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엑스포땐 미니 북·장구 1억원어치 납품
완제품까지 다뤄… 국내외서 최고 실력 인정 받아 충북 영동군 심천면 고당리에는 난계 박연(1378∼1458) 선생의 생가와 사당이 자리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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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영동군 심천면 고당리 난계국악기제작촌에서 이석제씨가 장구 울림통을 만들고 있다. |
박연 선생은 고구려의 왕산악, 신라의 우륵과 함께 우리나라 3대 악성으로 불린다.
박연의 혼이 고스란히 서린 생가와 사당 인근에 자리 잡은 난계국악기 제작촌에는 북과 장구 등 ‘타악기 제작의 달인’으로 불리는 이석제(44)씨가 머물고 있다.
5일 제작촌에서 만난 이씨의 손은 22년간 망치와 대패를 잡아 까칠하고 뭉툭해져 장인의 손임을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이씨는 이곳에서 지난해 4월부터 지상 최대의 북을 만들기 위해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이 북은 울림판만 높이 6m, 폭 5.8m에 이른다. 무게는 7.5t에 달한다.
그는 울림통을 만들기 위해 5년간 말린 소나무 원목을 길이 1.5m, 너비 15㎝, 두께 7㎝ 안팎으로 잘라 전통 방식의 나비장(나비 모양의 나무쪽)을 만들어 이음매를 끼워 맞췄다. 이 울림통을 6명의 악기장이 꼬박 4개월에 걸쳐 제작했다.
“800개의 나무판이 들어갔습니다. 통나무 한 개에 송판이 2장 정도 켜지니 25t트럭 3대분의 나무가 들어간 셈이지요.”
그는 이 울림통을 견고하게 하기 위해 내부에 알루미늄관을 덧대었다. 그리고 한쪽에 소 17마리 분량의 가죽을 이어 붙인 울림판(지름 5.75m)을 씌웠다.
이달 중순 대형 기중기 2대를 이용해 울림통을 뒤집어 반대쪽도 울림판을 씌워 오는 5월 중에 북을 완성할 계획이다.
“현재 가죽을 씌워 팽팽하게 당기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70% 정도 당겨졌죠. 양쪽에 총 34마리 분량의 소가죽이 들어가는데 가죽과 가죽을 이은 부분을 손질한 다음 태극문양의 그림을 그리면 북이 완성됩니다.”
기네스북에 등재될 예정인 이 북은 종각과 같은 건물에 설치된다.
세계에서 가장 큰 북은 2001년 일본에서 제작된 울림판 지름 4.8m, 울림통 폭 4.95m짜리로 알려져 있다.
고졸 학력인 이씨가 세계에서 가장 큰 북을 제작하자 학계 등에서는 ‘과연 소리가 잘 날까’라며 의문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그는 “북은 울림판이 중요한데, 가죽이 팽팽하게 잘 당겨져 상태가 아주 좋다. 소리도 잘 울릴 것으로 판단된다”고 자신있게 말한다.
대전에서 태어난 그가 타악기와 인연을 맺은 것은 생계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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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제씨가 충북 영동군 심천면 고당리 난계국악기제작촌에서 세계에서 가장 큰 북을 만들고 있다. 영동=연합뉴스 |
군대를 제대한 뒤 마땅한 직업이 없어 고민하다가 그는 무작정 악기를 만드는 곳으로 유명한 대구 불로동 골목을 찾았다.
이때가 21살 때인 1987년이다. 하지만 대구에서 6개월 일하는 동안 작업용 칼인 조각도를 한 번도 잡지 못하고 뒷일만 하다가 대전으로 돌아왔다. 그는 빌린 하우스 안에서 오동나무 대신 미루나무를 이용해 장구 울림통을 깎는 기술을 스스로 익혀 나갔다.
남달리 소질이 뛰어난 그는 불과 3∼4년 만에 악기 제작에 두각을 나타냈다.
“회사원 월급이 20만원 정도였던 그 당시 장구 울림통 하나를 깎으면 6000원을 벌었는데, 저는 하루에 12개 정도 만들어 냈습니다. 밥만 먹으면 장구통을 만들었지요. 악기를 만들면 말할 수 없는 희열과 재미가 있었습니다.”
그가 만든 물건은 없어서 못 팔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장구·북 제작 악기장인 무형문화재인 고 서남규 선생도 그에게서 악기를 주문했을 정도다.
1990년대 초 한국과 중국이 수교하면서 우리나라 악기 제작 사업이 사양길을 걷게 됐지만 그는 공예품 악기를 만들어 내 적지 않은 돈을 벌었다.
“전통 악기 제작으로는 생활이 어려워 20㎝짜리 미니장구 20개를 만들어 한국 민속촌 입구에 갔는데 외국인들의 반응이 좋았어요. 이후 한 달에 800∼1000개(개당 1만2000원)씩 납품했죠. 1993년 대전엑스포 때는 미니 북과 장구 등을 1억원어치나 납품했습니다.”
공예품 악기를 그가 최초로 만들어 보급한 것이다. 공예품 악기를 만들 때도 일반 악기와 마찬가지로 소가죽과 오동나무, 줄을 똑같이 사용했다.
그는 여기에 머물지 않고 장구를 만들고 남은 오동나무가 어중간하게 버려지자 유치원생에게 맞는 길이 39㎝ 울림통과 지름 33㎝ 울림판(성인용 울림통 길이 51㎝, 울림판 지름 42㎝)의 장구를 만들어 보급했다.
이 같은 악기에 대한 남다른 열정이 그를 2001년 난계국악기 제작촌 타악기공방 대표로 서게 했다. 당시 영동군은 박연 선생의 이름을 내걸고 영동을 국악의 고장으로 키우겠다는 야심 찬 프로젝트를 마련해 전국을 돌며 국악기 대가를 찾다가 이씨를 대전에서 초빙했다.
이곳에서는 북과 장구, 대금 등 50여 가지의 국악기가 제작된다. 대부분 공정을 하청에 맡기는 국내 국악기 판매상들과 달리 이곳 제작촌은 원료부터 완제품까지 전 과정을 직접 다루고 있다.
이런 이유로 국내외에서 최고의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 2001년 전국공예품경연대회에서 입상한 그는 난계국악축제 추진위원을 맡고 있으며, 국악기 장구 개량사업을 3회나 진두지휘했다.
그는 최근에는 개량 소리북(판소리 반주용)을 만들어 냈다. 개량북은 참나무 원목으로 울림통을 확장하고 타닌 성분이 든 감즙으로 가죽을 처리해 자연에 가까운 소리를 내는 장점이 있다.
매년 방학이면 이곳에서 악기 제작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 그는 “국악을 하는 원로들이 머물 수 있는 타운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영동=김을지 기자 ejkim@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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