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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 2년, 1778년 사행단을 따라 청의 수도 연경에 간 박제가. 눈이 번쩍 뜨였다. 연경 거리를 메운 마차를 봤기 때문이다. ‘북학의’ 첫 장에 남긴 글. “연경에는 마차 구르는 소리가 요란하다. 그 소리는 천둥 같다.… 거리를 걷노라면 좌우에서 ‘수레 필요하지 않냐’고 묻는다.”

 

마차는 지금의 택시와 같았다. 연경 조양문에서 동쪽 통주에 이르는 길. 바닥에는 돌을 깔았다. 양자강의 물산을 운하로 통주에 옮긴 뒤 연경으로 실어 나르는 마차 길이다. 수레라야 고작 동거(東車) 정도가 있던 조선 한양. 동거는 작은 나무바퀴를 단 작업용 손수레다. 박제가는 통렬히 비판했다. “조선이 가난한 것은 마차가 없는 탓이다.”

 

박제가가 본 것은 어떤 마차일까. 중국 시안의 병마용갱. 그곳에서 4두 청동마차가 발굴됐다. 진시황이 천하를 순무할 때 타던 마차다. 청동 도금을 했다. 놀라운 것은 기술력이다. 1호 마차의 부품은 3064개, 2호 마차의 부품은 3462개에 이른다. 부품 세는 단위를 달리하면 1만개가 넘는다고도 한다. 얼마나 정교했으면 마차 부품 수가 자동차에 버금갈까. 진이 천하를 통일한 때는 기원전 221년. 박제가 시대로부터 약 2000년 전이다.

 

마차 제작 기술은 2000년 세월 동안 진화하지 않았을까. 마차 기술이 그 정도라면 다른 기술은 또 어땠을까. 진시황의 첨단 마차, 사람과 물산을 실어 나르는 연경의 마차. 그런 기술력이 있었기에 제국은 만들어진 것 아닐까. 마차 하나 제대로 만들어 쓰지 못한 조선. 어떤 길을 걸었던가.

 

‘세계적’이라는 반도체, 조선, 자동차, 원자력 기술…. 그 역사는 깊지 않다. “잘살아 보자”고 애쓰던 1980년대에야 겨우 기술 개발의 불을 댕겼다. 기술 기반은 아직도 약하다. 노벨 과학상 수상자 하나 없지 않은가.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한국표준형 원전 기술을 두고 옥신각신한다. “그저 그런 보통 기술”이라고 폄하한다. 여당에서 그런 소리가 나온다. 원자력 전문가들 왈, “세계적인 우리 기술을 두고 왜 흠집을 내려 하느냐.” 마차를 만들고자 한 실학자들, “그것 만들어 무엇하냐”고 타박한 위정자들. 그 복사판 아닌가.

 

강호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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