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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인 모를 화재…거리에 나앉는 피해자들

입력 : 2013-01-21 10:05:22 수정 : 2013-01-21 10: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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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 소재 불분명할 경우엔 정부 지원금 하늘의 별따기
2012년 1만여건 중 1%만 혜택…“촘촘한 사회안전망 구축을”
“원인 모를 화마(火魔)에 신혼생활이 풍비박산 났습니다.”

지난달 9일 오후 서울 동대문구 이문동 2층짜리 단독주택에 붙은 불은 삽시간에 7가구가 세들어 사는 주택 전체를 삼켰다. 소방관들의 진화에도 남은 것은 건물 골조뿐이었다.

2층에 세 들어 살던 A(32)씨 부부는 그날 이후 지인의 집에 얹혀 살고 있다. 일주일쯤 뒤 날아온 소식은 “화재 원인이 불분명하다”는 경찰 조사 결과였다. A씨 부부는 눈앞이 캄캄했다. 책임 소재를 가릴 길이 없어진 것이다.

A씨는 “집주인이 세입자들에게 건물을 원상복구해 놓으라고 요구하는 바람에 전세금도 못 받게 생겼다”며 “추운 겨울에 어디로 가야 할지 막막하기만 하다”고 했다.

예기치 못한 화재로 삶의 터전을 송두리째 잃어버리는 피해가 연간 1만건 이상 발생하고 있다. 참혹한 피해 결과와 달리 화재 원인이 불분명하면 정부 지원은 물론 민간 보상도 받기 어렵다.

20일 소방방재청에 따르면 주거지 화재는 지난해에만 총 1만690건이 발생했다. 2008년(1만2283건)보다 12.9% 줄었지만 1만건을 웃돈다.

이 가운데 원인을 밝히지 못한 화재는 지난해 4261건이나 됐다. 평균 가구원 수(2011년 기준 2.7명)를 감안하면 한해 평균 1만명 이상이 원인도 모르는 화재로 거리에 나앉는 처지에 놓이고 있는 셈이다. 민간 보험사들도 ‘원인 미상’인 화재에는 보험금 지급을 제한한다. 한 대형 보험사 관계자는 “원인 미상인 화재는 나중에 악의 또는 과실 여부가 가려질 것을 우려해 일반적으로 보험금 지급에 제한을 둔다”면서 “특약을 설정할 수도 있지만 그 수가 많지 않다”고 설명했다.

화재 피해 가구가 기댈 곳은 정부 지원뿐이지만 그나마 일부 극빈층에 한정되어 있다. 긴급복지지원법에 따라 각 지방자치단체가 화재·산사태 등 자연재해를 당했거나 3개월 이상 월세를 연체해 주거지를 잃은 가정에 월 13만∼75만원의 임시 거주비를 최장 6개월까지 지원하는 제도가 유일하다.

지원 자격은 재산 1억3500만원·월소득 231만원(4인가구)·금융재산 500만원 이하인 극빈층 가정이다. 지난해 1115건이 지원됐지만 그나마 화재 피해자는 10% 정도에 불과하다. 전체 화재 피해(1만690건) 가구의 1% 정도다.

정부 지원금을 받고 있는 김모(56)씨는 “지난달 초 같은 집에 살던 한 대학생이 촛불을 켜놓고 자다가 주택 전체가 소실돼 월세 보증금을 고스란히 떼였다”면서 “실화자가 대학생인 탓에 별다른 보상도 못 받았는데 나라에서 주는 돈도 30만원 남짓이어서 재기는 꿈도 못 꾼다”고 말했다. 일부 지역에서는 소방당국과 대한적십자사가 긴급지원을 벌이기도 하지만 역부족이다.

외국의 경우 미국은 화재 피해자에게 국민연금 중 일부를 선지급해주는 긴급구제대책을 시행하고 일본은 민간 화재보험 가입을 촉진하는 캠페인을 벌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영주 서울시립대 교수(도시방재학)는 “우리 정부의 화재 피해 구제 대책은 관련 피해 규모를 못 따라가고 있다”면서 “화재 피해자를 선별해 지원을 늘리는 등 사회안전망을 촘촘하게 짜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오영탁 기자 oyt@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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