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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 속 여성] 윌리엄 호가스―계약결혼

입력 : 2009-04-30 23:14:50 수정 : 2009-04-30 23: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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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없는 금력과 권력의 계약결혼 신랄하게 꼬집어
18세기 초, 영국 사회는 신흥부자들과 몰락해 가는 귀족 집안 사이의 결혼이 유행이었다고 한다. 귀족들은 우아한 생활을 계속 유지할 수 있었고, 부자들은 귀족의 칭호와 명예를 얻을 수 있었으니 서로 남는 장사였던 셈이다. 당대 풍자회화로 이름을 떨친 윌리엄 호가스의 ‘계약결혼’도 이런 세태를 신랄하게 꼬집고 있다.

화려한 금빛 옷을 입은 귀족은 자신들이 얼마나 뼈대 있는 가문인지를 과시하려는 양, 복잡다단한 가계도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으스대고 있다. 그와 원형탁자를 사이에 두고 맞은편에 앉은 붉은 옷의 남자는 결혼지참금 계약서를 읽는 것으로 보아 신부의 아버지임을 알 수 있다. 결혼의 주인공인 신랑신부는 당시 유행하던 프랑스식 복장으로 화려하게 꾸민 채 작품 왼쪽에 앉아 있다. 신부는 신랑이 아닌 다른 남성과 대화 중이고, 신랑은 예비신부의 마음이 어디로 향해 있는지 개의치 않고 거울을 보며 몸치장에 열중이다. 신랑 발 밑에 있는 두 마리 개조차 무신경한 채 각각 다른 곳을 보고 있어 이 결혼식이 참으로 허망하다는 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160cm도 되지 않는 작은 키로, 붓 하나 가지고 세상을 비웃었던 호가스는 불행할 수밖에 없는 결혼의 유형을 비판하고, 부부간의 진솔한 애정을 강조하기 위해 이 작품을 시리즈로 연작했다 한다. 이 작품의 모델은 실제 18세기에 실존했던 백작가문과 상인가문이었으며, 신부와 내연관계였던 변호사가 방탕한 생활을 일삼던 신랑을 보다 못해 살해해 버리고, 이를 비관한 신부가 독약을 먹고 자살하며 비극으로 끝나고 말았다고 전해진다.

탄생, 결혼, 죽음. 인간의 일생을 관통하는 3대 거사(巨事)다. 이에 따르면 결혼에 성공한 이는 인생에 성공한 이다. 수많은 커플들이 결혼에 성공하려고 서로를 위한, 혹은 서로에 대한 약속을 글로 적어두는 데 인색하지 않은 것도 자연스럽다.

올해 초 일본에서 한 장의 결혼계약서가 논란이 되었다 한다. ‘1리터의 눈물’로 유명한 드라마스타 사와지리 에리카가 그 주인공. 결혼식 전 변호사를 통해 정식으로 작성된 데다 외도할 경우 부과될 엄청난 벌금, 부부관계의 횟수도 정해져 있고, 이혼 시 재산분할 및 친권 귀속까지 철저하게 ‘계산’돼 있어 충격을 주었다. 사랑으로 충만해야 할 결혼의 약속들이 ‘외도’, ‘벌금’, ‘이혼’ 등 부정적인 단어들로 채워져 있다는 게 슬프기 이를 데 없다. ‘이 커플, 반드시 깨질 것 같다’고 점치는 누리꾼들이 많은 것도 이 때문이리라.
심형보 바람성형외과 원장


이런 계약결혼은 21세기에 갑자기 나타난 실험적 결혼방식은 아니다. 세기의 커플로 잘 알려진 실존주의 철학자 사르트르와 보부아르도 결혼계약서를 남겼다. 이들의 결혼계약은 죽음이 그들을 갈라놓을 때까지 50여년이 넘도록 유지되었다. 그런데 이들의 결혼계약서는 ‘서로 사랑하고 관계를 지키는 동시에 다른 사람과 사랑에 빠지는 것을 서로 허락한다’, ‘상대방에게 어떤 것도 숨기지 않는다’, ‘경제적으로 서로 독립한다’가 주된 내용으로, 거의 한 세기 전 쓰인 것이라고는 보기 힘들 정도로 쿨하다. 아마도 연인이면서 철학자로서 소울메이트였던 두 사람의 관계의 특성이 투영된 덕분인 것 같다.

결혼은 조건에 따라 만난 이와의 약속의 시간이기보다 그 약속을 실천을 통해 현실이라는 열매로 만드는 과정이다. 사르트르가 했던 말처럼. “우리 두 사람의 결합 이상 가는 것은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속박과 습관에 빠지지 않도록 온 힘을 다하여 그런 부패에서 우리를 지키지 않으면 안 된다.”

심형보 바람성형외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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