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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쑥고개 아리랑'-국가의 토지강탈 의혹 사건] ‘후손 있는 땅 안 건드린다’ 원칙 깬 중정(中情)… ‘윗선’ 개입 정황

입력 : 2017-02-14 18:40:48 수정 : 2017-02-14 22: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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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권력 총동원된 사건? / 보안사 조사관 “靑 비서실” 언급 / 재심 소송 수임 맡았던 변호사도 “靑에 불려 들어가 혼났다” 밝혀

실제 기획자는 누구?
적산 위주 토지공작 벌인 보안사
이례적으로 쑥고개 땅
‘윗선’이 지시해 쑥고개 토지강탈 의혹 사건에 국군보안사령부가 개입했다는 증언이 확보됨에 따라 상부가 어디인지, 어떤 의도로 개입을 지시했는지 궁금증이 증폭된다.

조선 영응대군 16대손 이갑수(사망)씨의 4녀 이상연씨의 남편 송세관씨는 토지 관련 송사 중 “중앙정보부가 뒤에 있었다”, “중정이 지휘하고 국군보안사령부가 실행에 옮긴 것” 등 다수의 윗선 개입 증언을 들었다고 전했다. 이는 이갑수씨의 장남 이상권씨(사망), 소송대리인 소중영 변호사(사망), 송씨 등이 겪은 고초가 보안사 군인 몇 명의 단순 일탈이 아니라 국가 차원의 조직적인 토지강탈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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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중앙정보부’

국가기록원 등에서 입수한 자료와 증언을 종합해보면 이 사건에는 보안사만 개입한 것이 아니라 ‘윗선’이 존재한다. 특히 증언에는 빠짐없이 ‘중정’이 나온다.

송씨가 1978년 잠깐 만난 ‘이문동(중정) 토지공작과 총책임자’ 황모 대령은 1962년 서울의 행정구역을 확장하면서 정치자금·중정 자금 등으로 쓰기 위해 적산(일본인 재산), 역산(일제 부역자 재산), 무주물(6·25전쟁 중 소유주가 행방불명된 땅)을 찾아내는 작업이 있었다고 알려줬다. 중정은 이때 후손이 있는 땅은 손을 대지 않는 대원칙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황 대령은 “당신의 땅은 당신의 부인(이상연씨)이 있어 손을 대지 않았는데 여기 공작반에 있는 아이들이 사사로이 처리했다가 지주가 알게 되니 급한 생각으로 기관을 동원, 불법을 행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갑수씨의 장남 이상권씨도 1979년 죽기 직전 사실 이 사건은 중정이 개입돼 있어 함부로 말하지 못했다고 송씨에게 털어놨다. 송씨는 또 1979년 D대학교 법대 송년회에서 지인의 소개로 만난 김정웅 변호사(사망)로부터도 중정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고 전했다. 보안사에서 법무관으로 일했던 김 변호사는 당시 보안사에서 처리한 ‘3대 토지 사건’을 들었다. 그중 세 번째가 이갑수씨 땅인 봉천동 영응대군 임야라며 “쑥고개 사건은 중정 지휘로 보안사에서 처리한 것”이라고 말했다.

2006년 진실화해위원회에 제출된 보안사 법무관 출신 김정웅(사망) 변호사의 녹취록. 김 변호사는 1982년 1월 이갑수씨의 4녀 이상연씨와 남편 송세관씨를 만난 자리에서 “김모 중정 감찰실장이 총지령을 내렸다”고 말했다.
보안사 변모 소령이 2008년 6월 11일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에 출석해 조사받은 내용을 기록한 ‘조사대상자 진술조서’. 그는 쑥고개 일대 토지 강탈 의혹 사건이 보안사 자체 사건이 아닌 ‘상부’에서 하달돼 내려온 사건이라고 밝혔다.
◆‘윗선’→중정→보안사 지시라인?

중정 위의 ‘윗선’이 개입한 것으로 보인다는 보안사 관계자의 추측도 나왔다. 당시 보안사 서빙고분실에 근무하며 이상권씨와 소중영 변호사 조사를 맡았던 변모 소령은 2008년 진실화해위에서 “이상권씨 조사는 보안사 자체 사건이 아닌 상부에서 하달돼 내려온 사건으로 알고 있다”고 진술했다. 그는 당시 관행상 상부(청와대 비서실)에서 국가기관 관련사항에 대해 국가기관의 구성원과 내사대상자가 유착관계에 있다고 판단될 때는 타 기관에 조사를 시키는 일이 종종 있어 상부에서 하명한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김정웅 변호사는 송씨에게 “보안사 변 소령 등과 김모 당시 중정 감찰실장이 이 사건을 주도한 것”이라고 귀띔했다고 한다. 김 전 실장은 보안사에 근무하다 중정 감찰실장으로 간 인물로, 당시 중정에는 민원이 많아 이 사건과 같은 복잡한 사안은 김 전 실장을 통해 보안사에서 처리하도록 했다는 설명이었다. 하지만 토지공작 지시 의혹이 제기된 김 전 실장은 2008년 진실화해위 조사에서 “이상권씨나 송씨는 전혀 모르는 사람이고, 사건과 관련해 아는 바 없다”고 부인했다.

1982년 송씨 부부는 김 변호사를 찾아가 재심을 맡아달라고 부탁했다. 김 변호사는 쑥고개 사건은 자신이 보안사 재직 때 일이기 때문에 전말을 다 알고 있다며 “한두 달 안에 사건을 끝내겠다”고 흔쾌히 수임했다고 한다. 하지만 청와대에 다녀왔다는 김 변호사는 주눅이 든 채 “(청와대 인사로부터) 친정 치부 드러내고 혼자 잘 먹고 잘 살려 하느냐”고 혼이 났다고 전했다. 김 변호사는 이 사건은 보안사, 중정, 청와대까지 권력의 뿌리가 너무 깊다는 말만 남기고 시골 요양을 핑계로 낙향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1977년 3월 16일 새마을궐기대회에서 최태민 구국봉사단 총재(오른쪽)의 안내를 받으며 걸스카우트 대원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토지강탈 맞다면 매각 자금은 어디로

이 사건이 국가권력에 의한 토지강탈이라면 땅을 판 막대한 자금이 어디로 흘러들어갔는지 주목된다. 송씨는 토지 매매자금 중 일부가 육영재단, 정수장학회, 구국봉사단 등으로 흘러들어갔다고 주장했다. 쑥고개 토지의 명의이전이 시작된 1969년은 육영재단이 설립된 다음해로, 재단이 남산에 어린이회관을 짓는 등 활발히 활동했던 때다. 하지만 30여년 전 일이고, 당시 회계장부가 없고 담당자도 찾기 어려워 자금이 육영재단으로 흘러갔는지는 확인할 수 없었다. 육영재단 관계자도 “너무 오래된 일이라 그때 일을 기억할 만한 직원이 남아 있지 않다”고 말했다.

송씨에 따르면 전 정보기관 고위당국자 A씨는 “사실은 보안사 고위간부인 B장군이 사건을 지휘했다”며 “토지를 전부 팔아 육영재단, 5·16장학회 등으로 들어갔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하지만 A씨는 미국에서 취재팀과 만나 자금이 어떻게 흘러갔는지는 자신도 알지 못한다고 부인했다.

특별기획취재팀=김용출·백소용·이우중·임국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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