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제천 스포츠센터 화마에 스러진 29명의 유가족 중 한 명인 류모(59)씨는 22일 제천서울병원에 안치된 아내 시신을 확인하는 순간 울분을 토해냈다. 류씨는 “아내 시신을 확인해보니 지문이 사라져 있었다”며 “아마 사우나 안에서 유리창을 깨려고 애를 쓰면서 손이 심하게 훼손된 것 같다”고 오열했다.
22일 오전 충북 제천 하소동 스포츠센터 화재현장에서 국과수와 경창 등 유관기관 합동감식반이 20명이 사망한 여성사우나 내부에서 현장 감식을 하고 있다. 제천=남정탁 기자 |
화재 당일 당국의 미숙한 초기 대응이 도마에 오르고 있다. 제천소방서는 화재 신고를 접수한 지 7분쯤 지난 21일 오후 4시 현장에 도착했다. 하지만 본격적인 구조활동은 1시간쯤 지나서야 이뤄졌다. 소방·구조 인력이 20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2층 여성 사우나에 진입한 것은 현장 도착 30∼40분 뒤였다. 이상민 제천소방서장은 “소방차가 현장에 도착했을 당시 1층 차량이 불타고 있었고 자욱한 연기와 주변 LP가스통의 폭발 위험으로 진입이 어려운 상황”이라고 해명했다.
22일 오전 충북 제천 하소동 스포츠센터 화재현장에서 국과수와 경창 등 유관기관 합동감식반이 현장 감식을 하고 있다. 제천=남정탁 기자 |
가장 많은 희생자가 발생한 2층 여성 사우나 출입문은 사실상 고장 난 것과 마찬가지였다. 노블휘트니스앤스파에 오랫동안 근무했다는 A씨는 “2층 목욕탕의 버튼식 자동문은 평상시에도 손톱만 한 크기의 붉은색 버튼을 정확하게 누르지 않으면 문이 열리지 않았다”며 “목욕탕 전체가 연기로 자욱한 상황에서 손님들이 이 출입문을 열기는 매우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화재를 알리는 비상 방송시설도 없고 탕내에서는 비상벨이 울려도 듣기 힘든 미로식으로 돼 있다”고 덧붙였다.
제천소방서에 따르면 화재 발생 당시 남성인 건물주는 1층 사무실에서 직원 면접을 보고 있다가 불이 난 것을 보고 계단으로 3층인 남성 사우나 내부까지 들어가 이용객들을 대피시켰다. 그러나 2층 여성 사우나에는 들어가지 못하고 문 밖에서만 대피하라고 소리를 질렀다. 소방당국은 건물 내 CCTV로 건물주 진술의 사실 관계를 확인했다.
소방당국의 ‘부실 안전점검’ 지적도 나온다. 소방당국은 화재 발생 1개월 전인 지난달 말 해당 건물에 대한 안전점검을 벌였다. 점검 결과 층마다 설치된 자동 화재 탐지 설비가 안전 기준에 못미쳤던 것으로 나타났다. 스프링클러 헤드와 가지배관 이음매에선 물이 샜고, 열·연기 감지기는 단선 등으로 오작동을 일으킬 가능성이 제기됐다.
그럼에도 관계당국은 까맣게 몰랐던 것으로 알려졌다. 점검 결과가 소방서에 제출되면 관계당국은 이에 따른 시정 조치 사항을 건물주에게 통보하도록 돼 있는데, 이번 화재는 소방서가 점검 결과를 보기 직전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근규 제천시장은 이날 오전 브리핑에서 “스포츠센터 건물은 적법하게 두 차례 증축됐으며 리모델링 공사 후인 11월 말 전문 기관의 소방안전점검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제천=김을지·김정모 기자 ejkim@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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