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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상담교사 있는 초등교 전국 4곳뿐… 주먹구구 대응

입력 : 2014-07-09 21:07:11 수정 : 2014-07-10 00: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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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벌 위주 학폭 예방…아이들의 고통 더 심해졌다
2011년 대구에서 학교폭력에 시달린 중학생이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사회문제가 되었다. 정부는 부랴부랴 학교폭력 대책을 세웠다. 그러나 3년이 지난 지금까지 학교폭력은 근절되지 않고 있다. 9일 푸른나무 청소년폭력예방재단에 따르면,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1월까지 전국 초등학교 4학년∼고등학교 2학년 학생 6153명을 대상으로 벌인 조사에서 ‘최근 1년간 학교폭력 피해를 봤다’고 응답한 학생은 6.1%로 전년(12.0%)보다 크게 줄었다. 그러나 학교폭력으로 ‘고통스러웠다’(34.5%)거나 ‘매우 고통스러웠다’(21.6%)고 답한 비율은 56.1%로 전년보다 6.8%포인트 증가해 고통의 정도는 과거보다 심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제2의 갈등 부르는 학폭대책위

정부는 학교폭력을 해결하기 위해 각급 학교에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학폭대책위)’를 구성하도록 했다. 학폭대책위는 학교 관계자와 학부모, 경찰, 변호사 등이 참여해 가해학생과 피해학생에 대한 조치를 결정하는 기구다. 중학교의 경우 가해학생 조치 건수는 2010년 1만4179건, 2011년 2만77건, 2012년 2만6622건으로 해마다 늘고 있다.

하지만 조치 건수 증가가 학교폭력의 해결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실제 학교폭력예방연구소의 면담조사에 따르면 피해학생들은 학폭대책위 조치 이후 가해학생을 피해다니거나 전학을 가고 싶어 하는 등 학교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았다. 서울의 한 중학교에 다니는 A(13)군도 학폭대책위 조치 이후 한 달 넘게 학교 나가기를 거부해 청소년상담소에서 심리치료를 받고 있다. A군의 상담사는 “가해학생이 6명 정도였는데 그중 2명이 전학을 가는 등 문제가 커지면서 A군이 오히려 부담을 느낀 것 같다. 학교에 가는 것에 대해 공포를 느끼는 상태”라며 “어른들이 일을 망쳤다고 원망하는 마음도 크고 우울증 증세가 있어 약물과 상담 치료를 하고 있다”고 전했다.

후유증은 가해학생도 마찬가지였다. 상당수 가해학생들이 자신의 사소한 행동이 확대돼 학폭대책위에 회부된 것에 당혹스러움을 느끼거나 ‘낙인’찍혔다는 생각에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었다. 한 가해학생은 “(학폭대책위에 가서) 죽고 싶은 마음이 들었고 학교를 자퇴하고 싶었다”고 털어놨다. 강제전학 조치를 받은 한 여학생은 “어떤 애랑 조금만 싸워도 내가 강제전학을 왔다는 이유로 더 피해를 봤다. ‘어차피 내 잘못이 될 텐데’라는 생각이 들어서 반항심이 생겼다”고 털어놨다. 학폭대책위의 조치가 또 다른 폭력행동을 유발하는 것이다.

피해학생은 물론 가해학생에게도 심리상담 등 행동을 교정할 수 있는 조치가 필요하지만, 학폭대책위에서 가해학생들에게 내린 조치는 처벌 위주였다. 학교폭력예방연구소 조사 결과 학폭대책위에서 내린 조치(중복응답 가능)는 학교봉사가 28.4%로 가장 많았고 서면사과 20.9%, 출석정지 11.9%, 피해학생 접촉금지 10.4%, 사회봉사 9.7% 등의 순이었다. 특별교육이수·심리치료는 9.0%에 불과했다.

한 청소년상담사는 “가해학생은 학교폭력으로 처벌을 받더라도 ‘운이 없어서 걸렸다’고 생각하지, 자신의 행동이 피해학생에게 얼마나 큰 상처가 되는지는 알지 못한다. 피해학생도 ‘내가 못나서 괴롭힘을 받는 것’이라며 자신을 탓하는 경우가 많다”며 “상담이나 교육 없이 다시 학교로 간다면 학교폭력은 또다시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겉도는 학교폭력 대책들

정부의 학교폭력 대책도 표면적으로는 피해·가해학생의 심리지원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만 실제 실행에는 문제가 많았다. 정부는 2011년 전국 모든 초·중·고교(1만1408곳)에 전문적인 상담이 가능한 ‘위클래스’를 설치한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설치율은 47.9%(5468곳)에 그쳤다. ‘전문상담교사제’도 유명무실하다. 전국 초·중·고등학교에 배치된 전문상담교사는 지난해 9월 기준 1581명으로, 초등학교의 경우 전국에서 단 4명에 불과했다.

교육부의 한 관계자는 “학교폭력 문제가 중학교에서 많이 일어나다보니 위클래스나 전문상담교사는 전교생이 101명 이상인 중학교 위주로 점진적으로 설치하고 있다”며 “전문상담교사의 경우 국가공무원이라 인력 증원이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초등학생의 경우 학교폭력이 더욱 심각할 수 있는 만큼 초등학교에도 위클래스나 전문상담교사를 늘려야 한다고 지적한다. 푸른나무 청소년폭력예방재단 조사에 따르면 학교폭력을 처음 경험한 시기는 초등학교 고학년이 43.7%, 초등학교 저학년이 31.4%로 초등학생 때가 가장 많았다. 재단의 한 관계자는 “학교폭력이 발생하는 시기가 점점 빨라지는 데다가 초등학생 때의 폭력경험이 중·고등학교에서도 이어지기 때문에 초등학생 때부터 전문적인 상담과 올바른 지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밖에 자치법정, 또래조정 등 학생 중심의 학교폭력 해결 대책들도 형식적이어서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중학교의 생활지도부장 교사는 “학생들이 수행하는 모의재판, 자치법정 등은 보여주기 위한 활동이지 제대로 진행할 여력이 없다”며 “가해학생 조치를 결정하는 것은 교사들에게도 어려운 일인데 학생들에게 맡기기는 한계가 있다”고 전했다.

조정실 학교폭력피해자가족협의회 회장은 “학교폭력은 간단한 문제가 아닌 만큼 학생들의 행동을 지속적으로 관리·교정할 수 있는 전문적인 상담과 교육 대책이 강화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유나 기자 yo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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