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쑥고개 아리랑-국가의 토지강탈 의혹 사건] “중앙정보부, 보안사에 3대 토지강탈 사건 실행 비밀지령 내려”

입력 : 2017-02-14 18:41:27 수정 : 2017-02-14 21:02:59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탐사보도] 3회- 일탈배후에 절대 권력 있었나 #어른거리는 ‘토지 공작’의 배후

조선 영응대군 16대손 이갑수(사망)씨의 4녀 이상연씨의 남편 송세관씨는 법정 투쟁을 하고 보안사에 맞서는 과정에서 ‘토지 공작’의 배후를 조금씩 알게 됐다고 한다. 

보안사 감금 중이던 1978년 9월 어느 날. 송씨는 서울 을지로 6가 계림극장 뒤편에 자리한 D빌딩 사무실에 끌려가 ‘황모 대령’을 만났다. 황 대령은 자신을 ‘토지공작과 총책임자’라고 소개하고, 사무실을 ‘토지공작과 본부’라고 했다. 그는 이어 1960년대 전반기 부산에서 △적산(일본인 재산) △부역자 △6·25전쟁 중 사망 지주의 땅을 빼앗아 자금화한 것처럼, 1960년대 후반 서울에서도 쑥고개 땅 등을 대상으로 ‘토지공작’이 이뤄졌다고 말했다.

이갑수씨의 장남 이상권씨도 1979년 죽기 직전 송씨의 손을 잡고 비밀을 털어놨다고 한다. “사실 이 사건은 중앙정보부가 개입하고 있기 때문에 손을 대지 못하게 했던 걸세.”

2006년 진실화해위원회에 제출된 보안사 법무관 출신 김정웅(사망) 변호사의 녹취록. 김 변호사는 1982년 1월 이갑수씨의 4녀 이상연씨와 남편 송세관씨를 만난 자리에서 “김모 중정 감찰실장이 총지령을 내렸다”고 말했다.
#“중정 지시로 보안사 실행” 증언도

송씨는 1979년 12월24일 D대학교 법대 송년회에서 지인의 소개로 만난 김정웅(사망) 당시 보안사 법무관에게도 놀라운 얘기를 듣게 됐다.

“우리 보안사에서 처리한 ‘3대 사건’이 있었다. 첫째는 서울 동작동 국군묘지 사건, 둘째는 장승배기 양녕대군 임야사건, 셋째는 봉천동 영응대군 임야, 즉 이갑수씨 땅이었다. 모두 김모 중앙정보부 감찰실장의 하명에 따른 것이었다. 지주 측의 어떠한 행위도 용납하지 말라며 ‘신촌 아주머니를 도와라!’는 비밀 지령도 내려왔다.”



요약하면 △김모 중정 감찰실장의 지시로 보안사가 토지공작을 주도했고 △지주들의 땅찾기 소송을 저지하라며 ‘신촌 아주머니를 도와라!’는 비밀 지령이 내려졌다는 거다. 김 법무관 자신도 보안사 조치에 반대해 관련 서류를 결재하지 않았다가 청와대에 불려가 ‘상부의 명령대로 처리하지 않는다’고 심하게 추궁받았다고 했다.

보안사 변모 소령이 2008년 6월 11일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에 출석해 조사받은 내용을 기록한 ‘조사대상자 진술조서’. 그는 쑥고개 일대 토지 강탈 의혹 사건이 보안사 자체 사건이 아닌 ‘상부’에서 하달돼 내려온 사건이라고 밝혔다.
1982년 송씨에 의해 작성된 ‘김정웅 녹취록’에서도 김 법무관은 “그 사람이 (김모) 중정 감찰실장이었어요. 총 지령을 다 그 양반이 내린 건데…”라고 확인했다.

취재팀이 당시 기사 등을 분석한 결과 서울 동작동의 산 33-2∼8번지 국립묘지 6필지(5만4000여평)와 상도동 65-41번지의 양녕대군파 종중 임야(13만여평)가 소송이 벌어진 것으로 확인됐다. 국립묘지 6필지의 경우 6·25전쟁 때 권리증서를 잃어버린 소유주에게 “정부에 건의해 국립묘지에 해당하는 만큼의 다른 땅을 얻어주겠다”고 말해 일부 서류를 받아 1963년 소유권을 가로챘다는 주장이 제기됐고, 양녕대군파 종중 임야도 종중 결의문을 위조하는 방식 등으로 매각돼 소송이 진행된 것. 하지만 토지공작 지시의혹이 제기된 김 전 실장은 2008년 진실화해위 조사에서 “이상권씨나 송씨는 전혀 모르는 사람이고, 사건과 관련해 아는 바 없다”고 전면 부인했다.

조선 영응대군 16대손 이갑수씨의 사위 송세관씨가 최근 서울 종로구 세계일보 사무실을 찾아 쑥고개 일대 땅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고 있다.
#대법원장도 못막은 이상한 상고심

송씨는 대법원에 상고했지만 1981년 7월28일 역시 패했다. 그는 이 과정에서 대법원장의 의사마저 무시되는 ‘이상한 상고심’이 이뤄졌다고 주장한다.

유태흥(2005년 사망) 당시 대법원장은 판결 직전인 그해 7월 중순 대법원 등기과 관계자에게 쑥고개 토지 소송과 관련해 소유 관계를 파악해보라고 지시했다. 이에 등기과 관계자는 등기부 내용과 당시 민법 등을 분석한 뒤 “등기 및 분할 절차상 하자는 인정되지만, 절차상 하자가 실체적 권리를 부정할 수 없어 이갑수씨 소유가 맞아 보인다”고 보고했다.


유 대법원장은 이에 상고심을 전원합의체에 회부할 것을 지시했다. 하지만 A대법관(사망)은 7월28일 상고를 전격 기각하고, 이틀 뒤에 대법관을 사직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이갑수씨가 1945년 2월5일 봉천리 산 174번지 전체를 매수했음을 전제로 하는 논거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혔다.

유 대법원장은 그해 9월 송씨 부부를 위로하며 “내가 직권으로 대법관 전체회의에 회부해 심리하려 했는데 A대법관이 알고 미리 판결해 버렸다”고 괘씸해했다고 한다. 유 대법원장은 이어 “민주화가 되면 언젠가는 진실이 떠오를 것”이라며 정권이 바뀔 때마다 탄원서를 내라고 조언했다.

#진정 운동과 진실화해위 조사도 무위

송씨는 1982년 1월 전두환 대통령에게 진정서를 낸 이래 △1987년 5월 노태우 △1994년 7월 김영삼 △1998년 3월 김대중 △2003년 5월 노무현 △2011년 2월 이명박 대통령에게 차례로 진정서를 냈다. 박정희 정권 시절 때의 사건이었기에 박근혜 대통령에겐 내지 않았다. 하지만 어느 대통령도 진실을 규명해주지 못했다.

송씨는 2005년 12월 과거사정리법이 제정 시행되자 이듬해 5월 쑥고개 사건에 대한 진실규명 신청서를 진실화해위원회에 냈다. 진실화해위는 2008년 4월부터 조사를 개시했지만 보안사 관계자들이 관련 사실을 전면 부인하면서 결국 ‘진상규명 불능’ 결정을 내렸다. 당시 진실화해위 조사 책임을 맡았던 이명춘 변호사는 취재팀과 만나 “(보안사 측은) 송씨가 감금, 고문을 당했다는 ‘국군서울지구병원’에 조사실이 없다고 강하게 부인했다. 이게 맞으면 다음 것도 어느 정도 맞추는데 그게 안 됐다”고 회고했다.

#좌절과 기독교 귀의

송씨는 1982년 6월 보안사에서 전역한 김정웅 변호사를 찾아가 재심을 맡아달라고 부탁했지만 김 변호사는 손사래를 쳤다. 그는 “이번 사건은 보안사와 중정, 청와대까지 권력의 뿌리가 너무 깊다. 이 사건은 힘들다”며 되레 송씨에게 ‘저항’을 포기하라고 조언했다. 김 변호사는 1995년 사망했다.


송씨는 재판에서 모두 패한 데다 재심마저 여의치 않자 크게 낙담했다. 그 사이 송씨의 가정은 아내가 조그만 사업을 하며 어렵게 꾸려갔다. 송씨는 “그들을 이길 수도, 피할 수도 없었다. 한국을 떠나고 싶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실의에 빠져 있던 어느 날, 송씨는 집 근처 교회에서 들려오는 찬송가 소리에 이끌려 기독교에 귀의했고, 나중에는 목사 안수까지 받았다. 그는 현재 목회를 은퇴한 상태다.

개발 전 강남 모습 공사 중인 1970년대 초 영동 구획정리지구의 모습. 당시 서울 강남구와 서초구 대부분이 이런 모습이었다.
손정목 ‘서울 도시계획 이야기’
#다시 쑥고개에 서다

이상연씨와 송세관씨 부부는 이갑수씨의 쑥고개 땅을 다시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1970, 80년대 온몸으로 겪은 것처럼, 법과 제도의 벽이 너무 높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부부는 진실만은 포기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더구나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진실 규명의 마지막 가능성이 엿보일 조짐이다. 왜냐하면 강탈된 쑥고개 토지의 자금이 최태민과 최순실 부녀가 전횡한 것으로 알려진 육영재단이나 구국봉사단 등으로 흘러갔다는 증언이 있었기 때문이다. 송씨는 “작고한 김 변호사나 전직 정보당국 고위관계자 B씨 등으로부터 강탈된 쑥고개 토지를 자금화해 육영재단이나 구국봉사단 등으로 흘러 들어갔다고 들었다”고 전했다.

전직 정보당국 고위관계자 B씨는 2013년 8월 교회 목사의 소개로 만나 “보안사 고위 간부 C씨가 사건을 지휘했고 토지자금이 육영재단이나 구국봉사단 등으로 들어간 것 같다”고 송씨에게 귀띔했다. 하지만 B씨는 미국 현지에서 취재팀과 만나 “나는 송씨에게서 얘기를 듣고 스토리를 알게 된 것으로, 구체적으로 잘 모른다”고 말을 아꼈다.

다시 지난 3일 오전 쑥고개길. “한국을 떠나고 싶었던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는 송씨 부부는 촬영을 하는 내내 차분했다. 연로(年老)와 함께 경험한 그 수많은 원망과 분노, 회한, 좌절이 가슴 켜켜이 쌓여 있기 때문이리라.

“그래도 이제라도 정부에서 그것을 잘못했다고 인정하고, 두 번 다시 이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줬으면….”

그날 쑥고개엔 40년이 넘은 슬픔이 겨울을 힘겹게 버텨내고 있었다. 골목길에 버려진 빛바랜 법전 하나, 스치는 바람에 “모든 국민의 재산권은 보장된다”(헌법 제23조 1항)는 구절도 한번쯤 슬쩍 드러냈을 터다.

특별기획취재팀=김용출·백소용·이우중·임국정 기자 kimgija@segye.com
영상편집=김경호 기자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리센느 메이 '반가운 손인사'
  • 리센느 메이 '반가운 손인사'
  • 아일릿 이로하 '매력적인 미소'
  • 아일릿 민주 '귀여운 토끼상'
  • 임수향 '시크한 매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