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시아가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문제에 대한 논란으로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헌법 해석 변경을 통해 집단적 자위권을 확보하겠다고 공언하고 있으나 일본 내에서조차 연립여당인 공명당과 야당들이 반대하고 있다. 동맹국인 미국이 일본의 군사적 역할 확대에 손을 들어주고 있지만 한국과 중국 등은 아베 정권의 행보에 강한 불신과 우려를 감추지 않고 있다. 아베 총리는 내년 말까지로 예정된 미·일 방위지침 개정 과정에서 집단적 자위권 문제를 확실히 매듭짓겠다는 태세지만 벌써부터 상당한 진통이 예견된다. 역사적으로 일본의 군사력이 강해지면 반드시 화(禍)를 입었던 한국으로서는 집단적 자위권을 비롯한 일본 내 군사력 강화 논의를 끝까지 예의주시하며 적극적인 외교전을 펴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집단적 자위권은 자국과 밀접한 관계에 있는 외국이 무력공격을 받을 경우 실력행사를 통해 저지할 수 있는 권리다. 유엔헌장 51조에는 자국에의 침해를 배제하는 개별적 자위권과 함께 이를 주권국의 ‘고유의 권리’로 규정하고 있다. 다만 태평양전쟁에서 패전한 일본은 평화헌법 9조가 ‘전쟁 포기, 전력비보유’를 명기하고 있다는 점을 들어 스스로 집단적 자위권을 인정하지 않았다.
지난 7월 참의원 선거에서 승리한 아베 총리는 이런 전통적 해석을 깨고 집단적 자위권 허용과 자위대 군비 강화 등에 과감하게 시동을 걸었다. 국방비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미국을 도와 중국의 군사력 급팽창과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을 적극 견제하겠다는 명분에서다.
총리 자문기구인 ‘안전보장과 방위력에 관한 간담회’(이하 간담회)는 지난 21일 국가안전보장전략(NSS) 원칙을 발표하며 무기수출 3원칙의 개정 필요성을 명시했다. 일본은 1967년부터 ▲공산권 ▲유엔이 금지한 국가 ▲국제분쟁 당사국에 대한 무기 수출을 금지해왔으나 앞으로 이 족쇄를 풀고 본격적인 군비 강화에 나서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간담회는 앞서 지난 16일에는 일본 자위대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 범위를 설명하면서 동맹국인 미국 본토를 공격한 국가에 무기를 공급하는 선박에 진입해 검사하거나, 해당 선박을 일본 항구로 강제 유도하는 사례를 소개해 주목을 끌었다.
일본 내에서는 집단적 자위권과 맞물려 적기지 선제공격론까지 거론되고 있다. 아베 총리 본인이 지난 2월과 5월 국회에서 적기지 선제공격력 보유에 대한 논의의 필요성을 밝힌 이후 보수 논객들이 지속적으로 군불을 지피고 있다. 일본 방위성은 중국과의 군비경쟁을 의식해 2014년 방위비로 2013년의 4조7600억엔보다 4% 늘어난 4조9400억엔을 요청할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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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해상 자위대 구축함들이 열을 지어 항해하고 있다. 최첨단 전력으로 이뤄진 해상자위대는 집단적 자위권 행사가 인정될 경우 미군 항공모함 전단과 함께 세계 곳곳의 주요 분쟁지역에 개입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
하지만 이런 아베의 행보는 일본 안팎에서 강한 반발을 낳고 있다. 자민당과 함께 연립여당을 구성하고 있는 공명당의 야마구치 나쓰오(山口那津男) 대표는 지난 23일 한 강연행사에서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생각은 매우 체계적이고 정합성 있게 만들어진 것”이라면서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위한) 헌법 해석 변경에는 신중해야 한다”고 밝혀 반대의사를 분명히 했다. 아베 총리는 공명당의 이 같은 반발을 의식해 연내 실시하려던 안보법제간담회의 집단적 자위권 관련 최종보고를 내년 4월 예산안 성립 이후로 연기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과 중국에서는 일본 자위대가 한반도와 그 주변에 임의로 출동하거나, 집단적 자위권이 무분별하게 남용될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이런 점을 의식한 듯 일본 정부 내에서도 집단적 자위권의 발동 요건을 명문화하려는 흐름도 엿보인다.
극우성향의 산케이신문은 지난 11일 일본 정부 내에서 집단적 자위권의 발동 요건으로 ▲주변사태법의 원용 ▲무력 공격을 받은 나라로부터의 엄호 요청 ▲국익에 따른 고도의 정치 판단 등 크게 세 가지 사항이 검토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한반도 유사시 등 일본 주변 지역에서의 미·일 협력 방식을 규정한 주변사태법은 제1조에 “방치하면 일본의 평화와 안전에 중요한 영향을 주는 사태”라고 개입 요건을 규정하고 있는데 이를 집단적 자위권 발동의 요건으로 삼자는 것이다. 또 집단적 자위권 발동을 최소화하기 위해 공격받은 동맹국이나 무력 분쟁 당사국의 지원요청을 발동 요건으로 하거나 일본판 NSC(국가안전보장회의)에서 해당 분쟁이 일본의 국익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분석하고 국회승인(정치적 판단)을 거치도록 하자는 것이다.
중도성향의 마이니치신문도 28일 “일본의 안전보장에 중대한 지장이 생긴다는 전제가 없으면 집단자위권을 행사할 수 없다”는 정부 관계자의 발언을 인용하며 ‘국가 존립’을 해치는 상황에서만 제한적으로 집단적 자위권을 허용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내년 초부터 일본 사회가 집단적 자위권의 내용과 범위, 발동 요건 등을 놓고 본격적인 격론을 벌일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김동진 기자 bluewins@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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