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젠하워 보고서’ 목록 발굴 의미는
발굴 목록은 유엔군사령부 임무와 한·일 해양분계선, 광복 이후 미국의 한반도 진주, 유엔과 참전국, 만주-한국 국경, 유엔 결의, 한국군 전력 현황, 중공군 참전, 연합작전, 군수, 핵무기, 정보 및 첩보, 주요 군사작전 결과 보고서, 수력발전소 및 댐, 향후 예상되는 주요 작전 및 관련 지침 등 모두 15개 항목을 다루고 있다. 수십쪽에 이르는 소분류 항목에는 이를 구체화하는 보고 내용이 첨부됐다. 새로 취임하는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 당선자에게 6·25전쟁 발발에서 진행 상황, 난국 타개를 위한 해법까지 두루 전달한 최종 보고서였던 것이다.
소분류 목록마다 대통령이 직접 보고받은 기록과 문서, 공문 등이 언제, 어디서, 누가 작성했는지 일목요연하게 명시돼 있다. 이런 문서는 대부분 미 극동군사령부와 합참, 국방부에서 준비하고 작성한 기록과 문서, 공문들로 채워져 군사적인 측면에서 바라본 6·25전쟁에 대한 실체적인 자료로 분석된다.
그동안 학계에서는 6·25전쟁 기간 미 트루먼 대통령과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각군 본부와 합참의장, 국방부 장관으로부터 정기 브리핑 받았다는 기록을 토대로 이들이 수시·정기 보고를 받고 관련 지시를 내렸을 것으로 추정했다. 하지만 대통령 관련 보고서가 발견되지 않아 정작 어떤 보고를 받았는지 구체적인 내용은 파악하지 못했다. 이로 인해 일각에서는 6·25전쟁 당시 미 대통령은 한반도 문제에 크게 관여하지 않았으며 한반도는 유럽을 중심으로 한 미국의 세계전략, 일본을 중심으로 한 미국의 지역전략의 변방에 있었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이번 발굴 목록은 이런 주장을 반박할 최초의 실체적 증거라는 의미를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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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육군이 1952년 작성한 ‘아이젠하워 보고서’. 군사편찬연구소 제공 |
더글라스 맥아더 유엔군 사령관 등은 6·25전쟁 당시 핵무기 사용을 주장했지만 미국 행정부는 이를 승인하지 않았다. 이번에 발굴된 ‘아이젠하워 보고서 목록’은 미국이 그 과정에서 핵무기 사용 여부를 놓고 얼마나 고심했는지를 엿볼 수 있다.
아이젠하워가 대통령에 취임할 즈음에는 미군의 핵 보유량이 크게 증대됐다. 수소폭탄도 개발돼 핵기술에서 소련을 압도했던 시기였다. 미 육군이 아이젠하워 보고서를 통해 보다 구체적으로 핵무기 사용 관련 보고를 올린 배경엔 소련에 대한 미국의 군사적 우위 상황임이 감안된 것으로 풀이된다. 이 무렵 미국에 대한 유엔 참전국들의 신뢰가 높았고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의 안정화로 소련의 기습 공격도 우려하지 않을 수 있는 단계가 됐다.
대통령으로 취임한 아이젠하워도 교착상태에 빠진 6·25전쟁 휴전협상을 마무리짓고 전쟁을 하루빨리 끝내야 한다는 생각에 골몰했다. 핵무기 사용 검토는 휴전협상에 발목이 잡힌 미국의 세계 정책, 전략을 풀기 위한 방편이기도 했다.
한국은 물론이고 미군 내에서도 한반도 통일이 어렵다면 최소한 원산∼평양선까지라도 휴전선을 끌어올려야 한다는 주장이 있었다. 하지만 미국 내 반전여론이 고조되고 추가적인 유엔군 희생을 막아야 한다는 주장에 밀려 아이젠하워는 끝내 핵무기 사용 카드를 내려놨다. 영국을 비롯한 동맹국의 반발도 작용했다.
박병진 군사전문기자 worldp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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