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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일호의미술여행] 불안과 절규의 순간은 흘려보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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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12-27 22:55:54 수정 : 2019-12-27 22:5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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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바르트 뭉크의 ‘절규’

해질 무렵 붉게 타는 노을을 뒤로한 채, 불안과 공포에 떨고 있는 한 사람이 다리를 건너오면서 절규하고 있다. 그 사람의 표정을 보면서 신경증에 걸린 과민한 환자를 떠올릴 수 있다. 더 큰 의미로는 해가 지고 다리를 건너는 것이 한 세기가 저물고 새로운 세기가 시작된다는 것의 암시적 표현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전통적인 가치관이 위협받고 새로운 가치관은 아직 형성되기 이전인 과도기 상황 속에서 사람들이 겪고 있는 불안과 공포를 절규하는 한 사람의 표정으로 나타내려 했다는 것이다.

노르웨이 화가 에드바르트 뭉크는 이 그림 안에서 19세기 말이란 상황에서 사람들이 가졌던 불안한 심리와 위기의식을 표현했다. 그림의 구성적 질서나 형식의 완성 같은 조형적인 문제보다 인간적인 고민이나 갈등을 강조했으며, 가식적인 표현을 멀리하고 갈등과 불안감을 솔직하게 표출해서 일종의 카타르시스 효과를 주는 그림을 의도했다. 빈센트 반 고흐를 연상케 하는 소용돌이 꼴의 선들이 검정 노랑 빨강 색으로 휘몰아치게 했다. 밝은 색채를 사용했지만, 음산하고 우울한 분위기가 화면 전체를 압도하게 만들었다.

그 당시 일부 예술가는 세기말의 위기의식과 혼란을 니체의 초인사상이나 바그너식의 영웅적 민족주의 예술관으로 극복하고 나타내려 했다. 하지만 뭉크를 포함한 표현주의자들은 그 위기와 혼란이 인간 스스로에 의해서 초래된 것임을 인정하고, 그로 인해 겪고 있는 정신적 고통이나 비극적 느낌을 숨김없이 솔직하게 드러내고 표현하려 했다.

한 해의 마지막 주말을 맞았다. 올 한 해 보람찬 일이 있었던 사람, 절규하고 싶을 만큼 힘들었던 사람, 새로 일을 시작했지만 만족할 만큼 성과가 없어 불안했던 사람 등 그 모두의 한 해가 저물고 있다. 이제는 불안과 절규의 지난 순간을 흘려보내고 잊어야 할 때다. 지는 해와 함께 가슴 속에 응어리진 감정을 마음이 후련해질 때까지 태워버리자. 그리고 더 좋은 결과가 있고, 절규가 환호로 바뀌고 불안이 희망으로 바뀌는 새해를 기대해 보는 거다.

박일호 이화여대 교수·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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