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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농촌, 가장 위험한 작업장] “아파도 일손 달려서”… 30여년 통증 안은 채 밭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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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9-09-29 19:35:16 수정 : 2009-09-29 19:3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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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손목 수술한 안춘자·문춘희·인기숙씨
반복된 노동 탓에 손저림 심해… 밤잠 제대로 못자
대부분 방치하다 병 키워… 농업인안전공제서 도와
“손이 저려서 숟가락 하나 제대로 들 수 없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농사일이 많아 그냥 참는 수밖에 없지요.”

무더위가 채 가시지 않은 지난 2일. 충남 서산시 응암면 탑곡리에서는 농부들의 논일·밭일이 한창이었다. 수확을 앞둔 벌판엔 벼, 달래 등 온갖 농산물이 가득했고 이를 매만지는 농부들의 얼굴엔 구슬땀이 송송 맺혀 있었다. 하지만 밭 한쪽에서 빨갛게 익은 고추를 따고 있는 아주머니 세 명의 행동은 한눈에 보기에도 부자연스러웠다.

고추를 따기 위해서 손목을 이용해 고추를 낚아채야 하는데 이 동작이 다른 사람과 달리 매우 조심스러웠던 것. 이들은 지난해 농업인안전공제의 도움으로 무료 ‘수근관 증후군’ 수술을 했다.

농민의 대표적 직업성 질환인 근골격계 질환 중에서도 가장 흔한 수근관 증후군은 손목 앞쪽의 신경 통로가 막혀 손바닥과 손가락에 이상 증상이 나타나는 질환으로, 심해지면 밤에 잠을 자지 못할 정도의 통증을 느끼고, 손가락 감각이 떨어져 손 힘이 약해지기도 한다. 장기간 반복된 손목 작업이 병을 낳았다.

◇지난해 수근관 증후군으로 손목 수술을 한 인기숙·안춘자·문춘희씨(왼쪽부터)가 수술 부위를 보여주고 있다.
이제원 기자
이들 중 올해 61살인 안춘자씨는 양 손목을 모두 수술했다. 35년간 고추와 달래, 고구마 등 온갖 농사일을 해온 안씨는 15년 전부터 오른손이 저리기 시작했다. 처음엔 ‘쉬면 괜찮아지겠지’ 하는 심정으로 농사일과 집안일을 계속했다.

그러나 7∼8년 전부터는 저림이 너무 심해 숟가락도 들지 못할 지경에 이르렀다. 밭일은 물론이고 바느질 같은 집안일도 하기 어려웠다. 안씨는 그러나 일을 대신해줄 사람이 없어 어쩔 수 없이 농사일을 계속했다. 결국 손가락이 잘 펴지지 않는 등 손 감각에 이상이 생겼다. 2005년 자비를 들여 손목 앞쪽을 절제하고 신경 통로를 넓히는 수술을 했다. 2주간 통원치료를 하며 염증이 생기지 않도록 약을 먹는 등 노력을 기울인 끝에 간신히 손 감각이 예전의 80∼90%까지는 돌아왔다.

3년 후인 2008년, 이번엔 왼쪽 손목이 말썽이었다. 오른쪽 손목 수술 이후 왼쪽 손목을 집중적으로 사용하다 보니 같은 증상이 생긴 것이다. 안씨는 오른쪽 손목 저림을 방치해 증세를 키웠던 악몽이 되살아나 왼쪽 손목은 서둘러 수술을 했다. 그의 양쪽 손목에는 3∼4㎝가량의 상처가 뚜렷이 남아 있다.

안씨는 “왼쪽 손목 저림이 왔을 때 오른쪽 손목 수술을 한 경험으로 빨리 치료할 수 있었다”며 “하지만 농사일이 많아 양쪽 다 언제 재발할지 걱정”이라고 고개를 흔들었다.

지난해 안씨와 같이 수근관 증후군 수술을 한 문춘희(58), 인기숙(56)씨도 오랫동안 손목 아픈 것을 참으며 농사일을 계속했다. 30여년간 콩을 비롯한 달래, 씀바귀, 고추, 들깨 등을 키워온 문씨는 특히 잠잘 때 고통이 심했다. 손 저림이 심해 하룻밤에도 몇 번씩 잠을 깨 손을 주물러야 했다. 손가락을 아래로 향하면 저림이 더욱 심해 손을 깍지 낀 상태로 가슴에 얹어 조금이라도 손가락이 위를 향하게 하고 자야 했다. 자칫 잠을 자다가 뒤척이기라도 하면 저림이 다시 밀려왔다. 밥을 먹을 때도 몇 번씩 손을 주물러가며 식사를 마쳤다. 모내기 철인 지난해 5월 수술을 했지만 일손이 달려 손을 놓지 못하고 모내기를 하는 바람에 한동안 염증으로 고생을 하기도 했다.

문씨는 “마을 여자들이 100여명 되는데 반 정도가 손 저림 현상을 호소하고 있다”며 “우리는 다행히 수술을 받았지만 대부분은 ‘참으면 낫겠지’ 하는 심정으로 고통을 견디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인씨는 “양 손목을 모두 수술한 임씨와 달리 문씨와 나는 한쪽만 했는데 수술하지 않은 다른 손목에 언제 증상이 나타날지 몰라 초조하다”면서 “조심한다고는 하지만 농사일의 특성상 반복되는 작업을 멈출 수 없는 만큼 결국 언젠가는 수술해야 하지 않겠느냐”며 한숨을 쉬었다.

이들은 “전국적으로 수많은 농민이 수근관 증후군 등 각종 근골격계 질환을 앓고 있을 것”이라며 “그러나 농민 대다수가 농업인 안전공제와 같은 제도가 있는지 몰라 고통을 참고 있다”고 말했다.

단국대 산업의학과 노상철 교수는 “농민들은 몸이 아프면 나이 탓으로 돌리거나 자신들이 잘못해서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많다”며 “정부와 사회가 ‘농업도 하나의 직업이고 그 현장인 농촌도 가장 위험한 곳’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적절한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별기획취재팀=염호상(팀장)·박성준·안용성·엄형준·조민중 기자 tams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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