의 소비재를 보내주거나 가족을 위한 부동산 구입 등 재산 증식에 도움을 주거나 자녀 교육비 혹은 부모 의료비 지원도 빈번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한다.

이뿐만 아니라 ‘문화적 송금’이라 해도 좋을 소통 또한 적극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전화나 스카이프 혹은 이메일 등을 통해 가족 및 친지의 안부를 묻고, 가족 및 친지를 위해 생일선물도 보내주고, 부활절이나 크리스마스 등의 종교적 축제를 기념하기도 하고, 여유가 생기면 고국 방문을 하기도 한다. 이주국에서 고국의 명절이나 국경일을 기념하고 인터넷을 통해 고국의 뉴스를 접하는 것 등도 문화적 송금에 해당된다 할 것이다. 이러한 일련의 문화적 송금은 떨어져 지내고 있는 가족 사이에 정서적 유대가 이어지고 있음을 확인하는 활동이다. 동시에 이주자 입장에서는 떠나온 고국의 문화와 전통과 언어의 고리를 유지하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재확인하고자 가족 유대를 활용하는 방식이라 할 수도 있다.

지금까지 초국적 가족과 관련해서는 부정적 시선이 긍정적 이해를 압도했던 것이 사실이다. ‘가족끼리 생이별을 할 정도니 얼마나 독한 사람들인가’ ‘서로 떨어져 살고 있으니 가족 간의 결손 및 해체 위기를 겪고 있을 것 아닌가’ 하는 의견이 심심치 않게 대두됐다. 그러나 초국적 가족을 대상으로 한 연구 대부분은 우리의 고정관념에 반(反)하는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 가족은 주거를 공유해야 한다는 고정관념 자체가 서구인의 편견일 뿐, 실제 초국적 가족은 떨어져 있기 때문에 가족으로서의 결속과 유대를 유지하기 위해 오히려 최선을 다해 피나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음이 속속 밝혀지고 있다. 현재의 희생과 고통이 미래의 장밋빛 전망과 보상이 되리란 기대 하에 부모세대와 자녀세대 간에 유기적 협력이 이루어지고 있음 또한 확인되고 있다.

이주노동자들이 고향에 두고 온 가족과 유대감을 유지하기 위해 헌신적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음을 가까이서 보고 있자니, 과연 우리에게 가족이란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우리는 가족 간 친밀성과 정서적 유대를 위해 진정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지, 부끄러움 뒤로 반성이 밀려온다.

 

함인희 이화여대 교수 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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