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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청자기의 은은한 멋 캔버스에 담다

입력 : 2015-09-08 17:55:48 수정 : 2015-09-09 02:5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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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청기법으로 회화작업 차규선 작가, 11일부터 전시회 우선 그와 전화통화를 시도했다. 모처럼 서울에 올라온 그는 지인들과 술자리에 있었다. 주위가 시끄러우니 밤 11시쯤 통화를 하자고 했다. 11시30분쯤 전화를 하니 그가 11시에 술자리에서 잠시 밖으로 나와 전화를 기다렸다고 한다. 다시 술자리에 합석해 대화가 어렵다고 해 다음날 아침 7시에 통화를 약속했다. 숙취를 고려해 10시쯤 전화를 하니 7시에 알람을 맞춰 놓고 기다렸다고 한다. 들려오는 음성에 잠만 설쳤다는 불만이 실려왔다. 분청기법으로 회화작업을 하는 차규선(47·사진) 작가의 ‘자기 엄격성’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자유로운 작업방식을 유지하기 위해 그는 오히려 자신에게 더욱 철저히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저는 제 그림을 어떻게 봐 달라고 하고 싶지 않습니다. 억지로 제목을 붙이고 의미를 부여하는 행위조차도 강요이자 강간행위라고 생각합니다. 그저 편안히게 봐줬으면 해요. 기법이 어떠니 하는 것도 얘기하고 싶지 않아요.”

사실 그는 일찍부터 캔버스에 흙을 바르는 밑바탕 작업을 해왔다. 흙바탕 위에 유화를 올리는 방식의 작업이다. 흙바탕이 유화를 강력히 빨아들인다. 성형된 기물에 유약을 듬뿍 입혀 작업하는 분청기법과 자연스럽게 접목이 됐다.

“10년 전 분청자기 전시를 보게 된 것이 결정적 계기가 됐습니다. 유약에 덤벙 집어넣거나 철사나 붓 자국을 그대로 승화시켜낸 모습에 매료됐지요.”

분청기법을 연상시키는 일필휘지로 그려낸 작품 ‘풍경’.
자유분망한 형식이 그를 끌어당겼다. 정제되지 않았지만 방만하지 않은 편안한 미감이 가슴에 다가왔다. 편안한 미감 그 자체였다. 그가 요즘 쓰는 흙은 정제된 도자기 흙이다. 여기에 접착제와 안료를 섞어 캔버스에 바른다. 다시 말해 분토와 물감을 섞어 캔버스에 배경이 되는 바탕을 칠하는 것이다. 그는 그런 후에 백자의 느낌이 나는 물감을 전체 화면 위에 뿌린다. 그러곤 마르기 전 바람이 지나가듯 붓 삼은 막대로 거친 호흡을 토해 낸다. 그야말로 조선도공이 분청자에 그림을 그려 넣는 방식이다. 몸에 체화된 구애됨이 없는 자유로움이다. 이를 위해선 작가의 몸속에 이미 화면구상이 녹아 있어야 한다.

“중국 청대의 화가 정섭도 눈 속의 대나무(眼中之竹), 가슴속의 대나무(胸中之竹), 손 안의 대나무(手中之竹)라는 세 단계로 그림 그리는 과정을 설명했어요. 저도 눈으로 본 것을 가슴속에 담아두었다가 손으로 일필휘지하는 것이지요. 구상은 실제로 그리는 과정에서 미리 눈으로 보고, 가슴속에 생각했던 그것과는 차이가 발생하지요. 본 대로 그리고, 구상했던 대로 그리는 단계를 벗어나 실제로 그리는 과정에서 예상치 못했던 예술적 감흥을 자아내는 즉발성이 생기게 됩니다. 그것이 작가의 개별성이자 예술적 보편성이지요.”

그는 매화, 인물 등 다양한 스펙트럼의 그림을 그리고 있다. 그의 그림은 두터운 오일물감으로 덧칠하는 유화와는 차이가 있다. 그의 그림이 동양적인 정취가 강한 것은 단순히 소재 때문이 아니라 제작방식 때문이기도 하다. 그의 문인적인 취향도 한몫하고 있다.

“저는 18세기 문인화가 이인상 같은 조선화가들을 좋아합니다. 실학자였던 이덕무 같은 선비의 일대기도 읽었습니다. 분청자기의 여백의 미 같은 풍모를 지닌 인물들입니다.”

한시를 좋아하는 그는 대학원 시험에서 제2외국어를 한문으로 선택할 정도로 고전에도 관심이 많다. 고문진보도 술술 읽어내려갈 정도다. 경주가 고향인 그에게 전통은 몸에 밴 것이다. 11∼25일 이화익갤러리에서 그의 최근작을 볼 수 있다. (02)730-7817.

화가에게 그림은 삶의 평형을 유지시켜 주는 지렛대라고 말하는 차규선 작가. 그에게 그림 그리는 일은 매일 반복적으로 밥을 먹고 잠을 자듯 생활의 일부이며 삶의 전부다. 그리고 싶은 것을 마음껏 실컷 그리며 조금씩 변해 가는 미묘한 차이를 감지하며 좋은 그림을 그리려고 항상 노력하지만, 어느날은 비가 오고 어느날은 해가 나듯 의지와 상관없이 좋고 나쁘기를 반복한다.

편완식 미술전문기자 wansi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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