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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년간 모아온 컬렉션 막상 공개하려니 벌거벗는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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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4-09-01 20:54:30 수정 : 2014-09-02 08: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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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완식이 만난 사람] 김수근의 공간사옥에 미술관 연 김창일 회장 한국 현대건축 1세대인 고(故) 김수근 선생이 설계한 원서동 공간사옥이 1일부터 미술관(아라리오 뮤지엄 인 스페이스)으로 탈바꿈했다. 그동안 공간사옥은 공간건축사무소, 월간지 ‘공간’ 편집실, 전시공간 등을 아우르며 건축가뿐 아니라 문화인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특히 소극장 ‘공간사랑’은 공옥진의 ‘병신춤’, 김덕수 사물놀이패의 사물놀이 등이 공연된 곳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지난해 11월 공간사의 부도로 주인이 바뀌었다. 새 주인은 천안에서 버스터미널을 시작으로 백화점 등을 운영하고 있는 김창일(63) 회장이다. 천안과 서울에서 아라리오갤러리를 운영하면서 미술품 큰손 컬렉터로도 이름이 알려진 인물이다. 

김창일 회장이 자신이 구입한 백남준 작품 앞에 섰다. 그는 “한국작가들의 도약을 위해선 좋은 전시공간을 통한 ‘포장’이 중요하다”며 아라리오미술관도 그 역할을 고민해 보겠다고 말했다.
아주 오래전에 그를 만난 적이 있다. 세계미술시장에서 100대 컬렉터로 꼽히면서 미술계의 시선이 집중됐던 때였다. 그가 작업까지 한다는 얘기에 의아한 시선으로 천안 작업실을 찾았다. 작품 수집이나 할 것이지 작업은 왜 하는지 궁금했다. 컬렉터로는 성에 안 차 아예 자신도 작가가 되기로 작정을 한 것 아닌가. 작가들을 옆에서 지켜 보면서 작업이란 게 별거 아니라는 생각을 한 건 아닌지.

이런저런 불순한 생각을 가지고 그와 마주했다. 물감과 땀이 범벅이 된 작업복을 입고 나타난 그가 던진 한마디는 “그저 좋아서”였다.

지금도 그때의 말이 생생하다. “나쁜 짓도 아닌데 사람들은 저를 비웃어요. 미술도 전공하지 않고 유학도 안 다녀 왔으니 그럴만도 하지요. 하지만 저는 그런 편견에 저를 매몰시킬 생각은 없어요. 당당히 맞서는 것이 삶을 풍요롭고 자유롭게 만들기 때문이지요.”

세월이 흘러 미술관 개관을 앞두고 그를 다시 대면했다. 목소리가 상기되고 들떠 있었다. 지난 35년 동안 모아온 컬렉션을 비로소 대중에게 보여 줄 수 있다는 ‘오랜 기다림’의 설렘이다.

“막상 공개를 하려니 두렵기도 합니다. 제 자신을 발가벗기는 느낌이지요.”

그는 1981년 LA현대미술관 전시를 감명 깊게 관람한 후 미술세계에 본격적으로 발을 들여놓았다.

2000년대 들어 급부상한 영국의 YBAs(1990년대 등장한 영국 젊은 작가들)와 독일 라이프치히 화파 작가들의 작품을 대거 사들이면서 일거에 세계적 컬렉터로 회자되기에 이른다.

중국 인도 등 동남아시아 신진작가들의 작품에도 관심을 가지면서 동서양을 아우르는 3700여점의 컬렉션을 자랑한다. 가격으로 치면 1500억원 상당에 이른다. 그는 7년째 ‘세계 200대 컬렉터’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그는 그동안 자신의 컬렉션을 보여주기 위해 제주도 4곳에 미술관을 준비하고 있었다. 공간사옥이 갑자기 매물로 나오면서 한 곳이 더 추가된 셈이다.

“버려진 건물이나 마찬가지였던 탑동 시네마와 바이크샵 건물을 매입해 미술관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개조 중인 동문 모텔과 함께 10월에 미술관으로 개관할 예정입니다. 나머지 ‘동문 모텔Ⅱ’ 미술관은 내년에 문을 열 겁니다.”

영국의 대표 작가 마크 퀸의 ‘셀프’. 작가가 자신의 피를 응결시켜 만든 작품으로 파격적 발상이 김창일 회장의 호주머니를 열게 만들었다.
제주도 두 곳의 미술관에선 한국작가 기획전도 열 계획이라는 그는 그동안 갤러리 운영을 통해 미술품 수집을 해 왔다. 작가와의 관계망 구축이 컬렉션을 수월케 해주었다.

최근 그는 상하이에 아라리오갤러리를 열었다. 베이징에서 갤러리를 철수한 것과는 대비되는 행보다. 상하이의 미술시장이 중국에서 가장 시장친화적이란 판단에서다.

미술관 전시장으로 들어선 그가 한 작품 앞에 섰다. 영국 현대미술의 이단아로 불리는 여성 작가 트레이시 에민의 작품 ‘1963년을 회고하며’에서다.

“영국 사치갤러리가 이 작품을 팔라며 백지수표를 건넸지만 팔지 않았어요. 200만달러는 써도 된다고 하데요.”

그가 다시 걸음을 멈춘 곳은 YBAs의 대표 작가 마크 퀸의 작품 ‘셀프’에서다. 작가가 자신의 피를 응결시켜 만든 일종의 자화상이다.

“전 세계에서 저와 사치, 그리고 미국 컬렉터 3명만이 가진 작품이지요. 녹아 내리지 않게 냉동시설을 갖춰야 하는 작품입니다.” 실제로 전기가 나갔을 때를 대비해 예비전력까지 갖췄다. 만에 하나 녹았을 땐 자화상 틀이 구비돼 있어 다시 형태를 만들 수 있게 된다.

그는 자신의 컬렉션과 함께 ‘씨 킴’이라는 예명으로 작업한 자신의 작품도 다수 선보이고 있다.

“저는 28세부터 사업전선에 뛰어들었습니다. 어느 시기부턴가 저에겐 양면성이 존재한다는 갈등에 시달렸습니다. 태어났을 때 받은 DNA와 생존을 위해 진화된 DNA의 부조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정신병원에 가야 하는 것 아닌가 할 정도였지요. 그러나 자연스럽게 붓을 들면서 정화가 됐어요.”

요즘 제주에 많이 머물고 있는 그는 하루 1∼2시간 산책 후 그림에 매달린다. 마음이 편해지고 꿈을 먹는 듯한 기분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설치 작품까지 장르도 확대되고 있다. 작가가 되기 위해 작업을 한다기보다 삶의 환희를 맛보기 위해서 작업을 하고 있는 것이다. 영혼이 살아 있는 삶이다. 그의 컬렉션의 제1요건도 영혼이 있는 작품이다.

“사람들은 그래요. 왜 당신의 작품까지 미술관에 전시를 하냐고요. 그러면 저는 그러지요. 미술관은 꿈의 창고라고요. 저 같은 사람의 꿈을 보면 관람객들은 가벼이 꿈의 나래를 펼 수 있을 겁니다.”

컬렉팅은 본능적이고 운명적인 사건 같은 것이라는 그는 나중에 컬렉션 모두를 문화재단에 기탁할 생각이다. 꿈은 특정 개인의 것이 아닌 모두의 것이기 때문이다.

낙서 같은 자신의 그림이 그려진 티셔츠와 물 빠진 청바지 차림에, 해골 시계를 찬 그는 늘 꿈에 배고프다고 했다. 번 돈을 컬렉션에 모두 쏟아붓는 것은 꿈이 늘 굶주림으로 다가오기에 어쩔 수 없단다. 영국의 세계적 미술관인 테이트모던에서 그의 컬렉션 전시를 요청해 올 정도로 이제 그는 컬렉터로 나름의 자리를 굳혔다고 할 수 있다. 이제 우리 미술계도 그에 대한 삐뚤어진 시선을 거둘 때가 됐다. 그것이 그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일 것이다. 그는 더 이상 미술계의 괴물이 아니다.

편완식 미술전문기자 wansi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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